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rning edition of the newspaper is delivered with inserted leaflets. Advertising occupies more than half of the magazine. A lot of CM song is broadcasted on the radio. A variety of advertising overflows on the television. We can see advertising while we walk the street and surf in the internet. We are surrounded by the advertising.I am interested in advertising in the field of the mass communication because we undergo various influences of the advertising.
Cloning organism advances with scientific technology. If cloning organism is used as a way to produce good breeds to solve a food shortage, it will be a help to mankind. And if the internal organs are produced through cloning, it will be useful for mankind. But human cloning is different from the others because it is fraught with risk. It is foolhardy to pursue experiments in humans. And there are many ethical problems in cloning. Nevertheless, since Dolly the cloned sheep made her public debut in 1997, human cloning has been more a question of "when" than of "if".
Broadcasting has the great power in modern society. A lot of entertainers, athletes, assemblymen, doctors, lecturers, and mediocrities become celebrities after they appear in the broadcasting. Who had known Park Se-Ri or Park Chan-Ho before the broadcasting refer to them? They could win popularity through the broadcasting. And broadcasted things become objects of envy. Especially, entertainers' accessories, clothes, and hairstyle often come into fashion. Besides, Lin-Da, Kim's sunglasses and Sin Chang-Won's T-shirt sold like hot cake.
< 목 차 >Ⅰ. 들어가는 말1Ⅱ. 전지구화에 관한 논의2(1) 부정적 입장 : 문화의 동질화2(2) 긍정적 입장 : 차이의 전지구화4Ⅲ. 영화산업의 전지구화: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를 중심으로5(1) 신자유주의 전지구화 시대5(2) 헐리우드 영화사들의 전략61 인수·합병을 통한 다국적 복합기업62 미디어 창구 다각화와 관련 산업의 발달73 블록버스터의 제작84 마케팅 전략105 배급영역에의 집중11Ⅳ. 한국의 영화산업11(1) 시장개방 이전부터 전지구화의 충격까지: ∼90년대 후반12(2) 문화산업론의 대두부터 스크린쿼터 논의까지: 90년대 후반∼14(3) 영화산업 현황171 제작부문172 배급부문193 상영부문204 마케팅부문225 흥행부문226 수익성부문257 수출부문25Ⅴ. 한국영화의 발전 전략26(1) 해외시장개척26(2) 창구효과의 극대화28(3) 우수인력 확보29(4) 기타29Ⅵ. 나오는 말30참고문헌32< 표 목 차 > 메이저 스튜디오의 평균 제작비용 및 마케팅 비용9 역대 박스 오피스 베스트 2010 연도별 한국·외국영화 제작·수입 및 상영 편수18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 변화 19 2001, 2002년 배급사별 시장점유율20 연도별 극장수 및 스크린수21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 변화22 서울지역 영화국적별 관객수23 2002년 한국영화 흥행순위24 평균제작비 대비 손익분기 관객수25 한국영화 수출실적 추이26Ⅰ. 들어가는 말노동, 산업, 이데올로기 등이 20세기의 키워드였다면 21세기의 화두는 문화, 정보, 영상 등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기적 변화질서에 부응하기 위해 국가의 정책과 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행정 연구 분야까지 모든 중심의 축이 이동되고 있다. 대중매체를 포함한 영화분야 또한 그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핵심 분야이다. 디지털 기술 등 테크놀로지 발달에 의한 새로운 미디어 출현, 매체·국가간 경쟁력 심화,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 문화적 침식과 편중현상 등은 다양한 양상과 질서를 불러 일으켜 혼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킬 수 있는 정서들이 집단들의 움직임에 따라서 세련된 매체능력들을 통해 서로 연결된 거대하고 비규칙적인 공간들로 전파되었다.{ 앞의 글, p.202.마지드 테라니언과 캐서린 테라니언(Majid Tehranian& Katharine Kia Tehranian) 역시 주변부와 중심부, 남과 북, 1세계와 3세계의 일의적인 구별은 현재의 전지구화를 검토하는데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최근 전지구화의 흐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탈영토화(deterriorialization)라고 보며, 가장 비판하는 것은 지리적 기준의 중심-주변 모델이다. 그 까닭은 지리적 의미의 중심-주변 모델은 더 이상 현재의 전지구화를 설명하기 힘들 뿐 아니라, 탈영토화 되고 동질화시키는 자본의 힘에 저항하는 힘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며 정체성 물신주의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지구화를 근대화의 일환으로 바라보는데, 그들은 BC8000년부터의 인류의 역사를 근대화의 역사로 바라보고 7개의 층위로 나누는 가운데 1989년부터 글이 씌어지는 당시까지를 6단계, 그리고 미래를 7단계로 바라본다. 6단계와 7단계는 탈근대의 시기로 간주되며, 이 시기는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함께 가상 공동체 중심의 공동체주의가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희망을 두는 것은 더 많은 공동체들의 차이의 정치이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어떻게 근대성을 길들이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마지드 테라니언·캐서린 테라니언(1998), 근대성 길들이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하여 , 「국제커뮤니케이션과 세계화(알리 모하마디)」, 나남출판.위에서 살펴본 차이의 전지구화 견해들은 전지구화의 분석틀을 탈중심화 시킨다.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는 다양한 공동체들의 등장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공동체간의 연대를 강화시킬 수 있고, 탈영토화한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입장들은 크든 작든 정치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탈영토화한 자본의 위력에 대한 저항의 방식으로 연대를 강조한다.Ⅲ. 영블록버스터는 액션과 SF 등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 다른 문화권에서 제작된 해외 프로그램이 자국민에게 받아들여질 때는 문화적 이질감이 개입되어 시청률이나 관람률이 떨어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스펙타클이 강한 고예산 장르를 선택하여 제작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모든 종류의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관객들의 기대심리를 한껏 부풀린 다음 보통 전국 2000개 이상의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saturation booking)하는 이벤트에 가까운 상영으로 특징지어진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평균 제작비용 및 마케팅 비용(MPAA회원사기준)연 도MPAA회원사평균 순 제작비($백만)MPAA회원사 평균 마케팅 비용($백만)프린트, 광고 합계프린트비용광고비용198516.86.451.215.24199026.811.941.7310.24199536.417.732.3515.38199852.725.323.2522.07199951.524.533.1321.40200054.827.303.3024.00200147.731.013.7327.28200258.830.623.3127.31위의 표는 7개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회원사로 있는 MPAA의 순 제작비(negative costs)와 마케팅비용의 통계이다.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헐리우드 영화의 편당 평균 제작비는 85년 1,680만 달러였던 것이 95년에는 3,640만 달러로, 그리고 2002년에는 무려 5.88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제작된 영화의 홍보와 배급을 위하여 투자되는 광고와 프린트비 또한 2002년에는 주춤하였으나 과거부터 계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치들은 매년 대작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며, 우리나라 영화의 한편 평균 제작비가 21억원 가량인 상황과 비교해 보면 천문학적 액수이다. 이러한 급격한 제작비 상승은 영화사들 간의 합작을 불러일으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다.전반적으로 은 21세기 헐리우드 영화의 한 표본을 제시한다. 지금까지도 역대 흥행 1위를 기록8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제5차 개정영화법과 1985년 하반기의 영화시책은 영화업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 검열을 심의로 바꾸는 제도변화, 제작업자와 수입업자의 분리, 수입편수의 제한 폐지 등을 규정함으로써 유신정권과 5공화국 전반기의 엄격한 국가직접규제가 다소간 완화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국가 영화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1983년 이후의 갑작스러운 전두환 정권 자체의 사회 전반에 대한 유화적인 입장으로의 전환과 1970년대 후반 이후 고조되어온 미국영화업자들의 시장개방 압력이 견딜 수 없는 수위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정부는 1985년의 한미영화협상을 거쳐 영화시장개방을 결정하고 이를 반영하는 제 6차 개정영화법이 1986년 발표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영화시장은 1988년 직배사인 UIP의 의 개봉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개방화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조준형, 앞의 글, p.57∼60.를 개봉할 당시 한국영화계가 일치하여 반대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했던 조직은 미국영화 직배저지 영화진흥법 쟁취 영화인 투쟁위원회 였는데, 이 조직에 의해 주도된 직배반대 투쟁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열악한 한국영화산업구조와 정책에 대한 비판 및 개선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투쟁으로 그 중심이 옮아간다.{ 이충직(1996), 영화 진흥법 제정을 촉구한다 , 「영화언어:1989년 봄에서 1995년 본까지 Ⅱ(영화언어편집위원회)」, 시각과 언어, p.268.이는 사실 필연적 수순이다.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한국영화산업은 70년대와 전두환 정권의 억압적 권위주의와 이에서 비롯된 영화정책, 전근대적인 영화산업구조, TV 등의 등장 등으로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시장개방은 한국영화산업에 사망선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이와 같은 조치는 젊은 영화인들에게 정권의 식민지적 본성 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김지석(1996), 할리우. 따라서 영화배급이 제작부분을 실제 통제하고 조정하는 역류적 현상과, 제작보다는 외화 수입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흥행구조가 아직까진 지배적 상황이다.{ 위와 같은 논지에서 스크린쿼터 찬성론자들은 스크린쿼터가 폐지될 경우 우리 영화가 잠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크린쿼터는 경쟁력 이전에 배급의 문제라는 것이다.이러한 제작과 배급의 불균형과 수입의 의존도 현상은 지난 87년 수입 자유화로 제작과 수입업이 분리되면서, 제작에 위험한 투자를 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외화 수입에 치중하는 영화사가 증가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오늘날까지 그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제작사는 수익을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되므로 재생산을 통한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화는 80년대부터 91년까지 매년 100여 편 이상의 제작편수를 보여오던 것이 93년 이후 큰 폭으로 감소하여 60편 정도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98년에는 IMF 경제위기로 더욱 감소하여 43편이 제작되었으나 이후 다시 꾸준히 상승하여 2002년에는 제작편수 78편, 개봉편수 77편에 이르게 되었다. 제작편수 감소는 흥행성 있는 작품에만 선택적으로 집중한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의미를 둘 수 있으나 양적인 감소로 인한 다양성 부족으로 영화수요자들의 선택이 감소한다는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71년도의 제작편수가 200편을 넘어섰던 것을 감안하면 영화의 질을 떠나 양적인 기준으로만 볼 때 그 수가 현저하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연도별 한국·외국영화 제작·수입 및 상영 편수구분한국영화외국영화총 상영편수제작편수상영편수수입추천편수상영편수*************7626*************0126*************15266199*************0199*************9199665*************9*************11*************287199*************520005*************00165
목 차Ⅰ. 머리말1Ⅱ. 연암의 생애와 사상2(1) 연암의 생애2(2) 연암의 사상4(3) 연암의 문학관61 창작의 이유와 목적62 문학에서 다루어야 할 대상73 사실성 강조84 모방의 배격과 독창성·자주성의 강조8Ⅲ. 연암소설 분석9(1) 소재분석10(2) 형태와 표현분석10(3) 등장인물 분석131 , , 142 , , 163 , , 184 21Ⅳ. 소설사적 의의22Ⅴ. 맺음말23참고문헌25Ⅰ. 머리말한국사에 있어서 조선 후기는 중세 사회의 틀 안에서 근대를 지향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태동했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민중의 사회적 성장과 민중 문화의 발달 등 근대 지향의 계기를 마련하는 새로운 변화들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늘날 실학파 라 일컫는 진보적 문인 학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그들은 종래의 관련학자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지원이다. 당시 박제가, 홍대용 등과 함께 청조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박지원의 소설은 모두 12편인데 그 중 2편은 제목만 전하고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20대를 중심으로 한 10여 년간의 청년기에 , , , , , , , , 등 이른바 초기 9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루어진 순서도 대체로 위에 열거도니 순서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기석, 『박지원문학연구』, 삼지원, 1984, p.63∼66.이들은 모두 『연암집』 중의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는데 9편 중 마지막 2편은 제목만 전한다. 박지원은 40대 중반의 중국여행(1844) 직후에 과 을 창작하였다. 은 『연암집』의 『열하일기』 중 「관내정사」라는 글에, 은 같은 책 「옥갑야화」라는 글에 각각 실려 있다. 박지원이 50대 후반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아득할 뿐 어떻게 하면 그런 일들이 바로 잡힐지 백성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병자호란 때 임금은 남한산성 밑에 내려와 적장 앞에 꿇어 앉아 이마를 땅에다 부딪치며 다시없는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고 사대부계층이 주축이 된 이조의 체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고비로 점차 와해되기 시작하였고, 생산력의 발달을 기반으로 한 경제 질서의 재편과 평민의식의 성장은 새로운 질서의 사회로 나아가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삼정의 문란{ 하나는 토지정책 으로서 일부 부호들과 지배층이 토지를 겸병 독점하고 경작자들로부터 조세를 과징하는 폐단이고, 둘은 군사정책 으로 국방을 빙자하여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횡령하는 폐단이니 지금의 무기 허위 도입사건이나 비슷한 폐단이고, 셋은 대부미정책 이니 그 이자가 너무 과해서 폐단이 컸던 것인데 이를 시정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고통스러운 사회현상이 되어 있었던 것을 말한다.과 같은 사회의 모순들이 척결되지 않고 계속 누적되어 상하층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어 갔고 19세기에 들어서서는 홍경래의 란과 임술민란 나아가서는 갑오농민전쟁으로까지 발전했다.이와 같이 급격히 변동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이 이른바 실학사상(實學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이 실학사상은 이미 사회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근대적 요소에 착안하여 사회의 제 모순을 근대적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실학사상은 이 사회개혁에 있어서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 실사구시학파(實事求是學派)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용후생학파는 상업과 공업을 경멸하지 말고 진흥시켜서 경제적으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농기구를 제작하여 편리하게 농사를 지으며, 기술을 배워 익혀서 건축, 관개, 목축, 운수 등 제반 생활을 문명 이기화 하려는 유파이며, 경세치용학파는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행정기구와 그 방식을나아가야 하고 거기서 포착된 참은 또한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산천·풍기(風氣)의 지리가 중국과 언어·요속(謠俗)과 다르다. 지금의 시대가 한(漢)·당(唐)이 아니다. 만약 중국의 수법을 본받고, 한·당의 문체를 답습하고자 한다면 그 수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실은 비속하게 되고 그 문체가 한·당과 비슷하면 할수록 말은 거짓이 될 뿐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외진 나라이지만 또한 천승의 국가요, 신라와 고려가 비록 넉넉하진 못했으나 백성에겐 아름다운 풍속이 많이 있으니, 방언으로 글자를 삼고, 민요로서 운을 삼으면 자연히 문장을 이루어 진기가 발현될 것이다.······ 이 시가 바로 그러하다.{ 「瓔處稿序」참된 시(문학)야말로 자기 시대의 것을 다른 시이고 그런 시야말로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문학의 생명인 진실을 판정하는 기준이 과거가 아닌 당대에 두어져 있어서 사대부의 전통적인 문학관을 철저히 배격되고 있다. 또한 사대부들은 문학에서 다루어야 할 바가 성현이 말한 도라고 하였으나 박지원은 일상생활의 문제 곧 현시적인 문제라고 보면서 창작을 통해 이 점을 극력 실천하였다. 또한 자기 시대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자기시대의 생활 현장에서 사용되는 시속어 곧 일상어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3사실성 강조연암은, 문장이란 누구든지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억지로 옛 사람이 쓴 고어를 생각하고 고전의 경지(經旨)를 찾으며 근엄하게 글 뜻을 장중하게 꾸미려는 것은 마치 화공이 그림을 그릴 때에 원래의 모습을 다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즉 연암은 글을 쓸 때에는 사실을 그대로 꾸밈없이 표현하는 진실이 으뜸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아래 글에서 그의 이러한 생각을 확인해 보자.말은 반드시 큰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한 분(分) 한 호(毫) 한 이(釐)라도 다 말할 만한 것이다. 기와조각이라고 왜 버릴 것인가.{ 『燕巖集』 卷3이 말 가운데서 거울처럼 비치는 진출생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일생을 서술하는 데 비교적 충실한 작품들이나{ 물론 허균의 작품이 전의 본래적인 형식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그 나름의 효과를 거두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편소설로서의 형태적 성격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데 있어서는 연암소설의 공적을 따르지 못한다.연암소설의 경우 그러한 형식적인 면을 아예 버리거나 극소화하면서 사건 중심적으로 구성을 집약해 단편소설로서의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몇몇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보면 그것이 일반적인 고전소설은 물론 허균의 한문 단편소설과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다음은 서두이다.범은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하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하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허생은 묵적골에 살고 있었다. 남산 바로 아래 이르면 우물가에 해묵은 살구나무가 서 있고, 사립문이 그 나무를 향하여 열려 있는데, 몇 간 초가는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였고, 그의 아내가 남의 바느질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셈이었다. 하루는 아내가 몹시 주려서 훌쩍훌쩍 울며······ 말 거간꾼과 집 소개자 따위들이 손바닥을 치면서 옛날 관중(菅仲)과 소주(蘇奏)를 시늉하여 닭, 개, 말, 소 등의 피를 마시고 맹세한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이와 같은 서두들은 주인공의 가계, 태몽, 출생, 성장 등으로 이루어지는 공식적 서두와는 그 내용이나 인상이 딴판이다. 앞으로 전개될 사건이나 주제를 암시하면서 그런 것들과 바로 연결되는 내용들이 단도직입적으로 나타나 있다. 나머지 작품의 경우 역시 이러한 성격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다음은 결말의 예이다.마침 아침에 밭 갈러 온 농부가선생님,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이 벌판에서 절을 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북곽선생은,내 일찍 들으니 하늘이 비록 높다 하되 머리 어찌 안 굽히며 땅이 비록 두텁다 한들 얕디디지 않을 소냐 하엿데그려.하고는 말다. 이는 한마디로 소설의 주인공(달리 말하면 작가 연암)이 지향하는 이념과 현실적 가치체계가 맞물려서 돌아감을 의미한다.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선귤자와 그의 제자인 자목, 그리고 엄행수가 바로 그 세 사람이다. 물론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사실상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엄행수이다. 다른 두 인물은 엄행수라는 인물의 행동을 구술해주는 서술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 엄행수와 어떤 대립관계에 있다든지, 화해의 관계에 있다든지 하는 상호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서술자가 이 작품에서 엄행수의 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때문이다. ㄱ초라한 흙벽 집에서 살지만, 아침이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을 친다.(근면·성실) ㄴ매년 육천 전을 너끈히 번다.(경제적 부의 축적) ㄷ누가 좋은 옷을 입으라고 권하면, 소매 넓은 옷이나 새 옷은 똥을 치는데 불편하다고 사양한다.(체면보다 편리함 추구) ㄹ정초가 되면 벙거지에 띠를 두르고 의복에 신발을 갖춘 뒤 인근에 두루 세배를 다닌다.(예절)이중 네 번째는 양반들도 하는 행위이나, 나머지 세 가지는 양반사대부들이 꺼리거나 행하지 못하는 행동거지 이다. 양반 사대부 계층들이 체면과 여러 가지 규율 때문에 행하지 못하는 일들을 상놈인 엄행수는 기쁜 마음으로 실천하므로, 이를 확대하면 성인의 경지 에도 이를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비들의 생활 태도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에는 작자 박지원의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은 3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광문은 거지의 신분이나 순박하고, 진실되며, 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광문이 시실한 사람인 것이 입증되는 것은 세 가지 오해가 풀림에 의해서이다. 첫째는 어린 죽은 거지를 살해한 것으로 오해받고, 두 번째는 도망가다 어느 집에 잘못 들어가 도둑으로 오해받고, 세 번째는 약국주인에게 돈을 훔친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