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스키의 발달사▶ B.C 3000년경 러시아의 북부 알다이와 바아칼호 지방이 발상지▶ 처음엔 상인들이 협상하는 것을 이동수단으로서 돕기 위해 고안 됨▶ 최초에 인류의 삶에 필요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Amold Lunn이 스키 사상 최초의 슬라륨 경기를 열고 국제 스키연맹(FIS)를 창립하면서 본 격적인 스포츠로서 스키가 발돋움하기 시작▶ 1924년 제1회 동계 올림픽 경기가 역사적인 막을 올리며 스키의 인기 과 인구는 급상승하며 스키라는 스포츠가 인기 있는 스포츠로써 자리 매김하게 됨2(1) 서양스키의 발달사① 기 원 : 생활 속에서의 스키의 발생! ⇒ 추운 지방 사람들의 교통과 수렵활동 시 생활의 도구로 사용 ⇒ 생활을 위해 각 지역의 특색에 맞도록 고안되고 개발극지형북방형남방형► 길이 : 1~150cm ► 폭 : 대단히 넓음(27cm) ► 활주면은 가죽모피로 되었 고, 뒤꿈치가 자유롭게 위로 들리게 되어있음► 양쪽 스키길이가 다름 ► 오른쪽이 20cm 짧음 ► 핀란드지방 및 스칸디나비 아 전지역에서 사용► 양쪽 스키의 길이가 같음 ► 활주면에 모피가 씌워지지 않는 것이 다른 지방의 스키와 다름 ► 한반도의 북쪽에서 주로 사용함보행전용보행과 활강전용활강전용3② 근대 스키의 시작 ※ 프르쵸프 난센 ► 스키는 모든 스포츠의 왕자다! ► 그린랜드를 스키로 횡단(1888~9년)⇒ 대중의 관심이 증가 ►“릴리엔펠트의 스키 활강술”공표하며 알파인 스키의 선구자 ⇓ ※ 1924년 제 1회 동계올림픽개최 (국제 스키연맹이 창설= 스키의 대중 레져 스포츠로 확고한 자리매김) ⇓ ※ 마샬 츠달스키(19세기 후반) ► 알프스 산악지대에 맞는 스키기술 연구 ► 용구를 개발과 동시 스키의 급격한 발달 ► 리리엔펠트식 체구를 고안한 짧은 스키와 리리엔펠트식 기술을 고안4※ 한네스 슈나이더 ► 츠달스키의 연구결과를 고속스키로 집대성 ► 알파인기술을 체계화 = 알파인 스키 기술의 아버지 ► 유럽 알프스지방에서 알파인 스키가 급격하게 발달 ⇓ ※ 2차세계대전이후 프랑스가 신진 알파인 세력으로 대두 ►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바인슈필 기술개발로 프랑스를 압도 ⇓ ※ 2차세계대전 이후에 스키에 세력은 분화되었다. ⇓ ※ 1985년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주법 : 다이애거널 주법 ⇒ 프리스타일 주법5(2) 한국스키의 발달사① 기 원 ⇒ 썰매라 하여 신발 또는 수렵용으로 많이 이용 ⇒ 강원도, 함경도 등지에서 설상 교통용 수렵용으로 사용 ② 기 록 ⇒ 속담 “깊고 험한 산의 호랑이도 썰매꾼들을 보면 운다.” ⇒ 조선조 숙종때 이익의 성호사설 = 썰매로 곰과 호랑이를 잡은 기록 이 있음 ③ 한국 스키의 탄생 ※ 근대의 스키가 도입된 것은 구한말 ► 선교사들이 겨울철 눈덮힌 산야에서 타기 시작 ⇓ ※ 1929년 일본인에 의해 원산 신풍리에 한국 최초의 스키장이 개설 ⇓ ※ 1930년 2월16일 부터 제 1회 전조선 스키 선수권 대회가 개최6※1946년 조선 스키 협회가 발족되면서 스키의 면모가 갖춰졌음 ⇓ ※1947년 제 1회 전국 스키 선수권대회 ⇓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 스키협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오늘에 이름 ⇓ ※1975년 부터 현대적 리프트 시설을 갖춘 용평 스키장 건설 ► 스키인구의 급속히 증가 ► 경기기술의 향상 ► 많은 스키장이 건설되고, 몇몇 스키장은 공인코스로 인정되어 국제대회 가 유치됨72.스키 장비①스키 플레이트(Ski Plate) ②스키 바인딩 (Ski Binding) ③스키 부츠(Ski Boots) ④스키 폴 (Ski Pole)8①스키 플레이트(Ski Plate)► 보통 스키라고 지칭하는 것이 플레이트 ► 센터(웨스트), 톱, 테일로 구성 ► 기 능 - 설면 변화와 턴에 맞추어 휘어짐 - 설면으로부터 충격을 완화하거나 흡수 ► 일반스키보다 15~20% 커진 스키 = 카빙스키스키 플레이트9②스키 바인딩 (Ski Binding)► 스키와 부츠를 조인트 ► 활주중의 스키부츠를 지지 ► 위급상황 시 스키와 분리가 부드러움 ► 충격완화시스템 - 활주성능의 향상 - 회전성능의 향상바 인 딩10③스키 부츠(Ski Boots)► 신체동작을 스키에 전달함 ► 방수성, 보온성, 내구성의 기능 ► 신체와 스키의 일체감을 줌 ► 신는 방식에 따라 - 프론트 버클 부츠 - 리어 엔트리 부츠스키 부츠11④스키 폴(Ski Pole)► 스키로 걷거나 오를때 몸을 지탱 ► 활강시 균형을 잡아주는 역활 ► 회전시나 급정지시 사용 ► 초보자는 기본동작을 폴에 의존 ► 상급자는 다양한 테크닉구사시 사용스키 폴122.스키 의 기본기술①직활강 ②푸르그 ③사활강 ④옆으로 타기 ⑤턴의 기술(푸르그, 슈템, 페러럴 턴)①직활강► 스키의 기본 자세로 방향전환 없이 똑바로 내려가는 방법 ► 스키는 평행하고 약간 떨어져 있으며 엣지를 주지 않은 플렛상태로 양 스키에 균등하게 가중하고, 팔은 벌리고 스톡은 뒤로 함 - 양 스키의 스텐스는 균형잡기 쉬운 스텐스로 함 - 양다리를 가볍게 구부린 편한 지세로 스키 위에 위치 - 체중을 양쪽 스키에 균등하게 싣고 발바닥 전체로 설면딛어 밸런스를 잠금 - 어깨의 힘을 빼고 스톡을 가볍게 쥠 - 스피드, 지형, 눈 상태 등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신체를 사용13②푸르그► 슬로프를 내려오면서 필요한 속도조절과 방향 전환에 사용되는 기술 ► 초보자가 슬로프를 내려오는 동안 넘어지지 않고 감속할 수 있는 기본기술이며, 턴 기술을 배우기 위한 전제조건이므로 충분한 반복 연습이 필요함 ► 스키를 八자 형으로 벌리고 경사면을 똑바로 아래를 향하여 미끄러지는 동작14③사활강► 스키를 평행하게 모으고 양 스키의 산 쪽 엣지로 경사면을 가로질러 타는 방법으로 산돌기와 옆으로 타기의 기본이 됨 ► 스피드나 미끄러지는 스키를 컨트롤 하고 폴라인에 대한 방향을 체크할 수 있음 ► 강하게 엣지를 주면 비스듬히 내려가는 동안 원하는 라인을 유지할 수 있고 넘어질 염려가 없음15④옆으로 타기► 턴에 있어 방향잡기와 스피드 조절에 연결되는 기술 ► 스키를 평행하게 모으고 양 스키에 탄 뒤 일정방향으로 미끄러져 스키를 타면서 하중을 조절함 ► 경사면을 내려가는 안전한 방법을 마스터하게 끔 만들어 주는 동작16⑤턴의 기술(푸르그 턴)► 방향전환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패러럴 포지션으로 양다리의 구부림 동작과 함께 바깥쪽 스키를 밀어 돌려 푸르그 포지션으로 바꿈(턴에 있어 방향잡기와 스피드 조절에 연결되는 기술) ► 방향잡기 후반은 양다리 구부림 동작을 동조시켜 푸르그 포지션에서 패러럴 포지션으로 바꾼후, 스키를 평행하게 모으고 양 스키에 탄 뒤 일정방향으로 미끄러져 스키를 타면서 하중을 조절함 ► 와이드 스탠스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턴하고, 방향전환에서는 오픈 스탠스에 가까워짐 ► 바깥쪽 다리의 굴신 동작에 맞춰 안쪽 다리의 굴신 동작이 이어지도록 함17⑤턴의 기술(슈템 턴)► 비스듬한 활강자세에서 산쪽스키와 계곡쪽 스키를 평행하게 놓음 ► 비스듬히 활강하다 산쪽스키를 벌려 푸르그보겐을 적용시켜 최대 경사선에 접근시킴 ► 상체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해 스노프르그 턴을 시작함 ► 푸르그 보겐으로 방향을 전환, 최대 경사선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 폴을 찍기 위해 구부렸다가 폴을 찍고 일어섬 ► 폴라인을 지나면서 바깥쪽 스키를 축으로 산쪽스키를 서서히 결합시킴 ► 다운동작으로 스키를 눌러 턴을 만들며 스키의 비틈을 계속시킴 ► 몸과 스키를 더 멀리하거나 가깝게 해 바깥쪽으로 누름을 증가시킴 ► 몸과 스키를 일치시키면서 다른 턴으로 연결하기 위해 움직임을 반복함 ► 준비 모양으로 다시 돌아감18⑤턴의 기술(페러럴 턴)► 두 스키가 일정한 스텐스를 유지하면서 나란히 큰 호흡을 그리는 회전기술 ► 회전을 시작할때 다운 상태에서 바깥쪽 스키로 천천히 체중을 옮기면서 안쪽 엣지를 눌러 밟으면서 시작 ► 자연스럽게 회전을 한 후, 업이 되면서 체중을 양발에 실어야 함 ► 스키에서 체중을 덜어주고 엣지를 풀어 스키가 자연스럽게 폴라인을 향할 때까지 기다림 ► 속력을 줄이면서 안전하게 패러럴턴을 하고 싶으면, 스키가 완전히 산쪽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속력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턴을 시도해야 함 ► 패러럴턴은 회전의 반경이 큰 롱턴부터 연습해야 하며, 충분한 반복연습으로 익숙해지면 숏턴으로 넘어감19{nameOfApplication=Show}
S now Board스노보드의 역사 ▶ 1929 년 최초의 스노 보드 미국에서 잭 버쳇 에 의해 고안됨 Tom Sims 가 학교에서 반 프로젝트로 Ski Board 라 이름을 붙여 제작 ▶ 1963 년 ▶ 1965 년 Sherman Poppen 이란 사람이 아주 넓은 스키의 스너퍼를 만들어 인기를 끔 ▶ 1970 년 디미트리에 밀로비치는 “ 스키의 이동원리 ” 에 의해 움직이는 지금의 스노보드 형태를 만듬 ▶ 1975 년 밀로비 치 는 본격적으로 스노보드 알림 ▶ 1980 년 Burton 과 Winterstick 에 의해 스키기술을 이용하여 스노보드를 운행하는 실제적인 기법이 축적되면서 더 발전함스노보드의 종류 다용도 보드 하프파이프 보드 ▶ 프리 스타일 보드 ▶ 알파인 스타일 보드 레이스 보드스노보드의 명칭과 용어스노보드의 명칭과 용어 스노우 보드 명칭 바인딩 명칭바인딩의 종류 소프트 바인딩 (Soft Binding) : 소프트 부츠용 바인딩을 말한다 . 대부분의 바 인딩은 신발을 감싸는 형태로 이를 특별히 쉘 바인딩 (Shell Binding) 이라고도 부른다 . 풀베이스바인딩 ( Fullbase Binding) : 바닥이 있는 바인딩으로서 재질에 따라 플라스틱 바인딩과 알루미늄 바인딩으로 나뉘고 다시 고정식과 회전식 (Rotational Disc Binding) 의 두가지로 나뉜다 . 스텝인 바인딩 (Step-in Binding) :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바인딩으로 기존의 쉘 바인딩과는 달리 신발 바닥에 별도의 장치를 하여 탈부착이 매우 간편하다 . 기존의 소프트 부츠에 비하여 신발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신을때 마다 신발 바닥에 붙어 있는 눈을 일일히 손으로 털어내야 하며 장기간 사용시 유격이 생기는 등 아직은 실용성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부츠의 종류 소프트 부츠 (Soft Boots) ; 프리라이드용 신발 ( Freeride Boots) : 초 , 중 , 상급자를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신발이다 . 특징은 적당한 방수기능에다가 적당한 무게를 갖고있는 것이다 . 하프파이프용 신발 ( Halfpipe Boots) : 프리라이드 부츠에 비하여 발목의 높이가 낮고 발목이 자유롭도록 신발 자체의 외피 두께도 얇다 . 초보자에게는 발목이 쉽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권해서는 않될 것이다 . 익스트림용 (Extreme Boots) : 자연그대로의 산에서 스노우보딩을 할때에 알맞는 신발로써 방수 기능이 아주 좋고 단단한 형태의 신발이다 . 다른 용도의 신발에 비하여 무겁다 . 하드 부츠 (Hard Boots) ; 경기용 하드 부츠 (Racing Hardboots ) : 슬라럼 또는 자이언트 슬라럼 경기용으로 개발된 신발로써 전방 고정 방식 (Front Buckle System) 의 버클이 3 내지 4 개 정도 붙어 있다 . 올라운드 부츠 ( Allround Hardboots ) : 선수용이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디자인으로서 1 개 내지 2 개의 버클만을 사용한다 . 가격도 따라서 저렴하다 .스노보드 기본자세 B B P 자세스노보드 기본자세 다운자세 업자세 허리 , 무릎 , 발목을 이용하여 중심을 아래로 낮춘다 허리 , 무릎 , 발목을 이용하여 중심을 위로 들어 올린다스노보드 기본자세 앞으로 일어서기 뒤로 일어서기스노보드 타기 TRAVERSING스노보드 타기 비기너 턴 1. BBP 자세를 취한다 2. 시선을 돌린다 3. 어깨를 돌린다 4. 허리를 돌린다스노보드 타기 비기너 턴 5. 골반을 돌린다 6. 보드를 돌린다스노보드 타기 사이드 슬리핑The End{nameOfApplication=Show}
소설 『 동의보감 』1. 저자 허준허준은 조선 중기의 의인(醫人)으로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이며 김포출신이다. 할아버지 곤(琨)은 무과출신으로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지냈고, 아버지 윤도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그런데 그는 무과에 지원하지 않고 29세인 1574년 의과에 급제하여 의관으로 내의원(內醫院)에 있으면서 내의, 태의, 어의로서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동의보감》을 편술하여 우리나라 의학실력을 청나라 및 일본에까지 과시하였다.1575년 2월에 어의로서 명나라의 안광익(安光翼)과 함께 임금의 병을 진찰하여 많은 효과를 보게 하였으며, 1578년 9월에는 내의원첨정으로 당시에 새로 출판된 《신간보주동인유혈침구도경》을 하사받았다.1581년에 고양생(高陽生)의 원저인 《찬도맥결》을 교정하여 《찬도방론맥결집성》 4권을 편성하여 맥법진단의 원리를 밝혔다. 1587년 10월에 어의로서 태의 양예수(楊禮壽), 남응명(南應命) 등과 함께 임금을 진찰하여 병이 나았으므로 호피(虎皮) 일영을 받았으며, 1590년 12월에 왕자의 두창(痘瘡)이 쾌차하였으므로 당상(堂上)의 가자(加資)를 받았다.이때에 정원(政院), 사헌부, 사간원에서 허준의 의료에 관한 공로는 인정하나 의관으로서 당상가자를 받는 것은 지나친 상사라 하여 여러 차례 그 가자를 거두기를 계청(啓請)하였으나, 그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그리고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허준은 선조의 피난지인 의주까지 함께하여 왕의 곁을 조금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셔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으며, 그뒤에도 어의로서 내의원에 계속 출사하여 의료의 모든 행정에 참여하면서 왕의 건강을 돌보았다.그러던 중 1596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유의(儒醫), 정작, 태의, 양예수, 김응탁(金應鐸), 이명원(李命源), 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다음해에 다시 정유재란을 만나 의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원과 사헌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할 것을 계청하였다.처음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고집하였으나 선조도 끈질기고 계속적인 계청에 할수없이 그 가자를 한때 보류하도록 하였다.1607년 11월에 선조의 환후가 점차로 위독하게 되어 그 다음해 2월에 죽을 때까지 허준은 입진의 수의(首醫)로서 다른 어의들을 독려하여 어약을 논하는 모든 일을 전담하였다.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어의로서 왕의 측근에서 총애를 받아왔다. 선조가 죽은 뒤 종래의 예에 따라 주치의 수의에게 책임을 물어 형식적으로 대죄(待罪)를 하게 되었으나 광해군의 만류로 사면되었다.1613년 11월에 70세를 일기로 죽게 되자, 호성(扈聖)공로의 어의로서 선조가 일찍이 보류하였던 부원군과 보국의 가자를 추증하였다. 허준은 의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당상의 부군과 보국의 지위를 가졌다.2. 허준의 저서허준, 그가 어떻게 의관이 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취재(取才:과거 이외에 인재를 뽑기 위해 실시한 특별 채용 시험으로 예조 에서 실시)에 합격하여 의관이 된 듯하다.선조 7년(1575년) 내의원(內醫院: 왕을 비롯한 궁중의 왕족과 대신 의 치료를 담당하던 국가 최고 의료 기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였으 며, 많은 공적을 세워 서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승진을 거듭하였다. 선조 39년에는 의관(醫官) 출신으로 가장 높은 숭록대부 (崇祿大夫:종1품)에 봉해졌으며, 죽은 후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정1품)에 추증(追贈)되어 우리 나라 의관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1592년부터 1595년까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토는 황폐해지고 백 성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였으며, 나라에서 많은 약초들이 생산되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약초를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분류하고 글로 써서 백성들로 하여금 알기 쉽게 하라는 왕 의 명령에 의해, 허준은 선조 29년(1596년) 양예수, 이명원, 정작, 김응택 등과 함께 의학 서적 편집에 착수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의서 편찬이 중단되자 , 1612년에는 《찬도방론맥결집성》을 편술하였고, 이듬해에는 《신찬 벽온방》과 《벽역신방》을 편찬하였는데, 이 두 책은 전염병 전문 의서로서, 매우 예리한 관찰을 토대로 편찬하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과학적 의서로 평가되고 있다.허준은 상급 기술관인 의관으로서 치료에 능함은 물론 선조와 광해 군의 두터운 신임과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동의보감》을 비롯한 여러 의서를 저술하고, 여러 의서를 한글로 번역,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우리나라 의학의 학문적·기술적 발전에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었다.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증적 자세와 뛰어난 관찰력,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임상 의학에 연결시킴으로써 체계적이고 실용적 인 의학 체계를 이룩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허준 이후의 의학자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의학이 민간으로 쉽게 파급되는 계기를 마 련하였으니, 우리 나라 의학 사상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였으며 아직 까지도 ‘동양(東洋)의 의성(醫聖)’으로 추앙받고 있다.3. 동의보감 줄거리上싸락눈과 함께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부는 한 겨울, 허준은 과거보러 가는 친구들을 배웅 나왔다. 사또 첩의 자식, 그것도 천첩(賤妾)의 자식이었던 허준은 과거를 보지 못하는 자신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한바탕 화를 내고 양태 놈을 만나러 봉수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허준은 용호사에서 내려가는 처녀를 우연히 보게 된다. 호기심에서 뒤따라 가던 허준은 그녀의 모습에 끌려 그녀의 집에까지 따라간다. 집에 돌아온 준이를 부른 사또는 신분의 그늘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편히 살라고 말한다. 신분을 벗어나지 않고 자기 슬하에서 편히 지낼 것인가, 고생하더라도 신분에서 벗어나 자립으로 살 것이냐는 아버지의 말에 준이는 후자 쪽을 선택한다. 양태 놈과 다시 처녀의 집을 찾은 허준은 몰래 집을 엿보다 지병을 앓던 처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광경을 목격한다. 허준은 당황하는 처녀를 도와 관을 구해 주고, 무덤을 만들어 주며 처녀의 난처한 상황의 이야기를 듣는다. 궁안에서 높은 신분을 가지고 부인이 삯바느질 해다 준 대감 집에서 도둑으로 몰려 그 억울함은 풀었지만 일감이 점차 줄게 되었다. 어느 날, 창녕 상대감댁에서 유 의원을 모시러 왔을 때 유 의원은 허준을 보낸다. 대감은 처음엔 풋내기 의사를 믿지 못했으나, 환자를 대하는 그 정성을 보고 마음을 열다가 반신 마비인 중풍이 풀어져 환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자 집을 지어 주마 했으나 허준은 모든 걸 거절한다. 너무 고마워하는 대감과 부인(환자)이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허준의 원을 듣다가 취재 시험을 보면 붙게 해줄 소개장을 써 준다. 너무 기쁜 허준은 집에 와서 부인과 어머니께 고생 다했노라 기뻐했으나 부인이 바른 방법이 아니라며 말리다 싸운다. 허준이 소개장을 받아 온 것을 알게 된 유의태는 허준을 내쫓는다. 식구 모두 허준에게 유 의원을 찾아가 빌라고 하지만 허준은 유 의원과 인연을 끊노라며 약초 캐러 산으로 간다. 이산 저 산을 옮겨가며 산삼을 발견했으나 도둑들에게 빼앗기고 쓰러 진다. 쓰러진 허준을 김민세와 안광익이 우연히 발견해 마을로 데려온다.中지난 한 해의 아쉬움을 묻어 버리고 새 소망을 읊조리게 마련인 새해, 허준의 집은 정초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채 깊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허준의 아내는 도둑 누명을 받은 후로 삯바느질 거리가 없어졌고, 허준은 산삼을 뺏길 때 당한 타박상과 동상을 삭이고 있었다. 혼자 '면천시켜 주랴?'는 김민세의 말을 떠올리던 허준은 자기 때문에 가난한 삶에 고생하는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김민세에게 면천의 길을 구하기를 결심하고 김민세가 거처하고 있는 유의태 의원의 집으로 간다. 허준이 유의태의 집에 갔을 때 김민세와 안광익은 이미 그 곳을 떠나고 없어, 유의태에게 그들이 "안점산 - 삼적사"란 곳에 있을 거란 소리를 듣게 된다. 면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소망으로 안점산의 삼적사를 어렵게 찾은 허준은 그 곳이 온통 대풍창(大風倉 : 문둥병)환자들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에 놀래게 된다. 유의태 집에서 얼핏 본 적이 있던 궁녀 정씨와 김민세하지 않고 고함만 질러대 허준의 의술에 의심을 띈 환자들이 하나둘씩 의원에 오질 않았다.그러던 사이 유의태는 자신이 치유할 수 없는 지병을 김민세에게 보여 주었고, 때마침 성화가 허준의 사정을 전하고 유의태와 김민세를 의원으로 데리고 온다. 이미 의원에서는 허준이 병자의 몸에서 약의 독성을 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의태는 허준에게 회복 방법을 알려 주며, 직접 시술할 것을 명하며 마지막 방법은 허준에게 숙제로 남긴다. 유의태의 정확한 처방과 허준의 정확한 시술로 환자는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 약방의 환자는 다시 늘어가고 허준은 유의태가 병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치유할 수 없는 지병을 가진 의태는 어느 날 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으로 가서 준이를 부른다. 김민세, 안광익과 동행한 그들은 유서를 쓰고 동맥을 자른 유의태의 모습을 발견한다.유의태는 유서에 정확한 의술의 지식을 위해 당시 아무도 하지 못했던 해부를 자신의 몸을 받쳐 허준이 해줄 것을 써 놓았다. 온 몸을 던져 가르쳐 주고자 했던 스승의 가르침에 허준과 두 동행인은 감격을 하고, 허준은 사흘이나 시체를 하나하나 해부해 보며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후, 허준은 김민세와 10달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람과 삶에 대해 눈을 뜨고 '내의원 취재'시험을 수석에 합격한다. 당시 궁중의 내의원은 양예수란 사람이었는데 그는 유의태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과거 기억에 허준이 그의 제자임을 알고 허준을 가장 힘들다던 혜민서로 보낸다.下처음에 한 두 사람씩 허준의 집을 찾다가 침 값을 흥정하지 않는다는 소문에 꽤나 많은 환자들이 허준의 집을 찾아 퇴정한 다음에도 눈코 뜰새 없이 바쁘던 허준의 이명원이 찾는다. 내의원의 직책 이외의 다른 의술 활동은 왕의 허락 없이 할 수 없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소문이 더 나기전에 손을 떼라는 충고를 전하러 온 것이다.돈이고 뭐고 받은 적도 없는 허준은 자신의 떳떳함을 내세워, 그 일을 허락 받으려 양예수를 찾아가려 하지만, 허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