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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문학사]선진문학
    선진시기 문학1.선진문학이란?‘진(秦) 나라보다 앞선다’는 의미로 이 시기에 지어진 문학작품을 일컫는다. 사실 이때는 예술, 학술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작품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문학은 독립된 영역이 없이 종합예술과 학술사상 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작품은 민요나 구비문학적 성격이 다분하며 대부분의 작품이 익명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내용, 문학적 견해 등도 제자백가적인 다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공통된 경향을 찾기 어렵다.2.특징(1)중국 문학 시원의 출현은 이전의 기록은 없으나, 은대부터 갑골문과 금문으로 그때의 기록이 전하고 있고, 그 속에는 시가적인 글도 들어있다. 시경에서는 은나라가 무풍(巫風)이 성행했다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은대에는 상당한 시가가 유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이 없어 추측만 할 뿐이다. 따라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은 각각 운문과 산문의 시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2)선진시대의 작품《시경》, 《서경》, 《역경》과 제자백가서, 역사서 등 언문과 산문 작품이 있다.①시경: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가와 조정의 의식에 필요한 시가의 가사를 기록해놓은 것②초사:중국 초(楚)나라의 굴원(屈原)과 그 말류(末流)의 사(辭)를 모은 책.③서경:정치에 참고될 일을 천자의 측근인 사관이 기록해 놓은 것④역경:점복서로 국가의 대소사를 점칠 때 비롯된 것⑤철학산문:노자, 장자, 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 제자백가서는 중국대륙에 질서를 부여할 방안에 대한 주장을 담은 글이다.⑥역사산문:춘추좌전, 국어, 전국책 등. 당시의 역사를 나름대로 체계화 해 서술한 역사서이 시기에는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들이 나왔지만 중국 문학의 고유한 특징은 발휘되지 못하였으며, 글을 쓰는 사람도 한정적이었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시기의 기록은 후대인들에 의해 편집되고 재정리된 것이다.Ⅰ『시경』1.『시경(詩經)』의 발생 및 성립과정『시경』은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총집으로서, 황하유역의 북방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학이이다.2. 작품의 성향중국의 북방지역은 기후가 한랭하고 토지가 척박하여 백성들의 삶이 어려웠는데, 오랑캐의 잦은 침입으로 병역과 부역의 의무까지 짊어지게 되었던 백성들의 삶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문학은 당시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써 이러한 생활상을 반영하여 현실적이면서 집체적이고 서민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문학의 형성을 가져와 중국 최초의 문학의 시초인『시경』의 탄생을 가져왔다.3. 『시경』해석의 역사적 변천중국은 한 왕조에 들어와 유가사상이 관학으로 채택되고, 이후 청 왕조가 마감할 때까지 유학이 줄곧 지배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유지해왔다. 한 왕조에 의해 관학의 위치를 부여받은 유학은 긴 봉건왕조 시기 동안 정치권력의 두터운 보호 아래 수많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 받으면서 다른 사상적 유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한 왕조에 들어와 유학이 관학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고대 유가경전에 대한 주석과 해석 작업이 활발하게 벌어진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시경』은 춘추전국 시대 당시에도 물론 중요한 유가경전이었지만, 그에 대한 공자와 맹자의 언급은 그다지 체계적이지 않았고, 단편적인 차원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한 왕조에 들어와 『시경』이 육경의 첫머리를 차지한 다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시경』은 복잡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위계화 된 유학체계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경전으로 간주되고,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해석과 주석이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다음과 같은 와 의 기록은 공자가 가졌던 『시경』에 대한 생각이 대체로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너희들은 왜 《시경》을 공부하지 않느냐? 시에는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세상을 살필 수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고, 원망을 표현할 수 있는 작용이 있다. 《시경》을 공부하면 가까이는 부모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여러 짐승과 초목의 이름도 많이 익히게 된다.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305편으로 하였다)’고 했는데, 공자가 《시경》의 편찬에 직접 관여했다고 하는 이 설을 ‘공자산시설(孔子刪詩說)’ 이라고 한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는 여러 측면에서 의심받고 있다. 산시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첫째, 공자 자신이 한 번도 시를 산거 했다는 이야기를 한 일이 없다. 둘째, 예의를 기준으로 해서 시를 산거 했다고 하였는데 정풍(鄭風)이나 위풍(衛風)등에서 음란한 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서 편찬된 책인 만큼 그들의 스승이 산거 해버린 시를 그 제자들이 다시 수록한다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넷째, 다른 諸子書들에서 시를 말할 때면 언제나 3백 편으로 말했다. 다섯째, 실제로 춘추 시대나 전국 시대의 기록 가운데에는 그런 언급이 별로 없는데, 한참 후대인 한대의 기록 가운데에 오히려 그런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상황으로 보아 당시의 유학자들이 《시경》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한 말이 아닌 가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공자 스스로 논어에서 ‘내가 위(衛)에서 노(魯)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바르게 되고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언급한 점이나 공자의 선조가 살았던 상(商)의 상송(商頌)과 공자가 살았던 노(魯)의 노송(魯頌)이 천자의 주송(周頌)과 나란히 끼어 있는 점, 육경(六經)의 편정자가 공자인 점 등은 여전히 《시경》의 편찬 과정에 공자가 관여하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5. 삼가시(三家詩)와 모시(毛詩)한 왕조에 의해 유가사상이 왕조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시경》의 해설 또한 이전 시기의 해설을 포함하면서 거기에 덧붙여 당시의 정치체제를 합리화하고 정치적 현실을 옹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당시의 정치체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 왕조 초기에 관점을 달리하는 세 유파가 형성되었는데, 삼가시(三家詩)라고 불렸던 노시(魯詩), 제시(齊詩), 한시(韓詩)가 그것이다.삼가시로부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므로 정치를 바로잡고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키는 데에는 시보다 더 가까운 것이 없다.情發于聲,聲成文謂之音,治世之音安以樂,其政和,亂世之音怨以怒,其政乖;亡國之音哀以思,其民困。故正得失,動天地,感鬼神,莫近于詩。)모시의 윤리적ㆍ정치적 관점은 필연적으로 시의 본뜻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해석을 내세운 경우가 많았다. 모시는 남녀의 애정에 관한 작품을 성현의 덕을 칭송하는 의미나 문란한 사회풍조에 대한 풍자로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밖에도 유가적인 윤리적 입장만으로는 해설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정변설(正變說))이라든지 육의설(六義說)), 사시설(四時說)) 등의 다분히 추상적인 논리를 제기하여 무리한 해설을 시도한 경우가 허다하다.6. 『시경』의 구성과 내용《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어 옛날에는 ‘시삼백(詩三百)’이라고도 하였다. 《시경》의 시들은 크게 국풍(國風) 160편, 소아(小雅) 74편, 대아(大雅) 31편, 송(頌) 40편으로 분류되어 있다. 《시경》에 실린 시는 대부분 지어진 시기와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운문 양식으로 지어진 시가 아니라 당시에 불리던 노래의 가사를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우리가 보고 있는 시들은 원래 그대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손을 거쳐 편집되고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1) 국풍(國風)국풍은 민간에서 채집한 노래로 모두 160편이다. 여러 나라의 노래가 수집되었다고 국풍이라고도 하는데 주남(周南), 소남(召南), 패(?), 용(?), 위(衛), 왕(王), 정(鄭), 당(唐), 진(秦), 진(陳), 회(檜), 조(曺), 빈(?)의 15개국 노래로 분류된다. 지역적으로는 지금의 섬서성, 하남성,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호북성, 일대를 포함하며, 당시 주 왕실의 세력이 미치고 있던 중원과 주변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열다섯 나라의 시가를 한데 묶은 범주의 명칭으로 쓰인 ‘국풍(國風)’이라는 말에서 ‘국(國)’은 제후들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 분명하지만, ‘풍(風)’의 경아름다운 숙녀는 거문고와 비파로 벗 삼는다네.크고 작은 노랑어리연꽃을 이리저리 삶아 낸다네.그윽히 아름다운 숙녀를 종과 북을 타게 하며 즐긴다네.關關雎鳩, 在河之洲窈窕淑女, 君子好逑參差荇菜, 左右流之窈窕淑女, 寤寐求之求之不得, 寤寐思服悠哉悠哉, 輾轉反側參差荇菜, 左右採之窈窕淑女, 琴瑟友之參差荇菜, 左右芼之窈窕淑女, 鐘鼓樂之는 아가씨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사랑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젊은이의 염원을 평이하고 소박한 민요 가락을 통해 노래한 전형적인 연가이다. 는 그 형태가 잘 다듬어져 있고 압운도 어느 정도 고려되어 있다. 또한 전체가 반복적인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후렴구가 따로 있으며, 표현이 상식적이고 솔직한 점에서 민가의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국풍에 수록된 시가들 가운데 남녀관계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궁핍한 생활상에 대한 불만과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한 작품들이다. 이와 같은 시가의 흐름은 유학이 관학의 위치를 차지하고 거대하고 억압적인 정치권력이 등장한 한 왕조 이후에는 오히려 활발하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훗날 봉건왕조 가운데 가장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던 당 왕조 시기에 들어와 두보와 백거이의 이른바 사회시(社會詩)를 통해 이 흐름은 다시 전면으로 부상하는 기회를 맞기도 하였다.국풍 가운데 위풍(魏風)에 수록되어 있는 석서(碩鼠)는 의 낙관주의와는 정반대로 극도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중국 고대 농업사회의 현실이 순박한 농민들을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수탈의 길로 내몰고 있음을 고발한 작품이다.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 먹지 마라.삼년 너를 섬겼는데 나를 돌보지 않는구나!이제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땅으로 가련다.즐거운 땅 즐거운 땅이여! 거기 가면 내 편히 살 수 있겠지!큰 쥐야 큰 쥐야 우리 보리 먹지 마라.삼년 너를 섬겼는데 나를 봐주지 않는구나!이제는 너를 떠나 저 즐거운 나라로 가련다.즐거운 나라 즐거운 나라여! 거기 가면 내 바르게 살수 있겠지!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곡식 먹지 마
    인문/어학| 2008.06.13| 30페이지| 2,500원| 조회(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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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레랑스]나는빠리의 택시운전사 감상문
    홍세화, 그는 70년대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써 그의 저서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나눈다.』와『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는 그가 프랑스에서 살아가며 터득한 그들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비교 비평하며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똘레랑스에 관해 언급 하고 있다. ‘관용’으로 번역되는 똘레랑스라는 말의 어원은 ‘견디다’, ‘참다’를 뜻하는 라틴어 ‘tolerare’에서 나왔다. 이 똘레랑스라는 개념은 서구 사회에 인종, 문화, 종교의 차이는 격렬한 갈등으로 인한 많은 희생의 과정에서 생겨났다. 1572년 기독교 구교(가톨릭)와 신교(위그노)의 갈등으로 인해 파리에서만 3,000여 명의 신교도가 구교도에 의해 희생되었고, 이후에도 그 갈등과 피해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럽의 지식인들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모아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것을, 즉 똘레랑스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종교 간의 갈등이 진정되면서 똘레랑스를 외치는 목소리는 종교를 넘어 점차 사회 전반으로 퍼져 지금의 똘레랑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프랑스 사회 문화 정치 경제를 운용하는 저변에 깔려있는 베이스가 바로 이 똘레랑스의 정신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홍세화는 똘레랑스의 개념에 관해 다음과 같이 풀어나가고 있다. 똘레랑스는 두 가지 정도의 범위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 첫 번째 의미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이다. 즉, 상대방의 정치적 의견, 사상, 상대방의 이념등을 존중하여 자신의 사상, 이념도 인정받는 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로는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이다. 즉 첫 번째 개념이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또는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 남을 동시에 존중하고 포용하는 상호주관성의 인정을 의미한다면, 두 번째 개념은 권력에 대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품고 있다. 즉, "권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지되는 것도 아닌 한계자유" 를 의미 하는 것이다.나는 홍세화씨가 프랑스의 살면서 똘레랑스에 주목하게 되고 그의 두 권의 저서를 통해 똘레랑스를 논하게 된 것은 필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누가 그를 프랑스라는 타국에 망명자의 신분으로 내버렸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잣대였다. 세상을 나와 너, 우리와 너희, 흑과 백, 선한 것과 착한 것, 득 되는 것과 해 되는 것, 순응 하는 자와 순응하지 않는 자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우리의 잣대 말이다. 홍세화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인 잣대가 만든 피해자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잣대로 또 다른 홍세화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홍세화씨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버린 사회에 대한 질책과,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주지 말아 주십사 하는 바람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프랑스가 똘레랑스의 사회라면, 우리는 이른바 ‘정’의 사회다. 그러나 이 ‘정’안에는 학연 지연 혈연이 전제가 된다. 따라서 남와 나를 구분하게 되고 우리와 너희를 구별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이익을 우선으로 따지게 되고, 우리의 힘이 너희들 보다 강하다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찍어 누르는 식의 억압, 상명하달, 지배와 피지배의 방법으로 우리의 이익을 지킨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남북의 분열을 이것이 지역분열과 지역이기주의를 만들고 이것이 군사독재 노사갈등 외국인 차별 등의 문제를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것이다.나는 최근 들어 국제결혼으로 인한 외국인 유입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같다. 첫째, 외국인 문제와 코시안의 문제가 현 사회에 커다란 충격적 사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우리가 오늘의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임했을 때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더 먼 미래에 우리 사회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시한폭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미래에 선생님이 꿈인 나에게 앞으로 내가 접하게 될 교실환경이 염려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코시안이란 말은 1997년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단체들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한국(Korea)에 거주하는 아시아인(Asian)’ 이라는 뜻이다. 국제결혼 가정과 이주 가정 등 넓은 의미로 만들어졌으나 그 의미가 변질돼 ‘아시아 출신의 이민자와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농어촌 총각 8,596명 가운데 41%인 3천5백여 명이 외국인 신부를 맞았다. 이는 즉 10명중에 4명꼴로 국제결혼을 한 것이다. 2005년에 35.9%였던 것에 비하면 농어촌 총각의 국제결혼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인데 외국인 신부의 국적을 따져 보면 중국이 48.4%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베트남이 33.5%, 그리고 일본이 4.9% 순이었다. 또 신부의 국적이 베트남이 2005년 5822명에서 10131명으로 74%, 필리핀이 997명에서 1157명으로 16%, 캄보디아가 157명에서 394명으로 151% 증가하면서 동남아 지역 출신의 신부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인 아빠와 동남아 출신 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코시안도 계속 늘고 있어서 현재 잠정적으로 2만 여명으로 통계되지만 10년 쯤 뒤에는 농어촌 지역 학생의 1/4을 코시안들이 채울 거라는 게 교육부의 전망이다.이렇듯 코시안의 수는 양적으로 많아지고 있는데,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사회는 어떤 대처를 하고 있을까? 대체로 일각에서는 다문화사회에 대한 담론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언론에서도 외국인농촌새댁과 그 가족을 소개에 주는 프로가 많이 생겨서 우리에게 따듯함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포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우리는 결혼이주자에게는 한국식으로의 동화 또는 무권력, 침묵 이외에는 선택할 것이 주어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마치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만드는 허구를 보여주고 있고, 그 자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인종차별의식 심어주어 스스로 왕따의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한국은 1997년 홍콩에 본사를 둔 정치경제위험자문사(PERC)가 격주로 발행하는 「아시아 정보 보고서」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배타적이고 편견을 가진 아시아 국가로 지목되기도 했다. 물론 10년 전이니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여성결혼이민자 자녀의 경우 유아기에 한국어가 미숙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므로 언어 발달 지체가 나타난다. 코시안 아동사례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큰 무리가 없으나 독해, 어휘력, 쓰기, 작문 능력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의 언어 발달 지체 및 문화 부적응으로 인해 학교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며, 지나치게 소극적이거나 반대로 폭력성 또는 과잉행동장애(ADHD)를 보이는 등 정서장애도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2006년 3월,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 학교에 다니는 흑인계 청소년의 경우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비율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 37%가 스스로를 외국인이라 여기며, 66%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모두 아닌 애매한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여기는 비율은 외모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에 비례한다. 백인계 청소년들은 11.8%, 아시아계 청소년들은 51.4%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교과서 속의 사진이나 삽화들이 설정하고 있는 표준적인 한국인의 유형 또한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원인으로 작용한다.이와같이 혼혈인들이 겪는 차별적 배제의 근원에는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뿌리 깊은 혈통주의 정서가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아동들에게 주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세대로부터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아동들에게 문화적으로 전수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통해 주입되기도 한다. 가령,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인 ‘시민윤리’에는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국가이다.???????? 피를 나눈 동포들에 대한 연대 의식으로서 민족 공동체 의식은 애국심과 비교될 만하다”고 적고 있다. 국사 교과서에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대목이 나왔다. 비록 최근 들어 한국사회내에서 단일민족 통념이 해체되고 있지만 혼혈인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별과 편견은 이처럼 여전하다. 또한 이 가운데 그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한국 내에 유포되는 단일민족론은 물론이고, 외국인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는 점차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또 다시 사회 내에서 기득권자와 소수자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심화시키는 용인으로 작용한다는 데 역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문제가 이런 식으로 방치된다면 미국이나 호주에서 있었던 폭동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8.06.13| 4페이지| 1,000원| 조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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