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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외교학] 프랑스 의회의 역사 평가A+최고예요
    Ⅰ. 프랑스 의회의 역사1. 프랑스 의회의 성립프랑스에는 프랑스 의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전국 신분회가 있었으나, 시행된지 175년동안 한번도 소집되지 않다가 왕가의 재정파탄 때문에 1789년 5월 5일에 베르사이유에서 소집되었다. 당시 까지 극단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절대군주제와 관료정치에 대한 민중의 불만과 불평이 극도에 달하여 있었으므로 이때 대중의 울분이 폭발하여 시민계급은 의회의 모든 권력을 장악, 국민회의라 칭하고 그전과는 다른 여러 가지 현실을 생각한새로운체제를 구축하였다. 1791년 새로운 헌법이 구축한 권력은 미국식 삼권분립제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를 지나칠 정도로 구축한 권력은 미국식 삼권분립제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를 지나칠 정도로 크게 나누어 가졌기 떼문에 기능이 마비되었고 관리들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무너져간 체제는 1792년 반란자치정부가 수립되고 새로운 의회인 국민공회가 의원을 산출하게 되었으며 폭력, 9월의 대학살, 종교의 극단적인 조치 등이 행사되는 가운데 이 의회가 처음 한 일은 1792년 9월 22일을 공화국 원년으로 선포한 것이다.2. 제 1 공화제1793년 3월 24일 자코뱅당이 의회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만들어진 제 1공화국 자코벵헌법에서는 단원제의 일년 임기를 가진 극단적인 민주제를 채택하였으나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림을 느낀 자코뱅당원들은 공화국 3년(1795년) 헌법에서 새로운 의원의 2/3는 옛 국민공회에서 선출한다하였고 재차 엄격한 3권 분립제를 채택 집정관부의 다섯 명에게 행정권을 원로원과 500인회에 입법권을 주었다. 이 정치행태 역시 부르주아적 성격을 띠어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전쟁의 승리, 정치적 수단 등 민중의 신임을 얻어 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가 성공하고 1791년 11월 22일 콘슐헌법에서는 보나파르트의 의도대로 다두 정부를 수립 곧이어 공화국 8년 헌법에서는 제1통령을 창설하였고 법률 발의권, 예산과 외교, 전쟁의 제반 권리를 가지며 거의 모든 관리를 지명하는 권리가 제 1 집 문제와 소련의 위협으로 정치상황이 긴장되자 4공화국의 전통적 의원내각제에서 탈피하여 오히려 미국식 대통령제보다도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강화된 권위주의적 정치형태인 신대통령제로 전환되었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 4공화국 의원내각제에 있어서의 대통령의 명목상의 권한과는 달라서 실질적인 권한들이다.특히 대통령의 수상 임면권은 수상으로 하여금 의회에 대한 신임(제18조 3항) 이외에 대통령에 대한 신임도 필요하게 되었다.의회는 상·하 양원이 거의 동등한 권한을 갖게 하여 양자를 상호 견제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강화하였다.Ⅱ. 프랑스 의회의 특징과 운영약한 의회서유럽에서 그리고 또 다른 어디에서도 일반적으로 의회는 행정부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어렵지만 프랑스 의회는 자유민주주의 페제에서 가장 약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입법부를 기술한 헌법의 부분은 입법부에 권력을 주기보다는 그것을 제한하는데 더 치중한다. 5공화국의 헌법이 행정부에 위임한 권력의 많은 부분들은 3, 4공화국 체제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강력한 대통령제 아래에서 의회는 의회가 가질 수 있는 자치권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헌법규정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의회제에서 입법부가 할 수 있듯이 행정부에게 책임을 지게할 수도 없다.프랑스는 상원과 하원의 양원제이다. 5공화국이 탄생한 1958년 이래로 하원은 주권의 유일한 대변자로 간주되었고 어떤 정부기관도 하원의 특권을 침해할 수 없었다. 하원은 의지에 따라 정부를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으며 스스로 선택한 사안에 관하여 입헌할 수 있었고 프랑스 정부와 행정의 어떤 면에서고 개입할 수 있었다.(상원은 4공화국에서도, 5공화국에서도 더 약한 권력을 보유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각과 행정에 책임을 짐으로써 그렇지 못했으며 드골은 이러한 관행을 단지 성문화했다. 하지만 책임을 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의회의 선택의 자유를 제거하고 의회가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제거했다. ; foreign policy / finaces and the economy / defense / constitutional changes, legislation, and general administration / cutural, family and social affairs / production and exchange)대중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이 참여와 대의제도의 중대한 메카니즘을 제공했음에도 그 결과는 더욱 더 행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의회를 제한했다. 더구나 대통령은 너무 멀리 있는 존재이고 7년에 한 번씩 선출된다. 이러한 불균형한 상황 때문에 프랑스에서 대중의 불만족은 종종 직접적인 저항의 형태를 야기한다.불균등한 양원제의회 내에서 하원은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다는 점과 입헌 통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원보다 훨씬 권한있는 院이다.법안이 법이 되는 과정. 5공화국에서는 입헌 영역이 좁은 범위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4공화국에서는 해마다 평균 200여 개 이상의 법안이 통과되었음에 반해 5공화국에서는 평균 이의 3분의 1정도의 법안이 통과되었다.대부분의 법안은 정부에 의해 제출되고 수상과 정부의 지시 아래, 관료들이 법안을 기초하고 그것을 심사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다. 법안이 형식적으로 각료회의에 의해 채택되자마자 정부는 의회에 법안을 넘긴다. 법안은 일반적으로 하원에만 제출되며 뻔한 한 개 혹은 몇 개의 위원회에 조사를 위해 회부된다. 드문 경우 특별 위원회가 법안분석을 위해 만들어진다. 위원회들은 법안의 초안을 심사하고 개정안을 제안하기 위해 비밀 회기에 만난다. 위원회가 투표하고 리포트(일반적으로 최대와 최소 리포트)를 제출하면 법안은 토론과 더 많은 개정, 결정을 위해 양원에 제출된다.각 院에서 토론되는 동안 법안의 판단을 하는 정부 장관은 발언에서 우선권을 가지고 개정안과 토론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에 의해 부여된 엄격한 권한을 사용한다. 하원에서 최소 20석을 확보한 국회의 당들은 그들의 리더와 평의원들이 토론할 향한 경향이 시작되었다. 극화는 정당들이 두 개의 광범위한 경쟁적인 연합을 형성하는 경향, 즉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후보들을 대표하는 두 표준 중의 하나의 기치아래 각각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화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에 정당들이 우선권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를 위해 리더들은 호소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텔레비젼 화면에서 잘 보여야 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은 더 많은 청중을 끌도록 만들어진다.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완화의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선거과정에서 연합이 결정적인 우위를 안겨주기 때문에 각 정당들은 연합을 도모한다. 정치적 연합은 제도 안에서 가능한 정치적 선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5공화국의 안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최근에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줄어들면서 연합의 승리는 덜 주요해졌다. 또한 프랑스 시민들이 두 개의 세력 모두가 제대로 자신을 대표한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투표에 참가하지 않거나 이들에 반대하는 군소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Ⅲ. 프랑스의 정당들1. 주요 정당들① 공화국 연합(the Movement for the Republic)중도우파로 5공화국의 첫해인 1958년 드골의 리더쉽을 지지하며 창당된 UNR(the Union for the New Republic)을 계승했다. 드골을 지지하나 정작 드골은 모든 정당에 반대했다. 1969년 드골이 사임하고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퐁피두가 1974년 사망하자, 더 이상 대통령에 나올 만한 리더가 없었다. 데스탱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는 드골주의에 포함된 자가 아니었다. 1974년부터 1995년까지 RPR은 더 이상 대통령직을 조정하지 못했고, 정부도 조정하지 못했다. 1995년 쟈크 시라크가 대통형 선출됨으로써 다시 지위를 확보했다. 드골의 복잡한 정책 때문에 RPR은 전통저인 보수당이 아니다. 그러나 RPR의 사회적 기초는 이 정당의 보수성향을 반영한다. 사업가, 전문가, 고등교육자, 부유층들이 이 정당의 주요 지지층0석 가량 상회하는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지난 86년과 93년에 이어 프랑스 5공화국 사상 세번째로 좌우 동거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시락 우파 대통령과 조스팽 좌파 총리가 공동 관리할 프랑스의 앞날에는 불안 요소가 많고 유럽 통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 결과는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2) 대통령대통령의 임기는 7년이며 연임에 관한 제한이 없다. 1962년에 헌법개정을 단행함으로써 대통령선거방식을 직선제로 하였다. 만약 1차투표에서 어느 누구도 절대다수를 얻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였다.프랑스의 정치는 대통령의 정치이고, 그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임기동안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그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에 의하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국내 및 외교정책분야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제5공화국하에서 대통령의 수상임면권은 대통령 권력 강화의 결정적 표시이며, 행정부 내의 권력 재조정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견제를 위해 하원인 국민의회해산권을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의회해산을 하게되면 총선거는 20일 내지 40일 이내에 행해져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중요사안 및 정부의 중요정책을 심의하기 위하여 국무회의(Conseil des ministres)를 주재한다. 국무회의에는 대통령과 수상을 비롯한 각료가 참석한다. 매주 1회 이상의 회합을 통하여 집행권의 응집역할을 갖는 최고정부회의체이다.3) 중앙정부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 정부라는 용어는 수상을 중심으로 하는 좁은 의미를 지칭하고 있다. 행정권은 대통령과 수상에 의하여 집행되는데, 평상시에는 수상이 국내 행정권을 행사하고 의회에 책임을 지며, 대외적으로는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형식으로 이원집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비상시에는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통해 국내외 모든 행정권을 행사한다.대통령과 의회의 다수파가 일치할 경우에는 정부는 대통령의 실질적 지배하에 놓인이다.
    사회과학| 2002.11.16| 15페이지| 2,000원| 조회(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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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외교학]냉전 평가C아쉬워요
    Ⅰ. 머리말전후의 국제 정치 질서는 이른바 냉전체제, 즉 냉전적 국제체제의 성립과 전개로 시작하였다. 이러한 냉전체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냉전체제란 평화속의 전쟁상태 를 의미한다. 전쟁상태는 필연적으로 경쟁적 대결질서의 경영체제를 조건 부여하는 것이다. 이 세계정치적 경영체제 운영의 주역을 맡게 된 것이 초강대국의 명찰이 붙여진 미·소 강대국이다. 미국은 서방 자유 민주주의 세계권을 대표하였고, 소련은 공산 사회주의권을 통괄하는 대표주자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는 세계를 미·소 양극화 진영권 형성으로 갈라놓게 하였으며, 세계정치를 양분화하여 이데올로기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하였다. 이른바 정치전쟁 의 시대를 창출해낸 것이 냉전체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이런 냉전체제하에서의 국제관계의 변화는 매우 민감하게 진행되었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도상국, 유럽국가들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서는 먼저 냉전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냉전 구도하의 세계, 그리고 냉전의 결과들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Ⅱ. 냉전의 기원과 전개2차대전후에, 미국과 소련은 공동의 적이 없어지자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두 나라간의 직접적인 전쟁은 없었지만, 그 대결의 양상은 전쟁을 방불케해서 냉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냉전은 l946년 W.처칠의 연설을 서곡으로 하여 47년의 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방측은 과 등에 의거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그리고 그 밖의 반공군사망을 조직했으며, 동방측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으로 대항하였다. 또한 경제·문화적 교류도 단절되어 동·서 2개의 세계가 형성되었다. 46년 베를린 위기, 50∼53년 한국전쟁, 56년 수에즈전쟁 등을 거쳐 62년 쿠바위기에 이르러 냉전은 제3차세계대전 발발의 막다른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쿠바위기를 계기로 미국 지도자는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을 갖춘 소련을 상대로 냉전을 계속할 때의 위험을 깨달아 소련과의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63년에 부분적으로 핵실험금지조약을 성립시켰으며, 워싱턴∼모스크바의 직통전화 설치는 이러한 정책의 한 표현이었다. 미국은 그 후, 72년 닉슨의 중국방문으로 미·중의 상호양해가 성립되었다. 또한 베트남전쟁의 실패가 냉전정책의 결정적인 파탄을 분명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냉전에 대신할 수 있는 대외정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91년의 소련공산체제 붕괴와 더불어 냉전이라는 용어는 점차 쓰이지 않고 있다.Ⅲ. 냉전구도하의 세계앞에서 말했듯이 냉전의 진행과정에서 전후 세계정치 구도는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자유진영과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진영으로 양분됨 이극체제를 형성하여 이 두 진영은 거대한 집단안전보장조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행위체제에 있어서 이익, 원칙, 규범 전략이 서로 일치할 수 없는 목표설정의 상황속에서 서로 다른 행위체계를 가진 두 강국, 미국과 소련은 독일과 한국의 군사적인 대결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힘과 이데올로기 분쟁을 계속하여 왔다. 이 양대국은 지리적인 조건, 국가의 자원, 전쟁에서의 행운, 핵무기 소유의 결과로서 전후 국제관계를 지배하였고 그 관계는 국제관계 구조에 다른 양상이 나타날 때까지 양극화로 특정지어졌다. 미국과 소련은 군비경쟁을 앞다투어 지속하면서 세계 모든 지역에 걸쳐 동맹체제를 형성하고, 또 새로운 동맹을 얻고 다른 국가들은 상대방 가담을 저지하는 지구대에 걸쳐서 경쟁을 하였다. 상호간 영향력 확대의 경쟁을 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이원론적 입장에서 이러한 정세를 동 과 서 ,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 , 독재정치 와 자유세계 또는 자본주의 국가군과 사회주의 국가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국제정치체제의 이극·냉전 구조에서 초대국을 지도국으로 한 각진영의 국가들은 지도국가에 이념적·군사적으로 의존하여야 되었고 외교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 독립이나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여기서 냉전의 주체들이 그들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냉전구조가 지탱되어 온 것은 두 초대국이 전면전쟁을 회피하면서 상대의 세력권의 팽창을 저지하고 가능한한 자기 세력권을 확대하려고 하였으며, 블럭 구성국이 블럭의 결속을 우선적인 국익으로 취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고, 미·소의 핵의 우산이 각 진영에 소속한 국가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체제를 형성하는 데 있었다. 또 한편 양진영은 제3세계 국가들의 상대방 진영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군사·경제·기술원조 경쟁을 격화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양극 국제체계의 조정장치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 기능을 유지하였다.{) 국제 관계사, 백경남, 법지사
    사회과학| 2002.11.15| 2페이지| 1,000원| 조회(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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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와 한국문화] 극락세계와 정토사상 평가A좋아요
    Ⅰ들어가며사람은 항상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을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 센가 수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행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암담함으로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설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세에 이루지 못한 행복들을 내세에 이루고 싶어는 사람들, 내세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유토피아", "무릉도원"이라고 표현되는 이상세계, 사람들이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상의 세계인 정토(淨土)였다.Ⅱ 들어가서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정토란 무엇이며 극락이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는 극락 혹은 정토(淨土)로 불린다. 가장 기쁜 곳이 라는 의미에서 수카바티(Sukhavati), 즉 극락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언급으로 등이 있는데, 대체로 그 세계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극락에는 일곱 겹의 난간, 구슬로 장식된 그물, 일곱 겹의 가로수가 있다. 그 곳의 중앙에는 연못이 있는데, 금, 은, 유리, 수정이 네 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다. 하늘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하루 종일 만다라꽃 (Mandarava)이 하늘거리며 대지에 흩날릴 때면 황금빛 지면에 수북히 쌓인다. 이 정토의 중생들은 매일 아침 옷을 단정하게 입고, 꽃 대바구니에 이 꽃들을 담아서 다른 세계의 10만억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공양한다.식사는 하루 한 끼인데, 식사 후 에는 산책을 즐긴다. 또 극락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무수한데, 그 가운데서도 가릉빈가(迦陵頻伽/Kalavinka)가 가장 아름답다. 이 새들의 소리는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생각하게 된다. 또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네 가지 보배로 장식된 가로수나 구슬로 장식된 그물들이 기묘한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교향곡과도 같다. 이 나라에는 아미타(Amita) 라고 부르는 부처님이 계신다. 그는 한량없는 목숨 을 지닌 분으로서 언제나 이곳을 염원하는 이들의 지주(支柱)가 된다. 또 그는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계신다. 만약 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염불만이 첩경이다. 즉, 지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게 되면 임종시에 아미타불이 그를 영접하여 이 정토로 인도한다는 것이다.이것을 정토왕생의 염불비원(念佛悲願) 이라고 한다. 정토사상은 대승불교의 중, 후기에 생겨난 사상이다. 즉, 초기의 불교에서는 지옥에 대한 설명은 장황했지만 내세관은 괄목한 만한 것이 적었다.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확고한 내세관이 나타나는바 그것이 바로 정토사상이다. 정토 신앙은 민중적 보편성과 함께 왕생의 인연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면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부터 유행하였고, 근자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사상 형태이다. 그러나 고려 말엽에 선종이 유행하면서 이 정토에 대한 관념은 조금씩 변형된다.의 가름침대로 '마음이 맑아야 정토가 맑아진다.'는 대승적 해석이 유행하게 된다. 선가에서는 이 정토를 어떤 실재적이고, 구상적인 세계로 파악하는 일을 거부한다. 심지어 속조 혜능은 십만 팔천 리를 지나야 정토가 있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우리 몸 안에 잇는 십악 팔사 라고까지 설명한다. 즉, 정토에 왕생하려면 염불의 공덕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갖는 수련 생활이 필요함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정토사상은 고도의 철학성을 갖춘 자력과 타력의 조화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단순히 서방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타력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 내 몸을 닦는 자력 의지가 선행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극락과 지옥에 대한 논의는 거의 대부분의 불교 사상가들에 의해서 상징과 은유로 이해되어 왔다. 즉, 민중들의 도덕성 제고를 위한 시청각적 의미가 강하다고 인식되었던 것이다.이러한 정토 사상은 한국의 경우 건축물 등에 잘 나타난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부석사는 크게 9개의 석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무량수전가지 이어지는 석단은 하품 하생 에서부터 상품 상생에까지 극락 정토의 9단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부석사의 다른 한가지 특이한 점은 아미타불을 모신다는 점이다. 극락 정토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심으로써 부석사가 바로 정토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이 불상도 무량수전 중앙이 아니라 서쪽 벽에 위치해 있다. 서방정토를 구현한다는 뜻에서 아미타불을 서쪽에 모셔 동쪽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바닥에 깔린 녹색의 벽돌은 극락세계의 청정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벽돌 표면에 유액을 발라 광택이 나게 한 것이다.흔히 볼 수 있는 연꽃 문양도 정토 사상을 나타낸다. 아미타경에서 연꽃은 극락 정토를 상징한다. 극락 정토는 연꽃으로 장엄된 미타 여래의 세계인 것이다. '화엄경'에서 '연화장'세계도 부처의 세계이며 정토의 세계이다. 일본의 경우 연꽃 그림은 불교 사상과 관련되어 그 밖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예가 적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즐겨 그려지고 있으며 기쁜 감정을 끌어올리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그림으로 존중받았다.전통적으로 각 마을에 있는 장승이나. 솟대 등도 정토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솟대나 장승은 옛 마을이면 어느 곳이나 세워져 있었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는데 사찰에도 일주문 앞이나, 사찰 주위에 호법선신, 금귀대장, 국장생표 등의 장승을 세운다. 사찰의 재액과 잡귀의 침입을 막고 사찰을 수호하며 사원 전답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장승을 마을 앞에 세움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외부의 어떠한 잡귀로부터 지켜지고 평온한 극락과 같은 삶을 갈구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솟대 또한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솟대는 형태상 지상에서 천상을 향해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지상의 온갖 소원을 천상의 신들에게 전하는 매게 체로서의 상징을 지닌다. 솟대 위에는 새 모양의 조각이 올려져 있는데 이것은 새는 지상과 하늘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영물로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새를 통하여 사람들은 현생에서의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소원을 하늘에 빌었고 아울러 극락 정토에 가고자하는 열망을 솟대를 통하여 하늘에 전달했던 것이다.그렇다면 사람들이 과연 극락으로 가기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극락과 반대되는 개념의 다른 세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그 세계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극락과 반대되는 내세에서도 불행한 삶을 지니고 살게 되는 고통의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지옥은 나라카(Naraka)의 의역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라는 논서에 대한 설명이 있다. 지옥은 지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극악한 죄를 저지른 이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설명된다. 가장 고통을 받는 곳을 무간 지옥이라고 하며 그 위로 팔열지옥이 있다. 이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고통의 끝이 결코 죽음이라는 안식일 수 없다는 것이다.반면 위에서도 살펴본 것과 같이 극락세계는 지옥과도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극락세계는 왜 이렇게 현란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에 대한 의문이 든다. 우리가 흔히 쓰는 '극락'은 에서 사용한 말이고, 에서는 '안락'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이렇게 극락 또는 안락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곳의 중생들은 고통이 없고 즐거움만 있으며, 또한 그곳은 갖가지 보배로 장식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즐거움만 있는 곳이기에 즐거울 '낙(樂)'자를 붙여 안락 혹은 극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극락 정토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환락이나 영요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성스러운 깨달음을 열 수 있는 청정한 도량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간의 욕망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정신적인 청정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극락세계가 출현하였다. 그러므로 극락의 아름다움은 어디가지나 청정함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불교에서의 즐거움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사성제는 네 가지 참다운 진리란 뜻으로 고(苦), 집(集), 멸(滅), 도(道)를 말한다. 이러한 사성제의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고(苦)의 멸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을 실천하는 성문(소승)들은 인생의 고를 면하는 것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자신의 고를 멸하는 도를 닦아서 고를 멸하는 것이 최상의 낙(樂)이었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사람들은, 자신보다는 자신을 포함하는 대중들의 인생의 고를 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참다운 불도라고 믿고, 이것의 실천을 최상의 낙으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만인에게 진실(法)을 주는 즐거움, 자신도 남도 참다운 불도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낙'이다. 따라서 '낙'의 의미는 쾌락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법락(法樂)을 뜻한다.
    인문/어학| 2000.12.22| 4페이지| 2,000원| 조회(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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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관리] 경영학 - 한국 기업의 인력관리 특성분석 평가A좋아요
    서론21세기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는 결코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는 단절적 변화의 시대이다. 기존의 강점이 미래의 약점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역전의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성공요인에 타성적으로 매달리는 기업은 지속적인 자기부정과 변신을 통하여 독창적인 내부의 핵심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기업에게 패하게 될 것이다. 국외의 무수한 초우량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겨루어야만 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제약요인들을 극복하고 21세기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선진기업으로 성공적인 진입을 하기 위해 기업은 내부 핵심역량의 근간을 이루는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인력관리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사관리, 노무관리 및 노사관계관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핵심 역량의 근간을 이루는 인적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며 육성해야 할 것인가?현재의 한국 기업의 인력관리 상황은 고용의 형태와 구조가 다양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현행 대응 정책이 미흡한 실정으로 기업의 대응은 단기적 임기응변적 대응에 불과하며 체계적인 인력 효율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과거와는 다른 인력관리에 대한 개념의 정립을 통하여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인력 관리를 실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에 의해서도 이러한 변화가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변화에 대한 도전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 수준 또한 아직 걸음마 단계로 매우 허술한 실정이다. 또한 IMF 이후 기업의 구조 조정에 따라 인력관리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며 고용의 다양화가 추진되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의 구미에 맞는 인력관리의 모델이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한 실정에서 우리기업의 인력관리의 특성 분석 및 문제점과 그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경영방식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며 더욱 탄탄한 조직체제를 마련함중임.○ 임금교섭은 단순히 분배 몫을 나누는 제로섬게임으로만 볼 수는 없으며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을 함께 높여 가는 포지티브섬게임이 될 수도 있다. 즉 국민경제적으로 적정한 임금상승과 근로자간에 공정한 임금조정을 가져올 수 있는 임금교섭은 포지티브섬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임금교섭은 국민경제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하는 높은 임금상승과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의 지속적인 확대 등을 고려할 때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단기계약과 용역, 파견근로 등 비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기인한 것이지만 취약한 노사관계의 메카니즘에 기인한 바도 크다○ 우리 나라의 기업별 노조조직체계, 교섭구조는 생산적 노사관계를 어렵게 하는 많은 구조적인 취약성을 노정하여 왔다.- 우리 나라의 기업별 노조는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여 어용시비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근로자의 분배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에서 정통성을 찾아 왔으므로 노사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업단위 교섭구조는 노조의 세력이 강하고 지불능력이 있는 독과점대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인상을 이끌어온 구조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또는 기업단위의 단체교섭이 근로자 참여의 주된 채널이 됨으로써 인사경영사항 등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심화시키고 빈번한 교섭에 따른 물적·시간적인 낭비를 초래하였다.- 노동운동의 세력이 기업단위에 집중되어 있어 상급노조의 역할이 미흡하다. 상급노조의 상대방인 경영단체도 단위기업이 노사관계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으므로 경영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을 구축하여 오지 못하였다. 상급노사단체는 거시적인 정합성을 지향하여 합리적으로 노사관계를 이끌어가기 보다는 일선 노사의 분배적 욕구를 대변하거나 때에 따라 고양시키기도 한다.3. 우리나라 기업의 인사관리97년에 닥쳐온 IMF외환위기 이전에도 우리 기업들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있었다. 우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종업원들의 임금인상률은 매년 상승되었으나 기업의 성장률은 7, 80년대와 달리 뒤처지는 사람은 스스로 버틸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만들었다.제일기획은 지난 3월부터 차장급 이상들을 상대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직급보다 능력에 따라 보수를 차등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관은 팀장을 부장급이나 이사급으로 임명했던 관례를 깨고 과장급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팀장을 맡은 과장이 있는 반면 갓 들어온 신입사원과 함께 팀원 처지인 과장도 있다.“사람마다 관리능력과 업무능력이 다르므로 다품종 소량생산과 차별화 전문화시대에 맞는 관리자는 직무수행능력을 우선순위로 꼽아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3월부터 생산직과 사무직을 엄격히 구분해온 관행을 깨고 이들을 모두 단일직급, 호봉체계로 바꿔 직무를 뛰어넘는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현대그룹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연공서열제의 전통이 유난히 강했던 현대도 "세계의 현대"라는 새로운 경영방침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전자는 4월 중순께 '21세기형 신인사제도'를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연공서열을 탈피하고 능력개발을 최우선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위와 직책을 분리하고 승진개념과 이를 위한 심사기준도 변경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특히 직급의 경우 대리, 과장, 부장 등 현행 용어를 사용하나 직책은 실장, 팀장, 조장 등으로 분류해 이를 중심으로 업무의 책임을 맡기기로 했다. 이 경우 한개의 팀에 복수의 부장, 과장 등이 존재하게 되나 실질적인 책임자는 1명만 두게 된다. 종래의 직급개념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이다.현대정공도 업무중심을 부서 단위에서 부서+팀 단위로, 직급체계를 연공에서 능력위주로 바꾸고, 급여도 연공직급제에 차별상여급제를 추가하는 형태로 전환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도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신인사제도를 마련해 노조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대림그룹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한 대림그룹도 지난해‘성과없는 임원은 보너스도 없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들이 사업결과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급여성 보너스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제의 메리트 상실, 거품경제의 퇴조, 국제화에 대응한 인력관리, 인적자원 능력개발, 근로시간 단축, 전략적 인재의 확보, 화이트칼라의 효율화로 볼 수 있다. 연봉제의 적용범위를 보면 전사원을 대상으로 도입하기 보다는 일부 고액임금자를 대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에는 부장이상의 고위 관리직과 전문직이 속하며전체종업원의 1∼2%이다.급여는 정기승급개념이 없는 기본급과 직책에 의해 증감되는 직책급, 실적가산상여로 구성되는데, 문화적 전통을 고려하여 가족수당, 주택수당 등이 연봉제하에서도 지급되는 경우가 많고, 연봉액은 자기신고와 직속상사의 근무평정, 전년도 업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이 평가서를 바탕으로 연봉 대상자와 경영간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또 연금은 연봉액을 16등분 또는 18등분하여 매달 지급하고 나머지는 상여금 형태로 3개월 혹은 2개월 마다 지급한다.◎노동조합일본의 노동조합 환경은 유럽과는 매우 다르다. 일본은 약 33,750개의 노동조합이 있으며 대부분 기업수준의 노동조합으로 결성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경제 기적에 편승하여 그리고 매우 도전적인 노조활동의 영향으로 대부분 일본 기업의 노사관리는 평생직장이라는 장기고용, 연공서열식 승진체계, 회사 수익에 따른 보너스 시스템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에 일본이 경제 쇠퇴기에 들어선 후 일본의 노동조합은 고용주와의 합의 사항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노동분규와 파업도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이다.3. 독일독일기업에서 인사관리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몇가지 특징을 든다면 인사계획의 중시, 교육훈련 및 종업원 개발의 중시, 종업원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제도의 형성, 종업원의 성과참가, 자본참가, 종업원과 경영자의 공동의사결정, 종업원에 대한 공적 지원, 임금정책등을 들수 있다.◎ 임금과 운영독일기업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받고 있는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크게 다음의 두 집단으로 구분된다. 그 중 하나는 노사간의(보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의 산업별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사이의) 단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2) 기업문화와 노동문화 육성우리나라의 기업문화는 한국적 기업환경하에서 형성되어온 독자적인 것이지만, 불행히도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연고주의, 파벌주의, 형식주의, 보수주의, 무사안일주의, 적당주의, 불신풍조 등을 들수 있겠다. 이러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풍토에서 노동자는 결코 소외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창조적인 노동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 역시 불가능하다.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는 인간존중, 공동체 의식, 공존공영, 협조정신, 상회신뢰, 참여의식, 자율성, 고객지향, 혁신지향, 사회봉사등의 요소등의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가치이념의 정립을 통해 올바른 인간관, 노동관, 기업관이 확립되어야 한다.근로자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참여를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문화 운동 못지 않게 노동문화의 육성도 고려해야 한다. 경영참가의 기반이 확충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참여증대는 근로자의 노동생활의 질 향상이나 노동의 인간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 중심의 노동문화 창달은 많은 관심과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다만 일련의 노동문화 운동이 자칫 노사관계를 불안정하게 가져가서는 안되며, 오히려 기업문화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상호간의 공통영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노동문화 육성은 기업의 생산성 및 효과성 제고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3) 공정한 인사고과 제도의 실시인적자원관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된 결정요인의 하나가 객관적인 평가에 달려 있다고 볼 때, 공정한 인사고과제도의 개발과 운용은 기업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주된 당면과제라고 볼 수 있다. 고과결과를 공개하여 의혹이나 불신을 없애려는 노력이나 종합적인 판단을 위해 동료평가는 물론 하위자가 상위자까지 평가하게 되는 방향으로 고과를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지향적, 종합지향적, 다면적, 그리고 쌍방향적인 인사고과의 실시는 신뢰를 통해서 공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며, 근로자들의 일에 대한 동기유발에 큰이다.
    경영/경제| 2000.12.01| 15페이지| 2,000원| 조회(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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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외교] 마르크스 자본주의 사회관계 분석의 현재성 평가A좋아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관계분석의 현재성1.들어가며...한 때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란 이름은 공개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소수의 운동권 학생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님은 단지 마르크스와 이름이 같단 이유로 유학 길에 갔고 들어오던 베버의 책이 세관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압수 당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결코 웃어넘길 수 만 없는 슬픈 우리의 과거이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시절부터 노태우 시절까지 우리에게 마르크스는 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스탈린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간주되어 우리사회의 집단적 메카시즘의 희생양이 되어왔다.1980년대 후반의 동유럽의 혁명과 1990년대 초반의 모든 사회주의 국가의 종주국으로 군림해온 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며 "공산주의는 죽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들 체제의 소멸은 곧 공산주의 자체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에 따라 스탈린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되어온 마르크스주의 사상도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갖지 못하며 그 허구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실상 사회주의국가의 몰락이 갖는 의미는 그들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 및 동유럽 권의 사회주의 체제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충실하지 못한 즉 마르크스주의가 아니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체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의 사회주의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노동자 계급의 착취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왜곡되어온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재조명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살펴본다는 것은 큰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관계 분석에 대하여 알아보고 더불어 마르크스의 사회관계분석이 갖는 현재성에 관하여 긍정적으로 논하여 보고자 한다.2.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관계 분석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생산자라고 정의했다. 생산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연에 작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으며 또 다른 의미로 생산은 사람들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 협동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산이 갖는 두 가지 의미에 대해 마르크스는 전자 쪽의 생산의 물질적 측면을 생산력이라고 했고 후자 쪽의 사회적인 측면을 생산관계라고 정의했다.먼저 생산력에 관하여 살펴보자면 인간이 자기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행위를 노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노동과정은 생산력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은 우리 삶의 발전을 위해 필수 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생산력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생산관계이다. 생산력 향상을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과학적 지식과 실제적 기술, 그리고 그것을 조직하기 위한 조직 방식 등과 사회적 생산관계는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산관계는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결합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생산 관계는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몇 단계를 걸쳐 왔다고 마르크스는 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인류 발전의 초기 단계 원시 공동체 사회는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화로 공동의 노동력과 결합되었고 생산물은 공동으로 분배되었다. 이는 거의 모든 노동이 사회의 기본적이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요노동으로 수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점진적인 생산기술의 발달은 잉여 생산물을 창출해 냈고 , 그에 따라 평등한 사회를 가능케 했던 공동생산 , 공동분배의 원리는 깨지게 되었다. 즉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생산 수단을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를 발생시킴으로써 계급의 발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 실제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산수단에서 분리되어 소수의 독점 수단으로 이어질 때 계급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생산수단은 노동과정을 행하는데 있어 필수 요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생산수단을 꼭 직접 노동을 하는 생산자들이 소유해야만 한다는 내재적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사회가 계급적으로 분화 될 수 있다는 근거로 뒷받침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뒤이어 등장한 것은 노예제 사회였다. 노예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필요한 토지나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 또한 주인에 속한 하나의 생산수단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이나 노동에 대한 그 어떠한 권리도 인정받지 못했다. 단순히 생산 수단인 그들을 존속시키기 위해 주인들은 그들의 기본적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지급할 뿐이었다. 이 점은 비록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토지에서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었던 봉건 사회의 농민들과 구분되는 점이다. 봉건사회의 농민들은 자기의 노동 시간 중 일부를 영주를 위해 바치곤 했는데 이는 영주들이 갖고 있는 군사력의 위협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노예제와 봉건제 생산양식 아래에서의 착취는 매우 확연히 드러나게 되며 이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소수가 잉여노동을 수탈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잉여 노동의 수탈을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착취는 봉건제 사회에 이어 나타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전 사회와는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착취는 노예제 사회의 노예나 봉건제 사회의 농노처럼 재산 소유자에게 신체적 종속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착취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성립되는 어디까지나 재산 소유자의 경제력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마르크스는 "노동자는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롭다. 첫째로 주종관계, 예속, 노예 상태 등 과거의 관계들로부터, 둘째로 모든 소유물, 모든 객관적·물질적 존재, 즉 모든 재산으로부터 자유롭다."라고 말했다. 이는 15세기-18세기 영국의 임 노동자 발생 과정에 비춰 볼 때,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오직 자기노동력 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동계급이 발생함으로써만 가능했던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소수의 자본가 집단이 생산 수단을 통제함으로써 실제 노동자가 분리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생산을 위한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사용해 자신의 노동 값어치 이상의 생산을 해내고 생산된 잉여노동을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생산수단의 사용대가로 지불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간다. 즉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노동자들에게 필요노동이상의 노동을 시켜 잉여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착취는 폭력과 같은 어떠한 물리적 강제도 들어가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노동자가 스스로 자발적 의사에 의해 자본가를 위해 일하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착취는 은폐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전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자존가는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수탈한다는 점에서 이는 엄연히 현실적 의미의 착취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3.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사회관계 분석의 현재성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 계급은 존재한다. 물론 현대 노동자들의 처지와 환경은 물론 과거 마르크스 당시의 자본가에 의해 심한 착취를 받는 비참한 처지의 노동자에 비할바는 못 된다. 그러나 여전히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임금을 받고 자신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여전히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마르크스적 계급구분에 관하여 더 이상의 현재성을 갖기 어렵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에 관한 대표적 의견들의 허구성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엄연한 계급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노동자의 실질 소득이나 생활환경이 점차 나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나간다면 계급의 구분은 무의미 할 것이라는 주장들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들은 그 근거로 세금제도나 복지 제도 등과 노동자들의 고 임금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노동자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정도에 비해 실수입이나 생활환경은 턱없이 낮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착취율은 더욱 증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가 악화 될 경우에는 그나마 실수입조차 감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임금은 노동자의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으로 결정된다. 즉 이전보다 노동자의 생활환경이 나아진 것은 재생산에 필요한 요건들이 이전 보다 더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자본주의의 모순이 완화되거나 약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한 근거로는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말 의 대대적인 노동자들의 파업과 1994년 이어진 현대 중공업의 파업, 작년 지하철 파업,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파업 등을 살펴보면 한국 사회에서 계급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주장은 많은 착오가 있다고 볼 수 있다.또 다른 논의는 현대사회에서는 계급갈등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계층간의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리적 행사에 의한 것이 아닌 언론 등을 통해 시민 사회적 이상에 입각한 다원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언론이 대중의 참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비춰 볼 때 현실의 계급적대를 은폐하는 미봉책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회과학| 2000.12.01| 4페이지| 2,000원| 조회(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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