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예술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생각은 19세기 이후 예술가들의 세계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널리 유포된 일종의 통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에 부여된 명칭이 ‘아방가르드’이며, 적어도 지난 세기동안 이 용어는 예술가들의 자율적 활동을 강화하는 가장 혁신적인 이념이었다. 전통의 권위에 대한 강력한 반항과 거부감을 바탕으로 한 아방가르드의 이념은 “파괴하는 것은 곧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쿠닌(M.Bakunin)의 무정부주의적 공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즉, 파괴에 의한 창조는 모두 반전통적이고 극단적인 운동을 포괄하는 하나의 개념영역으로서 아방가르드의 활동을 요약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2. 아방가르드서구의 문화예술적 모더니즘은 두 개의 이율배반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아방가르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급 모더니즘이다. 그렇다면 모더니즘의 한 얼굴은 아방가르드라고 분류될 수 있는 다다, 입체파, 미래파,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이고 이들의 부르조아적 성격이나 이러한 운동의 결과를 접어두고 볼 때 아방가르드의 일관적인 태도는 세기말의 유미주의적 그리고 아카데미즘적인 미술의 고답적인 그리고 인간의 일상과 유리된 허위의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투쟁이었다. 동시에 이들의 충격적이고 형식 파괴적인 예술적 행위는 존재했던 답답한 예술을 파괴한다는 것보다는 이렇게 답답한 예술의 파괴를 통한, 기존했던 제도와 체제의 상징적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실천의 예술로서 한가지 유형이 될 수도 있고 정치적 예술의 본보기로서 정리될 수도 있는 것이며 이점은 높이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의 무정부적인 성향이나 분열적인 움직임은 부르조아의 데카당트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로서 한계를 갖는 것이다.3. 러시아의 아방가르드1) 개요러시아의 신원시주의에 서구미술 사조인 미래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가 영향을 주고 여기에 자기 것을 찾으려는 러시아 성화미술, 민중예술이 개입되면서 1913년에 라리오노 '광선주의 선언'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선언'으로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시작된다.1914년 1차대전과 이듬해의 미래파 회화전은 전쟁으로 인해 귀국한 작가들 가운데 타틀린의 '구성주의'와 말레비치의'절대주의'라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두 조류를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러시아 구성주의는 사실주의 선언 이 후 타틀린, 로드첸코의 생산주의와 나움가보, 페브스너의 사실주의로 갈라선다. 후에 러시아 혁명 후 혁명정신과 연관하여 지지받다가 스탈린 집권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만 인정하게 되어 금지된다.2)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배경러시아는 17세기까지는 종교미술, 특히 '이콘'에 의해 대표되는 미적세계가 전부였다. 18세기가 되자 서유럽 미술이 밀려와 모방의 시대가 되고 겨우 19세기에서야 독자적 세계가 촉구되었는데 그 이유는 터키와 전쟁에서 패한 후 사회개혁 운동의 반영으로 미술에서도 아카데미즘 을 배격하고 러시아 민중의 생활실태를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이동파의 사실주의 적 회화태도 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회화의 상황은 문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회화가 다른 예술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가 의심이 갈 정도였으며 또한 18세기와 19세기 초 러시아 회화는 서유럽에 의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러시아는 유럽미술을 혼돈적으로 받아 들였는데 특히 입체파와 미래파는 새로운 예술적 기운이 싹트게 하였다. 철도의 발달 등으로 인한 교류는 러시아에 자극과 미술흐름의 소개를 가져온 것이다. 1914년의 1차대전의 발발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모이는 기회가 되었고 1917년의 10월 혁명은 이 운동의 토양이 되었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이 당시의 공산주의적 혁명의 분위기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하고 새로운 것에의 창조를 외치는 그들과 기본적으로 맞아 떨어 졌고 이 운동을 혁명의 분위기의 일환으로 끌어 들이려던 당국의 생각에 부응하는 것이 되었다.3)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특성(1) 염세적 색체 (니체에의 열광)당시 니체에 대한 지식인들의 은 열광적이었다. 사회적 불평등을 내면적으로 옹호한 니체의 견해들은 매사에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에게서 항상 충돌됐던 당시 사회 갈등과 현실의 결함들에 대한 비판적 옹호 아래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니체철학은 러시아 문화에 불만을 갖고 있던 반항아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니체는 ‘모든 가치의 재평가’라고 부르는 새로운 질서의 미래상을 불어 넣었다. 이러한 니체충격은 각 분야에서 조금씩 관심을 달리하여 나타났다.오랫동안 지녔던 가치와 사상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인텔리게챠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상징주의와 마르크스 주의가 발생했다. 상징주의자들은 새로운 형식과 언어로 실험하면서 자신들을 표현하기를 원했고, 비밀스럽고 모든 것에 난해한 자가 되기를 원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러시아를 변혁시킬 신 계급으로 보았고, 미래의 무산 계급에게서 그들은 영웅적 행위와 행동주의, 자존심을 지닌 즉, 니체적인 특성을 지닌 새로운 인간을 발견했던 것이다.당시에 실증주의는 아직도 러시아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공리주의와 자주 결부시켜 생각되었다. 세기말에 러시아에서 사회적, 이념적 상황과 니체주의를 낳은 유럽의 사회적, 이념적 과정과의 유사성은 러시아 데카당스 문화의 특징에 대한 니체의 윤리학과 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설명해준다.그러나 러시아 모더니즘의 이념적, 예술적 경향들의 미학과 철학에 대한 니체의 영향을 언급할 때, 러시아에서 니체를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니체의 공격적인 반민주주의는 휴머니즘적 전통을 지닌 러시아의 토양과 문화에 진지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따라서 니체의 미학과 윤리학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던 상징주의자들은 ‘초인’, ‘권력에의 의지’를 옹호한 니체가 아니라 주로 문화, 철학을 언급했던 작가 니체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2) 영원주의시적 정신을 일별하는 의미에서의 영원주의는 바로 20세기 러시아의 은세기 문학, 특히 모더니즘 문학의신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이시기에 예술형식의 시적 변용은 중요한 문화적 특징이다. 예를 들어 회화에 있어서도 이동파 화가들의 사실주의적인 심리주의적 성향의 초상화들이 담아냈던 특정한 사회적 환경이나 전기적 요소 중심에서 벗어나 예술세계 중심의 회화(브루벨, 네스쩨로프)가 대두된다. 으들은 물질적인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인물을 자연 혹은 신화의 영원한 형상으로 그려내었다. 이처럼 회화도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철학적 요소로 이해되었다. 특히 러시아의 문학적 미래주의는 회화적 미래주의의 형향을 밀접하게 경험했다는데, ‘큐비스트들’, ‘인광자들’ 등의 예술단체들이 결성된 것이다.1880년대에 주류를 이룬 이른바 ‘80년대 정신’ 즉 실증주의적, 자연주의적 문예학에 의해 저급화된 문학적 상황에 맞서서 상징주의 작가들은 새로운 장르, 기법, 언어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3) 혁명러시아의 아방가르드가 서구의 그것과 구별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러시아의정치적 현실, 혁명, 그리고 그 혁명의 영향에 대한 관계이다. 서유럽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이 시기엔 새로운 것을 선호하고 낡은 세계를 증오하는 풍토가 예술 분야에만 제한되지 않고 정치분야에도 만연되어 있었다.(4) 상징주의와 형식주의러시아에서의 1910년대는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전기였다. 상징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이 때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그것은 보통 미래주의와 모더니즘이라는 말로 함께 취급되는 새로운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불려지는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변화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비에트 문학비평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매우 경멸적으로 사용되었다. 소비에트 무학비평에서는 1차 대전에 이르기까지 수 년 동안에 일어난 새로운 운동, 사상, 그리고 양식들이 과거의 전통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음에 반해, 상징주의는 여러 방법 속에서 과거로부터 이어내려 오는 낭만주의 전통의 절정이거나 또는 낭만주의 전통의 아름다운 이라는 사실을 모호하게 드러내고 있다.그렇지만 새로운 아방가르드 그룹들은 모두 뚜렷한 혁신과 과거와의 결렬 상태를 보여준다. 푸쉬낀, 도스토예프스끼, 톨스토이 등을 ‘현대라는 증기선 밖으로 내던져 버리도록’ 1912년에 부르류크, 꾸르체니흐, 흘레브니코프가 서명한 이라는 슬로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시와 산문의 창작에서 활발한 혁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상징주의자들은 인간을 더 높은 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한데 반해, 미래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유토피아일지도 모르는 지상 천국이나 천년 왕국을 꿈꾸었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에 집착하는 것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홀레브니꼬프처럼 인류의 역사 이전 시대에서조차 잃어버린 천국을 꿈꾸었다.바로 이런 갈림길에 서 태동한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은 아직도 문학이론에 기여해 왔으며, 그 영향 또한 오늘날에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쉬클로프스키의 『언어의 부활』은 처음으로 분명한 견해를 보여주었다. 형식주의 운동은 1916-18년 사이에 시어연구회 오뽀야즈가 설립됨으로써 체계화되었다. 미래주의가 형식주의자들의 이론에 영향을 끼쳤는데, 주로 언어를 자유롭게 다루며 단어의 음과 그의미, 새로운 구문과 자유시를 옹호하는 점에서 그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쉬끌로프스키가 “문학 작품은 형식 외엔 아무 것도 아니가”라고 말할 때, 야콥슨이 학문적인 주제를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한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드는 ‘문학성’으로 한정할 때, ‘형식’은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매우 폭넓게 사용됨으로써 일반적으로 형식은 내용을 포함하게 된다. 나중에 형식주의자들은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형식과 내용의 논쟁에서 현명하게도 구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그 논쟁을 벗어났다. 구조라는 말은 내용의 요점을 감싸는 표면적인 껍질로서 형식이란 용어가 풍기는 암시를 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비록 사상의 유기적인 조직체라는 생물학적인 관련들을 현명하게 피하긴 했지만, 예술작품의 통일성, 성실성과 응집력이란 낡은 개념들을 부활시켰
제1장 문제의 제기모든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안전보장이라고 단언한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문제나 어느 조직 또는 사회공동체의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논리일 것이다. 주로 개인이나 조직의 안전에 관한 것은 이를 포괄하는 국가의 안전보장이 전제되어 질 때에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국가를 지속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번영과 발전을 이루어나갈 수 있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다른 여러 제반요소보다도 더욱더 중요한 수단은 인적인 요소가 아닐까 한다. 인적인 요소 중에서도 안전을 보장하고 담보할 수 있는 것은 한나라의 군사제도 특히 인적요인을 뒷받침하는 제도 즉 병역에 관계되는 것이 아닐까?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한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번영을 담보하여 왔던 것 중 가장 주요한 요소는 병역과 관련된 것이었다. 단순히 역사를 고찰하더라도 국방을 유지하는 요소 중 병역과 관계된 제도나 시스템의 문란은 국가나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익히 보아 왔다. 그렇다면 병역을 구성하는 것은 한국가 존립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존립의 주요한 수단으로서의 병역은 무엇으로 결정되어지는가? 한 나라의 병역제도는 그 나라가 처한 안보환경과 군사적. 문화적 전통 및 가치관, 정치체제, 경제력, 인구 그리고 병원의 질. 양적 수준, 현대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정보과학 기술 등에 따라서 결정되어진다. 우리나라의 병역제도 또한 이러한 요소들에 의하여 그 틀이 유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여러 병역제도의 주변상황과는 다른 요인들로 인하여 행정의 형평성 문제가 가장 심각한 주요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가 지난 두 번의 대선을 통하여 일찍이 경험하였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의무이행의 형평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요즘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주제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의 인정여부에 관한 것이다. 특히 특정종교인 일반 수감자들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가석방 대상이 되지만, 병역거부를 한 여호와 증인 신도들의 경우에는 군 복무 기간보다 길어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27개월이 지나야 가석방 대상자가 된다. 더욱이, 교도관들도 수감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이 교정 규칙을 충실히 준수한다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교도소 내 종교활동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제2장. 양심의 자유제1절. 양심의 개념과 학설1. 다양한 용례양심은 동양에서는 ‘어진 마음(良心)’ 또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仰不愧於天)’를, 서양에서는 ‘공통의 지식(conscientia)’)을 나타낸다. 양심이라는 말의 초점이 인간의 심정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객관적인 지식에 놓여있는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란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양심은 종교개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 되었다. 종교개혁은 바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근대적인 주체를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의 도덕감정으로서의 양심은 신학적, 철학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심리학에서도 다양하게 규정되었다.) 때로 양심은 ‘자기안의 법정(칸트)’으로, ‘신의 음성을 듣는 장소(라드브루흐)’로, ‘인간에게 유용한 체험의 저장소(스펜서)’로, ‘자기진정성(하이데거)’으로 시인되지만, 심지어 ‘恣意의 최고형식(헤겔)’으로 가혹하게 폄하되기도 하고, ‘활력있는 본능의 데카당(니체)’으로, ‘본원적인 충동을 포기하게 하는 초자아(프로이트)’로 설명되기도 하였다.)이러한 양심개념들을 낱낱이 검토하는 일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 있으므로 정당성과 책임의 관점에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하고자 한다. 사실 인간 각자가 사용하는 양심개념의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연원을 밝히는 일도 의미있는 것이나 인권의 기초개념으로서 양심을 정의하는 작업은 다른 각도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과 양심은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르게 이해되지개념규정은 특정한 종교나 예술 유형을 불가피하게 배제하고, 해당종교나 예술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양심의 개념도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법원이나 실정법이 실질적 내용적 양심개념을 채택한다면 양심의 문제는 불가피하게 진리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되고, 법원은 종교재판소와 동일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은 그 출처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특정한 윤리적?종교적 표준에 입각해서 정의할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독일의 자유주의 헌법학자 뵈켄푀르더는 함축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적인 양심상의 결정에 대한 판정기준은 양심적 결정의 진리, 즉 일반적인 법원칙, 도덕법칙, 일반적인 윤리적 의식, 추정된 가치질서 등과의 일치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양심의 개별성, 양심의 자유와 자기법칙성은 부인될 것이다.”) 양심에 대한 법적인 논쟁의 출발점은 양심의 ‘진리’가 아니라 ‘개인’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양심은 개인, 개별주체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양심은 곧 ‘자기양심’이다. 이러한 주관주의적 양심개념만이 인간존엄의 기초 그리고 자유국가의 근본전제에 합당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주관주의적 입장에 따라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 정의하고, 나아가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개념규정은 앞에서 논의했던 형식적 양심개념에 가깝고, 양심의 자유를 논의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라고 판단된다.1) 사회적 양심설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를 말하며 윤리적인 면에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견해로 우리나라의 다수설이다. 그 근거로는 우선 양심은 세계관적 확신에서도 비롯 될 수 있기 때문에 양심과 세계관적 확신은 불가분의 밀접한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인 자유이므로 제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거나 구체적으로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에 대한 정치사찰을 폭로하기 위한 양심선언을 위하여 군무를 이탈한 행위가 정당방위나 정당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여 군무 이탈 죄로 처벌함으로서 부정설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셋째로 위에서 양심실현의 긍정 부정설의 절충설이 잇다. 즉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되나 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은 포함되지 않는 다는 견해이다. 즉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국가에 반대하는 적극적 행위는 저항권의 문제이며 양심의 자유에 관한 헌법규정에 의해 인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부작위의 권리로서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의 실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일반적 평등원칙을 실현한다고 주장한다.제4장. 양심적 병역거부권제1절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관련되는 문제점1. 입법론상 대체복무 부존재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미 많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체복무의 형태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국제법적으로도 이미 승인된 지 오래이다.1987년 유엔 인권위에서는 병역거부권을 사상, 양심, 종교적 자유에 근거한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수 차례에 걸쳐 이를 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이 권리를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각각 명시하였다. 최근 2000년의 결의안에는 각 국가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관행을 재검토해야한다고 결정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안보주의와 형평성 논란 등을 이유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 도입에 관한 논의가 이제 걸음마 단계로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매년 약6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으로 가고 있으며 이는 증가추세에 놓여있다. 최근에는 법원의 좀더 진보적인 결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구속에 대하여 기각결정을 내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법부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여부1. 각 국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여부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그 배경이 기독교적 전통 속에서 나왔음을 이미 전술하였다. 결국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기독교적 종교문화를 갖는 나라에서 일찍이 대두되고 발전되어온 것이다.먼저 미국의 경우는 양심적 반전론이 가장 오래된 나라중의 하나로서 독립전쟁당시부터 특정종파에 대하여 반전권을 인정해주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당시 미국이 본격적인 징병제를 채택했을 당시에도 이를 인정하였으며 이들에게는 미국대통령이 지정한 비전투적 역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1940년 병역법은 종파적 제한일체를 폐지하였으므로 양심적 반전논자들은 그들의 반대가 종교적 교육과 신념에 기초하고 있는 한 교회라는 틀 속에 제한될 필요가 없어 졌다. 1948년의 일반군사훈련 및 병역에 관한 법률 제6조제10항은 종교적 교육과 신념을 이유로 모든 형태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양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군대에서의 전투훈련이나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강요 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종교적 교육과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를 인정하였다. 이후 1967년 병역법은 종교적인 교육과 신념의 해석규정에서 절대자에 관한 부분을 삭제하여 종교적인 반전론 뿐만 아니라 윤리적 양심에 근거한 반전론도 인정하였다. 그리고 베트남전이후 징병제의 폐지와 더불어 근본적인 해결을 보게 되었다.독일의 경우는 종교적인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입되었으며 1935년 이전에는 병역의무의 존재가 없었으므로 거부권에 대한 논의가 없었으나 1935년 국민개병제로의 전환을 하면서 많은 종교단체들이 병역거부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나치제국 패망이후에 주 차원에서 병역거부권을 헌법과 법률에 명시하였으며 이것을 모태로 하여 1983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법이라는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함으로서 병역거부권에 대한 법제를 완비하게 되었다. 현재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를 규율하고 있는 법제는 독일 기본법제4조 제12조12a조, 병역법, 대체복무법과 병역거부법이다.기타 유럽의 국가들은 제1진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곳이 과연 온전한 나만의 땅일까? 모든 게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자만한다면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토네이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 ‘나비효과’에 기초를 둔 영화, ‘나비효과’는 개봉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신랄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부분기억상실을 지닌 채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주인공 에반은 우연히 자신의 일기장을 통하여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여자친구의 자살 등 현재의 불행을 막기 위해 일기장을 통하여 시공을 넘나든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현재의 행복은 오히려 극악의 상황으로만 치닫을 뿐이다. 누구나 한번쯤 서 봄직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사람들은 항상 가지 않은 쪽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곤 한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극의 소재로 사용하여 가지 않은 길을 보여주는 영화(예전의 모방송국 티비프로 “인간극장”과 유사했다)‘나비효과’는 나머지의 선택을 할 수록 상황은 점점 나빠질 뿐임을 보여준다.뛰어난 주인공의 연기나 OST가 없음에도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주인공의 모습과 잃어버린 기억과 딱딱 아귀가 맞물려 돌아가는 스토리의 탄탄함 때문이다.부분기억상실증에 걸린 에반이 잃어버린 기억들은 그가 일기장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시점과 일치한다. 즉, 과거의 어린 에반에게 있어 중요한 선택의 기로의 시점이다. 결국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온 에반이 바꾼 “과거”와 실제 과거의 어린 에반이 행한 “과거” 두 기억이 공존하고 뇌는 어느 것도 기억을 못한 채 부분기억상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에반의 처음 과거가 이해되어지는 형식이랄까.잘 짜여진 스토리도 있지만, 이 영화가 젊은층을 흡입하는 매력은 시각적 효과이다. 에반의 다른 선택에 의해 창녀로, 점원으로, 잘 나가는 대학생으로 변신해가는 여주인공 켈리나, 장애인, 죄수, 의사 등으로 변해가는 에반의 모습은 특수분장을 이용하는 등 각기 특징적으로 그려져(피부톤, 몸매 등이 제각각)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에반이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때 주위가 점점 흔들리며 흐려지고 마치 카오스 이론의 혼돈의 세계처럼 한순간 변하는 장면들 역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마치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억지로 기억하는 듯한 흐릿하게 요동치는 순간적 파편의 나열을 보여주며 말이다.흐릿한 파편을 애써 기억해 내서 바꾸고자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그가 현재의 행복을 바라고 옳아 보이고, 용감한 선택을 할 때 마다 그가 현재 가진 작은 행복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즉, 감독은 옳아 보이는 선택들의 결말이 반드시 더 나은 상황을 초래하지 않으므로, 그 때 자신의 선택에 만족해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리나 정의에 연연하는 것보다 현재를 즐기라고.또한, 그가 현재의 더 나은 행복을 바랄수록 그의 주위의 누군가의 불행이 수반된다. 켈리를 구하고자 하면 그의 친구인 토미가, 혹은 에반 자신이 살인자나 장애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엔 대가가 필요하다는 “give and take”가 철저히 반영된다고나 할까.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이상주의에 대한 조소를 날리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 에반은 그녀(켈리)와의 만남을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돌리면서(감독판에선 태아로 돌아가서 자살한다.) 나머지 사람들의 행복을 꾀한다. 자신의 사랑이라는 행복을 주고 나머지의 안정을 얻은 것이다.영화 ‘나비효과’는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지, 나비의 날개짓과도 같은 그 선택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다. 나 역시 나 또는 타인의 한번의 날개짓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고찰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비효과와 같은 이러한 파문은 인터넷이 보급된 오늘 날 더욱 거센 폭풍을 불러일으킨다. 인터넷에 올린 사진 한 장만으로도, 한 정권이 교체될 만한 파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리포트〉이콘과 탱화-인간을 위한 성화-《목차》Ⅰ. 머리말Ⅱ. 본문1. 이콘1) 개념2) 특징2. 탱화3. 이콘과 탱화의 비교1)공통점- 종교성- 민중신앙과의 융합2) 차이점- 주된 목적- 성상화 과정- 그림의 대상- 그림의 대상- 그림의 표현방식Ⅲ. 맺음말Ⅰ. 머리말민족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예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 특히 눈만 있으면 되는 그림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수세기동안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그림을 그려왔고, 이는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정교와 불교가 그 교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파하고 믿음을 심고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예배용 종교화인 이콘과 탱화이다. 각기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종교의 그림인 탱화와 이콘은 문화가 특수성을 지니면서도 보편성을 지닌다는 특성을 여실히 증명이라도 하듯이 여러 유사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보이지 않는 서로 다른 두 신을 그려내는 이콘과 탱화는 종교에겐 무기이자, 인간에겐 성스러움을 심어 삶의 의미를 불어주는 안식처이다.Ⅱ. 본문1. 이콘1) 개념이콘이란 성화, 특히 그리스 정교의 성화를 지칭한다. 흔히 성탄카드 등에 나타난 그림으로 친숙한 이콘은 우리에게 보여지는 단순한 그림 뿐 아니라 그 내면에 아주 깊은 신학과 영성이 담겨져 있다. 이콘이란 단어는 형상을 뜻하는 그리스어 이콘으로부터 나왔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서는 단순히 형상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형상의 목적은 정신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준다는 데 있다. 즉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또한 이콘은 그림으로 그린 성서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이콘은 글을 잘 모르는 일반 민중을 계몽시킬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신학 이라는 의미이자 신비적 체험과 기적의 살아있는 증거물이라고도 생각된다.2) 특징- 러시아 정교의 이콘은 비잔틴의 그것을 수용한 것이지만, 이교도적인 범신론과 자연신을 숭배하던 동슬라브적 전통이 여기에 가미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유일의 민족적 특징 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콘은 개별적 표현욕구를 엄격하게 제약하는 법칙성을 가지고, 표현방법은 미술 규칙과는 무관하며, 배경이 되는 자연 건물이나 인물, 또는 얼굴의 정식화된 묘사법을 중요시한다.- 기존의 비잔틴 이콘이 가진 우울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나 밝고 자비로운 러시아적 인물로 재창조되었다. 즉, 비잔틴의 추상적 상징주의에서 벗어나 현실감과 민족적인 정서를 획득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성모를 다룬 이콘이 러시아에서 가장 유행되었는데, 이는 성모의 이콘이 농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대지모 자연신과 쉽게 동화 될 수 있었던 것에서 기여한다. 즉 러시아 정교에서의 이콘은 정교의 신성성을 나타내면서도 민족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그에 따른 민중의 교화하는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2. 탱화불화는 석가의 설법과 불교의 내용들을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벽에 거는 불화를 탱화라고 부른다. 탱화는 불교의 이념과 교리에 입각하여 중생교화를 주목적으로 제작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이나 추상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일반미술과는 달리, 탱화의 영역은 불교교리와 사상을 주제로 한 성스러운 평면 조형예술로서 표현된다. 따라서 탱화의 특성은 결국 경전의 내용을 시각적인 형상으로 표출하는데 있으며, 더불어 경전의 극적인 장면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기도 한다.3. 이콘과 탱화의 비교1)공통점- 종교성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콘과 탱화는 모두 예배용 종교화를 의미한다. 종교란 인간이 성스러운 것과 관계맺음으로서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콘과 탱화는 이러한 종교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었다. 따라서 이콘과 탱화는 아주 유사한 상징적 기능과 교화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 북부 라다크 지방에 있는 티베트 사원과 중국의 돈황 석굴 벽화에서는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종과 지역을 초월한 보편성의 원리는 두 종류의 작품이 가지는 종교성 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신앙과의 융합러시아의 이중적 종교 체계에 의해서 슬라브족의 대지모 토속신과 연관있게 받아들여진 성모의 이콘과 마찬가지로 한국 불교의 탱화 역시 신중 탱화라는 이름으로 재래의 토속신 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토속신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많은 불, 보살들의 서원에 따라 신앙의 형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여러 지역의 많은 토속신들을 불법 수호신으로 편입시킴에 따라 탱화에 등장하는 신앙적 대상들 또한 지역의 토속신들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탱화나 이콘이 가지고 있는 성서적 특성인 민중교화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겠다.2) 차이점- 주된 목적내용상으로만 볼때 정교 이콘은 그 종교적 신성성 이외에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나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불교 탱화는 그러한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취지보다는 설법적인 특성을 통해서 민중을 교화시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 둘 모두 종교화로써 민중 교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순수하게 내용적 측면에서만 볼 때는 탱화가 더 경전과 성서 본래의 취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성상화 과정기독교의 성상화인 이콘은 그 본질부터 유일신 외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율법에 대한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즉 신이 인간으로 변화하여 잠시 내려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불교와는 달리 인간의 아들인 예수의 신격성 문제는 언제나 기독교의 불안요소이다. 이에 불상을 만들고 그에 대한 보조적 역할로 탱화가 존재하는 반면, 우상숭배에 발이 묶인 기독교는 상이 아닌 그림으로서만 자신들의 신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물론 성상화의 인정여부에 대하여도 정교내에서 수없이 반목하다가 결국 120년 동안의 이콘 을 둘러싼 논쟁은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한 이콘' 옹호자들의 승리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기독교 공의회는 드디어 성상이 우상이 아님을 공인하고, 교육상 유용하다고 인정하였다. - 그림의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