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무예] 신라 무예
- 최초 등록일
- 2002.11.12
- 최종 저작일
- 2002.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많은 도움 되시구욤~^^*
좋은 성적에 보템이 되었다면~ 저에게 기분 좋은 멜 한통~보내주세요~
목차
(1) 신라의 건국
(2) 신라의 발전
(3) 신라의 화랑제도
(4) 본국검(本局劍)
본문내용
조선의 무예대박과전서인 『무예도보통지』에는, 신라시대의 본국검이 중국과 일본의 검법과 비교해서 고유의 독자적인 검법임을 전해준다. 이는 중국의 검보와 일본의 검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검법을 나타내고 있기에 동양 삼국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다.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보여주는 검법인지,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의 검법에 영향을 끼친 원형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 부분을 인용하여 보면 "『여지승람(餘地勝覽)』에 이르기를 황창랑(黃倡郞)은 산라 사람이다. 언전에 나이 7세에 백제에 들어가서 시중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이를 구경하는 사람이 담을 이룬 것 같았다. 백제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불러서 마루에 올라가서 칼춤을 추도록 명하였다. 창랑이 이 기회를 타서 왕을 찔렀다. 이로 인하여 백제국인들은 창랑을 죽였다. 신라인들이 창랑을 애통하게 여겨서 그 얼굴 모양을 본떠 가면(假面)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한편『무예도보통지』의 본문을 보면"신라는 왜국에 이웃하고 있으므로 그 춤추는 칼들이 반드시 전해졌을 것이나 상고할 수가 없다. 이제 황창랑으로 인하여 본국검의 연기가 된다. 본국의 사람들은 어째서 스스로 전하고 익히지 아니하고 꼭 모(毛)씨의『무비지』를 기다려서 전하여 익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모씨를 가탁(假託)하여 본국검의 논법을 편다" 라고 서술되어 있다.
참고 자료
우리 검도의 원류 --- 학민사 --- 박종률 저
화랑검도 --- 오성출판사 --- 염장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