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Ⅹ?Ⅸ. 리폼샵의 창업 선정이유?현재 국내의 상황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만큼 각 가정의 가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소비시장이 위축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옷을 현재의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바꿔주는 리폼샵의 성장가능성은 클 것이다. 현재 세상은 유행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복고디자인이 유행하긴 하지만 복고 디자인으로 된 옷도 옛날 디자인과는 달리 현재의 추세에 맞게 복고에서 변형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입기에는 무리가 있다. 디자인을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다양하고 개성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리폼샵이다.기존에서 이루어지던 소규모 점포 형태의 수선 집에서 탈피하여 소비자들이 리폼에 대해서 재인식을 거쳐 고객 맞춤화를 통해 개인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맞춤 서비스를 통해 우수한 품질을 생산해내고 가격도 저렴한 일석이조의 사업 형태를 구축한다. 그리고 최근 개성이 강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게 리폼샵을 운영하면서 개별 마케팅을 통해 리폼샵을 확장시켜 나간다. 최종적으로는 기업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병행해 나가면서 전국적으로 기업을 확장시키는 것이 목표이다.전략의 기본적인 콘셉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유통채널의 다각화에 있다.고객 서비스 & 채널 차별화 전략, 제품 다각화 전략, 광고 전략을 통해 리폼샵을 성장시킬 것이다. 기존의 리폼샵의 단편적인 형태의 유통경로를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한 대량 고객맞춤화에 초점을 맞춘다. 인터넷을 통한 1:1마케팅이 가능하도록 홈페이지 상에 각종 게시판을 만들며 10대~20대를 겨냥한 인터넷 홈페이지 활용. 인터넷 홈페이지는 새로운 디자인과 여러 가지 샘플링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정보를 제공하며 그 외에 옷에 대한 기본상식이나 여러 가지 알아두면 좋은 정보를 제공하며 게시판을 이용하여 방문자의 제품에 대한 의견이나 불만사항을 접수하는 형태의 쌍방향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해 나갈 것이다.1.리폼이 필요한 경우(0) 사이즈가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경우(1) 제품검사(고객과의 상담통한 원하는 스타일을 결정)(1) 설계 및 패턴제작(2) 성형(패턴에 맞는 모형제작)(3) 1차 바느질(4) 옷판장(패턴에 맞추어 옷을 만드는 과정)(5) 2차 바느질(조립)(6) 안감제작(7) 수봉(안감과 모피겉감 합봉 및 단추와 액세서리 부착)(8) 클리닝(9) 아이롱 검사??Ⅹ?Ⅸ. 현재 시장상황 및 추세0. 대상 제품의 시장경기불황에 따른 소득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고가의류시장이 크게 신장되고 대형마트, 할인점, 홈쇼핑 등 신 유통업체의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동대문, 남대문 등 재래상권은 크게 위축됐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신규브랜드의 출시가 현저하게 줄었고, 수입브랜드의 경우 직수입보다는 라이센스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체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오늘날 우리는 장기화된 경제침체에 '제2의 IMF' 라고 할 만큼 소비심리가 위축되어있고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침체된 패션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한다는 것이 위험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러한 시점을 역이용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1. 경쟁기업, 경쟁구도과거 IMF때에도 리폼샵이라는 형태의 매장이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리폼샵은 그 규모가 작고 매장주변 지역으로만 가능하였기 때문에 많은 수익을 낼 수 없고 지금은 그 이름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리폼샵의 채널을 다각화하고 리폼 하는 디자인의 질만 좋다면 얼마든지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다.현재의 시장은 수선 집과 같은 의미로만 생각되는 리폼샵의 인식 부족으로 대중에게는 ‘리폼샵‘ 이라는 이름이 생소할 정도로 시장의 ’선도자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선도자 기업으로서 가장 매력적인 세분시장과 경쟁적 포지션의 선점할 수 있고 시장의 게임규칙을 정의하여 타 기업의 경쟁위협에 쉽게 대응가능하며 경험곡선의 효과의 조기 실현과 유통경로상의 우위, 제품의 조기 수용자들에 대한 높은 전환 비용, 긍정적과 소비패턴의 영향② 기술적 환경? 기존의 리폼샵과 달리 오프라인 상에서 만의 활동이 아닌 온라인을 사용하므로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환경을 이용, 인터넷은 점점 많은 기능의 증가로 좀 더 고객의 요구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고객의 충성도 확보를 용이하게 하며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또 차별화 전략의 우위를 제공해주는 비전이기도 하다.위와 같은 기술적 환경변화에 의해 신경제의 출현으로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신경제 기술을 특징짓는 주요 구성요소- 정보의 결합(Syndication of Information)- 네트워크의 규모에 따른 수익의 증대- 개인화, 맞춤화- Disintermediation(탈중개화) and Reintermediation(재중개화)- 일 년 365일 접속 가능- 신속한 배달위의 거시적 환경을 바탕으로 세분시장을 선정하면 아래와 같다.(1) 세분시장③ 인구 통계적 변수 (Demographic)? 누가 고객인가?- 20대 초반 ~ 30대 중반의 패션에 민감한 고객④ 지리적 변수 (Geographic)? 고객들은 어디에 거주하는가?- 인터넷을 통한 전국 전 지역의 고객확보 가능⑤ 행동적 변수 (Behavioral)? 제품에 대하여 고객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리폼에 대한 초기 인식 부족에 의한 거부감으로 인한 제품에 대해 부정적 행동 발생가능 하지만 광고 와 이벤트를 통한 극복(2) 세분시장의 선정에 의한 틈새시장침투전략⑥ 주요목표? 표적세분시장에서의 시험구매자와 제품구매자 수의 극대화? 선택된 틈새시장에서 높은 판매량과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제한적 투자⑦ 시장특성? 대규모 잠재수요? 다양한 고객들로 구성된 시장? 단기간 내의 제품 확산 과정⑧ 제품특성? 특허 보호가 어려운 제품기술? 부품 혹은 원재료 학보가 용이함; 복수의 공급원? 비교적 단순한 생산 공정⑨ 경쟁특성? 복수의 잠재 경쟁자? 충분한 자원과 능력을 가진 일부 잠재 경쟁자가 존재함⑩ 기업특성? 한정된 제품 엔지니어링 기술과 자원? 을 중심으로 그리고 중년층의 고객 정도로 볼 수 있으며, 고가 제품을 제외하고는 서민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2. 리폼에 대한 인식리폼의 이유를 보면 단순한 수선의 의미에서의 리폼이나 간단한 액세서리의 부착 색깔의 변화 정도이다. 혹은 리폼하고 남은 옷가지로 소형가방이나 핸드폰 집 같은 액세서리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리폼에 대한 인식의 정도인데 현재까지는 리폼은 곧 수선이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정도이고 새로운 브랜드 혹은 의류업종으로 까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리폼이란 일종의 획기적인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제품을 가지고 재생산이라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Ⅳ. 주요 이슈SWOT분석리폼샵에 대한 주요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요인과 리폽샵이 기회와 위협요인에 직면할 때 고려해야 할 상대적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강점(Strength)?개별고객의 취향에 맞는 고객맞춤화 서비스?철저한 고객관리에 의한 높은 고객충성도?채널의 다양화?시장선점으로 인한 독점적 위치▲약점(Weakness)?부족한 자금력?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인한관련 전문지식의 부족?배송의 외주에 의한 원가상승리 폼 샵▲기회(Opportunity)?점차 침체되어가는 경제상황에따른 소비시장의 위축?빠르게 변화하는 최신유행에따르려는 소비자의 심리▲위협(Threat)?리폼샵의 인식부족?젊은 층의 일회용적 사고?명품주의에 의한 리폼샵의 질적 평가 저하?외부경쟁업체의 낮은 진입장벽일단 기회요인(Opportunity)부터 살펴보면 현재 국내의 상황은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만큼 각 가정의 가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소비시장이 위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옷을 하나 사는데도 예전보다 그 부담이 훨씬 커진 게 사실이다. 그에 따라 저렴한 가격에 유행이 지나서 못 입는 옷을 현재의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바꿔주는 리폼샵의 성는 광고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주면 크게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본다.젊은 세대의 일회용적인 사고도 위협이 된다. 유행이 지난 옷은 보관하는 게 아니라 버리던지 아니면 유행이 지난 옷은 입고 다니기 창피하고 무조건 새것을 좋아하는 그러한 성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디자인을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다양하고 개성적으로 변화시켜준다면 새 옷만큼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강점(strength)은 온라인을 통한 고객과의 1:1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게 광고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고객 개개인의 취향이나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함으로서 고객의 세세한 정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여 한번 고객이 영원한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고객관리를 통한 고객의 충성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기존의 리폼 관련 업체와는 달리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을 결합한 Click-and-Mortar 형태이기 때문에 온라인의 장점과 오프라인의 장점 둘 다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경로를 통해 고객관련 서비스를 할 수 있다.이러한 Click-and-Mortar 형태와 전문적인 리폼샵은 현재까지 없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약점(Weakness)은 학교 앞 리폼샵의 형태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할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오프라인 상점까지 운영할 자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초기 자본력이 과도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Click-and-Mortar형태의 리폼샵은 기존 업체가 없기 때문에 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그리고 배송의 아웃소싱에 의해 원가가 자칫 높아질 수도 있다.Ⅴ. 리폼샵 전략적 목표기업 목표미션 : “의류의 고객 맞춤화 전략”기존에서 이루어지던 소규모 점포 형태의 수선 집에서 탈피하여 소비자들이 리폼에 대해서 재인식을 거쳐 고객 맞춤화를 통해 개인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한다. 또 이러한 맞춤 서비스를 다.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고찰헤겔과 마르크스의 정치사상1. 서론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다. 이러한 위기를 가져온 역사적 조건들은 매우 다양하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1960년대 후반 유럽대륙과 영미 대학에서 벌어진 학생운동의 실패,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스탈린주의의 억압적 정치 형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쇠퇴, 여성운동·민권운동·반핵운동·환경운동·반인종차별운동·소수인종운동 등 마르크스주의 계급이론에 기초하지 않은 진보 운동들의 출현 등은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현실 적합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마르크스주의의 기본원리와 주장들에 대한 재검토와 갱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기존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를 헤겔의 총체성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헤겔적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때,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가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적 마르크스주의 해석이 크게 두 가지로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Cohen, Roemer, Elster 등을 중심으로 한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로, 이들은 보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분석철학과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의 최신 방법들을 적극 도입하고자 한다. 나머지 하나는 알튀세를 시작으로 하는 탈중심적 마르크스주의로, 알튀세는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헤겔적 사유양식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노력은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내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로 발전하고 있다.이 글은 헤겔적 마르크스주의라 불리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총체성 개념을 살펴본 후, 그것이 야기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구성의 시도 중 하나인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이 이론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적합한 대안이 될 방법론적, 순수이론적 문제점들에 대한 부담을 지니고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생겨난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는 그러한 부담을 제거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적 유물론의 설명을 도입하고자 한다.라이트에 의하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는 1978년 런던에서 영국 철학자인 코헨(G. A. Cohen)과 노르웨이 정치학자인 존 엘스터(Jon Elster), 그리고 각국의 몇몇 학자들이 현대 마르크스주의가 지니 이론적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 모임을 조직함으로써 하나의 자기 인식적 학파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모임은 결국 연례모임이 되었고 3, 4년이 경과하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연구결과에 대해 토론하기 위하여 참석하였다. 분석적 마르크스주의 라는 용어는 1986년 대부분 그룹의 구성원들에 의해 집필된 논문 모음집을 같은 제목으로 출판함으로써 그룹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라이트,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 쿠친스키, 월러스타인, 조영환 공편, 『전환기의 세계와 마르크스주의』(서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90), pp. 190-191그렇다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분석적 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연구들이 분석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따라서 분석적 엄밀성을 강조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연구들은 분석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광영에 의하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전통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신광영, 마르크스주의 위기와 분석적 마르크스주의 , 『사회비평』제5호, 1991첫째,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존의 학계에서 발전된 방법들을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사적유물론, 계급, 착취, 혁명, 사회주의 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있어서 분석철학, 게임이론, 수리경제학 등을 연구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매우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거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이 이러한 방법들을 부르주아 사회과학사적유물론 해석에서 생산관계 우위론을 내세운 알튀세에 대한 비판으로 분석철학의 방법을 동원하여 고전적인 사적 유물론의 명제들을 보다 엄밀하게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코헨은 『Karl Marx's Theory of History: A Defense』{ G. A. Cohen, Karl Marx's Theory of History: A Defense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에서 전통적인 사적 유물론이 안고 있는 애매모호함과 논리적 결함을 인정하고 분석철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생산력 우위론에 기초한 사적유물론의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면서 인간은 개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가피하게 일정한 관계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 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이다. 그는 이러한 관계들의 전체 합이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실제 기반인 경제구조를 구성한다. 라는 마르크스의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서문을 단서로 하여 결과법칙에 기초한 기능적 설명{5) 기능적 설명이란 설명의 대상이 되는 사건의 발생이 다른 무엇인가에 대해 기능적이라고 설명하는 일종의 결과 설명으로, 만약 E유형의 사건이 시간 t1에 발생했고 이것이 시간 t2에 F유형의 사건을 야기시킨 경우라면, 시간 t3에 E유형의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코헨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사이의 관계에 기능적 설명을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한 생산 관계가 특정 형태를 지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간 t에서의 생산관계가 R인 이유는 시간 t에서의 생산력 발전 수준 아래에서 생산력의 사용과 발전을 위해서는 R이라는 생산 관계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 코헨, 위의 책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이론을 옹호하고 있다. 코헨에 의해서 재구성된 사적 유물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희소성에 직면한 인간의 합리성은 중지시킬 수 없는 생산적 기술의 발전을 가져와 역사적으로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며(발전명제), 제한tion and Class』{ John Roemer, A General Theory of Exploitation and Class (Cambridge, Mass: Havard University Press, 1979)에서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착취에 관한 일반이론을 제시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착취는 자본주의에 국한된 착취라고 설명한다. 그는 노동가치론에 기초한 착취이론은 노동가치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이론적 출발점으로 매우 제한적이라고 보고 재산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착취이론을 제시하였다. 노동시장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생산수단(부)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상태에서 생산자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최소화하려 한다면, 부유한 생산자는 가난한 생산자보다 더 적은 노동시간으로 필요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에 가난한 생산자가 죽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주어진 경제체제에서 빠져나간다면, 동일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유한 생산자는 더 많은 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뢰머는 봉건사회들에서 경제외적인 강제는 이러한 상태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적 장치였다고 보았다. 주어진 경제게임과 대안적인 경제게임에서 현재 경제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사람이 덜 풍요로워지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보다 나아지면, 현재 경제게임에서 양자간의 착취가 존재한다고 본다.또한 『Free to Lose』{ John Roemer, Free to Los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는 게임이론에 기초하여 코헨의 역사이론과 브래너의 역사학 연구의 내용을 도입하면서 자신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과 경제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역사적으로 각각의 경제구조가 재산의 형태에 따른 서로 다른 착취의 유형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서, 사적유물론의 관점에서 전 단계의 착취형태는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착취 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초기 자본주의의 자본주의적 착취는 그 있다. 쉐보르스키는 이러한 모델을 이용하여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나타나는 계급갈등, 헤게모니의 물질적 기초, 경제로부터의 제한된 국가의 자율성 등을 분석하고 있다. 그의 경우 게임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기보다는 보다 수학적인 모델구성을 통한 정치현상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물론 전략적 행위론에 기반을 둔 논의가 대부분이지만 뢰머나 엘스터와 같이 게임이론에만 의존하여 정치현실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4.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적 특수성에 대한 주장을 부인하였다. 그들은 모든 부르주아 과학적 연구방법을 수용하였으며 계속해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개념 및 전통적 테제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 라이트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강조한다.{ 라이트, 앞의 책첫째,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구는 모두 의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행해진다. 전형적인 학문적 전략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주제니 논쟁점을 채택하고 그러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정립하며 그러한 조건의 개연성이라는 측면에 비추어 논의를 재구성한다. 둘째,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목하는 이론적, 경험적 문제들의 포괄적 의제는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교훈과 전통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다. 연구의 주제들-봉건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 계급구조와 계급의식과의 관계, 사회주의적 정치의 딜레마, 노동자 계급의 연합과 분절화의 조건 등-은 명확히 그 지적 좌표를 마르크스주의에서 얻고 있는 것이다. 비록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그것과 상당히 다를지라도 문제 그 자체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적이다. 셋째,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도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계급, 이데올로기, 의식, 착취, 그리고 국가 등은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적 목록을 구성하.
헤겔과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구조와 행위:뫼비우스 띠의 앞면과 뒷면1.들어가는 말구조와 행위의 관계는 맑스주의 뿐만아니라 모든 사회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예를들어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스카치 폴의 국가와 사회혁명 등을 비롯하여, 월러슈타인의 작업등 이 모든 것들은 구조가 행위를 조건지우고 행위가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와 행위간의 참된 관계 를 다루어 보려는 지속적이고 다양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영미 맑시즘의 전통에서는 페리 앤더슨,크리스토퍼 힐,에릭 홉스봄,E.P.톰슨등을 주축으로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으며,구조와 행위주체라는 문제는 자본론 강독을 중심으로한 알튀세의 입장과 E.P.톰슨의 논쟁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페리 앤더슨의 지적처럼 맑스주의에서 구조와 행위의 관계는 역사유물론의 핵심적 문제였다. 왜냐하면 구조와 행위문제는 이행과 이행주체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체와 계급이론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조를 중시하면 구조주의자,행위를 중시하면 자발주의자로 구분할 수 있으며,맑스주의 진영내에서는 경제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 이는 페리 앤더슨의 구분이다. 역사유물론의 궤적 ,새길,p.55또는 경제주의와 인간주의{이는 알튀세의 구분인데 알튀세는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로 구분된다. 물론 경제주의와 인간주의가 구조와 행위 이론의 양 극단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논자들은 이 양극단을 모두 극복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는 경제주의의 극단져 형태인 생산력결정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S.H.Rigby와 중층결정,구조적 인과성등의 개념을 통해 역사를 주체없는 과정 으로 파악하는 알튀세, 이비투스 라는 개념을 도입한 부르디외의 계급이론,그리고 전략적 행위 를 강조하는 Bob Jessop의 전략관계론적 국가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2.구조와 행위의 관계에 대한 맑스의 입장맑스는 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18일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인간은 계급관계가 발생한다. 5-2역동적인 생산력과 이러한 생산력을 방해하는 충돌은 역사적 실례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다. 6생산력은 사회구조에 근본적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은 생산관계의 토대이고 생산관계는 사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7 생산력의 필요 때문에 봉건제가 자본주의에 대체되었듯이 사회주의는 지속적인 생산력 발전의 장애물이 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다.로 파악한다. 즉 Rigby는 7개의 테제를 검토하고 비판함으로써 생산력결정주의를 거부하고 있다.Rigby가 7개의 테제에서 요약하는 생산력결정주의의 주장은 다음의 세가지다.1)생산관계는 생산력발전에 기능적 이다. 2)따라서 생산관계는 주어진 시기의 생산력 발전에 부합해야 하므로 특수한 형태를 갖는다. 3)비록 생산력이 특수한 생산관계를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을 지라도 그런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경험적 증거가 존재한다.이에 대한 Rigby의 비판은 아래와 같다{릭비의 비판은 주로 우위성테제와 발전테제에 집중해 있다.우선 릭비는 우위성테제를 6가지로 나누어 비판하고 있는 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1 Shaw의 생산력 우위성 옹호 -맑스를 평가하는 데 맑스에 의존하는 순환논리에 근거하고 있다.2 Cohen의 생산력 우위성 옹호-역사적으로 문제점이 있다.즉 증거가 부족하다.3 생산력결정주의는 생산력을 역사적 대리행위자로 가정한다. -그러나 생산력결정주의는 생산력이 사회적 결과를 생산해내 는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못하며,그런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경험적 증거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달리말해 실제로 갖고 있지 않은 힘을 부여받은 생산력은 물신화된 것이다.4 생산력결정주의는 우리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역사문제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연역적 철학이다. 따라서 생 산력결정주의는 맑스주의역사학자나 비맑스주의 역사학자 모두가 공유하는 역사적 방법론을 거부하는 역사철학일 뿐이다.5 생산력결정주의는 미래의 생산력이 현재의 계급관계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형태로 일종의 그 자체의 행위자를 가진 유기적 구조로 보는 관점은 맑스의 이해에 상당한 유효성을 제공하지만,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변화를 셜명하는데 더욱 유용한 것은 사회를 게임으로 보는 메타포이다.4.알튀세-주체없는 과정알튀세는 경제의 우위성에 대하여 비환원주의적 해석을 하고자 하였다. 그는 맑스에 대한 환원주의적 해석이 사회를 유기적으로 서열화된 전체 로 보지 않고 표출적 총체 로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알튀세는 표출적 총체성개념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에 대한 복잡한 구조적 통일체 개념을 제시하는 데,이 개념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은 단순히 어떤 중심적 모순을 반영하지만은 않는다. 각각의 사회적 관계들은 고유한 발전의 순서와 하나의 중심모순으로 환원될 수 없는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가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단순히 결정할 수 없고, 따라서 어떤 역사적 순간도 총체성의 각 관계들의 영향에 의해 중층결정된다. 한편 알튀세에게 있어 생산양식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이데올로기로도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알튀세는 전체의 각 관계들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지만 최종심급에서는 경제가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알튀세가 경제의 최종결정을 언급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지만 알튀세의 이런 언급은 소위 탈중심화된 총체성론으로서 환원불가능한 복잡한 모순들의 중층결정이라는 그의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알튀세의 이러한 최종적으로 환원주의적이 되어버리는 문제점을 비판하며 이에대한 대안으로 중심성을 인정하는 비본질적,비환원론적 총체성론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김세균: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재구성을 위한 하나의 시도) 그에 의하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다른 것들과 항상 중층결정되어 있다면, 어떤 순간에도 그것에 의한 최종적 결정이라는 고독한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즉 중층결정이 옳다면 문제설정이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하나에 의한 최종결정(결국 본질주의,환원주의: A B)이 아닌 중층결정속에서 어느 하나에 의한 중심적 결정( A 〉B)으로.헤겔과의 단절을 주장하며 알튀세는 역사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화적 실천(의식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을 통해서 재생산되는 계급적 차별과 경계의 구조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2 계급 구성에 있어서 경제적 기준에 문화적 기준을 첨가하여 이 들의 상관 관계를 통해서 계급이 구분되어 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그람시 이후, 서구 맑시즘이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관계를 사회 구성체 안의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등의 제 요인의 접합이라는 문제틀내에서 해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맥을 같이 한다.그러나 그의 독특함은 자본주의의 계급관계를 하나의 문화 게임으로 보고, 프랑스 사회를 분석의 대상으로하여 방대한 양의 자료와 서베이를 통해 각 계급의 일상생활의 차원에서의 취향, 삶의 유형, 소비형태를 분석하여 문화가 자본주의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고 있음을 입증한 점이다. 부르디외에게 있어서 이런 문화 게임은 우세한 편이 자기 위치를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들은 -보통선거,기회균등,교육을 통한 상향이동의 기회등-지배 계급의 지배 전략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다시 말해 그는 자본주의의 지속성에 대한 설득력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지속성의 원인을 지배 계급의 지배 전략에서 활용되는 문화에서 찾는다. 그 문화틀내에서 계급의 재생산은 지속되며 이는 경제적 자본외에 문화적 자본 으로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부르디외의 계급 개념은 생산 관계가 아닌 사회 관계의 개념이다. 계급 분화는 생산수단의 다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 조건, 다른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서로 다른 성향의 체계, 그리고 권력이나 자본의 주어진 정도의 차이에 의해 정의된다. 베버의 계급과 차이나는 점은 베버는 계급을 일련의 구체적인 사회관계에 의해서 정의되는 사회집단화 양식인 시장 관계로 본 반면, 부르디외는 동일한 존재조건 이라는 베버의 개념에다 동일한 성향체계의 공유 즉 아비투스의 개념을 사용하여 계급의 개념을 일반화시켰다는 것이다. 베버의 계급과 지위집단간의 차이는 권력의대한 투쟁으로 제한했다. 이러한 투쟁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문화적 자본의 상대적 부족으로 이 투쟁에 낄 수 없게 된다. 제한적 문화 생산 영역에서 상징적인 자본에 대한 부르주와의 투쟁은 이러한 장의 변화와 문학,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 변화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부르디외에게 있어서 문화적 변화는 계급간의 본질적으로 다른 이해 때문이 아니라 상징 자본을 독점하려는 문화시장에 있어서의 개인과 분파간의 자원에 있어서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외부로부터 제공된 상징적 수단에 의존하여 지배를 내면화하는 존재로밖에 그려지지않는다. 이러한 고정된 노동계급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많은 맑시스트 이론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다. 또한 아비투스에 의해 사회 변화는 구조의 계속되는 지속만을 의미한다. 부르디외의 계급 이론은 바로 이 점에서 초역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 이유는 부르디외가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이상의 변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6.Bob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 :구조와 전략의 변증법Jessop은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전개하면서 전략적 행위 를 강조한다. 특히 Jessop의 이론은 최신이론들을 집대성한 것이기도 할 뿐더러, 구조와 행위라는 문제를 국가이론이라는 영역에서 사고한 것이어서 정치학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따라서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은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Bob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의 내용과 그 비판은 다음과 같다.{밥 제솝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은 손호철의 전략관계적 국가론의 비판적 고찰-밥 제솝을 중심으로 와 김세균의 영국의 CSE 이론가들의 국가이론 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1)전략관계적 국가론과 관련된 최신 이론들Jessop의 국가론의 이론적 발달과정은 1)맑스주의국가론의 본질주의,환원주의 에 반대하여 국가를 단순히 제도의 총체로 이해하던 제도주의시기 (1977~82) 2)이에 기초하여 국가를 사회적관계 이다.
알투세의 우발성의 유물론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마르크시즘의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우발성 개념의 타당성을 중심으로-< 목차 >1. 서론-문제제기-우발성의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2. 세계, 새로움의 시작- 클리나멘-확실성의 종말, 필연성의 종말- 뉴턴 역학의 붕괴3. 이론적 실천과 우발성의 유물론-알투세의 이론적 실천개념레닌의 혁명적 실천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공백4. 결론-이론적 실천으로서의 우발성의 유물론의 타당성1. 문제 제기- 우발성의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알투세의 1982년 저작인< 우발성, 마주침의 은밀한 흐름 > 은 1980년 알투세의 비극적 사건과 병원생활이후인 82년 6월 다시 시작된 알투세의 저작의 결과의 하나이다. 강요된 고립과 고독의 심연에서 공적으로 말(parole)을 되찾기 위해 그는 맹렬히 집필을 하여 몇 주만에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썼고, 별도로 쓴 글 두 편을 그 해 가을 통합하여 이론적 결산 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책자의 한권이다.{. 알투세,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 , 새길, 1996. 1982년의 텍스트(마주침의 유물론....)에서는 알투세의 이제까지의 주저를 떨치고 오랫동안 간직해 온 자신의 사고의 은밀한 부분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개념 및 사고의 엄밀성을 이론작업의 생명으로 여긴 그는 다시 망설이고 자신의 기준에 이르지 않은 이 텍스트를 끝내 책자로 완성하여 출간하지 않는다.(편역자 서관모.백승욱 주)그는 이미 76년 철학의 전화 라는 강연에서, 마르크시즘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종말을 촉진할 철학적 개입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야 한다는 과제, 요컨대 철학의 새로운 실천 의 과제를 제시하고 관련되는 철학자로 에피쿠로스와 마키아벨리를 상세히 연구해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예고는 마르크스 이론의 비판적 개조작업으로 이어져 철학사 속에서 지배적인 관념론 즉 기원과 목적의 관념론에 기초를 둔 관념론/유물론이라는 대립 자체를 넘어서는 유물론 의 전통을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그 성은 에피쿠로스의 기본적 테제이며, 이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도 대립하게 된다.에피쿠로스의 결론 -원자들이 진공 속에서 일정한 속력으로 서로 평행으로 떨어진다- 에서 새로움(novelty) 즉 세계의 창조는 클리나멘이라는 개념의 도입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진공 중에서 물체들이 자체의 무게 때문에 밑으로 직선으로 떨어지다가, 불확실한 시각에 불확실한 장소에서부터 길을 조금 벗어나게 되고, 그 벗어나는 정도가 너무나도 작아서 그저 방향이 조금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마주침의 계기때문에 새로움인 세계가 창조된다는 것이다.{.일리야 프리고진, , 사이언스북스, 1997그러나 중요한 것은 에피쿠로스도 이런 클리나멘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클리나멘은 이질적이고 임의적인 요소로 우연성의 시초이다. 우리에게 진리란 자연의 핵심적인 존재를 파악하는 것으로, 자연의 존재를 함축적으로 무한한 그 자체로서의 과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위의 책, p. 21.b. 뉴턴 법칙을 넘어서- 필연성, 확실성의 종말우리는 고전역학 덕분에 자연에 대한 결정론적이고 시간 가역적인 설명을 믿게 되었다. 뉴턴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두가지의 기본적인 질만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물질의 공간성 다른 하나는 물질이 시간에 따라 공간 속에서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이다. 뉴턴 역학은 기본요소는 질량, 공간, 시간이다. 운동의 법칙은 위치가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것을 나타내는 법칙이다. 시간과 공간은 절대량이다. 뉴턴의 절대공간과 시간은 모든 물리적인 원인의 요소이다. 자연의 과정은 그것이 최종적으로 뉴턴 운동법칙에 따른 질량의 운동으로 환원될 때 설명되는 것으로 믿어졌다. 그렇지만 전기 역학에서는 이 목표가 달성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이미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원리적인 불가능성을 지적함으로써 뉴턴의 원리들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가했다. 라이프니츠는 공간과 시간을 흡사 실체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뉴턴에 반대하여 시간아니라 특정한 한계내에서 특정한 방식으로(에너지적으로) 운동한다는 일반적 인식의 문제 등을 변증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 철학사상 연구회편, 철학 대사전, 동녘, 1990. p.844.고전 역학에서는 자연법칙은 확실성을 의미하였다. 적당한 초기조건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도 있고, 과거로 되돌아 갈 수 도 있었다. 그러나 불안정성이 고려되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고, 자연법칙의 의미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서 가능성 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의 탄생은 더 이상 이상화되고 단순화된 상황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과학에서 실제 세상의 복잡성을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과학으로 대체되었다는 것, 즉 확실성, 필연성의 종말을 의미한다.3.이론적 실천개념과 우발성의 유물론-알투세의 이론적 실천개념, 레닌의 혁명적 실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공백a. 알투세의 이론적 실천 의 실재성- 역사주의적 마르크시즘 비판의 핵심알투세는 이미 1960년대에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주의가 아니다 라고 선언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알투세의 마르크시즘 해석은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역사주의적 마르크시즘은 철학을 역사와 동일시함으로써 마르크스이론이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구별되는 특징인 고유한 과학성을 상실해,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이라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위치로 떨어뜨렸다는 주장이다.{. 알투세, ,두레신서, 1991.그는 하나의 과학 또는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 이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계급이 가진 단순한 계급의식 내지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과학적 지식임을 주장한다. 알투세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마르크스 철학은, 현실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이론인 사적 유물론이 그 과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구성체와 그 역사라는 현실 역사의 과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실재를 지님으로써 그 현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생산하는 활동인 이론적 실천은 경험주의적 지식 개념의 극복을 전제로 한다. 경험주의는 현실적 대상의 본질이라는 그 지식의 대상이 이미 그 현실적 대상의 현실적 구조 속에 현존해 있다고 봄으로써 지식의 대상을 현실적 대상과 혼동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 지식과정-즉 현실적 대상에 대한 지식을 표상해 내는 작업과정- 은 독립적 실재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그러므로 이론적 실천의 실재성을 확립하려는 알투세의 반역사주의적 지식이론은 첫째, 지식의 대상과 현실적 대상을 엄밀하게 구별하는 형태를 취한다. 둘째, 현실적 대상에 대한 지식을 표상해 내는 지식과정을 하나의 생산과정이라고 보고 현실적 대상에 대한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과 그 현실적 대상 자체가 생산되는 과정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알투세, 위의 책알투세의 지식개념에서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 그에게 있어서 추상적인 것이란 지식과정의 맨 처음에 있는 대상인 이론적 실천의 원료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것은 이론적 실천을 거쳐 맨 끝에 나오는 생산물로서 현실적 대상에 대한 지식이며 이것은 개념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알투세에 있어서 지식의 대상이 현실적 대상과 구별된다는 것은 이론적 실천의 원료인 추상적인 것과 그 실천의 결과물인 구체적인 것 모두가 현실적 대상 자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알투세의 이론적 실천 개념은 주어진 원료를 일정한 생산물로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이 변형은 일정한 생산 수단을 사용하는 일정한 인간노동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래서 이론적 실천이 하나의 고유한 생산과정이라는 것은 이론적 실천은 고유한 원료에 고유한 생산수단을 가해서 고유한 생산물을 생산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알투세는 이론적 실천이 고유한 실재를 구성하며 이론적 실천을 고유한 학문대상으로 삼는 마르크스 철학이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알투세의 비판에 따르면 역사주의적 해석은 모든 실천들이 현실적인 역사적 실천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하여 모든 철학, 과학, 마르크시즘도 역시 현실 역사의 표현여하는 참으로 혁명적인 이론이 되기를 요구했다.{. 김세균, 레닌의 철학적 실천과 유물변증법 구상 , 제4호, 1993.알투세는 에서 레닌이야말로 마르크스에 관해 진정한 발견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마르크스의 과학적 이론은 새로운 철학에 이른 것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 , 정확히 말해 철학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입장에 입각한 철학의 실천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알투세는 레닌에 대한 그의 새로운 발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대상을 갖고 잇다는 의미에서 봤을 때 철학에게는 대상이 없 다.- 철학은 이론형식내에서 수행된 정치적 개입의 실천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특수영역에 개입한다.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정치적 영역과 과학 적 실천의 결과라는 이론영역이 그것이다.-본질상 철학 자체는 계급투쟁의 결과와 과학적 실천의 결과, 그 둘의 결합에 의해 이론영역 에서 생산된다.레닌에 의하면 철학을 실천한다는 것은 철학의 본질에 맞게 철학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알투세, 레닌과 철학레닌 스스로가 그 자신을 변증법적 유물론자라고 믿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학의 실천이 중요한 것은 철학의 실천은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의 관점, 억압받는 사람들의 관심과 적중하기 때문이다.{. 알투세, 레닌과 철학레닌은 철학적 실천의 궁극적인 본질을 이론 영역 내의 개입으로 정의한다. 이 개입은 이중형식을 취하고 있다. 명확한 범주의 정식화에 있어서는 이론적이며, 이 범주의 기능에 있어서는 실천적이다. 철학적 실천의 목적은 과학적 실천 즉, 과학성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새로운 철학, 실천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핵심은 과학의 실천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철학에 기여한 것 중에서 새로운 것은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마르크시즘은 실천의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다. 철학의 이 새로운 실천은 철학을 변형시킬 수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는 세계의 변혁에 도움을 줄장
알뛰세의 길찾기분석적 맑시즘, 알뛰세의 우발적 유물론, 포스트맑시즘 등은 모두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위기에 봉착한 고전적 맑시즘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 추구되었다. 역사에 대한 일반적 설명틀로서의 고전적 맑시즘은 레닌의 적극적인 철학적, 정치적 실천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으로 맑스-레닌주의라는 교조적 이론으로 완성되고 역사의 대안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동자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시키는 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은 맑스-레닌주의 이론의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회손시켰고 서구 맑스주의자들에게 어떤 실천적 이론적 모범도 될 수 없었기에, 서구 맑시즘 진영 내부에서 다양한 길찾기가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알뛰세의 창조적 오독 또한 이런 길찾기를 위한 하나의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나는 내 자신이 인지한 나의 현실이라는 매우 제한되고 검증받지 못한 현실인식이라는 수준에서, 맑시즘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나의 질문들을 나열하면서, 알뛰세의 철학적 입장을 평가하고 싶다.고전적 맑시즘고전적 맑시즘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가장 난점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과학성이란 곧 당파성이라는 언명이다. 알뛰세가 헤겔적 총체성이라고 비판하였지만, 과학성이라는 문제는 고전적 맑시즘에서는 잉여가치의 경향적 저하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역사법칙에 의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필연적이고 내재적이므로 노동자계급은 그 이행을 담당할 의무의 수행자이고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과 더불어 역사의 필연성을 실현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실천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정의는 맑스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자본주의는 자신의 존재의 전제조건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바로 자신의 전제조건인 프롤레타리아계급과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성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의해서 전복된다는 것이다.러시아 혁명의 승리와 뒤이은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 동유럽과 남부아시서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계획의 왜곡과 도덕적 해이현상을 연결시켜 현실사회주의 국가를 분석하고 그것의 허약한 토대를 드러내었다. 이런 분석들은 맑시즘이 과학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가?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이행으로의 필연성을 보장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과학성이라고 주장하였고, 레닌의 전위정당론은 이론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 프롤레타이아트 독재론이라고 주장되었다. 이 두 사람의 공통된 주장은 이론적, 실천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당파성을 견지하는 것이 과학적 이론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성이란 계급투쟁에서의 승리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어떤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사회관계에 내재한 적대성을 잠시 사상한다면, 과학성이란 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노동을 조직하고 사회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기술적 측면에서 사회의 운영과는 어떤 관련성도 없는 개념인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당파성을 유지하면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 사회의 효율적 운영은 보장되는가? 서구 맑스주의자들이 비판한 스탈린주의 해악은 스탈린주의자들과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운영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당파적 이익에서 이탈했기 때문인가? 보수적 차원의 급진성으로 또는 과격하게 이야기한다면, 애당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알뛰세의 우발적 유물론내 생각에 알뛰세는 스탈린주의와 현실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서유럽에서의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의 정치성 회복에 일차적 관심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가 당시 존재하던 현실사회주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네그리의 글에서 추정해 보건데, 현실사회주의국가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탈이라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 견지라는 관점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알뛰세의 관심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의 완고함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인 대중적 노동운동의 부활과 이행을 위한 노동자 대중의 당파성 또는 과학성을 동시에 그의 이론 속에 포괄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가능성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모든 조건,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이다. 알뛰세에게 이행과 이행을 위한 실천은, 일단은, 이론적인 관심 내에만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알뛰세에게 중요한 것은 이론적 실천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나타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탈도 자본주의의 완고한 지배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실현불가능한 근대국가를 꿈꾸었던 것처럼 이론적으로 공산주의를 실천할 수 밖에 없었다.필연성을 강조하는 고전적 맑시즘이 계급투쟁을 이행의 매개로 사고했던데 비해서 알뛰세는 역사발전에서 주체의 능동적 개입을 강조한다. 알뛰세는 헤겔적 총체성의 개념에서 도출된 역사의 주체가 아닌 우발적 유물론을 실천할 역사 속의 주체를 강조한다. 역사 속의 주체라는 개념을 논의할 때 등장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점이 흥미롭다. 알뛰세는 자본주의 사회의 완고함의 근원을 적대적 생산관계 또는 사회관계에서 보다는 이데올로기 영역으로 자본주의 국가 개념의 확장에서 찾는 것 같다. 억압적 국가기구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도 적대적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및 생산조건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개인이 노동분업의 특정 영역에 들어가 자신에게 주어진 특정한 형태의 노동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사회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에 복종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는 그 기구 내에서 개인들을 주체로서 교육시킴으로써 복종에 대한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낸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하는 것이다. 개인은 복종에 대한 의심없이 자신이 동의한다고 믿으며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자아를 실현한다고 믿을 것이다. 자신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이데올로기가 무의식과 같이 작용한다면, 이데올로기 국가기구 내에서 투쟁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약 자본주의가 개인주의를 무의식적 이데올로기로 강요한다면 생활세계 어느 곳에서 존재론적으로 공산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다면 계급이익이라는 여전히 강력한 투쟁동기처럼 보이는 개념이 희석화된다. 직접적 투쟁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계급투쟁은 우발적 폭발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지점, 즉 현실화될 수 없을 수도 있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지점에서 정치투쟁의 폭발은 계급노선을 넘어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차원으로 진행될 수 있다. 즉 알뛰세는 이데올로기 국가기구 내부 또는 생활세계에서 적극적인 의식적 투쟁을 통해 지배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대중의 정치투쟁을 복구할 것을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보장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대중들 각자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구상이 하나의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질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을 계급이익이 희석되는 장소로 보이는 생활세계라는 존재론적 공산주의에서 찾는다면 이데올로기적 구상과 정치 및 경제투쟁이 괴리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대중의 이데올로기 투쟁과 새로운 주체로의 형성을 지도할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전위정당이 필요하고 그 정당이 자본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에 대항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알뛰세의 우발적 투쟁 가능성으로서의 우발적 유물론과 이데올로기 투쟁 개념은 매우 모호하고 관념적이라고 생각되며 대중적 정치투쟁의 복원 보다는 오히려 정치 투쟁의 희석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기원 또는 주체없는 과정 이라는 개념과 모순의 중층결정 이라는 개념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의한 역사발전이라는 명제의 폐기와 프롤레타리 독재를 통한 이행이라는 명제의 포기와 연관된 이 개념들이 새로움과 이론적 급진주의로 주장되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정치적 노동운동과 혁명의 포기로 여겨지는 것은, 내가 알뛰세의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역사과정에서 모든 목적론의 거부와 하나로 환원가능한 기원 또는 주체의 부정, 그리고 법칙의 부정은 알뛰세가 주장하듯이 새로운 모순들이 중첩되어 작동하는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모순들의 복잡한 연관구조 중 핵심적이고 가장 약한 결정적 고리를 파악하는 것이 정치로 표현되는 철학적 실천이라고 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여기에서 알뛰세의 이론이 빠질 수 있는 한 가지 위험을 감지한다.투쟁주체의 확대로 인한 투쟁의 중심성 상실의 위험이다. 이론적 해방 이외에도 실제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행이 최종 목표라고 한다면, 계급의 이익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다양한 투쟁을 어떻게 러시아 혁명처럼 이행의 현실성을 보장하는 권력의 획득으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구조와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투쟁은 그냥 다원적 투쟁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다양한 주체들의 투쟁의 다양성은 부르조아 민주주의 다원주의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현실로 나타나는 운동의 양태라는 측면에서 알뛰세의 모순의 중층결정론은 다원주의와 구분되지 못할 우려가 많다. 이것은 모순의 내적 통일이 아닌 모순의 해체로 모순의 해결이 아닌 모순의 희석화로 결과지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다양한 영역에서 대중적 정치투쟁의 복원이 오히려 정치투쟁의 해소로 결과지어질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나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든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든 또는 어떤 형태의 현실적 사회구조의 변형은 반드시 정치권력 또는 국가권력의 획득과 그 권력획득을 위한 조직화된 대중의 실천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실천이 반드시 이성적이었다거나 철학적 의미에서 어떤 목적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실천적인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 사회는 이성이 주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욕망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맑스가 주장한 과학적 정치이론과 알뛰세가 복원하고자 했던 계급투쟁의 과학성의 실현 불가능성을 지적하고자 한다.기술적 효율성과 정치적 도덕성당파성이 곧 과학성이며 계급투쟁에서의 승리가 과학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나 자신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