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읽기]스스로 자초한 신문의 위기! 환골탈태의 기회 삼아야...흔히들 요즘 신문의 위기가 도래하였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 세태를 반영하듯 제58차 세계신문협회 서울총회가 개최된 한주동안 중앙일보는 지면을 크게 할애하고 협회 논의사항 등을 연속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신문협회 논의 내용과 신문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독자들이 궁금해 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큰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제 아무리 메이저신문이라 한들 독자들이 점점 신문을 외면하고 인터넷 매체로 이동하는데 위기감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신문협회에서 논의된 현재 신문의 위기와 향후 나아갈 방향에 관해 연일 큰 비중으로 보도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이 또한 어찌보면 자신들의 위기상을 반영하는데 불과하며, 이런 위기의식에 독자들이 동조해 그들의 설득대로 다시 돌아올리는 만무하다. 한마디로, 신문의 위기 또한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백마디 말보다, 계몽보다도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신문 내용의 혁신을 시도하고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앞으로 신문은 점점 도태할 것이며, 대안매체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 것이다.그러나 지금 중앙일보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환골탈태와는 거리가 멀다. 홍석현 주미대사의 위장전입 여부가 드러나 따가운 국민여론의 비난을 받을 때 중앙일보에는 이에 관한 소식은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았으며, 얼마 전 황우석 박사 사이언스지 논문 게재 엠바고 파기 논란 당시에도 문제의 장본인인 홍혜걸 기자의 사과문조차 게시되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엠바고 파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지지 않았으며,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그 다음날 2면에 짧게 엠바고 파기는 고의가 아니었으며 어찌됐든 송구스럽다는 사과문이 짤막하게 게재되었다. 이처럼 중앙일보는 자사관련 문제에는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신문이 어떻게 권력을 비판하고 독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뿐만 아니라 중앙일보는 철저히 자사의 논조에 적합한 칼럼만을 골라내어 싣고 있는데, 실제로 맨 마지막 페이지에 위치한 사설 및 오피니언 란에는 항상 사설 논조와 부합하는 동일한 논조의 칼럼이 게재되곤 한다. 물론 신문으로서 자신들의 논조를 토대로 사설을 쓰고 이에 따라 칼럼을 게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서 문제다. 하나같이 그 논조에 반하는 새로운 시각의 칼럼은 단 한 편도 없고 모든 기사와 칼럼이 신문사 논조와 일치하니, 수구보수니 조.중.동 권력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논조의 일관성은 유지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되, 제발 새롭고 다양한 시각의 기사와 칼럼 좀 실어라! 그래야 젊은 독자들을 잡을 수 있다.또한 너무 정치적 비중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만으로 지면을 도배하지 말아라!이번 한주간 중앙일보는 온통 행담도 게이트로만 지면의 2~3페이지를 장식했고,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이 터졌을 때 또한 그러했다. 무슨 의혹 하나가 터질 때마다 이걸로 몇 주간은 우려먹고 여야가 피터지게 싸움 하는걸 그대로 보도하니 독자들이 식상해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정치판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나 의혹은 면밀히 파헤쳐 다루어져야 하지만 별 잡다한 시시콜콜한 맥락까지 그대로 옮겨놓아 정치판 싸움에 끼어들게 하지 말라는 소리다.
1. 서론폭력(暴力)이라 함은 난폭한 힘, 완력이란 뜻으로 정당하지 못한 구타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폭력은 현대 사회에서 각종 범죄가 만연함에 따라 사회 도처에 퍼져있고, 인간의 생활상이 밀접하게 반영되는 문학에서도 이는 예외일 수 없다. 특히 현대 문학일수록 인간사에서 폭력이 지닌 의미를 일그러진 사회상으로 반영하여 비판하고 있는데, 나는 이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따라서 각각의 작품속에서 폭력 이라는 모티브가 어떻게 이용되는가, 그 형태는 어떠한가,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 볼 것이다. 폭력 이란 테마가 과거의 작품들에서는 그다지 적나라하게 다뤄지지 않았으므로 주로 현대 문학 작품(소설, 시)에서 다뤄지고 있는 면에 주목할 것이며, 단순히 폭력 그 자체보다는 사회에서 그것이 자행되는 이유와 문학이 폭력 을 모티브로 사용하게 된 경위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2. 본론(작품감상과 분석)1)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줄거리]자신만만한 합리주의자인 나(한병태)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엄석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자유당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때, 공무원인 아버지가 된서리를 맞게 되어 나는 서울 명문 국민학교에서 볼품없는 시골 국민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다.반장이요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엄석대와 나는, 첫날부터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 그는 일년동안 거의 아무에게도 저항받지 않고 학급을 지배해왔으며, 주먹 싸움, 성적 등에서도 남보다 월등하여 학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것이 생리에 맞지 않은 나는 그에게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나에게 돌아온 몫은 '불량한 아이'와 '외톨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엄석대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그의 보호를 받아 편안하게 지낸다.그러나 새학년이 되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으로 바뀌게 되자, 보다 절대적이고 철저한 교육방식에 의해 엄석대의 굳건한 성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자신의 시험지를 우등생들로 하여금 작성하게 한 조작 사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위해 시험과 경쟁 속에서 지내던 나는 그에 관한 기억들을 묻어버리고 만다. 그 후 나는 대기업을 떠나 대리점 경영을 하다가 망해서 실업자로 전락했을 때 석대가 이루었던 그 질서로 다스려지는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졌음을 느낀다. 우연히 본 엄석대의 모습, 수갑에 채워지는 그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 영웅 같았던 모습이 아닌, 바로 그에게 복종하고 무력했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로 소설은 끝난다.[이해와 감상]이 작품은 1987년 6월 [세계의 문학] 44호에 발표되어 제1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중편소설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불합리한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인간들의 삶을 비판적인 각도에서 성찰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한국 정치사의 판도를 교실 공간을 통해 우의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해에 어려움이 없고, 얼마간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시대적 배경은 자유당 정권의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말기에서부터 4.19를 거치는 시기가 주를 이루며, 세월을 건너 1980년대 중반의 새로운 독재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무서운 독재와 그 독재의 아성이 무너지는 시점, 그리고 성인이 되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의 세 배경이 상호 교섭되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를 관통하는 시점을 보이고 있다.작품 속에서 폭력의 형태는 크게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엄석대가 반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 폭력 이라는 형태를 사용하여 아이들을 지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담임선생님이 엄석대의 독재를 깨뜨리기 위해 아이들의 자백을 받아 엄석대에게 심한 매질을 하는 그것이다. 우선 앞서 엄석대가 사용한 폭력은 아이들을 힘으로 억누르는 수단이자 자신을 지켜나가는 방패이다. 그는 힘과 폭력으로 아이들에게 군림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게 해 주었다. 문학속에서 엄석대가 행한 이 폭력은 부패한 사회내에서 통용되는 비합리적이고 묵시적인 강한 힘을 상징한 폭려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팽배해있다. 정당한 방법으로는 지배할 수 없는 현실, 부조리와 강한 힘을 통해서만 약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그릇된 사회구조를 문학 속에서는 폭력 이란 모티브를 통해 나타낸 것이다. 또한 선생님이 엄석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석대에게 가했던 매질(폭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그것이 약한 아이들을 억누르는 석대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공공연히 모여있는 교실 안에서 석대를 폭력으로 무너뜨린 결과 선생님 역시 사회적 강자의 기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문학속에서 선생님의 폭력은 또다른 제 2의 세력(더욱 강한 사회적 힘)을 나타내며 결국은 서로 짓밟히지 않기 위해 밟고 밟히는 숨막히는 전투를 의미한다. 즉, 이 소설속에서 폭력의 행태는 강자가 약자를 밟고 우위에 오르기 위한 수단이며, 그것이 지닌 의미는 강한 힘(폭력)만이 사회적 위상을 장악할수 있다는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대변한다고 하겠다.2) 죄와 벌- 김수영 시남에게 희생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그러나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우리들의 옆에서는어린놈이 울었고비오는 거리에는사십명 가량의 취객들이모여들었고집에 돌아와서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__아니 그보다도 먼저아까운 것이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이 작품에서는 폭력의 형태가 비굴하고 나약하기 짝이없는 존재인 나 가 사람들 많은 거리에서 지우산으로 자신의 아내를 폭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이 작품속에서 폭력은 나약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별볼일 없는 인간이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분풀이를 하는 수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화자는 이런 분풀이성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사회적 냉대와 무능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주체를 여자로 삼고 있어 과연 여자는 모든 사회적 지위내에서 약자일 수 밖에 없는가, 여자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폭력이 지정적인 산물이다.3) 광장- 최인훈이 작품의 주인공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가기 위해 선박 타고르 호를 타고있다. 그때 마스터에 날아든 두 마리 갈매기로 인해 잠시 놓아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찾게 된다. 이명준은 해방 후 만 주에서 귀국하였다. 아버지는 거물급 남로당원으로 8·15 직후에 월북했고, 어머니는 그 후 얼마 안돼서 죽었다. 명준은 영미의 부친인,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기숙하면서 경제적 고통 없이 철학과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북에 있는 아버지가 대남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윤애와의 애정을 통해서 현실과 관념의 세계를 초극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명준이 원하는 삶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 가면서 살 수 있는 삶이다. 하지만 남한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는 그가 추구하는 자유가 아닌 타락한 자유라 생각하고 월북을 감행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삶은 남한에서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명준은, 자유 를 추구하긴 하였지만 남한의 자유란 타락할 수 있는 자유 라 생각하여 월북을 하게 된다. 사회개조의 역사 속에 새로운 삶의 보람을 걸고서 월북 직후의 나날을 보내지만, 명준은 곧 깨닫게 된다. 북한의 평등 은 다같이 노예가 되는 평등일 뿐이라고……. 순회강연에 동원되어 돌아다니면서 북쪽의 모든 것이 허구이며,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붉은 심장의 광장이 아니라 잿빛 공화국이었다. 명준은 자신이 선전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을 깨닫고 호랑이 굴에 스스로 들어온 것을 저주하게 된다. 명준의 아버지는 순박한 한국적인 처녀와 재혼하고 있었다. 가정 분위기는 혁명가의 그것이 아니었으며, 구역질이 나는 부르주아 집안의 분위기였다. 북한사회에서 느꼈던 메스꺼움 때문에 아버지와 심한 충돌을 빚고, 명준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그곳의 생활 방식, 즉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북한에서 사랑했던 여인, 은혜는 6·25전쟁에서 잃게 되고, 포로가 된중립국을 택해 인도로 가는 타고르호에 승선하게 된다.하지만 그것조차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배의 출발 시부터 따라 오던 두 마리의 흰 갈매기가 고국에 두고 온 은혜와 그 뱃속의 아이를 연상시킨다. 더렵혀진 그 땅에 그녀들만 묻어 놓고 떠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명준은 그녀들에게 정직하기 위하여 투신자살한다.이 작품속에서 폭력이 나타난 첫 번째 형태는 이명준의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준이 남한 수사관들에 의해 고문들 당하는 것이다. 수사관은 일제시대 특고 형사로써 수많은 애국지사를 고문, 취조한자였는데도 광복 후에 아무런 반성이나 응분의 처벌 없이 사상범을 취조, 고문하는, 도덕적으로 가장 저열한 인물로 나타남을 작가는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명준의 고독, 불안, 공포, 소외의식이 극심하게 되고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윤애와의 사랑이 이루어 졌으며 이명준은 영웅적 삶이 불가능한 시대이고 개인의 자율적 삶이 보장되지 않는 관료적 공포정치 하에서는 절망과 불안만이 있을 뿐임을 인식한다. 이명준은 개인의 행복과 정치제도 사이의 극심한 갈등 양상을 밀실과 광장의 대립 양상에서 깨닫고 월북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폭력이 지닌 의미는 부패한 남한의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상층에서 행해지는 그릇된 권력 형태로서의 표상이다.또한 두 번째 형태의 폭력은 명준이 월북한 후 북한에서 공작원으로 활동할 때 태식에게 행했던 잔인한 폭행이다. 그는 과거 태식과 막역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의 그릇된 이데올로기에 의한 피해와 북한 사회에서의 실망감 때문에 악에 받쳐서 폭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런 현태의 폭력은 개인이 개인에게 행한 단순한 분풀이라기 보다는 사회에 의해 짓밟히고 매장된 개인이 다른 사회(북한)에 와서도 겪는 환멸을 분출하는 수단이라고 생각된다.4)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주주의여
19C말부터 20C초에 걸쳐 제국주의 시대가 전개되었으며, 이 시기에 제국주의 열강들은 후진 지역이나 약소 국가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침략을 자행하였다. 이런 세계사적 흐름속에서 한국도 세계자본주의 체제로의 개편을 강요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서 한국 근대의 기본 성격을 파악할 때 반봉건과 반제국주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역사에서 근대의 시점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는데, 한국의 근대 시점 문제에는 6가지 정도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째는 조선 후기라는 견해이고, 둘째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후 문호를 개방한 때라는 견해이다. 또 셋째는 1884년 갑신정변이라는 견해, 넷째는 1894년 갑오개혁, 다섯째는 1910년 한일합방 후, 여섯째는 미완성이라는 견해이다. 나는 1894년 갑오개혁이라는 견해에 동조하여 지금부터 갑오개혁에 대한 시각, 내용과 성과, 의의를 통해 그 이유를 뒷받침할 것이다. 또한 나머지 다섯 가지의 견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나의 주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I. 나의 견해-'갑오개혁'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1. 갑오개혁에 대한 시각.긍정적 시각: 일본의 강요가 있기 전에 이미 갑신정변이나 동학 농민 운동에 의해 개혁 운동이 일어났고, 갑오개혁이 사실상 조선의 개화파 관료들에 의하여 추진되었으며, 개혁의 결과도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일대 개혁이었다는 점에서 개혁의 자율성이 인정되고, 개혁의 방안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부정적 시각: 일본의 강요에 의해 착수되었고, 그 결과도 일본의 조선 침략을 용이하게 하려는 체제 개편에 불과했다고 하는 개혁의 타율성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위 글을 통해 갑오개혁을 평가하는 시각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공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갑오개혁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는 결코 부정적 측면을 간과하거나 일제의 강요에 의한 점을 묵인해서가 아니 처족]의 명분과 의리를 명백히한다.3. 대원군은 정전에 나와서 정사를 보고, 국정은 각 대신과 친히 논의하여 재결하며, 후빈종척이 간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4. 왕사사무와 국정사무는 반드시 분리하여 서로 혼합되는 것을 금한다.5.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권한을 명백하게 제정한다.6. 인민의 조세는 모두 법령이 정한 율에 따르며, 망령되이 명목을 더하여 함부로 징수하는 것을 금한다7. 조세의 부과징수와 경비의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에서 관할한다.=>경제면8. 왕실 비용을 솔선하여 절감하고 이로써 각 아문 및 지방관의 모범을 삼는다.9. 왕실비 및 관부 비용은 연간 예산을 작성하여 재정 기초를 확립한다.10. 지방관제를 시급히 개정하여 이로써 지방관리의 직권을 한정한다. =>정치면11. 나라 안의 총명한 자제를 널리 외국에 파견하여 학술과 기예를 전습하게 한다.12. 장관을 교육하고 징병법을 실시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립한다.13. 민법과 형법을 엄명하게 재정하여 함부로 감금 또는 징벌하는 것을 금하며 이로써 인민의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14. 인물을 쓰는데 문벌 및 지벌에 구애되지 말고, 선비를 구하는데 조야에 골고루 미치게하여이로써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정치면==>>이상 홍범 14조에 나타난 갑오개혁의 내용과 성과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2-1. 대외 관계: 反淸反事大와 자주 독립의 추구갑오개혁의 시작과 끝이 조선의 지배 세력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협박에의한 요소가 많이 있었으므로 갑오개혁의 과정에 있어서 대외관계의 자주성과 자율성에는 분명히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청국 연호의 폐지, 조청간에 맺은 각종 불평등 조약의 폐기와 '일본이 조선의자주독립을 도와준다는 것을 깨우쳐 줄 것'을 강조하였을 정도로 조선 정부는 반청. 친일적이었다.실제, 개혁파 정권이 일본의 군사력과 차관에 의존해서 개혁을 추구하였고, 정부는 각 부서에 일본고문관을 두는 상황 속에서는 조선국가의 자율성은 상대적으로 약하였다. 그러나 가장 친일적인 당하고 있었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상당히 합의적이었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조 후기에 와서 당파적 권력체제와 군주와 관료간의 합의체가 무너졌으며 외척의 세도정치하에 궁중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개혁파들은 이러한 그릇된 관행을 타파하고, 특히 민비의 정치적 간여를 배제하기 위하여 궁내부와 정부를 분리시키고 입헌군주제를 확립하려 하였다.1895년 3월 25일에 반포된 '내각관제'에 의하면 "내각은 국무대신으로 구성하는데 국무대신은 대군주 폐하를 보좌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책임이 있었다. 특히 내각 총리는 각 대신의 수반으로 내각회의를 주재하며 내각회의에서는 법률과 칙령안, 세입세출의 예산과 결산, 국채문제, 국제조약과 국제 문제, 중요 관료의 임명, 예산 외의 지출, 규정개폐 등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었다."개혁파는 구제도하에 있었던 언론삼사를 폐지하여 내각의 독재도 가능하도록 내각에 권력을 집중시켰다. 실로 언론삼사는 조선왕조 5백년간 지속된 왕권과 관료 정치의 독주를 견제한 지배 권력내의 내정규제 장치이었다. 갑오개혁안을 마련했던 군국기무처에서 법안으로 정부를 견제할 의회를 만들 것을 어윤중이 발의해서 의결했으나 그 10일 후에 보류되고 말았다. 개혁 세력들은 체제나 정부에 대한 비판 기구보다는 개혁 초기의 반개혁. 반일 세력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을 내각에 집중시켰으며, 그 권력 장치로서 경무청을 신설하고 이를 통해 민생 치안보다는 정치 사찰 기능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관중사와 정치사의 분리와 강력한 내각 중심제를 정착시키려는 개혁 세력에 대한 민비의 집요한 저항과 견제 세력 때문에 일본 공사관측에 의해 민비 살해라는 극악의 방법이 강구되지 않았는가 하는 해석도 있다.2-3. 경제 개혁: 재정 안정을 위한 세제 개혁과 차관 도입개혁 정권은 삼정에 대한 근원적인 개혁, 예컨대 경자 유전의 원칙에 의한 토지개혁과 같은 조치는 취하지 않았고 기득권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우선 국가 재정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으로부터 해 근대적인 예산 제도를 1895년부터 도입하였다. 갑오개혁 정권은 국민경제나 국가경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나 계획을 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초기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가계부 운영식의 소시민 경제를 지향하였다. 이런 경제 상황은 일본의 상업 자본주의의 침투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2-4. 신분 제도의 개혁: 개혁의 실상과 한계조선 왕조는 명백한 신분사회였다. 양반은 지배층으로 그리고 중인은 중앙과 지방의 행정부서에 세습직으로 복무한 준 지배층으로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인 상민간의 공적인 연결고리로서 사회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천인은 양반사가나 관아에 부속된 노예적 신분이었다.이런 신분상의 엄격한 차별적 구도가 조선왕조 후기부터는 양반 가가 격증하고 또 양반의 첩제도의 공인으로 서자 인구가 격증하고 그에 대한 사회 문제가 야기되었다. 여기에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서구 종교와 그 문화충격, 그리고 밑으로부터는 융기하는 민중의 각성과 갑오 농민 운동 등은 신분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격동하는 신분사회의 구도속에서 가장 가치박탈감이 심한 계층은 양반가의서자들과 중인계층이었다. 이들 서자, 중인 출신이 갑오개혁 세력들의 실세들이었기에 그들은 신분제도와 양반세력가인 문벌의 타파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 내용은 군국기무처에서 의결된 "문벌과 반상의 차별을 없애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할 것", "공사간의 노비문서를 없앨 것"등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조혼을 금하고 과부의 재혼의 자유를 의결하였다. 그러나 노비혁파안이 발표되어 노비의 상전에 대한 행패가 심해지자 개혁정권은 양반가 노비들의 행패를 금하고 노비의 호를 상전의 호에 붙이지 말고 분호할 것을 주장하며 노비 해방문제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그러나 이들이 주장한 신분타파는 선언적 의미가 강했으며 양반 유생들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또 서얼의 지위향상을 위해서 군국기무처가 결의한 "정실이나 첩의 아들이 없을 때 양자를 들이는 것을 허락한다화학, 외국어 교육으로 전환했다. 초대 학부대신 박정양은 서울 지역에사범학교, 외국어 학교, 소학교를 세우고 지방의 22곳에 소학교 개설을 계획했으며 군국기무처의 의안이나 홍범14조의 제 11조에서 청소년의 해외 유학 정책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1895년에는 200명의 국비유학생을 일본에 보냈고 배재학당에 200명의 관비장학생을 위탁 교육 시켰으며 애국심과 부강의 방법이학문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갑오개혁정권에 의한 근대적인 학제와 서구의 근대적인인간과 전문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특히 개혁 정부는 실용주의적이고 전문성 있는 교육을 중시했으며국문과 국사교육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교육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주요공문과 관보는 국한문 혼용 혹은 순한글식 문장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런 교육제도의 혁명적인 개혁과 아울러 관리의 층원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구체제는 이조와 병조가 각기 문과와 무과 과거를 주관하였는데 개혁정권은 판사관이하는 각 소관아문에서 직무와 그 전문성을 고려해서 자체 시험에 의해서 선발하도록 화였다. 다만 칙시관과 주사관은 내각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였다., 갑오개혁 이전의 구체제하에서와 같이 초시를 실시하여 일종의 관료 예비 집단을 만들지 않았다.3. 갑오개혁의 의의갑오개혁은 19C이래로 조선 봉건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내재적 개혁의 흐름이면서도 청일 전쟁의 결과 동아시아에 형성된 일본 중심의 근대적 제국주의 질서 속에 조선이 편입된 과정을 법제화한 양면성을 띤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개혁정권이 주도한 개혁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정치면에서는 개국 연호의 사용, 왕실과 정부의 사무 분리, 과거 제도 페지, 신분의 구별 없이 인재 등용, 사법권을 행정권에서 분리, 지방관의 권한 대폭 축소하였다.경제면에서는 재정에 관한 모든 사무를 탁지부가 관장하도록 하여 재정을 일원화, 왕실과 정부의 재정 분리, 은본위 화폐 제도 채택, 조세의 금납화 시행, 도량형을 통일 개정하였다.사회면에서는 신분제를 철폐, 공이다.
매매(賣買)춘에 대하여1)매매춘(매춘)에 대한 용어우리 사회에서 매춘은 일반적으로 오입, 윤락, 매음, 매매춘, 매매음 등의 용어로 불린다.이러한 용어와 규정에는 매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어디에 두는가, 누구의 눈으로 다양한 매춘의 현실을 보는가 등의 관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매춘 문제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대안을 모색할 때 용어 사용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우리가 기존의 용어들을 검토하고 새로운 관점을 담을 수 있는 용어를 선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게 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실천력을 갖게 된다.먼저 이제까지 주로 사용되어 온 용어들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윤락이니, 매춘이니 매음 등은 '성을 파는 행위'만을 규정하는 용어들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들에서 '성을 사는 행위'는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성을 파는 행위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고 도덕적인 비난을 돌린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윤락'이란 '스스로 타락하여 몸을 버린다'는 의미를 갖는데, 이런 무시무시한 낙인은 성을 파는 사람에게만 찍힌다. 우리 사회에서 법이 정하는 윤락 행위자, 즉 스스로 타락하여 몸을 버리는 자는 성을 파는 사람이며, 손님은 윤락행위자가 아닌 그저 '상대방'일 뿐이다. 대부분의 매춘부가 여성임을 감안할 때 윤락이란 결국 여성에게 부과되는 용어이며 상대가 되는 자는 도덕적 면죄부를 받는 셈이다. 이는 성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임을 헤아려 볼 때 이중 규범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이렇듯 윤락, 매춘, 매음 등의 용어는 매춘의 문제를 '파는 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성을 파는 행위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함축하고 있는데, 실제 매춘은 성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성을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페미니스트나 매춘 여성을 위해 일하는 현장 활동가들은 매춘이 '팔고 사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창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공창 대우를 받고 있는 곳은 많다. 부산의 완월동, 대구의 자갈마당, 인천의 옐로우하우스 등등.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그러나 이런 행정구역상의 이름보다는 미아리 텍사스로 널리 알려진 곳. 천호동 423번지와 함께 술고 쇼가 곁들여져 매매춘이 이루어진다. 미아리는 1백10여 업소가, 천호동은 1백30여 업소가 영업을 한다. 한집에 여자가 많으면 10~20명, 평균은 6~7명 (한겨레 21, 1994.4.7)'이상과 같은 매춘의 유형과 실태를 종합해 볼 때 우리사회의 매춘은 이미 산업형 매춘의 과잉공급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매춘과 성적 서비스의 대규모 공급체계 아래서도 우리사회엔 여전히 인신매매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런한 사실은 대규모 성적 서비스공급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 는 매춘에 대한 초과 수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현재 전국적으로 415,000여개의 향락업소가 있다. 이들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이 수는 대략 658,000여명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들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대략 658,000여명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또 90년 말 현재 전국적으로 40여만개의 식품공중접객업소 중에 절반에 가까운 17만 1천여개의 업소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수치는 가임여성(15~45세)13명당 1명이 매춘부라는 의미이며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향락과 퇴폐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향락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으며 그 유형도 다양하다고 하겠다.이같은 사실은 공식등록된 전국의 유흥접객업소의 수가 83년 27만7천여개이던 것이 90년말에는 41만 5천여개로 늘어나 이기간에 약 1.5배나 증가 되었다는 점을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음성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무허가 변태업소까지 합치면 실제 유흥접객업소는 1백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매춘에 잠정적으로 노출되어 있거나 종사하는 여성인구는 100만명을 훨씬 선회할 것이라그 장면들은 서술하기조차 역겨울 정도로 내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에 편승하여 가끔 연예인을 포함한 군 위문공연단이 펼치는 쇼는 거의가 여자를 소재로 한 음담패설과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몸짓의 스트립쇼 등이다. 군대에서는 휴가때면 콘돔을 의무적으로 지급해 준다. 휴가를 나오면 사회는 전혀 달라보인다.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의 밤거리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음흉한 환락의 도시처럼 보인다. 특히나 치마를 두른 모든 여자들이 다 예뻐보인다. 또 미끈하고 하얀 다리가 보이는 짧은 스커트에 가슴 윤곽이 거의 드러나 보이는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걷는 남자를 볼 때면, 왈칵 울화가 치솟는다..........이런 역거움을 술로 달래면서 우리가 그 동안 억제해 왔던 욕구를 풀 겸, 알코올의 힘을 빌려 미아리 등 사창가로 향한다. 군대에서 지급해 준 콘돔을 사용하여 비디오에서 익힌 사랑의 기술(?)을 현장 실습한다" (오장교, ,제 8집,1991)내가 만난 한 남자도 입대를 며칠 앞두고 친구들이 걷어준 돈으로 미아리에 간 적이 있다. 그는 '이제 그 지겨운 군대 생활을 할 생각을 하면 앞길이 막막하기만 한데, 아직 이 사회에 있을 때 실컷 해보고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쉽게 응했다. 그러고 나서 군대에 들어가면 뭐든지 성적인 것과 연관되었다. 그는 "그 지겨운 보초 시간을 떼우려면 여자 생각 없이는 곤란하다. 이런 생각을 밤낮없이 하다가 휴가를 나오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여자랑 그것을 하는 일이다"라고 말한다.군바리 특유의 '개기기'를 발휘하려는 듯 군인들은 사회에 나오면 더 거칠어진다. 여자를 사는것에 대해서 여느 때보다 더 낯두꺼워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가닥 위로를 받는다. 여자와 자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 되어버린 남자들만의 군대 문화. 어떻게 여자를 사는 것이 위안이 된단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매춘여성은 '종군위안부'다. 일제가 아닌 우리 남자들을 위한 위안부다. 뭐가 다르겠는가.이처럼 남자들의 성경험은 무엇보다도 군대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여자와의 접촉이 단절된 들이 말려서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그놈이 경찰을 불러서 나는 도망쳤어요. 어떻게 해! 잡히면 나만 손해보고 경찰한테 돈만 뜯길텐데...재수없게 수용소라도 가게 되면 인생 끝인데...."오직 매춘여성만을 처벌하는 우리 사회에서 매춘여성은 언제나 불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관행은 변하지 않는 거대한 법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처럼 매춘만을 처벌하는 우리 사회의 매매춘 법은 1961년에 제정한 '윤락 행위 등 방지법'과 '관관사업진흥법'이 있다. 이 두가지 법은 사회, 문화의 변화와 함께 현재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매매춘 현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시정되지 않은 채 성문화되어 있다. 현재 상황에 비추어 많은 한계를 지닌 이 법은 여성, 법조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법의 문제는 먼저 매매춘의 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보지 않고 여성 개인의 도덕적 일탈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법은 매매춘 행위를 윤락 행위로 규정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 윤락 행위의 주역은 매춘여성들뿐이다. 이처럼 편견에 가득 찬 법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성 규범을 그대로 지닌 채 바뀔 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법의 규정은 그 실행과정에서도 문제를 드러낸다. 일례로 관광진흥정책의 하나로 성행하고 있는 관광기생에게는 사실상 '접객원 증면서'가 발부된다. 심지어 이들은 사회 저명인사나 교수를 초빙해서 정식으로 '소양교욱'을 받기도 한다. 분명 법적으로는 매매춘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일부는 '공식적인 매춘여성'으로 인정받는다.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당시 우리나라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관식이 한 망발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한국 여성은 경제 건설을 위해서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기생, 호스테스가 대거 일본에 진출해서 몸을 바치며 밤낮으로 분투하는 애국충정은 훌륭한 것이다."정부의 매매춘 지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회되었을 때도 드러났다. 1986년 10월 중앙일보는 "미국서 발행되는 지에는로 정당화한다. 곧 매매춘의 존재를 '필요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매춘여성은 매매춘을 발생시키는 문제집단으로 단속과 처벌의 대상으로 파악한다.이처럼 법은 그 실행과정에서도 일관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매춘여성만을 지목하는 법규정으로 인해서 매춘여성은 언제나 불리하다. 법이 남성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행위에서도 여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법은 언제나 남자들 편이고 매춘여성은 당한다. 이처럼 불합리한 법 규정은 그 법을 만드는 남자들에 의해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런 법과 정책속에서 매매춘 문제의 해결을 도무지 기대할 수 없다. 깨져도 한참 깨져야 할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관념들, 그 실체만 확인할 뿐이다.법은 그 사회가 어떤 구조냐에 따라서 그 모습과 성격이 결정된다. 만약 그 사회 계급간의 관계가 불평등하면 법은 그것을 표면화하게 된다. 따라서 한 개인의 법적 지위는 그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 법은 누가 그 사회를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매매춘 관련법과 정책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관행, 여자에 대한 통제 뿐이다. 한마디로 남녀차별적이고 여성을 천시하는 비합리적인 사회 구조를 발견한다.매춘 여성에 대한 법, 정책적인 규정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화한 성차별 문제의 하나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매매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들과 법조계 인사들의 더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인식 전환, 즉 남성 중심적인 시각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화대를 챙기고 자신들의 성적 배출구를 찾는 상습적 매춘남성들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러나 매춘은 없다'에서 발췌..하은경 저)4) 매춘여성의 의식에 대한 통계 조사- 매춘여성의 의식 -이같은 매춘의 양적 증대와 질적 다양화로 질적 다양화로 매춘에 참여하는 여성의 의식과 특성도 달라지고 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매춘여성은 대개 미혼의 20대 여성(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