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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 공리주의 평가B괜찮아요
    윤리학 원론행위 공리주의 & 규칙 공리주의행위공리주의 & 규칙공리주의Ⅰ.행위 공리주의행위 공리주의는 행위자가 어떤 행동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에 정당한 행동이란 행위자 자신뿐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 행동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서 최대의 행복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최대로 가능한 전체의 행복이나 효용-이것은 때때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set number)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정당한 행동의 기준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행복은 고통보다는 쾌락을 우위에 두는 것으로서 대체로 쾌락주의적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양자 택일적인 행동의 각 진행에 대해서 상이한 사람들을 위해서 산출하는 모든 쾌락의 양을 측정하고 또 더해 주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모든 고통이나 곤궁의 양을 측정하고 더해 주는 것과 고통의 합을 쾌락의 합으로부터 빼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행동은 쾌락을 고통의 우위에 두는 최대의 적극적 균형이거나 최소의 소극적 균형을 성립시키는 행동이다. 추측하건대 만일 둘 혹은 그 이상의 행동에 대해서 균형이 똑같다면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균형보다는 더 좋다면 그 균형들 각각은 하나의 정당한 행동이 된다.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분명한 장점이 있다.만일 도덕성이 행위를 안내하는 것이라면 도덕성은 행복과 상관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쾌락을 추구하고 곤궁과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서로에 대해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얼마나 쾌락을 얻기 위하여 일정한 양의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정당한 행동의 기준으로서 일반적인 행복을 취하는 경우에 이러한 주장은 도덕적 행동이 비이기적이어야 하며 도덕 원리는 공정해야만 한다는 가정을 즉시 만족시켜 준다. 이 주장은 조리 있는 행위의 체계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가 또는 그른가에 대한 모든 결단이 직접적으로 하나의 단순한 출처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식이나 직관적인 법칙들을 일반적인 법칙들을 증진시켜 주는 자신의 성향에 의해서 정당화된 일반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의 상식적인 법칙이 갈등을 일으킬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단하기 위해 효용성에 직접 호소할 필요가 있다.반면에 행위 공리주의를 찬성하는 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며 또 불확정성이 있다. 먼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받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무엇을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이것은 "어떤 인간"이나 "모든 지각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가? 또 이 말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만을 포함하는가? 아니면 미래세계도 포함하는가? 하는 동등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그리고 또 제안된 기준이 단순히 최대의 전체적 행복이지 도는 그것이 행복의 배분방식을 문제삼는 것이지 분명치 않다. 단지 행복의 전체적 균형이 아주 크다고 할 때, 한 사람이 최고로 행복하고 나머지 아홉 사람이 비참한 경우가 열 사람이 동등하게 행복한 경우보다 더 좋은 것인가? 우리는 공리주의를 집합의 원리에만 정초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또는 이와 마찬가지로 배분의 원리를 포함시켜서 해석해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배분의 원리는 어떤 것인가? 행복은 공적에 비례하거나 동등하게 배분되어야만 하는가?"모든 사람은 각기 하나로 계산 될 수 있으며 아무도 하나 이상이 아니다" 라는 벤담의 말은 하나의 배분적 주제로 간주되어야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명백한 배분의 원리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똑같이 않은 비중이 주어져서는 안되며, 귀족의 행복은 농민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단지 하나의 교훈으로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뿐이다.Ⅱ.규칙공리주의규칙공리주의(rule-utilitarianism)는 도덕에 있어서 규칙이 중요성을 강조함과 아울러 일반적으로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할 바를 판정함에 있어서 어떤 행위가 문제의 상황에서 최소의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묻는 것에 의거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라" 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와 같은 어떤 규칙에 호소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행위가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가가 문제이다. 공리의 원칙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어떤 특정한 행위를 수행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이 규칙이 될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다. 규칙은 어떤 다른 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공리에 근거해서 선정되고 주장되며 개조되고 대치된다. 공리의 원칙은 여전히 궁극적인 기준이기는 하나 그것은 개별적인 판단의 차원에서보다는 규칙의 차원에서 의거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버클리, 브란트 등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옹호되어 왔다.규칙 공리주의는 그 체계에 있어 아주 중요한 규칙들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소박 규칙 공리주의'라 불리는 규칙 공리주의의 한 형태가 있는데, 이는 규칙이란 보편 공리주의가 도달한 결론을 단지 공식화한 것에 불과한데 예를 들면"선거일에 투표를 하라"와 같은 것이다. 또 현행 규칙 공리주의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그것이 공인된 도덕규칙이나 혹은 현행 도덕규칙에 부합되는 것일 경우 옳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른 것인데 이때 그러한 규칙들은 그것을 인정하거나 준수하는 것이 최대의 일반적인 선을 결과로 하거나 그 필요 조건이 된다는 점이 가정되고 있다. 오늘날 유력한 것으로 생각되는 유형의 규칙 공리주의는 이상 규칙 공리주의인데 이는 다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어떤 행위가 옳은 것이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은 일반적으로 준수될 경우 최대의 공리가 결과하게 될 일련의 규칙들에 그 행위가 일치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행위가 옳은 것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그 일반적 수용이 최대의 공리를 결과하게 될 일련의 규칙들에 그 행위가 일치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2.06.24| 3페이지| 1,000원| 조회(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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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윤리] 쇼펜하우어의 인간관 평가A좋아요
    쇼펜하우어의 인간관인 간 론쇼펜하우어의 인간관◑ 생 철 학 ◐생명 현상과 체험을 통한 삶을 중심으로 하여 관념론과 합리주의 철학에 반기를 든 철학 사조이다.19세기는 생물학의 반향, 그 중에서도 다윈의 진화론과 그 뒤를 이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심리학의 발전이 두드러진 시대이다. 종전의 기계론적인 우주론에 의거한 세계해석과 이성에 편향된 과도한 낙관주의와 역사주의적 이해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데를 향해 치닫는 근대의 문명의 운명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었다. 생과 인간의 직접적인 삶의 현실은 정밀한 이성의 잣대와 과학의 도구와 분석으로도 완전히 해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약동하는 생명의 기세와 순간순간마다 새로이 변화, 운동하고 창조하는 삶은 새로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생철학은 생물학과 심리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합리주의 전통의 사상들로부터의 반기요, 새로운 물결인 셈이다.관념론에 상반된 철학은 제시한 최초의 사상가는 쇼펜하우어라 할 것이다. 그에서는 관념의 정신과 다른 생존을 둘러싼 인간의 의지가 철학의 기초를 이룬다. 의지는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본질인 동시에 자연의 현상과 운동의 근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리잡는다. 의지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통찰력은 니체에로 이어진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의지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간 반면에 니체는 의지에 대한 긍정의 관점으로 전환한다. 의지란 인간의 삶의 고통의 원인으로 소멸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생의 고양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장려되어져야 할 것으로 이해된다.니체 이후의 생철학자들로는 독일에서 슈펭글러, 클라게스, 딜타이, 짐멜 등이 뛰어났고 프랑스에서 최고의 생철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베르그송이 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 스페인에서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이들의 사상적 특징은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주의주의와 함께 주정주의, 직관주의 (베르그송), 비합리주의, 반주지주의, 반이성주의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들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진화된 것이지 형이상학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관으로 진화된 것은 아니다.1. 생애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의 부친은 부유한 상인이고 모친은 저명한 문인이었다. 단찌히에서 태어났고 괴팅겐, 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20년 베를린 대학의 사강사로 되었지만, 당시 한창 명성이 높았던 헤겔에 대항해서 같은 시간에 강의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 강의는 성공하지 못했고, 겨우 한 학기만 강의를 하였을 뿐이다. 그 뒤 이탈리아 등지에 여행을 하였지만, 1831년에 프랑크푸르트로 옮겨와서 거기서 죽을 때까지 조용히 살았다. 그의 철학은 처음에는 헤겔에 눌려 조금도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만년에 이르러 크게 중시되었다. 또 그의 학설과 성격의 불일치는 주지의 사실이며 염세관을 갖고 있고 금욕을 주장하면서도 명예욕, 금전욕은 반드시 없지는 않았다. 주저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가 있다.2. 헤겔비판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처음에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로 시작된다. 이 명제는 쇼펜하우어 자신이 칸트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자처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독일 관념론의 전통은 칸트에서 출발하여 피히테, 셸링을 거쳐 헤겔로 끝을 맺는다. 칸트의 형이상학은 인식론적 이원론이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통한 인식의 한계를 경험적인 현상의 세계로 한정지었다. 우리는 지각경험이 가능한 현상에 대해서만 지식의 확실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을 넘어선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한 것이다.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인식할 수 있는 현상너머 사물자체를 허용하였다. 칸트에서 이 사물자체를 포함한 초월적 세계는 도덕적 예지력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물자체의 문제는 헤겔에 와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헤겔은 현존의 세계를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사물자체도 이성적인 것이라면, 이것도 얼마든지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이 가능하다라는 것이 헤겔이 내린 당시의 유물론을 비판한다. "조잡한 유물론은 생명력을 무시하고 생명현상을 물리적 화학적 힘으로 설명하고, 그 힘들을 물질의 기계적 작용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가장 단순한 화합물조차도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쇼펜하우어에 있어서 칸트의 인식불가능한 사물자체는 의지로 대체된다. 의지에 대한 발견은 외부세계로부터는 도달불가능한 것이고 인간존재에 대한 통찰로 얻어진다.그는 헤겔의 이성주의에 반대하여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생에의 의지로서 파악하였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세계는 표상이라고 한다. 인간이 보통 인식하고 경험하는 세계는 공간과 시간의 개별화의 제약 밑에서 인과율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참다운 실재가 아니고 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물자체가 아니라 현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관념론적 전통에 서 있다. 그는 우주를 개별적 인간을 통하여 해석한다. 그는 인간 안에서 최상의 의지를 보았다. 인간은 어떤 것을 원하고, 의도하고 만들거나 소유하려고 한다. 이 의지가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하고 변화된 어떤 환경에 인간을 귀착시킬지도 모른다. 이것은 인간이나 세계나 마찬가지다. 의지는 창조하는 세계의 기초적 원리이다. 모든 자연은 의지의 표현이다. 돌 속에서 의지는 맹목적이지만 인간 안에서 의지는 자신을 의식한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의 축소된 모형이라고 한다. 인간은 축소된 세계이다.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는 보통 세계를 시간·공간 안에 존재하고 인과율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공간·시간은 우리의 직관의 선천적인 형식이고, 인과율은 우리의 오성의 카테고리이다. 즉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러한 직관형식과 카테고리에 의해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적 세계는 단지 나의 표상임에 불과하다. 그것은 결코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에 대해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물자체가 아니고 현상 맹목적인 의지들이 갈기 위하여 소로 투쟁하고 있는 세계, 다라서 살기 위하여 좀더 강한 것들이 그보다 약한 것들을 죽여 먹어 치우는 세계는 악한 세계이다. 살려는 의지는 이 이기심을 낳는다. 모든 개체는 각각 다른 것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상관없이 자신을 보존하려고 투쟁할 것이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에게서는 동정과 연민이 도덕성의 기초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동정을 갖는 정도에 따라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행위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는 선하게 된다. 이러한 선한 생활로 가는 길은 개별적인 의지의 부정을 통해서이다. 즉 자기희생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모든 개체는 실제로는 세계의 일부이며 세계의 의지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얻어질 수 있다. 우리가 투쟁하는 대상은 실제로는 우리도 그 성원인 전체의 일부이다. 우리가 이러한 이해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투쟁을 멈추고 동정적인 이해를 발전시킬 것이다.세계와 인간이 그 가장 깊은 근저에 있어서 정신이라고 주자한 헤겔에 정력적으로 반대한 바 있는 쇼펜하우어의 그것은 의지이다. 의지가 비로소 그의 시종인 지성을 산출하는 -지성이 의지에게 길을 밝혀주기 위해서- 자이다. 의지는 지성을 그의 실천적 기능으로부터 파악한다. 지성은 다만 "동기의 매개자"에 불과하다. 지성을 순전히 진리에 귀속시키지 않는다. 의지는 그 자신의 강화를 위하여 환상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지성은 형이상학적으로 볼 때 실존하지 않는 표상의 목표들을 의지에게 현혹시켜 믿게 한다. 지성의 원래 목적은 인식이 아니라 기만이다.쇼펜하우어는 세계의 중심은 의지라고 가르친다. 분투나 의지는 모든 것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만물의 존재이다. 의지는 모든 사물 속에서 불변하고 지속적이며 영구한 것이다. 이 삶에의 의지, 존재에의 의지는 세계 안에 있는 모든 투쟁, 고통, 그리고 악의 원인이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은 다른 것들에 연민을 갖는 것이다. 동정은 선한 행위를 촉진."결국 인간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욕망 끝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고통과 불행에서 자의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이란 것도 사실은 삶에의 의지의 부정이 아니다. "자살은 의지의 부정이기는커녕 강한 의지의 긍정 현상이다. 왜냐하면 의지의 부정은 고통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향유를 혐오하는 것에 자신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자는 삶을 원하며, 그에게 주어진 조건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삶에의 의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 현상을 파괴하면서 단지 생명만을 포기한 것이다. 그는 삶을 원하면 방해받지 않는 신체의 현존재와 긍정을 원한다." 의지는 불멸하기 때문에 자살은 개체의 소멸을 뜻할 뿐 의지 자체의 완전한 파멸을 뜻하지 않는다.6. 해탈의 길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의지를 그것이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모든 악의 근거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기가 의욕하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동정을 보여줄 수 있으며, 자기의 행위와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한 자책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의지를 부정한다. 인간은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억누를 때, 자기의 의지를 부정하고 부인할 때, 의욕 않기를 의욕할 때, 그때에만 행복하고 평안하다.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고뇌의 세계이다. 우리의 욕망이 결코 만족됨이 없으며, 의욕이 만족된 경우 바로 새로운 의욕이 생겨나고, 영속적인 안정이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예술적 관조에 있어서 성취된다. 우리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 자기를 망각하고 거기에 몰두해 버릴 때, 거기에서는 더 이상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고, 양자는 완전히 합일되어 버린다. 이러한 예술적 관조에 의한 고뇌의 탈각은 일시적인 것이어서, 결코 영속되는 것은 아니다. 영속적인 고뇌의 탈각은 도덕에 있어서 가능하다. 즉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도덕은 동정(Mitleid)에 의해 성립하는 것인데, 동정이란 .
    인문/어학| 2002.06.24| 7페이지| 1,000원| 조회(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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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공자의 교육관 평가A좋아요
    Ⅰ. 서론Ⅱ. 본론1. 공자의 교육생활의 시작2. 공자의 교육목표3. 공자의 교육대상4. 공자의 교육내용5. 공자의 교육방법6. 공자의 교육태도Ⅲ. 결론동양윤리사상Ⅰ. 서론공자는 여러 사상적으로 중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핵심 사상인 인(仁)과 예(禮) 사상은 여러 측면에서 묵가와 현대 사상가들의 비판을 받곤 하지만 그의 교육사상에서 만큼은 그는 성인이라고 할만하다.이상적 교육가로서의 공자는 분명 매력적이고 그의 교육 사상은 본 받을 만 하다. 그는 현대의 어떤 교육가 보다 더 실용적인 교육을 한 사람이다. 자칫 사람들은 유가의 한 사람인 공자의 교육관이라고 한다면 고리타분하고 책을 위주로 한 인(仁)과 의(義), 그리고 예(禮)만 강조하여 교육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유가들의 서적 위주의 교육은 공자가 생을 마친 후부터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공자는 훨씬 더 좋은 정치를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제자들을 교육하였다. 이것을 선정(善政)을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공자가 정치가를 만들기 위한 교육만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는 군자(君子)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가지에만 뛰어난 전문인이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뛰어난, 즉 여러 측면에서 모두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군자(君子)가 되길 바랬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교육에 있어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현대의 전문인 양성을 위주로 하는 지식위주의 교육과는 상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지식 위주의 교육의 폐단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지식교육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인성을 교육하는 것을 위주로 한 공자의 교육관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Ⅱ. 본론1. 공자의 교육생활의 시작인류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교사들이 있어왔을 것이지만, 공자만큼 특별한 교사는 없었다. 그는 단지 청년을 교육한 것만으로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무렵의 정황을 알아보려는 것에 불과하다. 그 시작 시기를 따짐으로써 기타 공자의 교육 사상을 알아보려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2. 공자의 교육목표공자는 서문에서 말했다시피 훨씬 더 좋은 정치를 구현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의 교육목적은 실제적인 것이었으나, 좁은 의미에서의 실제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교육의 목적은 선정(善政)을 구현하는 것이었지만, 그 교육의 결과 모두가 유능한 행정가가 되어야 하며,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것을 훨씬 넘어서서,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든 관점에서 가능한 한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며, 특정한 기술만 가진 단순한 전문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H.G 크릴 / (주) 지식산업사 / 孔 子 - 人間과 神話 / 1983년 / 93쪽즉, 그는 개개인의 인격이 완성되면 그 인격을 바탕으로 선정(善政)이 이루어지므로 우선 인격과 학문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공자는 지혜가 있고 탐욕스럽지 않으며 용감하고 교양도 있을 뿐 아니라 예악(禮樂)에도 정통한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정의(定義)한 적이 있는데,) 『論語』, 憲問篇 「子路問成人 子曰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求之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이러한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공자는 이상적 인간을 군자라고 정의했으며, 바로 이 군자를 만드는 것을 그의 교육의 목표로 했다.「군자(君子)」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군주의 아들, 즉 귀족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군자란 말 자체로는 귀족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의미로 군자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가 말하는 군자란, 진정한 귀족이라면 갖추어야 할 덕성을 갖춘 사람이다. 다시 말해 덕성을 갖춘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이상으로 삼은 것은 덕성을 갖춘 이상적 사람임을 알 수 있다.또한 공자는 군자야말로 선정(善政)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정치가라 거들은 것은 아니다. 어찌 심하게만 굴어야 되겠느냐? 사람이 자기자신을 깨끗이 하고 나아오면 그 깨끗함을 거들어 주되, 그의 과거는 따질 게 없는 것이다.’」(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 ;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而進, 輿其潔也, 不保其往也.) 라고 되어있다.공자는 이처럼 가르침에 있어서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먹을 것에도 쪼들리던 안회(顔回)와 원헌(原憲) 같은 사람들도 공자의 제자가 되어 후세에까지도 명현(名賢)으로서 이름을 남길 수가 있었을 것이다.) 金 學 主 / 明 文 堂 / 孔子의 生涯와 思想 / 1988년 / 152쪽가난하다거나 출생이 미천한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아무런 방해도 돼지 않았다. 오히려 공자가 제자들을 받는데 있어 차별을 둔 것은 개인의 자질 문제였다.공자는 멍청이를 가르치는 것은 거절한다고 스스로 말했고, 또 지적(知的)인 개발에 「정열을 불태우는 사람만」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하였다.) 『論 語』述而篇 「子曰 不憤不啓 不 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뿐만 아니라 공자는 단지 부와 지위를 얻으려는 목적뿐인 학생들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 것 같으며, 보다 고상한 일에 관심을 가진 체하지만 초라한 옷과 거친 음식을 수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불어 말할 가치가 없는」존재라고 내쫓았다.) 同上, 里仁篇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그러나 그는 「3년 동안 물질적인 보답을 생각하지 않고 공부만 하려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同上, 泰伯篇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또한 공자는 사람들의 출신 같은 것에 차별을 두지 않은 것에 비해 사람들의 타고난 성격 등에는 민감하였던 것 같다. 계씨(季氏)편을 보면 그는 사람들의 학문 습득에 대0하여 다음과 같은 세 부류의 분류를 하고 있다. 「나면서 아는 사람은 으뜸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고, 막히자 그것을 배우는 것은 또 그 다음이다. 막혔는데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들 중에서도 하치라 할 것육예(六藝) 중에서도 기예(技藝)에 속하는 활쏘기·수레몰이·글쓰기·셈하기 등은 뒤로 미루고 덕행을 크게 내세웠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金 學 主 / 明 文 堂 / 孔子의 生涯와 思想 / 1988년 / 172쪽이러한 기예를 교육 과정에서 뺀 것은 그가 생각한 군자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한 군자에게는 이러한 기예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공자는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제자들을 가르쳤다.」즉, 그는 육예중에 기예를 뺀 나머지를 가르친 것이다. 또한 를 보면 태백(泰伯)편에서 「시를 통하여 감흥을 일으키고, 예를 통하여 자립하게 되고, 음악을 통하여 자기를 완성시킨다.」(與以詩, 立以禮, 成以樂.) 고 하였다. 술이(述而)편에서는 「공자께서 늘 말씀하신 것은 시(詩)·서(書)와 예(禮)를 지키는 것으로서, 언제나 그에 관한 말씀이었다.」(子所雅言, 詩書, 執禮, 皆雅言也.)고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을 살펴보면 공자가 무엇을 교육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는 시(詩)와 서(書), 예(禮) 그리고 악(樂)을 중시한 것이다.그는 의양화편에서는 이런 말도 하고 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시를 공부하지 낳는가? 시는 사람들의 감흥을 돋아주고, 사물을 올바로 보게 하며,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은근히 불형을 할 수 있게 하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줄 알게 하며,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한다.」(小子, 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고대에는 시로써 정치를 한 적도 있었는데, 외교상에 다른 나라와 회담을 할 때 외교관들은 시로써 그들의 나라 입장을 대변했다. 그것은 돌려서 말하므로써 자신의 나라의 이익을 얘기하고 상대방과의 얼굴 붉히는 일도 줄인 것이다.또한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아들 백어에게 한 말 속에서 시(詩)와 예(禮)를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의 그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은 오류이다. 공자는 그 누구보다 실재적인 교육을 한 것이다.이러한 공자의 교육과정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의 인격수양 교육에는 이러한 교과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교재를 중시하지 않았음은 이미 밝힌바 있다. 그는 제자들 스스로가 책을 공부하고 생긴 의문점에 관한 것만 가르쳤다. 따라서 그는 제자들을 이끌어줄 지침서로써 교재들을 책정하고 그는 도와주는 역할만을 한 것으로 보인다.공자의 교육방법 못지 않게 그의 교육내용 역시 그의 진정한 교육가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의 교육목표에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그의 교육 활동은 많은 현인이라 불리는 제자들을 키워 낼 만한 것이다. 그가 교육에서 성공했음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만도 충분히 알 수 있다.5. 공자의 교육방법공자의 제자들은 한마디로 말해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사람들이었다. 공자가 제자들의 신분이나 부유(富裕)함의 여하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하는 데에는 획일적인 교육은 별 효과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나 공자의 경우처럼 도덕교육을 하는 경우에는 말이다.공자는 자유로운 대화를 통한 개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것은 형식이 없었고, 수업시간이나 일정한 시험도 없었던 듯하다. 책은 그들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했으며 그는 단지 자유로운 문답 형식으로 교육을 했던 듯하다.이것은 공자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목적은 단지 학자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군자를 양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주제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가르쳤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방법은 극히 개인적이었으며, 제자마다 다른 문제를 제기하였기 때문에 가르치는 방법도 제자마다 달랐다.) 自夏는 특히 이점을 『論語』子張篇에서 지적하였다. 즉 「…君子之道 孰先傅焉 孰後倦焉 譬者草木 區於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
    교육학| 2002.06.24| 11페이지| 1,000원| 조회(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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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학] 고려사 리포트
    『高麗史』의 사료적 가치와 편찬과정한국 사료 독해『高麗史』의 편찬과정과 사료적 가치目 次一. 서론二. 본론1. 『高麗史』의 편찬 과정 2. 『高麗史』의 체재(體裁)와 역사의식3. 『高麗史』체제 및 구성 4. 『高麗史』의 편찬 근거가 된 자료5. 『高麗史』의 사료적 가치三. 결론一. 서 론『高麗史』 각지(各志)의 사료적 중요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사회를 연구하는 경우, 그것은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 방면의 연구성과로 손꼽아지는 병제사(兵制史), 토지제도사, 정치세도사, 과거제도사의 연구가 각기 『고려사』의 병지(騈指), 식화지(食貨志), 백관지(百官志), 선거지(選擧志)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뿐만 아니라 이 『고려사』는 『고려사절요』와 함께 고려 왕조의 오백년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외적 침략을 물리치고 고려의 국토를 수호하기 위하여 매번 영웅적으로 싸워 이긴 고려 인민들의 투쟁업적과 나아가서는 10세기 이래 우리 동방의 국제 전반을 고찰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진귀한 문헌자료이다.여기에서는 『고려사』의 편찬과정, 체재(體裁)와 문화의식, 체제 및 구성, 각지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二. 본 론1. 편찬 과정『고려사(高麗史)』는 기전체(紀傳體)로 쓰여진 137권의 고려 475년간의 정사이다. 1∼46권에서는 태조 이하 32왕(우, 창왕 제외)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고, 47∼87권에서는 천문지 등 12분야와 연표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고, 88∼137권에서는 후비·종실·공주, 문·무제신, 반역자 등 고려 일대의 인물 949명의 전기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였다.고려왕조의 역사정리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전왕조의 역사를 정리하고, 고려를 멸망시키고 개창한 조선왕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편찬된 고려역사는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을 시작하여 1396년(태조 4)에 완료된 편년체(編年體)의 『고려국사(高麗國史)』 37의 발의로 기전체에 의한 고려사 수찬(修撰)이 제기되고 이를 세종이 가납하면서 최초의 기전체 『고려사』가 편찬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개(申)·권제(權提)·남수문(南秀文)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을 시작하여 세종 24년에 찬진하였다. 이 때의 기전체 『고려사』가 그 후 수사(修史)의 공정성이 문제되어 다시 수찬되고, 수사 총책임자인 김종서(金宗瑞)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에 의하여 역적으로 몰려 살해됨에 따라 부책임자이던 정인지(鄭麟趾)로 총책임자가 바뀌는 등의 개변을 거쳐 현재에 전해지는 『고려사』의 원형이 되었다.세종 24년의 『고려사』는 세종 30년에 활자본으로 인출되었다가(현재 부전) 남수문 등 수사관의 정실개입이 드러나면서 반포가 중지되었다. 그 후 세종 31년에 김종서·정인지·이선제(李先齊)·정창손(鄭昌孫) 등이 왕명을 받아 다시 신개 등의 『고려사』 개찬(改撰)에 착수하였다. 『고려사』의 개찬을 시작하면서 그 개찬방침과 관련되어 신석조(申碩祖)·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 등의 "기전체 고려사를 먼저 완성하고, 그 다음에 편년체의 『수교고려사』를 산倧)刪潤)하여 별도의 편년체 고려사를 편찬하자"는 주장과 어효첨(魚孝瞻)·김계희(金係熙)·이물민(李物敏) 등의 "기존의 『수교고려사』를 개정하여 반행하자"는 의론이 제시되었다. 이어 김종서·정인지 등의 주장에 따라 신석조 등의 논의를 쫓아 기전체의 고려사와 별도의 편년체 고려사를 개찬할 것을 결정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451년(문종 1)에 현전하는 기전체 『고려사』 139권을, 익년에는 현존하는 편년체 『고려사절요』 35권을 모두 완료하였다.문종 1년에 찬진된 『고려사』는 1453년(단종 1)에 간행되어 반포되었고(현재 부전), 다시 1455년(단종 3)에 정인지를 총책임자로 하여 간행되었다(을해본, 『고려사절요』는 1453년(단종 1)에 김종서의 이름하에 갑인자로 간행). 또 중종대(1506∼1544)에 을해본을 저본으로 한 목판본이 간행되어 반포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에는 을해주자본 제후국의 지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데, 『고려사』에는 고려를 제후급의 국가로 파악한다는 명분론이 그 체제를 통해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이와 같은 『고려사』에 있어서의 명분론은 편찬자의 주장이며, 구체적으로는 조선 초에 왕명을 받아 『고려사』를 편찬한 관학자들의 견해다. 따라서 조선 초에는 그 선행 왕조인 고려라는 국가를 명분론을 내세워 제후급으로 낮추어 인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문제는 삼국사기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더욱 크게 드러난다. 즉 일반적으로 사대적인 편찬태도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삼국사기』에서도 왕기는 본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외면상으로 볼 때에는 『고려사』에는 『삼국사기』보다 더욱 심한 자기비하(自己卑下)적 입장이 반영된 셈이다. 그리하여 『고려사』에 반영된 명분론은 여러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결국 『고려사』에서 고려라는 국가와 그 문화가 어떤 차원에서 파악되었으며, 그 찬자들의 자기인식 방법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며, 이 문제에 대한 추적은 『고려사』의 사학사적 의의의 일단을 밝히는 입장과 그 궤(軌)를 같이 한다.『고려사』의 내용을 살필 때, 그 속에서 고려라는 국가가 독자적인 정치질서를 지니는 존재로서 파악·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고려사』의 기전체로서 편성 내용이 고료의 독자적인 국가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가(世家)에서는 최고 통치자로서의 국왕의 행적이 곧 고려 조정이 정치·행정사로서 서술되고 있으며, 지(志)에서는 에서는 의례(儀禮), 정치, 경제, 군사, 교육, 형률(刑律)이 일원적인 통치체계 아래에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열전에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의 활동도 원칙적으로 고려라는 독자적인 정치권을 무대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체재와 내용이 곧 독자적인 왕조로서의 고려시대사의 면모를 말해준다.『고려사』에서 고려라는 국가의 독자성에 유의하려는 입장은 반역열전(叛逆列傳)을 통해서『고려사』에서는 고려라는 국가를 어떤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또한 『고려사』에서는 고려의 문화가 높이 평가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고려사』의 찬자들이 직접적인 서술인 지(志)의 서문을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고려사』는 조선건국의 합리화를 위해 고려의 멸망을 필연화하려는 입장 때문에 후기 부분데 대해서는 대개 부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지만, 고려전기의 제도·문물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선거지(選擧志)의 서문에서는, '東方文物之盛 擬諸中華'라 하여 고려 盛期의 문화를 중국의 그것과 그대로 대등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화를 논할 때 의례 기준으로 삼는 중국문화와 곧바로 비견한다는 것은 곧 고려 문화에 대한 최고의 평가이며, 만족스러운 긍정인 것이다.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사』에서는 고려라는 국가의 개별성·독립성을 전제로 하여 그 문화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삼국을 독립된 국가의 차원에서 서술하면서도 그 문화에 대해서는 별로 내세우는 것이 없다는 사실과는 구분된다.3. 『고려사』의 체제 및 구성세종은 『고려사』가 존왕주의·직서주의·기록보존주의라는 기본 원칙 하에 서술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왕은 편년체 사서로 편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춘추관에서 『고려사』개찬을 논의하는 과정 중 의견이 엇갈렸다. 즉, 신석조, 최항, 박팽년, 김예몽, 하위지, 양성지, 유성원, 이효장, 이문연 등은 기전체로 서술하여 사적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반면, 어효첨, 김계희, 이물민, 김명중 등은 기전체로 할 경우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편년체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세종은 물로 어효첨 등의 의견을 수렴하려 하였으나 김종서, 정인지 등의 의견이 워낙 강경하여 결국 기전체를 채택하게 되었다.『고려사』는 세가(世家) 46권(1∼46), 지(志) 39권(47∼85), 표(表) 2권(86∼87), 열전 50권(88∼137)으로 총 137권으로 구성되었다.『고려사』에는 새가 왕대마다 다르고, 당서(唐書)의 지는 짜 맞추어 편을 구성해서 핵심을 알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고려사』지는 원사(元史)에 의거하여 분류해서 보기 편하게 하였다. 둘째 고려역사에는 제도와 조격(條格)이 빠진 것이 많아 『고금상정례(古今祥定禮)』·『식목편수록(式目編修錄)』·여러 사람의 『잡록』등에서 참고하여 지를 서술한다고 하였다.표는 2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중국의 사서들의 표가 분량이 많고 복잡한데 비하여 『고려사』의 표는 간단하여 참고하기 쉽게 되어 있다. 표의 범례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준하여 연표만 작성한다고 하였다.마지막으로 기전체 사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열전은 50권으로 구성되어 『고려사』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의 사서들과 비교해 보면『고려사』는 열전의 비중이 오히려 적은 편이다. 『고려사』의 열전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즉 후비전 1∼2권, 종실전 3∼4권, 신하전 5∼33권, 양리전·충의전·효우전·열녀전 등을 합쳐서 34권에 수록하였다. 그리고 방기전·환자전·혹리전을 35권에 두었다. 폐행전은 36∼37권, 간신전은 38∼39권으로 하고 끝으로 반역전은 40∼50권으로 하였다. 『고려사』열전에는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하였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석노전(釋老傳)이 빠져 있고, 유학자·공예·외이전 등을 수록하지 않았다.열전의 범례는 첫째 처음에 후비전을 두고 다음에 종실전, 제신전을 차례로 하여 반역적으로 끝을 낸다고 하였다. 부자는 합전을 원칙으로 하는데 공로가 탁월한 사람은 따로 전을 둔다고 하였다. 또 열전에는 각 전마다 서문을 두어 그 전의 서술목적이나 편찬원칙을 기록하고 있다.4. 『고려사』의 편찬 근거가 된 자료『고려사』가 『고려실록』을 바탕으로 편찬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고려사』각지도 고려실록의 기사에 의존하여 편찬된 대목이 절대적으로 많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구체적인 작업내용으로 볼 때에는 이미 편년체로 편찬된 고려사대전 가운데서 해당기사를 발췌하고, 좀 저 자세한 사항을 필요로 할 경우 가된다.
    인문/어학| 2002.06.24| 8페이지| 1,000원| 조회(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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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 평가B괜찮아요
    노자노자는 선진 도가의 창시자이다. 그의 철학적 저작물로 『노자』가 있으며 노자 자신에 대해서는 자료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상세하게 고찰할 수 없다. 일설에는 춘추시대의 노담(老聃)이 노자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전국시대의 이이(李耳)가 바로 노자라고도 한다. 현재 전래하고 있는 『노자』의 내용은 그 대부분이 전국 초기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사회ㆍ정치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으며, 유가ㆍ묵가ㆍ법가 등 삼가(三家)의 관점에 대해 평론을 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의 형성은 유가ㆍ묵가ㆍ법가 세 학파가 유행하던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상한(上限)시기 역시 유가, 묵가가 생긴 이후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으로 볼 때 현존하는 『노자』는 결코 춘추 말기 노자의 저작이 아니고, 전국 시대 전기 내지 중기 사람들이 첨가 혹은 수정을 한 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반영하는 것은 춘추 말기에서 전국 전기 이전까지 노자 일파의 사상이다. 비록 『노자』는 한 사람이 한 시대에 저술한 것은 아니지만, 『노자』에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으며 노자가 도가 학파의 창시자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노자사상의 발단모든 사상은 그것을 배태(胚胎)하게 하는 역사적ㆍ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노자의 경우는 그 배경이 주(周)나라의 예제문화(禮制文化)라고 볼 수 있다. 즉, 주공(周公)이 만든 예약전장제도(禮藥典章制度)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귀족의 생활이 타락하고 부패함으로써 민중의 삶을 질식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주례(周禮)는 형식적이고 고착화된 허레허식으로 남게 되었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제후들간의 전쟁이 반발하게 되자 주례가 생명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노자의 사상은 이러한 역사배경 하에서 인위적(人爲的)ㆍ형식적인 예제문화를 부정하면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노자는 예를 정면으로 비판하였으며 그로부터 예의 인위성에 대한 도(道)의 무위자연성을 피력하기에 이른다.도(道)노자는 예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도를 잃은 후에 덕이 나오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나오고, 인을 잃은 후에 의가 나오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나온다. 예는 충과 신이 결여된 혼란의 시작이다.'도'의 형상과 성질에 대해서는 노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첫째, 도는 형상(形象)이 없는 것이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세가지는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뒤섞여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이(夷)는 자취가 없는 것이고, 희(希)는 소리가 없는 것이며, 미(微)는 형질이 없는 것이다. 이ㆍ희ㆍ미 세 가지는 모두 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아무런 형상도 없고 어떠한 자취도 없는 것이다.'도는 자연을 본받는다.'자연은 무위(無爲)이다. 무위이므로 목적도 없고 의지도 없고 욕망도 없고 작위도 없다. 그러므로 도는 항상 욕망도 없고 행위도 없는 자연 존재이다.둘째, 도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다.'부드럽고 약함이 도의 작용이다.'도의 작용은 부드럽고 약한 것이지만, 바로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비로소 굳세고 강함을 이길 수 있다.'천하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몰고 다닌다.'천하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 만한 것은 없다.이처럼 물의 성질과 도의 성질에는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셋째, 도는 허정(虛靜)한 것이다.'도는 텅비어(沖) 있으나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충(忠)은 곧 충( )이다. 충( )이란 그릇이 비어 있음을 나타낸다. 도는 공허(空虛)한 것이여서 영원히 충만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도는 또한 고요히 머물러(靜止) 있다.'만물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각자 자기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하고, 고요함의 본성으로 돌아감이라 하며,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도(常道)라 한다.'도는 고요히 머물러 있고 만물은 운동한다. 따라서 만물은 모두 장대하게 생장하지만 최후에는 모두 그것들의 본원인 도로 돌아간다. 이것을 두고 성명(性命)의 상도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고요히 머물러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넷째, 도는 이름이 없다(無名).명(名)이란 명칭 또는 칭호를 가리킨다. 명칭이 있는 어떠한 것도 모두 그것이 가리키는 일정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명(名)'에는 모두 일정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자는 도는 무한한 것으로 어떠한 규정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도가 유한한 것이고 일정한 규정성이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사물(만물)과 아무런 구별도 없어 우주만물의 본원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도는 무한하다. 무한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명칭으로 이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도는 이름이 없다.'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常道)가 아니다.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따라서 늘 그러한 도는 도라고 부를 수 없으며, 늘 그러한 이름은 명칭이 없으므로 도는 이름이 없는 것이다.노자는 도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구체적인 사물과 연계된 도이다. 이것은 '비상도(非常道)', 즉 영원히 존재하는 도가 아니라 일정한 사물의 법칙에 속하는 도이다. 또 하나는 만물이 존재하는 도가 아니라 일정한 사물의 법칙에 속하는 도이다. 또 하나는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의 모든 근원과 법칙이다. 이러한 도는 상도(常道), 즉 영원불변하는 도라 불린다. 영원하지 못한 도는 형상이 있는 사물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영원불변하는 도는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있으므로 형상이 없다. 이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도는 만물을 떠나 있는 일종의 절대적 '리(理)'이다.덕(德)첫째, 우주의 본원인 도의 덕성을 일반적으로 '현덕(玄德)'이라 한다.둘째, 도를 체현한 성인의 덕성을 또한 '현덕'이라고 한다. 이것은 성인의 덕성과 도의 덕성이 일치되기 때문이다.셋째, 천지만물(인간을 포함해서)의 덕성을 일반적으로 덕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하늘의 덕, 땅의 덕, 인간의 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사물의 덕성을 노자는 하늘의 도, 땅의 도, 인간의 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하늘의 도와 하늘의 덕, 인간의 도와 인간의 덕은 엄밀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논리상의 개념이다. 덕에는 '현덕'과 일반'덕성'의 차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후함과 박함의 차이, 상하의 차이, 덕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 등이 있다.무위자연(無爲自然)'성(聖)을 끓고, 지(智)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배나 된다.''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지(智)가 많기 때문이다.'즉, 사물의 일면을 고정화하여 축적된 지식은 궁극적으로 사물의 실상을 왜곡하며, 지식이 많아질수록 왜곡은 더욱 심해져서 혼란이 발생하므로 그러한 지식은 버리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지식을 버린다는 것을 노자는 무위자연이라고 하였다.무위는 유위(有爲), 또는 인위(人爲)의 반대로서 인간의 지적 오류에 의해 제정되고 실천되는 제도[禮]나 행위를 부정하는 개념이며,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은 아니다.자연은 노자에게 있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물리세계의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바로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스스로 그러하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정신의 독립이며, 인식의 오류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양면을 내포하는 사물의 실상과 합일(合一)함으로써 그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데에서 얻는 정신적 원만성이다.노자에 의하면, 이러한 무위자연의 경지에 의해서만이 비로소 삶이 의미를 얻으며, 인식적 오류에서 빚어진 인위, 유의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교육학| 2000.11.19| 5페이지| 1,000원| 조회(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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