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탄생(A Birth Of Nation)》감상문미국사1915년 데이빗. W. 그리피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흑백무성영화인미국사《국가의 탄생》은 최초의 장편영화이며, 교차기술 등의 편집기술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영화의 기술적 진보를 이룬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국가의 탄생》은 역사라는 어려운 장르를 소재로 하여 당시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릴리언 가쉬와 라울 워시를 캐스팅 하는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오늘날의 ‘할리우드’의 원형을 만들었다. 이로써 D. W. 그리피스는 영화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러한 대단한 배경에서 탄생한 영화《국가의 탄생》은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리는 쾌거를 거두었으나, 이와 함께 KKK(Ku Klux Klan)단을 영웅화하는 등 역사상 가장 악랄한 인종차별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고, 흑인 및 인권 보호자들의 상영반대시위와 극장 내에서 흑인들의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영화가 얼마만큼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이 영화는 북부의 펜실베니아에 ‘스톤맨가’와 남부 캘롤라이나에 ‘카메론가’의 인물들을 남북전쟁이라는 역사 속에 편입시켜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후 북부 정치인들이 미국의 정계를 장악하고 그 중 한 사람인 스톤맨은 남부에서의 흑백평등안을 추진하면서 그의 흑인 혼혈인 비서 린치를 남부로 내려보내 흑인들의 표를 모으게 했다. 북부 의회에서 흑인들에게 투표권과 시민권이 부여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린치는 부지사에 당선되고 자유와 권력을 얻은 흑인들은 거만해졌다. 한편, 이 혼란의 시기에 작은 대령 벤의 여동생은 흑인병사 거스의 겁탈을 피해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게 되어 분노한 작은 대령은 백인들을 모아서 KKK단을 조직한다. KKK단을 돕는 것을 발각 당한 카메론 일가는 시골의 작은 오두막으로 피신하지만 흑인들에 의해 포위되고, 마을 역시 흑인들에 의해 점령당한다. 이때 벤의 KKK단이 흑인들을 무찌르고 카메론 일가를 구하고, 흑인폭도들에게 점령된 마을도 KKK단에 이해서 ‘해방’된다. 이런 역사적인 스토리 안에 엘리와 벤의 사랑이라는 부분을 첨가하였다. 영화의 이러한 스토리는 남부 백인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흑백을 분명히 구분 짖고, 흑백평등이 무지한 흑인에 의해 흑인이 우위에 서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왜곡되었으며, 이것은 흑인은 평등과 자유를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북부의 노예폐지론 자체가 불가하다는 주장이며, 이 영화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남부 백인들의 관점에서 남북전쟁 시기를 본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의 곳곳에는 흑인을 무시하는 백인의 시선이 들어있다. 첫 장면에서 두 마리의 강아지가 등장하는데, 흰 강아지는 쿠션 위에 반쯤 누운 상태에서 백인주인의 쓰다듬을 받는 반면 검은 강아지는 그 옆에서 흰 강아지를 향해 짖어대고, 백인주인도 손사래를 친다. 이러한 상황은 강아지 사이에도 우열이 존재하며, 그것이 털의 색깔로 구분되는 하나의 설정으로 당시 미국사회의 흑백인종의 차별-우열-를 말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흑백차별은 결혼문제에서 들어 난다. 거스가 처음부터 벤의 여동생을 겁탈하려 한 것이 아니었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으나 그녀는 거스의 청혼을 ‘흑인의 정신나간 결혼신청’이라고 한마디로 거절하였고, 거스에게 겁탈 당하느니 죽음을 택한 그녀의 행동은 용기이며, 백인의 순결성을 지킨 고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스톤맨 역시 정책적으로 자신의 입장인 흑백평등을 주장하면서 린치를 지원하고, 린치가 백인여성과 결혼을 한다고 하자 축하를 해주지만, 그 상대가 자신의 딸 엘지라는 사실을 알자, “내 딸은 안 돼!”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는 당시 백인들이 흑백인종결합에 대해 얼마나 거부반응을 일으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인종결합에 대한 거부반응이 남성의 경우에는 예외라는 사실이다. 백인남성은 백인여성은 물론이고, 흑인여성을 지배했다. 백인남성은 남북전쟁 이전부터 집안의 흑인 여자 노예를 겁탈했다. 흑인남성이 백인여성에게 청혼하는 것은 인종을 더럽히는 비열한 일인데 반해, 백인남성이 흑인여성을 겁탈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의 행사인 것이다. 이 외에도 흑인은 야만인, 무식한으로 취급하거나 인간 이하로 인식하여 흑인들의 마을 점거를 폭동으로 규정하는 반면, KKK단에 의해 백인들이 다시 마을을 점령하는 것은 흑인폭도들로부터 선량한 백인들을 구한 일종의 ‘해방’으로 표현한다.
부산근대박물관의 자료들이 가지는 의의처음에는 박물관 견학기록문을 쓰는 것으로 알고 친구들을 만나서 부산근대박물관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 리포트는 박물관에 대한 감상문이나 견학 후 소감을 쓰는 중?고등학교 때 했던 숙제와는 다르게 근대사박물관을 견학하고 박물관에 비치된 자료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쓰라는 것이다.막연히 떠오른 것이 대구 달성구의 지역박물관이었다. 근대사박물관은 부산시립박물관이나 서울시립박물관처럼 그 박물관의 위치나 박물관의 소속을 애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분야를 애기하는 것에서 일단 약간의 기대감을 준다. 예전에 대구에서 지역박물관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었다. 달성구에 위치한 이 지역박물관은 달성구의 역사와 오늘날의 볼거리 등을 매우 상세하고 알기 싶게 보여주었으며, 많은 지역주민들이 이 박물관을 찾았다. 근대사 박물관을 보면서 이 지역박물관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근대사의 많은 부분들이 부산, 특히 남포동이라는 지역과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사박물관의 위치는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하며, 일제 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으며,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는 미문화원이었다. 2003년 건물은 그대로 둔 채 리모델링하여 근대사박물관을 개점 한 것이다. 중구는 일제강점기 각종 쟁의들의 장소였고, 미군정기에는 반미운동의 중심지였다. 이처럼 근대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자료들이 중구라는 지역에 대한 것, 부산이라는 지역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근대박물관이 지역박물관의 역할도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자료와 시설을 가지고 잇는데 아직 지역 주민들이 별로 찾지 않아서 그러한 역할이 흐지부지 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이다. 1?2차 사료로 나눌 때 1차 사료가 객관적인 역사를 연구하는데 더욱 중요하며 근대사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매우 유리한 역사분야이며 근대사박물관에 있는 자료들은 근대 한국, 그 속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1차 사료들로 한국의 근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문화인류학 역시 어떤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 나가는 학문이라고 볼 때, ?문화인류학과 한국사회의 역사?라는 강좌명과 근대사박물관의 의미는 매우 잘 어울린다.
『새로운 황제들』을 읽고-권력이라는 덫0101754 황지영중국은{중화인민공화국사고대부터 언제나 거대함이라는 단어로 일축되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땅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고 이러한 거대한 제국을 통치한 정치체제가 진시황 이후부터 청대 까지 이어진 황제체제(皇帝體制)이다. 이러한 전통은 몽고족이나 만주족의 통치 하에서도 유지되었으며, 이 책을 읽으면서 신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이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전에 읽었던 중국 명대의 황제와 신하들에 대해 쓴 레이 황의『1587년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명대 만력제 시기의 황제와 관리들의 견제를 7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허울뿐인 황제체제에 대해 쓴 것이다. 즉, 명대의 황제는 황제라는 명분 위에 언제나 신하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황제는 천제(天帝)라는 이름으로 나라에 악운(홍수, 가뭄)이 닥치면 책임자가 되어 희생되는, 관리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물론 초기의 황제나, 이 후 몇몇 황제가 절대적인 권력을 쥔 적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몇몇에 국한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황제체제를 전복하고 세운 인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뚱(毛澤東)와 덩샤오핑(鄧小平)은 이전의 황제들보다도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갖춘 1인 독재자로써 진정한 황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책의 초기부분에 공산당이 희생하면서 인민을 위한 국가를 세우는데 노력하는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신중국의 황제가 진정한 민중의 대표자로써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그들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는 민심을 얻은 천제(天帝)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후기로 갈수록 마오와 덩의 폭악함과 권력지향성 - 계절별 별장에 가서 자연을 즐기고 정적을 제거하고 주변의 관리들에 의해 인민의 실상을 알지 못한 것(마오가 은연중에 바란 것이기는 하지만) - 이 그저 권력의 덫에 걸린 전형적인 독재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특이나 마오가 진시황을 거울삼는 것은 인상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사책에서 교훈을 얻는 마오가 진시황의 실정을 답습했다는 점이다. 최초의 통일천하를 세운 시(始)황제와 신(新)중국의 마오, 또 다시 황제체제(주석체제)로 들어간 신중국을 보면 역사가 순환한다는 생각이 든다.이 책의 주인공은 마오와 덩이다. 거의 대부분은 마오에 대한 것이었다. 마오가 주석으로 있던 시기의 중국은 세계 밖에 있어 그때의 중국에 대해서, 마오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중국의 영웅정도로, 송경령이 손문 이 외에 가장 존경한 인물로 비교적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오가 어떤 인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근대사와 중화인민공화국사를 배우면서 마오가 그다지 긍정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실정을 한 마오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매우 불안정한 한 인간으로써의 마오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가령 수영장 회담이나, 동물원 회담 등은 그가 얼마나 엉뚱한 사람인가를 보여주었으며, 정적을 제거하는 모습, 여성편력, 수면제를 과다복용 해야 잠을 이루는 모습 등은 그가 매우 불안정한 인물이라는 좋은 예이다. 그렇지만 대장정 때나 인민공화국 초기의 모습, 동지들의 자녀들에게 친근한 마오 아저씨로써의 모습은 일반인으로써의 마오가 얼마나 정이 많은 인물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마오의 이중적인 모습은 권력이 한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그리고 덩은 중국에 자유의 바람을 일으킨 존경받는 인물이며, 마오 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격적으로든, 정치가로써든 매우 긍정적인 인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이 책도 마오에 비해 덩을 능력 있고 사려 깊은 인물로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실재로도 마오보다 정상적인 인물 이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인물평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며, 그러한 덩의 사려 깊음은 어찌 보면 비겁함일 수도 있다. 대약진에 대해 반대하지 못한 것은 마오의 편집증 때문이라 보더라도 주은래나 유소기가 마오와 다른 생각을 표현 할 때조차 마오의 뜻에 맞는 정책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 덩이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마오의 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마오와 덩 이외의 중국의 주은래나 유소기를 비롯한 중공의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한심스럽고 또 불쌍했다. 인민을 위해 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공산당원이 되어 인간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살았던 모습들은 감동적 이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난 이후부터 마오의 밑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공산주의라는 껍데기뿐인 신념을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일을 해야하는 것은, 브레이크를 잃은 경주차같이 불쌍해 보였다.또한 이 책은 공산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공산당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나에게 혼란이다. 어릴 때는 방공이라는 단어 하에서 빨갱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조정래의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그 공산주의자들을 동경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공산당에 대해 다시 보면서 국민당에 비해서는 긍정적이지만, 일인 독재 하에서 자행되는 만행들을 본다면 또 다시 헷갈린다. 자유주의와 대립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공산주의가 권력 내부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그러한 체제가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인민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나 공산당 간부나 권력자들은 노동 의 신성함을 안다는 것, 노동하는 것 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의 극단성이나 결과론 적인 패배가 그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밖의 내용은 대부분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 - 대장정, 인민공화국의 건립, 대약진, 백화운동,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 을 좀 더 자세히 영화처럼 리얼하게 보여주어 중국의 근대와 현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중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보충이 되었는데, 중소의 불화를 마오와 스탈린의 자존심과 신경질적 반응에 의한 불화라는 것으로만 해석하는 부분은 조금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함께 공산권의 두 최고 권력자들이 『삼국지』의 제후들만큼이나 정도를 벗어나고 지독한 인물이라는 평가나 스탈린이 히틀러를 속이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라고 보는 점(히틀러 보다 나쁘게 평가), 소련과 중국의 진부한 건축가들이라는 표현 등은 공산권 국가에 대한 근원적 반감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인 입장의 글 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東洋史名著講讀사마천과 중국25史의 백미(白眉)『사기』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에 대해서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였다. 사마천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궁형(宮刑)을 당한 불운한 사가(史家)라는 것이 전부다. 그런 사마천과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의 기본이며 중국 25사 중에 첫 번째 역사서인『사기』를 관계 지어 글을 써야 하는 일은 다시 말하지만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역사가 사가의 주관적 의지에 따라 선택되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사기』를 올바로 이해하기위해서는 먼저 사마천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가의 중요성은『사기열전』을 시작하는 「백이열전」에서도 언급하고 있다.)사마천은 한 무제(B.C 140 ~ 84년)때 사람으로 한나라 태사공(太史公)을 지낸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사마씨는 대대로 사관의 역을 맞고 있었다. 사마담은 일찍부터 역사가의 중요성을 알고 역사저술에 큰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사서 저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그 아들인 사마천에게 유언함으로써 사마천은 이후의 굴욕을 참아내고 130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사마천은 젊은 시절 매우 분방한 성격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을 즐기는 성격 때문에 20대에는 대강(大江)의 남쪽을 여행하였으며. 사마담 사후에 관직에 올라서 황제를 수행하여 중국을 고루 여행하였다. 이러한 그의 여행은 이후 『사기』의 내용전개에 있어서 지리적인 역동성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비록 말직이지만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 수 있는 직책에 만족하고 있던 사마천은 패장(敗將)인 친구 이릉(李陵)을 옹호하다가 죄인이 되어 궁형을 당하였다.) 이 당시의 상황은 그가 사형수 임안(任安)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대에 궁형은 죽는 것보다 치욕적인 것이었다. 그러 치욕을 견뎌낸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한스러운 유지)와 끝내지 못한 저서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궁형이라는 가혹한 시련 앞에서 사마천은 역사서 이면서도 문학성도 뛰어나 현대인들도 모두 놀라는 대작『사기』를 완성시켰다. 『사기』곳곳에 자신의 억울함이 들어나고,) 어려움을 극복한 인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은 스스로의 위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사기』는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이다. 사기 이후에 기전체는 정사(正史)의 중요한 형식적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기존의 역사서술 방법을 과감히 벌리고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였을까? 그것은 그가 역사는 인간 개개인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 역사 속에 있는 중요한 한 개인의 일생을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 그것이『사기』의 참 의미다. 기전체는 본기(本紀), 세가(世家), 열전(列傳), 지(志) ? 표(表)의 4부분으로 나누어 역사를 서술한 방법이다. 본기는 역사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황제들에 대한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라고 하면. 우리는 거의 대부분 ?정치?와 연결지어서 생각하게 된다. 세계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이며, 이러한 정치를 움직이는 사람이 바로 황제이다. 사마천이 살던 시기에 황제라는 존재는, 세계 그 자체였다. 실제로 사마천의 인생에 일어난 두 가지 전기(轉機) 모두 황제의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특히 혼란스러운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통일한 ?한무제?는 사마천에게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다. 세가는 제후들의 역사로 역시 역사의 무대에 서 있는 주인공이다. 지와 표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보조자료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열전은 70권으로 이루어져서 역사 속의 충신 ? 간신들의 일생을 서술한 것으로 중국이라는 넓은 곳을 종횡무진 하는 책사(冊士)들의 삶이 매우 역동성 있게 그려져『사기』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앞서 말한『사기』의 문학성의 극치가 바로 이『사기열전』부분이다.『사기열전』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기열전』은 정치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당시의 선비나 일반 서민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이렇게 사마천이라는 인물은 기구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냈다. 사마천의 『사기』는 내게는 매우 특별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고, 이 수업 전에는 『사기』가 중국 24사 중에 첫째가는 역사서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기열전』을 공부 하면서 정치적인 성격이나 인간의 심리 등은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도 여전히 공감하였으며, 감탄하였다. 역사서를 읽으면서 지루함보다는 인물의 태도로써 그 인물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등의 글쓰는 재주는 ?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사기』의 이러한 문학성이 바로 『사기』를 오늘날까지 읽히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물론 『사기』의 문학성이 오히려 『사기』의 사실성을 의심받게 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오늘날 많은 발굴의 업적으로 『사기』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사마천에 대해서, 혹은 『사기』에 대해서 2~3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잘 알지는 못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마천에 대한 국내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교수님께서 『사기』완역본이 아직 국내에 없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이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 알면 알수록 사마천이나 『사기』는 더욱 흥미로운 부분이며, 『사기열전』을 공부하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내가 이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읽은 책들 중에 2권은 일본 책)이고, 한 권은 중국 책)이었다.) 百二 ? 叔齊雖賢, 得夫子而名益彰. 顔淵雖篤學, 附驥尾而行益顯. … 閭巷之人, 欲砥行立名者, 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사마천,『사기열전』,「제61권 백이열전」,2127쪽
『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을 읽고...『중화인민공화국 50년사』는 매우 정리가 잘 되어있는 책이었다. 특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전의 중국의 근대사를 정리한 부분이 있어 1학기 때 배운 중국근대사에 대해서 짧지만 확실한 정리가 되었다. 이 책은 개설서로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두 학기에 거쳐,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운 나에게는 정리하는 차원에서 읽을 만 했고, 중국사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중국의 근?현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책의 첫 부분에서 중국 근?현대의 원동력을 5가지 요소로 분류하고, 각 사건을 그 요소의 상관속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부분이다. 전통과 국제적 충격, 그리고 혁명과 내셔널리즘, 근대화라는 이 5가지 요소는 중국의 근?현대를 이끄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로써 근대로, 세계로 처음 나온 나라들의 일반적인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서구의 충격에 대항하고 전통을 수호하려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이나, 서구의 충격과 근대화라는 요소를 결합한 독립협회의 노력,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반일?반제(反日?反帝)투쟁, 그리고 위로부터의 개혁인 갑오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갑오농민전쟁은 혁명을 그 원동력으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이 책은 기존의 개설서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시대 순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개설서로써의 설명과 함께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 근?현대사의 원동력을 5가지 요소로 분류한다든가, 중국이 1950년대 초에 공산화된 원인 등을 3가지 원인으로 분석하는 등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하나한 분석하고 있어 중화인민공화국을 이해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그리고 매우 새로웠던 것 - 정확히 『새로운 황제들』과 매우 다른 것은 - 은 중화인민공화국 초기의 공산화에 대한 이야기와 소련과의 관계의 문제였다. 전자는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렇게 의심해 본적도 없는 것으로, 중국의 공산화는 중국 내에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지식인들 사이에 퍼지고 그들이 공산당을 설립하고, 그래서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거쳐서 공산주의국가를 목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하였다고 배웠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1920년대 우리나라 지식인들 사이에도 사회주의가 확산되고, 남북으로 나뉘어졌으며, 한국전쟁에서도 그래서 같은 공산권국가인 북한을 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인민공화국 설립 초기에는 중국을 공산화 할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 중국의 실정에서는 사회주의국가를 설립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다만 공산주의화는 국민전체가 열망하는 먼 미래의 일이다." 라고,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공산당 수뇌부가 생각하고 있었으나, 국내?외적 요소 등으로 노선이 공산화로 급선회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내가 잘못 읽었나 했을 정도로 조금 놀랐다. 어떤 책에서도 들어 본적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마오쩌둥 사후에 덩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 바로 실시되는 개방화, 근대화정책과 초기 중국공산화의 세 번째 요소인 마오쩌둥의 상황인식과 성격이라는 측면을 볼 때,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소련과의 관계문제에서도 이 전에 읽었던 『새로운 황제들』과는 매우 입장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중국의 공산화에 소련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황제들』에서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이는 매우 나빴으며, 소련을 공산권의 신화, 혹은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적대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보였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소련을 공산권의 신화로써, 공산화의 모델로 삼았다고 하고 있다.최근에 읽은 두 권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책의 스타일이나 견해가 매우 틀려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래서 “여러 책을 읽어야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이 책이나 이 전에 읽었던 『새로운 황제들』을 읽으면서 독재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역시 1인 독재 체제를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초대(初代) 대통령이자, 12년 간 대통령의 자리에서 점차 독재자가 되어갔던 이승만이나, 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선 개헌까지 해서 18년을 독재자로 있었던 박정희, 그리고 이후의 전두환과 노태우까지 민주주의를 표방 할 뿐만 아니라, 세계 제일의 방공국가에서 1인 독재라는 비민주적인 정치가 40년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 한 것은 공산권의 대표국가인 중국과 근대사가 반공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근?현대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가령, 펑덕화이(彭德懷)를 제거하는 것이나, 그 외 언론인, 지식인들을 반 우파 투쟁으로 감옥에 가두어 본보기로 삼는 것 등은 이승만이나 박정희 시절에 수많은 지식인들이나, 정적을 빨갱이, 간첩이라는 구실로 감옥에 보내거나. 죽였던 것과 흡사하였다. 특이나 박정희와 모택동은 공통점이 매우 많은 것 같다. 우선, 언제나 국가가 전쟁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박정희는 전시라는 특수성을 강조하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였으며, 언제 빨갱이가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군대가 정권을 놓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도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교육받아서 박정희가 암살당한 날, 라디오에서 그 소식을 듣고 금방 전쟁이라도 날거라고 생각해서 종일 울었다고 하셨던 것에서 보면, 그 당시의 방공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보여주는 예인 것 같다. 그리고 모택동 역시 냉전이 팽배했던 시기가 아니었지만, 전쟁상태론을 들어서 초기에 공산화하고 1당 독재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도 마오쩌둥이 대중동원을 내세운 것처럼 박정희 역시 새마을운동 등으로 일반 민중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다. 물론 그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민중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은 같았다. 그 외에도 권력욕으로 3선 개헌을 한 박정희나, 공산당 초기부터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함께 한 펑덕화이를 몰아낸 것이나, 자신의 추종자이자, 자신의 동료인 린빠오(林彪)를 제거하는 등 정권 유지에 급급한 모습은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독재자에 대한 인민들의, 국민들의 모습 역시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이 모택동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자신들의 경제가 파탄이 났다는 사실은 잊은 채, 여전히 그를 초대 주석으로, 인민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박정희로 인해서 흘린 많은 사람들의 피와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잃고, 그로 인해서 생긴 정경유착이나 기형적인 한국경제에 대한 재인식 없이 그저 박정희로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생각만 하여 ‘박정희기념관을 만들자!’ 따위의 일에 힘쓰는 우리 국민들과 그런 국민들에게 점수 좀 따려고 그것을 국세(國稅)로 하겠다고 약속하는 대통령을 보면, 얼마나 역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