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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론]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평가B괜찮아요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남신들을 파악하는 것은 곧 가부장제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부장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이것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버지 남신들은 모든 가부장제 문화에 나오는 신들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미지로나 이상으로서나 남들을 지배하는 힘이 센 남성 신이다. 가부장제 남신들은 천상, 산꼭대기나 하늘에 사는 권위적인 남성들이다. 그들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성 신들처럼 모두가 자기에게 복종하기를 좋아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운명이 한 아들로 인해 거세되리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버지로서 종종 아버지답지 않게 행동하며 그들의 자식들에게 적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반면에, 가부장제 속에 살고 있는 어머니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여신이든 인간이든 간에 여성들은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공정치 못하게 대우받았다. 가부장제 속에서는 모든 남성들은 집안에서만은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권위와 야망에 순종하는 자가 이 세계에서는 보상받는 것 같다. 이제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남신들을 통해 가부장제에 나타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유형을 살펴보자.제우스, 포세이돈, 아데스는 제1세대의 올림피아 남신들이다. 그들은 3가지 모습의 아버지 남신들을 나타낸다. 우선, 제우스형 남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제우스형의 남성은 권력과 권위, 일정 영역에 통치권을 가진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처지이다. 그들은 독특한 인간적 기질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 즉, 그들은 고용되어 일하기보다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며, 재빠른 결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언변이 좋아 다른 남성들과 힘을 합쳐 일을 도모하면서 자신의 최대 이익을 추구하면서 권력을 굳건히 하고 권세를 확장하려고 한다. 그들에게는 결혼도 권력을 공고화하는데 쓰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그들은 자연히 바람둥이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선조가 되려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어 자식을 가지려는 욕구도 대단하다. 이들은 자식들이 자립하거나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는 주지만, 감정적으로는 냉랭한 아버지 이이며 별 쓸모 없는 아버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을 비우는 일이 잦긴 해도 권세를 부리는 아버지이다. 이런 제우스형 남성들에게도 문제점이 있다. 이들은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체만 보고 행동하는 것의 역효과를 잘 알지 못하며, 자신들이 종종 법 위에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최고 층에 있다 보니 타도 당할까 봐 두려워하여 과대 망상증을 가지 기도하며, 자신이 항상 모든 분야의 최고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들은 겸손해지고 약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연후에야 성숙하기 시작한다.포세이돈형의 남성들은 격한 기질이 그들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은 성질이 나쁘고 폭력적이며 원한을 품고 있으며 파괴적이고 위험스러우며 폭풍우와 소란을 동반한다. 하지만, 이런 그들도 감성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거나 그 밑바닥에 접근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도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 는 욕구는 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개인사에 무심한 면이나 전략적 사고, 의지력이 부족하다. 포세이돈형의 남성들은 자신의 본능과 감정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데 그가 외향적이라면 자연스럽게 즉시 표출이 되고 내성적이라면 내부에 숨어 있게 된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자신들은 깊고 강렬하게 느낀다. 포세이돈형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냉정하거나 부재 상태의 아버지가 아닌 웃고 울면서도 강한 남성이자 자식 곁에 있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반면에 감정의 동요가 심하여 자식들에게 폭력적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이들에게 있어 문제점은 정서가 불안하며 원한과 보복 등의 파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관찰하고 반성하고 객관적으로 사과하는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아데스형 남성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육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필수품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운명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눈에 띠지 않거나 남의 성가심을 받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은둔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데스는 내면 세계의 풍요로움과 주관성을 잘 보여주는 예술, 흔히 시각 예술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창조성의 원천이다. 아데스 형의 아버지는 전형적으로는 재미없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될 것이며, 자식에게 출세하라고 말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시절 사랑을 받았던 아데스형 아버지라면 그는 아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을 것이고 자기 내면 세계의 풍요를 자식들과 나누고 그들의 상상력을 키워 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문제점은 내성적이고 주관적인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들은 주관적이어서 남들에게 색다르게 보여 부조화된 존재로 색다르게 보이기보다는 남에 눈에 띠지 않고 조용히 있게 되 외톨이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아데스 형의 남성들은 감정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어 정기적으로 무미건조하여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이런 유형의 남성들은 자신의 다른 면들을 활성 하지 않는다면 고립된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룰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적절한 페르소나(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얼굴)를 개발해야 한다. 또한, 점차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내면에 지니고 있는 풍요로움을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이제 올림포스의 아들 신을 보자. 아들 신은 제우스가 좋아했던 아폴론과 헤르메스, 그가 멀리했던 아레스와 헤파이도토스, 또한 그가 아버지일 뿐 아니라 대리 어머니 역할도 하며 키운 디오니소스가 있다. 아들 신은 모두 5유형으로 나뉘며 각각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아폴론부터 살펴보자. 제우스가 가장 아끼던 아폴론. 아폴론형은 기술에 정통하고 질서와 조화를 존중하며 외양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보다는 겉모습 보기를 좋아한다. 또한, 이들은 느낌보다는 생각을, 친밀하게 지니기보다는 거리감을 두기를, 주관적인 직관보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좋아한다. 이런 형은 일로 성공하기가 쉬우며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쉽게 고전 예술 형식에 정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의사 소통의 문제, 친해지지 못함, 거부와 같은 감정적 소원함과 연관된 문제들을 갖는다. 이런 문제들은 그들의 오만함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거만하고 감정적으로 냉랭하고 자기 도취형이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면도 있으며 원초적이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아폴론형의 인간들이 성장하는 길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정신의 경계를 넘어 성장하는 것이다. 즉, 겸손을 배우고 사랑에 바탕을 둔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을 제한하는 원형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헤르메스형의 남성은 긍정적인 가능성과 부정적인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발명의 재주, 원만한 대인관계, 민첩한 사고력과 행동력은 일을 완수하거나 또는 속이는데 창조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특질들이다. 하지만, 이런 그는 충동적이고 한계를 짖지 못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기도 하며 자신이 영원한 청년인지 착각하고 계속 방황하며 돌아다니기도 하며 너무 바쁘기 때문에 친밀감을 갖지 못 한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감정과 정서적인 것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헤르메스형 남성들은 그가 시작한 일을 마치고 필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들과 겨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야 성공 할 수 있다.아레스형의 남성은 열정적이고 결렬한 반응을 보일 때 나타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며 가끔은 그에게 이롭지 못하고 남들에게 해가 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여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고려하지 않아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그들의 타고난 기질은 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며 남들이 보이는 반응이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확신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굉장히 감정적이며 구체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문제점은 많이 나타나겠지만, 술에 취해 있을 때 훨씬 더 쉽게 폭력을 자행하며 남의 기대에 자신이 미치지 못 했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 그들은 영원히 좌절하게 되어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것을 극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자극에 대응 할 것인지 아닌지 또 어떻게 댓을 할 것인지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성장하게 된다.헤파이토적이고 고상한 정신적 가치 ,권력, 적응력 ,예견 역에 가치를 두는 문화에서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박대 당하는 형이다. 그들은 자기 속에서 깊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분명하지 않은 것에 형태를 부여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격렬하면서도 내성적인 사람들이므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거나 자신도 자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힘들어한다. 이들이 성장하는 길은 스스로 권위를 가진 존재가 되어 자신이 지닌 다른 면들을 활성화시키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다. 디오니소스형 남성들은 강력한 긍정적인 잠재력과 부정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이 지닌 가장 고상한 부분과 가장 천박한 부분을 건드리며 마음속의 갈등과 사회와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신비주의자 남성들과 살인자 남성들에게 나타나는 형이기도 하다. 황홀경에 순간들과 굉장히 모순적인 충동을 경험하는 남성들 속에 있는 유형이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을 술잔치에 불러낼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잘 살아 내지 못하게 함으로써 혼란을 가져온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인식을 왜곡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어 정신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주의 깊고 수용적인 자아를 활성화시키고 , 생존을 위해 다른 원형들도 활성화시켜야 한다.
    사회과학| 2002.06.30| 7페이지| 1,000원| 조회(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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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법 ] 효율적인 독해 지도법 평가C아쉬워요
    일본어 독해 지도 수업을 통해 익힌 효율적인 독해 지도법일본 회화는 일본인들이 예로부터 대륙의 미술을 섭취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발전시킨 예술로써 동양 미술권 내에서 일본화(日本畵)라는 이름으로 특징지어진다. 기법과 미학적으로 일본 미술은 수세기에 걸쳐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구의 기법과 예술적 가치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동화된 사고와 기법에서도 일본인의 독자적인 취향이 고유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왔다.학기초 독해 지도 수업을 수강할 때는 왠지 낯설었다. 다른 사람이 번역해 온 것과 내가 생각해 온 것을 비교해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독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는 자체가 모호하게 느껴졌고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나 견해를 객관적으로 남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왠지 어색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일본어 독해 지도 수업을 수강하면서 내가 느낀 점들과 수업을 통해 익힌 효율적인 독해 지도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수업을 들어가기 전에는 독해 지도 수업이라는 교과목명만 보고 독해 지도에 관한 관련 서적을 읽고 그것을 정리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가을을 맞이하여 가을에 대한 수필을 읽고 그것을 분석해 나가자고 해서 약간 뜻밖이었다. 하지만, 가을을 맞아 그와 관련된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좋았다. 솔직히 생활하면서 일본 수필을 접하는 경우가 나 같은 경우에는 거의 드물었으며 개인적으로 서늘한 바람과 파란 하늘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 아래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우연이었겠지만 올해는 가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가을이 없는 듯 했는데, 가을 수필을 읽으면서 가을에 대한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수업 시간이 가을을 음미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독해 수업 시간에는 학습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선택해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독해 지도에는 유용한 것 같다. 학습자가 읽어도 잘 이해도 안가고 어려운 내용을 가지고 수업을 하면 학습자가 흥미를 잃고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습 효과도 저하될 뿐만 아니라 학습에 대한 능동적 참여도 또한 떨어져 수업이 딱딱해지기 쉽기 때문이다.수업 시간에 가을 에 대한 수필을 읽으면서 가을과 관련된 많은 단어가 등장하여 그와 관련된 어휘력이 풍부해지고 그 속에 있는 어휘를 분석하면서 어휘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었다. 한 개인이 알고 있는 특정 어휘는 그 어휘의 사용과 관련되는 장면, 분위기, 정서적 반응이 포함되어 그물망과 같은 연상 관계를 이루고 있다. 독해 지문에서 어휘는 단순한 집합의 형태가 아니라 어휘들 간에는 긴밀한 관련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존 지식과 사전 경험 등의 연상을 통하여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이번 수업에서는 수필을 통해 독해 교육을 하였는데, 수필 속에 나오는 어휘는 사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맥적 의미를 생각하며 적합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어휘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나의 어휘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깊이 생각해보고 다른 어휘들과의 관련성을 문맥을 통하여 이해하면서 독해력도 높아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사물의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나타내는 의태어 같은 경우에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1:1 대응이 되는 언어도 아닐 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는 것이 힘들다. 이러한 어휘에 대해 가장 적합한 의미로 이해하고 문장의 문맥 속에 잘 어울리도록 어휘를 적절하게 표현하려면 어휘들간의 긴밀한 관련성과 문맥적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그리고 대개 독해 수업에서는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독해 지도 수업에서는 내용 파악과 동시에 어휘 사용에 대한 적절성까지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이루어졌다. 사람마다 어휘에 대한 장면, 분위기, 정서적 반응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어휘의 의미나 쓰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는 수업 형태를 통해 독해 수업에서 많은 양의 어휘를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독해의 내용 파악이나 핵심 어휘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학| 2003.04.02| 3페이지| 1,0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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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일본미술 평가A좋아요
    REPORT{· 과목:· 담당 교수님:· 학과:· 학번:· 이름:· 날짜:일본 미술- 일본 회화를 중심으로 -2001421067 박 남 영Ⅰ. 일본 미술의 특징일본 회화는 일본인들이 예로부터 대륙의 미술을 섭취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발전시킨 예술로써 동양 미술권 내에서 일본화(日本畵)라는 이름으로 특징지어진다. 기법과 미학적으로 일본 미술은 수세기에 걸쳐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이들 중 일부는 한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구의 기법과 예술적 가치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동화된 사고와 기법에서도 일본인의 독자적인 취향이 고유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왔다.Ⅱ. 일본 미술의 흐름1. 일본의 고대 미술일본 최초의 토착민인 조몬족(繩文族)(BC 10,000∼BC 300년)은 ‘도구’라고 불리는 진흙 입상을 만들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여자의 모습을 빚은 것이었다. 기원 초에 그 기원이 다른 야요이족(彌生族)(BC 300∼AD 300년)들은 구리무기와 청동 종(鍾),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 등을 만들었다. 야요이시대 이후인 고훈시대(古墳時代 AD 300∼AD 710년)의 적토로 된 공예품으로는 청동 거울과 무덤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하니와’(埴輪)가 있다. 하니와는 사냥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 가옥, 동물 등을 만든 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보여주어 그 무렵의 생활 풍속을 알 수 있게 한다. 야요이 시대의 도타쿠(銅鐸-종) 위에 새겨진 단순한 모양의 막대상과 코훈 시대의 무덤 내벽을 장식한 벽화는 일본 회화의 기원이 되었다.◆ 아스카 · 나라 시대{선사 시대의 유품에 인간의 생활이나 풍속을 다룬 소박한 그림은 있지만, 이는 고고학적인 대상은 될지언정 회화의 자료로서는 불충분하다. 일본 회화는 대륙에서 전해진 불교를 주제로 한 회화에서 싹텄다. 6세기 중엽의 아스카 · 나라 시대의 회화는 어느 것이나 불교와 관계가 깊고, 대륙의 영향이 크다.{아스카시대의 미술은 크게 중국의 육조 시대 위나라와, 직접적으로 한국의 백제와 신라의 불교 미술 양식을 받아들였다. 백제의 아좌태자는 일본에 건너가 성덕태자상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다카마쓰 옛 무덤의 벽화는 고구려 바탕에 토착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 것이다.나라 시대의 미술은 중국 당나라 미술을 받아들여 불교 미술이 성행하였으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고구려 스님 담징이 그린 법륭사 금당벽화인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는 일본 회화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자랑하고 있다.2. 일본의 중세 미술불교의 융성은 대륙 회화의 이식을 더욱더 활발하게 했으나, 점차로 대륙 회화를 직접 모방하는 태도에서 9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당나라가 쇠퇴하게 되면서 일본은 점차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미술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헤이안 시대{그림에 있어서 그동안 중국 인물과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서 점차 벗어나 짙은 채색과 가늘고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표현 방법이 나타났다. 이러한 일본풍의 그림들을 야마토에라고 부른다. 일본인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자연 그 자체를 인간의 마음의 모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일본 회화는 풍경화와 함께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야마토에의 성행에 따라 일본적인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이 활발해졌다. 야마토에는 교토 근교의 경치를 묘사했으며, 초기 작품들은 주로 병풍과 미닫이문에 그려졌다. 야마토에의 대표작으로는 동경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현보살도 와 허공장보살도 를 예를 들 수 있다.헤이안 후기가 되자, 그림책과 부채에 삽화를 그린 두루마리 그림, 즉 에마키(繪圈)의 제작 · 감상이 성행하게 되었다. 에마키(繪圈)의 특징은 동세가 강하고 묘사가 섬세한 것으로 전쟁의 내용을 기록하거나, 불교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이하여 포교 등에 이용하였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1130년에 출간)는 에마키(繪圈)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가마쿠라 시대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 계급으로 권력의 중심이 옮겨졌으나 귀족 계급은 절과 신사의 운영자로서 부를 축적하고 다양한 예술 장르의 후원자로 남았다. 따라서, 이 시기는 무사 계급의 기호에 맞는 사실주의와 귀족 계급의 미술적 취향에 어울리는 보수주의가 2대 주류를 이루면서 이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강력한 힘을 추구했던 시대의 내면에는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무상관이 감돌았다. 무가의 지지를 받은 선종의 송원 문화가 가마쿠라에 이식되어 두루마리 그림, 즉 에마키(繪圈)가 쇠퇴하고 가마쿠라 와 교토 의 유명한 선종 수도원에서 유래된 수목화가 등장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일본 무로마치 시대(1333-1573)는 새로운 아시카가 막부의 권력과 남북조 통일, 대명 무역 등을 기반으로 한 시대였다. 이 시대의 미술은 선종 미술과 무가(武家)의 가라모노(唐物) 취미 등으로 상징된다. 송원화(宋元畵)를 규범으로 한 정상과 도석인물화가 부흥하고, 가오와 모쿠안등의 선승 화가가 나타났다. 선조화의 유행은 중국 그림의 수입을 부추겨 이당, 마원, 하규와 같은 절파(浙派)계통의 수묵화와 양해, 목계 등의 선조화들이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 선종 화가들과 그 후원자들은 중국의 성 과 유안 이 창시한 수묵담채화를 선호하였으며 1400년대 말엽에 선종 화가들과 교토의 후원자들은 수이보투가(水墨畵) 라고 불리는 수묵풍경화를 발전시켰다. 1368년부터 1441년까지 계속된 기타야마 문화에서는 수묵화가 애호됐고, 공무(公武)와 연가(連歌)가 성행하였다. 슈분은 남송과 조선의 산수 양식을 섭취하여 수묵화를 일본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 한화(漢畵)가 융성했는데 소오탄, 쇼오케이, 가쿠오를 비롯하여 다이토쿠 지일파, 코아미파, 가마쿠라파, 카노 오파등이 유명하다. 가노오파의 기노 모토노부는 야마토에의 기법을 가미하여 근세 회화의 기초를 확립했다.3. 일본의 근세 미술{회화는 대규모의 성곽을 장식하는 그림들이 유행하였으며 대부분 금박과 은박을 이용한 호화스럽고 장식적인 것들이었다. 성곽의 내부를 방식하는 특수한 목적의 그림들이 마치 병풍처럼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일본 회화의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중세의 수묵화가 가지는 절제와 함축의 그윽한 맛과는 다르게 화려한 색채와 기교적인 화면 처리로 장식적인 효과를 극대화 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모모야마 시대일본 모모야마 시대는 쇼쿠호 정권에서 도쿠가와 막부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근세로 진입한 시기로 고대 · 중세적인 권위의 몰락을 반영한 강렬한 표현과 호화로운 장식을 보여주는 현세주의적 인간 중심의 문화적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서양의 르네상스와 비유되는 고전 부흥기로 다양한 재료와 대담한 표현의 장대한 장식 미술을 창출했다. 또한, 금 · 은을 사용한 금벽화가 유행하였으며 무가의 초상화, 부처의 부인상, 유아상 등 풍속화가 확립되었다. 풍속화는 경제 활동의 발달과 더불어 대두된 시민 의식의 증대로 비롯된 것이며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 명암법을 이용한 새로운 양식이 등장하기도 하였고 서양 판화 제재를 이용한 인물도, 세계도 등을 제작한 풍속도 있었다. 소서원(小書院)등의 사적인 곳에서는 수묵화를 선호했다. 수묵화는 본래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지만 일본의 자연 풍토에 융합되어 풍부한 정치가 담긴 수묵화를 낳고 있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중국 회화를 모체로 하면서 일본적인 기법과 표현을 만들어 중국 그림을 일반화하고 다각적인 표현으로 유파를 형성하였다.◆ 에도 시대에도 시대(1603-1867)에는 막번 체제 확립에 의한 봉건 사회가 완성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쇄국 등의 정책으로 국내 평화가 유지된 시기였다. 상공업의 발달과 민중 계급이 형성되고 봉건제와의 갈등이 표출된 갖가지 문화가 이루어졌다. 미술은 어용 미술과 재야 미술로 나뉘어 중기 이후에는 주로 생활과 밀착한 세속 예술이 주도하였다. 초기에는 모모야마 양식이 남아있는 웅장한 금벽장 벽화가 묘사되어 화조화, 풍속화 등이 주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미술이 보급되었고 주자학을 관학으로 한 무가의 미적 선호 경향이 나타났다. 또, 신흥계급의 성장으로 사치스런 속세의 향락을 추구하는 미술이 전개되었다. 중기 이후에는 나가사키를 통하여 수용된 청나라와 네덜란드의 지식에 의해 서양화가 탄생했다. 간에이(寬永 1624∼644년)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회화들은 교토의 가모가와(鴨川) 강변의 유흥가에 모인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묘사하였다. ‘오사카’와 ‘에도’에는 이와 비슷한 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의 우키요(浮世-세속)라고 불리는 세속적인 생활 방식은 ‘우키요에’(浮世繪-세속적인 풍속화)라는{
    예체능| 2003.04.02| 6페이지| 1,000원| 조회(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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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문학 ] 일문학분석
    실생활을 기반으로삶의 애환을 노래한 작가石川啄木{과목:담당 교수님:학과:학번:이름:{◆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石川啄木 삶에 있어서 詩歌의 위치2.石川啄木의 삶 속에서 短歌의 의미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론{▲ 石川啄木詩歌는 여러 문학 형태 중에서도 가장 주관적인 정서를 담은 형식이다. 그러면서도 만인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정서가 가장 보편적인 정서에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의는 詩歌가 진실된 삶의 모습을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고 솔직하게 노래한 시인과 그 작품을 연구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의 여러 작가 중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시인으로 유명한 이시가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 以下 「다쿠보쿠」라 함)를 연구해 보기로 하였다.{▲ 一握りの砂다쿠보쿠는 短歌, 詩, 小說, 日記, 書簡, 評論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생애동안 貧困과 病苦의 생활에 시달리며 최후를 마친 문학자이다. 일본의 明治시대는 未開하여 문학자의 사회적 우대도 보잘 것 없었고 인정도 받지 못하던 시대로 다쿠보쿠 역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던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不幸한 삶을 살았다.그러나 「生活派短歌」이루어진 그의 두 개의 歌集 『一握りの砂(한줌의 모래)』와 『悲しき玩具(슬픈 장난감)』는 일본 근대 短歌문학사상 不滅의 명작으로 수 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다쿠보쿠는 이 短歌를 통하여 「國民詩人」, 「天才詩人」, 「生活派詩人」으로 불리고 있다.초기에는 短歌로 문학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동안 소설에 뜻을 두고 短歌에서 멀어졌는데, 이때의 短歌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의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는 중에 생성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歌集인 『一握りの砂(한줌의 모래)』는 소설에서의 실패와 경제적 궁핍 속에서 때로는 자살까지 생각하던 1908(明治40)년 6월 어느 날 밤, 갑자기 歌興이 일어 이 一大 天職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잘못되었다. 나는 단지 나의 전력을 다하여 글을 쓸 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작가이다. 그러나 다쿠보쿠는 모든 문학장르에 동일한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문학 장르 중에서 小說과 詩歌에 나름대로의 문학적 가치의 차이를 두었는데 특히 小說이나 戱曲을 높게 본 반면에 詩歌는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청춘을 바쳐 자신이 가치를 높게 부여한 소설에 전념하여 훌륭한 소설가가 되고자 노력하였지만 실패하였다. 文學을 天職으로 생각하던 다쿠보쿠였지만 소설의 실패로 인하여 自意識의 崩壞狀況에까지 이르러 단연 문학을 그만 두어야지 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은 당연히 죽음을 의미한다. 죽는 것이 싫다면,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다쿠보쿠는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쿠보쿠에게는 소설을 쓴다 → 팔리지 않는다 → 비관 → 불면증 → 소설을 쓸 수 없다 → 短歌를 짓는다. 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 이 당시 다쿠보쿠에게 있어서 短歌는 소설 실패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일 뿐이다.창작상에 있어서 나는 요즘에 이르러(지난날 반개월정도 소설을 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우타 등을 지었다. 그 번민의 결과) 비로소 충분한 자신을 얻었다.{) 『石川啄木 全集』第 七 卷 書簡(岩崎正宛,1908年, 7月 7日), 前揭書, p231그도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당시 유일한 안식처였던 短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정말로 죽고 싶어서 큰일이다. 모든 것이 시시하다. 우타 같은 건 담배와 같은 효능밖엔 없다.{) 『石川啄木 全集』第 七 卷 書簡(吉野章三宛,1908年 7月 18日), 前揭書, p234라며 短歌는 한번 피우면 날아가 버리는 담배연기와 같이 한순간의 위로의 가치밖에 없다고 했다. 短歌에는 「우타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일종의 는 바이다. 즉, 그는 生活과 詩의 일체화의 필요성을 발견한 것이다.또한 그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즉 진정한 詩人이란 자기를 개선하고 자기의 철학을 실행하려고 하는 정치가와 같은 용기를 가지 고 자기의 생활을 통일하려는 실업가와 같은 열심을 가지고, 그리고 항상 과학자와 같은 명민한 판 단과 야만인과 같은 솔직한 태도로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시시각각의 변화를 꾸미지 않고 거짓없 이 아주 침착하게 기재하여 보고하는 바의 사람이어야 한다.{) 『石川啄木 全集』第 四 卷 評論·想像 「弓町より」, 上揭書, p217우리는 흔히 시를 쓰는 사람을 「詩人」이라 부른다. 하지만 다쿠보쿠는 시인들이 자신을 「詩人」이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시를 비롯한 문학에 종사하는 것을 인간의 다른 어떠한 활동보다도 고귀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문학가이다」 라는 것 자체를 어리석은 논리로 보았다. 이러한 불필요한 자각이 종래의 문학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였고 현재의 문학을 우리의 필요에서 유리된 고귀한 장식품으로 전락시켰다고 보았다. 그가 이상으로 삼는 詩人은 詩人이기 以前에 인간이어야 하며 그것도 특수한 인간이 아닌 보통의 인간으로서 보통사람의 생활을 충실히 영위하는 자를 가리킨다.또한 이 시기에 창작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詩는 소위 말하는 詩여서는 안된다. 인간의 감정 생활이 좀 더 적당한 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만 변화의 엄밀한 보고, 정직한 일기이어야 한다. 따라서 단편적이어야 한다.(중략)우리가 요구하는 시는 현재의 일본에서 생활하고 현재의 일본어를 사용하며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 고 있는 바의 일본인에 의해 노래된 詩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石川啄木 全集』第 四 卷 評論·想像 「弓町より」, 上揭書, p218라고 해서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자유를 주장하며 현재 일상생활을 반영해야 함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을 위한 詩가 아니라 생활수단으로서의 詩를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다쿠보쿠에게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오카(盛岡) 中學校時節, 代用敎員時節 그리고 훗카이도(北海道)시절에 대해 回想한 것으로 그 유형은 과거나 고향을 아름답게 회상한 것,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회상되는 것, 회상으로부터 현재의 思慕로 이어지는 것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回想歌는 모두 현실생활에 대한 패배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럼 이들 回想歌에 나타난 그의 심리를 살펴보자.(1) 回想歌에 나타난 心理回想歌란 현실생활에 대한 절망감에서 나타난 現實逃避 心理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막다른 곳에 갇혀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상실한 상태에서 다쿠보쿠가 선택한 것은 과거의 생활이다. 그 속에서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만을 소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노래한 回想歌는 현실에서 얻은 절망감으로부터 자신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을 退行心理와 小兒指向的 心理 두 가지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자.● 退行心理『一握りの砂(한줌의 모래)』에는 上京하기 이전의 생활 즉, 故鄕 시부타미(澁民村)와 훗카이도(北海道) 방랑시절을 回想한 노래가 많다. 주로 ‘연기(煙)章’과 ‘잊을 수 없는 사람들(忘れがきた人)章’에는 대부분이 回想歌이다. 다쿠보쿠는 정신적·물질적으로 빈곤하고 病苦로 괴로운 자기 생활에서 벗어나 예전에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回想歌를 많이 읊었을 것이다. 또한, 그 행복했던 시절을 回想하면서 추억에 잠겨 잠시 현실의 시름을 잊고자 하는 退行心理가 작용하여 현실로부터 逃避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幼年時節의 故鄕으로 돌아가서 수많은 回想歌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나는 과거에 숨고 싶었다. 좀더 앞으로 나아갈 용기도 방법도 없어서, 그리운 것은 과거밖에 없었다. 나는 때때로 울었다.」{) 『石川啄木 全集』第 七 卷 書簡, 前揭書, p272-273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다쿠보쿠는 「過去의 經驗」을 「현재의 시간」으로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가 「현재」에 의미를 만,『누가 뭐래도 시부타미(澁民村)는 그리워라(かにかくに澁民村は戀かり)』라는 시를 보면, 「돌팔매에 쫓기듯/고향을 떠나온 슬픔/가실 날 없어」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故鄕 喪失 대한 깊은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短歌는 1905년 5월 여동생 고코(光子)를 데리고 훗카이도(北海道)로 떠나게 되었을 때에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다쿠보쿠와 고향 시부타미(澁民村)와의 관계는 그가 두 살이 되던 1887년 봄에 부친이 德寺 住職에 부임함에 따라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04년 12월 26일에 어버지가 宗費滯納을 이유로 德寺 住職의 자리에서 罷免당하는 사건을 계기로 고향과 멀어지게 된다. 그 후 고향을 떠나 모리오카(盛岡)에서 생활을 하다가 1906년 봄에 다시 시부타미(澁民村)로 돌아갔는데 그때 다쿠보쿠 一家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냉담하기만 했다. 그 후, 1년여에 걸친 부친의 德寺 復歸運動도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德寺 복귀를 유일한 염원으로 하면서 가난한 代用敎員生活을 참고 살던 다쿠보쿠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굴욕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영구히 고향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는 그가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시부타미(澁民村)의 땅을 밟지 않았다.그래서 다쿠보쿠의 故鄕에 대한 애수를 불러일으키는 短歌에는 고향에 대한 심리가 이분화되어 있는 것이다. 고향을 대인적인 것과 대자연적인 것으로 나누어 「고향의 자연은 항상 나의 친구이지만, 고향 사람들은 항상 나의 적이다」라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鄕愁’이라고 하면 대개 고향의 자연과 고향 사람들이 합체된 것을 고향이라 하며 또 그것이 합쳐져 鄕愁를 불러일으키는데 다쿠보쿠의 경우는 고향이라는 대상 자체가 이분화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확연히 이분되어 현실적인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어떠한 점도 시부타미(澁民村)에 끌리는 것이 없지만, 고향의 자연에 대한 애착만큼은 뜨거웠던 것이다. 이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매우 컸던 .
    인문/어학| 2003.04.02| 14페이지| 1,000원| 조회(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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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미래사회의 교사와 학생의 교육학적 관계 평가D별로예요
    9753016 일어일문학과 박남영미래사회의 교사와 학생의 교육학적 관계‘ 미래사회는 학교가 필요 없다. ’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것을 통해 교사와 학생의 교육학적 만남이 더 확실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학교가 필요 없다. ’라는 것은 교사의 역할을 지식만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매개체로만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존재라면 교사는 현재에도 필요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서적도 발달하고 방송매체 등도 발달하여 많은 지식만을 습득하기 위해 학교에 간다면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있어 교사와의 교육적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장소이다. 그럼, 교사와 학생의 바람직한 교육학적 관계의 대해 생각해보자.우선, 교사와 학생은 서로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고3때, 우리 반에 말썽꾸러기가 있었다. 그 애는 담임과의 관계에서 서로 신뢰성을 잃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담임이 다른 애들과 같이 야단도 치고, 면담도 하면서 그 애를 지도했지만 그 애는 번번이 담임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 애는 담임을 굉장히 미워했었던 것 같고, 선생님으로도 보지 않았다. 담임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니까…”혹은 선생님이 면담하자고 하면 “전 선생님이랑 할 얘기 없어요.”등 항상 삐딱하게 나아갔다. 담임과 그 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후에는 서로가 서로의 대해 참으로 무신경하게 살아가는 듯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난 서로의 대한‘불신’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과의 믿음이 있다면 학생은 교사가 지도하는 것에 따를 것이고 교사도 자기를 믿고 따르는 학생에게 더 많은 것을 가리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의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면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학창시절 중에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없다고 한다.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만난 이들은 세월을 통해 서로 부딪히고 하면서 사랑을 키워간다. 고등학교 때 문학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가리킬 때는 선생님 말 잘 듣고 하는 애가 예쁘지만 그런 아이보다는 말썽부리면서 내 속을 많이 썩히던 학생이 더 많이 기억에 남고 나중에도 찾아와. 아마도 서로 계속 부딪치면서 사랑이 싹튼 것 같애. 사람은 자주 봐야 사랑도 한다고 하잖니? 그렇다고 너희에게 말썽을 피우라는 건 아니야. 꼭 이맘때(스승의 날)가 되면 날 찾아오는 놈이 있어. 이 놈이 이제는 훌륭하게 커서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지만 그 놈 어릴 때를 생각하면 끔직해. 내가 교사생활 한 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아직까지도 그 놈보다 말썽피우는 놈은 없었던 것 같아. 물론 공부 잘 해도 선생님 기억에 남아. 하지만 그런 놈들하고는 정이 없어. 수업 시간의 얌전한 애들하고는 특히 부딪치는 일이 없어서 선생님이 이름을 잘 못 기억하는 거야. 그런 거 너무 서운하게는 생각하지마. 내가 1년 동안만 해도 300명 정도는 가리키는 것 같은데, 내가 무슨 기력으로 너희 이름을 다 외우겠냐?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이면 그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 해 준다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어. 서로의 대한 애정이 있기에 그래도 기억하는 거야. 이 놈들아 선생님들이 너희 야단친다고 미워하지마. 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너희를 계속 야단치는 거야. 선생님들의 관심은 곧 사랑이랴. 알았지? 그래. ”이 선생님이 스승의 날 전날 우리 반 수업 때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니 공부하라면서 이런 말을 해 주시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난 이 선생님의 기억에는 오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면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날 기억할 것 같다. 그때는 장난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일부러 담임 수업시간에는 짝하고 많이 떠들었다. 난 학급일지를 써야 하기에 아침에 1번 방과 후 1번씩은 꼭 담임과 1:1로 만났다. 아침에는 아무일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후에 학급일지 검사 받으러 가면 남영아! 상담실로 빨리 와. 다른 옆에 있던 선생님들. 남영이 또 말썽피웠구나. 저 녀석은 얌전하다가도 가끔씩 저런 다니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땐 친구들과 장난치고 놀면서 가끔 선생님에게 야단맞고 하는 것이 좋았다. 우리 반 말썽꾸러기 라는 것으로 담임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은 선생님과 나와의 서로의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선생님이 내게 관심이 없다면 방과후에 남으라고 해서 야단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도 선생님에게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이 없었다면 선생님이 야단쳐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게 맞아 허벅지에 멍도 들고 그랬지만 그래도 나에게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준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미래사회는 학교가 필요 없다. 고……난 이 말의 크게 반감을 느낀다. 만약 학교라는 것이 없다면 친구 사귀기도 힘들게 될 것이고 나와 같이 선생님의 사랑을 느끼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항상 선생님들 중에는 학생이 말썽을 피우면 선생님은 학교에서 공부만 가리켜 주는 사람인지 알아. 공부만 배우려면 학윈가. 아니면 독학하거나……선생님은 너희들이 이 험한 세계에서 낙오자 되지 말고 훌륭한 사람으로 크라고 야단치는 거야. 알아? 몰라? 하면서 훈계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대인관계를 점점 확장시켜 간다. 그 속에서 함께 좋았던 일과 그렇지 못한 일들을 함께 겪으면서 사회생활의 필요한 윤리를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미래사회에는 학교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미래는 통신 등으로 선생님도 집에서 강의가 가능하고 학생도 집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기에 학교의 갈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좋은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이론으로만 배우고 암기하고 할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한다고 해도 대인관계는 계속 유지하며 인간은 살아가야 한다. 대인관계를 유지 할 수가 없다면 이 세사의 모든 인간은 외로워서 살아가지 못 할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세상의 잘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학생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윤리도 가리켜 줘야 한다. 사회의 나오면 잘못한 행동은 그 사람의 단점으로만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지 그 사람에게 그런 단점을 고치라고 지도 해 주는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학| 2003.04.02| 3페이지| 1,000원| 조회(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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