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정치학의 시각관점 패러다임 접근법구 분행 태 주 의 (베 버)후 기 행 태 주 의 (마 르 크 스)본질적개념체 계(국 가)? 물리적 힘을 가진 다원적인 국가? 경쟁과 권력 배분을 촉진하는 정당화된 지배 합리성, 구조적 분화,전문화는 질서와 조화와 효율성을 초래? 단일적으로 통제된 자본주의 국가와 지배계급(국가를 통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경제적 계급).? 상부구조(이데올로기)와 구조적 토대(현실), 물리적 힘, 생산관계, 생산양식등의 하부구조에서의 변동이 상부구조의 갈등과 변화 초래문 화(정 치)? 지배적 권위는 세 이념형, 즉 전통적?카리스마적?합리적인 지배와 연관된 신념과 상징에 기초한다. 합리적 권위의 일상화는점증하는 사회화를 반영? 개인주의에다 자발성(복종)과 통제가 자유의 매개변수? 지배적 권위는 위계적이며, 국가와 지배계급과 관계? 문화와 신념의 상징은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이라는 상부구조의일부로 간주? 착취와 정당화되지 못한 권위가 지배계급의 매개변수발 전(저발전)? 합리화와 이념형적 유형화 방법, 이론은 명료화에 근거? 관념 및 사회에 대한 그 영향의 체계화, 발전의 요건을 강조? 자본주의적 발전에 초점을 맞춤? 지적 유물론과 변증법. 이론은 관념적? 환상적 개념이 아닌역사적 현실에 근거? 발전은 인간의 욕구와 관계가 있고, 인간의 의식은 생산력과생산관계로 이루어진 인간의 물질세계와 변증법적 상호작용에기반을 두며, 자본주의적 발전에 초점을 맞춤정치학 인식신 화 : 정치학은 가치상 중립적이다.현 실 : 정치학(미국)은 지배적인 제도에 에속적이다.접 근 법?몰역사적?양적 보통 서베이 자료에 기초동질성과 규칙성에 관심?비교적 여러국가에 대한 초점?추상적, 이데올로기적인 보수성?공식적, 비공식적(집단) 구조와기능에 대한 초점?사실과 가치의 분리 / 비처방적객관적, 경험적?자민족 중심주의(영?미형 모델 관심)?역사적?전체적, 거시적 / 이론적,급진적, 변동지향적?사실과 가치는 행동과 적실성과 연관?인간중심적이며 문제지향적?제 3세계 지향적?질적, 양적 / 규칙성과 비규칙성에 관심?계급과 집단의 관계와 갈등 연구?비교적 여러 국가에 대한 초점,학제간 연구아 개이 념디 목어 록사 회?세속적이며, 산업자본주의내 합리적 관료사회,경쟁적 속성,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본 최고선
비교정치학 이론 체계와 국가에 관한 이론1. 체계에 관한 주류 이론고전적인 개념은 사회를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로 분류했다. 최근의 분류를 살펴보면,알먼드는 영미체계, 유럽대륙체계, 전체주의체계, 전 산업적 체계 등의 분류를 비교정치학 분야에 도입했으며 그 외 많은 학자들은 자신만의 체계로 다양한 관점이나 해석을 드러내었다.사회는 일반적으로 그 안에서 체계가 평가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실체로 간주된다. 따라서 체계는 실제 사회의 추상물로 사회의 모든 현상은 체계와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체계는 여러 가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그 사실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에 의해서 출현한 체계이론은 생물학, 인공두뇌학, 작전계산,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20세기 들어 신생국의 대거 등장, 정보와 자료의 축적, 많은 기술적 발전으로 세계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따라서 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모두 분석과 종합의 공통된 토대로서 체계를 이용함으로써 이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했고, 체계 개념이 사회과학이론에 깊이 뿌리내려 왔다.2. 유기적 또는 생리학적인 체계 : 이스턴과 일반체계 이론(1) 이스턴의 기본적 분석틀경험지향적인 정치이론을 확립하려는 이스턴의 노력은 3단계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첫 번째 저작은 “정치체계”로서 여기는 정치학의 일반 이론의 사례를 제시했으며 두 번째는 “정치학 분석틀”로서 일반이론의 발전에 필요한 주요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정치생활에 대한 체계분석”에서는 그 개념들의 경험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속에서 그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이론에 대한 이스턴의 탐구는 그로 하여금 일반적 분석 틀을 정식화하고 부분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전체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체계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감안하여 균형상태와 불균형상태에서의 정치생활의 차이점들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스턴은 의미의 혼란과 다양성을 지적하면서 국가라는 관련되어 있다. 알몬드는 비교정치학의 개념을 혁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정치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국가와 법적, 제도적 기구 대신 정치체계가 이용된다. 권력에는 법적인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기능은 권력을 대체한다고 보았다. 또한 역할이 직위를 구조가 제도를 대신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알몬드는 정치체계는 보편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테제속에서 이러한 개념을 채택했다. 즉 모든 정치체계는 정치구조를 갖는다. 모든 정치체계에서는 동일한 기능들이 수행된다. 모든 정치적 구조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모든 정치체계는 문화적 의미에서 혼합되어 있다. 이 특성들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비교연구를 위한 토대를 제공해 준다. 알몬드는 유사한 구조들이 어디나 발견되고 있으나 그것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기능적 문제들이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알몬드는 이스턴이 제시한 투입, 산출, 피드백의 분석 틀로부터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기능 범주들을 투입과 산출로 구분하여 이것이 체계적인 기능이론 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분석 틀은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다.알몬드는 비교정치학에 대한 기능적 접근방법을 정교히 다듬음으로서 여섯 가지의 분류가 생겨났다. 여기에는 이익표출, 이익취합,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다. 이는 이스턴의 접근방법과 유사하다. 알몬드는 그의 초기 이론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이론을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먼저 그는 자신의 정치체계 개념은‘조화’보다는‘상호의존성’을 다룬다고 주장하였다. 그는‘상호의존성’을 강조함으로서 그의 접근법이 부분들의 조화나 균형을 강조하는 정태적?보수적 편견을 가진다는 비판에 대항하였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이론구성이‘발전의 유형’을 검토할 수 있는 것으로 정태적?보수적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이라고 생각했다.환 경환 경(요구)투입(지지)전환이익표출이익집약커뮤니케이션규칙제정규칙적용규칙판정전환(결정)산출(행위)규제능력추출능력상징능력분배능력반응능력환 경환 경알먼드의 정치체계의 기능 수준셋째, 알도입했다. 그는 변증법을 물리적?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변증법은 추상성과 구체성, 이론과 실체 사이를 왕복한다. 3가지 원리가 지배적인데, 이는 기능주의와 관련지을 수 있다. 시만스키는 이것을 변증법적 기능주의 원리라고 불렀다.첫째, 사물은 서로 관련성을 갖고 체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보다 큰 전체의 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둘째, 사물들은 상호의존적이지만 그것들은 또한 내적 모순을 갖는다. 자본주의는 사회안에 실질 상품을 축적하나,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사람들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확산시킨다.셋째, 사물은 체계 내 모순의 결과로 변화한다. 변화는 체계 내의 적대세력으로부터 출발하며, 변증법적 기능주의의 본질적 측면이다.이러한 것들은 인종주의?교육?가족?군대?국가들을 기능주의적 용어로 분석한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르크스의 원리들이다. 각각은 독점자본주의의 요구라는 측면에서 설명된다. 우리는 각각의 공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체계의 침식 및 전화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흡수하여 급진적 패러다임을 채택한 사람들은 알몬드와 파우엘이 그들의 체계분석 안에서 분열이나 긴장, 또는 갈등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모델 속에 있는 다원주의적 가정들은 경쟁적 집단들과 경쟁적 이익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통제됨으로서 대중이 고립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배계급들은 힘없고 고립된 하층계급의 저발전을 촉진하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발전을 영속화시킨다. 국가와 지배계급은 집단과 조직에 침투하여 개인을 고립시키고 하위체계의 자율성을 침식한다.급진주의자들은 체계를 하나의 전체로 보며, 전체적 시각을 역사적 정향으로 인식한다.카사노바는 체계의 역사적 시각을 과정?투쟁?조직화?자발성 및 기타 여러 경향으로 해석하였고 만하임은 사회에 관한 인식의 저술을 위해 물질적 생산제력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변동론을 구상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기술적 혁신을 통한 물질적 생산제력의 변화가 사회변화를 일으키며, 생산제력의 변화는 계급관계에을 전개하였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인식이다.국가에 대한 관심이 부활되어 왔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사상은 다양한 방향들의 초석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안에도 두 개의 학파가 존재한다. 하나는 초기 저작과 헤겔 비판에 영향을 받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다른 하나는 후기 저작에 집중하며‘비판적’관점보다는‘과학적’관점을 강조한다.월프는 이 2가지 접근방법을 비판하였다. 레닌적 시각은 때때로 기계론적 결정론, 형식과 내용의 혼돈, 그리고 국가를 가장 강력하고 변화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경향 등을 낳는 반면, 알튀세르적 시각은‘교조주의’와 ‘훈고주의’그리고“금세기를 풍미하는 실증주의와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있다.”라고 하였다. 월프는 자본주의 국가를 소외와 관련지었다. 이러한 관찰은 그가 마르크스의 국가이론이 아니라 정치적 소외에 관한 이론적 발전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이론의 세련화에 대한 관심은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재평가작업을 하도록 만들었다.골드와 로 및 라이트 등은 이 작업을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구주의, 구조주의, 헤겔적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종합하였다. 에스핑-엔더슨과 프리들랜드 및 라이트 등은 다원주의, 도구주의, 구조주의, 그리고 정치적 계급투쟁을 제시하였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생활과 경제생활의 상호연관성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별하였다. 그들은 근대의 무국가사회를 조망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의 정치학자들은 국가개념을 경시하고 그 대신에 ‘체계’로 대체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강제와 제약의 조건들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체계이론가인 이스턴은 정치학의 기원과 마르크스의 영향력을 일깨워 주었다.정치학자들은 무엇이 정치적인 것이며, 무엇이 정치학인가라는 물음과 씨름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치학을 국가의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규정응되고 강화된다. 또한 어른들도 전쟁이나 경제공황과 같은 사건이 있은 후에 그들의 정치체제에 대한 급격한 태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경우에는 소위 재사회화의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2차 대전 후의 독일과 공산화 후의 쿠바, 그리고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경험한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재사회화의과정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둘째, 정치사회화는 직접적인 교수에 의하여도 이루어지지만, 간접적인 학습에 의하여도 훌륭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매체 내의 의사소통은 분명 정치사회화의 이해에 기여한다.셋째, 특정한 사회에 있어서 사회화의 패턴은 통합적일 수도 있고, 또 분열적일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 사회의 각각의 하위문화의 집단들이 독특한 사회화의 패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정치사회화는 한 나라의 정치문화를 형성하고 전수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결국은 정치사회화에 따라서 그 정치문화가 유지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며, 창조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 정치체계에 관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사회화를 연구한다. 한편, 구소련, 중국, 쿠바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대중을 사회화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혁명적인 사회에 대한 신념과 가치를 채택하게 하는 사상의 유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2. 대안을 찾아서정치문화와 정치사회화의 주류 이론들에 대한 도전은 앞에서 제시된 그 이론에 대한 비판들을 요약함으로써 출발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기술적인 정치적 세속화로서 이상화되었다.- 가정이 부적절하거나, 모호하거나 입증되지 않았거나 오류이다.- 환원주의적이며 문화구속성을 가지고 있고, 비설명적, 서술적이다- 전체론적이기보다는 특수적이고 사변적이다.- 방법상에서 정태적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보다는 수동적이고 조건화된 행위로의 정향을 보인다.3. 문화적 영역과 사회주의의 경험(1) 소 련마르크스주의 분석은 생산양식, 생산력 그리고 사회적 생산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뿐이다.
..PAGE:1장기이식[organ transplantation]4조(5월 27일)..PAGE:2장기이식에 들어가기 앞서…장기이식은 기존의 치료법으로 회복하기 힘든 각종 말기질환자의 장기를 뇌사자 및 생체에서 기증된 건강한 장기로 대체하는 수술을 말한다.'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1998년 12월 30일 제정, 1년간의 경과기간 뒤 2000년부터 시행함으로써 장기이식을 합법화하고 뇌사를 공식 인정하게 되었다...PAGE:3장기이식에 들어가기 앞서…국립장기이식센터는 ▲장기기증자 및 이식대기자 등록기관 지정 및 이들에 대한 정보 통합 관리 ▲이식 대상자 선정 ▲장기이식 의료기관의 뇌사판정 및 시술과정 감독 등을 총괄한다.장기등록과 이식의 절차상 까다로움을 개선하기 위해 2002년 7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6개월이 지난 후인 2003년부터는 개정법률이 시행...PAGE:4장기이식[臟器移植, organtransplantation]개요어떤 조직 또는 장기의 파손된 기능을 대상할 목적으로 원래 존재하는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조직 또는 장기를 옮기는 것...PAGE:5장기이식의 이식종류자기 자신의 조직 ·장기의 위치를 옮기는 경우는 자가이식, 타인의 것을 옮기는 경우는 동종이식, 종류를 달리하는 동물로부터 옮기는 것은 이종이식이라고 한다...PAGE:6이식이 가능한 장기신장(Kidney), 간장(Liver), 췌장(pancreas), 심장(Heart), 폐(Lung), 골수(Bone marrow), 각막(Cornea)등이 있다. (법률상 이식 가능한 장기)[생존시에 기증 가능한 것]혈액, 신장, 골수, 간[뇌사시에 기증 가능한 것]심장, 폐, 췌장, 간, 피부..PAGE:7각막이식수술이란 각막이 뿌옇게 되거나,염증, 외상, 또는 각막에 세균이 침투하는 경우 볼 수 없게 된 각막을 제거하고 기증인의 건강한 각막을 이식시키는 일이다.이는 카메라의 투명필터가 혼탁하여 사진이 잘 찍히지 않을 경우 새 것과 교환해 주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각한 경우에는 점차 폐 기능이 저하하여 생명이 위협 받게 되는데 이런 경우 폐 이식이 필요하다.폐 이식 수술은 뇌사에 빠진 장기 공여자의 건강한 폐를 이러한 환자에게 이식하여 주는 방법이다...PAGE:10심장(Heart)심장의 문제가 있을 때 여러 방법으로 수술이 가능하지만 심장 근육이 불가역적으로 손상되었거나 완치가 불가능한 선천성 심장 기형인 경우에 점차 심부전 상태에 빠져 생명이 위협 받게 된다.이런 경우 심장이식이 필요하게 되는 데 심장이식 수술은 뇌사에 빠진 환자의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여 주는 방법이다...PAGE:11췌장(Pancreas)췌장 이식은 췌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당뇨병 환자에게 시행됩니다.췌장 이식수술은 전체 이식과 부분 이식법이 있으며 전체 이식은 40세 미만의 뇌사 기증자와 혈액형과 세포 조직형이 맞는 경우 가능하며 가족으로부터는 부분 기증이 가능합니다...PAGE:12간장(Liver)간이식은 회복될 수 없는 간을 모두 제거하고 건강한 간을 수혜자에게 옮겨주는 수술을 말합니다.현재까지는 간의 기능을 대신할 인공 장기가 없기 때문에 간이식은 말기 간기능부전증 환자에게의 유일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AGE:13신장(Kidney)신장이식은 신장의 기능이 완전히 소실된 경우 대체치료 중의 외과적 수술의 방법으로 건강한 신장을 체내에 이식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장은 오른쪽 하복부에 위치하게 되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신장을 제거하지 않습니다...PAGE:14인공장기[ 人工臟器, artificial organs]인공치근[ 人工齒根, dental implant]인공중이[ 人工中耳]인공심폐[ 人工心肺, mechanical heart and lung]인공신장기[ 人工腎臟器, artificial kidney]인공근육[ 人工筋肉, artificical muscle]인공관절[ 人工關節, artificial joint]인공간[ 人工肝, artificial liver]..PAGE:15거부반응 拒否反應 (reject착하더라도 결국에는 심장박동이 정지되는 상태를 뇌사라고 한다. 정밀한 의학 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뇌사판정을 받았을 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장기기증이라고 합니다...PAGE:17장기기증 등록1.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에서 전국의 장기이식 대기자를 대상으로 이식대상자를 선정하는 장기이식대상자 선정절차를 거치게 되며, 이를 위하여 장기를 기증하고자 하는 사람을 장기기증자로 등록하게 된다.2. 장기기증자로 등록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국의 장기이식등록기관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여 본인이 직접 장기기증자 등록신청을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장기기증자가 살아있는 자가 아니라 뇌사자 또는 사망한 자인 경우에는 그 가족이나 유족 중에서 1인이 대신하여 등록신청을 할 수 있다...PAGE:18기증할 수 있는 장기1. 장기기증자가 다른 사람에게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골수 및 각막 등 7종류이다.2. 장기기증은 기증희망자가 살아있을 때 기증할 것인지, 뇌사상태에 빠질 때 또는 사후에 기증할 것인지에 따라서 다르다.3. 살아 있을 때 기증할 수 있는 장기신장 : 정상적인 것 2개중 1개간장 :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 일부골수 :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 일부4. 뇌사상태시 기증할 수 있는 장기--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각막5. 사후에 기증할 수 있는 장기 -- 각막..PAGE:19기증동의의 방법장기 기증에 관한 동의는 기증희망자 본인이 하는 경우와 가족 또는 유족이 하는 경우가 있다.본인의 동의 방법은 서명한 문서에 의한 동의와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의한 동의가 있다...PAGE:20기증 동의의 순위가족 또는 유족의 동의는 가족, 또는 유족의 순위에 의한 선 순위자 2인(가족 또는 유족이 1인인 경우에는 1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말한다.- 가족 또는 유족이라 함은 살아있는자, 뇌사자 또는 사망한 자의 다음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14세 미만인 자는 제외된다.- 가이다. 외국에 비하여 15년 늦게 시작되었지만 1969년 3월 최초로 성공한 신장이식은 현재까지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여 그 활동이 아시아 정상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다...PAGE:22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3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4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5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6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7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8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29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30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31국내 장기이식 현황..PAGE:32..PAGE:33장기의식의 윤리성1. 새로운 한계와 윤리적 도전2. 인간으로서의 인간: 윤리성의 근본 기준3. 인간 생명에 봉사4. 이식 수술과 기증자의 죽음5. 동의 : 자유롭고 책임이 따르는 기증6. 사회, 사회구조, 건강을 위한 의료 계획..PAGE:34장기이식의 윤리적 문제,법적인 문제로 대두 되기까지…장기이식 수혜자가 느끼는 장기 공여(기증)자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이식장기 공여자의 이식 수혜자에 대한 기대감 등이 한데 섞여 이로 인한 문제점들이 장기이식 분야의 새로운 학문으로 대두될 만큼 장기이식이 가져온 윤리적인 문제들은 각종 정신과적인 문제로 시작되어 사회 윤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법적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PAGE:35장기이식에 관한 법적쟁점들…장기적출에 관한 특별법첫째, 이식 외에 교육이나 연구 목적의 적출을 인정할 것인가.둘째, 뇌사설을 채택하지 않는 경우 사체나 생체와는 별도로 뇌사자에게서의 장기적출에 필요한 요건의 규정 및 법정의 요건에 합치하는 뇌사자의 장기적출은 違法性이 조각된다는 규정.셋째, 장기적출의 요건인 승낙의 존부 및 그 임의성을 확인하는 방식, 또한 본인의 의사와 유족의 의사의 관계 및 승낙 또는 거절권을 가지는 유족의 범위와 순서.넷째, 유효한 승낙의 전제로서 의사의 설명의무의 내용...PAGE:36장기이식에 관한 법적쟁점들…다섯째, 생체제공의 제한과 무능력자의 보호방안.여섯째, 장기매매 및 상업인정된다.보건복지부는 뇌사 판정기준을 규정하고 뇌사자의 장기 적출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앞으로 정기국회를 거쳐 공포한 뒤 1년간의 경과기간을 둔 뒤 시행한다고 밝혔다.법률안에 따르면 뇌사 판정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의료기관의 뇌사판정위원회에서 판정위원 (전문의 3명 이상을 포함한 7~10명) 3분의2 출석과 출석위원 전원 찬성으로 이뤄졌다.신문기사..PAGE:38장기 등 이식법 시행령·施規 개정안` 입법예고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26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에 따라 우선적으로 뇌사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이같은 내용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령 안을 마련, 17일자로 입법예고하고 내년 2월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개정령 안에 따르면 장기 등 이식대상자 선정시 당해 뇌사자를 관리하고 있는 뇌사판정대상자관리전문기관에 등록된 이식대기자중에서 우선 선정하도록 하되, 다만 당해 뇌사자의 가족 중 이식대기자로 등록된 자가 있는 경우 최우선 이식대상자로 선정토록 했다.신문기사..PAGE:39[뇌사인정] 각계반응환자 가족들과 의료계는 "뇌사상태의 환자가 장기간 입원할 경우 의료비 부담이 커 가족들에게 2중의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며 입법화를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종교계 등 일부에서는 "인간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는 것은 윤리적인 규범에 위배된다" 며 반대입장을 보였다.신문기사..PAGE:40뇌사입법후 부산서 첫 타인 장기기증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장기기증이 이뤄졌다. 11일 오전 부산시 부산진구 개금동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이병욱교수(일반외과)의 집도로 경기도 부천에 사는 이창호(李昌浩.41)씨가 기증한 신장 1개가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서모(21.부산시 북구 구포2동)씨에게 이식됐다. 이번 신장이식수술은 지난 2월 9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후다.
신라 화랑도 검법에 대한 조사(1) 신라의 건국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국가적 형성을 이루었다. 신라는 하나의 단일 부족국가 형태가 아니라 여러 부족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적 체계를 이루었다. 신라의 제도는 중앙집권적 제도가 아니라 지방분권화 된 제도였다.신라의 제도는 육부삼성(六部三姓)을 바탕으로 조직되었다.『삼국사기』「신라본기(新羅本紀)」에 의하면 육부(六部)는 1알천의 양상촌 이씨 2돌산의 고허촌 최씨 3무산의 대수촌 손씨 4취산의 진지촌 정씨 5금산의 가리촌 배씨 6명활산의 고야촌 설씨로 이루어졌다.3대 유리왕 9년(B.C 32)에는 육부의 이름을 고쳤다. 삼성(三姓)은 박·석·김으로 각 시조의 설화에 관하여 살펴보면 난생설과 태생설이 섞여 있어 고구려나 백제의 시조설화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건국설화를 살펴봄으로써 각 나라의 제천행사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신라의 시조설화를 시대 순으로 살펴보기로 하자.1박혁거세(朴赫居世)고허창 소벌공이 양산 기슭 나정곁에 말이 꿇어앉자 우는 것을 바라보고 이상히 여겨 쫓아가 보니 말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그 자리에 커다란 알이 있으므로 이를 쪼개 보니 그 알속에 애기가 들어 있었다. 아이를 데려다가 길러 10살이 되자 기골이 장대하고 숙성하여 비범한 재질이 있으므로 육촌사람들은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진한 사람들은 호를 박이라 하는데 그 알의 크기가 박만 하였다 하여 성을 박씨라 하였다. 이것이 신라 건국 원년(B.C 57)이다.2석탈해(昔脫解)신라의 동쪽에 왜국이 있고, 왜국의 동북 천리에 다파나국(多婆那國)이 있는데, 다파나국왕이 여인국의 왕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이를 밴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으므로 왕이 불행한 일이라 하여 내버리라 함에 하녀가 천으로 싸서 금궤에 넣어 바다에 띄어보내니 진한의 하진포구에 이르니(이 때가 박혁거세 9년), 바닷가의 노파가 이를 건져서 본즉 애기가 알 속에 있었다. 금궤에서 탈출하였다 하여 이름을 탈해라 하고, 금궤가 떠내려올 때 작긋(까치)이 따라 울었다 하여 변을 떼어 이르러 비로소 고대국가적 운영체계인 중앙집권적 체체를 갖추었다. 이때부터 신라는 국가적인 형태를 가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이후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동맹관계를 가지면서 발전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의 세력에 밀려 동맹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기 위하여 내물왕 때에 왕족 실성(實聖)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이후 내물왕이 죽고 실성이 왕위에 올라 내물왕의 아들 복호와 미사금을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보낸다. 그리고 내물왕의 장자 눌지(訥紙)가 실성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삼국사기』「박제상전」)신라는 고구려의 원조를 받아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루어 김씨 왕조의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또 신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였으며, 해안에 침입한 왜를 고구려의 군사 원조를 받아 격퇴하였다. 그러나 눌지왕 이후부터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끊고 백제와 동맹을 꾀하면서 고구려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의 동맹관계는 각국의 실리를 위하여 계속 유동적으로 변하였다.신라는 진흥왕 때에 이르러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는 진흥왕의 순수비를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 진흥왕 때의 명장으로는 이사부(우산국 정벌)와 국사 거칠부가 있었다. 진흥왕은 화랑제도를 만들어 신라의 기반을 다졌다. 화랑제도는 훗날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기반이 되었다.(3) 신라의 화랑제도진흥왕 때의 화랑(花郞)이나 국선(國仙)은 고구려의 선배제도 를 이어온 것이다. 고구려의 선배는 신수두 단전(壇前)의 경기회에서 뽑아 학문에 힘쓰며, 수박, 격검, 활쏘기, 말타기, 깨금질, 씨름 등 각종 기예를 연마하였다. 또 명산을 다니며 시와 음악을 익히고, 공동으로 한 곳에서 숙식을 하며 평상시에는 환난구제,성곽,도로 등의 건설을 스스로 맡아 하고, 난시(亂時)에는 전장에 나아가 죽음을 광영으로 알고 공익을 위하여 일산을 희생하는 것이다.이러한 선배제도의 교육 방법과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화랑제도이다.『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화) 남자의 덕행있는 자를 뽑아 화랑(花郞)이라고 불렀다.그리고 화랑의 스승으로 벽원랑을 받들어 국선(國仙)이라 칭하였다. 이것이 화랑 국선의 시초이다. 이후 화랑제도를 통하여 그 사람의 인격됨을 판단하여 조정에 천거하였다.신라의 국선은 화랑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고구려의 선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국(國)자를 붙이고, 고구려의 선배가 검은 비단옷을 입어 조의(粗衣)라 칭한 것을 보고서 신라의 선배는 화장(化粧)을 시키므로 화랑(花郞)이라 불렀다.신라 화랑제도에 관하여는..(이진수의 「신라 화랑의 체육사상 연구」를 참고하였습니다.)1 화랑제도의 특질화랑의 기원과 성립에는 성인식에 있어서의 신체고행, 무(巫)에 있어서의 생과사, 제전에 있어서의 놀이, 두레에 있어서의 신체능력의 요구 등 체육적 요소는 한민족 고유의 생활양식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공동경기, 공동 도의연마, 군사단체로서의 동지 동업의 결사적 특성으로 화랑 교육의 확립에 큰 의의를 제공하고 있다.화랑의 기본사상은 밝 이며 그것은 광명을 의미한다. 화랑은 광명사상의 구현자로 정대하고도 밝은 인간을 이상상으로 하고 있었다.화랑의 조직은 6세기 전후에 체계화된 것으로, 그 구성은 귀족 출신의 화랑과 낭가의 미혼 자제인 낭도로 되어 있었다. 조정에는 화랑조직을 통할하는 화주가 있었다.화랑제도는 진충보국(盡忠報國), 효와 신 등의 국민적 도리를 강조하는 도의교육, 정서교육으로서의 가락의 교육, 그리고 신체단련의 셋으로 구별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확실한 분화는 보이지 않으며 삼자가 상호 충첩되고 있었다. 특히 신체단련이 중시된 것은 화랑의 교육이 행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2화랑제도의 목적화랑은 한국 전래의 신체 사상인 신체의 유용성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신체를 탐구하고 있었다. 화랑의 신체 사상은 심신불분리론적(心身不分離論的) 신체관에 근거한 신체의 덕을 함양하는 것이다.화랑이 이상상으로서 구하고 있었던 것은 신체불분리론적 신체관에 기초한 심신의 조화가 잡힌 전인적 인간이다. 또 화랑의 이상상은 기본 사 얻으려고 하였다.화랑의 놀이적 수련에는 가무, 편력, 축국, 수렵 등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화랑도들은 보다 폭념은 인간으로 형성되어 갔다. 화랑의 무술에는 검술, 기창술, 궁술, 기마술, 등이 있었다. 이러한 무술의 수련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국방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화랑의 조직은 화랑제도의 본래의 목적에 따라 대립적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는 신라사회의 구조적 특질로 상호 경쟁의식을 갖는 청소년 집회의 단체조직으로서 적합한 것이었다. 화랑도들은 지식 계급이었던 승려에 의해 교양을 쌓았으며, 장로에 의해 비의를 배웠다. 그리고 선배들에게서 무술을 배웠다. 화랑도들은 서로 경쟁하며 국가를 위해 유능한 인재가 되려고 노력하였다.화랑교육의 수련장으로는 동해에 면하고 있는 명승지 혹은 명산 등이 알려져 있으며, 거기에는 약간의 유적이 남아 있다. 화랑의 수련장은 현재 특별하게 설계된 것은 남아 있지 않으며, 자연 속에서 화랑들이 신체를 수련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화랑이 사용한 도구로는 주로 마구와 무구를 들 수 있다. 화랑의 검은 환두대도이며, 활은 각궁이었을 것이다. 마구로는 금과 동으로 장식한 양륜경제안(兩輪傾除鞍)을 사용했으며, 등은 윤등을, 형은 철제 이절함을 사용했을 것이다.또 화랑체육에 있어 인물 평가의 방법으로는 궁전법과 놀이에서의 인물 관찰법, 문답법 등이 이용되었다. 궁전법은 무술의 실기를 시험하는 신라 전통의 인재 등용법이다. 놀이에 의한 인물 관찰법은 화랑의 행위 전체를 관찰하는 방법으로 이것에 의해 사람다움과 그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판별하였다. 또 체육활동(특히 편력)에 관계가 있는 문답법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신라의 인재등용 방법이었다.4 화랑의 기본사상화랑도에는 세가지 기본 사상이 있다.ㄱ풍류 : 어원을 살펴보면 풍류·풍월은 백(白)·부(夫)·루(婁)·밝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광명을 의미하는 우리말을 한자를 빌어 표현한 것이다. 우리말로 天을 한밝 이라 하는데, 이것은 고대에 있어 니아의 태양신 벨, 그리스의 아폴로, 로마의 발칸, 북구에 있어서의 후리가 등이 그 신화적 의의 및 신격적 명칭에 있어 한국어의 밝 혹은 불 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주장하였다.ㄴ환 : 우리말에 광명을 나타내는 유사 개념어로서는 환 이 있다.환이란 말은 단군 설화에 등장하는 환인, 환웅, 환검의 환과 같은 말로, 광명의 실제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환 의 음차자이다. 환을 우리말로 화 하 로 부르는데, 이것이 환과 일치되는 음을 나타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화랑이 미소년이었다는 사실은 미모는 보기에도 시원하다는 환 의 의미와 일치한다. 화랑도가 풍류도로 불리 우고. 이것이 우리말의 밝 인 이상, 화랑이 한국 고유의 밝 을 행동적, 현실적 측면으로부터 표현한 환(明) 의 차자(借字)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곧 화랑이란 명칭은 한자를 빌려 쓴 것으로, 그 본의가 밝 의 동의어로 밝의 실제적 행동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는 우리말 환 이었음이 추론된다. 화랑은 밝 사상의 구현자이며, 광명을 이 세상에 확충시키기 위해 진력한 사람들인 것이다.ㄷ선(仙) : 화랑은 한자를 빌려 쓸 경우, 혹은 불교, 유교와 구별할 때, 선(仙)·선랑(仙郞)·국선이라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삼국유사』에 많이 보이는데, 거의가 화랑을 선(仙)이라 쓰고 있다. 화랑을 선으로 표기한 이유에 대해 최남선은 고려조에 들어 와서 신(神)에 봉사하는 사람을 선관·선가로 불렀으므로 화랑을 선(仙)이라 불렀다 한다.사서(史書)에 보이는 화랑을 지칭한 선은 도교적인 선이 아니라 무적(巫的) 특질을 갖는 한국적인 선이며, 힘을 갖고 있는 남자를 의미하는 산 이었음이 해명되었다. 또 산 이 의미하는 것이 화랑사상의 한가지 요소로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랑을 선 혹은 국선 이라 쓴 것은 화랑을 남자로서, 혹은 국가의 대표적인 사나이로서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가(史家)들의 원망의 표시이기도 하였을 것이다.5 화랑에 관한 옛 기록『삼국사기』권41, 열전 제1「김유신조」를 보면 유신은 홀로 검을렀다.
◈ 검도란 무엇인가1. 검도의 정의검도란 말하자면 칼싸움이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동네아이들이 모여 나무막대기로 싸움놀이를 하던 것, 그것이 바로 검도의 원형이다. 그 역사는 수천 년 또는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편싸움에, 심지어는 궁중에서까지 봉희(棒戱)나 격검(擊劍)이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졌던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BC 1500년경에 이미 막대기싸움(stick fighting)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아직도 당시의 부조물이 남아 있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다. 또한 신라의 화랑도(花郞徒)에게 있어 격검이 필수적인 수련과목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 근거가 바로 [본국검법(本國劍法)]이다.이 [본국검법]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것으로 또 다른 놀라움이자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모원의(茅元儀)에 의해 전해진 [조선세법(朝鮮勢法)] 또한 고대 검법의 정수로 현대검도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칼(나무·돌·쇠등의 재질에 관계없이)은 동물 사냥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전쟁에서 살상용으로 혹은 호신용으로 수만 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형태와 기법도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칼싸움놀이, 물론 그것이 본능적이고 모방적 행동의 표출일지라도 그 자체의 즐거움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순치(馴致)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칼싸움은 살상 목적이 아닌 심신(心身)의 수련을 위한 교육적 무희(武戱)로, 다시 체육경기로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현재의 검도경기가 만들어진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으로, 아직 세계적인 스포츠로 정착하지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용구를 좀더 과학적으로 개량하고 경기방식도 현대화하여 보다 건전하고 가치 있는 체육경기로 활성화시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2. 검도의 목적1심신단련 : 체육성2정신수양 : 도덕성3기술연마 : 나와야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을 사귈 때 그 처음은 예로 시작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도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처음 검도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예’를 잘 지키게 해야 함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사람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예의 시작은 대자연에 대한 인간의 외경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꿇어 엎드려 하는 절이 그 시초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두려움에 대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종교적인 것으로, 다시 권위에 대한 복종의 표시로 바뀌기도 하고 다양해지기도 하면서 차츰 인간 상호간의 관계 설정에 큰 구실을 하게 되었다. 서양식의 악수나 거수경례는 소위 군례(軍禮)의 일종이니, 무기를 놓고 손으로 확인하면서 적대감이 없음을 표시하는 것으로 화해를 청하거나 싸울 의사가 없음을 뜻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시대나 사회의 변천에 따라 바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우리에게도 손을 잡는 인사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잡는 것은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움이나 위로, 격려 또는 존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의기가 투합 되어 두 손을 마주잡는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예법은 서서 하거나 앉아서 하거나 몇 가지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첫째, 상하를 불문하고 존중,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다.둘째, 몸가짐이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셋째, 절도가 있어야 한다.◈본국검법(本國劍法)은 신라시대의 검법이며 현존하는 것으로는 세계 최고의 것이다. 중국에도 검법이나 검도의 기법이 있으나, 보다 앞선 것은 오직 전해오는 말뿐이며 실제 검보(劍譜)로 이보다 앞선 것은 없다. 일본의 도법은 까마득한 뒷날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보적 가치가 있다. 이 검법은 우리의 에 수록된 24기(技)중의 하나이다. 에 칼춤의 희(戱)라 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황창(黃昌)은 신라 사람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나이 일곱에 백제의 시중(市中)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구경하는 사람이 담처럼 둘러쌌다. 것이다' 라고 하였다.황창이 신라 사람인 것은 확실하나 화랑인지 아닌지, 또 어느 왕 때의 인물인지 알 수 없으며 나 는 을 인용한 것 같은데, 은 어떤 문헌을 참고하였는지 밝히지 않았고 나 에도 전혀 황창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의 고증은 어렵다. 황창이 백제왕을 찌른 사실은 당시 신라가 백제에 큰 원한이 있었음을 말한다. 신라는 그 국력이 백제에 미치지 못해 늘 피해를 당했던 것이다. 특히 무령왕 이후 성왕 때에 이르면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피차 양립 못할 절박한 상태가 된다. 에는 황창에 관한 이첨(李詹)의 고증이 있다.'을축년(乙丑年) 겨울에 내가 게림(경주)에 손님이 되어 갔는데 부윤 배공(裵公)이 향악을 베풀어 나를 위로하는데 탈을 쓴 동자(童子)가 뜰에서 칼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말하기를, 신라 때 황창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나이 15,6세쯤 되어서 칼춤을 잘 추었는데 신라왕을 뵙고 말하기를 신이 원하건데 임금을 위하여 백제왕을 죽여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황창이 곧 백제로 가서 시가에서 춤을 추니.......살해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듣고 울부짖다가 드디어 눈이 멀었다. 사람들의 그의 어머니의 눈을 도로 밝아지게 하려고 꾀를 내어 사람을 시켜서 뜰에서 칼춤을 추게 하고 속여서 말하기를 창이 와서 춤춘다. 창이 죽었다는 전일의 말은 거짓말이다 하니, 그 어머니가 기뻐 울며 즉시 눈이 도로 밝아졌다 한다. 이첨은 스스로 이에 관해 고증하기를 내가 를 보니 모든 것이 다 씌어 있는데 이런 소년이 적국의 왕을 살해한 이야기가 없으니 이것은 아마 관창의 이야기를 잘못 전한 것이 분명하다. 창이 어찌 적국인 백제에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 관창의 이야기를 미화한 것이다. 관창이야말로 춘추시대의 노나라 소년 왕기(汪錡)와 함께 오직 둘뿐인 소년 영웅이다. 앞으로 창의 춤을 보는 이를 위하여 고증한다.' 이런 내용은 에도 인용된다.이첨은 고려 말에 태어난 문장가로 조선 태 큰 목표로 하고 있었다.3 신라에는 어떤 형태이든 자객이나 첩자를 백제에 보내고 있었다.4 이첨의 고증에서는 황창을 관창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신라 진흥왕 15년(554년)에 백제왕을 죽였다는 고간도도(高干都刀)가 창일 가능성도 있다.5 신라의 검술은 이때 이미 매우 발전해 있었으며 일본에도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6 이 검법은 조선왕조 초기까지는 전승되고 있었으니 적어도 신라의 이나 고려의 (단채 신채호는 김해병서가 연개소문의 저서라 는 설이 있다고 함)에는 실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또한 에 소개된 서거정(徐居正)의 이라는 시구에도 '황강개보군원(黃慷慨報君寃)'이라는 황창의 이야기가 있고 김종직(金宗直)의 시 중에도 황창랑이라 하여 '이란 사람이 있었도다! 어린 나이에, 키는 석 자도 못되면서 어찌 그렇게 웅걸 하고 날쌘고, 언제나 왕기를 스승으로 삼아, 나라 위해 치욕을 씻었으니 마음에 뉘우침 없네, 공을 이루고는 춤을 그치고 가버리니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 건넌 듯' 이라고 썼다. 서거정이나 김종직은 성종 때 사람으로 잘 알려진 문인들인데 그들이 남긴 시로 보아도 그때까지는 황창에 관한 문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의 배경은 신라의 화랑정신이며 이를 발판으로 신라에서는 훌륭한 검법을 창출하게 되었던 것이다.은 모두 33세(勢)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격법(擊法)이 12수(首), 자법(刺法)이 9수로 치고 찌르는 것이 모두 21수다.진전살적세 (進前殺賊勢) 3수향전살적세 (向前殺賊勢) 2수후일격세 (後一擊勢) 3수후일자세 (後一刺勢) 2수일자세 (一刺勢) 1수안자세 (雁刺勢) 1수직부송서세 (直符送書勢) 1수발초심사세 (撥艸尋蛇勢) 1수표두압정세 (豹頭壓頂勢) 1수좌우요격세 (左右腰擊勢) 2수(각 1수)장교분수세 (長蛟噴水勢) 1수우찬격세 (右鑽擊勢) 1수용약일자세 (勇躍一刺勢) 1수시우상전세 (?牛相戰勢) 1수이상이 격자지법(擊刺之法) 21수이고 내략(內掠), 외략(外掠), 방적(防賊) 등의 방어법이 있으며 지검대적세(持劍對린 의 편자가 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고 또한 볍업을 알고 있었던 실무자 역시 저예가 깊지 못하였던 것 같으며 도보를 그린 화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1. 지검대적세글자 그대로 검을 들고 상대와 마주한 자세다. 일본의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라는 대표적 유파가 있는데 그 유파의 죄음세가 이와 똑같다. 현대 검도에서는 이 자세를 별로 취하지 않는다.{2. 내략이것은 정해진 자세가 아니라 대적세에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다음의 동작으로 연결시키는 것으로, 방어법으로는 매우 특이하다. 칼날을 밑으로 하여 안으로 스쳐 몸을 돌리며 그 힘의 반작용을 이용하여 곧 공격한다.{3. 진전격적세앞으로 나아가며 상대의 상체를 위에서 아래로 치는 자세이니 현대 검도의 정면치기가 바로 이것이다.{4. 금계독립세금계(날짐승)가 한 발로 섰다가 곧 날아가려는 듯한 자세이다. 상대를 공격할 때 중단에서 하는 것보다는 더욱 위력적이다. 일본에서는 북진일도류의 음도세가 왼발로 대고 이런 자세를 취하는데 후일 발전하여 팔상세(八相勢)가 되었다. 옛날의 왜검보(倭劍譜)를 보면 에 있는 자세가 단순화 된 듯한 느낌을 받아 '신라와 왜국은 가까이 있으므로 무기(칼)와 검술이 반드시 서로 전했을 것이다' 라는 글이 실감난다. 이 자세는 실전에서 가장 많이 쓰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5. 후일격세진전격적세(進前擊賊勢)와 같이 상대의 머리를 정면으로 치는 자세이다. 뒤쪽의 적을 친다는 뜻으로 후일격세라 했을 뿐이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며 왼발로 몸을 밀면서 오른발이 땅을 구르는 순간 치는 것이다.{6. 맹호은림세맹호가 숲에 숨어 있다가 뛰어 나오는 듯한 자세를 말한다. 이 자세는 자칫하면 칼을 든 손이 시야를 가릴 수도 있게 되어 약손을 펴면 다음의 공격에 지장이 있으므로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여기서 취할 것은 그 기세이다.{7. 안자세기러기 안자(雁字)의 변인 엄 자와 같이 몸을 기울이며 직선으로 찌르는 자세이다. 엄자세라 하지 않고 안 자세라 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기러기의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