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아연의 건축 외장재로서의 적합성 검토 다른 외장재와의 특성 비교 아연패널의 종류 Quartz Zinc, Anthra Zinc, Natural Zinc 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 Standing Seam Flat Seam Batten Seam Sinus Profile Interlocking Panel아연의 건축 외장재로서의 적합성 검토아연의 일반적 특성다른 외장재와의 특성 비교11만원선6~9만원9~10만원20만원선4~6만원경제성 (원/㎡)우수현장가공 불가,곡면시공시 현장시공 난해현장가공 다소 난해양호가공성 우수, 현장 가공성 문제가공성 및 시공Natural→Quartz오염물 융착 변색없음습기에 의한 변형색상변화(부식)변색 및오염Zinc PanelAluminum PanelStainless Panel목재 패널동판종류아연패널의 종류Natural Zinc Quartz Zinc Anthra Zinc은백색 티타늄-구리첨가청회색 보편적 사용 Natural Zinc의 산화상태(인공적 파티나)검정색 인공적 가공 무광택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Standing Seam두계 0.7mm 폭 500,600,1000mmPan FormerPower SeamerDelta Membrane Sliding Clip Angle Lock -웨이브 현상 줄임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Flat Seam경사 47% 이상 직사각형, 정사각형,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패턴 가능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Batten SeamRoll Cap 곡면 접합 지붕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Sinus Profile경제적 파사드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Interlocking Panel인터로킹패널클립 조인트 간격(열팽창)아연패널의 시공 방법 및 사례{nameOfApplication=Show}
선가귀감나는 누구인가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한번 읽는것으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답답해지기까지 했었다. 무슨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으니 말이다. 처음 읽을 때 정말 머리를 싸메고 읽었다. 내 머리의 한계를 느끼면서 말이다. 두 번째로 머리를 사메고 읽고나니, 처음 읽었을때의 답답함이 없어지고 오히려 머리가 시원해 짐을 느꼈다. 내용이 무엇인가 이해도 되었으려니와,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 다가왔다.이 책에 나와있는 수없이 어려운 말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마음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 같다.책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선 이란 고요히 생각함 , 생각으로 닦음 이란 의미이다. 생각을 가라앉혀 정신을 통일하는 것은 모든 불교 종파의 기본적이 요소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특징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선종의 수행자들은 왕실이나 부호로부터의 보호가 필요치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단신 수행자들은 따분한 교학(敎學) 연구에 손을 댈 생각이나 여유가 없었으며 종교의 교리에서조차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선종에서는 이렇다할 저술서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 힘쓰므로 권력의 비호가 필요없었음은 당연하다. 어쩌면 종교인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안닌가 싶다. 이렇게 그런것들로부터 자유롭다보니, 이들은 스스로 자급자족 생활을 찾았다고 한다. 몸소 생산에 종사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을 신성시한다.서산대사는 이책을 통해서 자신의 선교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 선과 敎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과 아난이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데를 이르는 것이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를 이르는 것이 敎다. 또한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敎法이다. 法은 비록 한맛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 만큼 아득히 떨어져 있다. 라고 했다. 이는 서산대사가 선과 교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먼저 깨달음을 주장, 선을 교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전을 읽되 자기 마음 속으로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읽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한 그 뜻과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불교는 그 교리를 아는것으로써 그치면 안되고 스스로 깨쳐 마음으로 느낄 때 소용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흔히 부처님 이란 말을 석가모니와 동일시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면 부처님이란 눈뜬 사람 깨친 어른 이란 듯이며 가장 깊고 참된 진리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도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자비가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한다고 하낟. 그러니까 누구든지 눈을 뜨고, 세상의 이치를 깨치면 그가 곳 부처님이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인데, 아마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선가귀감에 나와있는 귀절중에 佛祖出世가 無風起浪이로다 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다. 라는 뜻인데, 이는 한 물건이나 사람은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졌는데 남이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세상에 나오심은 물결이 이는 것이라 한 것이다.불가에서는 중생 이란 말을 곧잘 한다. 이 말의 뜻은 참 성품을 읽어버리고 망령된 생각들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껴졌다 하므로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정식(情識)이 있는 모든 것을 중생이라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들 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까지 통틀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는 곧 부처님께서는 구제의 대상을 인류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이와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는 것이다.업 이란 말이 있다. 이는 우리들의 행동으로만이 아니고 말이나 생각으로 하는 온갖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업이란 나쁜것만이 아니고 좋은것도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업만을 지으라고 하신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한다.이 책에는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온갖 기질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뜻은 세상 모든 것에는 변하지 않는것과 인연을 따르는 것 두가지가 있고 사람에게는 단박에 깨치는 것, 오래 닦아야 하는 두가지 기질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 가르치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한가지 방편으로 모두를 일깨워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방편이 존재해야 함은 두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윤회 란 세상 모든 것이 고정 불변함 없이 인연에 따라 돌아 다니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업식도 육체가 분해될때에 육체를 따라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죽으면 지은 업력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 듯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성품을 깨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갈등과 무지가 사라지면 윤회는 끊어지고 만다고 한다. 이와같이 이 책에서는 갈등이 사라진 평온한 상태를 중요시 한다. 마음의 평온이 달성해야할 주요 목표인 것이다.또 이 책에서는 소승교 와 대승교 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소승은 자신의 해탈과 수행만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수행법이라 하고 대승은 큰 원과 뜻을 세워 나를 희생해서라도 모든 이웃을 즐겁고 평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이 있는 이들을 위해 육바라밀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한 법문이라 한다. 그러니까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얕은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이타적이어서 크고 참된 것이다. 한 중생도 남김없이 모두 제도한 후에라야 자신도 성불 하겠다는 비원(悲願) 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보면 소승보다는 대승이 더 큰뜻을 가지고 있는것이라 볼 수 있으며 대승의 교리를 널리 전파 시킬 때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또 이책에 나오는 말 중에 누구든지 말에 팔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는 일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될 것이다. 라고 한 구절이 있는데, 이는 교 를 선 보다 높이 평가한 것으로 여기서 설명 하기를 법은 이름이 없는 것이므로 말로써 미치지 못하고, 법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생각으로 헤아릴 수도 없다. 라고 하면서 무엇이나 말해 보려고 한다면 벌써 본바탕 마음을 잃은 것이고 본바탕 마음을 잃게되면 부처님이 꽃을 든 것이나 가섭존자가 웃은 일이 모두 죽어버린 이야기거리만 될 것이라도 하였다. 그러니까 마음에서 얻은 사람은 장꾼들의 잡담이라도 다 법사의 설법이 될 뿐 아니라, 새소리와 짐승의 울음까지도 진리를 바로 말하는 것이된다고 말하였다. 이는 모든 것에 항상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며, 말같은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즉 선과 교의 깊고 옅은 것을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생각 끊고 바연 쉬고 일없이 우뚝 앉아 있느니, 봄이 오니 풀이 절로 푸르구나 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는 실제로 아무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는 것이 아니다. 몸은 한없이 분주하고 골몰하면서도 마음은 밝은 거울이나 잔잔한 호수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몸은 바쁘나 마음은 고요한 상태라는 뜻이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선종에서 이루려는 상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순리를 그냥 두고 보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만약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곳은 돌이켜 살펴봐야 한다는 말도 된다.放下敎義(방하교의)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공부하는 이에게 경전은 마치 여행하는 나그네의 안내서와 같다. 길을 안 뒤에는 책을 덮고 부지런히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 고 하는 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교로써 이치를 공부하더라도 깨치고 나면 교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히 드러난 한 생각으로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바가 있을 것이다. 라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것을 배울 때 처음에는 지도서나 안내서, 교과서등을 보고 배우지만 그것을 모두 통달하고난 뒤에는 그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그 이후에는 내 마음속의 깨달음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참을을 할 때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 마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고,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다고 한다. 참선을 할 때 이러한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깨치지 못할 것이다.참선을 하는데는 세가지의 요긴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라 하였다. 이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즉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되며, 도는 닦을 때에는 먼저 뜻을 세워야하고, 참선하는 이는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크게 의심하는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참선을 하거나 모든 이치를 깨달을 때는 많은 것을 궁금해 해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또 공부를 하는데에는 적당함이 중요한데, 이를 거문고에 비유했다. 즉 공부는 거문고 즐을 고르듯이 하여 팽팽하고 늦음이 알맞아야 한다고 했다. 너무 조급히 하면 들떠서 병이 나기 쉽고, 너무 느리면 게을러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며 꾸준히 힘써 닦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같이 모든 일을 할 때에는 적당히 나아감이 중요하다. 빨리했다고 해서 좋은것도 아니며 느리게 하는것도 결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콜버그의 도덕발달 이론과 우리의 전통윤리콜버그의 도덕성 발달론을 보면 우선 그는 도덕성 발달을 인지 능력의 발달과 연관지어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도덕을 인지 발단 수준에 따라서 3수준 6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인습 이전 수준, 인습 수준, 인습 이후 수준의 3수준으로 나누고 각 수준에 따라서 1단계-처벌과 복종의 정향, 2단계-도구적 상대주의자 정향, 3단계-착한 아이 정향, 4단계-사회유지의 정향, 5단계-사회계약적 정향, 6단계-보편적·윤리적 원리의 정향의 6단계로 나누어 도덕발달을 설명하고 있다.그의 도덕성 발달론 에서 주시할 점들을 들어보면, 우선 도덕 단계는 위계화 되어 있으며, 불변의 계열을 이루면서 발달한다는 것이다. 즉 도덕성 발달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상향 발전하며 어느 단계를 뛰어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도덕 단계와 인지 능력 사이의 상관 관계의 문제이다. 도덕 발달에서 인지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반드시 두 능력이 병행한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인지 능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 사고와 판단능력이 높다고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사고·판단능력과 도덕적 행동 사이의 상관성 문제이다. 도덕적으로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 발달 단계가 높을수록 도덕적 행동의 경향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즉, 도덕적 사고와 판단에 있어서의 성숙도와 도덕적 행동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또 하나 주목할 점은 3수준 6단계의 수직적 계열과 함께 수평적으로는 논리적 능력, 사회적 관점, 도덕 판단, 그리고 도덕 행위의 4영역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도덕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그 원리에 따라 행위 하게 되는 데에는 사회적 압력, 상황적 요인, 개인의 동기와 정서, 의지, 목적, 자아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게 된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콜버그는 인지적 요인이야말로 도덕 판단과 도덕 행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으며 도덕성의 발달은 이러한 인지적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도덕 판단 능력의 발달과 관련지어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충실히 견지하였다.그는 도덕을 도덕적 판단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규정들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회의 요구나 기대, 또는 어떤 인습적 규범들이 그대로 도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규범들을 반성적, 비판적 검토를 거쳐서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바로 그것이 도덕이 된다고 본 것이다. 또 그에게 있어 도덕 판단은 선과 악에 대한 가치 규정적 양식으로써, 사실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가치 판단이며, 인간사에 대한 사회적 판단인 동시에 당위성과 권리·의무 등과 관련된 규범적 판단이라는 특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도덕 판단의 능력은 바로 도덕성으로 간주되는 것이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콜버그의 도덕 발달 이론은 상당히 체계적이며 인간의 도덕성 발달을 수준과 단계로 나누어 그에 맞추어 발달한다고 보고 있다. 발달은 반드시 순서대로 일어나며 비약하지도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나 행동도 대체적으로 이러한 발달 단계에 따라서 그 단계에 맞게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서양의 합리적이고 계량적인 사고방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론이다.우리는 대체적으로 서양인들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양식은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사고 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보면, 상당히 남에 대해서 배려를 많이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매정할 정도로 개인적이다. 사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남들과 굉장히 조화롭게 지내고 있으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남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은 콜버그의 도덕발달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굉장히 합리적이고도 타당한 것 같다.우리 사회는 어떠한지 보자. 우리도 역시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나 피해를 당하는 것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둔감한 편이다. 실제로 보면 피해를 받는 편이나 피해를 주는 편이나 서로를 이해한다. 예를들면 붐비는 지하철에서 남의 발을 밟았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과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실수로 발을 밟는 사람도 언젠가 자신이 남에게 밟힌 기억이 있고, 밟히는 사람도 언젠가 자신이 남의 발을 밟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사과하려고도, 사과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우리 사회에는 깔려 있다. 도덕성이나 행위 양식을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며 이에 따라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따위는 우리 사회에는 없다. 이렇게 서로를 너무 봐주다 보니까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남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취하면서 무언가 남의 잘못을 고쳐주고 싶어도 사회가 그러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그냥 서로의 잘못을 덥어주면서 대충 살아가게 되며 따라서 사회의 발전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경계하기가 일수다. 나는 항상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