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블과 골렘커다란 판 위에 가로, 세로 5-6cm 크기로 빽빽하게 나눠진 구획. 타이베이에서 서울까지 30여개의 도시로 꽉 찬 블루마블 판. 씨앗카드를 사고 건물을 짓는다 해도 1시간 후면 모두 허공으로 달아나는 것을 알면서 왜 그리 열을 내면서 주사위를 굴려 될까.“저 문을 막고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해.” 라는 마법사 핸드레이크의 골렘에게의 명령으로 마법사와 그의 제자 솔로처는 실험실에 갇힌다. 공주의 수수께끼 같은 말의 열쇠를 찾은 솔로처. 그 열쇠로 문을 여는 핸드레이크. 이들을 ‘Cognition triple’로 임명하노라.사람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푸른 초원에 울타리를 친 청교도인에 대한 비난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식의 오만방자한 구획지음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그지없다. 이 소설에는 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을 나누는 인간에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다. 이 소설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구획지음은 공간의 분할을 만들어 내고 하나가 아닌 다수의 공간의 존재는 그 공간의 소유에 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대한 문제는 ‘마법사와 제자’ 라는 경계선의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인식의 구획 짓기는 공간의 분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사와 마법사 제자라는 차이는 인간 인식의 구획지음의 또 다른 형태다. 핸드레이크는 마법사라는 그의 직함에 맞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권위를 누리려고 하고, 제자 솔로처는 배움의 자세를 갖기보다는 마법사의 능력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마법사의 능력과 제자의 능력에 대한 경중은 알 수 없다. 다만 솔로처는 자신을 마법사의 범주에 포함시키려 하고 핸드레이크는 그것을 부인함으로써 그 경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골렘이 핸드레이크의 두 번째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문제인식을 보면, 솔로처는 처음 명령의 잘못으로 정확한 판단을 해내지만 핸드레이크는 골렘이 불량품이라고 치부한다. 핸드레이크는 사람들에게 부여받은 마법사라는 자신의 이름과 아직 마법사로 인정받지 못한 솔로처를 대해 인식함에 있어 그 이름에 충실하여 솔로처의 문제 판단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한다. 마약 골렘의 명령 무시에 대한 솔로처의 판단을 존중하여 실마리를 풀어갔다면 공주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작중인물의 태도는 인간이 판단하여 의미를 부여한 사회를 구성하는 직책이나 이름들의 무의미함을 재확인시켜준다.
Ⅰ. 서론일상생활에서 컴퓨터가 생필품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컴퓨터는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문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PC 통신의 문학 동호회에서 시작하여 인터넷의 게시판소설로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사이버 소설은 디지털 시대에의 문학의 변용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사이버 소설은 일반 소설, 로맨스 소설, 무협 소설, 유머 소설, 환상 소설 등 다양한 양식이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환상 소설이다. 이 글에서는 이영수의「면세구역」에 대해 서술 분석과 스토리 분석을 통하여 환상 소설의 특징과 지향하는 바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작가 이영수는 PC통신을 이용하던 때에 하이텔에서 DJUNA라는 아이디를 통해 소설을 연재하는 사람 중의 한명으로 알려졌다. DJUNA에 대해서는 작품 외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2인 혹은 3인으로 구성된 작가집단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필명인 이영수 역시 한 사람이 아닌 복수의 작가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작가의 다성적인 특성 자체도 환상 소설에서 그려지는 분열된 자아의 모습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작품 자체로서 작품을 분석하는 ‘작품으로부터 텍스트로’의 방식으로 작품을 읽는 것을 가능케 한다.Ⅱ. 본론1. 서술 분석1)시간성서술 분석에 있어서 시간성은 시간에 따라 사건이 배열되는 순서나 빈도, 지속되는 정도를 분석하는 것이다. 대부분 환상소설의 서술시간은 스토리 시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세구역」은 네 가지 사건이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형식이다. 총 4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사건의 배열은 시간 순으로 되어 있다. 1990년, 1990년으로부터 3~4년 후 형우의 죽음은 이후, 2년 전, 얼마 전의 순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사건 순서의 배열의 변형 없이 순차적으로 배열한 한 것은 작가가 독자들이 계단을 오르듯 자신의 사고의 영역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가 는 여백을 매워주는 역할을 하여 소설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요약 제시는 이야기의 속도를 조절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대략의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부분에 대해 생략함으로써 서술을 빠르게 할 수 있고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작가는 면세구역의 비일상적인 분위기와 화자가 느낀 낯섦에 대해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서 현실세계와 면세구역의 애매모호한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였다. 화자가 겪은 유사한 경험을 파트 2,3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연속 배치함으로써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가 이해하도록 하였다.2)초점화초점화에서는 서술하는 주체를 뜻하는 서술 매개자, 서술 시점의 주체를 뜻하는 초점자, 서술 대상을 의미하는 초점화 대상에 대한 분석이다. 초점화는 외적 초점화와 내적 초점화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적 초점화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관찰 가능한 것을 서술하는 것으로 서술 매개자와 초점자가 일치하는 경우를 말하고 내적 초점화는 작중인물이 보고 느끼는 것을 서술하고 서술 매개자와 초점자가 일치한다.「면세구역」의 초점화 분석은 파트 1과 나머지 파트와 초점화 유형에서 차이를 보인다.파트 1은 ‘나’가 동생 형우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사진을 보면서 형우의 시각으로 서술한 것이다. 나머지 파트는 모두 ‘나’가 경험한 면세구역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파트 1의 특이할 점은 형우가 초점자이지만 서술 매개자인 ‘나’의 언어로 환언되어 서술되고 중간에 괄호 표시로 직접적인 ‘나’의 개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파트 1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직접 개입은 앞의 서술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나 새로운 정보를 준다. 이러한 직접적인 개입은 독자가 소설에 깊이 몰입되는 것을 막는다. 독자에게 사고 할 것을 종용한다.1234초점화 유형외적 초점화내적 초점화내적 초점화내적 초점화서술 매개자나나나나초점자형는 서술 매개자인 ‘나’의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이 소설의 시각은 소설에서 나오는 전체의 사건이 발생한 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파트 1에서 파트 4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관적이다.2. 스토리 분석1)중심 사건-면세구역과의 조우형우는 이대 정문 근처에서 한 젊은 여자에 끌려 연대 뒤편 낮선 골목을 헤매게 된다. ‘나’는 형우가 남긴 사진 속 공간을 찾아 나서면서 ‘기학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사진은 형우의 인식 자체로, 형우나 ‘나’를 연결시켜주고 ‘나’를 면세구역으로 이끄는 매개물이다. ‘나’는 뉴욕 맨해튼의 소호의 뒷골목을 헤매다가 우연히 면세구역과 조우한다. 그 이후 ‘나’는 열일곱 곳의 면세구역을 찾게 된다.형우와 ‘나’가 면세구역에 진입하는 과정은 유사하다. 형우는 이대 앞에서 본 낯선 여자를 쫓다가 어느 골목에 당도하자 여자는 사라지고 형우는 길을 잃는다. 그곳은 다른 골목과 다른 비정상적인 침묵이 흐르는 곳이다. 그곳에서 갑자기 고양이와 주인인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 형우는 뭔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재빨리 번화가로 달려 나간다. ‘나’는 업무 차 뉴욕을 찾았을 때 비디오 상점을 찾기 위해 소호 뒷골목을 헤매다가 길을 잃는다. 그 때 고양이와 흑인 소녀가 등장한다. 그곳 역시 형우가 길을 잃었던 연대 뒷골목과 같이 일반적인 주택가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곳이다. ‘나’는 고서점에 들르게 되고 그곳에도 역시 아기 고양이와 머리가 하얗게 센 점원이 있고 그 건물의 8층에서 소호의 전경을 보는 과정에서 면세구역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형우와 ‘나’가 면세구역으로 접어들게 되는 입구가 되는 곳은 번화가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골목이다. 형제는 무언가에 몰두하여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잃게 되고 그들이 당도한 곳은 외형적으로는 일반적인 주택가지만 비정상적으로 움직임이 없는 침묵하는 곳이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면세구역은 번화가에서 10분 혹은 그 이내의 거리에 있는 침묵. 면세구역이라 세금이 면제되는 곳을 말하는데 특정한 이유가 없이 면세가 되는 곳이라면 한 나라의 행정구역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면세구역은 현실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면세구역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상의 공간의 그려낸 것은 복잡한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바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범주를 좁히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면세구역의 인접에 있는 빼곡한 골목(‘무질서한 다각형 플레이스 단위로 쪼개진 소호’)은 현대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시각이자 현대인 개인의 분열된 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열된 자아의식을 정화 시키고 이상적이 자아상을 구축할 수 있는 곳 역시 면세구역이다.-면세구역 사람과의 대화소설의 마지막에 보이는 ‘나’는 가방 속에 하얀 암고양이를 가지고 이대 앞을 서성인다. 그러다가 가방 속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가지고 있는 ‘당신’을 만나 대화한다. ‘당신’은 ‘언어가 감각을 설명할 수 없다면 설명이 무슨 소용이리.’라는 말을 ‘나’에게 반복한다. 이에 ‘나’는 ‘당신’의 말에 현기증을 느끼고 말을 멈추기를 청한다.‘당신’이 반복하는 말의 의미는 면세구역의 언어로 인해 현기증을 느끼는 ‘나’가 면세구역에 대해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설명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면세구역의 언어를 이해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이것을 거부한다. ‘나’는 현재 면세구역의 존재를 알고 그 곳을 넘나들 수 있는 입구를 알 수 있고 면세구역의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부조리한 자유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는 면세구역이 가지는 부조리한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부조리한 자유를 쟁취하고자하는 열망은 없다. ‘나’는 그것이 형우나 자신의 한계라고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는 한계다. 이미 현실세계의 관념과 논리 속에서 살아 온 ‘나’는 현실세계를 포기할 수 없고 마치 일탈행위와 같이 면세구역을 넘나듦으것은 무한의 자유를 선택하지 못하지만 평생 동안 자유를 갈구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한다.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 1의 진리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하는 것’ 으로 보았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부조리의 자유를 이상의 맥락에서 볼 때 면세구역은 현실세계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제, 관습,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2)등장인물-형우이 소설에서 면세구역에 첫 발을 내민 첫 주자다. 낡은 캔버스 가방을 맨 젊은 여자에게 매료되어 사진을 찍으면서 그녀를 쫓는다.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이 아닌 초라하게 보일 수 있는 여성에게 호감을 갖는 순수한 사람이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자 자신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운-나이미 면세구역 사람들에 일정 부분 동화된 사람이다. 죽은 동생의 과거에 대해 말하는 어조에서 담담함이 느껴지고 심지어 남의 이야기하듯 객관적이기까지 하다. 죽은 동생이 남긴 필름 5통을 인화하면서 사진 속 사람과 장소에 대한 강한 끌림을 가지게 되어 그 곳을 추적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면세구역을 드나드는 방법을 알게 되지만 현실과의 끊을 놓지 못하면서 한편으로 끊임없이 면세구역의 자유를 희구하는 사람으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면세구역 사람들형우가 만난 면세구역에서 만난 젊은 여자와 여자 아이, ‘나’가 소호에서 만난 흑인 소녀와 머리 하얗게 센 고서점의 점원이 면세구역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여자 아이는 형우를 처음 봤을 때 인광을 뿜어내며 다소 적의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른 면세구역의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형우나 ‘나’를 한 동안 관찰한 후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선다. 면세구역은 인접한 도시와 다르게 이상할 만큼 적막하다. 거리가 사람과 자동차로 꽉 찬 도시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공간의 차다.
2006년 겨울 계절학기 1차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사학과 0277441 김민선2006년 12월 26일 제 9강 문학 속의 문학구효서 첫 번째 쪽글깡통따개의 허상작가는 하찮은 일을 진지하게 혹은 그 반대의 작업을 하는 것이 소설쓰기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포도씨를 보면서 우주를 그리는 그의 일상은 전업 2년차의 작가의 권태로움이 느껴진다. 작가는 답답한 일상에서의 벗어나기 위해 찾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헛배를 꺼칠 수 있는 공간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 곳이 바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이다.작가가 헛배가 불러옴을 느낄 때 찾는 곳은 종로 3가. 그곳에는 작가가 동일시를 느끼는 허름한 청국장 식당과 새점 치는 노파가 있는 곳이다. 청국장 식당에 대한 타인의 시각은 더럽고 불결한 공간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역사가 살아 있는 공간이고 삶의 불가사의가 있는 공간이다. 작가는 혼자 있는 때 이곳을 찾지만 이곳을 찾는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기 꺼려하는 공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보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러한 내면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좁고 지저분한 청국장 식당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타인에게 보이기 싫은 단면의 표상이다. 인간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원치 않고 이따금 세파에 찌들어 힘겨울 때 자신의 굴에 들어가 자아와 대면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작가는 청국장 식당과 새점 치는 노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작은 암자로 떠난다. 작가가 찾은 암자는 청국장 식당만큼이나 허술한 공간이다. 불경에 대해 알 지 못하는 주지승, 격투기 수련에 심취한 총무원장, 탈출사였던 불목하니, 귀 어두운 늙은 보살, 절에 빌어먹는 개. 작가는 작은 암자에서 시간을 공허하게 보낸다. 작가가 암자에 머무르는 동안 지인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반기기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사람을 멀리하는 사람은 아니다. 탈출사였던 불목하니가 탈출하는 묘기를 보여줄 때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그가 성공하리라 믿는다. 탈출사에게는 작가가 희구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암자에 머물면서 유일하게 열성을 가지고 했던 일은 꽃병을 만드는 일이다. 하루 종일 음료 캔을 수거해서 꽃병으로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 마을에는 깡통따개가 없다. 결국 대전에 나가 그것을 구해오지만 탈출사가 낫으로 캔을 따 놓은 상태였다. 또 정작 그가 어렵게 구해온 깡통따개로는 캔을 딸 수 없었다. 작가가 찾는 헤맨 깡통따개는 이용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개인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에서 역사의 흐름을 그린 대하소설까지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지 않는 작품은 없다. 문학은 인간의 삶은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공통된 문제로 고뇌한다. 문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문학의 접근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가공의 인물을 통해 그 시대의 개인의 아픔이나 사회적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럼으로써 이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게하고 역사적 문제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이러한 문학의 흐름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작가가 조정래이다. 조정래는 어린 시절 순천과 벌교에서 자라면서 6·25와 여수· 순천 사건을 겪었다. 이러한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의 작품들이 사회의식을 조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조정래는 해방 전후시기를 다룬 『태백산맥』, 일제 강점기를 다룬 『아리랑』, 개발독재시대를 다룬 『한강』 이외의 다수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는 외침을 독자에게 보냈다. 조정래는 자신의 문학에서 분단의 문제를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인간 연습』을 발표하였다.-제목을 통해 본 인간 연습.『인간 연습』은 분단 이후 남파 간첩이었던 강제 전향자가 남한에 정착하여 유사가족 관계를 맺어가면서 고뇌를 극복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언저리를 담고 있는 역사소설이자 가족의 해체와 그 자리를 메워가는 유사가족관계를 묘사하는 가족 소설이며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인한 사회로 겪는 한 개인의 고뇌와 해소를 담는 인생소설이라 할 수 있다.작가는 이 소설의 제목인 『인간 연습』에 대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자하는 연습, 인간이 살면서 특정 목적을 위해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 윤혁의 인생이 바로 인간 연습의 과정이다. 윤혁은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인민군을 북으로 가서 당원이 되고 사회주의 사상을 유포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남파간첩이 되고 친구의 신고로 비전향장기수가 되어 옥살이를 하고 강제적인 조치로 인해 전향을 하여 평생 가슴의 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윤혁의 인생은 모두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라고 믿고 있는 강한 신념을 온몸으로 부대기며 살아 온 그의 삶의 흔적이며 그러한 부대낌이 바로 인간 연습이다. 윤혁은 사회주의 사상이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세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해 강한 억눌림과 혼란을 경험하지만 이내 이념을 초월하여 유사 가족 관계에서 느끼는 사랑으로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소설의 끝을 맺는다. 윤혁이 젊은 시절 가졌던 사회주의로 이룩하고 싶었던 사회상과 작은 행복으로 자기 개인의 인간다운 생활을 만들어 나가게 된 것의 차이에 대해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그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그 간의 연습은 헛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유사 가족 관계로 대체되는 가족관계강제적으로 전향한 사람들은 양쪽 날개를 잃은 새와 다름없다. 그들은 남·북 어느 사회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회적 냉대는 가족관계까지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갑다. 가족마저 외면한 박동건의 장례식, 그 이면에 숨겨진 얼룩진 박동건의 가족사. 그의 가족은 어느 한쪽을 비난 할 수 없을 만큼 아픔으로 응집되어 있다. 윤혁 역시 부모와 형수가 이 세상을 떠난 후 가족과의 단절되었다.윤혁과 박동건의 차이가 있다면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듯이 유사가족관계의 유무에 있다. 박동건은 평생 자신을 지탱해 주던 버팀목이었던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함께 자신도 무너진다. 반면 윤혁은 사회의 창 역할을 해 준 운동권 학생 출신 강민규, 삶의 활력을 주는 경희와 기준, 그에게 표면적이나마 관심을 갖는 이웃들, 그의 노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 최선숙 보육원장과의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념을 넘어 인간다운 행복을 누리게 된다.이 소설에 나타나는 가족관계는 현대의 혈연 중심적인 가족의 해체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20세기 중·후반에 들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일반화 될 정도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과 정을 나누는 사회 분위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각기 다른 삶은 살아가는 가족이 파편화되어 자신의 이상과 꿈을 찾아 가정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유사가족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소설에서 윤혁은 엄연히 장성한 조카들과 친척들이 있지만 과거 윤혁의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아픔을 갖고 있어서 그들에게 수용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원자화 되어 세상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같은 정치적 노선을 가지고 있는 강민규와 소통함으로써 사회를 바라보고 그의 도움으로 번역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또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거두면서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윤혁의 자서전을 인연으로 알게 된 최원장이 유사가족관계에 동참함으로써 가족의 구성원 중 부재했던 여성의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이 가족은 완성된다. 혈연가족이 사상 가족으로 대체되는 양상을 찾아 볼 수 있다.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러한 유사가족의 형성이 마치 사회와의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유사가족의 존재하는 공간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까봐 두려워하는 윤혁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태로움을 내포하는 가족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사회주의의 고뇌는 어디로.윤혁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그가 남한 사회에서 엘리트적 지위를 버리고 북에 가서 당원이 되고 남파 간첩이 되고 비전향장기수로 투옥하다가 강제전향을 한 인생에서도 그의 이념의 견고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러한 사상의 견고함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견고함이라기보다는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배곯는 이웃을 염려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작은 일상의 모습에서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원들의 부패와 인민의 나태에 대해 염려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윤혁은 강민규와의 사상적 교류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회주의의 패배를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그 원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호치민 평전을 번역하면서 사회주의의 붕괴 원인에 대해 사회주의를 구현해 나가는 인간의 잘못으로 결론짓는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칠 뿐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사회주의 자체의 개혁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소설에서 강민규의 존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혁에게 학계·사회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연결고리이자 윤혁이 자서전 집필을 통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강민규는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시민단체를 발족하고자 하자 윤혁은 사회주의에서의 시민단체가 불가능함을 생각한다.이러한 윤혁의 모습은 점차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지본주의 체제에서 생산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 대해 세간에서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요청하지만 상업의 논리에 이용되는 것을 꺼려 단호히 거절한다. 하지만 소설 초기에 보이는 윤혁은 소련의 붕괴를 접하면서, 박동건 혁명적 동지의 죽음을 대하면서, 한낱 형사의 사회주의 폐해에 대한 일장 연설에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정치적 이념을 순수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이 일생의 정리하는 자서전을 집필하는 것이 적어도 자기부정을 하지 않았다는 얇은 안도로 없어질 것이 아니다.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사회주의의 국가의 붕괴나 위태로움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나 고뇌가 짙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자신의 자서전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고 책이 재판되는 것에 기뻐한다.이러한 모습은 모든 인간의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 초반부에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짙은 고민을 보인 윤혁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주변에 따뜻한 가족이 생겼고 자신의 생을 돌아볼 수 있는 자서전을 출간했다고 해서 그런 사상적인 고민을 축소시키고 아이들과 최원장과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 식으로 소설을 맺는 것은 지나친 자본주의 우위적 사고의 반영이다. 윤혁이 고뇌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은 자서전을 집필한 이후부터다. 자서전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자서전의 집필을 통해 비전향장기수나 전향자들의 국민적 이해를 돕는데 기여한 것, 그러한 사실을 역사의 장에 기옥으로 남겨 둔다는 것 등 역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강민규의 말처럼 자서전 집필은 윤혁에게 있어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한 작업이지 자신의 이념을 정리하고 일생을 통해 지켜온 이념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윤혁이 사회의 감시와 냉대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울타리를 가진 것은 그의 정신적·육체적 안위를 가져다줄 뿐이다. 그는 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마음에 꼬깃꼬깃 접어둔 이념의 흔적에 부딪힐 때마다 혼란과 불안을 반복해서 겪게 될 것이다. 만일 행복한 생활에 안주하여 그러한 생각이 무뎌진 것이라면 그는 전향자이 아닌 변절자인 것이다. 사상과 이념의 고뇌를 사상이 아닌 생활의 문제로 축소하여 그 전의 이념적 고뇌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로 자신의 문학의 분단문제를 마무리 짓기를 원하다 는 공언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크게 만든다.
1. LG카드 광고 - 이미연편1-1. 광고 개요제목 최고에겐 힘이 있다광고주 LG카드브랜드 LG카드광고회사 코래드제작사 나무바다모델 이미연 외성우 이미연, 김상현배경음악 bomb shell2. 광고 내용 설명서양인 남자 4명과 여자 2명이 천장이 높은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펴 놓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구두 굽 소리가 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본다. 여자의 하이힐이 클로즈 업 되고 최고 상급자일 것 같은 백발의 안경 쓴 백인 남자가 안경 위로 발자국 소리가 나는 방향을 응시한다. 안경을 벗는 이미연의 모습이 나온다.[난 최고다] 이미연이 양 팔을 좌우로 뻗치자 천장에서 원단이 내려온다. 이미연은 열정적인 손 짓을 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힘든 듯한 표정을 지은 후 정장 자켓을 벗는다. 다시 온 몸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잘하게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프레젠테이션 후 백발의 상급자의 데스크로 다가와 상체를 굽혀 양손으로 책상을 강하게 친다. [최고에겐 힘이 있다]백발의 상급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박수를 친다. (fade out) 백발의 상급자가 옷 가게에서 보라색 넥타이를 고르자 이미연이 나타나 "LG카드로 할게요" 라고 말한다. "내 카드 LG카드"3. 광고 분석1) 여자 주인공의 차림새이미연은 검정색 바지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있다. 검정색 하이힐을 신고 있고 금색 체인 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머리스타일은 앞머리를 내지 않은 채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높게 묶고 있다.이 광고에서 보이는 이미연의 옷차림은 일반적으로 남성 비지니스맨의 복장에 가깝다. 차고 있는 시계도 알이 큰 금색 체인 시계로 남성들이 주로 착용한다. 사무실에 있는 여성들은 긴 머리를 낮게 묶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연은 머리를 높게 묶어 강한 인상을 준다. 뽀족하고 높은 하이힐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 한다. 화장은 색조 화장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이라이너로 눈맵시를 강조하고 아이브로우를 이용해 눈썹을 짙고 굶게 표현했으며 입술도 거의 입술 색과 유사하게 발랐다. 이러한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성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2) 여자 주인공의 행동이미연이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은 마치 연극을 하는 듯이 과장되었다. 역동적으로 팔과 휘저으며 설명을 한다. 중간 중간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 후 잠시 힘에 겨운 듯한 표정을 지은 후 정장 자켓을 벗는다. 이 모습은 미디어에서 주로 남자들이 일을 하다가 적극성을 보일 때 쓰이는 장면이다. 프레젠테이션 후 거래처 대표의 데스크를 치는 모습은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프레젠테이션 후 데스크로 이동하는 동안 카메라에 잡힌 사람은 백인 남자 3명이다. 처음 이미연이 등장 한 시점에는 남자 3명, 여자 2명이 있지만 다음 장면에서 여성 2명을 배제 시킴으로써 이미연의 능력을 평가하는 사람의 시선을 남자로 제한하였다.백발의 상급자가 상점에서 넥타이를 고르자 이미연이 계산을 한다. 여기에서 장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래처 상급 담당자와 옷 가게 들른 것은 이미연이 여성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여성이 가정에서 수행하는 일을 공적 공간이 회사에서도 일정 부분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광고의 의미이 광고에서는 주인공 여성에게 남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강한 커리어를 부각한다. 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남성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여성들은 남자 선배에게 '형'이라는 호칭을 불러서 자신에게 있는 여성성에서 탈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그러한 관습이 사라졌다. 그것은 여성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성에 대한 부정적인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 여성은 그 자체로서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는 성공한 여성에게 남성적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80년대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정작 거래처 담당자(백발의 백인)와 함께 가는 곳은 옷 가게다. 옷 가게는 사적인 공간이 가정에서 여성이 가족을 위해 쇼핑을 하는 공간이다. 거래처 담당자와 옷 가게를 가는 것 자체가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사회에서도 수행한다는 의식을 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