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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과 문화
    {조 명: 도롱이비를 막아주고, 체온을 따뜻이 유지시켜주는 도롱이 처럼, 우리말을 아끼고 잘 지켜나가자는 뜻으로 지음.주제衣食住중 衣와 관련된 우리말을 통한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 내용서론: 衣와 언어는 인간만의 고유특징본론: 시대에 따른 우리의 복식 문화색깔을 통해 알아본 우리의 복식 문화포켓, 등명치마, 감치다 를 통해 알아본 한국인의 문화 및 정서사진을 통해 본 우리의 옷衣와 관련된 우리말결론: 되살리고 보전시켜야할 소중한 우리말과 우리의 자세. 조원 및 역활. 작업일지{일 시내 용11월9일.역할분담 설정, 자료조사 범위설정11월12일.조명도롱이로 결정.자료취합 및 초안 작성11월14일.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추가 자료 조사(시대에 따른 복식사, 오방색).단순히 옷과 관련된 말의 소개보다는 문화에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함11월17일.E-mail로 자료취합해 초안에 추가11월19일.초안에 대한 검토.시대에 따른 복식사가 길다는 지적에 따라 요약.기생의 옷에 대한 특징 부분 삭제11월21일.실제 우리의 옷을 보여주자는 취지에 따라 사진 삽입11월22일.탈고 및 최종안 완성1.서론인간이 생활해 나가는데 필요한 3대 요소가 衣食住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유독 피복생활, 언어와 더불어 만물 중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다. 고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피복은 우리에게 필요불가분한 것으로 그 의의와 목적을 다하고 있다. 우리 옷’이라는 개념 속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 굳이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특성들과 느낌 뿐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것, 그리고 오랜 역사를 두고 이어져 온 것이라는 의미가 내재 되어 있는, 민족고유의 미감을 충분히 반영한 옷을 말하는 것일게다. 우리가 ‘우리 옷’하면 떠올리는 전통한복은 우리네 조상들의 풍류와 멋을 한껏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따라서, 옷에 관련된 우리말을 통해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알아보자피복 어원은 Klo 직물이나 장신구의 문양, 소재도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며, 신분에 따라 사용한 복제도 유교적인 바탕에서 질서 유지를 위한 자연스러운 제도였다. 부족함을 소박함으로, 풍요로움을 여유로 받아들이고, 정확하고 치밀한 것보다는 편안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한 조상들의 미적 안목이 현대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자연과 함께 하며 그 근원을 자연에 두고 있음이 아닐까 한다.우리나라의 전통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복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중국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 조선 초기에 거의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옷의 원류는 북방계 복식권에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방계 복식이란 상의하고 (上衣下袴 : 윗옷과 바지)를 기본으로 하는 분할형 양식으로, 유라시아 대륙 초원 지대에 살았던 기마 유목민(스키타이계 문화)의 복장이었으며 추운 날씨와 유목생활에 맞는 실용적인 형태였다. 우리 민족이 최초로 북방계 복식을 착용한 모습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치마,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가 우리 민족의 기본 복식 형태이다.우리 옷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바느질법을 개발하고 터득해 독특한 배색과 선의 처리로 다양하고 아름답게 변화 발전되어 왔다.고려의 복식은 신라시대의 것을 계승하면서 송, 원, 명제 복식의 영향으로 중국 양식이 많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중국 복식제도는 왕실과 귀족층 일부의 관복과 예복에만 국한되었고, 서민층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 복식이 계속 이어져 왔다.고려말 이후로 여자의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고, 허리에 매던 대(帶) 대신 고름을 달았으며, 귀부인이나 평민의 옷은 거의 구별이 없었다. 가을과 겨울에 노랑 비단 치마를 입었는데 귀부인은 주름이 많은 치마를 즐겨 입고, 부녀자가 외출할 때는 너울을 썼다.조선시대 복식은 태조 즉위년인 1392년부터 대한 제국으로 독립되기 전까지 500년간의 복식을 말한다.조선시대 복식문화는 사회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신분과 권력에 따른 복식이 특색있방위로 보더라도 검은색에 해당되는 것은 겨울이다. 상여 나갈 때 상여꾼들이 부르는 노래중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상여소리 중에 더러 "북망산처언~"..한다. 북망산천(北邙山川)은 보통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말한다. 즉, 북쪽은 어둡고 추운 곳을 의미하며 따라서 저승사자들은 모두 검은색 옷을 입은 것으로 추정한다. 좋은 일에는 보통 붉은색을 사용하지만 상례·제례 등 음(陰)한 상황에 대해서는 유독 흰색과 검은색만이 사용되는 독특한 양상이 나타난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상복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는 일이 늘어났다. 이것은 바로 서양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산 사람에게 다시 돌아올까봐 자신을 가리기 위해 검은색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붉은색은 벽사(酸邪)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벽사란, 잡귀를 물리친다, 사악한 것을 없앤다 이런 의미다. 왜 붉은색이 벽사의 색이 되었을까? 붉은색은 태양, 불, 피 등을 나타내는 색이다. 고대인들은 불과 태양을 숭상했는데 여기서부터 그것이 갖는 벽사의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음식 중에서는 팥죽이 벽사 음식의 대표이다. 손톱에 들이는 봉숭아물도 귀신을 쫓아내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무당들은 부적을 쓸 때 붉은색 글씨로 쓰고, 굿을 할 때 붉은색이 많이 들어간 옷을 입었던 것이다.중국 황제의 용포는 노란색의 황룡포였다. 이것은 중국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그들의 오랜 사상 때문이다. 따라서, 황제는 오방색중 우주의 중심에 해당하는 노란색을 입었고, 일반인들이나 속국의 왕들이 노란색을 입는 것을 금했다. 우리나라는 황제의 나라보다 한 단계 낮은 제후의 나라였기 때문에왕이 붉은색 용포를 입게 되었다. 또한, 화사한 다홍색 치마는 오직 왕비만이 입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반 사강서도 신부(新婦)의 옷은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신부들이 입는 활옷.. 혼례복도 붉은색 비단에 화사하게 수를 놓은 것이었다.우리민족을 백의 민족이라고 하지만,량들은 향주머니를 허리춤에 찬다. 또 땀수건이나 투전같은 휴대품은 옷소매에 넣고 다닌다. 한복의 옷 소매통은 바로 이 포켓을 거부한는 반동 때문에 커진 것이다. 포켓이 필요치 않은 정착생활에 가치를 두고, 장사꾼이나 심부름꾼같은 포켓이 필요한 이동생활에 가치를 두질 않았던데서 할머니는 손자의 스웨터에서 포켓을 떼어 입히는 그런 전통적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었다.우리나라 무복(巫服)가운데 하나로 이같은 등명치마라로 불리는 전통적 미니 스커트가 있었던 것이다. 등명이란 말은 신당에 켜진 촛불을 뜻한, 우린 나라 토속 신앙의 의례가운데 하나로 숫처녀로 하여금 신당에 들어가 그 신전에 수청드는 행위 곧 신교(神交)하는 것을 등명든다고 한다. 이 등명을 들 때 숫처녀가 입는 치마라서 등명치마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아마 우리 전통적 신령들도 각선미에만은 약했던가 보다. 이 등명 치마가 무복의 하나로 전승되어 내리는 동안 여염까지 번져 팔푼치마 또는 사태치마로 바지위에 걸치는 짧은 치마로 유형화된 것이다. 좀 노자란 사람을 팔푼이라 하듯이 길이가 좀 모자란다 하여 팔푼치마요, 사타구니 곧 성감대인 허벅지에 치마끝이 와 닿는다 하여 사태치마로 불렸을 것이다. 미니 스커트보다 훨씬 감각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옛날 서양의 여자는 바지 속곳을 입지 않았고, 위속곳인 셔츠가 길어서 skirt 가 됐다. 고대 영어에서 shirt*skirt*short는 같은 어원으로 스커트가 짧다는 것, 곧 미니 지향을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스커트인 치마 의 어원을 중국 고대 문헌인 에 나오는 치마란 뜻인 초막에서 찾고 있는 분도 있으나 정교의 에, 바지가 북방계 의류요,치마가 남방계의류인 점, 그리고 남방계 말에 치마 같은 하의를 마 라 부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방계에서 그 어원을 찾아봄직도 하다.서양 사람이나 중국사람은 방안에 서서는 사는 것이 정상인 반면, 한국 사람은 방안에서 앉아 있는 것이 정상이며 기본자세이다. 방안에서 서 있는 것은 앉기 위한 예비 자세가 아니의 날개를 겹으로 당하관은 홑으로 하여 구별하였다.{구장복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걸쳐 왕이 착용한 구장문의 대례복.衣, 常, 중단, 대대, 혁대, 폐슬, 패옥, 수,방심곡령, 규, 말, 석으로 구성된다. 깃 도련,소매끝에 衣색과 같은 색의 선을 두루며 5장문이 그려지는데 양어깨에는 화, 화충 종이의 문양이 놓인다. 常은 붉은색의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들며 조, 분미, 보(도끼), 불의 4장문이 수 놓아진다. 구장복에는 면류관을 병용한다.{심의(深衣)선비가 한거시(閑居時)에 착용한 평상복으로 예종때 왕이 입었다는 기록도 있다. 대부분의 포와는 달리 의와 상(常)이 따로 재단되어 연결되며 12폭의 상이 몸을 감싸게되어 심원한 느낌을 주는데 심의라는 말도 이런 뜻에서 유래된 것 같다. 심의를 입을 때는 사(沙)로 만든 검정색의 복건을 쓰고 띠를 매었는데 흰색 바탕과 조화를 이루어 학자다운 고귀한 기품을 풍긴다. 12폭은 1년4계절이 12달로 구현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선을 두른 것은 부모에 대한효도와 공경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연봉무지기연꽃의 빛깔처럼 끝을 물들인 여자의 속치마로 치마단을 각각 주름을 잡아 5단이나 7단으로 이은 것과 1단만을 붙인 것이 있다. 예장 (禮裝)할 때 허리에서부터 아래가 퍼지도록 하기 위하여 연봉 무지기를 입고 겉치마를 입어 옷맵시를 한층 더 살아나게 했다{황포황룡표라고도하며 조선시대 말기 황제가 착용하던 상복이다. 우리나라는 중 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갖추어 홍룡표를 입었는데 광무 원년 인1897년에 고 종이 칭호를 황제로 바꾸면서 중국 황제와 똑같은 색과 모양의황룡포를 입게 되었다.{철릭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하여 허리에 연결시킨 형 태의 포이다. 조선시대에 왕을 비롯하여 문무관이 착용하던 곧은 깃의 포로 상의인 유와 하의인 상이 연결된 형태인데 상에 잔주름이 잡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착용시기는 원나라의 상하 연속의를 비롯한 군병복에서 유래되었다 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입은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선조 때에는 전란이 잦자 사대머리양식
    인문/어학| 2002.04.14| 13페이지| 1,000원| 조회(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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