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의 공교육화에 대하여...현시대에 부모들은 적은 수의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모들이 사설 유치원이나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적은 수의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취학 전 아동의 대부분은 유치원이나 학원, 보육시설에서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이런 현시대에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모든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많이 갖고 있는 사안이라 생각되어 나는 찬성하는 입장이다.●내가 생각하는 공교육화의 장점첫째, 공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유아교사의 질이 향상된다. 현재 유아교사의 질적인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년제나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유아교사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간호사, 간호사 조무사, 또는 양성소 같은 곳에서 1년 정도 교육받은 사람들도 교사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교육이 공교육화 되면, 유아교사의 자격과 기준 등이 정해지게 되는데, 교사들은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재교육이나 연수를 받음으로써 교사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둘째, 교육 내용의 질이 향상된다. 현재 많은 유아관련 기관들이 난립해 있는데, 마구잡이로 세워진 기관들의 교육의 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유아교육이 공교육화 된다면, 모든 유치원에서 사용할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이 정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받게 될 교육의 질이 이전보다 향상될 것이다.셋째, 교육 환경이 개선될 것이다. 물론 환경(시설)이 좋은 유아교육 기관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기관이 고층이나 지하에 있고, 주위 환경도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아교육이 공교육화가 되면, 정부에서 지원도 해주고 기관의 시설의 기준이 정해져서 유아의 교육 환경이 개선될 것이다.내 아이가 좀 더 좋은 시설에서, 좋은 선생님 아래, 안전하게 생활하길 원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조건에 맞는 시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간혹 조건에 맞는 좋은 시설을 찾아내어, 아이를 보내려고 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교육화가 되면, 만 5세의 아이들은 무상으로 교육받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국가의 보조를 받아, 보다 낮은 비용에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부모 입장에서는, 모든 유아학교가 교육의 내용과 질이 비슷하기 때문에(획일화 된 교육), 좋은 시설을 찾으러 다녀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또한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유아의 교육 기회를 증대시킨다. 우리나라에서 유아 관련 교육기관에 등록한 유아의 비율은 매우 낮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유치원은 학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이라는 이미지로 많이 생각하고 있어서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는, 생활이 어려운 경우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보낼 수 없는 가정도 많다. 그래서 많은 수의 아이가 집에서 엄마와 있으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공교육화가 되면 많은 수의 유아가 교육받을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이렇게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몇 가지 단점도 가지고 있다.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의 중복된 법에서의 논란이다. 현재 취학 전 아동들의 유아교육은 크게 두 개의 부처에서 관장한다. 교육부 유아교육지원과에서 주관하는 ‘유아교육’과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영유아보육’이다. 어떤 이들은 이 법이 유아보육법에 중복되는 것이므로, 차라리 유아보육법을 개정 보완하여 실행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아교육법의 통과는 유아교육법안에 ‘보호’라는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통과되었다. 중복 이원화체제(교육부-유치원, 보건복지부-보육시설)를 유지함으로써 우선 통과된 법안의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교육은 가능하나 보호는 안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점에 분개하지만 더 많은 아동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우선 만족을 해야 하지 않을까?
Feudalism(봉건제도)서론중세의 서양사에서의 제도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봉건제도이다. 서양의 고대 로마 사회가 붕괴되면서 중세가 시작되었다. 고대 로마에 게르만인 들이 침입하므로 그들의 사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중세의 군사적인 책임, 토지 소유, 정부의 기능을 모두 통합시킨 봉건제가 성립되었다. 원래 봉건제도란 용어는 중국의 고대사에서 군현제도에 대응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서양의 feudalism의 역어(譯語)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 봉건제의 용어의 의미가 두 가지 있다. 협의 개념으로 지배계급 내의 주종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광의적 개념으로는 봉건적정치 질서의 기초가 되는 사회, 경제적 구조까지 포함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봉건제의 기원과 성격을 알아보자.본론1.기원봉건제(Feudalism)는 중세 초에 성립한 사회적, 군사적, 정치적 장치의 복잡한 패턴을 가리키기 위해 근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모호한 용어이다. 역사적 사료의 부족과 지역간의 차이로 인해 봉건제도의 정확한 발생 시기와 성립 과정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봉건제를 규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어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feudalism은 봉토를 뜻하는 중세 라틴어의 feudum에서 나온 것이다. 중세에는 그 말이 대개는 군사적 봉사의 대가로 주군에게서 부여받은 영지를 가리켰다. 유럽에서의 봉건제는 대체로 9∼11세기에 프랑스에서 처음 성립되었다. 영국에서는 11세기에 성립이 되었고, 섬나라인 영국보다도 늦게 독일에서는 12세기에 비로소 보편화되었다.봉건 사회는 거의 모든 토지가 봉토의 형태로 보유되는 사회, 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기본적인 사회적·정치적 구조가 봉토 보유를 통해 결정되는 사회이다. 원시적인 농업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부가 토지 및 토지의 직접 생산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봉건적인 토지 보유는 사회구조를 전반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주군과 봉토보유자(tenant)사이의 경우도 있었다. 많은 농민들은 많은 노예공급의 감소로 노동력 부족난을 겪고 있던 대 토지 소유자들에게 부탁하여 소작인이 됨으로 관리를 학정을 피하려했다.로마 제정 후기에 게르만 민족이 변경에 침입할 때 지방의 소지주 소유자들은 군사적 보호 없이 살아가기가 어려웠으므로, 세력이 큰 귀족에게 봉사하는 대신 보호를 요청하는 관습이 생겼다. 사적 보호라고 불렸는데, 이 관계에서는 토지의 경작이 군사 의무의 유무를 결정하지 않았다. 소작 제도 있다. 그것은 불안 떠는 자유 농민 혹은 빛에 몰린 농민이 대지주 혹은 차주에게 자기 땅을 양도하고 그 땅에 대한 소작을 자청하는 경우를 말한다. 소작제의 다른 형태는 토지 없는 농민이 지주에게 생산물이나 노역을 제공하고 그 대신 소작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점에서 귀족들은 흔히 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좋은 소작인을 선정할 수 있는 이 점이 있었다. 소작제는 지주와 소작인 쌍방이 다같이 상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장점이 있었다.2)교회의 제도8세기에는 은대지제라는 일정 기간의 토지 대여 제가 성립되었다. 이 제도는 대 귀족이 그의 관리들이나 보조 요원들 또는 소귀족들에게 금전 보수를 주는 대신 토지를 수기로 대여한 제도였다. 그리고 또한 그는 거기서 얻은 수입으로 군대를 채용할 수 있었다. 10 세기경 은대지의 변형이 생겨났다. 이같은 변형은 근본적인 원인은 성년이 된 가신의 아들이 그 가족의 은대지를 양도받는 것을 방지할 수 없었다. 확실치는 않으나 가신의 아들이 영주에게 은대지의 갱신을 허락 받기 위해 증여하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그러한 관례가 나중에 세속세로 알려진 봉건적인 부과금의 논리적인 원형이 였을 것이다. 은대지라는 용어가 봉토라고 바뀌게 되었다.3)게르만적 요소게르만 부족의 요소는 종사제가 있다. 게르만 부족사회에서는 병사들이 추장의 명령에 복종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 주종 관계는 애당초 단순한 법적 . 경제적 관계를 넘어선 도의 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 카롤링 왕조에 이르러 귀족층이 무장되는 경사까지 면제시켜 주는 불수 불입권이 성립되었다. 이런 경우 땅은 실질적으로 세습적인 자유보호지가 된 셈이다.2.발전과정봉건제도는 프랑크 왕국이라는 공동의 모체에서 출발했는데도 프랑크 왕국의 해체 후 각국이 독자의 발전을 시작하자 지역에 따른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특색 있는 봉건체제를 나타냈다. 사회경제의 면에서는 공통점이 많지만, 국가체제의 면에서는 달랐다.1 독일 : 독일에서는 종족공국(種族公國)의 자생적 통합현상이 나타나서 그 통합 위에 형성된 신성로마제국은 처음부터 연방적 봉건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오토 1세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의 교회정책, 즉 여러 공국(公國) 제후들의 분립적 세력에 대한 중화적(中和的) 세력으로서 교회의 세속적 세력을 배양하는 정책을 강행하였던 이유였다. 말하자면 독일에서 법(法)의 근원은 황제 또는 그의 관리에 의한 위로부터의 관직적(官職的) 명령 외에 촌락단체 ·가우(Gau) ·훈데르트샤프트(Hundertschaft) ·종족공국의 순서로 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자생적 지배권이 있었으며, 대소(大小) 귀족의 영지에도 위로부터 받은 봉토 외에 조상전래의 자유세습지가 많았으므로, 법의 이원주의가 일관하여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법제사적 의미의 봉건제는 독일에서는 예상 외로 관철되지 못하였다.2 프랑스 : 독일의 경우와는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로마제국 말기로부터의 전통도 있어 영주와 민중과의 사이에는 부족적인 연결이 없었으며, 귀족의 대부분은 프랑크 왕실과의 관계에 의해서 발생했었다. 따라서 독일에서와 같은 자생적인 힘의 작용은 대단치 않았고, 노르만족의 침입에 대처할 수 있는 실력자에 의한 통일의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기 때문에 군웅할거의 봉건적 분열의 현실 속에서 실력에 의한 왕권 신장이 달성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0, 11세기의 프랑스는 분권적 봉건제의 대표적 형태를 취하여 ‘나의 봉신의 봉신은 나의 봉신이 아니다’라는 주종관계의 전형적 원칙이 수립되었고, ‘봉토 아닌 것이 없다’는 상황을 나타내 전화하여 전반적으로 일찍이 봉건체제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4 영국 : 앵글로 색슨 시대에 이미 봉건제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는 제제도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봉건체제를 받아들인 것은 1066년의 노르만인의 정복에 의해서이다. 즉 영국봉건제는 정복민족에 의해서 대륙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라는 점이 처음부터 결정적인 특색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봉건법상의 예는 86년 솔즈베리의 서약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보유하고 다소의 세력이 있는 모든 사람이 윌리엄 1세에게 충성을 선서하도록 되어 있었다. 즉 직속신하이거나 가신이거나를 막론하고 국왕과 일반민과의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 우선해서 일반적 신종(臣從)의 관계가 유지되었는데, 프랑스와는 정반대로 영국이 집권적 봉건제의 대표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3.성격봉건제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이다. 봉건제도는 기사의 장원에서 나타나는 농노제에 입각한 장원제도와 일정한 의무수행과 이에 대한 봉토수여로 성립되는 주종제도를 종합하는 말이다.장원제도는 정치적, 군사적, 법제적 측면에서 봉건사회의 지배계급인 기사 계급 내의 상호관계와 조직을 규정했던 봉건적 주종 제도를 봉건제의 성격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흔히 역사를 소수 지배층의 입장에서 제도사와 사건사 위주로 해석하는 보수적 정치사가들에게서 나타나다. 이들에게 있어 봉건사회는 기사도를 가진 기사들의 사회이며, 봉건사회의 여구와 서술의 초점은 봉주와 봉신 사이의 법률적 권리-의무 관계이다. 이들은 봉건제의 지배층입장에서 보았다.·장원제도주종제도로서 결합된 봉건적 지배층은 다 같이 전사인 동시에 토지소유자였다. 봉신이 주군으로부터 받은 토지를 봉토라고 하는데, 이러한 봉토는 대개 장원으로 조직·경영되었다. 계서제에 포함된 전사들은 모두 장원의 영주였다. 장원은 보통 촌락 단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경우에 따라 한 장원에 두 개 이상의 촌락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고, 큰 촌락일 경우 두 개 이상의 장원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장원은 아니라 지조(地條: 띠 모양의 좁고 긴 땅 조각)로 이루어졌는데, 영주의 지조는 농민 보유의 지조와 섞여 있었다. 각 지조의 경계에는 밭두둑만 있을 뿐 울타리가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넓은 들판은 가축을 풀어 놓는 방목장이 되었다.·농노의 처지와 공동체적 관습장원의 토지를 경작하는 대부분의 농민은 농노였다. 농노들은 고대의 노예와는 달리, 토지와 가옥 등 약간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밀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근대 시민과는 다르게 중세의 농노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고, 재판권·치안권·징세권 등을 행사하는 영주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은 부역이나 현물 지대 외에 각종 공물을 납부하고, 인두세·결혼세·통행세 등의 여러 세금을 부담하였으며, 제분소와 제빵소 같은 영주의 독점 시설을 이용하고 대가를 지불하여야만 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영주 직영지를 위한 노동력의 제공이었다. 이 부역은 평균해서 일주일에 3일 정도였다. 중세는 '신앙의 시대'로서 일요일은 노동하지 않았으므로 농민은 노동 시간의 절반을 영주를 위하여 바쳤던 것이다. 이 밖에도 농민은 영주의 자녀 혼인 등 여러 가지 명목으로 공납을 바쳐야 만 했다. 이처럼 농노는 여러 가지 신분의 제약을 받는 예속적인 존재로서, 독일에서는 농노를 가리켜 '뿔없는 소'라고 부르기까지 했다.한편 장원의 영주는 토지를 완전히 소유했다기 보다는 상위 군주로부터 토지 사용을 허락받은 일종의 임대인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성격 속에서 장원 안의 농노는 공동체적 관습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경작권의 보장이다. 영주는 자기가 보유한 장원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지만 그것은 농노가 새로운 영주를 맞게 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농노는 토지에서 추방될 수 없었던 것처럼 토지를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었다.·불입권과 지방 분권체제봉건적 주종 관계는 일대일의 계약 관계였기 때문에 봉신은 주군의 주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며, 주군은 봉신의 봉신에 대해서.
자유공화국 섬머힐학교섬머힐학교...섬머힐학교는 런던에서 약 100km 떨어진 서퍽의 레스턴에 세운 비형식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립학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과정이 있는데 나이를 떠나 학습능력에 따라 6개 학급으로 나뉜다. 자유를 안다면 이 학교에 대해 조금은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자라는 아이들은 그러한 학교를 꿈꾸며 그러한 사회 또한 갈망하며 이루어 나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학교나 사회가 있을까? 섬머힐 학교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단지 나에게 자유스러운 학교라는 인상만을 주었다. 조금 더 그곳에 대해 알았을 때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번 비디오를 감상하고 난 후 섬머힐은 내가 생각하는 그 학교였다.학교수업이 시작되는 종이 울려도 전혀 동요되지 않는 아이들이 섬머힐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자신이 결정하는 의사권이 섬머힐 학교에서는 존재한다. 시간표는 있으나 강제적인 규정은 없다. 2명의 학생만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교사 역시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수업시간은 정말 진지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수업을 하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없는 한 사물에 불과하다. 아무런 느낌 없는 나무토막과 같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로봇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내가 본 섬머힐에서 10살의 여자아이에게 담배를 피우냐는 물음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아이는 눈치같은 것은 전혀 없이 오히려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인 담배를 계속 피울거냐는 질문엔 그럴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고 그것이 좋고 안좋음을 깨닫음에 있어서 이곳의 자유로움을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그러한 삶이 이 학교에는 존재하는 듯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0살이 아니라 20살이 되어도 안에서와 밖에서의 자유로움은 공존해 있지 않다. 몰래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탈선의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담배라는 하나의 사물로 인해 이런 아이들을 외면하는 이런 학교와 이 섬머힐 학교는 같은 학교이면서도 무한한 거리가 형성된다. 아이들 또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며 깨닫고 배척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우리가 느끼기도 전에 무조건의 배척을 강요한다.섬머힐에서는 자유가 존재한다. 자유는 ‘무슨 일이나 제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다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유는 상호적인 것이어서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따라서 자유스러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조금씩은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남을 배려하고 생각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뜻한다. 서머힐에서 수업출석 여부는 학생 본인의 의사에 달렸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밤중에 시끄럽게 떠드는 일은 허용하고 있지 않다. 남들의 잠을 깨우는 일은 자유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머힐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를 누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있어 자기 자신보다는 공동체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나 논쟁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게된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요구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이러한 차이들을 인식하고 서로 타협, 절충해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자유가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하지만 솔직히 이런 자유가 있고 자신의 결정권이 있는 이러한 학교에서 과연 얼마나 공부를 할 수 있으며 사회에 나가서 얼마만큼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생각되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섬머힐에서의 아이들은 12∼13세 경까지 주로 놀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열심히 공부해 졸업 무렵에는 일반학교보다 높은 학업성적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매우 개성적이어서 졸업 후의 직업들도 과학자에서 요리사까지 다양하고 주로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섬머힐 학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솔직히 우리나라 경우는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중요과목을 우선 시하고 그것만을 강조한다. 음악, 미술, 체육과 같은 부수적이라 생각하는 과목 같은 경우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하고 아니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적으로 쏟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닌가? 그것이 사회에서 바라봤을 때도 더욱 효율적이고 좋은 성과를 낳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의 집단주의와 일본의 집단주의를 비교 분석하시오.집단주의란 집단의 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우리들은 동일집단의 성원’이라는 의식으로‘우리’라는 단어부터가 그 하나로 볼 수 있다. 집단 응집성이 높고 집단규범에의 동일화가 강할수록 집단의식은 높아진다. 이는 구체적 소재가 집단 각 성원의 의식 속에 있다는 점에서, 집단성원의 외재적 집합의식 등과는 구별된다. 다만 집단의식은 칭호·시가·강령·문장·기치·복식·건조물 등의 외재적 사물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며, 또 이것에 의해서 강화되는 일도 있으나, 그 상징적 의미는 성원이 이를 인지하는 의식에 의존한다. 인간의 자아는 집단 속에서 집단아에 떠받쳐지면 그만큼 불확실한 자아는 강화되고 안정감을 얻을 수가 있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아는 특정의 틀에 어울리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그 틀에 길들여지게 되므로 거기에서 안정감을 얻으려고 하는 강박적인 경향을 낳게 된다. 이런 집단적 의식은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에 많으며, 동양에서도 일본과 한국이 강하지 않을까 싶다.일본과 한국은 비슷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집단주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의견을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인은 첫째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둘째로 남의 사정보다 우선 내 사정이 중요시되어 단체행동이 힘들며, 셋째로 단체 여행에 나선 부인들의 경우 통역 안내자를 전문 직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 고용인처럼 취급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일본인은 첫째로 명령에 약해서 정해진 것은 지켜야 되는 줄 알고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이 있으며, 둘째로 단체행동 때는 내 사정보다 남의 사정을 우선 시하고, 셋째로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희박해서 어떤 일이든 훌륭한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를들면 부유한 회사 사장 부인이 여가 시간을 이용해 남의 집 파출부로 일하기도 한다고 한다.다음의 것은 신문 스크랩 내용을 요약한 것인데, 보편적으로 한국인은 '남 탓'을 하지만 일본인은 '내 탓'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기업은 도산할 경우 사장들이 전적인 책임을 다 지지만, 한국의 기업은 사장이 책임을 자인하면 용서되지 않고 매장 당할까 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친분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집단주의적인 친분인 것에 반해 한국의 친분은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계파는 크게 보아 당의 이익을 쫓아 협상할 줄 앎으로, 이러한 '협상'은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합의되는 지점을 찾아 크게 당의 이익을 위해 대처할 줄 알고 있다. 일본의 노조 역시 이익집단으로 항상 타협과 조정의 관계를 추구하지만, 한국인은 집단끼리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사적으로 친밀한 '가족 성 우리'인 '소단위 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우리는 '회사 성 우리'이고, 미국의 경우는 '국가 성 우리'로써 한국처럼 소집단의 이기주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렇듯 평소에 개별 행동을 하다가도, 외적이 침입하거나 참지 못할 불의를 보거나 절박한 처지에 놓이거나 하면 그때서야 강력한 집단주의를 형성하여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일어나 힘을 합친다. 한국인은 이렇게 가족과 이기라는 개인의식으로 집단주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반해 일본인은 인간주의처럼 대인관계에 의한 집단주의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이러한 차이는 문화 형성의 근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한국의 집단주의의 근원은 '피'로 연결된 "혈연"으로, 가족이라는 형태의 부락이 가까이 모여 살다보니 집단을 형성하여 살게 되었고, 일본은 지역적 특성상 가까운 지역 내에 사는 사람들이 부락을 형성하여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에서 서술한 바 있듯이 집단 내에서 범죄자가 발생했을 시에 그 반응이 각각 다르다. 한국의 경우는 죄를 지은 사람이 가족이므로 벌을 주지 않고 되도록 이면 그를 감싸려고 하고 용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각기 다른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공동생활에서의 범죄는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잃게 만드는 사건이므로 가족이라고 해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죄를 진 사람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끔 해야 하며, 동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진 사람으로 인해 다른 가족들까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또한 농경사회에서 농사일을 거들 때의 사고가 다르다. 한국은 "가족이 힘들어하는데 내가 도와야지…"하는 생각으로 돕지만, 일본은 "내가 도와야지 우리 일을 도와주겠지…"하는 생각으로 돕는다. 이것은 각자의 부락에 경사스러운 일이나 축제가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한국은 아무 조건 없이 경사가 난 집일을 도와주거나 축제에 참여를 하지만, 일본은 "나도 이만큼 했으니까 너도 이만큼은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물건을 주거나 봉사를 한다. 한국인은 흥겨운 마음에 옆 사람까지 끌어들여 축제를 즐기지만, 일본인은 그것에 앞서 "여기서 놀지 못하면 설마 집단에서 낙오되는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참여하고 마는 것이다.한국은 집단이 결성될 때 자신의 소신에 따라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에 포함된다. 같은 공통점이 있으면 자연스레 집단은 형성된다. 예를 들면 요사이 생긴 집단이라 표현하기에 적절한 형태로 같은 취미를 갖은 사람끼리 뭉치는 동호회 같은 것이 있다. 한국의 집단주의라 하면 같은 뜻으로 뭉쳐진 자의적인 집단주의인 것에 반해 일본의 집단주의는 강압적 집단주의라 생각되어진다. 어쩔 수 없이 집단에 소속되어지고 그 집단사이에 어느 정도의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개인을 볼 수 있다. 또,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집단을 갖고 행하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학생들의 지적능력인 지능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지능은 7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동은 적어도 어느 한 분야에서는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은 교사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편협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좀더 극적으로 이해해서 표현하자면 교사는 아동 모두를 잠재적인 천재아로서 생각해야 한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잠재성을 발견하고 계발시킬 수 있는 관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교육과정 재구성능력 등 상대적으로 교사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도 커지게 될 것이다. 더 자세히 이 이론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 교육에 있어 필요한 점을 알아보고자 한다.·다중지능이론의 배경-Project ZeroProject Zero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부설된 교육연구기관이다. Harvard Project Zero는 1967년 예술을 통해 교육을 개선하고 연구하는 교육철학자인 넬슨 굳맨에 의해 개설되었다. 굳맨은 예술 교육은 하나의 중요한 인지적 활동으로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술분야에서는 그러한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기틀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Zero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한다. 처음 HPZ의 주 연구 영역은 예술 분야였다.데이비드 퍼킨스와 하워드 가드너 두 학자가 1972년부터 2000년도까지 Project Zero의 공동 소장으로 재직해왔는데, 후임자로 교육평가 분야의 전문가로 잘 알려진 스티브 사이델 박사가 후임자로 임명되었다. 퍼킨스는 창의성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에 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퍼킨스와 가드너는 지속적으로 이 그룹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HPZ은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영역에 있어서 개인과 교육기관 차원에서 학습, 사고, 창의성 등을 이해하고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영향력이 있는 많은 연구물을 기도 하였으며, 학생들의 학습 양식도 좌뇌-우뇌 이론이 비추어 연구하기도 하였다.두뇌는 각 부위에 따라 기능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온 지능지수(I.Q.)는 언어적 기능과 수리적 기능이 주로 측정되었으며, 이러한 지능은 좌뇌의 기능만 측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가드너는 두뇌의 전반적인 기능을 측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지능으로 간주되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하나의 재능, 기능, 또는 적성만 측정할 것이 아니라, 지능이라고 충분히 인정될 수 있는 어떤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가드너는 그가 연구하는 과정에서 확고하면서도 구체적인 어떤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 문제의 해결점의 모색을 위해 어떤 한 문화나 여러 문화적인 환경에서 가치가 부여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문화적인 가치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가드너는 두뇌손상을 입은 환자들, 석학들, 천재들, 자폐 증상을 가진 아동들, 정신지체아동들 등을 대상으로 얻은 풍부한 자료와 함께, 발달심리학, 여러 문화의 비교 연구, 신경학 등의 연구 자료 등을 종합하여 그 기준을 마련하였다.가드너는 어떤 것은 지능으로 간주되고 어떤 것은 지능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8 가지 기준을 통해 구별하였다.첫째, 지능은 두뇌의 어떤 부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각각의 지능은 신체적인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두뇌 손상에 의해 그 능력이 없어지거나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형태의 두뇌 손상은 이러한 인지적 능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뇌졸중을 당한 사람은 언어적 지능이 감소하거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에는 수없이 많은 부분이 각각 다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뇌졸중을 당했다고 해서 모든 기능이 전부가 다 똑같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좌뇌를 다쳤을 때 우뇌의 기능은 정상적이다는 것이다.둘째, 마침내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능에 이르기까지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다. 전문가에 이르는 각 발달 단계는 모두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가드너가 말하는 최정상에 이르는 일련의 발달단계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그 발달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다섯째, 지능은 인간의 진화론적인 역사나 진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오래 전의 종족으로 거슬러 올라간 진화의 근원부터 현재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추적해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새들의 음악적 지능이라든가 동물들과 원시인들의 공간적 지능 등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드너는 자신이 제기한 여덟 가지 지능들이 모두 'Homo Sapiens'로부터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그 발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여섯째, 지능은 실험연구나 심리학적 연구로부터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인지 심리학자들은 어떤 기능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고 다른 기능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일들을 개발해왔다. 그림조각 짜맞추기와 같은 것은 시각적/공간적 지능을 또 논리적 패턴을 찾아내는 것은 논리적/수학적 지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실험 심리학적 연구들이 지능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일곱째, 지능은 심리측정의 결과와 어느 정도는 일치해야 한다. 가드너는 자신이 주장하는 지능들은 다른 심리학 분야나 행동과학으로부터 얻어진 자료와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표준화 검사의 결과를 사용하는데는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종종 이들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가드너 자신이 어떤 구체적인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 특별한 지능을 구별하고 양적화하려는 의도로 I.Q. 와 같은 심리측정 도구 사용을 지지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지능은 인간의 신호체계 내에서 기호화가 가능해야 한다. 가드너는 신호체계야말로 지적 행동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들 읽기, 쓰기,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름이나 장소, 날짜, 기타 하찮은 것이라도 잘 기억한다. 언어적 학습자는 말하기, 듣기, 그리고 단어를 보면서 많이 배운다. 논리/수학적 학습자는 실험하기를 좋아하고, 뭔가 항상 밝혀 내려는 노력이 보이며, 수와 관련된 내용에는 귀와 눈이 번뜩인다. 질문을 많이 하며, 어떤 유형과 관계를 밝혀내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수학에 흥미를 갖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근거와 원리를 찾아 해결하려 한다. 분류를 한다든지, 그룹을 짓는다든지 추상적인 유형이나 관계를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 공간적 학습자는 그림 그리기, 모형 만들기, 디자인, 뭔가 만드는 데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한 번 보면 비슷하게 그려내거나, 한 번 본 물체도 쉽게 모형을 만들어 낸다. 그림 감상, 영화 보기, 기계 다루기 등을 좋아한다. 뭔가 상상해내기를 잘 하고, 변화를 쉽게 찾아내고, 미로 찾기와 낱말 맞추기, 지도나 도표 등을 잘 읽어 낸다. 시각화(視覺化) 또는 상상을 통하여 잘 배우고, 색깔이나 그림을 활용했을 때 많이 배운다. 음악적 학습자는 노래를 좋아하며, 흥얼거리기를 잘하고, 음악 감상과 악기 연주를 좋아한다. 한 번 노래를 들으면 쉽게 멜로디를 익히며, 음높이나 리듬 등을 쉽게 구별한다. 리듬, 멜로디, 음악 등을 통하여 잘 배운다. 신체/운동적 학습자는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며, 만져보면서 이야기하고, 신체 언어를 많이 활용한다. 이런 학습자들은 스포츠, 댄스. 연극, 그리고 손재주를 이용한 신체적 활동을 잘 한다. 신체 감각을 통한 지식 탐구, 공간과의 교류, 만지기, 움직이기 등을 통해 잘 배운다. 대인관계 학습자는 많은 친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말을 잘하고, 그룹 활동에 잘 참여한다. 남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잘 이끌어 가며, 그룹을 조직하거나, 그룹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중재, 조정 등을 잘 한다. 다른 학습자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잘 배우고, 비교 또는 연계시키거나, 협동 더불어 타자가 방망이 휘두르는 속도, 바람의 속도 등을 계산해 내는 논리-수학적 지능이 남들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둘째, 모든 사람은 각각의 지능을 적절한 어떤 수준까지 개발시킬 수 있다. 가드너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만약 적절한 여건(용기, 좋은 내용, 좋은 교육)만 주어진다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취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드너가 예로 든 것은 Suzuki Talent Education Program이다.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이자 바이올린이스트, 교육자, 철학자, 인간주의자인 Shinichi Suzuki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음악 교육에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그는 "음악적 재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계발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누구든지 적절하게 교육을 받으면 음악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증명하였다. 아마, 특기·적성 교육의 성공을 보여준 가장 시범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셋째, 여덟 가지 지능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방식으로 함께 작용한다. 지능들은 항상 서로 교류하면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고 할 때에, 먼저 요리법을 읽어야 하고(언어적 지능), 이 때 요리를 몇 단계로 나눌 때도 있고(논리-수학적 지능), 가족의 모든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고(대인관계 지능), 뿐만 아니라 자신만이 잘 창출해내는 맛을 자아내게 해야한다(자기이해 지능). 축구나 야구처럼 운동 경기를 고려할 때도 이와 같은 예는 너무나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중지능 이론에서 각 지능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지 이들을 각각으로 분리하여 어떤 특출한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계발하자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여러 지능들은 서로 협응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넷째, 각 지능 영역 내에서도 그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지능 영역에 있어서 지능적이라고 간주되어질 수 있는 한 가지 표준화된 특성은 없다. 어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