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정부학] 정부구조개편
    ***들어가며***정부가 수립된지도 내년이면 벌써 50주년을 맞는다. 그 동안 정부는 많은 일을 했고, 많이도 변했다. 정부의 규모가 전전 커져 1948년 정부수립당시 1원 1실 1국 4처 3위원회 11부의 부처는 현재 2원 14부 5처 15청 2외국이 되었다. 공무원의 수도 20여만명에서 93여만명이 되었고 재정규모 또한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늘어났다.정부는 시민사회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시민사회가 자라면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반비례할 수 밖에 없다. 시대의 명제가 바뀌면 정부의 조직과 기능 또한 거기에 적응하여야 한다. 지금 세상은 우리가 적응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도 않고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정세와 사회가치관의 변화가 말해주듯이 20세기 말인 지금도 세기말적인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정세를 보면 공산주의체제가 몰락하여 미,소 양극체제가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국력의 척도와 세계질서에 있어서의 영향력은 군사 및 정치력에서 경제력으로 바뀌었다. 즉, 세계각국은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무한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또한 미래의 세계는 인간의 지식을 이용하여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될 것이므로 자원과 시장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의 필요성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군사력 대신 지식, 기술과 정보의 창출능력과 활용능력에서 앞서는 나라가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며, 지식력에 바탕을 둔 경제력, 기술력이 국력의 척도가 될 것이다. 개인이나 지역은 물론 국가라 할지라도 이 같은 세기적 변화의 물결을 잘 타지 않으면 새로운 세기에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각국은 지금 다가올 미래사회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날 기업이나 정부 할 것 없이 지구천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변신을 위한 개혁과 변화의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지식, 정보화시대, 세계화, 국제화시대, 문화와 경제의 시대로 특징지어질 21세기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노력을 기울인 흔적만은 일부 엿보인다. 중앙부처 120개 실-국-관-과 감축, 2001년까지 공무원 1만 4861명감원, 4급이상간부직 241개 감축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정부조직개편심의의원회가 얼마전 부처별 직제개편안을 확정했다. 개편결과 청무처와 내무부와 합쳐지는 행정자치부는 공룡부서로 등장했고, 재정경제원은 기존 조직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을 분가시켜 사실상 줄지 않았다. 반면 교육부 등 대부분의 부처는 기능축소 등으로 직제와 정원이 줄었다.주요부처의 직제개정안을 살펴보면 신설된 기획예산위원회는 장관급 위원장을 포함한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회 밑에 사무처가 만들어진다. 사무처에는 재정기획국과 정부혁신실이 생기며, 정부혁신실 산하에 재정개혁단과 행정개혁단을 둔다.국무총리실은 국무조정실은 규제개혁조정관이 신설되는 등 조정관 5명과 국장 15명의 체제를 갖추게 됐다. 비서실은 정책비서관(1급)이 tstjf돼 의전, 정책, 정무, 총무비서관 체제로 개현됐다.재경부는 차관보 1명, 1급 3명이 줄어들었기만 기획관리실, 세제실, 국고국, 경제정책국, 대외경제국, 국민생활국은 대부분 기존 조직을 유지해 4실, 4국에서 2실, 6국으로 개편됐다.예산청은 5개국 , 16개과로 재경원 예산실 직제에서 확대 개편됐다.외교통상부는 신설되는 통상교섭본부는 1백명 규모로 본부장인 통상 대표는 장괍급 정무직, 1습 부서인 통상교섭조정관실외에 통상지원국, 지역통상국, 다자통상국 등 3국 체제로 운영된다.행정자치부는 내무부와 총무처가 주요기능을 그대로 거느리고 통합, 새로운 공룡부서가 됐다. 전체직제는 1차관보, 1실, 1본부, 10국, 5관, 54과, 총무처소속 의정국이 총무국으로, 인사국이 인사복무국으로 명칭을 바꿨으며 기존 조직국과 능률균을 통합, 행정관리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고시훈련국을 신설했다. 내무국을 통합, 행정관리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고시훈련국을 신설했다. 내무분의 진정행정국을 자치지원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방위 재 정부의 몸무게는 얼마나 감량될까? 막이 오른 정부조직개편을 지켜보는 정부 안팎의 관심사중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회오리를 견뎌낸 뒤 얻게 될 정부 슬림화와 예산절감의 크기다. 물론 개편폭과 개편 강도가 공개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과 행정학자들의 견해는 "중앙부처개편에서는 큰 소득이 없지만, 지방정부 및 정부 산하기관 개편에서는 효과가 클 것" 이라는 대체로 일치한다. 이들은 산술적인 계산을 내보이고 있다. 전체 공무원 90만명중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국가공무원은 56만명이다. 그러나 치안 및 교육 서비스의 질 향성 등을 위해 '줄일 수 없는' 경창, 교육공무원, 우정, 철도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이번 조직개편의 '가위질' 대상은 10여만명이다. 이 가운데 정부안에 따라 폐지가 거론되는 부처는 5-8개이다. 그러나 폐지가 확실시되는 정무1장관실, 공보처, 법제처 등 5개부처의 정원을 모두 합해야 3천 7백여명에 불과하며, 여기에 존폐가 확실치 않은 내무부, 조달청, 과학기술처 등 나머지 5개부처의 정원을 더해도 모두 6천8백여명밖에 안된다. 공보처의 한 관계자는 "중앙부처 조직개편을 통해 정부의 슬림화를 주장하는 것은 뭔가 방향을 잘못 잡은 접근" 이라며 "지방정부개편과 정부산하기관 통폐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지방공무원은 현재 35만명으로 읍, 면, 동에만 7만 5천명이 근무중이기 때문에 이를 복지센터로 전환해도 인력의 절반 가량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지방자치이후 팽창일로를 걷고 있는 도청과 군청의 인원은 실제 행정수요에 맞게 조정한다면 '작은 정부' 로 한발 더 나가게 된다. 또 정부산하기관은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규모나 직원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만큼 규모가 방대한 실정이다. 정부투자기관, 보조기관, 출연기관, 각종 연·기금 관리공단 등이 있고 그 아래 자회사, 손자회사로 뻗어나가며, 그동안 정부와 국민 감시가 소홀해 감사원 감사때마다 예산을 주머니돈 쓰듯 하는 방만한 씀씀이와 인관만 없애기로 한 점, 행자부의 경우 2개국을 폐지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의정국'과 '방재국'을 '관'으로 격하시켰으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산하 조직과 인원은 그대로 둔 점등이 대표적 가례다. 조직개편안과 직제개편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해당 부처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한 탓이다. 그로 인해' 힘있는 부처는 감축폭이 미미하고 그렇지 못한 부처는 상대적으로 감축폭이 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작은 정부' 약속을 지키려면 정부 조직에 대한 민간 경영진단 결과를 공개하고 이에 의거한 축소작업을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다.'공룡부처'인 행정자치부는 인사 몸살을 앓고 있다. 주요 과장급 이상 인사를 단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리한 '밀어내기' 와 총무처, 내무부 출신의 자리다툼으로 내부 상처가 심화돼고 있다.공보처 폐지, 중앙인사위 설치, 예산권의 총리실 이양 등 정부조직개편 때마다 거론되던 개편안들도 이번에 모두 포함됐지만, 정말 실행될지의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여성부의 신설을 제외한 것이나, 총리실에 예산권과 인사권을 모두 줘 너무 힘을 실어준듯한 모양새가 된 점, 그리고 내무부의 장관급 부처 유지 등도 놀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얼마전에 있었던 정부조직개편은 46억원이나 되는 컨설팅 비용과 '작고 효율족인 정부 구축' 이라는 요란한 구호 속에서 시작된 정부조직개편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각 부처의 반발과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큰 원인이라 한다. '철밥통'을 지키려는 자세로 인한 국정공백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의 반발을 염려해 큰 개편 없이 끝난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민간기업에는 구조조정을 독려하면서 정작 공무원들은 자리를 지키려는 자세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인될 수 없다. '국가홍보처'의 신설도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 간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악의 전형이다. 현 정부는 말로만 '작고 효율족인 정부'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3.어든 것이 없다. 또한 정부 조직의 숫자를 줄이는 것말을 가지고 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조직의 숫자를 더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정부가 해서는 안될 기능을 아예 없애거나 민간에게 이양, 위탁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외형적 규모에서 작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의 내용에 있어서 적은 정부가 되어야 한다. "주소변경식" 정부구조개편이 아니라 "기능재획정식" 정부조직 개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 행정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사무를 정책사무와 집행사무로 구분하여 중앙행정기관은 정책사무만을 관장토록 하고 집행사무는 민영화 내지 민간위탁화라여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의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정부조직법 개정의 결과가 기존 정부기능의 축소 및 사실상의 공무원 인력감축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의 결과가 기존 정부기능의 축소 및 사실상의 공무원 인력감축으로 나나날 수 있도록 정부조직법상에 나타나 있는 각 중앙행정기관의 기능을 정의하는 조문들이 전부 개정되어야 한다. 참고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산기능까지도 민간 회계법인에 위탁함으로써 예산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정부조직법 개정은 국가발전전략의 근본적 선회를 반영해야 한다. 과거의 정부주도식 국가통제형 경제발전전략과 중앙집권적 국가발전전략을 가지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업고 이 발전전략으로 선회해야만 한다는 데에 이미 상당한 합의가 존재한다. 재정경제원의 예산기능은 재경원에서 분리하여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처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경제원의 대외경제협력 기능은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담당 본부의 기능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내무부의 규제 및 통제 기능은 폐지하고 대신 지방자치단체지원기능과 조정기능만을 남겨 총리산하 국무조정실의 기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찰청은 지방경찰제를 도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사회과학| 2001.12.08| 11페이지| 1,000원| 조회(403)
    미리보기
  • [역사] 십자군 전쟁
    *****서론*****중세 유럽은 흔히 기독교 사회라고들 말한다. 중세에서의 기독교라는 것은 단순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그 사회의 지배 이념이자 중세 사람들의 삶의 지표가 될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중세 기독교 사회에 이상이 생겼다. 동방의 나라에서 중세 유럽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유럽은 그들에게 닥칠 위기를 두려워 했다. 유럽의 우르반 2세는 이 유럽 사회에 닥칠 위협을 이겨내기위해 십자군을 결성했고 그들은 신을 위해 동방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본론*****1.십자군의 기원1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 사회는 전반적인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9세기의 잦은 이민족의 침입도 점차로 약해졌고 장원제도를 바탕으로 한 봉건제도가 나름대로 틀이 잡혀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럽 사회에서 농업 생산력은 커지고 인구가 증가했으며 도처에서 개척과 개간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또 규모는 작지만 남는 농산물의 처리를 위해 지방단위의 시장이 생겨나고 도시가 교역의 중심지로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1세기에는 유럽 전체가 새로운 활기가 넘쳐 흐르게 되었다. 이러한 유럽의 활기는 11세기말의 십자군운동으로 나타났다.…→교황 우르반 2세가 프랑스 클레르몽시에서 대규모 공의회를 개최하여 십자군 출정을 호소하자 주교관을 쓴 성직자들과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유럽은 스페인과 동로마제국을 제외하고는 크리스트 교도와 이슬람 교도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7세기에 시리아를 정복한 이슬람 교도들은 성지를 장악하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여겼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가 성묘역에 있는 곳에 세운 교회에 기도하러 오는 순례자들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러나 11세기 초에 셀주크 또는 투르크족이라 불리우는, 아시아의 타타르족이 서아시아 이슬람 국가의 지배자가 되자 관용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투르크족은 동로마의 황제로부터 소아시아 전역을 뺨앗고 동서 간의 무역에 종지부를 찍었다분했다. 서구의 세르뇨인들은 멀리서 온 여행가들로부터 비잔틴의 사치함과 외교국 및 에미르의 산적한 재보에 대한 이야기를 탐나게 들었다. 완전히 영락해 버린 농민부터 시작해서 생활보조금으로 생활하던 가난한 기사에 이르기까지 동방의 풍요로운 지역에 가면 쿠니야가 될 수 있다거나 잘하면 국왕도 될 수 있다고 꿈꾸고 있었다. 자신의 사신으로부터 비잔틴 궁전의 기적에 대해, 금이 가득찬 콘스탄티노플의 금고에 대해, 그리고 회교 제국의 풍요로운 도시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서구의 국왕과 황제들도 동방나라를 꿈꾸었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유럽의 봉건제는 확립되고 있었으며 장자상속재가 보급되고 있어 토지를 갖지 못한 기사들이 급증하면서 토지를 둘러싼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다. 이러한 봉건 사회 내부에서 고조되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새로운 토지를 획들할 필요가 생겼다. 토지를 갖지 못한 기사는 자신의 토지를 구하여 하고 국왕과 제후들은 새로운 토지를 획득하여 국 내에서의 지위를 높이려 하였으며 농민들은 신분상의 자유와 부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또는 동방의 부를 쫑아 적극적으로 십자군에 참가했던 것이다.이탈리아 상업도시 특히 베니스와 제노바의 상인은 십자군 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의 상인은 동방과의 무역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동방제국에서 거점을 확보하고 무역의 경쟁자인 비잔틴 인과 아라비아 상인을 분쇄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교황 우르반 2세더 성지 회복이외에 그리스 정교회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나아가서 자신의 기독교회 전체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2.십자군 전쟁십자군 전쟁에서의 군인들은 초기에 천 누더기만을 걸친 채 서로 다투고 통제가 안되는 오합지졸들이었다. 이것은 프랑스와 독일의 빈농부대였는데 이들은 미지의 동방제국으로 가면 자유로운 천지가 기다리고 있으며 괴로운 생활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유럽을 떠났지만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약탈만으로 살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결핌으로 쓰여념이 없었다. 이들의 만행으로 예루살렘은 마침내 그들에게 함락되었지만 그 곳에는 말들이 피바다가 된 거리를 간신히 걸어다녔고 유태인 예배당이나 회교 사원에 숨어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십자군이 건물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산 채로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십자군이 한때 학살을 멈춘 것은 [주의 무덤]을 예배할 때 뿐이었고 예배가 끝나자 곧바로 살육과 약탈을 시작하였다. 예루살렘 즉 성지는 다시 유럽 세계의 세력권 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성스러운 목적을 무시한 너무나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이었다. 5개월에 걸침 힘든 공략 끝에 손에 넣은 안디옥의 성안에도 모슬렘교도는 하나도 없었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썩어가는 시체 냄세만이 거리를 꽉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왜 이런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회교도들에게 살해된 것에 대한 분풀이로 학살을 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영국 왕이 아스칼론 정벌을 결정하고 떠나면서 많은 포로들을 뒤에 남겨두고 간다는 것이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학살을 했을 것이로고도 한다. 어찌돼었든 이것은 신을 위해 싸우는 십자군의 탈선행위임에 틀림없었다.…→십자군의 기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경건한 모습 …→1099년 제1차 십자군원정군이 예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루살렘 수복을 위해 최후의 공격을 하고 있다.십자군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셀주쿠의 영주들이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때로는 서로 맞서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십자군이 세운 나라도 결코 기초가 단단한 것은 아니었다. 회교도들은 끊임없이 국경을 침략했으며 주민들은 십자군을 싫어했다. 십자군 영주들 사이에서 충돌이 끊이질 않았고 서로 맞서 싸울 때는 회교도와 동맹을 맺는 일도 종종 있었다. 십자군은 드디어 점령한 땅을 잃기 시작했다. 1144년 십자군을 동방에서 지켜주던 주요한 성 에데사가 회교도군에게 점령되었다. 12세기 중엽에 조직된 제 2차 십자군은 아무 결과도 얻어 단칼에 머리부터 배까지 베어 버렸다. 그렇지만 리차드는 아주 거칠고 난폭한 사람으로 오만불손했다. 2년동안의 포위 끝에 아크레롤 점령했을 때 리차드는 살라딘이 서로 합의한 대로 몸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러 2천 명의 포로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13세기초에 유럽에서는 제 4차 십자군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4회 원정 때의 탈선행위를 보면 교황권의 쇠퇴를 의미한다기 보다 정치 또는 경제상의 이해관계가 종교적 겅열을 제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십자군 원정의 본래 의도가 전면적으로 밋나갔다는 것을 의마한다. 이집트 탈환을 희망하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의 의도와도 빗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를 귀일시켰다는 것이 제 4회 십자군의 성과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제 4회 때부터는 종교적 정열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십자군 원정의 방향을 좌우해사성지 아닌 다른 엉뚱한 지역이 공격의 목표가 되었다. 제 4회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라틴 제국을 세우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와 그 후계자 호노리우스 3세의 노력으로 제 5회 십자군이 명목상의 예루살렘 국왕 존의 지휘하에 제 1목표를 이집트 제 2목표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1218년 봄에 떠났다. 카이로의 술탄은 예루살렘 왕국을 전부 돌려줄 것을 제의하고 십자군이 아프리카에서 철수해 주기를 요청하는 조건부 항복을 해왔다. 이리하여 제 5회 십자군은 성지 탈환을 달성할 수 있었으나 그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제 6회 십자군은 1227년에, 제7회 십자군은 1248년에, 제8회는 1267년에, 이처럼 계속해서 동원되긴 했으나 번번히 종교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타산이 앞서서 좌절되고 또 126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다시 비잔트 제국이 부활하고 시리아에서는 13세기 말 그리스도 교도 최후의 보루 아크레가 다시 사라센의 손에 넘어감으로써 십자군운동은 아무 성과없이 종말을 고한다.3.순수한 종교적 목적으로만의 십자군 전쟁을 볼 수 없는 요인들십자군은 '성지 탈환' 이외의 콘스탄것의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소년 십자군의 '성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배에 태워서 이집트로 데려다가 노예로 팔아넘긴 예에서도 이것을 잘 알수 있다.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예를 들 수 있다. 이 황제는 싸움터에는 나오기는 했으나 싸우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이집트의 술탄과 만나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영국의 역사가 트리벨리언은 이 십자군운동에 관한 견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자군은 부활되고 있는 유럽의 활력이 동방으로 넘치기 시작한 일반적 경향 가운데 군사적,종교적 측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십자군에서 거둔 수확은 성지 탈환이라든지 기독교 문화의 통일이 아니라 십자군의 모든 전말에서는 이것을 장기간에 걸쳐 부정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4.십자군 전쟁의 결과십자군 전쟁은 군서적, 정치적으로는 실패작이었다. 예루살렘과 다른 수많은 도시들이 상실되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에 작은 왕국들이 몇 개 생겨났으나 , 그것들은 아시 투르크인들에게 정복되었고, 1244년 이후 성지는 1095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1291년 십자군의 최후의 성 아크레도 마침내 함락되었고 동방에 남아있던 기사들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십자군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 유럽에게 있어 십자군의 의의는 큰 것이었다. 우선 첫째로 동방과의 통상관계가 강화되었다.십자군 이전에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상인들의 대부분은 동방의 상인들이었지만 이제는 이 지중해를 따라 이탈리아 및 남프랑그 도시들의 상인들의 통상관계가 발달하였다. 제노바와 베니스가 지중해상의 무역을 장악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도시의 경쟁국 비쟌틴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또 고향으로 돌아온 십자군들은 이교도들로부터 배운 생활태도를 모방하면서 아직도 전형적인 시골뜨기에 불과했던 서구의 기사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복숭아나 시금치와 같은 새로운 종자들을 들고 와 텃밭에 심어 쏠쏠한 소득을 올렸다. 그리고 무거운 갑옥을 압고 미개한 복하면
    인문/어학| 2001.12.08| 8페이지| 1,000원| 조회(867)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04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2:13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