우리 인간들은 발전된 사회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도 성장과 물질문명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였다. 그리하여 국제자연보존연맹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약 3천 종류의 동물과 약 1만 5천 8백 종류의 식물이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발표되어 관심을 얻고 있는 환경 호르몬 은 인간이 만든 오염물질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쓰다 버리거나 사용중인 화학물질, 농약 등이 먹이 사슬을 통하여 우리의 체내로 들어와 마치 진짜 호르몬처럼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환경호르몬의 폐해로 1982년 미국 플로리다의 아포프타 호수에 사는 악어수의 급속한 감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악어들의 급격한 감소를 알기 위해 악어들의 혈액중의 호르몬을 조사하여 보니 수컷 악어의 호르몬이 암컷의 호르몬과 거의 비슷한 상태가 되어 있었으며, 수컷인데도 암컷 호르몬(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높고, 반대로 수컷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농도는 보통 호수에 사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1)Ⅰ. 환경 호르몬환경호르몬이란?환경호르몬이란 생물체에서 정상적으로 생성, 분비되는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산업활동을 통해서 자연계에 생성, 방출된 화학물질이 생물체에 흡수되면서 이러한 물질들이 생물체에서 호르몬처럼 작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물이나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서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키는 물질을 총칭하는 말이다. 학술용어로는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er)'이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환경호르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환경호르몬'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환경호르몬의 화학적 구조가 생체 호르몬과 비슷해서 체내에서 마치 진짜 호르몬인 것처럼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모방(mimic)'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가짜 호르몬은 진짜 호르몬인양 행세하면서 몸 속 세포 물질과 결합해 비정상적인 생리작용을 낳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진짜 호르몬이 할 수 있는 역할공간을 가짜 호르몬이 완전히 빼앗아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봉쇄(blocking)'라고 한다. 현재 알려진 대부분의 환경호르몬은 '모방' 또는 '봉쇄'의 두 가지 작용을 하고 있다. 이들 환경 호르몬은 생태계 및 인간의 생식기능 저하, 기형, 성장장애, 암 등을 유발하는 물질로 추정되고 있으며 특히, 1996년 미국에서 'Our Stolen Future'라는 책이 발간된 이래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생태계 및 인간의 호르몬계에 영향을 미쳐 전세계적으로 생물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켜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문제와 함께 세계 3대 환경문제로 등장하였다. 2)(각국의 환경호르몬에 대한 정의)일본 : 동물의 생체 내에 흡수되어 있는 경우, 본래 그 생체 내에서 활동하는 정상적인 호르몬 의 작용에 영향을 주는 외인성 물질 (1998.5 환경청)미국 : 외인성 물질로서, 생체의 항상성, 생식, 발생, 또는 행동에 영 향을 주는 생체 내 호르몬의 합성, 축적, 분비, 체내전송, 수용체 결합, 호르몬작용, 이런 정상적인 과정을 저해하는 물질 (1997.1 백악관 과학위원회)유럽 : 외인성 물질로서, 생물(生物)의 내분비계에 대하여, 그 개체 또 는 그 자손 세대 어느 단계에 건강장해성 의 변화를 일으키는 물 질(1996.12 유럽 위원회) 3)환경호르몬의 종류현재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추정되는 물질로는 각종 산업용화학물질(원료물질), 살충제 및 제초제 등의 농약류, 유기중금속류, 소각장의 다이옥신류, 식물에 존재하는 식물성에스트로젠(phytoestrogen), DES(diethylstilbestrol)과 같은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합성 에스트로젠류 및 기타 식품, 식품첨가물 등을 들 수 있다.Ⅱ.다이옥신(다이옥신이란?)다이옥신이란, 비슷한 특성과 독성을 가진 여러 가지 화합물들을 말한다. 75가지의 다른 형태가 있고, 이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이 2,3,7,8-사염화디벤조-파라-다이옥신(일명 TCDD)이다. 우리가 보통 다이옥신이라는 말을 사용 할 때는 다이옥신과 다이옥신 유사물질들을 총칭해서 말하게 될 것이다. 4)우리 나라에서 다이옥신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쟁에서 고엽제로 알려진 제초제에 다이옥신이 불순물로 함유되어, 이에 폭로된 참전군인들과 그 2세들에서 여러 가지 건강장애가 나타나 1990년대 초반부터 이 물질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최근에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다이옥신의 과다한 유출로 시민들의 관심을 갖게된 독성화학물질이다. 다이옥신은 일반적으로 제조되거나 사용되는 물질은 아니다. 보통 염소나 브롬을 함유하는 산업공정에서 화학적인 오염물로서 생성되고, 또 염소가 들어있는 화합물을 태울 때 생기게 된다. 다이옥신 자체는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왜 다이옥신이 그렇게 위험한 물질일까?)다이옥신은 자연계에 한 번 생성되면 잘 분해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토양이나 침전물들 속에서 축적되고 생물체내로 유입되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다이옥신은 물에 잘 녹지 않아 생물체 안으로 들어온 다이옥신은 오줌으로 잘 배설되지 않게 된다. 다이옥신은 지방에는 잘 녹는데, 생물체의 지방조직에 잘 축적된다. 물고기, 새들, 포유류, 그리고 사람들은 물을 마시거나, 숨을 쉬거나, 음식을 먹음으로서 다이옥신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모든 동물들이 먹은 다이옥신은 최종적으로 사람의 몸 속에 축적된다. 이러한 다이옥신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우리 몸에 축적되어 장기적으로 건강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다이옥신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다이옥신은 쓰레기를 태울 때 제일 많이 생성된다. 특히 PVC제제가 많이 포함되어있는 병원폐기물과 도시쓰레기를 태울 때 가장 많이 검출된다. 자동차 배기가스, 화력발전소, 제지 및 펄프산업, 철강산업 등 염소 및 브롬을 사용하는 산업공정에서도 발생 할 수 있으며 농약이 뿌려진 수풀이나 산림의 화재로 다이옥신이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는 담배연기에서도 다이옥신이 발생한다.(다이옥신은 어떻게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우리는 음식물을 통하여 97-98%의 다이옥신을 섭취하고 있으며, 호흡을 통한 섭취는 2-3%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고기와 낙농 유제품, 육류를 통해 섭취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식수를 통한 섭취는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다. 이외에도 염소 표백된 종이제품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되기 때문에 음식물 포장재로부터 음식에 오염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또 담배연기를 통해서도 다이옥신이 섭취될 수 있다.(우리가 실제로 호흡을 통해 흡수하는 다이옥신은 2-3%에 불과한데 왜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다이옥신은 미국에서 년간 8,226 그램이 생성되는데 이중 쓰레기를 태우는 것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만 98.8%나 된다. 한마디로 쓰레기 소각은 다이옥신 발생에 가장 중요한 생성 요인이다. 그러므로 쓰레기 소각을 줄이는 것이 다이옥신의 생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호흡을 통하여 흡수하는 다이옥신은 2-3%에 불과하지만 육류 및 낙농제품 등을 통해 섭취한다는 나머지 97%의 다이옥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소각장에서 생성되는 다이옥신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우선 가까운 지역사회 내에 퍼지면서 대기를 오염시키고, 산림자원, 농산물, 토양 등을 오염시킬 것이다. 다이옥신은 물에 잘 녹지 않고 지방에 잘 녹는 성질이 있어 물에 금방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물이나 채소들에서는 거의 무시해도 좋다 그러나, 씻겨진 다이옥신은 강이나 해양을 오염시키게 된다. 강이나 연안해양의 바닥에 침전물이 쌓여 밑바닥에서 오염이 심해져 어패류에 오염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먹이사슬을 통해 점차 큰물고기에 점점 더 많은 양의 다이옥신이 축적하게 된다. 육지에서도 가축에 오랜 시간에 걸쳐 다이옥신의 축적이 지방조직에서 이루어지고 계란이나, 우유에도 다이옥신이 축적된다. 사람은 육류나 어패류 및 낙농제품의 최종 소비자이기 때문에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된 최고로 높은 양의 다이옥신을 섭취하게 된다. 사람 중에서도 젖먹이 아이는 최후의 소비자이기에 다이옥신의 섭취 량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다.(다이옥신의 '1일 안전용량'이란 무엇이며 허용량은 얼마나 되나요?)일반인에 대한 다이옥신의 건강 위해성을 평가하기 위해, 미환경보호청(EPA)은 다이옥신의 "실제적인 안전용량"을 0.0 06pg/체중 kg/일(pg/kg/day)이나 0.42pg/day(1
연암 박지원(1737 ∼ 1805)은 대표적인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북학파를 이루었으며, 실사 구시, 이용 후생, 기술의 존중과 국민 경제 생활의 향상을 주장하고, 여러 방면에 걸쳐서 청 나라의 문물제도와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뒤떨어진 문물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박지원은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 풍자한 소설 등을 지어 세태를 비평하기도 하였다. 그의 소설 속에서 성리학적 권위주의나 위선과 허위를 일삼는 선비 계층은 비판되며, 비록 미천한 출신으로서 천박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도 생활에 성실하면 칭송의 대상으로 되곤 한다.그의 대표적 소설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있다. 허생전은 허생이 변 부자에게서 돈 만 냥을 꾸어 특산물 장사를 하여 돈을 크게 번 후 무인도로 가서 부랑자들을 살린다는 내용으로 주요 등장 인물로는 허생, 변씨, 이완을 들 수 있다, 소설에 허생은 입체적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처음엔 무기력한 선비로 등장하여 작가의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곧 현실에 참여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적극적 인물이 된다. 그리고 허생은 다시 실학의 선구자로서 당대의 사대부 계층을 맹렬하게 꾸짖는 비판자로 변신한다. 허생은 현실은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각성된 사대부의 모습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박지원의 분신 같은 존재인 것이다. 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로 변씨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대범한 성격으로 허생에게 돈 만냥을 꿔줌으로써 허생의 사회 활동(즉 시험)을 가능케 했고, 허생과의 대화 속에서 허생의 역량을 드러내 주었으며, 나아가 허생과 이완을 연결시켜 대의명분(大義名分)에 얽매인 위정자를 비판하는 인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해 주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성장한 신흥세력의 대변자로서 작품 전개에 핵심적인 역활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인물로 이완을 들 수 있다. 그는 북벌을 추진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려는 체념적 지식인이자 당대 권력자들의 의식 세계를 전형화한 인물이다.허생전의 배경은 17세기 이다, 그러나 허생이 이완에게 요구한 시사 삼책에 제시된 현실 비판과 그 개선책 그리고 허생전이 미완결 구조로 끝나 당대 현실에 대해 과격하고 신랄한 비판적 내용으로 말미암아 지배층으로부터 어떤 위협을 예감한 작가가 비현실적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허생전이 허생의 시대인 17세기가 아니라 작자인 연암이 살았던 18세기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허생이 이완과의 문답을 통해 제시한 국가적 현안 문제 해결책은 한결같이 고루한 위정자 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혁신적인 개혁안들이다. 이러한 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집권 관료층이 명분과 예법에 얽매여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용하지 못하는 당대의 정치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사대부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식견을 탈피하고 높은 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안목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시사 삼책 중 청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을 씻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실리를 취할 것을 주장한 부분은 북학파(北學派)로서의 작가 의식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에서 에 대해 알 수 있다. 시사 삼책에 대해 이완이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하자 허생은 그러한 위정자들의 태도에 다시 한번 분노를 느끼고, 현실 참여는 결코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게 된다. 당시의 집권 사대부들이 진정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해 북벌론을 추진하였던 것이라면 허생이 제시한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리 없었겠으나, 당시의 집권층이 북벌론을 내세운 것은 그들의 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것이 실제로 시현될 수 없음은 그들도 뻔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이 쓰여진 18세기 후반의 조선 사회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해 가는 사회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던 이른바 역사적 전환기로서 임진왜란 이후 백성들의 근대 의식의 발아기이자 서구 지식의 유입기 였다. 정치적으로는 당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기였으며, 경제적으로는 화폐의 유통, 수공업의 발달, 농업생산력의 향상 등에 의해 부의 축적과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신분 계층이 등장하는 등 사회 변동이 심화되고 있었던 시기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조선 봉건 사회를 굳건하게 지탱해 왔던 신분제의 붕괴를 초래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조선 봉건 사회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농민 계층의 분화로 갈등의 양상이 평민과 양반의 갈등에서 평민과 평민들 사이의 갈등을 낳게 되었다. 한편, 사상적으로는 일부 선구적 지식인들에 의해 조선 사회를 지배해 온 성리학의 비현실성이 극복되고 현실 문제에 눈을 돌린 실학이 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실생활에 관심을 두는 학풍은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상공업의 유통 및 생산 기구 전반의 기술 혁신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데, 이 18세기 후반의 실학 학풍을 일컬어 이른바 이용후생학파라고 하며, 연암을 중심으로 모였다고 해서 연암학파라고도 했다. 또, 이들은 당시 우리보다 발달한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적극 주장하였기 때문에 북학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들 실학파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은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 서민층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풍요롭게 할 수 있었는가에 있었다. 에 나타난 사상으로는 첫째, 상업 경제 사상의 고취를 통한 상공업적 직업 전환의 제안과 상업 자본주의 실천을 들 수 있고, 둘째로는 이상국 건설가 해외 진출 사상, 셋째, 북벌론의 허구성을 입증함으로서 북벌론의 배격과 청산, 마지막으로 당시 박지원이 주장 했던 북학 사상의 고취를 들 수 있다.
영혼에 대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소크라테스와 그 주변 인물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앞두고 영혼에 대하여 나눈 이야기에 대한 기억이다. 영혼은 불멸 하는가 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소크라테스의 훌륭한 언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 작품이었다. 죽음 ...... 사람은, 아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때가 되면 죽음에 임하게 된다. 이에 유일하게 사유할 수 있는 동물인 인간은 옛날부터 죽음에 대하여 그 후의 세계에 대하여 궁금해하고 해답을 찾기를 원해 왔다. 나도 그런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파이돈을 읽고 그 느낀바가 있어 지금부터 파이돈의 이야기와 나의 생각을 적어 보도록 한다.이 이야기는 에케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의 임종을 궁금히 여겨 잘시 현장에 있었던 파이돈에게 그 상황을 묻고 파이돈이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파이돈은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임할 때도 행복해 보여 참으로 두려움이 없고 고귀한 최후라고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가 형을 집행 받는 날, 케베스와 심미아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고통과 쾌락에 대해 이 두 가지 것은 동시에 한 사람에게 일어 나는 법은 없으면서도 그 중의 하나를 추구해서 얻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도 얻게 된다고 하며 쾌락이란 참 이상야릇한 것이라고 하였다. 쾌락과 고통, 우리가 슬픈 영화나 글을 통해서 그 슬픔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나 마라톤, 등산 같이 신체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넣은 후 성취되는 쾌락 등이 이 말과 같은 것일까? 쾌락과 행복에 젖은 인간은 고통을 꿈꾸며 이를 통해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적당히 흐를 즈음하여 케베스가 묻는다. 사람이 자살을 해서는 안 되지만 철학자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함은 무슨 까닭이냐고... 여기서부터 소크라테스의 긴 논쟁이 시작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의 소유이자 신은 인간의 보호자이므로, 신이 부르기 전에는 함부로 자살할 수 없다고 하며, 참 철학자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기쁜 마음을 가질만한 이유가 있고, 죽은 후에는 저 세상에서 최대의 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하는 것을 죽음이라 정의한다. 다음으로 육체와 영혼의 관계를 육체는 사멸하고 가변적인 것 으로 영혼은 불변하고 불변하는 것 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죽음, 즉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통해서 영혼의 해방(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혜를 향유하려면 하데스에 가야만 한다고 소크라테스는 확신한다. 이어 케베스가 영혼의 사후 존재에 애해 이의를 제기하자 소크라테스는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 는 논증으로 케베스의 입장을 논박, 영혼 불멸설을 증명한다. 삶과 죽음도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불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지식을 태어날 때 잊어버리고 있다가 하나씩 상기해 나가는 것이라는 상기설 을 통해 우리의 출생 전 영혼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람마다 다이몬 이라는 것이 있어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이몬의 인도를 따라 저 세상에서 심판을 받기에 이 생에서 지혜와 덕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파이돈은 많은 생각할 점을 나에게 던져준 책인 것 같다. 삶과 죽음, 그리고 과연 영혼은 불멸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여야 하는가... 고정 불변의 보편적 진리는 있는 것일까? 라는 것들... 파이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견해는 나에게 있어 그렇다. 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하였다. 먼저, 영혼 불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의견이다.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논증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현상이다.2)반대되는 것을 가지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성된다.3)삶과 죽음은 반대되는 것이다.4)인간은 반드시 죽음으로 그 반대인 삶도 반드시 있다.5)육체에 영혼이 깃들이는 것을 삶이라 볼 때 영혼은 불멸함이 증명된다.여기서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럼 과연 최초의 인류가 발생하였을 때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인류가 있기 전에 인류의 죽음은 없었다. 물론 다른 생명체들도 처음 생기기 이전에 그 개체가 죽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돈의 초반부에서 신은 인간의 주인이며 인간은 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한다고 하였다. 즉, 최초의 인간은 이에 따르면 신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어떤 개체이던 최초에는 그 영혼이 창조되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에 의한 영혼은 신적이며 예지적이고 한결 같다고 하였으므로 창조되지 않고 자연 발생 되었다고 보여 지지는 않는다. 우리 인류는 지금 그 인구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죽는 사람보다 태어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즉, 영혼의 재창조 없이 윤회만 된다면 그 수요에 맞는 공급이 이루어 질 수 없다. 다른 개체들을 보아도 통틀어 사라져 가는 것보다는 늘어가는 것이 많으므로 영혼이란 것이 있다면 창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창조라는 것의 반대 개념을 영혼의 소멸이라고 해보자. (삶과 죽음 사이에 하데스가 있어 반대가 되듯, 영혼의 창조와 소멸 사이에는 자연 발생 이라는 중간 개념이 있어 모순 개념이 아닌 반대 개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위의 5)에서 영혼의 불멸이 증명되었지만 다시 2)에서 그 이론에 따라 영혼의 소멸이 발생하였으므로 소크라테스의 이론은 모순된다.다음으로 상기설 에 대한 내 의견을 써 보도록 하겠다. 소크라테스는 앎이, 배움이 잊었던 옛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상기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첫째, 발명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어떤 것을 발명하는 것도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한 것일까? 발명을 분명 이전에 없었던 것을 새로 생각해 내거나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분명 이전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면 이것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 되어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계속 이룩해 가고 있는 첨단 테크놀로지 역시 상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둘째, 이러한 경우 또한 살펴보자. 거짓 앎이 진실이 되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예를 든다면 천동설이 진리일 때의 시대에 사람들은 천동설을 진리라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천동설을 배우고 받아 들였었다. 그러면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견해에 따라 이것은 미리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 된다. 코페르니쿠스도 이것을 배웠을 것이고(상기), 그러나 곧 지동설(참 진리)이 옳음을 알게 된다(상기). 처음 것과 두 번째 것을 모두 상기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비단 천동설 지동설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조차 거짓이 진실로 믿어지기도 하고 후에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러한 상기가 단지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의 상기이기 때문에 과거의 것을 상기하는 데에서 오는 허위 가능성이 있어 이러한 잘못이 빗어 진다고 말해야 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