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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2학년 닮음조건 수업지도안 평가A+최고예요
    대 단 원Ⅷ. 도형의 닮음차 시중 단 원1. 도형의 닮음수업방식조별토의, 강의식단 원 명03 삼각형의 닮음조건학습자료탐구활동지학습 목표삼각형의 닮음조건을 이해한다.학습과정학습요소교수학습활동유의점 및학습 자료 제시수업시작출석확인?인사를 나눈다.?출석을 점검한다.?수업분위기를 조성한다.도입10분동기유발?주의를 집중시킨 후 모두에게 질문한다.?“우리는 닮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닮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닮음의 성질을 배웠지요. 그렇다면 두 도형이 주어졌을 때, 한 눈에 닮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여러분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집중해주세요.“우리는 닮음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닮음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닮음의 성질을 배웠지요. 그렇다면 두 도형이 주어졌을 때, 한 눈에 닮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전시학습상기?지난 시간에 배운 닮음의 위치에 있는 도형에 대한 기억을 상기 시킬 수 있도록 한다.?닮음의 위치에 대한 용어를 집고 넘어간다.?“지난 시간에는 닮음의 위치에 있는 도형, 즉 도형과 닮은 도형을 그려보았습니다. 닮음의 위치와 닮음의 중심이 뭐였죠? 닮음의 위치에 있는 도형이 갖는 성질을 말할 수 있나요? 오늘은 이것을 이용해서 삼각형의 닮음조건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학습목표?학생들이 소리내어 읽어보도록 한다.칠판에 써진 오늘의 학습목표를 함께 읽어볼까요??“삼각형의 닮음조건을 이해한다.”전개20분탐구활동조별토의이제 여러분은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 새로운 방법을 발명해볼 거예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겁이 난다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새로운 수학을 발명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여러분께 나누어 준 탐구학습지가 있지요? 탐구학습지에 나온 문제를 조별로 토의해 볼텐데요. 조별로 토의해 보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지금부터 5분동안 토의를 시작해보죠.? 탐구활동을 안내하고, 조별로 활동을 하도록 한다.? 탐구활동지(1) 삼각형를 2배 확대하여 그려보고, 삼각형와 비교해보자.(2) 비교해서 얻은 결론의 근거를 말해보자.(3) 어떤 조건이 있을 때, 두 개의 삼각형이 닮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4) 삼각형의 합동조건과 비교해보고, 그에 따른 이름을 붙혀보자.?순회지도를 하며 조원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조별발표이제 마무리 해 주세요. 마무리가 되면 각 조의 2번이 일어서서 모두에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각 조의 2번이 토의내용을 발표하게 한다.탐구활동풀이여러분이 토의한 문제가 옛날 수학자들이 고민한 문제들이예요. 그럼 여러 날에 거쳐 정립된 수학내용을 공부해보죠.? △ABC를배로 확대한 도형을 △A′B′C′이라고 하자. △ABC∽△A′B′C′이고, 닮음비가:이므로cm,cm,△A′B′C′과 △DEF는 두 변의 길이가 각각 서로 같고, 그 끼인각의 크기가 서로 같으므로이다.∴ △ABC∽△DEF학습내용제시1. 삼각형의 합동조건2. 삼각형의 닮음조건두 삼각형은 다음의 각 경우에 서로 닮은 도형이다.① 세 쌍의 변의 길이의 비가 같을 때(SSS닮음)② 두 쌍의 변의 길이의 비가 같고, 그 끼인각의 크기가 서로 같을 때(SAS닮음)③ 두 쌍의 각의 크기가 각각 서로 같을 때(AA닮음)? 프리젠테이션자료활용?표를 이용하여 삼각형의 합동조건과 닮음조건을 비교한다.자 깍지 껴서 머리위로 쭉 올려봅니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시 모아서 좀더 힘을 내어 볼까요?문제풀이학습자 이제 여러분의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할 수 있는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이 돌아왔어요. 교과서에 있는 예제 1, 2번을 각자 스스로 풀어볼까요?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도움을 줄께요~?교과서에 있는 예제를 스스로 풀어보게 한다.[예제1] 다음에서 서로 닮은 삼각형을 찾고, 사용한 삼각형의 닮음조건을 말하여라.[예제2] 다음에서 서로 닮은 삼각형을 찾아 기호를 사용하여 나타내고, 이때 사용한 삼각형의 닮음조건을 말하여라.학습내용 정리
    교육학| 2012.01.20| 3페이지| 1,000원| 조회(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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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분적분학의 역사와 미적분학의 기본정리
    해석학 주제 연구주제 : 미적분학의 발생과정과미적분학의 기본정리Ⅰ. 서 론요즘 고등학생들은 미적분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저 대학을 가는 수단으로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사실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리서치를 보다 보면 미적분학뿐만 아니라 수학 자체를 왜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는 실태이다. 그렇다면 수학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실생활에도 널리 쓰이는 미적분학에 대해서 공부할 때, 부정적분과 정적분, 그리고 미적분학 기본정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를 풀고 있을까? 단지 공식처럼 외워서, 아니면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저 문제풀이 유형에 따라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교육인적자원부가 내놓은 교과과정을 보면 분수방정식등의 대수부분과 미적분학의 해석학부분, 이차곡선등의 기하학의 내용을 실은 수Ⅱ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수학Ⅱ’는 ‘수학Ⅰ’을 이수한 다음에 더욱 높은 수준의 수학을 학습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과목으로서, 보다 심화된 수학적 지식의 습득과 수학적 사고 방법, 논리적 추론 능력을 키워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과 태도를 기르게 하며, 자연 과학 및 공학 분양의 학습에 기초가 된다. 이 과목은 대학의 자연 계열 또는 공학 계열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이수하기에 알맞은 과목이다.물론 심화된 수학적 지식의 습득과 수학적 사고 방법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렵고 난해한 과정의 수학을 단지 문제풀이에 이어 대학의 수단으로 목적을 잡고 있는 것은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우리는 이번 조별 연구를 통해 학생들에게 수학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어필하고자 미적분학의 역사와 발생과정을 조사하였고, 그에 따른 미적분학의 기본정리와 그 속에서 발생된 부정적분과 정적분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하였다.Ⅱ. 본 론우리가 학생때의 기억으로 책이나 문제집을 훑어볼 때 항상 주의깊게 읽어보는 페이지가 있다. 바로 쉬어가기, 또는 다른 이름으로 되어있는 교과 과정과 좀 떨어진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었다로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바로 적분법의 첫 시간을 미적분학의 역사와 발생과정, 또한 그 응용에 대한 부분을 수업하자는 것이다. 물론 수Ⅱ의 교과과정을 미루어 봤을 때, 한 시간도 아깝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채로 적분법을 공부한다면 과연 암기가 되어버린 수학을 전환 시킬수 있을까?1. 수업지도안▩ 준비하는 교수 ? 재미있는 학습 ▩( 수학 )과 좋은 수업 교수-학습 과정안일 시○○년 ○월 ○일 ○요일장 소2-○ 반 교실대 상○○고등학교 2 학년 ○반 ○○ 명수 업 자교사 ○○○공동수업연구자1. 단 원: 4. 적분법2. 본시학습주제: 미적분학의 발생과정을 알고 그 응용분야에 대해 안다.3. 교수학습목표: 미적분학의 발생이야기를 통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4. 본시 교수-학습의 실제일시대상지도교사단원4. 적분법차시1/8학습주제미적분학의 발생과정과 그 응용분야에 대해 안다.학습목표미적분학의 발생이야기를 통해 수학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좋은수업전략학습내용조직단일교과 복수활동적용수업모형학습집단조직개별 및 소집단 탐구 활동기능 학습 수업 모형ICT활용계획필요자원H/W컴퓨터사전활동S/W파워포인트 자료GSP4웹사이트 및 네트워크 점검,단계학습흐름교수-학습활동시량자료(▶) 및 유의점(◈)도입문제 파악예상및검증적용및발전정리전시학습상기학습목표 확인학습순서안내학습 활동학습활동정리차시예고◎ 인사하기? 밝은 표정으로 인사한다.◎ 전시 학습 상기? 질문하기- 도함수의 개념을 묻고 그 활용부분에대해 대답을 요구한다.◎ 학습목표 확인? 적분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미적분학의 발생과정과 그 응용분야에 대해 안다.◎ 학습활동 안내? 미적분법의 발생과정을 안다.? 그 응용분야에 대해 토론한다.◎ 학습활동? GSP를 통한 구분구적법? 미적분학의 발생과정에 대해 설명한다.1. 아르키메데스의 적분법2. 케플러의 적분법3. 카발리에리의 불가불량의 원리4. 뉴턴과 라이프니츠? 미적분학의 응용분야에 대해 토론한다.- 토론 후 조별로 발표한다.- 교사가 보충. 이때 실무한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실무한의 대표적 예는 바로 순환소수이다. (이때 학교수학에서 지도할 때 무한대라는 개념은 항상 계속 커지는 것이다라는 직관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무한개를 더하면 1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수학교육론에서 나온다.)구를 무한번 써는 이유는 바로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두께는 0에 가깝지만 그것은 얇은 원기둥모양이 되는 것이다.구적법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는 16세기 이후에 나타나는데, 케플러(J. Kepler ; 1571~1630)는 1615년에 쓴 「포도주 통의 모양과 용적 측정」이라는 논문으로 93가지의 회전체의 부피를 구하는 것을 연구하였다. 케플러는 우리에게 천문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는 수학자이기도 하다. 수학사에서 그는 적분학을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다뉴브 강변에 있는 린츠 지방은 포도주 산지로 유명하였다. 1612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도 포도가 풍작이었는데,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던 케플러가 포도주 몇 항아리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당신에 포도주를 파는 상인들이 항아리에 든 포도주의 양을 재는 방법이 매우 어설펐다. 즉, 눈금이 그어진 막대기를 술통 속에 세운 다음 그 막대기를 꺼내어 눈금이 표시된 자국으로 술의 양을 측정하여 그 값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오크통은 원기둥 모양이 아니고, 요즘음의 술 항아리처럼 배가 볼록한 것이어서 상인들의 측정 방법이 매우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케플러는 술 항아리의 부피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하여 항아리를 잘고 가늘게 구분한 도형으로 바꾸어 그 조각의 부피를 합하여 술 항아리의 부피를 측정하였다. 케플러의 이 방법은 오늘날의 구분구적법과 같음을 알 수 있다.갈릴레이의 제자이며, 신부였던 카발리에리(F.B.Cavalieri ; 1598~1647)는 1635년에 쓴 저서 「불가분량의 기하학」에서 평면도형을 거기에 그어진 평행하는선분 전체로 보았고, 입체를 평행으로 자른 단면 전체로 보아 그 넓이와 부피를 구하법을 적용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불가분량을 사용한 Cavalieri의 힘겨운 기하학적 해법은 낡은 방법으로 버림받게 된 것이다.기하학적 구적법의 형태를 갖춘 정적분은 17세기 전반에 이미 그 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따라서, 적분을 정확히 정의할 것과 되도록 일반적인 결과에 도달하는 일이 새로운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카발리에리의 발상은 후에 윌리스(J. Wallis ; 1616~1703), 파스칼(B. Pascal ; 1623~1662)등을 통하여 라이프니츠(G. W. Leibniz ; 1646~1716)에게 영향을 주어 미적분을 발견하게 한 계기를 주었다.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영감이 떠올라 미적분학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떨어지는 사과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즉 속도뿐만 아니라 가속도를 갖는다. 뉴턴은 임의의 운동 단계에서는 사과가 증가한 시간 Δt동안 증가한 거리 Δs만큼 떨어진다고 가정하여 수학적으로 나타냈다. 따라서 속도는 거리 Δs를 시간 Δt로 나눈 것, 즉 Δs/Δt와 거의 같다. 정확한 속도 υ는 Δt가 0으로 가까워질 때, 수학적으로 말하면 0으로 수렴할 때 Δs/Δt의 극한이다. Δs/Δt는 t에 대한 s의 도함수 또는 t에 대한 s의 변화율이라 한다. ds와 dt는 비율 ds/dt가 υ로 되는 값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때 ds는 s의 미분, dt는 t의 미분이라 한다.속도가 시간에 대한 거리의 변화율(또는 도함수)인 것처럼 가속도는 시간에 대한 속도의 변화율(또는 도함수)이다. 이때 Δυ는 시간 Δt 동안 일어난 속도의 증가량이다. a는 υ의 도함수이고 υ는 s의 도함수이므로 a를 s의 2계도함수라 한다. 즉, t에 대한 s의 도함수를 구하려면 s가 t에 종속되어 있어야만 한다. 즉 s가 t의 함수로 표시되어야 한다. 대개 이런 함수의 종속성은 s와 t를 관계짓는 식으로 나타낸다. 미적분학에서 도함수를 다루는 분야를 미분학이라 한다. t의 함수인 s가 주어지면 s의 도함수(υ)를 구할 수 있다. 반대로 υ를 알면 거다.그러나 뉴턴의 미적분학의 발견은 라이프니츠보다 앞섰다.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다양한 형태로 이미 사람들 사이에 돌아 다녔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뉴턴은 라이프니츠의 이 발표를 보고 진작 자기의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낙담해 격노했다. 뉴턴의 친구들과 팬들이 이 싸움에 개입해 라이프니츠에게 뉴턴의 아이디어를 담은 문건을 보라고 주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이전에 미적분학에 관한 뉴턴의 어느 문건도 본적이 없었다. 뉴턴의 가까운 친구인 뒬리어는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연구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라이프니츠는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이런 적대감이 수년간 지속된 후에 라이프니츠는 1711년 영국 왕립협회에 이것이 누구의 업적인지 가려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조차도 그 판결이 라이프니츠가 바랐던 바와 같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라이프니츠에게는 자신을 위해 증언할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보다 더한 것은 수년간 뉴턴이 이 논쟁을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이다. 뉴턴이 왕립협회 원장이었으므로 그는 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위원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골라 임명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공정한 판결 보고서(?)'는 뉴턴에 유리하도록 쓰여졌고, 더욱 재미난 것은 이 보고서가 공개되는 것이 아니므로 대부분 뉴턴 자신에 의하여 쓰여 졌다는 것이다.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뉴턴은 이 판결 보고서의 요약문을 'Philosophical Transaction'이란 잡지에 익명으로 발표함과 동시에 유럽 대륙 사람들이 보도록 라틴어로 번역해 다른 잡지에도 실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들 두 사람의 연구가 통합되고, 세련되기는커녕 미적분학의 연구는 두 동강이 나기에 이른다.영국인들은 뉴턴 버전에 호의적이었고 대륙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것이 표현방식을 포함한 몇 가지 국면에서 유리하다고 하여 이에 호의를 가졌다. 이 같은 분열은 1세기 이상 계속되어 이 분야를 연구하는 영국 수학자들의 유럽대륙 진출을 막기다.
    자연과학| 2009.10.22| 14페이지| 1,500원| 조회(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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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그랑주
    제 33장라그랑주목 차가. 라그랑주의 생애나. 라그랑주의 몇가지 공적다. 네 개의 제곱수에 대한 정리5 -가. 라그랑주의 생애“라그랑주는 수학 세계에 우뚝 솟은 긍지 높은 피라미드이다.” 이 말은 바로 나폴레옹 바나파르트가 18세기의 위대하고 가장 겸손했던 수학자 죠지프 루이 라그랑주(Joseph Louis Lagrange, 1736∼1813)에게 경의를 표하며 부여한 비평이다.라그랑주는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인데 프랑스인의 피가 더 진하다. 아버지는 자기의 재산과 아내의 지참금으로 상당히 부유했다. 그러나 구제불능의 투기꾼이었기에 아들이 상속받을 때쯤에는 상속해 줄 재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라그랑주는 후일 이 불해을 되돌아보며 생애 중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재산을 상속받았더라면 나는 아마 수학에다 내 운명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처음부터 라그랑주는 해석학자였지 기하학자는 아니었다. 그에게서 우리는, 수학연구에서 거의 필연적이 된 전문화의 두드러진 예를 볼 수 있다. 라그랑주의 해석학적 경향은 그의 걸작 『해석역학』에 강하게 나타난다. 서문에 “이 작품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19세의 소년일 때 토리노에서 계획했던 것인데, 출판된 것은 1788년 그의 나이 52세일 때 파리에서였다.1764년에 라그랑주는 파리로 건너갔고, 거기서 프랑스의 수학자들을 만났다. 클레로는 다음과 같이 그를 기술하고 있다.“젊은이로서, 그의 재능은 겸손 못지 않게 뛰어났으며, 그는 기질은 온화했지만,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 그는 연구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즐거움도 알지 못했다.”1766년에 ‘유럽 최대의 국왕’이라 자칭하는 프리드리히로부터 베를린으로 초빙되었는데, 프리드리히는 그의 궁정에 ‘최대의 수학자’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1787년까지 라그랑주는 베를린에서 연구를 했고, 프리드리히 2세가 죽은 뒤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총애를 받았다.프랑스 혁명 후에도 라그랑주는 관대한 대우를 받았다. 당시 프랑스 국민은 명예를 그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일찍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총애했던 신하가 지금 그녀를 살해했던 민중의 우상이 된 것이다. 1796년 프랑스가 피에몽트를 병합했을 때, 탈레랑은 당시 아직 토리노에서 살고 있는 라그랑주의 아버지를 의례를 갖춰 접대하라는 명을 받고 그를 방문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피에몽트가 낳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는 아드님은 그 천재로써 전인류로부터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특별 법령으로 그에게 ‘연금’을 주었고, 인플에이션으로 그 연금이 거의 무가치하게 되었을 때는 그를 발명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해서 부족한 생활을 채워주었으며 조례위원으로도 임명했다. 1795년 고등사범학교(제 1회로 단명이었다)가 설립될 때 라그랑주는 수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고등사범학교가 폐교되고 파리 고등이공학교가 1797년에 설립되었을 때는 수학과의 교과과정 기획에 참가하는 최초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어떤 강의에서 학생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것이 갖추어지기 전까지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을 자신의 교재에 적응시켜 산술이나 대수로부터 해석으로 이끌어갔는데 교사라기 보다 오히려 한 사람의 학생으로 보였다. 당시 최대의 수학자는 또한 위대한 수학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어떤 면에서 라그랑주의 경력은 기묘하게도 뉴턴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라그랑주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오랜 기간 정력을 집중시킨 결과 중년에 들어서는 정열이 식어버렸으며, 정신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강하다고 하나 수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지고 말았다. 그는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달랑베르에게 부친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의 기력은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금후 10년 이상 수학을 할 계획이 없습니다. 갱도는 이미 너무도 깊어져 새로운 광맥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버려야겠지요.”흥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그랑주는 여전히 고독하고 기운이 없었다. 이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황혼으로부터 구원된 것은 56세일 때였는데, 그를 구원한 사람은 그의 친구였던 천문학자 르모니에의 딸이며 나이가 40살이나 아래인 소녀였다. 그 아가씨는 라그랑주의 불행에 마음 아파하며 결혼을 갈망했다. 처음엔 반대하던 라그랑주도 마침내 그 정열에 이끌려 승낙했다. 노델하던앳된 아가씨 사이에 어떤 남녀관계의 법칙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결혼은 이상적인 것이었다. 젊은 아내는 단순히 남편에게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아내임을 증명했다. 그녀는 남편을 바깥 세상에 이끌어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다시 일으키도록 하는 일을 자기 생의 목적으로 했다.그녀의 노력이랄까, 라그랑주의 마지막 과학적 노력은 『해석역학』제 2판을 위한 개정 중보 작업에서였다. 이미 70세를 넘어섰지만 이전의 정신이 부활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옛날의 습과능로 되돌아가 쉬지 않고 일했는데, 그 결과 육체가 이제는 정신에 복종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1813년 4월 10일 이른 아침, 76세로 그는 눈을 감았다.“나는 죽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나는 죽음안에서 쾌락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좀더 못한 아내, 좀더 내 힘을 부활시키기 위해 그토록 열심이지 않은 아내였더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안심하고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출세도 했고 수학으로 유명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나. 라그랑주의 몇가지 공적라그랑주의 연구는 후세 수학 연구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해석학의 기초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깨닫고 미적분학을 엄밀하게 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수학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기,, …는 라그랑주가 만든 것이다.토리노 과학학사원이 발표한 논문집 같은 책에서 라그랑주는 또 하나 장족의 진보를 했다. 확률론에 미분학을 적용한 것이다.베를린에 가기 전에 라그랑주가 연구해서 푼 중요한 문제 중에는 달의 칭동 문제가 있다. 설명 가능한 약간의 불규칙성이 있지만 왜 달은 항상 같은 면을 지구에 보이고 있는가? 이 사실을 뉴턴의 인력법칙으로부터 유도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 문제는 중심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역비례하는 인력으로 서로 끌어당긴다고 하는 유명한 ‘삼체문제’의 한 예이다.그는 페르마의 정리와 존 윌슨의 정리를 최초로 증명한 사람이었다. 윌슨의 정리라고 하는 것은가 소수라 할 때,에서까지의 모든 수를 곱하고 1을 합하면 그 합은로 나눠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가 소수가 어진다면 이러한 사실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다면, 실제가 되어 5로 나눠 떨어진다. 이것들은 초등적인 추론에 의해 증명할 수가 있어서 수론에서의 초지능 테스트 중 하나이다.혁명기에 라그랑주가 했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도량형에 있어 미터법을 완성하는데에 지도적 역할을 다한 것이라 하겠다. 10대신에 12라는 수가 수의 구성에서 밑수로 선택되지 않은 것은 그의 야유와 상식에 따른 것이다. 12의 ‘혜택’은 명백한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광신자의 무리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열심인 주창자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논문을 대서특필해서 선전한다. 10진 기수법 위에다가 또 12진법을 포개놓은 것은 5각형의 구멍에다 6각형의 못을 박아넣은 것과 다를 바 없다. 12진법의 불합리를 어떤 변덕스런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라그랑주는 그것보다 좋은 11진법을 장려했다. 이것은 어떤 소수를 밑수로 하더라도 모든 분수를 분모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에 반해 12진법은 단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은 간단한 나눗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명백하다. 그래서 위원회는 10진법의 채용을 가결했다.
    자연과학| 2009.10.22| 6페이지| 1,000원| 조회(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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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소포타미아의 수학
    7 -제 2장 최초의 수론사회의 형태가 점차 발전되어감에 따라 초기의 수학도 실용적인 토대 위에서 발전해 갔다. 신석기 시대의 농경문화의 사회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큰 강의 유역에서 발생하였는데, 이를 살펴보면 아프리카의 나일 강변, 서아시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메소포타미아), 남 중앙아시아의 인더스 강 유역 동아시아의 황하 유역이었다. 강은 편리한 수송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배수, 치수, 관개 등으로 강 유역의 땅을 비옥한 농토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광대한 사업은 전에는 서로 떨어져 있던 지역을 결합시켰고 또 그러한 사업에 따르는 공사, 재정, 관리경영 등과 더불어 그들 사회가 창조된 목적이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지식과 그에 수반되는 수학의 발전을 요구했다. 따라서 초기의 수학은 주로 고대 오리엔트의 지역에서 농업이나 토목, 건축과 같은 일에 필요한 실용적인 과학으로서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측량법을 개발해야 했고 또 거래의 목적이나 세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데 필요한 회계 업무의 발전을 필요했다.방금 살펴보았듯이 초기 수학의 특징은 실용적인 산술과 측량에 있었다. 특별한 기교는 이러한 실용과학의 촉진과 응용 또는 교육을 통하여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추상화 경향이 발전하게 되었고, 또 어느 정도로는 과학 그 자체를 위하여 연구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대수가 산술로부터 발전하였으며 이론 기하학의 시초가 측량으로부터 발전하였다.그러나 고대 오리엔트의 수학에서는 오늘날 논증이라고 부르는 어떤 단순한 형태도 찾아볼 수 없음을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는 논의 대신에 단순히 과정만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그런 식으로 해서’의 표현을 쓰고 있다. 특히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지시가 일반적인 규칙의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특별한 경우의 결과에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2차 방정식의 해가 설명될 때 일반적인 형태로 설명된 과정을 볼 수 있는 으나 이런 이름은 엄격히 따져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바빌로니아의 도시는 처음부터, 또 후세에도 줄곧, 두 강과 관련된 문화의 중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기원전 600년 사이에 이 지역에 대하여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이 비공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습관상 그렇게 부르고 있다. 기원전 538년에 바빌론이 페르시아 왕 사이러스에 함락되었을 때, 바빌로니아 제국은 끝을 고했지만 그 도시는 남았다.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 기수법에서는 이집트의 신성문자와 마찬가지로 작은 정수는 1과 10의 기호를 되풀이하여 나타냈다. 그러나 59를 넘으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기수법은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의 글씨를 쓰는 소재의 유연성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풍부한 상상력과 번득이는 직감 때문이었을까? 바빌로니아인은 어떠한 큰 정수라도 1과 10을 나타내는 두 기호를 지나치게 되풀이하지 않고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금부터 4000년 전 그들이 위치 기수법-우리가 수 체계를 표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을 발명했기 때문이다.바빌로니아의 영 기호로 모든 모호함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 기호는 수 가운데의 빈 자리에만 쓰였던 것 같고, 영 기호가 수의 맨 끝자리에 쓰인 예가 현존하는 서판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인이 절대적인 자리매김법을 완성시켰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음을 뜻한다. 자리는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기호〃〃는또는과또는 이와 같이 연속된 두 자릿수가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수 가운데 하나를 나타낸다.바빌로니아인들이 사용한 달력은 아주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일 년이 춘분에서 시작했다는 점이고 또 첫달이 황소자리별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700년경의 춘분에 태양이 황소자리별에 있었으므로 바빌로니아인들이 이미 기원전 4000∼5000년경 전부터 약간의 산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오늘날 원주를 3간의 단위(즉, 1바빌로니아 마일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나중에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천체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이 이루어지는 처음 기원전 1000년동안에 종종 바빌로니아 시간-마일이 시간의 간격을 측정하는 데 이용되었다. 하루는 12시간-마일과 같았고 또 완전한 하루가 하늘이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았으므로 완전한 1회전이 12등분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편의를 위하여 다시 바빌로니아 마일이 30등분으로 나누어졌고 1회전이 (12)(30)=360등분되었다.2. 피타고라스의 삼원수19세기의 처음 50년 이래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한 고고학자들은 약 50만 개의 점토판을 체계적으로 발굴해 냈는데 그 점토판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중 5만 개는 고대 니푸르(Nippur)의 유적지에서만 파낸 것이다. 50만 개의 점토판 중에서 약 300개가 수학에 관한 점토판으로 판명되었는데 수학에 관한 표와 문제가 적혀 있다. 오늘날의 고대 바빌로니아인의 수학에 대한 지식이 바로 이들 수학판을 학문적으로 판독하고 번역해서 얻은 것이다.가장 오래된 점토판조차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계산술을 보여 주고 있고 또 60진법 위치 수체계가 이미 오래 전에 만들어졌음을 분명하게 해 준다. 이 초기 기간 중의 많은 판을 보면 그 원문의 내용이 농지 매매를 다루고 있고, 또 이러한 거래에 기초한 산술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어떤 판은 고대 수메르인들이 여러 가지 종류의 계약, 화폐, 영수증, 약속어음, 회계, 이익, 저당, 판매, 보증등에 매우 익숙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 상업을 하는 회사가 있었다고 기록한 판도 있고 무게나 크기의 체계를 다룬 것도 있다.많은 산술과정이 여러 개의 판을 가지고 행해졌다. 300개의 수학판 중에 약 200개가 표가 있는 판이다. 이 표판은 곱셈표, 역수표, 제곱과 세제곱표, 지수표까지 보여 주고 있다. 지수표는 아마 복리에 관한 문제를 보간법으로 푸는 데 이용되었을 것이고 역수표는 나눗셈을 곱셈으로 바꾸는 데 이용되었 강조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바빌로니아 수학에서 목적과 실천이 직접 연결되는 것은 거의 없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컬럼비아 대학의 플림프턴(Plimpton) 소장품 서판(No. 322)을 보면 수학을 그 자체로 연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실용성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것을 연구하는 여유가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이 서판은 상거래 계산의 기록으로 쉽게 오인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분석 결과 그것은 수론에서 심오한 수학적 중요성이 있음과 아울러 일종의 원시 삼각법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플림프턴 322는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깨어진 것으로 보아 큰 서판의 일부인 것을 알 수 있는데, 남아 있는 부분에는 수가 세로로 네 줄, 가로로 열다섯 줄이 나열되어 있다.11*************(11521)*************09*************94*************9912498481(541)769**************************2161(25921)*************1456106(53)15인 양의 정수는 삼원수(triples)는일 때에만 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가 된다. 이런 삼원수를 ‘피타고라스의 삼원수’라고 부르지만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전에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서 연구되었다.길이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때 ‘바빌로니아 삼원수’라고 한다.여기서와는 2,3,5 이외의 다른 소인수를 가지지 않는 서로 소인 양의 정수이다. 이때와를 생성수라고 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알고 있었듯이이고 바빌로니안 삼원수의 원소는 ‘바빌로니아 삼각형’이라는 직각삼각형의 변의 길이다.맨 오른쪽 줄은 단순히 번호 순서를 매긴 것이 분명하다. 그 다음 두 줄은 얼핏보면 그저 수가 아무렇게나 적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연구를 해보면 이 두 줄에 있는 대응수가 정수 크기의 변을 갖는 직각삼각형의 빗변과 다른 한 변의 크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유감스럽게도 네 개의 예외줄에 있던 수는 정확한 값의 반이다.플림프톤 322에 대한 분석은 바빌로니아 수학판이 대단히 주의 깊게 관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전에는 그러한 판이 단순한 상업적 목록이나 기록으로 간단히 처리되어 왔다.3. 제곱근바빌로니아인의 계산에 대한 효율성은 그들의 기수법이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수학은 계산법의 개발에 뛰어났던 것이다.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자주 후세 사람의 공으로 보는데 실은 그들의 발명이다. 그것은 때로 그리스의 아르키타스(Archytas, 기원전 428∼365)와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 of Alexandria, 100년 무렵)의 공헌으로 보기도 하고, 이따금 뉴턴의 알고리즘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바빌로니아의 방법은 효율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간단하다.이보다 작은 최대 정수라고 하자.에 대해서을 계산한다. 그러면은의 근사값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예를 들면, 2의 제곱근을 찾기 위해서 바빌로니아인들은 다음과 같이 했다.등으로 계속하면 원하는 만큼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제곱근을 구하는 바빌로니아인의 계산법은 당시의 수학자들에게 무한의 과정에 손을 대게 할 수도 있을 일종의 반복법이지만 당시의 수학자들은 이와 같은 문제의 깊은 뜻을 그 이상 연구하지 않았다.그들이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은 효율적이었는데도 메소포타미아 서기는 언제, 어디서나 몇 번이고 손에 든 수표에 의존하였다. 그것은 마치 현대의 응용수학자의 모습과 같다. 사실 출토된 쐐기문자 서판의 상당 부분은 ‘수표’로 되어 있는데 곱셉 표, 역수 표, 제곱수와 세제곱수의 표, 제곱근과 세제곱근의 표 단위를 포함한다.표에는 7과 11의 역수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이 ‘불규칙’ 수의 역수가 끝이 없는 60진 소수로 되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것은 10진법에서 3, 6, 7과 9의 역수가 무한소수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다시 바빌로니아인은 무한의 문제에 직면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체계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어느 시점에다.
    자연과학| 2007.03.11| 7페이지| 1,000원| 조회(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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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그에 대해서
    11-?에 대하여...베트남 봉사활동을 다녀온 지 2달이 다 되어간다. 거의 마지막 날 학생처장님과 가진 술자리에서 처장님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바로 로그의 정의를 물어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공부를 어떻게 하였는가 알 수 있는 자리였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솟아오르는 계기였다.이 글에서 솔직히 말하지만 나에게 어떤 교수님은 로그에 대한 보고서가 학과에 있으니 그거라도 어서 제출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생처장님과의 약속이긴 하지만 부담 없이 하고 싶었고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그래서 이 로그에 대한 공부 결과는 누구에게 보여주기보다 내 자신에 제출하는 하나의 논문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다. 비록 초라하고 내용은 없지만 앞으로의 공부 방법을 새롭게 다니는 하나의 계기이고 미래 선생님이 돼서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언젠가 중학생 과외를 하는 도중에 깜짝 놀랐다. 바로 원의 방정식에 대한 것인데, 원의 방정식은에서 원의 중심은원점이고 반지름은이다. 즉, 한 고정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원이라 하고 그것을 방정식으로 표현 한 것이 원의 방정식이다. 그 일반적인 예로 평행이동을 해서 만들어진 식에서 원의 중심은이다. 앞의 식을 간단히 해서 만들어진 식에서 원의 중심은이고, 원의 반지름은가 된다. 이것은 식을 전개하고 이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식에 대한 풀이를 모른 체 원의 중심과 반지름을 외우고 있었다.수학이라는 학문은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수학에 대한 기호를 약속하고 개념에 대해 정의하고 그것으로부터 각종 정리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은 점, 선, 면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공리로부터 연역적 추론에 의해 정리를 확립하는 학문의 전형인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정리가 이해되는 것이다.그동안 수학을 공부하면서 이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의를 64096÷256=16따라서, 등비수열의 두 항을 곱하거나 나누려면 등차수열의 대응되는 항의 합이나 차를 구하여 그와 대응되는 등비수열의 항을 찾으면 된다.따라서 위와 같은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의 관계는 큰 수의 계산을 단순화 할 수 있다. 여기서 등차수열의 각 항은 등비수열의 대응되는 항의 ‘로가리즘’이다. 이를테면 256의 로가리즘은 8인데, 이는 등비수열에서 256을 찾으려면 잇단 비례식에서 8개의 비를 셀 필요가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호로과 같이 나타낸다. 그리고 이것을 일반적으로는와 같이 나타낸다.로가리즘이 큰 수의 계산을 간단히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등비수열의 각 항이 계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큰 수를 끼어 넣을 수 있을 만큼 조밀해야 하며 등차수열(로가리즘)의 항과 일대일로 대응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등비수열의 초항이 큰 수이어야 하고 공비가 1보다 약간 크거나 작은 수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초항이이고 공비가인 다음과 같은 등비수열과 그에 대응하는 등차수열으로 이루어지 수표를 구성해 보자.0100200300400…10,000,000,00010,000,001,00010,000,002,00010,000,003,00010,000,004,000…등비수열의 일반항을 지수를 사용하여 나타내면,와 같이 되고, 등차수열의 일반항은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여기서 대응되는 항,사이의 관계식을 구하여 보자.이므로,따라서여기서을 계산하여 보면 2.718281692…이며 이는의 값과 소수점 아래 4자리까지 일치한다. 따라서여기서라고 놓으면,이 되므로곧,는를 밑으로 한의 로가리즘이다. 다시 말하면 등비수열의 각항을으로 나누고 등차수열의 각 항을으로 나누면, 등차수열의 각 항은 대응되는 등비수열의 각 항의를 밑으로 한 로가리즘이다.위에서 등비수열의 공비가이면라고 놓으면이 되며이다. 곧, 두 수열의 각 항을으로 나누면 등차수열의 각 항은 등비수열의 대응되는 항의을 밑으로 한 로가리즘이다. 17세기 초에 수학자 Burgi와 Napi처의 어딘가에 정착할 것인가? 이 흥미로운 가능성은 면밀한 수학적 분석을 통해 실제로 입증되었다.의 값이 무한대로 커질 때 식의 특이한 행동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나중에 기호로 나타낸 이 수의 정확한 탄생 일자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그러나의 기원은 17세기 초,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견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국제 무역이 엄청나게 증가한 시기였으며, 모든 종류의 금융 거래가 확산된 시기였다. 그 결과, 복리 계산법에 대단히 큰 관심이 기울여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수가 처음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결국은 극한으로서 수 2.71828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극한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극한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단순히 개별적인 값을 계산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만 한다.(게다가,의 큰 값에 대해 식의 값을 계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거듭제곱을 구하기 위해서는 로그를 사용해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이항 정리’를 이용한다.에 대해 식을 전개하는 방법이다. 이 식에서 각 항의 계수를 계산할 수 있는 공식이 있다. 항의 계수를로 나타내면, 다음이 성립한다.이 때에 이항정리를 적용하면 다음을 얻는다.약간 정리하면, 위의 식은 다음과 같이 된다.일 때의 극한을 찾고 있으므로,의 값을 한없이 증가시켜야 한다. 그러면 전개식에는 항이 더욱 더 많아진다. 이와 동시에,일 때의 극한은 모두 0이므로, 괄호안의 각 식은 1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다음을 얻는다.이 극한을로 나타낸다.식을 직접 계산할 때보다 이 무한 급수의 각 항을 계산하고 원하는 만큼 많은 항을 더하기가 훨씬 더 쉬울 뿐만 아니라, 부분 합이 극한에 훨씬 더 빠르게 가까워진다. 게다가, 모든 항이 양수이기 때문에, 이 급수는 단조 수렴한다. 즉, 항을 더할수록 극한에 더 가까워진다. 결국 원하는 만큼 정확한 근사값은 이 급수의 항을 더 많이 더해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배했던 주목할 만한 문제 중에는 ‘현수선’(catenary), 즉 매달린 사슬 문제가 있었다. 최속 강하선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베르누이 형제가 처음으로 제시했는데, 야곱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시하겠다. 양 끝이 고정된 두 점에 매달리고 자유롭게 늘어진 줄이 형성하는 곡선을 찾아라.” 야곱은 줄이 모든 부분에서 유연하고 굵기도 일정하다고 가정했다.현대적인 기호로 나타내면, 현수선은 방정식이인 곡선으로 밝혀졌다. 여기서는 상수로, 사슬의 물리적인 요소, 즉 밀도와 장력에 따라 결정되는 값이다.일 때 현수선의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이것의 그래프는 똑같은 좌표 평면 위에과의 그래프를 그리고 각각의에 대한좌표들의 합의 반을 구해서 완성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방법으로 그린 그래프는축에 관해 대칭인데, 이 식과 함께 다음 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이 두 식을에 관한 함수로 생각했을 때, 이것들은 삼각법에서 배우는 원 함수및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는 이 함수들을와로 나타내고 ‘쌍곡 코사인’와 ‘쌍곡 사인’로 읽는다. 이것은을 만곡 시킨다는 사실이과 유사하다. 이것은와가 단위 원과 관계가 있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와가 쌍곡선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삼각 함수에 관한 통상적인 공식들과 유사한 공식들이 쌍곡선 함수에 대해서도 성립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전형적인 삼각등식에서와를와로 바꾸어도, 몇 개의 항에서 기호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전히 성립한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쌍곡선 함수는 특정한 부정적분, 이를테면꼴의 적분을 구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된다.원함수 사이에서 성립하는 모든 관계에 대응하는 쌍곡선 함수 사이의 관계가 존재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면 원 함수와 쌍곡선 함수를 완전히 똑같은 기초 위에 세울 수 있고, 이에 따라 쌍곡선에 원과 똑같은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할 수 없다. 쌍곡선과 달리, 원은 폐곡선으로, 이를 따라 돌아가면 모든 것은 원래의 머지 알파벳 중에서 ‘사용되지 않은’ 첫째 글자인 이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가끔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오일러가 이 글자를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동료나 제자의 체면을 적당히 세워주기 위해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주 늦추어 발표하기도 했다. 여하튼, 그가 선택한 기호는 그가 사용한 다른 많은 기호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이것은에 대한 친숙한 거듭제곱 급수이다. 오일러는 과감하게 실변수를 허수 식로 대체했다. 여기서이다. 그런데 이것은 수학에서 극도로 뻔뻔스러운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함수에 대한 모든 정의에서 변수는 언제나 실수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변수를 허수로 바꾸는 것은 의미 없는 기호 조작이지만, 오일러는 자신의 공식이 의미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상황으로 바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를로 대체하면 다음을 얻는다.그런데 -1의 제곱근으로 정의된 기호를 거듭제곱하면,,,, …과 같이 네 단계마다 반복되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여기서 오일러는 두 번째 반칙을 범했다. 위의 식에서 항의 순서를 바꾸고, 모든 실수 항과 허수 항을 분리시켰다.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합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항의 순서를 언제나 바꿀 수 있는 유한 합과 달리, 무한급수에서 이렇게 하면 합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심지어 수렴하는 급수를 발산하는 급수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오일러의 시대에는 이런 모든 사항이 완전히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위의 식에서 항의 순서를 바꾸어 다음과 같은 급수에 도달했다.그런데 괄호에 나타난 두 급수가 각각 삼각함수와의 거듭제곱 급수라는 사실은 오일러의 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에 따라 오일러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공식에 도달했다.이것은 즉시 지수 함수와 통상적인 삼각함수들을 연결시킨다. 또한 짝을 이루는 다음공식을 얻었다.마지막으로, 그는 식들을 더하고 빼서,와를 다음과 같이 대체
    자연과학| 2006.09.24| 11페이지| 1,000원| 조회(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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