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교수님께서 『보보스』라는 책을 읽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지식정보와 직업 세계라는 과목과 그 책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는 거지? 하면서 많이 궁금했었다. 책을 읽을 때도 이 책의 내용이 이 과목과 무슨 관계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려고 다시 책의 내용을 되새겨보았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교수님이 이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써오라고 한 이유는 지금이 디지털 시대인 만큼, 디지털 시대의 현황이나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자세를 알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 책의 저자인 브룩스가 말하는 보보 들은 21세기의 이상형을 가장현실화 시킨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자세를 생각해보고 본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읽어보라고 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짐작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것이 바로 이해한 것인지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단지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 그리고 내가 스스로 이해한 내용을 담담하게 글로 옮길 뿐이다.보보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 때.. 나는 이것은 책의 주인공 이름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이름이라 해도 외국인 이름으로 충분히 지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생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그것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었다. 아니 이 책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맞았다, 단지 그것이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어떤 한 계층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것이었을 뿐... 보보스 는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계급을 가리키는 용어로 저자인 브룩스가 처음으로 제시한 신조어였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제목을 듣고서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책인지 다시 보게 되었다. 내용을 본 것이 아니고 어떤 책으로 분류되어있는가를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소설이 인문과학서였던 것이다. 나에게는 인문과학서라는 것이 매우 낯설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 읽게 된 인문과학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인문과 관련된 책이라도 과학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피했기 때문이다.(나에게 과학이라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주제로 다가왔기에 무의식중에 피하고있었다.) 그래서 책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고, 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 하며,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은 어찌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두려움은 점차 사라졌다. 아니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 독후감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암시했다.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보보스 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엘리트들의 변천과 특징을 담고있는 책이었다. 이책은 단순히 변천과 특징에서 머물지 않고, 부르주아, 보헤미안, 그리고 보보스가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소비, 비즈니스 라이프, 지적인 삶, 즐거움(섹스), 영적인 삶, 정치 등을 통해 비교하고 있다. 그러면서 더욱 보보스를 부각시키고 있다. 브룩스는 이 책을 통해 보보스가 미국의 범죄율을 낮추고, 이혼율, 낙태율, 마약복용, 10대 음주 및 임신 등의 사회문제를 줄였고, 경제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보보스가 사적이고 지역적인 삶의 편안함을 즐기는 나머지 국가통합이나 특유의 역사적 사명감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엘리트로서의 책임감, 특히 공적인 봉사의 에토스(ethos)를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이 책은 보보스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읽어 내려 갈수록 이런 사람들도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은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성향이 서로 정 반대라 해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이 두 가지 성향을 보보스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한가지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보스는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단점들은 서로 보완하게 되면 완벽한 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어쩌면 갈등 관계로 보이는 이 두 계층의 담을 무너뜨리는 것이 보보스라는 것이다.부르주아처럼 무조건 많은 부를 가졌다고 보보 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보헤미안처럼 자유에 대한 해방을 말한다고 보보 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부를 가지고도 있어야 하지만,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을 위해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 경재적 열정과 함께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문화적 욕구, 그리고 그에 걸맞는 취향을 지녀야만 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보여지는 보보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단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이들로 보인다.그러나 그들이 유유자적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삶이 완벽한 삶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즉, 그들에게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공공의 가치는 재평가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소신으로는 그들이 새로운 21세기의 새로운 엘리트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식인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지성인이라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들은 너무나 개인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로는 부족하다. 이 사회는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가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생각하고 걱정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생기는 공동체적인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적인 봉사인 에토스를 작가는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