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Modernism'post'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이후(after)', '다음(next)' 이라는 의미와 또 다른 하나는 '상반되는(opposite)'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 이후에 나온 사조이면서 그에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상반된 개념이라기 보다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모더니즘 vs. 포스트 모더니즘근대 문학사조에 보면 사실주의가 등장한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묘사를 중시하던 사실주의의 무미건조함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것이 자연주의이다. 그 후 자연주의의 사실에 대한 과대한 부풀림에 반발로 등장한 사조가 바로 모더니즘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한 이해는 사과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모더니즘 적으로 사과를 바라보면, 이 사과는 빨갛게 잘 익은 부분과 시퍼리 둥둥하게 덜 익은 부분이 있다. 일부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일부는 벌레가 먹어 썩어있다고 바라보고, 이중에 빨갛게 잘 익은 부분과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만 취하고 시퍼리 둥둥한 덜 익은 부분과 벌레가 먹은 부분은 배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모더니즘은 어떤 사물의 좋은 부분만 취합한다는 것으로 이는 이분법적 사고관에 근간을 두고 있다. 흑-백, 신-인간, 사람-동물, 남자-여자, 주인-하인...이런 식의 이분법적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중 좋은 것만 택한다. 백, 신, 사람, 남자, 주인... 철학적인 사조로는 실증주의에 해당되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해당되겠다 (기독교 역시 신과 피조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관이 근간에 깔려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역시 이 모더니즘의 최악의 산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등한 인자를 가진 사람(순수 게르만) VS 그 외로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나온 전쟁이기 때문이다.이러한 모더니즘의 폐해를 겪은 이후의 세대들이 생각한 사조가 바로 post-modernism 이다. 쉽게 말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사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빨갛게 잘 익은 부분과 시퍼리둥둥 덜익은 부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부분과 벌레 먹은 부분, 모든 것이 사과를 구성하는 것이다, 라고 보고 이 모든 것의 존재가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함이라고 보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야스퍼스, 하이데거로 유명한 실존주의가 이에 해당합니다. 종교적으로는 불교나 노자 장자의 사상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예를 들어보면, 나비의 날갯짓이 전 지구를 흔든다는 말이 있다. 나비가 날갯짓 한 것이 주변의 바람을 흔들리게 하고 그 흔들린 바람이 풀을 흔들리게 하고, 나무를, 빌딩을, 땅을 흔들리게 하고 전 지구를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지,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은 적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 존재를 다 인정, 즉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포스트 모더니즘 From 모더니즘문학, 예술사조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포함한 모더니즘의 기본 원리를 논리적으로 계승하여 극단적으로 발전시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모더니즘에서 발견되거나, 또는 그동안 모더니즘에서 거의 무시되거나 소홀히 간주되어 오다시피 한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모더니즘에서는 핵심적인 지배소로서 기능을 담당해 온 것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주변적인 위치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 핵심적인 지배소로서는 네 가지가 있는데, 상호 텍스트성, 탈 장르화 혹은 장르 확산, 반영성,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등이 있다.포스트 모더니즘이 그동안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넘는' 작업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에도 적지않은 관심을 보여 왔다. 사실상 포스트 모더니즘이 처음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대중 문화와의 관련성에서 였으며, 지금까지도 그것은 여전히 대중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놓여 있던 커다란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데에 있다.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난해한 엘리트 예술보다는 더욱 대중적인 팝 아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이고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한마디로 점잖은 전통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며,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성에의 희구이며, 자연인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의 운동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원근법과 사실성을 중시하던 사조에서 미술을 위한 미술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추상적 그림이 유행했던 것이 바로 모더니즘시대의 미술이었다. 모더니즘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는 피카소 등이 있는데 이런 추상화에 대중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었고, 이에 반기를 들어 나타난 사조가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인 것이다.*포스트 모더니즘과 문학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은 매끄러운 논리가 해체되고 실체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내용도 극도로 불안정한 무질서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주의로 바뀐다. 독자참여 소설의 경향을 띠게 된다. 어떤 실험작가는 아예 소설을 언어의 각종 시험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문장을 토막내기도 하고 질문지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도 하고, 진지한 내용과 하찮은 내용을 대비시켜 놓기도 하여 재미와 게임을 하는 듯한 즐거움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혼돈과 대적하는 길은 혼돈 그 자체가 되는 것, 아니 더 나아가 더 깊은 혼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1980년대에 들어오면 메타픽션(超小說)이 등장한다. 스토리를 꾸밀 수 없고, 그래서 스토리를 부정하는 작가들은 이제 엔트로피와 니힐리즘과 지루함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기 위한 시도로써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한다. 이렇게 창조된 세계는 인위적이고 주관적이어서 도덕적 상대성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비난을 받지만, 메타픽셔니스트들은 이것이 더 큰 파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잘 꾸며진 소설도 현실만은 못하기 때문에, 코진스키라는 소설가는 구성이 없이 자신의 경험을 에피소드별로 서술해 나가는 픽션을 쓰며, 트루먼 카포티나 노만 메일러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추적하여 리포트 형식을 빌려 서술하는 저널리즘식 소설을 쓰고, 고어 비달은 과거 미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에 관해 실제 자료들을 수집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는 역사소설, 혹은 전기식 소설을 쓴다.출처 : 네이버 지식in「포스트 모더니즘의 일반적 특성」 최택승Lolita미국소설의 이해 강의시간에 처음 접하게 된 로리타 라는 영화에 대해서 나는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전에 로리타 콤플렉스 라는 말을 들어본적은 있었으나 이것이 이 소설에서 기인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으며, 사실 로리타 콤플렉스가 어떤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영화의 내용이 이어질수록 그 선정성과 대담함에 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어떻게 저런 스토리를 짤 수가 있는것인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야하고 저속하다는 느낌보다는 햄버트 교수에 대한 측은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외설과 예술의 차이점인 것인지, 이 영화의 초점이 육체적 사랑보다는 한 남자의 집착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영화의 구성특이할만한 것은 영화의 구성이다. 커다란 액자가 속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두가지 플롯 형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시작은 위태하게 도로의 중앙선을 넘나들며 고개운전을 하는 남자를 화면에 담는다. 촛점없는 눈동자와 슬픔을 있는데로 씹어먹어버린듯 한 표정의 험버트는 지금 막, 성불구자이자 극작가인 퀼티를 죽이고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그의 차창 밖으로 경광등을 켠 경찰들이 뒤쫓아 오고 있으나,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듯 마지막 추억이 서린 어느 마을로 향하고 있었고, 곧 그의 차가 비틀거리며 사라지고 이내 테마 "로리타"가 화면에 새겨진다. 이내 햄버트의 나래이션을 통하여 영화는 지난 그만의 기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이 영화가 2개의 시간구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첫번째 시간은 주인공이 경찰에게 붙잡힌 시점으로부터 과거를 차근히 누군가에게 독백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풀롯이며, 두번째 시간은 주인공의 경험 내에 존재하는 왜곡되고 복잡스런 풀롯이다.첫번째 풀롯은 두번째 풀롯이 가진 왜곡에 대해서 숙고와 반성을 하기도 하며, 이것은 영화 자체가 가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영화 스스로가 내놓는 또 다른 시각의 존재이다. 즉, 풀롯 제 1이 가진 시각은 풀롯 제 2에 담겨진 험버트의 잘못된 사랑에 관하여 또, 로리타를 강압적으로 자신에게 가둬두려 했던 사건들에 대해서 후회와 성찰을 나타내고 있으며, 풀롯 제 2는 하나의 햄버트의 강한 집착과 소유적 사랑에 대해서 다소 진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액자식 구성으로써 풀롯 제 1이 풀롯 제 2 를 둘러싸고 있는 단순한 형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미리 만날래야 만날 수 없는 두가지 가치관의 갈등을 통해 형식으로 굳어진 도덕적 관념을 떠나 인간 내면에 자리하는 본능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그 자체로 유인하기 위한 위대한 극작술라고 어떤이는 평하고 있다.
'The Sound And The Fury' - Jason이라는 인간에의 탐구Prologue우리 조는 이 책에 있는 4명의 인물 중 제이슨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종합해 보았다. 초기에 주된 화제는 제이슨이 얼마나 악독하며 계산적인 인간인가 혹은 얼마나 물질적인지 등, 그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고 텍스트에 묘사된 부분을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또한 자신의 형제들 퀘틴, 벤지와 비교해 볼 때 제이슨은 그 둘과는 다른 양상을 띄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퀘틴과 벤지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제이슨은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만을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가족 중에서 사회생활을 그나마 잘 해나가는 것 같지만 그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몹시 뒤틀려져 있다는 것 그리고 캐디에 대한 반응 즉, 그녀가 벤지에게는 나무냄새의 원초적 사랑을, 그리고 퀘틴에게는 명예와 이상을 각각 나타내 준 반면에, 그에게는 돈, 아니면 적어도 돈버는 수단의 가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캐디와 허버트의 이혼으로 인하여 기대했던 은행에의 취직이 수포로 돌아가자 캐디를 동정하기는커녕 그녀와 그녀의 딸 퀘틴에게 복수심을 불태우고 그리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교묘하게 속여가면서 캐디가 보내오는 딸의 양육비를 모두 가로채는 모습은 확실히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들로 제 3장을 읽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제이슨에 대한 분노와 한 인간이 이렇게 냉소적이고 심술궂은 성격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놀라움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이슨이라는 한 인간이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겪어 온 것일까? 그 요인을 분석한다면 제이슨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좀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머리를 맞대어 보았다.어머니로부터의 왜곡된 사랑 - 비인간적 성격형성보건대, 콤프슨가에서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외형적 허울만을 숭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있어 언제나 불평만을 늘어놓는 어머니는 차마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지 못했고, 아버지 제이슨 콤슨3세 또한 가문의 무거운 짐에 눌려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와 술로 인생을 소진해 버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콤프슨가의 안주인, 즉 제이슨의 어머니는 제이슨의 인생을 왜곡시킨 장본인이다. 다시 말해서, 제이슨의 인생에 가치 있는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정서적인 면이 어머니에 의해 뒤틀려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제이슨을 유일한 그녀의 동맹자로 만들어 다른 식구들과 대항하도록 충동질했다. 어려서부터 제이슨은 이러한 부모에게서 어떠한 정서적 안정이나 유대감을 느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그의 인간성이나 정신적 가치가 서서히 붕괴하게 된 것이다. 제이슨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불완전한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것 차제가 그가 비인간화 되가는 과정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독자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그가 자신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알지조차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잔혹성은 여러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되는데 캐디로부터 그녀의 딸 퀘틴을 보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일백 달러를 받고 마차를 아주 빠르게 몰아 홱 지나친 후에 그것을 일말의 양심도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장면이나, 자신에게 대항할수조차 없는 절대적 약자인 벤지나 사생아 퀘틴, 또는 흑인 하인들에게 심하게 구는 여러 장면에서 그의 비인간적 인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그 자신만의 도덕관에 맞추어 합리화시키며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만일 그가 자신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모습 속에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좀 더 달라졌을 것이지만, 그는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행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산업사회의 전형적 인물로서 철저하게 물질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제이슨의 비극은 자신의 타락을 자각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격화되어 지는 것이고 그의 암담한 비극은 끝내 극복될 수도 없고 초월적으로 승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과거가 없는 인간백치인 벤지와 여성인 캐디는 접어두고서라도 퀘틴과 제이슨3세가 콤프슨 가의 모든 선조들의 위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명예에 대해 그리워하는데 반해서 제이슨은 과거 어떤 것과의 유대관계도 끊고 철저하게 현재 속에서만 만족을 찾으려 한다. 제이슨에게 그의 가족과 자신의 가문은 수치와 경멸의 대상이다. 고로 그들과 함께 했던 그의 과거 역시 그에게는 불쾌하고 역겨운 것으로 그는 과거를 부정하고 현재 속에서만 살아가고자 하며, 따라서 과거에 집착하는 퀘틴이나 백치 벤지는 제이슨에게 환상을 쫓는 정신병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경멸과 부정은 궁극적으로는 그에게 과거를 거부하는 구실이 되며 우리는 이것을 두 번째 요인이라 생각했다.인간에게 있어서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과거란 단순히 이미 퇴색해져버린 지나간 시간이라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Bloomfield의 The man who does not know some history is a man who loses one of the major dimensions of his humanity" 라는 말처럼 그 사람의 과거는 그의 중요한 인격형성과 관련이 있다. 과거란 현재 내가 나 라는 모습으로 있게 해주는 주춧돌이라고 볼수 있는데, 때문에 과거를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하루살이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제이슨의 경우에는 과거가 그에게 분명히 무거운 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떨쳐버리거나 부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것도 아니다. 과거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자기 자신에의 존중도 불가능해 진다. 따라서 과거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제이슨의 행동은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 전체를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과거를 거부하면 나는 내 가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결국 제이슨은 과거를 거부함으로서 자기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게 되며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확실하게 소속되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현재속에서만 사는 사람모든 것을 득과 실을 따져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앞뒤를 가리며, 무엇보다도 물질과 돈에 집착하는 제이슨은 언뜻 보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가 돈에 집착하는 것이 단지 현재를 쫓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과거도, 미래도 거부하고 현재만을 영유하는 그의 시간관념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퀘틴 못지 않게 시간에 대해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다만 그 방법과 동기가 퀘틴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제이슨의 시간의식을 알기 위해서 먼저 제이슨 장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를 주시해야 한다. 퀘틴의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느리게 묘사된 반면에, 제이슨 장에서는 전신국의 전보, 빠른 자동차의 추적, 기민한 속임수 등, 급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항상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긴박한 삶을 살아가는 제이슨은 마치 분노 속에서 퀘틴처럼 시간과 투쟁하는 듯이 보인다. 당장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그에게 언제나 초조와 강박감을 안겨 준다. 계속 순간순간의 기계적 시간에 맞추어 살려고 허둥대는 제이슨도 시간을 궁극적인 리얼리티로 본다. 결과적으로 제이슨도 시간 속에 자신을 속박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퀘틴이 시간의 흐름을 멈춤으로써 시간이 지배하는 숙명적 운명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서, 제이슨은 시간이 성숙과 발전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서 철저하게 시간에 노예화되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재의 삶 속에서 능동적으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준비를 위한 예비적 행위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시간의 노예로 머물러야할 운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제이슨의 행동들은 부단히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눈앞의 현재 순간에 정지된 행동의 단편들에 불과하다. 그는 매 순간 기계적 시간의 한 점을 선택해서 포착하고, 그것을 마치 진리의 전부인양 필사적으로 추구하려든다.
What does Jamal Do to Improve his Writing Skill?Jamal had a teacher in the school, but that fact didn't help him a lot because it was not enough to him at all and level was too low for him as well. He's been reading so many books already which contained heavy subjects. Those books were certainly not for he and his friends age. There are two things that Jamal did to improve his writing skill. First of all, he's written down every thought he had from reading in his note. It was good habit for describing several of expressions. He thought that reading others articles is the basis of improving his writing skill.
I have visited my friend who live in America last Summer vacation. There is a unforgettable story about my trip from Madison(Wisconsin, my friend's home) to Orlando in Florida. We plan to visit Disney World. I was very excited and little nervous because it was my first trip without anyone to care of us. We had to do everything by ourselves. We made a reservation of flight and hotel by internet, we should transfer in Chicago. It will take about 5 hours altogether.
내가 본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수업시간에 프랑스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어딘가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본 프랑스 영화가 생각해보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태어나서 맨 처음 프랑스 영화를 접하게 된 건 5살 짜리 꼬마여자아이의 열연을 자랑하던 뽀네뜨 라는 영화였다. 심심한 일요일에 나는 비디오로 그 영화를 봤는데 어머, 아이가 귀엽네 하는 느낌은 5분뿐, 졸음이 쏟아지고, 졸린 눈을 치켜 떠가며 본 영화는 정작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 어렴풋한 프랑스 영화에 대한 이미지였다.프랑스 사람들의 정서는 우리로선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것이 고작 나의 생각이었다.하지만 그 이후 몇 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후에 본 영화 아멜리에 는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조차 바꾸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이미 많이 자라 있었고,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도 있을 즈음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감명 깊게 봤을지도 모르겠다.영화 아멜리에 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 카페 웨이트리스인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는 어느 날 자신의 집에서 잡동사니가 든 낡은 상자하나를 발견해 주인을 찾아준 뒤 행복을 선물하는 환희를 느낀다. 이후 예민한 담뱃가게 아가씨와 카페 손님을 이어주고, 수십년 전 바람나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주인 아줌마에게 남편인양 러브레터를 보내기도 한다. 앙증맞은‘작전’으로 행복을 전도하던 아멜리에는 지하철역 즉석 사진 부스에서 버려진 증명사진을 모으는 니노(마티유 카소비츠)와 우연히 만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탐정게임을 시작한다.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용에는 이렇다할 특이할만한 사항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주인공 아멜리에의 기상천외한 이벤트들을 보며 즐기는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거나 깜짝 놀래 키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행복감이 돌도록 해주는 동화적 특수효과를 지녔다는 것이다. 약속한 장소에 니노가 오지 않자 그 이유를 상상하는 아멜리에의 자유분방한 머릿속을 그리는 흑백 장면과 낙심한 아멜리에가 물이 되어 땅에 쏟아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또 하나, 이 영화가 주는 특징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웃 인물들 중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부딪치면 뼈가 부서지는 지닌 화가 듀파엘, 다리가 불편한 카페주인, 팔이 하나뿐인 채소가게소년 루시앙,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담배장수 조제트가 등 뭔가 결핍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아웅다웅하는 이들은 아멜리에의‘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낙관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