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뢰벨 ◈-------------------------------------------------------------------------------------Ⅰ. 약력Friedrich Wilhelm August Froebel은 1782년 4월 21일 독일의 튀링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가 있었으나 깊은 영향을 받지 않고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11세부터 15세까지 개신교의 지역 교회 관리인인 목사 아저씨 댁에서 지내, 이 시기에 부모보다 아저씨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프뢰벨은 1797년 학교를 졸업한 후 측량사가 되었다. 삼림 감독관에게서 조경과 식림 등을 배우던 2년간 프뢰벨은 자연과의 긴밀한 생활을 최대로 이용하여 자신의 사고 영역을 넓히는 자기 공부를 별도로 해왔다. 프뢰벨은 가능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했고 사물을 근본에서부터 관찰했으며 넓은 관점에서 자연의 종합성을 보려고 했다. 1799년 그의 배움의 갈증은 드디어 예나대학에 입학을 하게 하였으며, 자연과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여기에서 그는 방법론적인 문제에만 흥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의 독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간단한 기초에서부터 일어나는 현상의 내적인 관계성을 찾았고 알기를 원했으며 해명하려고 했다." 그는 이때에 '자연연구협회'의 회원이었다.1802년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프뢰벨은 삼림관리 보조, 측량 공무원 그리고 재산 관리 비서에 관한 실습생이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또한 자기 스스로 많은 다른 공부를 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하여 건축가가 되려는 결심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뢰벨은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페스탈로치의 제자이며 프랑크푸르트 시범학교의 교장인 Anton Gruner(1778~1844)를 알게 되었으며, 이 학교에 교사로 임용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프뢰벨은 진지하게 교육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열중하게 되었으며 교육 관계 서적을 읽게 되었다. 특히 페스탈로치의 업운동에 참여하여 자유롭고 자발적인 인간을 교육할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따라서 페스탈로치, 피히테, 훔볼트의 사상과도 일치되는 흐름으로써 교육적인 노력이 더욱 경주되었다. 프뢰벨의 학교 역시 이러한 조류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820년대에는 특히 민주주의적인 흐름이 국가에 해롭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새로운 교육적인 노력들이 혐의를 받게 되기도 했다. 프뢰벨의 카일하우의 학교도 이에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결국 프뢰벨은 친구에게 학교를 맡기고 스위스로 가서 박흐텐제, 빌리자우 그리고 브억도르프에 학교를 세웠고, 브억도르프 학교에서는 스위스 교사들의 현직 교육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프뢰벨은 모든 교육의 근본은 가정 안에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순수한 표현의 과정은 가정의 순수한 가치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가정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것 자체는 상대적인 동일성의 일체가 되는 변증법적 율법이 실현되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제3의 제도가 성립된다."프뢰벨은 어린이들은 어린이 자신의 자연적인 발달 단계를 살아간다는 점과 자신의 내면에 활동적으로 형성되어 간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는 어린이들의 창조적 힘을 생각하여 창조되어지고 표현되어지는 삶이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프뢰벨은 어린이들의 놀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프뢰벨에게는 어머니에게 어려운 교육의 임무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중요했다. 이 사상의 실현의 중요한 과제를 안고 프뢰벨은 고향인 튜링겐으로 돌아와 1837년 블랑켄브억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노작 욕구 보호학교'를 설립했다. 학교 설립과 교육에 필요한 자금은 '모금'으로 충당하였다. 이모금은 곧 유명해졌다. 사립학교 설립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 때에 은물을 창안하게 되었다.어린이 교육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1840년 '일반 독일 킨더가르텐'을 설립했다. 이 킨더가르텐은 1844년 받 디벤슈타인으로 이전했다. 1848년은 프뢰벨에게 노력의 결실을 수확하 많은 접촉을 가졌었다. 대학에서 그가 전공한 과목은 자연과학과 수학이었지만 계속 철학 강의를 수강했다. 특히 베를린대학에서는 고대철학사에 대해 비판적인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슈라이에르마허와 피히테의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프뢰벨이 자연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이렇게 철학 강의를 들었다는 것은 그가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한 것이었다. 이는 그 당시의 자연과학이 자연철학과 분리할 수 없는 직접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에 많은 연구자들이 자연을 체계화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에 강하게 풍미하고 있던 '단일성'사상이 자연과학에도 강하게 요구되고 있었다.2. 독일 낭만주의낭만주의는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에 걸쳐 유럽에 흘렀던 한 정신의 파동으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 문학, 철학, 교육, 정치 등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러한 동향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질풍노도'시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가 19세기 중엽의 비더마이어 시대에서 그 흐름이 멈추게 된다.독일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써 비합리주의적인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난 경우라 하겠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와 신과의 관계를 시계와 시계를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와 같이 모두 합리적·기계적으로 생각하는 계몽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무미건조한 이성의 지배에 대항하여 윤기있고 활기찬 삶을, 도덕화와 교화에 대항하여 야생과 자연 그대로를 내세웠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취지였다. 개성에 다시 눈을 돌렸다. 그들은 규범예술 대신에 특색있는 개성적인 예술을 하였다.낭만주의에서 만물의 궁극적인 척도는 고전주의에서처럼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신이었다. 낭만적 인간은 고전적 인간처럼 숭고한 속인으로 타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형이상학적인 지주를 구해야만 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구별하는 커다란 요소는 바로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지주에 있다. 이렇게 볼 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결코 상대인 그루너를 알게 되었고, 그가 프뢰벨의 운명을 변경시켰다. 모범학교 교장이었던 그루너는 교직이야말로 프뢰벨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모범학교 교사가 된 후에 프뢰벨은 페스탈로치를 만나게 되었다. 페스탈로치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정신적인 아버지와 같이 느꼈고, 그의 정신에 따라 교육자로서 사는 것에 생애를 거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교육자로서의 인격에 지극한 감명을 받아 열심히 배웠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 학도들의 교육에 거는 기대와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교육을 통해 국가사회 그리고 인류를 개혁하려는 이념이 그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하였다.그러나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에 대한 전면적인 심취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불만이나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프뢰벨은 1811년 6월에 괴팅겐대학에 입학하여 페스탈로치에 의해서는 해결의 길이 주어지지 않았던 교육의 근본적인 통일원리를 탐구하려 하였다. 체험과 사색을 통하여 그의 머리 속에 서서히 인식되어 오는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그는 괴팅겐대학에서 소위 '공의 법칙'으로 결정화시켰다.이와 같이 페스탈로치에 의하여 점화된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정열은 '공의 법칙'의 착상에 의하여 내적인 성숙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교육이념이나 방법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페스탈로치의 계몽주의적·현실주의적 경험과 프뢰벨의 낭만주의적·관념론적 사변과의 사이에서 생긴 기본적인 인식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프뢰벨의 교육사상은 그가 태어나 성장한 시대의 철학사조인 초기 낭만주의와 관념론이라는 토양 속에서 잉태되고 발전하였다. 특히 낭만주의 사상가인 아른트, 노발리스, 쉐링, 피히테, 크라우제, 슐라이에르마허 등의 영향으로 프뢰벨의 교육사상은 유기론적 세계상에 근거하고 있다. 즉 그는 인간 내부로부터의 조화로운 성장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어린이는 자신의 내부에 개별적인 성향을 지닌 해야 하는가.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는 일차적으로 내적인 것의 인식과 실현, 즉 신적인 것의 실현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타고난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방해되거나 간섭되어서는 안된다. 내적인 것, 즉 타고난 본질에 기초를 두고 그것이 잘 실현되도록 도와주고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된다. 그리하여 프뢰벨은 교육은 수동적이고 보호적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육이 내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외적으로 규정하는 모습일 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부정적이고 방해적, 파괴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두 번째로 프뢰벨의 교육에 대한 견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추종적인 교육에서 규정적 교육으로의 전환, 나아가 이들 양자의 결합이다. 이 전환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인간의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 순수하게 규정적, 요구적, 명령적인 인간에 대한 교육의 방법은 본래 명확한 자기 의식의 각성이 있고서 신과 인간이 합일적 생명의 개시와 더불어 아버지와 자식, 제자와 스승의 상호 이해와 공동의 생명이 개시된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진리가 전체의 본질과 개인의 본성에서 인도되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뢰벨이 명령적, 규정적 교육을 인정하고 있다고 해서 어린이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반하는, 이중적으로 부과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프뢰벨의 규정적 교육은 어떤 것을 그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를 밝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뢰벨은 추종적 교육과 규정적 교육만으로 인간의 교육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들 두 교육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 쪽의 것만 강조하게 될 때는 참된 교육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프뢰벨의 설명을 들어보자.착한 교육, 올바른 교육, 참된 교훈에 있어서는 필연성이 자유를, 법칙이 자기 결정을, 외적 강제가 내심의 자유의지를, 외적 증오가 내심의 사랑을 환기해야 하는 것이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형태인 '형제애', 최고의 사랑이라고 일컬어지며 모든 감정적 유대 중 가장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타적이고 비이기적인 성격의 '모성애', 흔히 사랑에 빠진다는 폭발적인 경험의 '성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인 '자기애' 등이 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랑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아마 남녀간의 사랑인 '성애'일 것이다. 나 또한 '성애'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멋진 '성애'를 꿈꾸고 있다.그러나 나는 아직 사랑다운,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내가 해 본 대부분의 사랑은 짝사랑, 그것도 그리 길지 않은 일시적인 관심 정도인 것들이었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만큼 그에 대한 환상과 기대도 매우 크다. 어쩌면 난 이런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두려워 사랑을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에릭 프롬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글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홀로, 그리고 아무 도움도 없이 가질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이다. 어떤 기술이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 일반적으로 몇 가지 요구 조항들이 있다. 우선 어떤 기술의 실천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훈련된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에도 능숙해지지 못할 것이다. 훈련이 없는 인생은 산만하고 혼돈스러우며 집중이 결여되는 것이다. 정신 통일이 기술의 정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란 것은 거의 증명하고자 할 필요도 없다. 또다른 요소는 인내심이다. 어떤 기술을 정복하고자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어떤 것을 달성하기 위해선 인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빨리 성과를 보려고 애쓰면 절대로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 끝으로 어떤 기술을 배우는 조건은 기술 습득에 관한 최고의 관심이다. 이런 조건은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기술에도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숙달하려면 생활 전체를 그 기술에 바치거나 적어도 그 기술과 관련시켜야 한다. 자신은 기술 훈련의 도구가 되고 그 기술이 수행해야 하는 특별한 기능에 알맞도록 되가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바랬고,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람 주위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했다.아리스토 텔레스의 '사랑은 주는 것'이란 글이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고 활동적이다. 사랑은 그것에 스스로 참가하는 것이지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자면, 사랑은 본시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주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 것으로 매우 복잡하다.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오해는 주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단념하는 것,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는 행위를 이런 방법으로 경험하는 것은 성격이 수용적, 착취적, 또는 저장적인 방향을 뒷받침하는 단계 이상으로 발달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시장형의 성격은 주려고 하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받는 것의 교환으로써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받는 것 없이 주는 것은 기만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격이 주로 비생산적인 경향의 사람은 주는 것을 가난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대부분의 사람은 주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어떤 자는 주는 것은 희생이라고 하여 그것을 미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는 것은 희생이라고 하여 그것을 미덕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는 것이 괴롭다는 바로 그 이유로 말미암아 사랑은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미덕은 희생을 감수하는 그 행위에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받는 것보다 주는 편이 보다 좋다는 규범은 기쁨을 경험하는 것보다도 손실을 받는 편이 보다 좋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주는 것은 잠재력의 최고의 표현인 것이다. 준다는 그 행위에 있어서야말로 나 자신은 나의 강함, 부,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고양된 생명력 및 잠재력의 경험은 기쁨으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의 생명을 주는 것으로 그 사람은 상대방을 풍족하게 만들 수가 있고, 그리하여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상대방의 삶의 감각을 강화시키고 있다.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일방적인 짝사랑은 정말 괴로운 것이다. 나도 지금 짝사랑을 하고 있다. 아직 용기를 내어 고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그 사람을 잊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그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한다.토인비의 '사랑과 이성'이라는 글이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사랑하고, 이성을 활용하며, 창조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 세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성취하기 위해서 타고난 능력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아무 희생도 치르지 않고 목적이 달성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일이지만 가치 있는 것은 때로 자기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며 또 가치 있는 것에 관한 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더욱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사랑, 이성, 창조 이 세 가지 중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내가 쓴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어에서 사랑이란 말은 뜻이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사랑한다.' 거나 '초콜릿을 사랑한다'에 까지 사용되는 사랑은 내가 말하려는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사랑한다', '자식을 사랑한다' 또는 '민족을 사랑한다', '신을 사랑한다' 든지 할 때의 사랑이 내가 쓴 사랑의 뜻과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어떤 언어에서는 실제로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사랑을 표현할 때 서로 다른 언어를 쓰기도 한다. 남방불교, 즉 실론불교의 경문에 쓰인 '파리어'에 '탄하'라는 말이 있다. '탄하'는 열망한다, 탐낸다, 욕심나는 것에 덤벼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랑은 모두 욕망인데 그 욕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를 내던져 다른 사람들이은 것은 앞에서 말한 이성과 창조이다.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인간은 사고력과 이성을 갖추고 따라서 생각한 후에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단연 다른 생물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이 인간만이 가진 특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은 사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사랑을 어떻게 구분하고 어느 것을 우선시키는가 결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이성에 바탕을 둔 사고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인간이 이성을 통해 생각하고 그 이성을 완성시키는 것에 특히 중요성을 두는 이유는 아무리 영장이라 한들 우리의 인간성이 완벽하게 합리적인 것은 못 되기 때문이다. 때로 인간도 역시 인간 이외의 생물처럼 감정과 무의식적인 동기에 지배를 받는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인간의 이성은 마음의 표면에서만 떠다닌다고 할 수 있다. 표면의 아래 깊숙히 깔려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잠재의식, 그 잠재의식에는 좋은 동기가 있는 만큼 나쁜 동기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인간의 행동이 이 잠재의식에 의해 휘말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무의식적인 동기의 선악 여부를 판단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한편, 나쁜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들 동기를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내어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이성이 필요하다. 이성과 사고력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책임지는 것이다. 인생이란 것은 인간의 합리적인 면, 즉 이성과 비합리적인 면, 즉 무의식과의 끊임없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성품을 될 수 있는 대로 무한정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분리시켜 이성쪽에 접근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이따금 비합리적인 면을 합리적인 것 위에 올라서게 해 놓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인간의 삶은 이성을 가장 높은 위치로 끌어 올리려는 투쟁이라 표현할 수 있다.이렇게 사람의 마음대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사랑의 해답은 없는 것인가.에릭 프롬의 글이다. 사랑은 기술인가? 만약 그렇다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단지 기회의 문제이어려울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현대 사회의 발전에 바탕을 둔 몇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결혼이란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하여 결정되고, 사랑은 일단 결혼이 성립된 다음 점차적으로 생겨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난 몇 세대 동안 서구 사회에 낭만적인 사랑의 개념이 거의 보편화되었다. 전통적인 사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현대 젊은이들은 결혼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랑의 개인적인 경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이 새로운 자유 개념은 능력의 중요성이 아니라 대상의 중요성을 굉장히 고양시켰음에 틀림없다. 현대 문화의 또 하나의 특색은 우리 문화 전체가 구매욕, 즉 상호간의 유리한 조건의 거래라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느낌은 보통 그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범주안에 있는 인간 상품들을 대상으로 전개되어 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교환 가치의 한계성을 참작해서 그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최상의 대상을 찾았다고 느낄 떠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장 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의 현저한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 관계가 상품 및 노동 시장을 지배하는 것과 동일한 교환 방식을 따른다고 해도 놀라운 것은 없다. 세 번쩌 오류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를 혼돈하는 것이다. 모르고 지내던 두 삶이 갑자기 그들의 벽을 무너뜨리고 밀접하다고 느끼는 합일의 순간은 생애에 있어서 가장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경험 중의 하나다. 특히 폐쇄적이고 차단된 생활을 해 왔거나 사랑을 모르고 지내온 사람에겐 더욱 놀랍고 기적적인 경험이다. 만약 성적 매력과 결합이 개입된다면 그 관계는 더욱 촉진된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사랑은 바로 그 자체의 성격 때문에 지속적인 것이 못 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친밀감은 점차 그 기적적인 특징을 상실하게 되어 드디어는 적대감, 실망, 상호강의 권태가 최초의 환희의 자취마저도 없애 버린다. 그러나 처음엔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