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갑신정변의 흔적을 찾아서1)답사 참여자기계 94 김범식 , 기계 94 홍진선2)답사 개요ㄱ)일정: 2001년 22일 土요일ㄴ)답사지: 안국동 일대ㄷ)집결 장소: 안국역 3번 출구ㄹ)집결시간: 08:00ㅁ)답사비 : 미정3)답사 일정우정총국-경인미술관-천도교대강당-서광범집터-헌법재판소-서재필집터-정독도서관-경운궁터-창덕궁4)답사에서의 각자의 역할범식: 답사지 자료수집 및 역사적 상황설명, 최종 편집진선: 답사지 촬영 및 답사후기 작성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을 하게되는 범식에게는 답사에서 소요되는 시간들이 무척 부담이었다.범식아 우리 답사한번 해볼래 답사는 무슨 답사냐! 그냥 책이나 보구 감상문이나 써내자 이런 식이었던 범식이야 완강한 태도도 먹을거에 약한점을 이용하여 답사약속을 식당에서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지금도 조금은 미안한감이 없지않는 것이 4학년이 바로 코앞이 졸업이구 TOEIC이다 입사시험준비다, 이것저것 할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어쨌든 우리는 답사를 가기로 굳게 약속하구 서로 어디를 답사지로 결정할지 생각해오기로 했다.인터넷도 찾아보구 책도 보구 이것저것 뒤져보았는데, 마땅히 찾을수가 없었던 차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수히 많았던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장소로 강화도가 최적합한 장소라구 생각을 하게되었다. 우선 강화도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원나라의 침입에 피난처였던 곳이기도한 강화도! 하지만 우리는 곳 강화도 답사를 포기할수밖에는 없었다.우리들이 강화도 답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로 경비가 너무 많이든다. 최소한 일박은 해야되는데, 숙식비를 따지게되니까 부담이 많이 갔고, 둘째로는 교통수단도 잘 모르고 그렇게 되면 넓은 강화도에서 이리저리 헤메다가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강화도는 좀 무리였어 범식이 말이다.우리는 좀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하고는 헤어지고, 그 다음날에 범식이가 우리 서울에서 한번해볼래 이걸계기로 돈도 적게들면서 시간도 절약되는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갑신정변이 발생지가 서울시 안국동부근에서 일어난 것을 알수있었구 우리는 갑신정변에 시작과 끝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우리는 9월22일 토요일 아침 8시경에 안국역 3번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둘다 자취생활하는 터라 아침을 거르기 일수지만, 오늘은 많이 좀 걸어야 할 것같아서 아침이라도 대충은 헤치우기로 했다. 이리저리 두리번 되다가는 결국 우리가 찾은 곳은 OK생라면집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늘 먹던 라면 한 그릇에 4500원이라니, 엄청난 출혈이었다.우리뿐만이 아니고, 한국근현대사를 수강하고있는 학우들도 거의가 답사는 처음일 것 같다. 답사는 처음이지만, 카메라들고 김밥싼 도시락하나면 있었으면, 영락없는 초등학교 소풍이었는데....우리는 맑은 날씨와 상쾌한 아침공긱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오늘 소풍나오건 아니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였다.아무튼 우리의 첫출발지인 갑신정변이 일어난 장소(우정총국, 옛 전의감터)로 이동하였다. 우정총국의 모습이 실려있는 여러 책들의 사진과는 달리 실제로 보니 건물주위로 울타리가 쳐져있었다. 이 사진을 찍기위해서 건너편쪽으로 이동했는데, 워낙 차들이 많이 오고가고, 쇠창살로 쳐진 울타리 때문에 사진이 만족스럽게 나오진 않았다. 우정총국건물 우측편에는 집배원 순직비가 세워져있었고, 건물 정면에는 우정총국임을 뜻하는 게시판같은 것이 있었으며, 도로쪽으로 옛전의감 터라는 표식을 볼수있었다. 건물 주변 상가 역시 아직까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영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음 이동장소인 경인 미술관으로 이동하였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경인 미술관은 인사동 골목어디 있다고 말씀하신걸 들었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우리 눈에는 아주 한참 헤멘후에나 경인미술관이라는 나무로 된 작은 표시가 눈에들어 왔다. 미술관 정경은 오래된 시골집처럼 건물 정문 쪽에 오래되보이는 항아리가 놓여져 있었고, 뜰 위로 올라서면은 넓은 대청마루가 보이는 미술관이 보이고, 우측으로 1,2전시관이 세워져있었다. 뜰은 꽤 넓은 편이었고 뜰 주변에 나무들이 건물과 아주 잘어울려져 있었고, 무척 토속적이며 정겨웠다.다음 이동장소인 천도교 대강당쪽을 찾았는데, 경인미술관과의 거리는 불과 30미터도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가까이가서 주위를 빙 둘러 보았는데, 마치 흉가처럼 거미줄이 창가에 붙어있었고, 창문틈사이마다 가득히 쌓인 먼지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우리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인물들에 집터를 찾는 것도 이번답사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김옥균, 박규수, 서광범, 서재필등의 집터를 찾아나섰다.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사이에 자리했다고 하는 서광범에 옛집터를 찾아가보았다. 풍문여고에 위치는 우정총국의 길건너편에 있는데 이 풍문여고는 옛날별궁자리였다고 한다.그 흔적으로 학교를 둘러싸고있는 높은 담장이 마치 기와형식으로 된 것으로 보아 짐작할수 있게 했다.우리는 서광범의 집터가 책에서 찾아본대로 막연하긴 하지만 뭉문여고와 덕성여고 상의 중간 어디 쯤인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골목골목을 돌고 또돌아봤지만, 서광범의 집터의 작은 표식조차도 찾을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돌아오자니 너무 아쉬워서 막연하긴 하지만 풍문여고와 덕성여고사이의 중간 어디쯤인가 있었을 자리를 찍고, 헌법재판소에 위치해있는 박규수 선생에 집터를 찾아갔다. 이곳은 헌법재판소 안쪽에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커다란 백송에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에 그림과 같았다.백송아래쪽에 백규수선생의 집터를 표시해주는 표식이 세워져있었다. 우리는 정독도서관 (김옥균의 집터)를 찾기전에 서재필선생의 집터를 찾았지만, 우리의 역사적배경지식이 짧고 너무나 막연하게 표시되어있는 책에 의존해서는 찾을수는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마치 군대에서 행군하는 기분으로 다리는 반쯤 풀려서 터덜터덜 정독도서관 안쪽으로 향했다. 도서관 입구에는 도로공사가 한창이서 먼지가 우리에 피로와 갈증을 한층 더해주었다.김옥균선생에 집터는 아주 쉽사리 발견할수 있었다. 도서관뜰안에벤취안쪽 잔디밭안에서 김옥균집터를 확인할수있었고, 그 주위에는 알수는 없지만, 종묘, 종친회라는 오래된 건물이 여기저기 문이 뜯겨나가고 구멍이 난 오래된 건물이 세워져있었다.벤취에 앉아 음료수와 담배로 피로를 달랜후에 경운궁을 찾아 갔다. 우리는 그 경운궁과 계동궁의 자리인 현대건설과 그 사옥 주위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여기가 계동궁있던 자리라는 표식은 발견할수 없어서 현대건설 정면과 그 사옥을 향해서 예전에 있었을 경운궁과 계동궁의 모습을 상상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형제도에 관하여...사형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죄값을 치루기 위한 최악의 방법으로 신에게 부여된 목숨을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에 의해서 살아갈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하는 것이다.사형의 실행방법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오랜 옛날에서부터 각 지역과 문화의 특성에 따라서 존재하였는데, 그 종류에는 팽형, 교수형, 화형, 총살형, 전기의자, 약물.... 등 다양한 형태로서 이것들에 공통점은 모두 어떤 죄에 대가에 따른 결과물로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결국, 죽이기 위한 수단들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형제도를 사람들은 죽음의 방법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하여 이러한 방법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죽음을 당면했을 때의 고통보다도 더 괴로운 것이다. 그리스에 철학이 발달했던 시기에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행복에 대한 최대의 방어물이다. 이처럼 죽음이란 어떠한 개인이 가지고 있던 목표나 자신에게 소속되어있던 모든 것들에서 잠시가 아닌 영원히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형제도는 아주 오랜 옛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원했던 수메르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에 내용에도 이 준사형제도가 엄연히 명시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형제도가 근래가 아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속해 온 것을 봐서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사형제도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사형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그것을 허락한 이도 알 수 없다. 그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사람들끼리 서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들을 꼭 지키도록 하기 위한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최고의 벌칙까지 만들게 되었으며,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사형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사형제도는 생명이라는 매우 중요하고, 존엄하여, 개인에게서 제일 소중한 것을 다루는 만큼,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에도 매우 신중하고, 공정한 위치에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론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귀중한 생명을 잃을 때도 있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형제도는 원시적 보복과 복수의 표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이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반성과 회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흙과 백, 음과 양처럼 딱 부러지게 구분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할 때, 사형제도의 찬성, 반대 이러한 두 가지 의견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뉘우치는 범죄자에게는 반듯이 죽음으로서 그 죄값을 치루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무성의한 사죄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생명은 매우 중요하고, 존엄한 것이며, 제일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남은 시간동안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찌하면, 더 유익한 사죄의 방법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4절 기업문화기업문화를 정의하면, 사회에는 문화가 있고, 개인에게는 개성이 있는 것과 같이 기업체에도 각기의 독특한 성격, 즉 기업문화 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문화는 기업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고유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며, 일단 형성되면 쉽사리 변하지 않고 유지되면서 기업구성원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업문화란 문화의 개념을 사회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미시적인 조직체 수준에 적용한 것이 기업문화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문화란 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형성된 가치, 규범, 관습이나 윤리-도덕 등을 일컫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 사회 내지 국가의 문화가 저마다 고유하고 다른 것처럼 한 기업이 설립되어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 기업의 독특한 분위기나 풍토가 조성되게 되는데 이것을 기업문화라 부르게 됩니다.그렇다면 기업에서의 기업문화의 중요함이란, 기업에서 훌륭한 기업문화를 갖는 것은 신제품을 하나 개발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새로이 개척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치열한 경쟁상태에서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인한 상대적 우위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는 반면에 일련의 가치 체계로 형성된 기업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기업문화의 역할은 조직의 형성기 및 초창기에는 기업문화가 그 조직의 특이성 및 타 조직과 구별되는 상대적 우위성을 보여주는 근원이 되고, 조직의 결속을 강화시겨 주는 역할을 하며, 조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문화는 행위의 지침을 마련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조직구성원으로부터 기대되는 바가 무엇인가? 어떤 행위가 보상을 받게 되는가? 조직 속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그 기업문화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기업문화는 조직원들로 하여금 행위의 방향을 뚜렷이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필연적으로 다원화된 조직에서 강한 기업문화는 조직의 결속을 다지는 접착제로서 다양하게 변화해 가는 환경에 융통성 있게 적절히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곤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가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기업문화는 조직의 여러 가지 현상을 다루고 이해하는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이용하며, 수정해 나가는 것으로서 가치의식, 행동방법, 경영이론, 강조정신, 상징특성, 관리시행 등의 여섯 가지의 요소로써 형성이 됩니다.
낙태에 대하여...나의 입장 : 나는 낙태를 허용하는 입장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 문제 를 생각해보려고 한다.낙태(인공 임신 중절)란 태아를 자연적 분만기 이전에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안에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임신은 한 부부의 자녀와 가정에 대한 희망의 실현으로 생각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임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든지 당사자들에게는 하나의 기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낙태의 경우는 원치 않은 임신인 경우이기 때문에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제일로 기뻐할 부모마저도 태아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낙태를 할 경우 태아의 생명보다는 어머니의 입장을 중요히 여기게 된다.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뱃속의 태아보다는 어머니의 인생을 더욱 중요히 여기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피임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100% 안전한 것은 아니고, 근친이나 강간등 원하지 않는 임신도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한 어머니가 태아를 지우느냐 낳느냐는 권한은 태아를 임신한 어머니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낙태를 결정하는 것도 어머니고, 태아를 존중하여 낳고, 낳아서 기르는 사람도 어머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입장이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의 생명이 태아로 인하여 위험하다면 당연히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낙태를 하게 될 것이며, 미혼모와 같은 입장이라고 할 때, 미혼모의 입장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사회의 냉대를 받는 여권 속에서 남편도 없이 배속의 태아를 낳기보다는 오히려 낙태를 하는 경우가 훨씬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낙태를 문제화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성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 할 필요가 있다. 사회관습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성문화에 대하여 보수적인 성향이 크다. 조선시대부터 뿌리 내려온 여성의 순결성과 지조는 높이 평가되긴 하지만 성에 대한 성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도 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성교육도 성교육전문교사에게 맡겨지지 않고, 일선 교사들에게 그 교육을 맡긴 것 또한 문제이다. 최근에 와서야 겨우 성교육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인데 그것이 바로 인구문제이다. 이러한 낙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만도 연간 약 200만명 이라는 이 수는 연간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 약 2∼3배나 되는 수이다. 만약 이렇게 많은 신생아들이 태어난다면 인구증가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낙태를 인구억제의 수단으로 삼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전면적인 낙태 금지는 오히려 낙태시술의 음성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또한,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큰 문제를 낳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