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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족이 중국을 통치했던 시기와 그에 대] 이민족의 중국통치
    이민족의 중국 통치中國 帝國의 역사는 전형적인 中國 王朝〔秦·漢·南朝·隋·唐·宋·明〕와 征服 王朝〔北朝(浸透 王朝)·遼·金·元·淸〕로 크게 구분된다.정복 왕조는 당말 오대의 군벌 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송의 문치주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정복 왕조 출현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征服 王朝의 特徵군사력을 통한 주변의 농경 사회를 정복, 반복되는 약탈 전쟁을 통하여 그들의 유목 사회를 農牧的 二重 社會로 전환시키면서 유목적 부족 체제를 해체하고 정복 국가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征服 國家는 政治·軍事的 性格도 二重的이었다.♤ 중국 지배 범위 : 일부 지배(遼·金)과 전부 지배(元·淸)으로 구분♤ 사회 구조 : 유목 사회(경제)와 농경 사회(경제)의 두지역에 걸쳐 있는 복합적 사회구조와 경 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정복 왕조가 그들의 권력 중심을 중국이나 그 근방의 농경 사회로 옮겨오면서 유목 체제는 오히려 농경 체제에 침식당하고 점차 유목 사회의 기반이 무너지면 서 결국 정복 왕조를 변화시켜 파멸로 몰아 넣었다.각 이민족의 중국 통치 방법北魏♠ 종족의 성격 : 지금의 흑룡강 성의 북부 눈강(嫩江)유역 일대에서 유목과 수렵 그리고 일부 원시적인 농업을 영위하고 있던 부족이다. 중국 동북부에서 내몽고에 걸쳐 산재되어 있던 여러 선비 부족 중의 하나인 탁발부(拓跋部)였다.♠ 왕조의 수립 : 398년 십익건(什翼 )의 손자인 탁발규(拓跋珪)가 제위에 올라(道武帝) 국호를 대위(大魏)라하였다. 439년 화북의 통일.♠ 통치 체제 : 북위는 다른 오호 여러 나라와 다른 점은 위국을 농업 국가로써 육성한 점이다.(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선비 족이 선조 대대로 지켜 온 부족제 조직까지 스스로 포기함. 유력 씨족장 계층을 귀족으로 재편성) 중국의 농경 문화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특히 중국 전통의 전 제주의적 지배 방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방 관제는 선비족고유의 부족 제도 유지하였 다. 도교를 통하여 자기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정통화하였다. 균전제를 통한 경제적 기초를 굳을 증가)북위의 인사 제도 : 문관과 무관의 二重 體制로 나눔(무관 : 선비족의 탁발(拓跋)부족 기용, 문관 : 한인을 주로 기용)효문제의 漢化政策 : 선비족의 부족 문화에서 탈피하여 한민족 문화로 전환(하류 문화 상류 문화) 금령 발포(胡俗과 胡語의 폐지(북방 민족의 풍속과 언어), 성씨를 스스로 한족 풍의 성씨 로 바꿈(탁발씨 元씨) 따라서 여러 성씨의 문벌 귀족이 산출되었다.姓族分定政策 : 선비족의 유목 부족사회를 중국적 문벌 제도에 접목시켜 胡漢一元化를 꾀함선비족 자체의 분열과 황제권의 강화북위 정권은 한인 세족을 화북 통일의 후원자로 이용하면서도 한인의 우월성이나 선비족을 멸시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정복자로서의 우월감을 가지고 용납하지 않았다.(胡·漢의 귀족 체 제의 갈등과 타협의 반복)遼♠ 종족의 성격 : 거란족은 遼河上流의 사라·무렌江 유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 계통의 종족. 당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 당제국내에서 일어난 안사의 난 (755)과 황소의 난(875∼884) 그리고 9세기 중엽에 몽골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위구르 왕조의 붕괴는 거란족의 발전에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遼의 건국 :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거란 부족을 통합하고 한인을 거란 내부로 강제이주시 켜 거란(916∼1125)을 건국하였다(916). 건국의 경제적 기반은 非遊牧的 經濟力(농공경제력) 으로 전환이다. 당의 기미 정책의 영향으로 중국 문화와 유교적 통치 이념에 익숙하다.부족제를 개편하여 부족을 해산하고 分土定居를 단행함으로써 부족 세력을 철저히 약화시겼 다. 5대의 분열 시대와 송의 문치주의 정책은 遼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통치 체제 : 본거지를 중국 본토로 옮기지 않고 수도를 그대로 북방에 놓아둔 채 정복지인 華 北地方을 통치하였다. 정복한 영토 내에는 농경민과 유목민이 혼거하면서 생활하였다.統治 體制의 이중성 : 다양한 정복민을 통치하기 위해 거란족을 비롯한 유목민에게는 거란 고유의 國制(관습법)로 다스리고 한인·발해인 등 아니고 거란 사회의 독자성을 살리면 서 중국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지방관 제의 이중성 : 한인을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식 州縣制를 채택하였고 유목민을 지배하 기 위하여 별도의 지방 제도를 취하였다.문화적 특징 : 거란족의 유목 사회가 점차로 중국적인 농경 사회로 변천되어 감에 따라 유목 지의 축소로 牧馬制가 붕괴되면서 군마 부족을 가져와 국방력이 약화되고 유목민의 빈곤이 가 속화되어 거란 사회의 기초를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거란 민족은 그들의 독자 적인 문자를 통하여 스스로의 사상을 표현하려 노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에 대한 거 란족의 강한 대항 의식이 그 속에 잠재되어 있다. 거란 민족이 중국과의 문화적 접촉에서 만 들어 낸 새로운 문화라고 규정하고 이를 일컬어 제3의 문화(거란 민족의 고유문화도 아니고 중국 문화도 아니다)라고 성격을 규정하였다.문화적 특징 : 외래 종교인 불교를 통하여 중국 문화에 대항하면서 거란족의 민족적 우위성 을 과시하고 아울러 그들의 민족문화를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불교를 장려하였다. 불교의 발 전은 자연히 거란 민족의 尙武的 정신을 약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거란 사회에 없던 來世 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유목민 특유의 현세관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 다. 佛寺의 건축은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중가시켜 요제국쇠망의 원인이 되었다.요는 문화 수용 과정에서 문화를 낮은 문화 지대에서 수용할 때 높은 문화의 변형화를 가 져 왔다. 정복 왕조가 자기보다 높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일 때 중국 문화에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이를 변형시켜 외래 문물에 거란적 요소를 주입한 것으로 해석 된다. 이런 현상은 요의 이중 체제를 비롯하여 거란 문자와 불교에 대한 주술적 수용 자세 그리고 중국 문예의 선택 등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金♠ 종족의 성격 : 女眞族의 본명은 黑水靺鞨(흑수말갈)이다. 5세기 이후부터 만주 동부 지방의 松花江유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松花江을 경계로 하고 금의 太祖가 되었다.♠ 통치 체제 : 금은 영토의 확대와 더불어 여진의 부족국가에서 중국적인 중앙집권 체제로 통 치 체제를 변환하였다. 금의 제국 통치의 기본은 금의 독자적인 부족 체제와 중국의 관제를 채용하였으나 중국의 본거지를 정복하면서 여진의 고유한 문화를 잃게 되었다.금의 정치 : 필연적으로 정복자이면서도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통치가 운영되었고 이 에 따라 쉽게 중국 문화에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태종도 태조와 같이 여진족의 부족 적 지배 체제를 국가 통치에 이용하고 한편으로는 중국적 황제 지배 체제를 구축해 나아가는 이중적 통치 체제를 구축해 나아가는 이중적 통치 체제 가지고 국가를 지배해 나갔다.漢化主義 : 태종시대초기에는 태종을 비롯한 진보적 漢化主義者와 宗翰을 중심으로 하는 보 수적 여진 주의자의 두파가 대립하는 형세에 있었다. 태종 시대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점차 로 여진 국수주의 경향은 수그러들면서 황제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화 주의자 로 유명한 희종이 태종을 이어 즉위하면서(1135) 여진 부족주의는 자취를 감추고 중앙집권적 한화 주의는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한인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제도 실시, 중국식 新官制반 포, 女眞文字를 만들고, 중국식 百官의 儀制와 朝服을 채택)중앙 정부의 황제 독재 체제를 확립한 해릉왕은 지방행정 기구도 개편하였다.(지방 路의 장관인 세습 萬戶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파견한 節度使를 路의 장관으로 임명) 수도를 上京에 서 燕京으로 옮기고(1152) 이곳을 中都라 개칭하여 중국적 전제국가로 탈바꿈하려고 하였다. 燕京 천도와 화북 지방의 진출로 금제국 내에는 한인 관료가 진출하게 되고 이에 대해 보수 파 여진 귀족이 해릉왕의 한화 정책에 불안을 느끼면서 반발하게 되었다.금의 관제 : 금은 한인과 발해·거란인을 통치하기의 해서 중국의 3省6部制와 州縣制를 도입 하여 여진족의 고유의 제도보다는 한인의 전통적 제도로 통치하였다. 중국적 황제권강화를 위해 장애가 되는 발극렬제도를 폐지하였다.금의 통족의 농경 사회 적응과 한민족에 대한 경제적 지배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元♠ 종족의 성격 : 당에서는 몽골족을 蒙兀室韋(몽올실위)라고 불렀으며 내몽골 자치구 동북방의 홍안령지대의 오르콘강 상류에 흩어져 생활하였다. 어렵게 유목 생활을 하였다.♠ 제국의 성립 : 철목진이 몽골 전역을 통일(1170∼1206)하여 징기스칸으로 즉위, 몽골 민족에 의한 정복지 지배는 세조(쿠빌라이)가 즉위하는 中統元年(1260)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몽골 제국 시대(1206∼1260)와 이후의 元帝國時代(1260∼1368)로 양분된다.♠ 통치 체제 : 원은 정복민의 통치에 하여서는 철저한 민족의 차별 정책과 함께 관료의 등용에 서도 중국적 과거제도 대신 문벌 주의를 취하였다. 몽골은 정복민에 대한 대우의 기준을 그 들의 대외 정복 전쟁 때 피정복민이 어떻게 협조하였는가에 따라 결정하였다. 元朝治下 정 복민의 신분 구분도 대체로 몽골에 항복한 순서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민족 차별 정책 : 원은 민족 차별 정책(4계층으로 분류)을 실시하였다. 특히 관직 임용 때에 엄격한 신분 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은 관리 선발은 중국의 과거제도를 일시 중단하고 원조 특유의 문벌 주의(고급 관리 선발을 恩蔭制·세습제·추천제를 통한 가문을 중요시한 인물 선발 방법을 채택)를 택하고 있다. 광대한 중국을 통치함에 있어서 중국식의 州縣制를 채택하고 중국적인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가지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관료 군이 필요 하였기 때문에 元朝후기에 중의 과거제도를 부활시켰다. 이와 같은 관리 선발과 관료의 2층 구조는 민족 차별 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존심 강한 한인 층을 분열시켜서 정복왕조의 중국지배를 용이하게 하였다.몽골 제국의 점령지 통치가 갖는 특징 : 유목민의 욕구가 그대로 분출된 약탈적 성격과 함 께 그러한 욕구를 억제하고 정복지 한인의 전통적인 관행을 존중하는 두 가지 통치 방법이 서로 대립과 균형을 반복하면서 진행되었다. 太宗代의 稅制는 중국적인 외형약화)
    인문/어학| 2004.09.29| 6페이지| 1,000원| 조회(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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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초등학교 즐거운생활 교과서 분석
    1학년 「즐거운 생활」 교과서 분석과목명 : 즐거운 생활 1-1, 1-2발행연도 : 2000년출판사 : 한국 교육 과정 평가원Ⅰ. 교과서의 목차{영역1학년 1학기 즐거운 생활1학년 2학기 즐거운 생활그리기내 모습 그리기재미있었던 일 그리기가족과 즐겁게 지냈던 일 그리기운동회때 재미있었던 일 그리기풍선 나라 상상하여 그리기악기 연주하는 장면 그리기겨울에 재미있었던 일 그리기꾸미기여러 가지 색을 표현하기교통안전 표지판 만들기여러 방학 생활 계획표 만들기재미있는 방법으로 모양 꾸미기만들기꽃 만들기가족놀이에 필요한 놀잇감 만들기우리마을 모습 만들기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 만들기운동회 때 필요한 것 만들기흥부와 놀부 역할놀이를 위한 무대 꾸미기흥부와 놀부 역할놀이에 필요한 것 만들기송편을 빚어 보기여러 가지 모양의 고깔 만들기여러 가지 모양의 악기 만들기재미있는 방법으로 모양 꾸미기연하장과 카드 꾸미기윷놀이에 필요한 것 만들기여러 가지 모양의 팽이 만들기감상서로의 작품 감상하기Ⅱ. 교과서 분석A. 1학년 1학기 「즐거운 생활」 분석1. 회화가. 씩씩한 내모습 그리기 (8-9).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3점), 싸인펜화(학생작품 1점)-운동하는 모습 표현사진 1점-크레파스의 사용법 제시내용: 몸을 살펴보고, 움직여 본 다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동작을 관찰하여 그림, 움직임이 잘 나타나도록 그림나. 재미있었던 일 그리기 (28-29).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2점-바탕은 수채물감 사용), 싸인펜화(학생작품 2점)내용: 친구나 가족과 야외에서 재밌게 놀았던 일 그리기다. 가족과 즐겁게 지냈던 일 그려 보기 (32-33).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3점), 카드 만들기(학생작품 1점)내용 : 가족이 즐거웠던 일의 내용이 잘 드러나게 그림가족 구성원의 표정, 신체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림2. 구성가. 여러 가지 색 표현하기 (76-77).삽화 : 번지기 1점, 선긋기 1점, 싸인펜·크레파스·물감으로 그리기 1점-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무늬 표현한 것과 형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내용 : 여러 가지 재미있는 방법을 이용하여 물감으로 색 표현하기3. 디자인가. 교통안전 표지판 만들기 (16-18).삽화 : 학생작품 16점, 표지판 6점 - 주의표지판과 지시 표지판내용 : 교통안전 표지판의 종류와 알리는 내용을 알고, 네거리 놀이에 필요한교통 안전 표지판 만들기나. 여름방학 생활계획표 만들기 (94-96).삽화 : 1) 학생작품 4점2) 그림을 그린 후 오려 붙일 수 있는 작품 1점내용 : 방학동안의 할 일을 계획표로 만들기다양한 형태, 여러 가지 방법 (크레파스, 싸인펜, 사진 등)으로 만들기4. 공예가. 여러 가지 꽃 만들기 (38-39).삽화 : 1) 학생작품 5점, 어른 작품 3점2) 종이 꽃 만드는 순서 ( 1-8 )-종이와 입체의 종이꽃 작품내용 : 종이의 성질을 이해하여 꽃을 만들기종이 다루는 방법을 알고 , 여러 가지 종류의 꽃 만들기나. 소꿉놀이에 필요한 놀잇감 만들기 (42-43).삽화 : 1) 학생작품 16점, 공동작품 1점 -찰흙작품과 만드는 태도2) 찰흙 만드는 방법 3점 - 두드려 펴기, 말기, 오므르기-소꿉놀이에 필요한 음식과 도구내용 : 찰흙의 성질을 알고, 빗거나 말아 쌓아 소꿉놀이에 필요한 놀잇감 만들기다. 가족놀이에 필요한 놀잇감 만들기 (46-47).삽화 : 학생작품 9점, 사진 2점(만드는 태도, 역할놀이 )-구성원에 따른 작품내용 : 구성원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놀잇감 만들기여러 가지 재료 이용하기모둠별로 만들기실제로 가족놀이에 쓰일 수 있는 크기로 만들기라. 우리 마을 모습 만들기 (58-61).삽화 :1)학생작품 7점2) 건물 만드는 방법 1점(사각 건물, 둥근 건물)-도시, 어촌, 산촌, 농촌의 마을 모습내용 :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내가 살고 있는 마을 모습 만들기각 지역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만들기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 만들기 (82-83).삽화 : 학생작품 6점-유람선, 잠수함, 돛단배, 보트 등 여러종류의 배내용 : 배의 특징을 알고 여러 종류의 배 만들기종이상자, 패트병, 색종이의 특징을 이용해 배 만들기B. 1학년 2학기 「즐거운 생활」 분석1. 회화가. 운동회때 재미있었던 일 그리기 (24-25).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4점)-다양한 화지에 작품내용 : 운동회때 있었던 일 중 기억나는 일 그리기나. 풍선 나라 상상하여 그리기 (58-59).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4점)-전체적으로 그린 것과 오려 그린 것내용 : 풍선 나라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그리기바탕을 크레파스, 물감, 중요 부분만 오려서 모으기다. 악기 연주하는 장면 그리기 (66-67).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4점)-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 따른 작품내용 : 악기를 연주하는 몸의 자세, 표정이 잘 드러나게 그리기악기 소리에 어울리는 바탕 칠하기라. 겨울에 재미있었던 일 그리기 (96-97).삽화 : 크레파스화(학생작품 4점)-겨울 놀이에 따른 작품내용 : 겨울 놀이의 특징이 드러나게 그리기겨울철의 옷차림, 풍경이 드러나게 그리기2. 디자인가. 재미있는 방법으로 모양 꾸미기 (74-77).삽화 : 1)종이접기 작품 5점 -접어서 대칭이 되는 작품,배치를 대칭되도록 한 작품2) 딱지 만드는 순서 6단계 설명3) 종이 접고 오려 펼친 작품 16점4) 종이 접어 오려 펼친 설명 3단계내용 : 접어서 대칭되는 모습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접어서 대칭 만들기대칭이 되는 작품을 대칭이 되도록 배치하기종이를 접어 오리면 대칭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만들기3. 공예가. 운동회 때 필요한 것 만들기 (6-9).삽화 : 도구(학생작품 13점), 만드는 모습 1점, 응원하는 모습 1점-운동회 응원에 필요한 도구와 응원하는 모습, 만드는 과정내용 : 운동회 때 어떤 도구들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쓰임새에 따라 만들기재료의 특징을 이해하고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나. 흥부와 놀부 역할놀이를 위한 무대 꾸미기(26-29).삽화 : 1) 학생작품 8점, 토의과정 사진 1점2) 이야기의 순서에 따른 무대 배치 사진 4점3) 무대 꾸미는 과정 사진 1점내용 : 흥부와 놀부 이야기 순서에 맞는 무대 장면 그리기각각의 무대 장치의 크기가 어울리게 그리기협동하면서 모둠끼리 토의하며 꾸미기다. 흥부와 놀부 역할놀이에 필요한 것 만들기 (34-35).삽화 : 학생작품 10점, 역할놀이 사진 1점 - 인물에 따른 가면과 소품내용 : 흥부와 놀부 의 등장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는 소품 만들기가면은 얼굴에 쓸 수 있도록 만들기라. 송편을 빚어 보기 (42-43).삽화 :1) 학생작품 16점-찰흙과 고무찰흙2) 사진 1점 -송편 빚는 순서3) 사진 1점 - 과일과 채소 만드는 장면내용 : 송편 만드는 순서를 알고 송편 만들기찰흙 뭉쳐서 만들기, 길게 굴려서 만들기마. 여러 가지 모양의 고깔 만들기 (48-49).삽화 : 1)고깔 4점, 꽃 7점 - 한지와 색지를 이용해 꽃 만들어 붙인 고깔2) 사진 1점 - 고깔을 쓰고 있는 모습내용 : 둥글게 말아 만든 고깔과 삼각형으로 접어 만든 고깔한지와 색지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모양의 꽃 만들어 붙이기바. 여러 가지 모양의 악기 만들기 (64-65).삽화 : 1) 학생작품 6점 - 여러 종류의 악기2) 소리나는 악기 만드는 순서 4단계3) 사진 1점 - 악기 연주하는 모습내용 : 악기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도록 만들기사. 연하장과 카드 꾸미기 (86-87).삽화 : 카드 (학생작품 5점 )-여러가지 방법으로 카드 만들기내용 : 평면과 입체 카드 만들기종이 오려 붙이기와 데칼코마니 방식으로 만들기아. 윷놀이에 필요한 것 만들기 (100-101).삽화 : 1)고무찰흙(학생작품 7점), 윷판 1점 -윷놀이에 필요한 말과 윷판2)윷놀이하는 장면 1점내용 : 윷놀이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윷말과 윷판 고무찰흙으로 만들기자. 여러 가지 모양의 팽이 만들기 (108-109).삽화 : 1)전통팽이 사진 1점, 다양한 팽이 6점 - 여러 가지 팽이 모습2) 팽이 치는 장면 1점3) 팽이만드는 재료와 순서 3단계내용 : 전통 팽이 모습을 살펴보고 어떻게 도는지 알아보기간단한 재료를 이용하여 채 없이 돌릴 수 있는 팽이 만들기팽이 윗면을 대칭이 되는 색으로 꾸미기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꾸미기4. 감상가. 서로의 작품 감상하기 (98-99).삽화 : 입체만들기(학생작품 2점), 크레파스화(학생작품2점),싸인펜화(학생작품 1점)- 다양한 종류의 학생작품내용 : 겨울을 주제로 나타낸 학생의 작품 감상하기겨울놀이, 겨울의 계절 표현의 잘 된 것Ⅲ. 교육학적 관점으로 분석1. 교육학적 관점으로 교과서 분석1학년 「즐거운 생활」에서 미술과 교육은 주변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적 감수성을 길러주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하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과 미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인적인 인간을 육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전(前) 세기의 감상 교육이 훌륭한 미술 작품을 보고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의도나 예술사적으로 높이 인정되는 측면 등 이미 체계화된 지식을 학습하는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현(現)시대의 감상 교육은 감상자 즉, 학습자의 입장에서 미술 작품을 하나의 text로 인식하여 자기 나름의 의미를 찾아 작품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하였다. 나아가 학생은 내부에서 자기 각성 및 마음의 순화를 통하여 자기 형성의 기회를 갖게 되어 감상 교육을 통한 인격형성의 측면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을 자기 의도대로 변형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보면서 작가의 입장에서도,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교과서에 실린 많은 작품들이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구성되어 학습현장에서의 실습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실습을 통해 만든 작품을 서로 비교·체험함으로써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교육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특수성에 기초한 몇몇 작품과 내용이 책에 실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육학| 2004.09.29| 7페이지| 5,000원| 조회(2,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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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정치학]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나의 생각경제통상학부 199901089배 성 우통치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하는 다수인으로 이루어진 단체라는 뜻의 국가(國家Nation)는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인 통제가 미치는 통치기구를 갖추고 있는 점에 그 특징이 있으며, 국토, 국민, 주권의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구성된다. 다시말해 출생과 더불어 한 국가의 구성원이 되어 국가속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먼저 국가 역할에 대한 견해의 변천을 살펴 보면, 근대(19세기)에는 개인의 생명, 재산, 자유의 보호에 한정되는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야경국가론이 지배하였고, 현대(20세기중반이후)에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여 국가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는 복지국가론으로 변천하게 된다.그리고 국가관을 살펴 보면,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국가관과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이 있으며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적 국가관과 국가주의적 국가관이 있다.무정부주의적 국가관은 국가의 강제력을 부인하고 모든 제도를 반 자유적이라고 여기며, 국가강제력은 사유재산에 근거한 사회적 산물이라고 보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실정법을 부정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에서는 계급론적 관점에서 국가를 정의하는데,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그들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여 계급이 없어지면 계급지배의 수단으로서 국가도 함께 소멸한다고 보는 국가소멸론을 주장한다.하지만 이와는 달리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적 국가관은 개인과 국가를 하나의 대립체로 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찾는다. 즉 자유주의이념에 기초하여 국가를 하나의 필요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국가주의적 국가관에서는 개인과 국가를 유기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국가는 단순한 이해조정기구가 아닌 모든 국민의 목적실현을 위한 도덕체로 본다. 그래서 국가가 없는 자유란 무의미하다고 보며 개인의 삶은 국가전체의 이념과 목표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긴다.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가를 보는 견해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했으며, 현시대에 있어서 국가가 개인에게 갖는 역할과 의미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구조는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과거의 단순히 국민의 방패역할을 하는 국가에서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조정하고 통제하며 지원하는 다기능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있어서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 행동하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인간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며 때론 저항과 때론 충성으로 국가란 틀을 지속시키며 발전시키게 된다. 그 중심에 정부가 발달하며 단지 야경국가적이며 권위적인 국가의 모습을 지금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금자리와 같은 국가의 모습으로 가꾸어온 것이다.하지만 또한 지금의 국가란 틀속에서도 충돌은 일어나고 갈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속에 더욱 다양해진 요구와 문제점이 존재하며, 단순히 몇 가지 기본적인 기능을 하는 국가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로 변천하면서 마찬가지로 그에 따른 책임과 요구도 다양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기능이 다양해지는 것과 동시에 국민의 책임도 과거와는 달리 모든 부분에 있어서 권리 못지않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현대와 같이 다기능적인 국가의 역할이 수행되고 국민의 복지를 위한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국가와 구성원간의 약속이 준수되어야 하며 제도와 통제가 각 분야에 걸쳐 발달해야만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4.09.29| 1페이지| 1,000원| 조회(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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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학, 정치학] 미국대선의 전개양상
    부시 와 케리 . 그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경제통상학부199901089배성우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 의원. 2004년 11월 대선에서 미국 국민들은 이 두 사람 중 한 명을 뽑아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 의원이 13일 캔사스주 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전당대회 대의원 4322명의 과반수를 넘는 2194명을 획득,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양분돼 있는 미국 사회의 양대 축을 대표하는 두 사람을 토대로 하여, 양측의 정책적인 면과 전개상황을 통해 대권을 향해 양측이 극복해야할 과제를 모색하고자 한다.먼저, 최근 미국 대통령들의 학력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사실은 1988년 이래 미국 대통령은 모두 예일대 졸업생들이었다는 점이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88년)을 필두로 빌 클린턴(92년 96년), 조지 W 부시(2000) 등이 명맥을 이었다. 올해 있을 선거에서도 미국의 대통령은 예일대 출신이 될 것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왜냐하면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은 예일대 2년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예일대 출신인 점을 제외하곤 두 사람은 성격과 스타일면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두 사람은 예일대 비밀서클 해골과 뼈 의 멤버였지만, 케리는 세련된 말투와 주도면밀한 성격에서 드러나듯 모범생이었던 반면, 부시의 말투는 고등교육을 받았는가 싶게 투박하며 사고에서도 단순한 면을 드러낸다. 고교시절 케리는 흑인의 인권문제 등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리더쉽을 보인 반면, 부시는 친구들 사이에서 놀이를 주도하고 대학성적은 하위 20%에 속하였으며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스포츠, 음주, 여자사귀기가 전부였다고 한다. 케리는 대학졸업 후,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음으로써 전쟁영웅으로 부상하며 이러한 케리의 참전 경력은 부시 진영에겐 가장 취약한 대목으로, 이라크 전쟁을 이끌고 있는 부시는 현역이 아닌 국내 방위군 근무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지난 선거 때부터 받아 왔다. 미국 대선도 2002년 한국 대선 때처럼 병역 문제가 선거쟁점으로 부각된 셈이다.부시와 케리는 경제정책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부시는 우리는 미국 근로자들이 미래의 일자리에서 성공할 교육과 기술을 갖도록 할 것 이라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곳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여전히 세계를 선도할 것 이라는 연설로 세계 최강국 미국 의 이미지를 심을려는데 주력한다. 한편 케리는 조지 부시의 정책에서는 중산층이 세금을 더 내고 있다 , 미국의 중산층은 세금을 더 낼 여력이 없다 면서, 20만달러 이상의 연봉자들에게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내던 세금을 징수할 것이며 중산층에게는 부시 행정부의 감세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세금을 더 감면해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중산층의 생활안정 이라는 이미지를 심기위해 노력한다.대권을 향한 두 후보의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최근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계속해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미국의 이라크 개전 1년을 앞두고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60%가 현재 미국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국정방향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부시 행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일반 국민의 "비관론"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재선 전략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대선의 최대 쟁점이 경제와 국가안보 등 두 가지 현안에 모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현재와 같은 경기침체 현상이 계속 이어져 국민의 불만이 가중될 경우, 부시 대통령의 재선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마드리드 폭탄테러 여파로 14일 스페인 총선에서 친미 성향의 집권당의 패배는 부시에게는 악재로 작용하였으며, 9.11 테러참사나 최근의 폭탄 테러와 같은 돌출 상황이 다시 한번 미국 본토에서 발생하게 되면 부시로서는 치명타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50% 안팎으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간 대결구도에서도 현 시점에서는 케리 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라크 개전 1주년을 맞아 특단의 전기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이번 대선은 부시 대통령에게 힘겨운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케리의원에게 있어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선거자금면에서의 절대적 열세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생각된다.
    사회과학| 2004.09.29| 2페이지| 1,000원| 조회(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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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중과 포숙아] 관중과 포숙아
    관중은 관경중(管敬仲)이라고도 하며 제(齊)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기원전 730년 영상(穎上: 지금의 안휘성 영상현)에서 태어나 기원전 645년에 여든여섯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관중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출신은 분명하지 않으며, 제나라 환공(桓公)임금 재위 시절 재상으로 있으면서 통화적재(通貨積財)와 부국강병(富國强兵)정책을 실시하여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명재상이다.BC 7세기 경 당시의 중국 주(周)나라 왕실은 이미 통제력을 잃고 있었으며, 이에 실력있는 제후가 패자(覇者)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패자란 우선 주왕조의 종주권을 존중하면서 "제후 회의"를 소집하여 회맹(會盟)을 행하고 중원 제국을 위협하는 주변 소수민족의 격퇴와 중원의 질서 유지를 주된 임무로 삼고 있었다.최초의 패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한 인물이 바로 제나라의 환공(桓公)이다. 제나라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있었던 조그만 나라였으며, 환공도 그렇게 탁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춘추오패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관중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러한 관중의 공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환공이 비참한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관중은 환공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가 되게 하고 천하의 질서를 회복했으며, 그 은혜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만약 관중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랑캐의 풍속을 강요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관중은 친구 포숙아(鮑叔牙)와 죽마지우(竹馬之友)였다. 이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를 통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일찍이 관중은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관중은 자주 포숙아를 속이기도 하였지만 포숙아는 관중의 인간성과 뛰어난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 한번 하지 않고 최후까지 우정을 버리지 않았다. 관중은 이러한 포숙아의 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내가 옛날 가난했을 때,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가져도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이름을 얻게 해 주려고 계획했던 일이 도리어 그를 궁지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었지만 나를 바보라고 욕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에는 잘 될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당시 제나라의 왕은 이공(釐公)이었는데, 이공에게는 제아(諸兒) 규(糾) 소백(小白)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관중은 이중 규의 스승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시기에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의 스승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관자(管子) 「대광편(大匡篇)」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포숙아는 이 임명에 불만을 갖고 투덜댔다. 그는 막내인 소백(훗날의 환공)에게 계승할 자리가 돌아올 가능성이 없음을 짐작하고 그러한 사람의 선생에 취임하더라도 장래의 전망이 열릴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관중은 병을 칭탁하고 집에 틀어박혀 버린 포숙아를 찾아가 세 사람의 상속 후보자의 인물 비교를 시도하면서 소백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결국 장래의 제나라를 짊어지고 설 사람은 규와 소백일 것이다. 나는 소백의 재능을 인정한다. 그분은 잔꾀를 부리지 않고 높은 견지에서 사물을 포착하는 스타일이다. 인물의 스케일이 남다르게 웅대함으로 여간해서 남에게 쉽게 이해되지를 않는다. 순서상으로 말하면 규가 먼저지만 불행히 장래 어쩌다가 우리 제나라가 하늘로부터 재난을 받을 경우 규로서는 좀체로 난국을 극복해 나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숙아여! 그렇게 되었을 경우 국가 안태를 위해서는 자네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네."포숙아는 관중의 설득을 듣고 비로소 소백의 소승이 될 것을 승낙했다고 한다. 그 후 이공이 죽고 장자인 제아가 뒤를 이어 제나라 14대 왕 양공(襄公)이 되었다. 그런데 양공은 도저히 군주의 그릇이 못되었다. 무도한 행동이 많아 결국 사촌인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피살되었다. 이때 규는 관중과 함께 이웃나라 노(魯)로 망명하고 소백도 포숙아와 함께 거(艸+呂)로 달아나 난을 피했다. 그러나 공손무지도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신에게 원을 품은 자에 의해 피살당했다. 이에 공석이 된 왕좌를 둘러싸고 급히 중신회의가 열리고 거에 있는 소백에게 사자가 파견되었으며, 이 때 노나라도 제나라에 친노(親魯)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곧바로 규를 제나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중은 별동대를 이끌고 제나라의 도읍지 임치(臨淄)로 향하는 소백군을 요격했는데 직접 활을 쥐고 소백을 겨냥했다. 화살은 소백에게 명중하여 소백은 쓰러지고 관중은 돌아가서 그 사실을 규의 본대에 보고한다. 이미 경쟁 상대가 없어진 상태에서 안심한 규는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유유히 임치로 향했다.그런데 관중은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소백을 명중시켰다고 생각했던 화살은 소백의 혁대 바클에 맞았으며, 현명하게도 소백은 그 자리에서 죽은 시늉을 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관중이 물러간 뒤를 틈타 곧장 임치를 향해 달렸던 것이다.이리하여 규를 옹호하는 노나라 군이 제나라 영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소백은 이미 제왕에 옹립되어 있었다. 노나라는 전후를 돌봄이 없이 일전을 시도했으나 어이없이 패하고 제나라의 요구에 굴하여 그들이 옹립해 오던 규를 스스로의 손으로 살해해야만 하는 파국에 몰렸다. 제나라의 왕위를 둘러싼 골육상쟁은 이리하여 소백 진영의 승리로 끝났던 것이다.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중의 처분이었다. 소백은 자신에게 활시위를 당겼던 관중을 가차없이 죽이려 하였지만, 관중의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는 소백에게 관중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신은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전하를 따랐기에 오늘 이렇게 전하께서 왕좌에 앉는 영광을 함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에게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전하께서 제나라 일국만을 통치하실 생각이라면 고혜(高혜)와 저 둘만의 보좌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천하의 패자를 바라신다면 관중 외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관중을 쓰는 나라는 반드시 천하에 중시될 것입니다. 어떻게든 관중을 획득해야 합니다."환공은 자신이 신뢰하고 있던 포숙아의 말을 믿기로 하고 곧장 노나라에 관중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이에 관중을 접견한 환공은 관중의 뛰어난 식견에 감복하고 그를 재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모두 맡겼다.관중은 40년간 제나라를 다스리면서 대내외적으로 개혁정책을 단행하여 정치 군사 경제적인 면에서 모두 제나라를 춘추오패의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즉, 관중은 대외적으로는 패자로서 제나라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대내적으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정책에 힘을 경주했던 것이다. "농업의 보호 장려 소금과 철, 금 등 중요산업의 생산관리", "균형재정의 유지", "물자의 유통 및 물가의 조정", "세제 및 병역의 정비", "인재등용" 등은 바로 그가 시행한 주요 정책들이다.관중은 나라를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를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 보았다. 예 는 절도를 지키는 것, 의 는 자기선전을 하지 않는 것, 염 이란 자기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 치 란 남의 악행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사유" 중에서 하나가 없으면 안정이 무너지고, 두 개가 없으면 위기에 빠지며, 세 개가 없으면 전복되고, 네 개가 없으면 멸망한다고 보았던 것이다.관중이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총결하여 쓴 관자(管子) 라는 책 때문이다. 관자 는 선진시대의 전적 중에서 중국의 고대 경제사상 자료가 가장 풍부하게 보존되어 있는 저작으로 정치, 경제로부터 의식형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국가관리와 인민통치를 위한 이론과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창고가 풍족하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풍족하면 명예와 치욕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관자 에서 제시한 경제사상의 이론 기초이다. 관자 는 재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의 경제 각 분야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으로, 고대 전적 중에서 이보다 상세하게 경제분야를 논한 저작은 없을 정도이며, 관자 에서 확립된 경제사상은 몇 천년간 중국의 봉건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어학| 2004.09.29| 5페이지| 1,000원| 조회(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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