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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국문] 언어 속 남과 여
    [-中間考査 課題-]{目 次1. 남성답다 Vs 여성답다2. 성별 언어의 특성1) 종결어미의 서법과 억양3. 성차별 표현의 양상1) 여성 차별 표현2) 남성 차별 표현3) 동일 형식의 성차별 표현4. 결론言語 속 男과女1) 국어 辭典(한글학회 큰사전, 금성판 국어대사전)을 통한 어휘조사2) 신문 소설 교과서 등의 글말 자료3) 실제 발화나 방송의 입말 채록과 같은 입말 자료4) 남녀의 언어 태도, 언어 심리에 대한 설문 조사{ ) 설문 조사는 1997년 1,2 학기에 걸쳐 전국 각 도별 대학생(숙명여대, 고려대,경찰대,서울교육대,강릉대,경남대,전남대,군산대,충북대,제주대) 1444명분(남:738명.여:706명)만을 출신 지역과 문항별로 분석.1. 남성답다 Vs 여성답다이번 학기말 과제에서는 남녀를 대상으로 남녀의 직업, 품행, 외모, 이름, 용품 등 제반 관련 사항들에 대해 다양한 문장 단위(어휘, 구, 문장 등)에서 성별로 특유하게 사용되는 언어로 주로 어휘 영역에서 나타나는 영역만을 다루도록 하겠다.우선, 남녀 대상의 언어 현상을 살피려면 남녀 성별을 감별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므로 남성답다 와 여성답다 라는 개념에 대한 언어적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 두 단어에 대한 연상어 반응 조사와 같은 것이 유용할 것이다. 가령 남녀 용품 중에 중절모자 는 [+남성적]이고 립스틱 은 [+여성적]이란 성별 의미 자질이 판단되어 각각 남성 대상어, 여성 대상어로 판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오토바이, 거울 은 어떤 성별어인가? 우리의 설문 조사에서는 남성답다 에 오토바이 가 반응어로 소수이지만 나타나고 여성답다 에는 거울 이 보인다. 이는 오토바이 를 주로 남성이 타고 거울 은 여성 애용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중절모자, 립스틱 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오토바이 는 상대적 남성어, 거울 은 상대적 여성어라는 판정을 할 수 있어 남성답다, 여성답다 에 대한 연상어 조사는 남성성, 여성성 판정에 참고된다. 이 연상어 반응 조사는 전국 남녀 대학생에게 시따뜻하다,매력적이다,매혹적이다,명랑하다,모성적이다,변덕스럽다,부지런하다,사랑스럽다,세련되다,순결하다,순종적이다,아담하다,(술에)약하다,여성스럽다,여우같다,온화하다,요리잘하다,요염하다,작다,점잖다,조심스럽다,지적이다,천사같다,친절하다,호리호리하다,활발하다위의 경우 공통 어휘항의 유의어들이 많지만 남성답다 의 경우보다는 가증스럽다, 내숭스럽다, 도도하다, 변덕스럽다, 여우같다, 약하다, 요염하다 처럼 부정가치어들도 많은 것이 특징이다.여학생들에게만 나타난 여성답다 의 반응어: 가녀리다,강인하다,괜찮다,깊이있다,깨끗하다,날씬하다,늘씬하다,살갑다,성숙하다,성실하다,소박하다,수다스럽다,싹싹하다,애교스럽다,엉덩이크다,예의바르다,여리다,옛날어머니같다,우아하다,의존적이다,인형같다,조신하다,차분하다,천박하다,체조선수같다,하얗다흥미롭게도 남학생만이 본 남성답다 와 여학생만이 본 여성답다 에 모두 강인하다 가 들어 있는데 이는 남녀 나름대로의 강인함을 달리 상정한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여학생만이 본 남성답다 와 여학생만이 본 여성답다 에 예의바르다 가 나타나는데 이 역시 여성들이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예의바름을 기대하는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준다.이상의 용언에 국한한 남성답다 와 여성답다 의 반응어 목록 조사에서 남녀 반응에 따른 공통어는 조사 대상수가 확대될수록 줄어들 것이고 어느 단계부터는 최후로 불변의 공통어휘군이 남아 그것이 핵심의미가 될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대상어의 성별 절대성과 상대성 판단에 어느 정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한편 위의 공통어 목록을 통해 과연 이들 목록이 진정한 남성다움 과 진정한 여성다움 의 어휘목록인가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이들 공통어 속에는 잘못된 남성다움 과 잘못된 여성다움 의 편견 어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학에 이어 남성학이 등장하면서 성학(gender studies)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진정한 남성다움 과 잘못된 남성다움 , 진정한 여성다움 과 잘못된 여성다움 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위해서 이러한 조 몰랐어요↘. 8오늘 처음 알았어요↘.출연자 중에 가장 연장자인 50대의 조영남은 합쇼체(-ㅂ니다), 해요체(-요), 하게체(-네), 해체(-지)를 다양하게 구사하여 해요체 위주의 여성 출연자들과 대조적인데 종결평서문 1, 4~8, 접속문 2가 하강조를 보이고 3에서만 상승조를 보인다. 3은 상대의 동의를 요청하는 청유문으로 결국 동의확인성 문맥이라 상승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라면 78도 아시겠어요? 와 같은 동의확인성 의문구가 생략된 것으로 상승조가 가능한데 조영남은 하강조를 보여 남성은 동의확인성 문맥에서도 하강조가 자연스러움을 알 수 있다.-1아, 여러분 저 마포구 저기 하수도 안에 다녀왔습니다↘. 2그 장마철 하수도 범람을 대비해서↘ 3그 안에 쌓인 흙하고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고 왔습니다↘. 4밤새도록 치워가지고↘, 5많이 고생들 하셨어요, 스텝들이↘.-6아이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7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8뭐 많이 도와 주셔가지고↘, 9덕분에 무사히 끝냈습니다↘. ⑩생각보다 힘들었어요↘. ⑪생각해보니까 참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젊은 배우 김보성은 합쇼체와 해요체를 혼합해 구사하며 접속문 2468이나 나머지 모든 종결문에서 시종 하강조를 써 여성 출연자들과 대조적이다.요컨대 접속문과 평서문에서 여성이 상승조를 보이는 경우는 상대방의 확인이나 동의를 원한다는 느낌을 주어 상승조 부분은 알겠어요? , 그렇죠? , 그렇잖아요? 와 같은 동의확인성 부가의문구를 덧붙인 부가의문문 구조로 치환이 가능하며 상승조는 바로 그러한 부가의문구를 생략시키고 상승조로 대치시켜 흔적만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 상승억양은 여성이 의문문,특히 부가의문문을 자주 쓰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즉, 남성 지배 사회에서는 의사결정자가 남성이므로 하위자인 여성은 자기 의견을 평서법으로 단언해서 말하기가 어려워서 상위자에게 애교적으로 의향을 묻거나 확인을 하는 의문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령, 여성들은 어떤 질문을 받으면 자기 의견을 개선을 위해 서구에서는 개선 지침을 만들면서 이 분야에 상당히 앞서 나가고 있어 한국여성개발원(1996)에서도 성차별적 언어 사용에 대한 개선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다음 설문을 통해 (1)일상 대화의 성차별 표현에 대한 광범위한 채록 (2)성차별 표현 체험의 집단 고백과 토의를 통한 실태 파악 (3)남녀 대학생을 통한 남녀 성차별적 언어 표현의 자술 설문조사라는 3단계 방향으로 성차별적 언어 표현들을 수집하고 유형화하였다.여러분이 생활 속에서 남성 차별이나 여성 차별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언어 표현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들었던 모욕적 표현이나, 친구 대화, 어른들의 말, 연속극, 영화 대사라든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표현에서 찾아 있는 대로 적어 주십시오.남성 차별 표현: 여성 차별 표현:설문의 응답 내용은 양적으로 많았지만 유사표현을 빼고 대표적 표현들만 유형별로 분류하여 살펴본다.1) 여성 차별 표현[1] 가사 책임론(1)가사 전념 요구 표현: 이런 것은 여자가 해야 돼 하는 식의 여성 역할 고정론에 따라 이를 못할 때는 여자가 그것도(요리도, 밥도) 못하냐 식의 열등감을 조장하는 표현들이다.(예)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애나 봐. 여자는 살림만 잘하면 돼.여자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나 잘하면 돼. 여자가 집에서 뭐 하는거야.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있어?(2)여성 역할 고정과 열등감 조장 표현: 가사 전담과 접대를 여성 역할로 고정화하고 그것을 못하면 무능한 양 열등감을 조장하는 표현이다.(예) 여자가 그것도 못하냐. 밥(요리, 설거지)도 못하냐?여자가 잘 챙겨야지. 오빠 밥도 안 챙겨주니?여자가 그런 것도 안 갖고 다니냐(화장지, 손수건, 바늘, 실)?(3)여성 무식 비방 표현: 여성을 무식하게 보는 표현들이다.(예) 집에서 밥만 하지 말고 신문 좀 읽어라. 여자가 저리 무식하냐.[2] 외부 활동 제한론가사 전념 요구는 가정 밖의 외부 활동 제한으로 이어지며 사회의 직장 생활, 야간 출입, 심지어 여성 운전까지 부정시하는 편견을 보여 준다.([5] 여성 천대론여성 존재를 무시하는 표현들로 아들 선호의 남아 존중 표현과 여성 무용론으로 이어진다.(1) 남아 존중 표현: 여필종부론과 같은 취지로 남성 존중 의식과 남성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예) 이놈아 너는 우리집 기둥이야. 집안에 항상 아들이 있어야지.우리 장남 열심히 공부하네 좀 쉬었다 해라. 아들이 최고야.여자는 키워 봐야 소용없어. 남동생은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2) 여성 無用 표현: 딸은 쓸데없다는 표현인데 이와 달리 첫딸은 살림 밑천이야 라는 딸 유용론도 있다.(예) 계집애는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야.저러니까 딸년들은 필요없어.(3) 여성 무능 표현: 여성을 무능시하고 무시하는 표현들이다.(예) 남자도 아닌게 뭘 한다고. 여자가 무슨. 가시나 주제에.여자가 잘 할 수 있겠냐. 아들도 못낳은 게 무슨 여자야여자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까. 여자가 잘나봐야 얼마나 잘나겠어.여자니까 봐 주자. 이러니 남자보다 못하다는 소리 듣지.그런데 이런 여성 무능 표현을 여성 스스로 자인하는 표현을 다음 예처럼 여성 스스로도 하고 있다.(예) 남자도 아닌 여자가 어떻게 그 일을 해. 넌 남자고 난 여자잖아.남자니까 여자에게 양보해야지. (어머니가 딸에게) 네 오빠는 남자잖아.(무겁고 힘든일이 있을 때) 난 여잔데.[6] 여성 속성론여성은 늘 편협하고 요물이란 식의 편견을 반영하는 표현들이다.(예) 여자는 이래서 문제라니까. 여자니까. 여자란건. 여자잖아.여자들은 할 수 없어. 여자는 안돼. 여자는 원래 그래.저건 여자도 아냐. 요즘 여자들. 여자 같지(도) 않아.여자가 말이야. 여자는 단순해. 여자는 자기 밖에 몰라.여자는 의리 같은 건 없잖아. 여자는 속이 좁잖아.계집애 속이 그렇지 뭐. 내숭떨지 마라. 얌전한 척 한다.[7] 여성 품행론여성의 행동과 자세가 방정함을 요구하는 성차별 표현들이다.(1)여성 태도 표현: 여성의 태도나 행동이 애교있거나 정숙하도록 요구하는 표현들이다. 여자는 ......이 있어야지, 여자는
    인문/어학| 2004.06.06| 15페이지| 1,500원| 조회(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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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문] 염상섭의 만세전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Ⅰ. 작가 염상섭과 소설,「만세전」상대적인 의미에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1920년대의 김동인과 이광수의 감각보다 더 넓은 사회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을 뛰어난 전체 의식 속에 묶은 작가가 나타났는데, 염상섭이 바로 그 사람이다. 조선 말의 정치의 혼란과 일본 제국주의의 충격 속에서 이루어진 두 얼굴을 가진 근대화 과정, 곧 어떤 계층에게는 새로운 생활과 새로 수입된 문화를 누리게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가속적인 식민화를 통해서 민족의 고통과 사회의 피폐를 부른 과정을 염상섭은, 비록 지식인의 처지에서 내다보긴 했으나, 「만세전」에서 하나의 전체 의식으로 그려냈다. 특히 「만세전」이 한 시대의 시대 의식의 봉우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그리는 그때의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식이 문화의 겉치레를 배우는 것과도 관계가 없고 그러한 문화를 익히는 과정에서 부푸는 지도자 투의 사명감과도 관계가 없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여 이 작품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삶의 뒤엉킴과 얼크러짐에 대한 의식이 바깥에서 온, 종합의 원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삶 자체의 깊이 속에 배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끊임없는 계획으로 파악된 자신의 삶의 한복판에 섬은 「만세전」의 주인공에게 바로 개체로서의 삶과 사회 안에서의 삶의 전체 속에 있는 것이 된다.1922년 『신생활(新生活)』지에 「묘지(墓地)」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가 「만세전」으로 개제하여 1924년에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나?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한다. 귀국 도중 미행하는 일본형사에게 시달려 울분을 터뜨리기도 한다. 집에 와 보니 현대의학으로는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유종(乳腫)인데도 아버지는 술타령이나 하며 재래식 의술에 맡겨 둔 채 죽음을 재촉한다. ?나?는 구더기가 들끓는 공동묘지 같은 환경에서 하루바삐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윽고 ?나?는 불쌍한 아내의 죽음을 생각하며 질식할 듯한 집안을 박차고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3?1운동 전야의 암담한 현실을 배경으로 민족의 비애와전」은 한 도쿄 유학생이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아내의 죽음을 겪고 장례를 치른 다음에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알맹이 부분은 주인공이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되는 식민지의 여러 모습에 몰려 있는데, 줄거리를 놓고 볼 때에, 이것은 주인공의 개인 사정을 더 잘 이해하는 데에 하나의 도움 자료의 구실을 한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알맹이는 바로 주인공의 여행을 부르는 개인적인 사건과 사회 전체의 모습이 어떻게 맺어지는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다.우선 줄여서 눈에 뜨이는 대로 이야기해보면, 주인공에게 그의 개인 사정과 사회를 맺어 주는 것은 그의 “우울증”이다. 그는 어느 쪽을 보거나 암담한 느낌을 가질 뿐이다. 개인 사정 쪽에서의 그의 우울증은 아내와의 불행한 관계에서 온다. 병들어 죽어 가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보여 주고 있는 자책감과 연민이 섞인, 그렇지만 지극히 냉담한 그의 태도는 그가 아내에게서 아무런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그와 아내는 순전히 전통적인 조혼의 관습에 따라 맺어졌다. 그들은 그가 열 살, 그리고 신부가 열 다섯 살 났을 때에 그들의 의사에 상관없이 맺어지고 그 결과로 아기까지 낳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열 다섯 살 났을 때에 일본으로 도망간다. 따라서 그 자신이 말하듯이 그들은 이름만의 부부가 되고 말았다. 주인공은 이 불행한 개인 관계를 단순히 자기 개인의 사정으로 보지 않고 한국 사회제도의 억누름의 한 양상으로 본다. 이것은 그가 귀국하여 부딪치게 되는 여러 가지 일에서 확인된다. 그를 둘러싼 사회 상황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의 전통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수탈정책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착 달라붙어 있어서 상황을 점차로 더 악화시키는 상승작용을 한다.참된 윤리는 남을 구제하는 태도에서가 아니라, 나와 남이 같은 처지에서 사는 것을 긍정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삶의 올과 결에 두루 미치는 이러한 의식싸단다."이러한 삽화(또는 에피소드/일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져 있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일본인의 침투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부동산 이익을 얻겠다는 형의 태도와 옛 터를 수리하여 살 때까지 살아 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동생의 태도가 대조적으로 드러나 있다. 나중에 종형이 문서를 위조하여 팔아먹은 산소의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형의 관심은 그의 도덕적인 분개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재산에 돌려져 있는데, 정작 산소 그 자체를 잃은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동생이다.이렇게 형의 보수주의는 허망한 것인데, 이 공허한 보수주의의 입장을 더 지겨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위에 뒤집어 씌워진 윤리의 탈이다.「삼대」에서도 그렇고 또 다른 단편에서도 그렇지만, 염상섭의 세계에서 윤리는 잇속 차리기를 감추는 탈이기 쉽다. 이것은 염상섭이 끈질기게 관심을 보이는 가족 윤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러한 타락한 윤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말할 것 없이 그것은 새로운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러나 염상섭의 경우에 이 새로운 정립은 적어도 「만세전」에서는 거의 윤리 그 자체를 내던짐을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는 것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계율의 강화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개체성과 개인적인 삶의 사회성을 그대로 인정함이기 때문이다. (이광수에서 비롯되어 오늘날까지 떠들어지는 속 빈 윤리주의에 맞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이것은 오늘날에도 귀기울임직한 주장이다.) 현실에 바탕을 둔 이러한 윤리의 주장은 「만세전」의 주인공과 김천형과의 맞섬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집에 돌아온 동생은 형이 첩을 얻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첩으로 들어온 여자가 한때에는 잘 살았으나 빈털털이가 된 최 참봉 집안의 열 아홉 살 난 딸임을 발견한다. 형이 아내를 두고도 첩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최 참봉 집안이 망한 것을 틈타서 거의 인신매매를 하다시피 해서 색시를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자식을 얻기 위해서 첩을 들였다고 변명하지만 잠자코 듣고 있는 동생은 마음난 다음이다. 그가 서울의 가족 상황에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가는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은 비판과 혐오만이 그의 태도의 모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닫힌 윤리 속에 사로잡힌 몸으로 살다가 죽어간 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위에서 우리가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태도를 차가운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정열적인 사람에 빗대어 본 것이며 또 그가 동경에서 오던 때의 태도이지, 실제로 연민과 동정은 언제나 그의 차가움 속에 섞여 있는 것이고 마지막에 갈수록 이것은 한결 더 강렬한 느낌이 된다. 아내가 죽고 난 다음에 그는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을 겪게 되고 살아 있을 때에 더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음을 뉘우치기도 한다. 물론 감정의 과장을 싫어하는 그가 뉘우침의 달콤한 양심놀이에 빠짐을 거부 할 대로 거부하는 점도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주인공이 한국의 상황 쪽에 섬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실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과 일본 여자와의 관계를 새로이 비추어 봄으로써 확인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주인공의 문제를, 문화 전달자와 박해자의 두 얼굴을 가지고 한국에 발 디딘 일본과의 적절한 관계 정립의 문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일본을 디딤돌로 이른 서양의 관점에 힘입어 한국현실을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서양 문화의 편에 섬은 그에게 자기 상실을 값으로 치르는 추상적인 선택에 떨어지는 일이 된다. 그는 한국을 택한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그에게 일본이나 서양 문화에 비이성적인 오해를 하도록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문제의 알맹이는 사람이 좋든 싫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뿌리내린 사회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의젓함을 돌이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기 비판을 버리는 일은 아니다. 또 다른 사회인 일본에 대하여 무엇이든 내가 알 바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한국 침략이 옳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일본 사에 자족하려는 성격이다. 그러나 의 이러한 현실부정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작위적인 외면에서 생기는 태도라는 점에서 소설은 새로운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따라서 작가는 의 민족의식이나 현실인식의 태도는 ‘결여’가 아니라 ‘마비’된 상태로 설정하고 그러한 마비를 푸는 소설적 장치로서 현해탄을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이르러 의 현실관은 새로이 눈을 뜨게 되고 현실 도피적이며 자아 중심적인 안목은, 조선인으로서의 를 자각하고 그러한 의 현실은 노동자로 속아서 팔려 나가는 비참한 조선인의 실체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비된 의식의 풀림이며 의 세계가 자신에서 조선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이며 새로운 의식의 세계로 開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소위 우국지사는 아니나 스스로 망국의 백성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던 ’의 의식 속에 목욕탕에서 엿듣게 되는 일인들의 대화는 마침내 로 하여금 “시니 소설이니 한 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투정질하는 수작이요, ‘失인생 失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얼마만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하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한다. 이것이 스물 두 살의 책상도령인 가 현해탄의 한복판에서 겪는 조선의 현실이자 조선인으로서 를 느끼는 자각의 장이 되는 것이다.이러한 변화는 현해탄을 건너 조선의 길목인 부산에서 느끼는 현실을 통해서도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부산의 현실이 ‘조선의 縮寫’로서 제시되고 있는 희극적 묘사 속에서도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이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등 값과 신문대금과 양복과 찻삯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이기나 근대화의 상징들조차 결국은 ‘식산은행’의 금고로 이어지는 식민지화의 또 따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부산 거리에 대한 묘사에서는 신흥세력으로 대두한 日人들의 점거와 수탈, 이에 따른 조선인의 파탄과 이주 등의 사회문제의 제시를 통해 의식이 전환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변모하는 공간의 구조 속에서 봉건적이고 관료적인 사고하의 전제
    독후감/창작| 2004.05.29| 14페이지| 1,000원| 조회(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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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현대문학] 모더니즘 시와 한국현대사 평가C아쉬워요
    모더니즘 시와 한국 현대사1. 개념의 이해(1) 용어설명1) 모더니즘 [ modernism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 중 하나.넓은 의미 -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좁은 의미 -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것2)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한다.(2) 대표적 시인1930년대-정지용(鄭芝溶)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장서언(張瑞彦) ·최재서(崔載瑞) ·이양하(李敭河) 김광섭(金珖燮) ·김현승(金顯承)1950년대- 김수영(金洙映) ·박인환(朴寅煥) ·김경린(金璟麟)2. 시대별 한국 시단에서의 모더니즘의 영향(1) 1930년대 영미 모더니즘 시운동의 수용과 영향1) 영미 모더니즘의 수입과 소개김억 - 시집『잃어버린 진주』의 서문을 총해 영국 출신의 모더니즘 시인인 리처드 올링턴과 에이미 로웰의 시를 소개. (1924년경)유완희 - 『개벽』지를 통해 올링턴의 「지하철에서」를 번역함. (1926)1930년이 조금 지난 시점부터 최재서, 김기림, 임학수, 이양하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수입,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영문학 전공자들이었던 이들은 당대 한국문학이 처한 상황적 조건을 그 나름의 안목으로 분석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 모더니즘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던 듯하다. 즉 당시의 문단은 세기 말류의 병적인 감상주의와 카프를 중심으로 한 소위 경향파 시가 주류를 형성하는 한편, 일부 쇠퇴의 기미도 함께 보이고 있던 실정이었다. 이러한 퇴폐적 감상성과 계급목적의식에 맞서, 이들은 참신한 감각의 언어예술에 대한 자각을 기초로 한 영미 모더니즘 시론의 도입이 우리 시단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이해하고, 이를 활발히 창작에 반영시킬 것을 제안한다.김기림의 「시작에서의 주지적 태도」와 「포에시와 모더니티」최재서의 「현대 주지주의 문학 이론의 건설-영국 평단의 주류」「비평과 과학-현대 주지주의 문학 이론의 건설 속편」2) 주요시인들의 활동이론 이외에 직접 창작에도 관여했던 김기림을 비롯한, 정지용, 김광균, 오장환, 장만영, 장서언 등은 재래의 시들과는 구분되는 참신한 감각과 회화적 이미지의 활용, 언어적 조형성 등을 앞세워 우리 시단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진다.① 김기림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대부.초창기 그의 영미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상당기간동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적 한계를 극복하고 근대 문명 비판의 태도를 선보이면서 모더니즘적 세계관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큰 성과를 이룬다.② 정지용이미지의 조형성이나 감각적 표현의 세련됨, 참신성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전대 미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ㅡ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ㅡ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ㅡ정지용,「향수」부분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ㅡ정지용, 「유리창 1」전문향수 : 감각적 이미지에 대한 그의 관심과 그것의 언어적 조형에 대한 섬세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유리창 1 : 아들을 잃고 나서 쓴 시.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들을 통해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 객관적인 소재들과 우회적이며 절제된 표현 기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③ 김광균김광균은 김기림, 정지용과 더불어 1930년대 모더니즘 시를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는 특히 김기림이 지적했듯이, '소리조차 모양으로 번역하는 기이한 재주'를 가지고 회화적인 시를 즐겨 쓴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도시적 소재를 바탕으로 공감각적 이미지나 강한 색채감 이미지의 공간적 조형 등의 기법을 시에 차용하였으며 특정 사물의 한계를 넘어 관념이나 심리의 추상적 차원마저 시각화시켰다. 그의 시 속에는 소시민적 서정과 문명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삶의 우수(憂愁)와 같은 정서가 깃들어 있다.영미 모더니즘에서 강조하는 일반적인 특성과는 달리, 위 인용시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과거의 추억이나 자아 내면의 슬픔 등과 연관된 낭만적 감상성이 짙게 그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어느 머언 곳의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서글픈 옛 자췬 양 흰눈이 내려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 홀로 밤깊어 뜰에 나리면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희미한 눈밭이는 어느 잃어버린 추억의 조각이기에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ㅡ김광균,「설야」전문*김광균의 작품 경향① 도시적 소재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함.② 이미지의 공간적인 조형을 시도함.③ 강한 색채감으로 감각도 높은 정서를 형상화함.④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여 사물은 물론 관념이나 심리 등의 추상적인 것마저 그려 내려고 함.*김광균의 모더니즘과 문학사적 의의대체로 모더니즘의 특성은 ⓛ 감정의 무절제한 유로(流露)의 배격, ② 소재의 현대화, 다변화, ③ 이미지의 중시 ④ 언어의 조탁(彫琢) 등을 들 수 있는데, 김광균은 1940년 2윌 발표한 '서정시의 문제'에서 ⓛ 반 낭만주의, ② 주지주의, ③ 현실 비평, ④ 형태의 사상성, ⑤ 도시어의 사용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김광균이 인식한 모더니즘은 김기림 등 당대의 다른 시인들에 비해 비교적 서구의 그것에 접근해 있다. 그리고 김광균의 시는 주로 시각적인 이미지에 치중하지만, 이미지스트의 특성을 드러내고있다는 점에서 서구의 이미지스트에 가깝다. 비록, 감상(感傷)의 내면 풍경을 억제하지 못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김광균의 모더니즘은 우리의 정신적 상황과 서정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 문명 비판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김광균은 최재서, 김기림이 제시한 모더니즘이론을 작품으로 실천한 한국의 이미지스트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있다.(2) 전후 한국 시단에서의 영향1) 시대적 상황해방 이후 전개된 이른바 후기 모더니즘 시운동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에 속한다. 그것은 이 시기의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제 하의 1930년대 모더니즘의 연장에서 태동하였으며 그 문학사적 맥을 이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각자의 시에 나타난 모더니즘적인 특성이 어느 특정유파의 이론만으로는 일관되게 조망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6 ? 25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참화를 거치는 동안 후기 모더니즘 시인들의 활동 또한 크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구체적인 생활상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전반에 걸친 서구 사조의 급속한 유입과 확산은 이들의 기존의 인식 역시 상당한 굴절의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국 30년대에서와 같은 영미계, 대륙계 식의 단선적인 이해의 틀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양자의 특성들이 어느 정도 혼재되었으며, 더불어 여타의 성향들 역시 가세하게 되어 종래와 강이 일목요연한 계통적 인식은 어차피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동인후기 모더니즘의 출발점.김경린, 김병욱, 박인환, 김경희, 임호권 등이 참여.1948년 4월 『신시론』동인지 발간. 이듬해 4월 시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의 발간으로 연결됨.전후 극심한 좌우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이들은 ‘새로운 시’에 대한 의욕과 자신들만의 세대의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존립근거를 확보하고자 한다. 사상성의 결여와 난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모더니즘의 테두리 내에서 자기자리를 확보하고자 하였던 점은 마땅히 중시될 필요가 있다.2) 전후 한국 모더니즘에 미친 영미 모더니즘의 영향동인들은 1950년에 접어들면서 라는 명칭으로 활동.이때 김병욱, 김경희 탈퇴, 김수영, 양병식, 조향, 이한직 등이 가입.① 김경린1940년 일본유학시절 익힌 국제적인 감각과 흐름 속에 모더니즘의 본질을 가지고 이시기의 실질적인 리더를 담당. 그러나 이후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까닭으로 작품으로는 그다지 크게 평가받지 못함.②김규동후기 모더니즘 시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시인. 김기림의 제자로 그에게 모더니즘의 강한 세례를 받음. 그이 모더니즘은 현대문명의 병적인 징후까지를 포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이러한 징후들을 그는 시에서 문명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된 불안 의식과 속도감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1시집『나비와 광장』-「검은날개」「뉴 - 스는 눈발처럼 휘날리고」*김규동 시에서의 ‘나비’의 의미.현기증나는 활주로의최후의 절정에서 흰 나비는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피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한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의 광장에서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투명한 광선의 바다 뿐이었기에 ㅡ진공의 혜안에서처럼 과묵한 묘지 사이 사이숨가쁜 Z기의 白線과 이동하는 계절 속 ㅡ불길처럼 일어나는 燐光의 조수에 밀려이제 흰 나비는 말없이 이지러진 날개를 파다거린다.ㅡ 김규동,「나비와 광장」부분③박인환, 김수영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음. 도회적 이미지와 감각의 전면화나, 문명 비판적 인식의 강화, 시작에 있어서의 주지적인 태도 등을 여전히 영미 모더니즘의 연장에서 정리될 수 있음. 이 두 시인은 영미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문명 비판적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인 바, 이후 단계에서 리얼리즘과의 접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음.
    인문/어학| 2004.05.29| 5페이지| 1,000원| 조회(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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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사] 한국문학통사1 평가A좋아요
    目 次한국문학통사 1. (원시 문학 - 고려 전기 문학)1. 문학사 이해의 새로운 관점1.1. 문학의 범위1.2. 문학의 갈래1.3. 시가의 형식과 율격1.4. 시대구분의 방법1.5. 시대구분의 실제1.6. 고대문학, 중세문학, 근대문학2. 첫째시대-원시문학2.1. 구석기시대의 문화와 언어예술2.2. 신석기시대로의 전환2.3. 민족문화와 계통과 관련해서3. 둘째시대-고대문학3.1. 건국 신화, 국중 대회, 건국 서사시3.2. 고조선의 경우3.3. 부여, 고구려계의 전승3.4. 삼한, 신라, 가락, 탐라 쪽의 사정3.5. 짧은 노래 몇 편3.6. 전설, 민담 시대로의 전환4. 셋째시대-중세전기문학제1기 삼국*남북국 시대4.1. 한문학의 등장과 그 구실4.1.1. 한자의 수용과 활용4.1.2. 나라의 위업을 알리는 문학4.1.3. 국내외의 정치문서4.2. 노래의 새로운 모습4.2.1. 고구려 노래4.2.2. 백제 노래4.2.3.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4.2.4. 향가, 사뇌가4.3. 향가의 작품세계4,3.1. 민요계통의 노래4.3.2. 화랑의 노래와 그 변모4.3.3. 월명사와 충담사4.3.4. 불교신앙의 노래4.4. 불교문학에서 문제된 이치와 표현4.4.1. 불교사와 문학사4.4.2. 원효4.4.3. 원측, 의상, 혜초4.4.4. 게송과 염불4.5. 설화에 나타난 상하*남녀관계4.5.1. 신화적 상상의 유산4.5.2. 민중이 받든 영웅4.5.3. 고승의 신이한 행적4.5.4. 하층민의 소망과 시련4.5.5. 설화의 정착과 변모4.6. 연극의 자취를 찾아서4.6.1. 굿, 놀이, 연극4.6.2. 고구려, 백제의 놀이와 연극4.6.3. 신라 쪽의 사정과 처용극4.6.4. 다섯 가지 놀이4.7. 남북국시대의 상황과 문학4.7.1. 동아시아문학의 판도4.7.2. 발해문학의 위치4,7,3, 발해 시인이 남긴 작품4.7.4. 신라문학과 대외관계4.8. 신라 한문학의 성숙4.8.1. 신문왕과 설총4.8.2. 전성기의 수준4.8.3. 말기의 상황과 왕거인4.8.4. 최예술이 동작예술이나 언어예술과 얽혀 이른바 원시종합예술을 이루고 있었을 터이니 남아있는 조각이나 그림을 보며 남아있지 않은 춤이나 노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형예술에 담긴 사연을 노래나 말로 풀이하는 것이 바로 언어예술인 것이다.2.2. 신석기시대로의 전환 (원시문학 제2기-노동요의 시대/신화발생)1) 노동요의 시대-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오자 문화 형태에서도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농사를 지으며 부르는 농업노동요, 추상적 사고의 상징적 표현을 특징으로 삼는 신화 같은 것들이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 형성되었을 성싶다. 밭을 갈고 씨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일을 여럿이 함께 하면서 손발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데 노래는 참으로 긴요한 구실을 한다. 노래사설도 더 길게 늘일 수 있었을 것이다. 농업노동요는 분명히 신석기시대에 생겨났으며 갈이노래, 심기노래, 거두기 노래 같은 노래의 종류나 교환창, 선후창 같은 가창방식의 기본이 이미 그때 마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신화의 발생- 구석기시대에는 신화를 이룰 수 있는 요소는 나타났어도 아직 신화의 형성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신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마련되어야만 얽혀낼 수 있다. 태양이 지난 상징적인 의미, 알이 생명의 핵심이라는 사고방식 같은 것이어야 말로 신화를 만들어내는 기본고리에 해당한다.2.3. 민족문화와 계통과 관련해서언어를 기준으로 해서 민족의 연원을 따진다면, 우리민족은 알타이계통에 속한다고들 한다. 그 가설을 역사적 맥락에서 다시 해석하면 청동기를 가진 알타이 족의 한 갈래가 남부 시베리아, 몽골고원, 북부 중국을 거쳐 만주와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가능한 추측이다. 알타이족의 한 갈래가 신화나 노래 같은 것들을 그 언어적 특질과 함께 간직한 채 들어와서 선 주민을 정복해 문화적 융합을 이루고 시대에 따라 새로운 창조를 거듭하면서 외래적인 영향도 받아들인 것이 국문학사의 전체적인 전개라고 할 수 있겠다.3. 둘째시대-고대문학3.1. 건국신화, 국중대회, 건국서사시1) 건국명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역사적 의의에 의한 선후 관계를 말할 수는 있겠다.1)先(신화시대)시대- 자아(사람)와 세계(자연)가 동질적이거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다. 둘 사이의 대결양상은 동질성을 근본적으로 해칠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다. 사람과 자연의 대결의 대결은 주술을 통해 인간사회 내부의 대결은 공동체적인 유대를 통해서 해결 가능했던 것이다.2)後(전설, 민담시대)시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때는 문제의 시기였다. 도 그때의 노래지만 해명태자가 죽게 된 사태를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그 사태를 다룬 의 기사는 전설이 부각되게 된 이유와 전설의 모습을 아울러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전설이 대두하면서 민담이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설에서 문제삼는 횡포와 민담에서 내세우는 자아의 가능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표리 관계에 있다고 해도 좋다.(어려선 머슴살이, 다시 소금장수로 나섰다가 봉변을 당한 끝에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른다는 고구려 미천왕의 이야기, 온달이나 백제 무왕도 원래는 미천한 처지였다든가 하는 데 민담의 모습이 투영)4. 셋째시대-중세전기문학< 제1기 삼국*남북국 시대 >4.1. 한문학의 등장과 그 구실4.1.1. 한자의 수용과 활용한문이 활용되면서 중세문학이 성장했다. 그 뒤 19세기에 이르기까지가 한문이 거듭되는 도전을 받으면서도 지배적인 위치를 누린 시기이다. 한문수용으로 한문학을 일으킨 것이 우리말문학에 의한 자기중심주의가 기층문화의 영역으로 내려가서 한문학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했다는 점에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명권 전체의 공동문어와 세계종교를 받아들이면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갔던 것은 문명이 발달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있었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그렇게 서 인류는 지혜를 서로 나누며 고대의 폐쇄성, 불평등, 비논리를 시정하는 사회변화를 겪고 거기 상응하는 이념적 예술적 향상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동 문어 사용이 길게 보면 민족에 형성과 정비를 저해하지 않고 자극충담사는 와 를 남겼다.1) 는 경덕왕의 요청에 따라서 지었졌다. 당시, 신하가 임금의 자리를 위협하 는 도전이 나타났으므로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어미요, 백성은 자식라는 점을 강조하 여 국가의질서를 구현하고 반대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어진 노래.2) - 죽은 화랑의 우두머리인, 기파랑을 찬양하기 위한, 충담사 개인의 서정 이 담긴 사뇌가 로서 숭고미과 비장미가 느껴지는 노래.4.3.4. 불교신앙의 노래(1) -문무왕 때 광덕이라는 자가 신을 삼아서 생계를 도모했는데 아내는 분황사종이었다. 광덕의 벗, 엄장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처지로 광덕이 죽자 그의 아내를 차지하였다. 한편, 광덕은 불도를 닦는 승려였다고 하고 더구나 아내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두 사람은 한번도 동침하지 않았다고 하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2) -희명이라는 여인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 다섯 살 난 딸이 있었는데 아이를 안고 분황사 천수관음화상 앞으로 가서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빌도록 하니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연이 담긴 노래다.(3) -원성왕 때, 향가를 잘 짓기로 명성이 있던 영재스님이 도적을 만나 지은노래.4.4. 불교문학에서 문제된 이치와 표현4.4.1. 불교사와 문학사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2년), 백제는 384년(침류왕 원년), 그리고 신라는 528년(법흥왕15년)에 불교를 공인하고, 세 나라가 모두 불교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문학사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불교는 한문경전을 통해서 이해되고 논의되었다. 불교나 한문은 유래나 통용범위가 다르지만 중세의 보편주의를 구현하는 양대 지주로서 문화수준향상의 결정적 구실을 했다.4.4.2. 원효원효는 많은 저술을 남겼을 뿐 아니라 사상적, 문학적으로 우뚝한 위치를 차지했다.*저술- 대표적인 중요 경전들, 기,소,종요,논 등이 망라되어 있다시피 한 점을 보아 그 폭을 가히 짐작할만하다. ,,등이 있다.*육두품 출신으로서, 신라통일 전후시대의 인물이다. 당시 설화자료의 대표격으로, 을 들 수 있다. 설화를 글로 적으면서 수식을 가다듬고 주제도 다소 보태는 작업은 신라 말 이래로 줄곧 계속되어왔으며 그렇게 하는 데서 전기니, 패관잡기니 야담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것들이 설화와 소설의 중간적 형태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또한 과거제가 실시되면서부터는 정통한문학이 아닌 글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4.6. 연극의 자취를 찾아서4.6.1. 굿, 놀이, 연극굿, 놀이, 연극은 원시시대에 시작되었고 고대에 이미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마음에 지닌 사연을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면서 또한 서로 구분된다. 사냥이나 농사의 성공을 기원하고 거둔바가 풍성하다고 즐거워하며 노래부르고 춤추던 행사는 굿이면서 동시에 놀이였고 거기에 공연자들의 생활에 관한 사연이 반영되어 있어 연극이라고 할 만한 것도 나타났다.4.6.2. 고구려, 백제의 놀이와 연극*고구려의 가무가 대단했다는 직접적 자료는 고분벽화이다. 춤추는 모습, 씨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을 그려놓은 고분은 안악3호고분의 음악연주행렬도 이외에도 꽤 어려 개 있다. 고구려의 놀이와 연극은 탈춤과 꼭두각시놀음 두 가지로 정립되었다.*백제의 놀이나 연극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정도의 놀이가 관심거리일수 있겠다.구슬을 놀리는 놀이인데 신라의 놀이와 비슷한 것 같다.대표적인 연극의 자취로는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 이라는 불교포교를 위한 대사없는 무극형태의 탈춤을 들 수 있다.4.6.3. 신라 쪽의 사정과 처용극신라의 놀이와 연극은 의 가무백희 (한가위를 즐기느라 벌인 갖가지 놀이)라는 말로 총칭했다. 노래 춤은 물론 연극적 놀이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는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춤이나 굿으로서 또는 연극으로서 더욱 주목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4.6.4. 다섯 가지 놀이 악지에 최치원의 시, 라는 것이 인용되어있다. 다섯 가지 놀이를 읊은 내용인데 후대학자들은 이 다섯가지를 라 부른다. 그 다섯 놀이는 다음과 같다. -금빛방울을 놀리는 놀이, -놀이는다.
    인문/어학| 2004.05.29| 20페이지| 2,500원| 조회(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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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장사상
    0. 프롤로그 (prologue)노자의 철학에서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로운 것들은 모두 값진 것이 아니다.명예나 권력이나 돈은 노자의 세계에서는 모두 쓸데없는 것들이다.노자가 추구한 것은 공자처럼 도덕을 닦아 훌륭한 인격을 완성하는 일도 아니었다.노자가 보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기본적인 생명의 욕구, 자연스러운 생명 활동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이었다.황금만능주의와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노자의 철학 사상에 대해 공부하고 고찰해보는 일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모기가 물어 대면 밤새 잘 수가 없다.지금 인의 도덕을 말하는 것은 귀찮게 인심을 어지럽혀 혼란만 더하는 것이다.백조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저절로 두껍고,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고, 별은 저절로 늘어서 있고,초목은 본래 종류가 여럿이다.거기에 다시 인의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그것은 마치 북을 두드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다.< 김교빈의 『동양 철학 에세이』 중에서 >1. 老子 略傳주나라 말기의 세상이 어지럽던 때에 儒家와 대항하면서 천하의 사상계를 양분하여 그 하나를 지배한 것은 道家이며, 그 開祖는 老子이다.노자는 성이 李, 이름은 耳, 자는 伯陽이다. 초나라의 고현려향곡인리의 사람이다.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노자는 현 호남성 남부지방인 조나라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면, 공자와 동시대, 혹은 연장자이며 공자는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으며 노자를 매우 칭찬하였다고 한다. 《노자》라고 하는 책은 뒤에 《도덕경》이라고 불렀는데 종래에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철학자로 인정되어 왔지만 최근의 학술풍토는 그 견해를 뒤집어 노자를 공자의 훨씬 뒷시대의 인물로 추정하고 있다.노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 공자(BC 552~BC 479)가 젊었을 때 뤄양[洛陽]으로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한 가르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는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위(無爲)하다고 할 수 있다. 통치자가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을 본받아 백성들을 간섭 ·지배하지 않고 그들의 자발성에 맡긴다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 노자에 의하면 일체 사물 ·사건들은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 유(有)가 있으면 무(無)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 이들 대립자들은 서로 전화한다. 화는 복이 되고 흥성한 것은 멸망한다. 이러한 대립전화(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柔)를 지키면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이를 귀유(貴柔)사상이라고 한다.노자사상은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 한(漢)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던 황노(黃老)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한고조(漢高祖)는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동한(東漢) 말엽에 도교를 창도한 장도릉(張道陵)이 노자를 교조(敎祖)로 추존(追尊)하고 노자오천문(老子五千文)을 신도들이 외우고 익혀야 할 경전으로 받들어 노자사상은 도교의 교리가 되었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 하안(何晏)이 도덕론을 짓고 왕필(王弼)이 노자주(老子注)를 저술함으로써 노자사상은 위진 현학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또한 인도에서 들어온 불경을 해석하는 데 노자의 용어와 이론이 활용되어 격의(格義)불교 형성에 이바지하였다.한국에서는 상고시대 이래의 신선사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과 결합, 풍류를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재난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과의(科儀)도교가 성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산림(山林)을 찾아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2. 老子의《道德經≫과 道《노자(老子)》 또는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약 5,000자,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나, 그 사상 ·문체 ·용어의 불통일로 미루어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BC 4세기부터 한초(漢初)에 이르기까지의의 영위(營爲)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도이며, 그 도의 작용을 덕(德)이라 하였다.이런 의미에서 도와 덕을 설파하는 데서, 《노자》의 가르침은 도덕(오늘날의 도덕과는 다름)으로 불리어 《도덕경》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노자사상의 중심은 오히려 정치 ·처세의 술(術)로서의 무위를 설파함에 있고, 형이상학적인 도의 논설은 그 근거로서의 의미를 지님에 불과하다. 노자는 하는 일만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을 서두르면 도리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세상에 비추어, 오히려 무위함이 대성(大成)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선 의도하는 바는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고, 게다가 그 공업(功業)은 착실 절묘하다고 설파하였다.이 도를 본으로 하여 무위함에서 대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하며, 이 점에서 형이상의 도와 실천적인 가르침이 관련된다. 무위의 술(術)이란 구체적으로는 유약 ·겸손의 가르침이 되고, 무지 ·무욕의 권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징으로서는 물[水] ·영아(兒). 여성에의 예찬이 된다.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악(仁義禮樂)이나 번잡한 법제금령(法制禁令)은 말세의 것으로 배척하고, 태고(太古)의 소박한 세상을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궁극적으로는 세속적인 성공을 쟁취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논법에는,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 ‘대공(大功)은 졸(拙)함과 같다’ ‘그 몸을 뒤로 하여 몸을 앞세운다’와 같이 역설(逆說)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道可道非常道 -여기서 말하는 도는 만물의 본체이며, 우주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言說의 相을 떠나있으며,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으며,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것을 근정(根定)하게 마련이다. 예컨데 꽃 이라고 말하면, 그 대상이 된 꽃 은 말하는 순간 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것을 꽃 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 꽃 이 아닌 것을 그 꽃 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와 같은 말므로 萬物의 본질적인 生成者이고, 萬物이 萬物이게끔 하는 所以로서 宇宙萬物의 根源이며, 天理萬物의 始原이요, 모든 現想에 內在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天理萬物은 이러한 道에 의해 결합되어 있으므로 老子의 無爲自然의 道思想은 이상적인 政治原理로서 조화롭게 결합, 機能하는 유기체적인 삶을 가능케 해주고, 우리에게 창조적이고 고차원적인 정신력을 啓發해줌으로서 人間과 더욱더 조화롭고 均衡된 關係를 有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2) 道의 本體儒家의 道는 當爲法則으로서의 道이며,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道德法則의 道이지만, 老子의 道는 存在法則으로서의 道이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는 道요, 들을 수 없는 道요, 또한 不可思議한 道다. 孔子는 道가 사람과 가까이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알기 쉽다 하였는데 老子는 사람과 멀리 있어서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老子는 道를 설명함에 있어서 否定的인 말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가 否定辭를 많이 사용한 理由는 否定을 통하지 않고는 그가 설명하고자 하는 道의 本體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道의 本體는 직접 說明할 말이 없다. 道에 대해서 말을 아니하려면 그만이지만, 말을 하려면 初經驗界의 일들을 經驗界의 言稱을 빌려서 하여야 한다. 經驗界의 말들 중에서는 現象의 否定을 통해서만 本體界의 槪念에 到達할 수 있다. 老子가 否定으로서 얻어낸 道의 本體는 虛 이며(現象界의 實 에 反하여) 無 이며(現象界의 有 에反하여) 自然 이며, 無爲 이며, 常 이며(現象界의 變化 에 反하여) 이것이 老子가 말하려는 道의 本體이다.그렇다면 이 道를 道德經에서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살펴보자.*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무는 천지의 시작이요 유는 만물의 어머니이다.(1장)*道는 비었어도 쓰면 늘 차지 아니한다. 깊고 고요하며 만물의 근원인 것처럼 보인다........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한다. 天帝보다 앞선 것 같다.(4장)*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玄牝이라 한다.玄牝의 門은 이를 天地의 根이라 한다. (6고 하였으므로 그 道는 생성자임과 동시에 원초자로서 천지, 만물의 本體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道는 우리의 오관으로 감지할 수도 없고, 우리의 사유에 의해 인식할 수 없는 形而上學的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老子 道를 無라고 규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어라 한정 할 수 없으므로 無라고 한 것이다,. 어떤 실체는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을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無라 한다. 이 無가 곧 우주의 본체로서의 道이다.이 道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道는 실체이며, 만물의 終極原理이며, 萬物의 根本이며, 一卽絶對로서 相對가 없다.2. 道는 萬物과 不可離의 關係에 있으며 그 위에서 作用한다.3. 道는 儒家의 上帝, 天地上帝 등 人格的인 神이 아니고, 上帝이전의 存在로서 非人格 的인 性格을 가지고 있다.4. 道가 萬物을 生成하는 現象界는 流出的인 것이고 創造的인 것이 아니다.5. 道는 表面的으로 볼 때에는 無爲로 보이나 裏面的으로는 계속적인 作用을 하고 있다. 道의 本體는 無爲이나 그 作用은 活動的이라 할 수 있다.3) 道의 實踐道의 認識의 窮極에는 行이 있다면 行하려고 하는 窮極目的이 無名의 常道이다. 老子에 있어서 道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道만이 모든 문화가치와 생활가치의 근원이다. 老子는 일상인들이 생각하는 가치 있다는 것들을 제2차적인 것으로 보고 가치없다는 것들을 제1차적인 것으로 보아 1차적인 것들은 2차적인 것의 기본이라 力說한다.다음은 에 나타난 부분의 예시이다.*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是以後王自謂 孤, 寡, 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故致數輿無輿, 不欲如玉, 珞珞如石.(귀한 것은 천한 것으로 근본을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으로 기반을 삼는다. 이 때문에 候王은 스스로 이르기를 孤獨, 寡德, 不善하다고 하니 이것은 그 賤한 것으로 근본을 삼느냐? 아니냐? 그러므로 지극한 예찬은 없느니라.)결국, 道의 價値는 行에 있고. 行의 事項으로
    인문/어학| 2003.06.21| 11페이지| 1,000원| 조회(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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