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전에 나타난 근대 의식 #1.서론을 제외하고는 국문학 연구사를 언급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은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입지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판소리 계통과 민속학적 측면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이로써 우리는 의 연구에 대한 그 폭과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을 조선 봉건사회 해체기, 곧 17세기 후반으로부터 19세기에 걸친 역사적 전환기에 있어 민중의 현실 인식과 이상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파악하여 이에 드러나 있는 봉건사회 해체기적 특징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다시 말해서, 이 단지 연애담이라는 형태의 미적 구성물이라는 테두리 내에서의 논의에서 벗어나 다소 시각을 확대하여 그러한 의 미학이 지니는 세계관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이 민중의 정신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밝혀 보겠다. 또한 이 조선후기 민중의 정치적 입장을 연애담이라는 형태의 미적 구성 속에 적절히 용해시킴으로써 특출한 작품이 될 수 잇었다는 그 탁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2본론=불합리한 계층구조=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에는 신분적 차별위에 구축된 봉건적 현실에 대한 부정이 전제되어 있다. 천민신분인 기생도 양반자제와 인격적으로 대등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제기한 것은 곧 현실에 있어 존재하는 신분관계를 부정한 것이었다. 양반과 천민 사이에는 넓고 깊은 신분의 강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천민으로서는 좀처럼 뛰어넘을 수 없는 강이었다. 신분의 차별과 천민에 대한 학대가 심할수록 그 강을 뛰어넘고자 하는 야심은 더욱 불타올랐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양반이며 미와 재능면에서 모자랄 것이 없었던 춘향에게는 그 야심은 훨씬 컸을 것이다. 이처럼 신분적 현실의 부정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의 실천으로서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사랑은 성립되고 있기에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 신분적 현실의 부정을 다시 부정하는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필사적인 항거는 당연한 것이었다. 즉 춘향은 당대 민중을 이 으슥한 안방 구석에 갇힌 채 햇볕도 잘 보지 못하는 부녀자들이 억제당한 애정의 욕구불만을 달래 보려고 을 탐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은 애정소설로서 당시 남녀의 애정 생활을 계몽해 주었다. 애정의 대담한 표현은 사회 문화의 발전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금욕이 미덕이 되고 남녀의 격리가 관습화된 까닭에 육체는 그 효용과 기능의 일부를 상실해 버리게 된다. 은 유교의 금욕주의적 구속 때문에 두터운 장막 속에 갇혔던 육체를 해방시켜 주었다. 인간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애정의 표현을 극히 리얼하게 표현한 성적 유희도 하나의 지식이요 문화이기에 제일 먼저 지식의 소유자인 양반들 사이에서 보급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차차 서민층에까지 퍼져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생활의 보급과 평준화는 서민층이 차차 사회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에서는 정숙한 열녀의 정렬과 요염한 기첩의 음탕한 관능을 한데 모아서 춘향을 그렸다. 춘향에게는 퇴기 월매의 요염한 기방의 유희 기법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이 도령에게도 아버지가 속하는 상층 양반층의 속물적이 관능에 탐닉하는 풍습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즉 은 그 속에 기성 윤리에 저항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내적 혁명, 의식 혁명의 글이라고 하겠다.=민중의 정치의식=에서는 외관상 결연을 주도해 나가는 자가 이도령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그러한 외관과는 달리 양인의 연대 관계는 실질적으로 춘향 쪽의 주도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 즉 유희를 위해 접근하였던 이도령을 변화시켜 마침내 상호신뢰의 관계 위에서 연대를 구축한 것은 바로 춘향 쪽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곧 이도령과 봉건 군주의 일방적 시혜에 의해 춘향이 신데렐라처럼 신분이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춘향 쪽에서의 그 동안의 주체적 노력과 고통스런 항거의 결과 이도령과의 연대관계가 달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친민중적 양반과의 연합에 의해 그 공동의 적인 탐관오리를 제거해 버리고 나면 부당한 신분적 차별에 입각해 잇는 봉건적 현실이 개조되고 해서는 안 되며, 이는 오히려 민중 쪽에서의 쟁취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3.결론이상으로 을 전환기인 봉건사회 해체기 문학으로서의 그에 나타나는 성격을 살펴보았다. 은 18세기에 형성되어 당대 민중의 정치적 이상과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계기들을 풍부히 담고 있다. 은 전환기 민중의 세계관을 기계적으로 표현한 게 아니라 미학적인 높이로 승화시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반의 입장에서 의 외관만을 피상적으로 수용한다면 양반신분의 두 인물이 한 미기를 두고 경쟁을 하여 결국 그 중 하나가 기녀를 차지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야사류에 표출되고 있는 천박한 양반적 속물근성일 뿐이다. 동일한 작품이나 수용자의 사회적 입장에 따라 그 수용양상이 상이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작품의 주제나 내용이 이중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용자의 사회적 입장이 대조적인 것에서 야기되었을 뿐이라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에 있어 계급을 부정한 두 남녀의 사랑이 지니는 의미나 역사적 견지에서의 진보적인 계기들은 봉건 사회에 머물러 있던 18, 19세기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그 전진적 의의를 잃지 않고 있으므로 을 양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대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참고문헌 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광 학술 자료사신 법률 춘향전 법률출판사◎심리학적 측면의 춘향전1.들어가며춘향전은 조선조 문학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이지만 쓰여진 연대, 작자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50여종의 이본의 200여명의 논자에 의해 600여편을 상회하는 논문의 수에 있어서도 이 춘향가의 문학사적의의나 주제의식의 역사적 의미 등을 잘 알수 있을 것 같다.이 작품은 애초에 중세기적 창의 문학으로 광대에 의해서 생성되어 그것이 문자로 정착함에 따라 드디어 소설로서도 전하게 되었다는 추측만을 남긴다.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무가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무가에서 왔다는 설을 이야기 하면 '남원읍에 사는 아가씨는 비록 용모가 추하지만 부 대해서도 논문과 이본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①妓生이다. 妓生의 딸이니 妓生이고, 妓生이니까 이몽룡의 요구에 순응했다.②妓生이 아니다. 기생이 아닌 兩班의 庶女이고, 이몽룡과의 관계는 대등한 사랑이다.③妓生이면서 妓生이 아니다. 妓生 춘향과 妓生아닌 춘향이 갈등한다.춘향은 당시 그 엄격한 조선조 신분사회에서 양반의 부인이 될 꾼을 꾼다. 이는 춘향전이 생성된 조선후기 사회의 모순구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걸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자배층으로서의 양반계층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민중들의 사회경제적의식은 확대되어 갔다. 또한 전쟁후 당쟁에 의해 양반은 더욱 자신들을 분화시켜갔고 권력을 잡은 일부만이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다. 나머지 양반은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일반 농민층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월매는 돈은 있었으나 신분이 없었고, 이도령의 家는 명색은 있었으나 경제력이 없었다. 이들 사이에서 춘향은 자신의 아버지의 신분으로 올라서고 싶은 마음은 있었을 테고 그래서 글공부를 하고, 양반부인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단시 깨인 사람들은 조선의 신분제가 타파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젊은 세대이고 늙은 세대는 기본질서를 중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계급에 대한 신구세력간의 갈등으로 보인다. 즉, 과도기 사회상의 반영으로서 이면적인 주제를 삼은 것이다. 작품에서 젊은 세대는 춘향, 이도령, 방자, 향단이 등이다. 그리고 늙은 세대는 이도령의 부모와 변학도, 그리고 이본에 따라 월매도 포함된다. 이런 신구세대간의 갈등으로 이 작품은 더욱 조선말기의 사회상을 담게 되었다.3.춘향전의 구조춘향전의 작품구조는 춘향의 옥중장면을 중심에 두고, 전후반의 상황은 대응적인 구성방식을 지닌다. 좌절에서 극복으로, 한에서 환희로의 단순대립과 현실적 삶의 불안 속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삶의 한계를 예술 속의 존재를 내세워 극복하게 함으로서,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관념적인 이상을성격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성격의 양면성은 작품속에서 춘향을 생동한는 인물로 부각시켜 나아갔다는 것이다.4.등장인물의 성격 춘향춘향(春香): 봄 바람이라는 뜻이다. 겨울의 얼어붙었던 땅에 봄바람이 분다.이것은 조선후기 신분제 사회가 흔들리는 것을 표현했다.춘향은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의 부인이 될 꿈을 꾼다. 하지만 그녀는 막연히 양반이 될 꿈을 꾸고 앉아 있었던 몽상가가 아니라, 양반부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준비해간 주도면밀한 여자였다. 그때 나타난 이가 이도령이었고 이도령은 춘향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남성이었다. 그래서 변학도가 그녀를 강제로 대령시켜 수청을 들라고 하지만 춘향은 양반이 되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그녀의 수청요구는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미 내적으로는 신분이 상승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양반의 부녀자들 처럼 정절을 생명으로 알았던 것이었다. 정절을 지닌 끝에 그녀는 정열부인으로 봉해지게 된다. 여기서의 모티브는 단군신화와의 웅녀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고난을 이겨내고 단군과 같은 초인적인 사람과 관계를 원했다. 웅녀와 단군과의 신분적 거리도 춘향과 이도령과의 거리 만큼이나 벌려져 있었던 것이다.이것은 단지 춘향의 꿈이 아니라 당시 민중들의 꾼이었을 것이다. 그 무의식중에서 웅녀의 모습이 그려져있을 우리민중들에게서응 춘향을 통해 다시한번 그 꿈을 이뤄내 보고자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이도령과 방자이몽룡(李夢龍): 꿈 속의 용이라는 뜻이다. 일반 민중들에게 몽룡은 양반이 되기 위한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꿈 속의 용처럼 보일 것이다.이도령은 양반중에서도 권세있는 양반이었ㅂ지만, 서민의 신분상승 의지를 꺽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이룰수 있도록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한다. 그는 춘향이가 기생의 신분인 줄 알면서도 그녀에게 백년해로할 언약을 하고, 불망기까지 써준다. 그것은 그녀가 비록 신분은 비천하지만 행동거지와 문장이 양반층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조동사1304339 강봉훈목차1. 들머리 3.2. 보조동사의 의존성2. 앞선 연구들에 대하여 3.3. 선행어미 ‘-아’2.1. 초기의 ‘조동사’ 4. 보조동사의 유형2.2. 전통문법에서의 ‘보조동사’ 5. 마무리2.3. 변형문법에서의 ‘복합동사’3. 보조동사와 복합동사3.1. 같은 형태의 거듭쓰임1.들머리국어의 동사들 가운데에는 “제 홀로는 완전한 풀이의 힘을 가지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동사의 뒤에 붙어서 그 동사의 풀이를 돕는 것”)으로 보이는 한 떼가 있는데 이를 ‘보조동사(조동사)’ 또는 ‘의존동사’라고 한다. 학자들마다 개념이나 범주의 설정에 따라 이견을 보이지만 여기에서는 앞 동사의 어간까지로 표현되는 명제부분에 대한 양상의 한 특수한 요소라고 보는 바이다.)2. 앞선 연구들에 관하여지금까지 우리 국어문법에 있어서 보조동사라는 개념이나 범주가 어떻게 파악되어 왔는지 편의상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보았다.2.1. 초기의 ‘조동사’‘조동사’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구한말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길준의 필사본 ?조선문전?(? : 20~4)에서이었다. (김민수, 1982 : 213~226참조) 그러나 그 ‘조동사’란 동사의 어간에 붙는 갖가지 씨끝(어미)이나 보조어간따위들을 그 예로 들어 놓고 있다. 그후 박승빈의 ?조선어학?(1935 : 285~8)에서도 영어의 조동사와 흡사한 것이라 하면서 동사뿐만 아니라 각종의 용언에 다 사용된다는 이유로 ‘조용사’라는 이름을 써서 그의 12품사중의 하나라 설정한 일이 있는데 그 내용도 앞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일본문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의 보종동사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2.2. 전통문법에서의 ‘보조동사’최현배(1937: 296~7, 502~33)에 와서 위의 조동사 개념들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하고 움직씨의 한 갈래로서의 ?도움 움직씨(보조동사?라는 범주를 새로이 설정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국어문법에서 두루 통용되고 ‘복합동사’2.3.1. 근래 변형생성문법의 이론에 따른 몇몇 연구들에서는 전통적으로 말하는 보조동사의 범주에 대하여 통사, 의미론적 입장에서 아주 다른 주장을 하였다. 이를테면 이홍배(1970)에서는 이 보조동사구문을 겹월로 보아 뒷동사(보조동사)를 모문장의 본동사로 보고 앞동사(본동사)를 내포문의 본동사로 처리하였는가 하면, 손호민(1973, 1976)등에서는 두개의 동사(본동사, 보조동사)가 일종의 복합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들은 결국 국어문법에서의 보조동사라는 범주를 따로 세우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최근 대부분의 국어학자들도 이에 따르는 경향이다.2.3.2. 한편, 역시 보조동사를 복합동사의 한 성분으로 보는 이기동(1976)등에서는 이들 보조동사의 의미를 분석적으로 살펴 봄으로써 그들이 본동사로 쓰일 때의 의미와 보조동사로 쓰일 때의 의미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보조동사의 의미에 관한 연구는 보조동사의 본질을 해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2.3.3. 그리고 서정수(1980)에서는 최현배(1961)에 제시되어 있는 보조용언들을 모두 망라하여 이들을 ‘비합성적 보조용언’과 ‘합성적 보조용언’으로 크게 두가지로 갈라보고 특히 앞의 것에 해당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들이 보조용언의 범주에서 제거되어야 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이른바 ‘비합성적 보조용언’들은 ‘합성적 보조용언’들과는 달리 그 선행용언의 어미가 관형형, 명사형, 부사형 따위로 잡다하다는 점과 함께 그 보조용언들이 ‘-게 만들다’.‘-게 되다’ 따위를 제외하고는 대개 대동사나 형식동사인 ‘하다’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특징으로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보조동사란 그 선행동사의 어미가 ‘-아’인 것만을 가리키며 대동사나 형식동사가 아닌 것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2.4. 요약 및 결론2.1의 ‘조동사’개념은 우선 그것이 동사형태가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논의할 가치가 없으나 그 이후의 주장들에도 각각 문제점이 있어서 종래의 보조지 않으면 안된다.다음으로 보조동사가 모문자의 본동사라는 견해, 또는 보조동사는 복합동사의 일부라는 견해는 양쪽 다 이른바 보조동사도 구체적인 어떤 동작을 나타내는 본동사로 쓰일 때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있는 동사라는 전제가 아니고서는 성립 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역시 합당하다고 불 수 없다. 다음 예문을 보자.(1) a. 순이가 돈을 찢었다.b. 순이가 돈을 버렸다.c. 순이가 돈을 찢어 버렸다.d. 순이가 돈을 찢어서 버렸다.예문 가운데서 우리는 보통 (1c)에서의 ‘버리다’만을 보조동사라고 하는데 이때 과연 ‘버리다’가 본동사 ‘찢다’를 돕는 것으로 파악되는가? 서정수(1971 : 209~210)에서는 보조동사는 대부분 본동사로 쓰이던 것이나 이른바 어찌꼴과 어울려 쓰일때에 한해서 특수한 뜻으로 특수한 구실을 한다고 하면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버렸다”에서의 ‘읽어 버렸다’는 ‘다 읽엇다’ 또는 ‘읽는 동작을 마쳤다’라는 뜻으로 보아서 보조동사 ‘버리다’는 ‘읽’는 동작을 제약하고 있는, 곧 ‘읽어’의 동작이 완결되는 상태에 있음을 부연하는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보도동사라는 것이 이 어찌꼴로 되어 있는 바로 앞의 (본)동사의 뜻만을 제약하거나 부연하는 것이 아니라 앞동사를 풀이말로 하는 월(명제부분)에 대하여 말하는 이가 가지는 심리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곧 ‘내가 그 책 읽’는 사실(명제)에 대한 화자(여기서는 ‘나’)의 느낌이나 판단 따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c)의 ‘버렸다’는 ‘순이가 돈을 찢’은 사실 (명제)에 대하여 이 사실을 표현하는 이(화자)가 가지게 된 주관적인 판단 또는 감정(‘아까움’ 따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c)에서의 ‘버리다’는, (1b)에서의 쓰인 ‘버리다’의 본래 의미가 그대로 살아있는 (1d)에서의 ‘버리다’와는 통사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다른 것이다. 곧, 이러한 ‘버리다’ 따위 보조동사는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동작이나 상황을 나게 되면서 하나의 동사로 인식되는 형태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한 동사의 줄기에 다른 동사가 직접 붙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마는 대개 두 동사가 씨끝 ‘-아’나 ‘-고’에 의해서 결합되어 ‘하나의 동사’를 형성하는 바, 씨끝‘-아’나 ‘-고’의 뒤에 ‘서’가 개입될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전재호, 박병채외, 1981 : 94~7참조) 예컨대 “빌어먹다”는 “거지노릇을 하다”라는 제 3의뜻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빌어서(그것을) 먹다”라는 두가지 동작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에 이 경우 앞쪽일 때만 ‘빌어먹다’를 복합동사로 본다. 이때, 어미 ‘-서’의 개입여부로 두 동사인가 한 동사인가가 결정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말에는 두개의 동사가 ‘-아’나 ‘고’로 연결되는 예가 무수히 많을뿐더러 이러한 말들을 두고 그것이 하나의 동작으로 이해되는가 두 동작으로 이해되는가 하는 것은 말할이나 들을이의 언어의식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복합동사를 엄격하게 골라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이 또한 사실이다. (최현배, 1937 : 942f 참조)3.1. 같은 형태의 거듭쓰임한 동사에 다른 동사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복합동사는 그 두 동사가 같은 형태의 동사일 수 없으나 본동사에 보조동사가 붙는 경우에는 그 두 동사 형태가 같은 것일 수 있다. 예를 통하여 알아보자.(2) a) 저 사람은 일년동안 빌어 먹었다.b) *저 사람은 일년동안 빌어 빌었다.c) *저 사람은 일년동안 먹어 먹었다.(3) a) 영호가 헌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b) 흙탕물이 튀어 옷을 버렸다.c) 영호가 헌 책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d) 흙탕물이 튀어 옷을 버려 버렸다.위 예문 (2a)는 “저 사람은 일년동안 거지로 지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바, 여기 “빌어 먹었다”는 ‘빌다’의 뜻과 ‘먹다’의 뜻이 복합되어 ‘빌다’만도 아니고 ‘먹다’만도 아닌 제 3의 뜻인 그저 “거지노릇을 하다”의 뜻을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빌다’나 ‘먹다’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빼어 사의 뒷성분과 또 다른 점은 보조동사는 그것이 보조동사인 한 절대로 본동사를 생략하고 제 홀로 쓰일 수 없는 의존성이 있다는 점이다.(4) a. 지현이는 떠나 버렸다.b. 지현이는 떠났다.c. *지현이는 버렸다.(5) a. 민구가 집터를 보아 두었다.b. 민구가 집터를 보았다.c. *민구가 집터를 두었다.(6) a. 나도 그 책을 읽어 보았다.b. 나도 그 책을 읽었다.c. 나도 그 책을 보았다.위에서 보조동사문인 예문 (4),(5),(6)의 a로부터 보조동사만을 제거시킨 각각의 b는 실제로 행해지는 동작이 a와 같은 것이지만 본동사를 빼버리고 보조동사만을 쓴 (4),(5),(6)의 c는 a와는 무관하거나 (8c) 비문법적인 문장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보조동사는 어떤 사물에 대한 서술능력이 없어서 그것만으로는 서술기능을 담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복합동사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그 성분들중 어느 하나만을 써도 완전만 문장이 됨을 알 수 있다.(7) a. 순이가 흐느껴 운다.b. 순이가 흐느낀다.c. 순이가 운다.위에서 보면 앞부분이 어찌꼴로 되어 뒷부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이기 위한 양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점 또한 본동사와 보조동사와의 관계하고는 크게 다른점이라 할 수 있다.3.3. 선행어미 ‘-아’보조동사는 선행동사를 풀이말로 하는 그 앞의 명제에 대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선행동사하고만의 관계로 있는 것이 아닌데 반하여 복합동사의 뒷성분은 단지 앞성분(선행동사)과의 결합에 의하여 하나의 풀이말을 이룰 뿐이라는 것이다. 최현배는 이러한 ‘-아’를 모두 감목법의 첫째 어찌꼴이라 하고 그 용법이 ‘합동적 용법’과 ‘완성적 용법’의 두가지로 갈라진다 하였다. 여기서 합동적 용법이라 함은 곧 복합동사를 이루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고 완성적 용법이라 함은 본동사와 보조동사를 결합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용법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 다 “어찌꼴”이라는 하나의 문법형태로 처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른밥 합동문이다.
1.서론1920년대 한국 프로문학의 발생은 3.1운동 이후 일어난 사회운동과 더불어 일어난 사회운동과 더불어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문학도 민족해방 투쟁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대두되었다.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위한 준비적, 과도적 문학으로서의 새로운 경향의 문학, 신경향파의 문학이 나타나는데 자연주의나 사실주의, 또는 낭만주의 문학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었다. 프로레타리아 문학의 별칭 준프로레타리아 초기적인 경향, 신경향파 문학이 일차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신경향파 문학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저항의 문학, 생활의 문학만으로는 프롤레차리아 문학의 주제에는 미흡했던 것이다. 그 극복을 위해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엄격하게 따지면 프로문학은 신경향파문학의 연장인가 하면 계승이였지만, 그 전환의 자세는 엄연하게 내용이 다른 것이었다. 목적의식을 분명히 밝히고, 명확하게 정치의식을 내용으로 한 문학으로 출발하였던 것이다.이러한 프로문학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약칭인데 한국의 프로문학 이론이 일본의 프로문학 이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프로문학의 국제성과 함께 식민지시대라는, 한국민족이 처했던 시대상황적 특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프로시든 프로소설이든 프로 문학 작품이 당시의 사회상ㅇ르 치열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수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방향이 당시의 문학론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다는 점도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문학 연구에서 프로시와 프로소설에 대한 논의는 프로문학의 이론에 대한 논의와 비교해 볼 때 현격한 차이가 드러니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프로문학을 크게 소설과 시 부분으로 나누어 작품을 다루고자 한다.2. 프로시(1) 신경향파 시의 성립과 그 위상1)신경향파 성립 이전의 시가들새로운 계급의 등장은 점차 자신의 진보적 정신을 표출하는 신경향파 문학을 탄생시키기에 '연못'의 밑바닥에 방향을 주는 것을 발견하려 할 때, 그리고 그것이 곧 "건너편에 있는 한 개의 불빛"으로 선명히 대상지어질 때 비로소 앞서의 '부르짖음'이 경향성을 동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 대상으로서의 '불빛'은 우 나로드 운동일 수 도 있고 클라르테 운동일 수도 있는 요컨대 시대정신, 이데올로기, 시대를 극복하는 열소로 비쳐졌던 겅이기에 신흥계급의 성장을 바라본 이러한 역사에의 방향성 획득이야말로 당대의 예술지상쥐와는 물론이요 빈궁이라는 모티브이 동일성 차원 또한 뛰어넘는 신경향파 시가의 위상이자 선행시가와의 뚜렷한 정신적 거리인 것이다.이제 더이상 궁핍은 개인적 충위로도 운수소관의 탓으로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이 팔봉만의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당시 인식수준의 반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 갖는다. 팔봉에 의해서 신경향파가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적 토대에 의해서 팔봉이 가능햇던 것이라 봄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3)목적의식기 이후 프로시의 변모과정1)목적의식기 시의 서술화 경향신경향파 시가를 거치고 난 뒤의 한국 프로시는 서정시의 약식과 결별하고, 서술시의 개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목적의식기에 이르로 나타난 이 새로운 프로시의 약식은 아지프로를 목적으로 하는 개념적 서술시, 혹은 교술시라고 명명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명칭은 정보전달의 기능은 갖되 추상에서 구체로의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개념적 또는 교술적 내용의 거시가 그 시적 태도로 자리잡은 것임을 의미한다. 아지프로를 목적으로 한 이 도구성의 시문학은 현식의 반영이 아닌 이데올로기 및 정치적 과제의 반영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예술적 진식의 차원에서는 멀어졌던 것이라 미리 밝혀둠이 좋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양식은시 자체의 가능성으로 당대 현실에 대응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 결과이었던바, 그 점의 의의를 인정하는 데에는 조금도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경향파의 시가 막혀버린 단계에서 고려할 만큼의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 이른 바 단편서사시이다. 그러나 이 단편서사시가 직접적으로 부각되기 시작된 것은 바로 팔봉의 대중화론에 의해서 였다. 종래의 목적의식론이 예술운동 및 예술을 대중으로 부터 유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예술의 대중화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팔봉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팔봉의 예술대중화론이 창작방법론의 자리에서 논의된 변증적 사실주의까지 포함하여 거의 수준 미달의 것이었음을 이미 잘 알려진 바이거니와 다만 창작방법론을 문제삼을 경우시를 논의하는 일은 드물거나 거의 없는 것이 프로문학의 일반적 현상이었음을 고려할 때 팔봉이 여기서 예외적 존재였음은 지적할만 하다. 즉, 그는 한편으로는 대중소설론을 전개하면서 다른 일먼으로는 프로시가의 대중화와 단편서사시의 길로를 써나갔던 것이다. 먼저 전자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이 글은 자신의 대중소설론과 똑같은 발상법 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하지만 꼭같은 내용이나 발상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소설에 경우와 시가에 적용되는 경우와 그 장르적 성격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뭇 다른 양상을 띨수도 있는 바 이 사실은 우리의 시의 양식문제에 대하여 라는 부제를 한 단편서사시의 길로가 잘 말해주고 있다하겠다. 그는 임화의 우라 오빠와 화로를 세밀히 분석하면서 이것이야말로 프로시가 나아갈 단편서사시로 하고 이 양식은 프로시가의 참된 모습이자 동시에 대중화의 길이고도 하였다는 것을 논증하고자 하였으니 팔봉에 의해 임화의 단편서사시가 부각되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임화란 존재가 없이는 팔봉의 시가 대중화론은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따라 단편서사시의 전개에 있어 임화라는 존재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3프로소설(=리얼리즘 소설)이번에 우리는 한국 경향소설의 전체적인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첫번째의 시기는 1924년부터 1930년에 이르는 기간으로서 이것은 1927년을 기점으로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문학사의 관점안 죽이면 내가 죽는 세계이며, 내 고기를 내가 씹겠다는 처절한 복수의 세계이다. 벼랑끝에선 인간의 본능적 몸부림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들에는 따라서 어떠한 관념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 소설들에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이념형이 아니라 행동형이다. 그 행동들은 즉흥적이고 거의 발작적이다. 그들은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원수를 향해 돌진하거나 극박한 욕구의 충족을 위해 살인, 방화, 강도등의 파멸적인 행동으로 치닫는다. 그 행동들은 현실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는 더할수 없는 박진감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아무런 전망을 지니지 못한 행동들이다. 그 행동들이 보여주는것은 자포자기 상태에서의 광란적 히얼이며 폐쇄적 카타르시스이다. 중국인 지주의 학대에 견디다못해 마침내 지주를 살해하고 그 집을 불사르는 이야기인 홍염의 마지막 장면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 본능적인 반항과 복수의 행동으로 일관된 그의 소설은 초기 경향소설의 일반적 특징을 들어내면서 동시에 팔봉이나 회월의 소설관은 정반대의 지점에 서있다. 회월의 소설이 이념만을 앞세운 나머지 현실의 구체적인 자태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최서해의 소설은 오히려 앞도적인 현실의 무게가 소설속에서의 이념의 진출을 가로막은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팔봉과 회월의 소설이 전망의 과장으로 그 한계를 들어냈던 반면에 최서해의 소설은 전망의 부재로 기결되고 말았다. 현실과 이념의 변증법적 통일을 소설속에서 어떻께 성취할 것인가는 한국 경향소설의 앞에 가로놓인 가장 큰 과제였다. 그리고 이 과제야말로 한국 경향소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리얼리즘의 성립을 위해 풀어야할 제일의 숙제였던것이다.(2) 리얼리즘 소설의 형성앞 절에서 우리는 리얼리즘의 대두라는 이름아래 이른바 신 경향파의 몇몇 소설들을 살펴보았다. 앞서 말했듯이 그 소설들은 현실에대한 강한 부정과 변혁의 열정을 지닌 것이었으나 인물의 설정과 변혁의 행동에 있어서는 아직 개인적 본능적인 차원의 반항이나 고발로 일관된 것이었을뿐 조직적, 계급적 의식의 수준에 이른것은 아서 여기까지의 소설적 성과를 보존하면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당대 모순을 그려내면서도 그 구체적 현실성을 폭넓게 받아들일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대 현실에대한 과학적 인식과 작가의 폭넓은 체험이 그 기반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노동자나 농민 출신의 작가를 요구하게 됨은 물론이오 기존 직업적 작가의 피나는 현실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장르 문제에 있어서는 앞선 소설들이 대부분 단편 소설이었던 만큼 현실의 본질적인 부분을 드러내는데는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그 현실의 전 과정을 역사적 발전위에서 그리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이 리얼리즘 소설 발전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나온 노동자 출신의 작가로 이북명을 들수있다.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 정책과 그것에 병행한 일본 독점자본의 조선진출의 한 전형인 흥남질소비료공장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속에서 식민지 노동자가 격는 삶을 그린 이북명은 1932년 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자신이 그곳에서 3년간 노동자생활을 했던것을 바탕으로 노동자생활 특히 생산현장에서의 구체적 노동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그이전까지의 노동소설이 지닌 추상성을 극복할수 있게되었다. 다음으로 이시기의 농민소설들을 살펴보자 이 시기 노동소설에 있어서는 노동자 출신의 작가인 이북명 본격적인 활동을 행함으로서 그 이전까지 내려왔던 지식인 전문작가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이 상당히 극복되기 시작했고 이로서 노동소설은 새로운 궤도에 올라설수있었다. 하지만 농민소설에서는 사정이 다르게 드러났다. 1930년을 전후하여 이기영의 나 「부역」등이 발표될 무렵 농민문학논에서는 다음의 몇까지 점들이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우선 농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농민을 보아야한다는 점이었다. 이와 더불어 농민 출신의 작가가 출현하여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광범위한 글쓰기 운동을 권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함광의 농민문학론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이 두 문제중 앞의 문제는 당시 이기영의 소설을 한다.
"내가 역사의 중심이다"---'자기발견을 위한 자서전 쓰기' 노인교육 프로그램 개발.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 나는 임의적으로 내가 소속된 기관을 계명대 평생교육원 산하 노인교육개발원[가칭]이라 정했다. 이는 기관을 정함으로서 환경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21세기가 되어가면서 현대는 고학력 노령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이제 노인들이 무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중심적인 지식층이 되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노인들이 사회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너무 급하게 변한 사회에 적응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하여 노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나는 누구인가?" 아니,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자기로의 여행으로 자신의 책을 만든다는 목적에 더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캐내는 일을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개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게 되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되찾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1. 본 교육원의 외부 환경 분석*지역사회분석: 계명대학교 평생교육원은 대구광역시 대명동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적인 상황인 대명동은 법정동으로 대명동은 행정동인 대명1동, 대명2·8동, 대명3·7동, 대명4동, 대명5동, 대명6동, 대명9동, 대명10동, 대명1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구 최대의 자연공원인 앞산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보훈청, 달성군청, 달성군 교육청 등의 공공기관과 계명대학교, 계명문화대학교, 대구대학교, 대구교육대학교, 영남대학교, 영남이공대학이 있으며, 영남의대부속병원, 가톨릭대학병원, 성심병원이 있다. 지하철 1호선이 관통하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넓은 행정구역과 편리한 교통으로 인하여 이곳 평생교육원은 수요를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수요에 맞는 질 높고 차별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필요로 한다.2. 요구조사1)설문조사(1)설문대상 : 60세이상의 남녀노인이 설문지는 계명대학교 평생교육원 산하 노인교육개발원이 지역 노인을 위하여 알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하여 여러분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각 항목에 대해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곳에 V표하세요.1.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매우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다( ) 보통이다 ( ) 그렇다 ( )매우 그렇다2.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매우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다( ) 보통이다 ( ) 그렇다 ( )매우 그렇다3.시간이 남아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매우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다( ) 보통이다 ( ) 그렇다 ( )매우 그렇다4.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매우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다( ) 보통이다 ( ) 그렇다 ( )매우 그렇다*다음은 하나의 질문에 네 개의 문항이 있는 항목입니다. 각 항목에서 자신이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문항의 괄호에 V표 하세요5. ( ) 나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한다.( ) 나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 ) 나는 발전을 위해서 교육을 받고싶다.( ) 나는 발전을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6. ( )나는 시간이 남으면 교육을 받겠다.( )나는 시간이 남아도 교육을 받지 않겠다.( )나는 시간을 아껴서 교육을 받겠다.( )나는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교육을 받겠다.7. ( ) 나는 나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의 꿈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 나의 꿈은 자식세대가 이루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 나이와 상관없이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있다.8. ( )나는 교육을 통하여 발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교육이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육과 삶의 질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아닌 다른 취미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주관식입니다. 편하게 답해주세요.9. 현재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10. 당신은 당신의 발전을 위해서 어떠한 프로그램을 접하고 싶습니까?2)설문조사결과이 설문지는 대명동 노인을 대상으로 표본추출하여 조사한 것이다. 여기서 대상은 대명동 노인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1번에서 4번까지의 설문 결과 나이가 들어감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싶다고 말한 응답자( 그렇다 이상)이 70프로 이상을 차지 하였으며, 반수 이상이 자신을 위하여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5번에서 8번까지의 질문에서도 70프로 이상이 교육이 삶의 질과 상관이 있다고 대답하였으며, 발전을 위해 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이러한 설문 조사를 토대로 하여 본원은 대학 산하의 평생교육원의 이미지에 맞는 아카데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발전을 위한 자서전쓰기"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한다.3. 프로그램의 목적노인들에게 자서전 쓰기를 통하여 자기 관찰력과 표현력을 길러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자서전의 첫머리를 직접 집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안내하는 글쓰기 강좌를 제공함으로서 글쓰기와 자기를 되돌아보기 이 두 가지를 겸하고 있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책을 만든다는 목적에 더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캐내는 일인 것이다.4. 프로그램의 목표1) 퇴직으로 상실되었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되 돌아보게 해줌으로서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의 나갈 방향 제시를 할 수 있게 한다.2)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나 자칫하면 상실되기 쉬운 자신의 사회적 가치성을 회복하게 하여 자신이 사회에 유용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는 가치를 갖게 한다.3) 자서전을 지필함으로서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노인에게 소외감을 극복하게 하고자 한다.4) 자기 관찰력과 표현력을 길러 자기 내면을 응시하고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자서전의 첫머리를 직접 집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안내하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다.5. 프로그램의 필요성(중요성) :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인층이 점차 증가하는 것과 노인이 활용할 수 있는 여가시간의 증대, 노인의 건강수준의 향상, 그리고 사회에 유익한 활동을 통하여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경험에 의한 간접 교육인 자서전 지필을 통한 사회에 참여함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노인의 위치를 확립하고자 하는데 그 필요성이 있다.6.수업의 개발1) 시간 및 예산: 본 강좌는 15주에 걸쳐서 실행될 예정이다. 예상인원은 14-5명이며, 1주일에 한번의 강좌를 두시간씩 실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친목 도모를 위하여 간단한 다과회를 강의가 끝난 뒤 실시할 예정이며 강사와의 충분한 피드백을 구축하기 위하여 강사는 매일 2명의 노인에게 집필 과정에 대한 전화 상담을 실시할 예정이다. 장소는 대명동 본원의 소강당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예산은 다과비[1강좌당 2만원*15]와 난방비[1만원 내외]와 기타 부대시설비[예비비 5만원]와 강사료[시간당 2만 6천원 *15]로 계산 할 때 69만원의 예산이 소모됨을 알 수 있다. 본원은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시작되는 점을 강의료의 적정선으로 결정하기에 1인당 5만원의 강의료를 받기로 한다. 이는 본원이 대학원 산하의 교육기관이며 아카데믹한 프로그램을 중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여 피교육자의 교육열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도 있음을 밝힌다. 또한 자서전 집필이 끝났을 경우에 본원의 인쇄소를 사용하여 원하는 부수만큼의 책을 제본하여 준다. 단 추가비는 원가에 한에서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