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합리적인 인간인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 고려한 요인들과 결정과정을 생각해보아라.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들만 골라하는 자신의 삶은 또한 어떻게 분석되어야 하는가?""모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사회 구조와 행위]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장 르노아르의 사유방식이다. 나는 합리적인 인간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에 한눈에 눈에 들어온 문구였다. 과연 합리적인간이라는것에대한 명확한 답이 있는것인가, 인간의 선택에 있어서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이분하여 단정 지을 수 있는가대해 의문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을즈음 합리적인간인가의 존재론적 질문을 인간은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방법론적 시야로 바라보게 해준 연결다리가 되어주었다.그렇다면 인간은 사회화되고 그 사회 속에서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며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구조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고 인간은 그 틀 속에서 형성된 행위를 한다면 그 행동의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져야 하는것일까? 모든 행위, 선택에는 책임이라는 필연적 결과가 뒤따르게 되어있다. 그 선택의 책임 결과를 예측가능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의 대안을 찾아 낼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삶은 선택의 연속위에 올려져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서 삶은 달라졌다. 사소한 작은 것부터 중요한 일까지 수많은 선택에 직면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대안을 선택한다.최선’이라함은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서 의도하는 결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최선’의 선택은 자신, 환경, 경제적기회비용등 이성적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내리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 즉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이처럼 인간의 개인적 성향은 무시한 채 사회의 구조의 산물이라는 보편적 이론을 인간선택에 적용 시킬 수만은 없다고 본다.나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합리적인가에 대한 성찰을 인간은 사회의 산물이라는 보편적 이론에 대항하여 인간은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 방법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한다.삶은 선택과 후회의 싸이클속에서 계속 쳇바퀴 돌듯 반복되어지는걸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후회할 행위를 왜 할까? 라는 단순하면서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미지의 의문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후회할 행위였다면 그 행위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였을까? 아무리 결과가 의도하지 않게 흘렀다 하더라도 그 선택에 과정에서는 합리적 이였다고 본다.나의 경험을 예를 들어보려한다. 먼저 연애를 생각해보았다. 연애를 함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지극히 감성적, 주관적 행위 속에도 합리적 요인들이 들어가 있다고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아픔을 경험하고 연애실패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랑을 함으로써 느끼는 여러 가지 감성적 감정들의 지배와는 달리 또 다른 연애로 이어지게 된다. 즉, 연애를 함으로써 얻는 메리트를 자신도 모르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서로 심적으로 의지 가되어 오는 안정감, 행복, 사랑의 에너지등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연애를 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느낄 때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대학입학때의 선택에서의 합리적 결정을 들어 보겠다. 대학이라는 사회적 지휘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기 때문에 사회 구조의 압력이 배제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사회구조, 작게는 주변인들의 관심까지 사회적 압력 속에 선택이 이루어 졌지만, 결국 최종결정은 나였다고밖에 할 수 없다. 즉, 크게는 사회적 위치부터 작게는 나의 관심분야까지 다양한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Bearty is truth, truth beauty-아름다움은 진리이여, 진리는 아름다움이다-존 키츠의 시는 아름다움 자체이며 그의 시는 예술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의 눈과 마음을 고정시킨 존키츠의 "Ode on a Grecian Urn"의 마지막 구절을 서두로 하여 키츠의 세계로 빠져들어 볼까 한다.런던 출생. 마차 대여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에 부모를 여의었다. 클라크 사숙 재학 중에 학교 도서를 모조리 탐독하였고, 특히 영국의 시인과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열중하였다. 졸업 후에는 생계를 위하여 남의 집 서생이 되기도 하고, 병원에도 근무하면서 대시인이 될 희망을 품고 독서와 시작에 몰두하였다.의학을 배운 5년 만에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개업면허증을 받았는데 그 성공은 키츠가 의학보다는 문학 공부에 몰두하였다는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의 시기심을 살 만큼 그의 특출한 자질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화가 세반과 비평가 J.H.L.헌트 등 친구들의 격려로 병원 근무를 사직하고 시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1817년 22세 때 처녀시집 《시집》을 출판하였고, 이듬해에 야심적인 장시《엔디미온 Endymion》을 발표하여 큰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취재하여 이상미를 추구한 이 시가 혹평을 받았을 뿐이었다.이듬해에 패니 브라운과 사랑에 빠져 바로 약혼으로 진전되었는데, 그와 더불어 그의 생활도 폭과 깊이를 더하여 시에서도 비약적인 진보를 보여 잇달아 걸작을 써 냈다. 중세 취미가 넘친 담시《성 아그네스의 전야》(1820) 《성 마르코 전야》, 민요풍의 《무정한 미인》 등의 역작을 비롯하여 영국문학사상에 주옥같은 일련의 송시가 잇달아 발표되었다.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On a Grecian Urn》 《나이팅게일에게To a Nightingale》(1818) 《가을에 To Autumn》 등, 모두가 영국의 사화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다. 이어 걸작 《하이피리언의 몰락The Fall of Hyperion》을 썼는데, 24세가 되던 1819년은 놀라울 만큼 그의 시가 많이 쏟아져 나오던 해였다. 병고에 시달리면서, 또 연애의 기쁨과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많은 명저를 냈으나, 이듬해에는 건강의 악화로 요양을 위하여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러나 몇 달에 걸친 병상생활도 보람 없이 로마에서 25년 4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끝마쳤다.)키츠의 영원성과 예술성은 "Ode on a Grecian Urn"의 마지막 스텐자에서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책상 위에 한 고대의 항아리를 놓고 그것의 외관에 각인된 문양과 장식을 보며 쓴 시로 고정되어있는 예술은 불멸의 대상으로 인간의 주위에 친구로 남아서 인간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맹목의 인간들을 영원히 고뇌케 하며, 또 이것이 부여하는 다른 고뇌는 예술적 대상에 대한 시대적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비애로 볼 수 있다. 이에 항아리는 말없는 형상으로 초-역사성을 간직한 채 여전이 우리의 주위에 남아 말없는 아름다움이나 진리로 존재하고 이를 통해 어디까지나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라는 영원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O Attic shape! Fair attitude! with bredeOf marble men and maidens overwrought,With forest branches and the trodden weed;Thou, silent form, dost tease us out of thoughtAs doth eternity: Cold Pastoral!When old age shall this generation waste,Thou shalt remain, in midst of other woeThan ours, a friend to man, to whom thou say'st,"Beauty is truth, truth beauty,--that is allYe know on earth, and all ye need to know."그러나 비단, 키츠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 예술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에 빠지도록 하는 힘은 존 키츠만의 매력이 아닐까. 그것은 키츠의 상상력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그는 시인의 정체성과 상상력에 대한 그의 생각을 친구 베일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Negative Capability“ 라는 말에서 내가 뜻하는 바는, 사실과 이성에 따라 추구하려고 안달함에 없이,불확실성, 신비, 의구심에 머루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letters,43)."이처럼 키츠는 어떤 자정을 하는 따위의 행위는 지성을 개발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생각했으며, 가능하면 이런 방해요인을 마음에서 제거하여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마음 비운상태인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가능하고 무심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정관적인 상태에서 대상의 존재와 결부되지 않은 진리로서의 아름다움이 가능하고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진리로 남게 된다. 이러한 키츠의 상상력을 "Ode on a Grecian Urn"에서 찾아보자.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Are sweeter; therefore, ye soft pipes, play on;Not to the sensual ear, but, more endear'd,Pipe to the spirit ditties of no tone:Fair youth, beneath the trees, thou canst not leaveThy song, nor ever can those trees be bare;Bold Lover, never, never canst thou kiss,Though winning near the goal yet, do not grieve;She cannot fade, though thou hast not thy bliss,For ever wilt thou love, and she be fair!위의 부분은 그리스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을 상세히 묘사한 부분이다. 참으로 뛰어난 상상력과 기교로 하여금 나를 황홀의 세계로 빠지게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첫 번째 구절에서 ‘들리는 선율은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는 상반된 표현과 소리 없는 노래라는 모순된 표현은 키츠의 상상력이 무한대에 이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형용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불만이나 절망에 대해 상상적인 해결을 찾은 것이 아닐까?다음에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두 여인을 보고 묘사한 키츠의 놀라운 수사력은 그가 주장하는 영원성의 진리를 한층 강화시킨다. 즉 나무 밑에 그려져 있는 멋진 젊은이가 있는데 이들은 영원히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나무들 역시 푸른 잎으로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왜냐면 그려진 화면은 영원한 것이니까. 따라서 여기서는 또 제한된 시간상의 정물인것 같지만 사실은 무한한 시간에서 생명을 누린다는 역설적인 발상을 보여준다. 정지된 것 즉 고요의 존재가 다시 영원과 연결된다는 실로 놀라운 발상을 보여준다.
I realized that cooperation and partnership with my classmate are very important to be a teacher. I work conscientiously and have a strong sense of responsibility. However, I sometimes have felt that I lack sociability because I have timid and modest personality. So, I have tried to overcome my weakness. I pay special attention to decide everything. When I need to choose a matter, I thinking deeply then decide the best way after due consideration. However, it is one of my big faults. Sometimes, I lost my chance due to think about for a long time. I wish I had more confident personality. I try to believe in always looking on the bright side of things because someone told me that my impression looks cold. Finally, I'd like to describe about my religion. I am a Christian. Every Sunday, I go to the church for glorify Jesus with my family. So, I wish I would like to live in blessing of God, constantly.
1.의미인간 유기체가 출생한 후 사회적으로 인정된 이념, 태도, 행동양식을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교섭을 통하여 학습해 가는 일정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화는 인간의 여러 가지 욕구가 복합적으로 서로 상관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여러 현상과의 접촉을 통하여 문화를 정립하여 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2.사회학 이론사회화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대표적 학자와 그 이론은 Cooley의 영상자아(looking glass self)이론과 Mead의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이론, Freud의 초자아이론 등이다. 영상자아이론은 인간의 자아의식 획득과정을 설명한 것으로서 제스처-언어-상대방의 반응 등을 통하여 자기 행동의 기준을 판단하는 훈련과정을 말한다.일반화된 타자이론은 자아의 성립과정에서 사회집단의 역할취급과정에 역점을 두어 자아의식과 타인의 행동을 상호 비교,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내면화된 행동체계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유희와 운동경기가 역할취득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예를 들면 야구 경기에서 타인의 활동을 관찰하고서 처리, 판단 기준을 수립하여 가는 일종의 행동체계 기준이다. 말하자면 타자의 기대를 일반화한 행동체계를 자기의 것으로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그러므로 처음에 부모에게서 반응하던 자아는 나아가서 가족관계, 교우 집단관계의 태도로 진전되어 결국은 사회일반의 태도와 신념,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Freud의 초자아이론은 자아를 삼분하여 Id(쾌락추구),Ego(실현추구),초자아(규범추구)로 나눈다. Id는 일차적 본능을 추구하고,Ego는 현실 긍정과 안정 그리고 성공을 위해 충동의 연기를 주장하며, 초자아는 Ego에게 규범을 강요하고 감시, 인도, 위협한다. 그리하여 초자아가 자율적 통제 역할인 양심의 세계를 만들어 타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도 자아가 자율적으로 자기행동을 조정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Freud는 사회화란 바로 초자아의 획득과정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 의미사회변동이란 일시적이나 잠정적이 아닌 형식으로 기존집합체의 사회제도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의 역사진로를 수정케 하는 시간계열 내에서 관찰될 수 있는 변화의 전체를 의미한다. 사회변동은 집합적, 구조적 변동이어야 한다. 구조변동은 시간계열 내에서 식별되고, 영구성의 확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변동은 어느 한 가지 원인 만으로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 복합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변동의 원인과 조건은 절대적이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며 상호의존적 관계의 모델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2. 이론( 사회 이론가에 따른 개념 )- Max weber는 이데올로기가 사회변동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M. Spencer, E. Mayo, T. Parsons, R.Kmerton은 사회 변동을 균형적 이론으로 보고 있다.- L.Coser, R.Dahrendorf, John Galtung는 사회 변동을 갈등적 이론으로 본다.- Moor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 변동을 긴장처리의 체계라고 본다. 사회적 긴장은 외적 원인이 체계에 영향을 줌으로써 발생하는 단순한 우발적 산물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사회에 가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닌 사회체계 그 자체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정의 할 수 있다.- Ogburn, MacIver는 사회변동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물질문화와 비물질문화의 부조화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질문화의 성장 속도와 비물질 문화의 성장 속도 간에 부적응이 발생하는 경우를 바로 사회 변동의 촉진제로 보고 있다.( 사회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 자연적 요인이 학설은 사회 변동을 인간의 사회생활의 외적, 자연적, 지리적 조건에 구하는 방법으로써 J. Bodin, Montesquieu, H. T. Buckle, F. Ratzel, F.Leplay 등이 대표자이다 이 학설은 19세기 지리학파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생태학의 접근을 응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학설은 생물학적 학설로서 Spencer를 비롯하여 Alfred Fouillee, Alfred Espinas,Ludwing Gumplowicz, Gustav Ratzenhofer 등이 대표된다.-인구학적 요인이 학설은 Durkheim, A. Coste, C. Gini등의 대표자에 의하여 주장되는 것으로서 인구의 증가나 감소로 인하여 사회가 변동된다는 것이다. Durkheim은 인구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보고 인구 밀도의 성장이론을 주장하였고 C. Gini는 k회를 청, 장, 노년의 삼분설로 주장하였다.-기술적 요인이 이론은 인간의 과학과 기술이 사회변동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것으로서 C. Mumford가 대표된다. 그러나 이 학설은 기술이 문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의 일부분이며, 어디까지나 기술적 요인의 역할도 문화란 배경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문화적 가치이 학설은 사회변동을 사회행위의 형성과 산물로 보고 사상이나 지식이나 종교 등을 그 변동의 요인으로 보는 학설이다. Max Webers는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이며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하는 근면과 노동의 문화적 가치를 중요시 하였다. Max Weber는 사회적 행위의 네 가지 유형을 목적 합리적, 가치 합리적, 정서적, 전통적 행위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여러 행위는 사회변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변증법적 유물론이 이론은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경제이론이며 사회변동이론으로서 생산관계가 발전된 생산력의 질곡이 되며 계급투쟁이 격화되고 그러한 것에 다다르면 사회발전은 양적 변화상태에서 질적 변화의 상태로 전환하고 혁명 후 생산관계가 이루어진다는 학설이다.3.역사근대화과정으로 대표 될 수 있다. 근대화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여러 지표를 향하여 발전하는 미래 지향적 가치개념으로서의 사회변동을 의미한다.1.의미이 이론은 제 2차 세계대전 때에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이론이다. 한마디로 이 이론은 사회현상을 사회적 갈등 자체로 이해했다. 사회적 역할은 집단간,집단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집단 등 무수한 이해관계에서 생성된다. 갈등은 크게 외인적 요인과 갈등의 내적인 요인으로 양분된다. 전자는 현재적 이해에서 발생하고 후자는 잠재적 이해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이익집단, 압력단체에서 후자는 준 집단에서 존재하며 각각 계급갈등과 역할 갈등에서 발생된다. 이와 같은 이해관계와 갈등은 복잡한 사회관계의 구조적 변동을 일으키고 한다.2.갈등의 기능갈등이라는 말 속에는 두 사람이 동의 하지 않은 특정적인 사건에서부터 국가 전체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정한 상황이 내포되어 있다. 갈등은 강도라든가 강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는 냉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갈등이라는 말은 다지 어떤 특정의 행동 패턴만을 지칭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들은 그러한 행위의 원인을 나타내는 말로서도 사용한다. 예를 들면 강간은 분명히 폭력의 한 형태이지만 그것은 갈등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한 표현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 또는 심리적 갈등의 존재를 표현해 주는 하나의 행동을 갈등이라고 인식 한다는것이다. 또한 갈등은 사회생활의 오랜 특징 중의 한 사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후보자들끼리의 정치적인 경쟁이나 선거에 당선되기 위하여 계속되는 경쟁 또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 희귀 자원에 대한 인간 상호간의 경쟁등도 갈등의 한 성격이라 살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남녀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만나고 헤어짐의 빈도가 너무 잦아지고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남녀에 대한인식은 예전과는 다르게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개방적인 생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사회에서 보면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남녀의 사랑의 결정체인 sex에 대한 생각도 너무 가볍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쿨’한 사랑이 횡행하는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 애절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옛날과 지금과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는 연결고리로써 존재하는 것 같다. 권보드레의 “연애시대”는 1920년대 초반을 지배했던 연애의 열기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연애방식을 비교 대조하여 우리시대의 연애와 사랑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그 첫 번째가 연애 안에 내제되어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1920년대에 새롭게 떠오른 유행 “연애”는 개조론의 대중적 변종이었고, 새로운 가치 “행복”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통로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연애에 목숨을 걸었다.책 본문 중 1913년에 발표된 이상협의 “눈물”에 진술된 “좋으면 평생의 행복이 되고 흉하면 생명까지 잃는, 불보다 뜨겁고 물보다 위태한 연애라 하는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로 공감할 수 있던 부분이었다.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사랑의 양면성이라고나 할까?사랑은 극단적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다. 사랑은 믿을 수 없이 달콤한 꿈이자 에이는 듯한 고통이다. 1920년대의 연애에서도 스위트홈에의 동경과 비극에의 매혼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1924년 발생한 ‘독살미인 김정필’ 사건, 1923년 발생한 강명화 자살 사건과 더불어 1926년 8월4일 여류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였던 기우진의 자살은 1920년대 3대 연애사건으로 대표될 수 있다. 이 사건은 3.1 운동이 지난 간 후의 사회적 상황, 세계의 확장과 개인의 발견을 함께 경험한 낭만적 이로니. 연애의 대중적 기호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제기되었다. 즉, 사랑이라는 말로 그들의 죽음을 미화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 원인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자신의 목숨을 사회적 기호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행위자체에 여러 가지 타 요인들이 결합되어 영향을 주었더라도 그 안에는 사랑이라는 죽음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여기서, 지금 현대 사회의 연애하는 커플들 중 죽음과 사랑을 바꿀 수 있는 연인이 몇이나 되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no"라는 절대적 수치가 나올 것이라 예상 한다. 1920년대의 목숨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사랑이 지고지순하고 경탄 적이라 말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외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자신보다 소중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자신의 사랑을 미화시키지만 결정적 순간에 다다라서는 그동안의 사랑이 무색해질 정도가 되어져버리는 현대인들의 사랑. 그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가 따를 수 있을까? 과연 그 사랑이 맹목적 헌신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1920년대의 사랑의 주역들은 신여성과 이를 동경하는 남성들 이였다. 1920년대의 연애의 첫 번째 주역들은 거리의 새로운 주인 여학생들과 기생들이었고, 이후 신여성으로 바뀌어 갔다. 신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갈망은 생각 그 이상의 것이었으며 연애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의 위치는 유행에서 상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앞을 부풀리거나 어슷하게 가르마 탄 서양식 트레머리, 짧은 통치마, 양말에 구두, 그리고 양산에 책보나 핸드백은 신여성의 대표적 특색이었다. 신여성은 결코 지식수준으로 확인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내재적 숙녀가 아닌 보여주기 식의 수단의 숙녀였던 것이다. 이 트렌드는 현대 여성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머리를 길게 늘어 늘어뜨리고 머리띠를 하고 원피스와 구두, 조금한 가방과 한쪽 손에 들고 있는 책, 특정 상표의 소유. 지금 현재 여대생들을 대표한다. 1920년대와 비교하여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여성들의 외모는 말할 것 없이 여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회적, 문화적 언명들이 너무나 많이 자리 매겨져있다. 사회적 요구가 이러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돈을 투자한다. 물론 그렇지 않는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은연중에 자신의 몸을 상품화 하고 사회도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1920년대의 여대생과 지금 현대 여성의 여대생차이에 문화적 코드가 비슷하게 묶여 있다고 생각된다.1920년대 신여성이 주를 이르면서 그 이전에 사회적 유행의 핵심이었던 기생은 자연스레 밀려나게 되었으나 이들은 끊임없이 여대생을 모방하려 하였다. 이 부분 역시 지금 현대 사회와 비교하여 너무나 비슷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현대 사회 안에서 대학생이 아니거나 혹은 지적습득 능력이 낮은 저교육의 여성들은 그 안에서의 배움이라는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나이트나 술집에서 남자들을 만날 때 학력을 속이며 대학생인척을 하며 대학생들의 트렌드를 따라한다. 단지 그들의 외모에 있어서의 유행공유라는 코드에 초점을 맞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는 점이 문제시된다. 즉,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만 하고 그러한 남자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 남성의 기호에 맞추어져야만 하는 여성들에게 은연중에 부여된 요구라 볼 수 있다.그렇다면, 이들 신여성과 그들을 사랑하는 남성들 사이에 연애 방식은 어떠하였는가. 영육일치라는 표어를 내걸게 될 정도로 육체를 염두에 두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육체적 사랑은 스위트홈에 대한 기대 동시에 결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육체적 사랑은 사회의 비난과 함께 비극적 사랑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1920년대에 끊임없는 논쟁과 비판의 대상은 여성의 정조였다. 남녀 각각에 대해 정조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는 일종의 시금석처럼 작용하였다. 대부분의 논지들이 이중적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정조는 여자에게 중요한 문제로 정의 내렸다. 여자의 무절제는 어떻게든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를 지배했던 인식이었다. 1920년 발간한 “성욕에 관하여 청년 남녀에게 답하는 책”을 통해 “불순혈설” 과 ‘성교 반응설’을 주장하였는데 남성과의 성교자체가 여성의 혈액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며 성교반응성을 정당화 하였다. 이광수를 비롯한 대중소설들의 한결같은 이러한 메시지에 의해 자연스레 그러한 인식은 자리 잡게 된 것이다.이러한 인식들은 점차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성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문화 개방으로 인한 문화의 흐름을 타고 개방된 생각과 성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성문화를 이끌어 가는 주체들은 가부장적 전통과 서구의 개방적인 성문화가 혼합, 충돌하면서 성가치관에 혼란이 일고 성의식에 갈등이 빚어지는 아노미 상태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책에 나타난 1920년대의 사회적 상황과 사랑의 종착지점인 남녀의 육체적사랑에 있어서의 문제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우리의 성문화 내지 성관행이 갖게 되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이중성 내지 위선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적인 성문화와 실제적인 성관행의 이중성, 남성에게 요구되는 기준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기준의 이원성, 자기 여자와 낮선 여자에 대한 태도의 이중성,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성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이중성 내지 위선성이 합리적 논의를 통해 통합, 정리되고 청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지속되고 방치되는 가운데 우리의 성문화의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