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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를 읽고(감상문) 평가B괜찮아요
    Ⅰ. 들어가는 말외국군 주둔사 라 하면 기껏해야 고려의 몽고군,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시기의 일본군, 현재의 주한미군 등에 관한 내용 정도가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그 외에도 삼국시기의 당나라군, 모문룡군,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사건 등등... 시대별로 깊게 서술되어 있었다! 역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나로서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내 편견이나 고정관념도 깨뜨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역사적 안목을 넓힐 수 있어서 정말 만족한다.Ⅱ. PART의 책의 줄거리와 감상결국 백제와 고구려가 망했다.. 외교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각각 외교의 실패와 성공으로 한 나라는 멸망에 이르고 한 나라는 예상치 못했던 통일까지 이루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김춘추의 제의만 받아들였다면 몽고군도 일본군도 우리나라의 역사상에서 사라졌을 거란 생각에 한이 남는다! 난 항상 고구려를 좋아했다. 그 용맹함이 좋았고, 광활한 영토가 좋았다. 지리부도에서 금빛으로 칠해진 고구려의 영토만 보면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한 번의 외교적 실책으로 만주가 한국사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린 것에 대해 아쉽기만 할 뿐이다.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당의 연호를 사용하고 관복을 입음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지위를 격하시켰다. 결국 당은 눈엣가시 같던 고구려를 제거한 후 신라지역까지 자신들의 자치부로 격하시키려 했다. 살기 위해 불러들인 외국군의 폐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신라는 치밀한 외교와 전략으로 결국 통일을 달성하고 당군을 몰아냈다. 영토상으로 불완전했고 자주적이지 못했지만 세 나라의 대립을 제거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했다는 점을 높이 살만하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전쟁의 종식은 역사의 주체인 민중들의 삶을 지켜줄 수 있었고, 찬란한 문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거란, 여진, 몽고, 홍건적, 왜구 등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였다.13세기 무신정권시기 크게 약화된 군사력이 문제였다.100년이라는 긴 몽고군의 주둔은 그 영향이 실로 엄청났다.몽고식 이름의 유행 등 언어생활뿐 아니라 엄인을 쓰기 시작한 것, 또 두루마기 저고리 신부의 연지 등 이른바 몽고풍이라 하는 것도 문화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그리고 우리의 자주성도 철저히 유린당했다. 왕호와 관제가 격하되었고 영토를 상실했으며 우리의 군대는 외국군의 손과 발이 되어서 민족을 죽이고 일본정벌에 동원되어야 했다.일본이 대민 회유를 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중학교 때 안토니아 꼬레아의 얘기를 담은 소설인 베니스의 개성상인 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그 일이 그다지 비극적이라 생각되지 않았는데 전쟁으로 팔려간 다른 노예들의 불안하고 힘든 생활을 생각해보게 되었다.투항한 일본인(귀화인)에 대한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전쟁 후 전국의 인구가 6,7분의 1로 줄었고 농지의 3분의 2가 황무지가 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백성들이 인육까지 먹었을 법도 하다.이 또한 우리민족의 발전을 저해~!우리를 도우러온 명군도 조선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사라지면 명도 온전치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군사를 파견한 것이다.그런데도 명군의 군량을 조선이 조달함으로 해서 백성들의 생활이 파탄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고 신라 때의 당군처럼 전쟁을 기피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우리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욕을 보였다. 이 또한 역사상에서 지웠으면 하는 약소국의 설움이다.이 책에서 처음 접하게 된 내용이다.조선에서 곡식이나 축내고 정치에 간섭한 모문룡군 자체도 잘못이지만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태도와 사상부터가 그릇되어있었다. 힘이 없는 명분이란 사상누각과도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명에 대한 사대를 유지하기 위해 강대국인 청을 적국으로 삼고 결국은 청의 침입을 야기한 것이다.還鄕녀가 화냥년의 유래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일본의 외교전략에 경악했다.. 어찌도 그리 철두철미한지... 정확한 국제 정세의 흐름 인식 뛰어난 지도자들 어찌 보면 열강들도 서로 살아남기 위해 식민지를 건설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일본에 많은 면에서 미치지 못했음은 사실이다. 지금 아쉬운 것은 외교문서를 잘못 해석해서 외교에서 큰 손실을 보는 등 아직까지도 외교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다는 것이다.제주도 남쪽 작은 섬 거문도. 우리의 국력이 강했다면 물론 강제점령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고. 당시 러시아와 일본의 압박 등 홍콩처럼 영국에 할양되는 등의 치욕을 겪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배울 것은 거문도에서의 영국군의 세련된 대만정책이다. 영국군은 조선의 전통풍습을 잘 알고 대처해서 주민들에게 신임을 얻었고, 그로 인해 많은 노동력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일제 식민지하의 일본군은 우리민족사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이 부분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일본군과 한국현대사 대한민국 국군 장성 중에서 일본군출신이 75%나 된다는 것이다. 독립 후에도 나라가 일제 침략군의 주구로 해워지다니...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한국 남자로서 억압적이고 비상식적인 군대문화가 일본내무반 생활의 전동이었다는 것에 침통할 따름이다.짧지만 치밀한 대 일전으로 소련은 한반도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1000여 년만에 다시 분단국가가 되었고 북한은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소련도 주한 미군처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으로 한반도를 채워서 방패로 자신들의 방패로 사용하려 했다. 금새 철수했지만 소련군은 한국전쟁을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분단정권을 만든 제1의 공로자라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50년이라는 최장기간에 최대규모의 주둔군이다. 그로 인해 전 국토가 미군의 기지화 되었다.그리고 사상이 다르긴 하지만 삼별초와의 전투처럼 같은 민족을 적대시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이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떼어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제주항쟁이라는 것과 우리나라 정치에 미군이 많은 간섭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정치 상황실이라 불릴 만 했다.
    독후감/창작| 2003.07.11| 4페이지| 1,000원| 조회(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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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한중일 삼국의 성(姓)
    目次제Ⅰ장. 서론제Ⅱ장. 본론제1절. 성(姓)이란 무엇인가?1. 성(姓)의 개념과 한중일 삼국2. 성(姓)의 중요성제2절. 한·중·일 삼국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1. 중국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2. 한국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3. 일본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제3절. 한·중·일 삼국의 성(姓)의 특징1. 한국의 성(姓)의 특징2. 중국의 성(姓)의 특징3. 일본의 성(姓)의 특징Ⅲ. 결론제Ⅰ장. 서론성(姓)은 우리의 뿌리이다. 인간의 존재의 시작을 말해주는 성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화는 역사에 따라 다르고, 역사에는 문화가 반영되므로, 후술하는 것들을 이해함으로써 한·중·일 삼국의 역사에 대한 안목을 좀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조선시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씨(姓氏)라는 것이 문중(門中)이라는 개념에 얽매여 그릇된 혈연의식의 발로가 되는 그림자일 수 있는 만큼, 우리의 뿌리와 조상을 제대로 아는 것은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어떤 사회적 사건이던지 그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관점에서 보아야한다.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해야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우선 성(姓)에 대한 개념과 성(姓)의 중요성에 대해 살필 것이고, 그 후 한·중·일 삼국의 성(姓) 사용의 시작과 역사적 흐름을 서술할 것이다.성(姓)이라는 동아시아에 동질적이었던 요소가 한·중·일 삼국에 어떻게 형성되고 진행되는지를 3국을 비교하면서, 같은 점(일반성)을 약간 다루고 다른 점(특수성)을 파악하고 얻게 될 것이고,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문화적 동질성과 차별성을 균형감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안목을 배양시키고,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겠다.한·중·일 삼국의 성의 특징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도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깊은 내용은 성(姓)의 역사 부분에서 조금씩 짚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보다 특징에 치우치는 내용이라면 특징 부분에서 다루게 될 것 이는 유명한 실증주의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이 말한 민족의 개념) 민족이란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이 강연한 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민족국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종도 언어도 아니고 사상, 이해관계, 애정이 그 요소이며 그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사회 역사적 배경의 격차가 큰 유럽과는 달리 시·공간적으로 수많은 문화를 주고받았던 동아시아 3국의 성에 대한 이해는 공통점이 많다., 즉 유럽에서의 성씨가 가지는 개념과는 어느 정도 다른 것이지만, 우리는 성씨가 우리민족에게 주는 그 가치와 중요함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이렇듯 인간의 존재의 시작을 말해주는 성(姓)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2. 성(姓)의 중요성처음 만나면 으레 통성명(通姓名)부터 하는 것은 동·서양(東西洋) 사람 모두 같다. 그러나 우리의 방법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훨씬 번거롭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밝히고 악수를 하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수인사(修人事)는 상대방이 종씨(宗氏)인 경우 본관(本貫)을 따지고 항렬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다음으로 파(派)를 따져 고향(故鄕)마저 알게 되며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상정(常情)이다.우리 사회에는 씨족관념과 성(姓)의 의식이 아직도 뿌리깊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호적(戶籍)에 본관(本貫)을 적어 부계혈통(父系血統)을 밝힌다던가, 동성동본(同姓同本) 사이의 혼인을 터부(taboo)한다던가 다투어 문중(門中)에서 족보를 편찬한다던가 하는 일이 그 단계적인 표현이다. 이름을 작명할 때 항렬(行列)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서도 뿌리깊은 성명(姓名)의식의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또한 성씨는 씨족끼리의 일체감 속에 자기를 귀속·확인시켜 안정감을 갖게 하고, 나아가서 민족유대(民族紐帶)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며, 사회적 지위의식(地位意識)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예컨대 특정성씨의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는 그 성씨 모두의 사회적 신분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특이웃 봉건국가에도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주나라의 지배계급은 씨족제도를 기초로 한 것이 확실하다. 그들에게는 종법(宗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씨족으로 영지의 군주로 부임하면 새로 종묘를 짓고, 그 지역의 맨 처음 봉군이 되었던 사람을 조상으로 모셨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본관에 의한 시조 탄생과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는 제도였는데, 단지 갈라져 나간 사람들이 일족인 주나라의 희(姬)씨 성을 가지면서 각자 씨(氏)의 개념이 있는 다른 성(姓)의 명칭을 가졌다. 그렇게 분가해 나가면서 또 다른 성(姓)이 생기곤 했다.점차 전통적 귀천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씨(氏)가 지니고 있던 귀천의 구분 기능은 상실되고, 단지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종족의 표지가 되었다. 이것은 성(姓)이 춘추전국시대 치열한 권력투쟁이나 전쟁과정에서 능력주의가 발현하면서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전국시대 이후 평민들은 성을 선택할 때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표지(標識)로서의 의의를 혈연의 신성함보다 중요시했다. 그 당시에는 성을 바꾸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선택된 성씨는 점차 안정되어 갔으며, 특히 국가의 호적에 등록한 후에는 쉽게 바꾸지 못하였다. 이로서 성의 혈연적 의의는 나날이 강화되었다.중국에서도 진(秦)나라 때까지는 성(姓)은 귀족만의 것이었기에, 성은 곧 귀족이라는 증표이었다. 그러던 것이 진한제국(기원전 221년∼기원후 220년) 말기에는 모든 백성이 성(姓)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을 사가(史家)들은 지배자가 백성의 가족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을 단위로 지배를 효율화하기 위하여 사성(賜姓)했다고 보고 있다. 그 때부터 백성(百姓)은 귀족(貴族)이 아닌 평등한 제민(齊民)을 뜻하게 되었다. 이는 시기적으로 볼 때 고려의 사성보다 약 1,000년 앞서는 것이다. 현재 중국 성씨는 중국성씨대사전에 의하면(1990년) 1만 1969개로 집계되어 있다.2. 한국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성씨의 발생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세히 알 수는 없급을 받았다. 그러나,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어느 누구라도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기회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동(洞)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성씨의 종류수가 더욱 늘어났다.일제식민 통치하에서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라며 1939년에 시행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은 1945년 해방과 1946년 10월 23 일 미군정이 공포한 '조선성명 복구령'에 따라 이름을 다시 찾을 때까지 우리나라 성씨 역사의 가장 큰 수난기였다. 이후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의 귀화 등으로 새로운 성씨와 본관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3. 일본의 성(姓)의 시작과 역사일본의 성씨제도 역사는 『송서(宋書)』에 있는 왜(倭)국의 다섯 임금이 송에 조공하여 왜왕으로서 책봉 받았다(413∼502년)는 기사에서 시작한다.일본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성을 갖게 된 것은 1875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있었던 칙령 때문이다. 창씨령(創氏令)에 따라 모든 국민은 성을 가지라는 정부의 강제 명령이었다.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성을 갖게 하는 조치는 당시 있었던 개혁의 일환이었다. 서양의 선진문화를 따라 잡는다는 일본 역사상 가장 큰 개혁을 추진한 때였던 것이다.제3절. 한·중·일 삼국의 성(姓)의 특징- 한·중·일 삼국에서의 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 속에서 개인의 소속집단 구분이나 지배집단의 사회적 신분과 특권 유지, 그리고 국가 질서의 안정과 세역 수취 등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역사적 과정에서 표지(標識)가 만들어졌다. 즉 성(姓)은 목적면에서 조금씩 특수성을 지니나, 친족집단의 표지를 위하는 등의 자신과 타자를 구분해야 할 필요에서 발생하였다.- 중국과 한국, 일본 동아시아 삼국은 족보들을 보면 시조의 윗대를 중국에 연관시키고 있는 것에 연유한다. 시조의 상계(上系)를 중국 쪽에 두어 다른 성씨에 비해 긴 역사를 가졌다거나 자신의 조상이 고대 중국 황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등으로 자기 성씨의 위대함을 자랑하곤 한다.) 예를 들면 고구려에서 나타난 고씨(高氏)는 중국 고대의 황제 곡( )이 가졌던 고신씨(高莘氏)의 후예로 보고, 김씨(金氏)는 중국 고대의 건국 조상인 황제(黃帝)의 아들이라 하는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역시 성씨의 사대성에서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김정현著, 『흥하는 성씨 사라진 성씨』, 조선일보사, 2001년 8월 , (p. 29)]2. 중국의 성(姓)의 특징문헌상 중국의 성씨는 1만 1,960여 개에 이른다. 왕씨, 이씨, 장씨, 유씨, 진씨 의 5대 성씨가 3억 5천만 명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따라서 성씨가 다양하고 종류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중국은 광대한 땅과 다양한 민족 등 지리적으로나 종족적으로나 여건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공간적으로 넓고 다양하면서도 바다, 사막과 초원, 높은 산맥과 고원으로 인해 고립성이 강한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마찬가지로 중국의 역사와 성씨, 종족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을 지녀서,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성씨 발생과 함께 본관제도가 우리처럼 정착되지는 못하였다.중국 姓의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나라는 단성(單姓)과 복성(複姓)의 두 종류만 있는데 비해, 중국은 단성, 복성, 3자성(三字姓)부터 아홉 글자로 된 성까지 있다) 여러 글자로 된 성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3자성 아사덕(阿史德) : 돌궐족의 성씨 (아스더), 4자성 : 나목도로(那木都魯) : 만주족의 성씨 (나무뚜루), 5자 성씨 찰합찰자아(察哈 刺兒) : 몽궐족의 성씨 (차하차라얼) …… 9자성씨 : 찰노복리근다예백태( 卜里勤多禮伯台) : 몽골족의 성씨 (차라오푸리진두어리바이타이)이다.
    인문/어학| 2003.05.01| 12페이지| 5,000원| 조회(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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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코메니우스와 실학주의 평가C아쉬워요
    目次Ⅰ. 코메니우스1. 코메니우스 (Comenius, Johann, 1592∼1670)의 생애2. 코메니우스의 교육관3. 교육의 방법4. 교육사상사적 의의Ⅱ. 실학주의1. 실학주의의 시대적 배경2. 실학주의의 발전(1) 인문적 실학주의(2) 사회적 실학주의(3) 감각적 실학주의Ⅰ. 코메니우스1. 코메니우스 (Comenius, Johann, 1592∼1670)의 생애체코슬로바키아 서부지방인 보헤미아출신의 감각적 실학주의 교육사상가이다. 그는 보헤미아에서 하층 중간계급인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코메니우스는 10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11세에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의 집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유소년시절 의 교육은 정상적으로 받지 못했다. 16세(1608)에 그는 프레라우(Prerau)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비로소 정규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20세 때부터 다닌 헤르본 대학에서는 신학과 철학을 배웠고, 1613년부터 1614년 사이는 하이텔베르크 대학과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 마친 코메니우스는 조국에 돌아가 교단소속의 학교교사로, 그리고 교단의 목사로서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즉, 1614년에 그는 모교인 프레라우 시민학교의 교장이 되어, 그가 유학시절에 알았던 라트케주의의 새 교수법을 채용하여 교수개혁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디었다. 5년간의 국내 도피생활에서도 끊임없는 박해를 받은 코메니우스는 1625년 교단의 수뇌와 의논하여 폴란드의 게에릿스로 망명하였으며 이후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지 못했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그의 일은 폴란드, 프로이센, 헝가리, 스웨덴을 전전하면서도 계속되었다. 그 동안 교사로서 교육이론가로서, 교과서의 저술가로서 다른 사상가들의 사상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끊이지 않는 개발과 성숙의 삶을 살았다. 그는 말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670년 11월 15일에 78세의 나이에 인생을 마쳤다.2. 코메니우스의 교육관1) 교육의 목적: 교육의 목적은 행복에 있으며, 따라서 만인에게 행복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습자의 마음과 신체, 개인과 사회, 이론과 실천이 전반적으로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만인의 교육가능성을 확고하게 믿었다.그리고 그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내세의 준비에 두었다. 이 준비는 박식, 덕, 경건의 세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 준비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 교육을 주장한다.2) 교육 사상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 기초 :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 (범지학)(1) 범지학코메니우스는 30년 전쟁 초기에 절망적인 현실부정사상을 지니고 당시의 정치·학문·종교를 모두 부정하였으나, 원리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다시 새롭게 포착하여 청소년교육과 민중계몽의 방법을 범지(汎知:pansophia)로서 체계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것이 코메니우스 교육학의 가장 큰 특징인 범지학의 배경이다. 이는 인간의 지적인 이성을 도야함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삶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합리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범지학이라는 말은 코메니우스에 의해 사용되어 당시에 널리 통용되고 있던 용어로써, 모든 과학과 학문을 통합하는 범과학, 범우주적 지혜, 백과전서적 지식을 총칭하고 있다. 또, 신과 자연과 예술에 대한 총체적 앎을 지칭한다. 인간의 교육은 어느 일면 만의 교육이 아니라 삶의 전체를 포섭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이는 어느 특정한 계층의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2) 평등교육사상코메니우스는 자신의 범지학 이론에 의한 교육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신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자각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얻을 수 있도록 창조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코메니우스에 있어서 학교란 경우에 따라서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 됨을 완성하기 위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남녀, 빈부, 신분의 귀천 등의 구별에 관계없이 모자연주의적 교수이론코메니우스에 있어서 학문이란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천명되어 있는 자연에 관한 학문, 즉 사물의 본질에 관한 지식을 일컫는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학문관은 그의 실학주의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물의 교육 또는 교육 일반에 있어서 그 방법은 철저하게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교수방법의 원리는 자연현상으로부터 도출하거나 유추해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코메니우스의 교육관을 흔히 감각적 실학주의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직관교육이라고 하기도 한다.그의 직관교육 방법은 "언어 이전에 사물"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이는 종래의 인문주의적 교육이 범했던 오류를 시정하고, 좀 더 인간의 자연 본성에 맞는 교육방법을 추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언어는 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단지 수단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교육을 창조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코메니우스는 라틴어 교재로 씌어졌던 언어입문에 그림을 첨가하고 재편집하여 그 유명한 세계도회를 집필하였다.3) 교육의 단계(1) 어머니 무릎 학교(Schola Materni Gremii)그는 어머니는 최고의 교사이며 가정은 최초의 학교라 하였다. 건강의 양호, 일상의 언어, 도덕 및 신앙의 기초, 자연계의 사실과 진리를 배우도록 한다. 그는 『유아학교(1630)』라는 책을 저술하여 어머니들의 교육의 지침으로 삼길 원했다.(2) 모국어 학교 (Schola vernacula)모국어를 공부하는 곳으로서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학교의 목적은 모국어를 사용하여 기초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 마을마다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3) 라틴학교 (Schola Latina)이 학교는 라틴어뿐 아니라 모국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배우는 곳으로써 언어 외에 문법, 자연철학, 수학, 변증법, 수사학 등을 공부하도록 한다. 모든 도시에 세워지기를 희망하였다.(4) 대학 (Schola Sch6년간 교육. 소수의 탁월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으로써 입학시험 존재하고, 대학의 마지막 학년은 여행을 하도록 한다.3. 교육의 방법효과적인 교육은 아동의 본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이 어른의 축소판이 아닌 그들의 고유한 발달특성과 차이로부터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교수법을 빌려와야 한다고 하였다. 자연으로부터의 교육은 감각교육을 말하는데, 직접 느끼고 배우도록 하는 실물교육, 그림을 통한 교육, 현장실습교육 등이 바로 그 것이다. 그 감각교육을 위하여 그는 최초의 그림이 있는 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교육에 있어서 강제를 배격하였다. 그는 교육방법의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학습이 신속하고 유쾌하고 철저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유아의 놀이를 주요한 교육내용으로 간주하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도회에서 감각적 직관을 강조 즉, 학습은 감각적인 것을 통하여 가장 잘 성취되며, 감각교육은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된다고 하였다.다음의 자연적 순서에 따라 교육과정이 진행된다면 학습이 쉬울 것이라고 하였다.1) 마음의 순수성을 잃기 전에 일찍 학습이 시작될 때 2) 마음에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3) 교육과정이 일반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진행될 때 4) 모든 경우에 있어서 진행을 서두르지 않을 때5) 학생들에게 많은 과목으로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을 때 6) 학습내용이 쉬운 것에서부터 진행될 때7) 아동의 본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연령에 적합한 내용과 방법을 사용할 때8) 모든 것을 감각기관의 매체를 통해 가르칠 때 9) 학습된 것을 계속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때- 교수방법론은 경험주의에 입각한 심리학적인 원칙을 기본으로 함- 교육방법은 규칙보다는 사례를 중시함4. 교육사상사적 의의1)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사상체계: 코메니우스의 사상은 교육학의 역사에서 가장 최초의 완벽한 조직적 체계적인 기독교적인 교육철학이다. 그리고 매우 독자적이고 초시대적이 이름들 - 최초 유아교육의 저술자, 과학적 수업의 아버지, 근대적 학교제도의 창안자, 시청각교육의 아버지 ,삽화가 든 교과서의 최초 제작자... - 등등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교육에 상세한 단계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코메니우스의 학교 단계가 아동의 발달 단계와 인지단계, 교육적인 적절성과 효과를 고려한 전반적인 단계이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과학적 단계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단계에서 도달해야할 발달과업을 상세히 다룰 뿐 아니라 달성하기 위한 조직적 교육내용과 교수방법까지 다루고 있다.2) 그 외: 유아교육에서 성인교육까지 이르는 일관된 교육구상, 단선적 학제 안, 남녀공학의 원리 그리고 아카데미의 구상 등은 그 후의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교육방법에서의 직관주의와 언어의 결합, 교육내용에서의 실학주의, 전체 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제도,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 등에 관한 선진적인 구상은 현재의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많은 해석자들이 코메니우스 사상의 과학적인 요소는 합리적, 근대적인 것으로 붙이고 종교적인 특징들은 미신적 중세적이라고 이름을 붙임으로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교수이론, 자연을 따르는 학습, 사물을 통한 학습 등에서 코메니우스에게는 이 자연적인 것 인간적인 것 계시적인 것이 분리되지 않는다. 세 가지 모두 하나님께서 코메니우스를 통해 드러내시는 책이었다. 자연도 인간도 종교적인 맥락에 있는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세계는 기독교적 설명을 전제하고 있다. 그의 사상의 독창성은 그의 신앙적인 태도에 의하여 파괴되거나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사상이 기독교 신앙과 근대적 사고를 결합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독특하고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오늘도 여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위기에서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묻는다. 교육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오늘도 여전히 현실적이다. 이 점이 바로 코메니우스가 400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
    사회과학| 2003.05.01| 5페이지| 1,000원| 조회(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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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독후감) '나와너' 평가B괜찮아요
    目次1. 영화광이었던 소년, 《Tango Lesson》 그리고 『나와 너』2. 인간관계에 대한 훈언서 그리고 『나와 너』3. 나의 인간관계와, 순수한 만남 그리고 대화4.『노자와 21세기』와 『나와 너』5. 배움의 道라는 것과 인격적인 만남6. 책을 쥘 때마다 느꼈던 것, 어려움...7. 당연하고 보편적인 이야기, 내가 내어 본 작은 결론8. 감상문을 쓴 후기▣ 영화광이었던 소년, 《Tango Lesson》 그리고 『나와 너』『나와 너』……. 중학교 3학년에 다닐 때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해본 책이다. 당시에 나는 또래 친구들처럼 고입 시험 준비에 열을 쏟기보다는, 영화관 집의 아들이었던 친구를 따라 무지하게 영화를 보러 다녔다. 『I and Thou』, 이는 주인공 샐리가 탱고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사랑을 그린 《Tango Lesson》이라는 영화 속에서 잠시 만났었던 책이다. 그 때 욕조에서의 샐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책이 젖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유심히 보았었던 장면이 아직도 내 뇌리에 생생하다. 당시 영화의 아름다운 탱고 선율과 미려한 화면, 주인공들의 현란한 탱고 춤에 파묻혔던 나는 단지 열정으로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 책은 얼마 가지 않아서 구석에 팽개쳐 버려졌지만 말이다. 고민 하나 없이 꿈만으로 가득 차있던 15살 어린 소년에겐 너무나도 무거운 책이었다. 아직도 그러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만남이라 부를만한 것에 대해서 진정 무지했다.그러던 나도 대학에 오게 되었고, 교육학 개론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첫 번째 수업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Buber, Martin 의 『나와 너』에 대한 말씀을 시작하셨고, 개략적인 설명을 해주실 때, 문득 그 때 그 책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때 내가 그 책을 힘들여서 읽었더라면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이 책을 읽고 나니 《Tango Lesson》에서의 파블로와 샐리의 만남과 그 관계의 진실한 발전도 BuBer의 ‘나와 너’의 관계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 파블로라는 남자 주인공이 샐리에게 춤을 추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따라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자유까지 망친다고 얘길 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왜 여자는 따라가기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후에 안 것이지만, 탱고는 여자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조화가 깨진다고 한다. 탱고에서의 그 아름다운 조화가 Buber가 말하는 진정한 ‘나와 너’의 관계와 닮은 것 같다. '전 존재를 기울여' 그 둘이 만나게 되고, 그 ‘나와 너’로서 함께 사물들의 세계를 넘어서, 비로소 사물들로 꽉 찬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훈언서 그리고 『나와 너』얼마 전부터, 사회 전반에서 인간관계에 관한 기술서가 많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가벼운 심리학적 베이스만을 다루는 연애관련 서적, 프랭클린 플래너로도 유명한 코비社의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 등의 서적과, 20:80 법칙을 설명하는 경제 심리학서 까지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훈언이 포함된 책들은 汗牛充棟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험하고 메마른 인간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전술한 책들은 방법을 위주로 한 ‘小(관계의 가장 근원적인 이치보다 작은)원리’를 언급하는 데 그친다. Buber, Martin 의 『나와 너』도 이러한 인간간의 관계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하지만 大명제를 제시해 줌으로써 삶에 무한히 적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위의 책들이 관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실천적인 제언을 덧붙이고 있는 것과 달리, 『나와 너』는 관계를 설정하는 관점 자체의 전환을 요구한다. 즉 인간관계를 ‘나-그것’의 관계로 보지 말고 ‘나-너’의 관계로 보자는 것이다. ‘나-그것’의 관계는 주객이 이분화 되고 이해 타산적인 관계에 한정된다. 어찌 보면 이 독후감을 읽는 교수님과 나 사이에도 비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의 인간관계와, 순수한 만남 그리고 대화요즘 들어서 부쩍 고등학교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수능이 끝나서 재수하는 친구들의 시간이 많이 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학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염증 때문이기도 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지 전에는 청춘사업에만 열을 올렸던 친구들의 주 관심사가, 대학에서의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염증에 관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주어졌던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며 지내왔던 이전과는 달리 대학교에서는 인간관계 또한 스스로 찾아가면서 엮어야 하며, 그 관계를 존중과 이해가 가능한 만남으로 발전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너’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 혹은 타자를 자신과 동일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관계를 형성하기까지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나’가 ‘너’이고 ‘너’도 하나의 ‘나’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밖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만감(萬感)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멀어짐의 해결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서 나를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가 너와 유사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가 너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단지 다르다는 것이 좋고 나쁨으로 구별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해줄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개방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만남과 대화가 필요한 것처럼…….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요즘 오해로 얽혔던 대인관계에서의 문제도 대강이라도 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노자와 21세기』와 『나와 너』나는 얼마 전에 『노자와 21세기』를 읽었다. 그 책을 보면,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가 엿보이는 데,『나와 너』를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해결책을 모색 또한 ’나-너’의 관점과 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올은 우리사회의 문제를 화해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책에서 "나는 3대과제로 다음의 세 가지 화해를 들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요, 그 둘째가 종교와 종교 간의 화해요, 그 셋째가 지식과 삶의 화해다. 이것이야말로 곧 우리가 노자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나와 너』에서는 그런 면이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이 ‘화해’라는 것이 Buber, Martin의 인간관계가 주(主)가 되는 설명보다는 범위가 광대하지만, 이 또한 상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Buber는 『나와 너』의 근원어 부분에서 “세계는 사람이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이중적이며 그 세계는 자신이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며 그대가 영원을 예감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듯이 자연은 인간의 태도여부에 따라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밖에 보지 않았던 것이다.비록 이 책이 우리 동양의 고전들에 비해 자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인간 중심적인 면이 많지만, 일관되게 평생을 바쳐 ‘나-너’ 관계의 본질을 철저히 밝히려 애쓴 점에서 정말로 어느 고전에 뒤쳐지지 않는 명저라 생각된다.▣ 배움의 道라는 것과 인격적인 만남당송팔대가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한퇴지가 스승을 좇아 道를 배워야 하는 까닭을 제자에게 설명한〈師說〉의 내용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生乎吾前 其聞道也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 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이를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보다 먼저 나서 그 道를 듣기를 진실로 나보다 먼저 했다면, 나는 이를 스승으로 좇을 것이다. 나보다 뒤에 나서 그 道를 듣기를 나보다 먼저 했다면, 나는 이를 스승으로 좇을 것이다. 나는 道를 스승으로 하는 것이다.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先後에 난 것을 마음에 두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貴도 없고 賤도 없고 長도 없고 少도 없으니, 道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한퇴지가 귀천노소에 구애받지 않고 따라야하는 ‘道’라고 설명한 것, 그것이 Buber, Martin의 '전 존재를 기울여' 너를 발견하고 나를 발견하여 ‘나와 너’의 관계를 성립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스승과 제자가 ‘나와 너’의 인격적인 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함께 사물들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며,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道를 깨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책을 쥘 때마다 느꼈던 것, 어려움...중학교 1학년 방학 때였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한시를 가르쳐 주셨다. 그 어느 날 배웠던 도연명의 〈오류선생전〉의 본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意會 便欣忘食” 이는 “즐겨 글을 읽지만 꼬치꼬치 파고들려고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마음에 맞는 글을 발견할 때마다 문득 흔연히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였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할아버지의 가르침 이후 내게 독서라는 것은 지식의 창고일 뿐 아니라 어줍은 풍류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런 내 독서 습관에 얽매여서 편하게 읽을 수는 없었다.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기에 즐기면서 읽기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해설까지 200여 쪽이 채 안되지만, ‘不求甚解’ 하기에는 지금까지의 내 독서가 부족했고 나 스스로가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03.05.01| 5페이지| 1,000원| 조회(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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