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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모던시대의 교회 예배 형태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과 대안-소논문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배 형태에 대한 개혁주의적 비판과 대안- 열린 예배와 이머징 교회 예배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배 형태에 대한 개혁주의적 비판과 대안- 열린예배와 이머징 교회 예배를 중심으로 -□ 목 차 □I. 서 론1. 연구의 동기와 목적2. 연구의 방법과 범위II.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1. 역사적 배경2.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3.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신조III. 포스트모더니즘 예배 형태에 대한 고찰1. 열린예배2. 이머징교회 예배3. 열린예배와 이머징교회 예배의 비교IV. 예배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1. 성경적 근거2. 신학적 근거V. 개혁파 전통에서의 예배 이해 / 칼빈의 예배관을 중심으로1. 예배란 무엇인가?2. 누가 누구를 예배하는가?3. 언제 예배하는가?4. 왜 예배를 드리는가?VI. 현대교회에서의 개혁주의적 예배 모범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드려져야 한다.2. 단순하고 간결하게 드려져야 한다.3. 자의적 예배는 금한다.VII. 결 론참고문헌I. 서 론1. 연구의 동기와 목적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예배와 안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단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있지 않는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는 성경적 계시에 따라서 예배의 범위와 방법을 한정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순수성과 그리스도의 중보적 유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배는 두 개의 맞물려 있는 축과 같기 때문에 예배가 혼탁해지면 기독교도 혼란스러워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기독교는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의미 있는 고찰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21세기에 들며 우리는 지난 세기 말과 너무도 달라진 사회 속에서 과연 교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조그만 두려움을 느낄 정도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 여기에는 비단 예백학적인 입장에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목회적 입장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회가 어떤 예배를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로까지 그 고민의 범위가 확장되어진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몇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지난 30여년간 다양한 형태의 예배 형태를 취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열린예배)와 최근 쟁점 속에 있는 이머징 교회이다.이런 교회와 예배의 공통점은 현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교회들이다. 미국에서는 새들백, 윌로우크릭, 모자이크, 노스포인트, 펠로우십, 깅햄스버그, 이스트사이드 커뮤니티 교회 등이 있고, 아시아권에서도 싱가폴의 FCBC, 그리고 국내의 온누리교회, 사랑의 교회, 지구촌교회 등을 들 수 있다.1. 열린 예배1) 열린 예배의 기원열린 예배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윌로우크릭커뮤니티교회, 새들백벨리커뮤니티교회 등 미국교회에서 시작된 예배형태이다.) 전통적인 예배 형태에서 벗어나 현재적인 문화요소를 접목시켜 지루하지 않은 축제적인 예배를 지향한다. 메시지를 제시하는 수단으로서 드라마, 멀티비젼 영상, 토크쇼, 리드미컬한 밴드 연주, 마임, 만화프레이즈등 시선을 끌만한 요소들로 시선을 딴곳에 팔지 않도록 하는데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열린 예배(Open Worship)는 또 구도자 예배라고도 하는데 그 기원으로는 미국의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인 빌 하이빌스(Bill Hybels)목사에 의해 처음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 예배의 특징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를 모르는 것과 누가 사회자이고 누가 설교자인지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기존의 교회 에배에 식상한 구도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고 있다. 1973년에 빌 하이빌스 목사는 사우스 파크(S적으로 이머징 교회라는 용어는) 그러한 교회들의 급속한 수적 증가, 20대를 유인하는 능력, 대중음악 스타일을 차용한 현대적 예배, 웹사이트를 통해 기독교 하부 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주목을 받아 온, 대중적이면서도 청년 지향적 집회에 적용되었던 용어다. 이런 용어가 일반화되어 현대의 새로운 문화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달리 말해 새롭게 등장하는 포스트모던 상황속에서 예배와 선교와 공동체를 탐구하는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Emerging Churchs」의 저자인 깁스와 볼저는 이머징 교회를 “포스트모던 문화 안에서 예수의 길을 실천하는 공동체”로 정의하면서 다음 아홉 가지의 실천적인 면을 일반적 특징으로 정의하고 있다.)이머징 교회는 (1) 예수의 삶을 따라가고, (2) 세속의 영역을 변화시키며, (3) 매우 높은 공동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세가지 행동들 때문에 이머징 교회는 (4) 낯선 이들을 영접하고, (5) 아낌없이 봉사하며, (6) 생산자로 참여하고, (7) 창조된 존재로 창조해 나가며, (8) 하나의 몸으로 인도하고, (9) 영성활동에 참여하는 교회다.2)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머징 교회그러면 오늘날 이머징교회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머징 교회가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주목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선적으로 교회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앞서 언급한 책의 깁스교수는 ‘최근의 저서, 현재 교회의 경향에 대한 세미나 주제, 그리고 인터넷의 광범위한 블로그에서 이머징 교회에 대한 참고문헌을 풍부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관련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이머징 교회 역시, 교회와 관련해서 과거에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았다가 사라져버린 많은 운동들처럼, 그저 최근에 나타나 일시적 유행이 되어 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이머징 교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정리한 D.A 카슨은 극히 짧은 역사를 가진 이머징 교회 운동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놀란다고 말하고 있다.하였다. 그러나 한편 예언자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희생제물은 그것 자체가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곧 그 예물들은 다만 마음과 영혼속에 있는 내적 태도의 외적이며 가시적인 상징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었다. 그것들은 다만 예배자의 회개와 복종, 그의 기도와 찬양을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유일한 유일의 적당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몇몇 시편에서 볼 수 있음과 같이 희생제사에 의한 예배와 “영적”인 예배를 함께 놓는다고 하여 모순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후자의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서 사용되는 예배라는 용어들을 살필 때 더욱 드러난다. 먼저 구약에서는 예배에 관한 대표적인 용어를 둘을 들 수가 있다. 그 첫째가 ‘아바드’(db'[;)라고 하는 히브리어다. 이 단어의 뜻은 “하다” “만들다” “숭배하다”, “(하나님)께 복종하다” 인데, 본래 노예나 고용된 종들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말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되면서 부터 제물을 드리는 봉사와 레위인들의 회막에서의 봉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19:21, 렘 44:3).) 두번째 용어는 ‘샤하아’라는 단어인데, “굴복하는 것”, “자신을 엎드리는 것”, “경배하다”라는 뜻으로서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 개념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마음과 몸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사용된 이상과 같은 어휘속에 나타나는 뜻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며 섬겨야 할 존재라는 사실과 경배와 복종의 생활이 예배자들의 주요한 삶의 근본”) 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2)신약에서의 예배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서에서는 예배라는 표현이 세 가지 용어로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εω)이다.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누구의 손방편이 말씀과 성례전인 것을 강조하였다.)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데, 예배가 타락되고 오염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다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원리에 따라 그는 예배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 회복에 그의 생명을 걸었다. 칼빈에 있어서 목회는 말씀과 성례전에 대한 사역이었는데, 목회자가 매 주일 수행해야 할 중요한 직무로 설교와 교육과 매주일의 성찬 성례전을 집행하는 일을 꼽았다. 흔히 생각하듯이 칼빈이 성례전적인 예배를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꾸고자 했다기보다는 매주 예배에서 성만찬이 초대 기독교의 단순성과 조화를 되찾도록 하고, 예배에서 성경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예배의 구성은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를 강조하면서 성찬을 경시하는 것은 전혀 칼빈적이 아니다. 오히려 칼빈은 “사람들이 일년에 한 번 성만찬에 참여하도록 한 관례는 분명히 악마의 농간이다. 주님의 만찬은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한 번은 참여할 수 있도록 거행되어져야 한다.”)고 하였다.1. 예배란 무엇인가?칼빈에 있어서 예배란 무엇인가? 칼빈은 합법적인 예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거룩하고도 진실한 경외”)인데, 이 경외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예배의 중요한 기초는 “하나님을 사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덕, 의로우심, 거룩, 지혜, 진리, 능력, 은혜, 관용, 생명 및 구원의 유일한 원천으로 인정하는 일”이며, 따라서 이 일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할 때 하나님만을 우러러보는 일 이상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기도가 생기며, 찬미와 감사의 행위도 발생한다고 한다.칼빈은 참된 예배와 그릇된 예배를 구별하면서, 롬 12:1-2이 가르치는 영적 예배가 참된 예배이며, 영이신 하나님께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 예배할 마음이 있다면, 자신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회과학| 2012.04.18| 22페이지| 5,000원| 조회(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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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관복음에 나타난 겨자씨 비유의 권별 독특성과 차이점-소논문
    공관복음에 나타난겨자씨 비유의 권별 독특성과 차이점공관복음에 나타난 겨자씨 비유의 권별 독특성과 차이점목차서론 ??????????????????????????????????????????????????????????? 2복음서에서의 비유의 의미???????????????????????????????????????? 3겨자씨 비유 해석???????????????????????????????????????????????? 4공관복음 사이의 비유 차이점????????????????????????????????????? 4마가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마태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누가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결론 ??????????????????????????????????????????????????????????? 7서 론비유란 일상생활의 친숙한 상황을 예증함으로써 화자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을 납득시키고자 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등 명백한 가르침을 위해서는 ‘비유’라는 문학형태로써 사용하였다(막 4: 33, 34).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의 1/3이 비유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비유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본 考는 이러한 비유의 형태로 쓰여진 ‘겨자씨 비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본 考의 고찰방법은 현존하는 형태로의 공관복음을 본문의 대상으로 삼아 공관복음 사이의 병행구절을 비교하면서 그 특징과 차이점을 비교할 것이다. 특별히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역사비평학적 논쟁점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본 考는 비유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그것을 하나님 나라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John Timmer 전제)를 존중한다. 성경 본문의 인용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개역한글 성경을 사용했다.복음서에서의 비유의 의미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직접 쓰신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시던 때부터 20여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기록된 것이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전달을 윗해서 언어양식을 사용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 바로 ‘비유’이다.이 비유를 칠십인역에서는 두 구절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히브리어 마샬을 파라볼레로 번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파라볼레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고 마샬이라는 셈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샬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셨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구약에서는 마샬이라는 용어는 속담을 나타내며(예, 삼상24:13; 10:12; 겔12:22~23; 16:44; 18:2~30), 풍자, 비웃음, 조롱 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예, 민21:27~30; 신28:37; 사14:4; 합2:6) 때로는 수수께끼(T;49:4; 78;2), 혹은 풍유를 나타내기도 한다.(겔24:2~5; 17:2~10; 삼하12:1~4))공관복음에는 파라볼레가 48회 등장한다. 마태복음에 17번, 마가복음13번, 누가복음 18번이다. 복음서에서 사용된 파라볼레는 주로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은유(막7:14-17; 눅5:36~39), 둘째, 속담(막3:23~24; 눅4:23), 셋째, 유사(마17:20; 막4:30~32), 넷째, 실화(마21:28~31; 25:1~30; 눅14:16), 다섯째, 예증 혹은 실례(마28:23-25; 눅10:29~37; 12:16~21), 마지막 여섯때는 풍유이다.(마13:24~30; 36~43; 22:2~14))비유는 헬라어로 parabole 인데 이 말은 para(나란히)라는 전치사와 ballo(던지다)라는 동사가 결합한 것이다. 즉 단어적인 의미는 '나란히 던져 주는 것'이다. 어려운 진리나 추상적인 개념을 이미 형상화되어 있는 개념이나, 이야기, 자연물 등을 나란히 던져 비교해줌으로 이해를 쉽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비유를 자세히 보명 오히려 비유가 외인들에게는 진리를 감추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하늘나라의 비유는 그의 백성들에게는 진리를 쉽게 가르치는 반면 외인들에게는 진리를 감추는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겨자씨 비유 해석믿음의 선조들은 겨자씨 비유를 설명할 때 하나님 나라의 성복음이 비천하게 시작되었다고 실족하여 뒤로 물러가지 않도록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을 격려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은 씨앗이기는 하지만, 자라나면 극히 커서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숲을 이루는 겨자씨에 비유하고 있다.박윤선 역시, 제자들이 복음 운동에 대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힘을 주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윤선은 왜 천국의 복음운동을 겨자씨로 비유했을까 하는 자문에 복음운동은 겨자씨와 같이 그 시작의 미약함을 강조한다. 복음운동이 시작은 미미하게 여겨 경멸히 여김 당함까지 하지만, 그 성장과 발전이 점진적이며, 결국은 영화롭고 위대하게 됨을 표현하고 있다.예레미아스)는 처음 말해진 본래의 삶의 자리는 예수의 활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눈을 갖고 바라던 상황임을 염두해 두고 있다. 작은 겨자씨에서 큰 가지가 생겨나는 것처럼 참으로 확실하게 하나님의 지적은 나의 작은 제자 무리들로 하여금 구원의 때에 모든 민족을 다 포용하는 큰 세계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공히 이들은 겨자씨를 설명하면서, 천국 복음은 그 현재에 있어서 미미한 존재이지만, 그것이 후에 크게 확장되며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미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공중의 새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혹은 마귀를 가리킨다 하나 합당한 해석이 아님을 지적한다. 다만, 겨자나무에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 뿐이다.)공관복음 사이의 비유 차이점"겨자씨 비유"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 "악한 농부의 비유"처럼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다 같이 나오는 세 비유 중 하나에 속한다.) 겨자씨 비유가, 마태의 경우에는 '가라지 비유'와 '누룩비유'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마가의 경우에는 '비밀리에 자라는 씨의 비유'와 함께 나타나고 있고, 누가의 경우에는 '누룩비유'와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특별히 마태와 마가는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씨임과 나중에는 나물보다 크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마13:32, 막4:30). 반 심겨진 겨자씨 한 알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만큼 엄청나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그것의 놀라운 성장과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공관복음에서 겨자씨 비유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주권의 하잘 것 없는 시작과 광범위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그 마지막과의 대비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공관복음 사이의 표현은 저자의 강조점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마태와 누가는 마가와 달리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공통점을 보인다.우선, 마태와 누가는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깃들인다고 표현되고 있으나, 마가는 ‘그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겨자씨 식물이 자랐을 때의 표현 역시 마태와 누가는 ‘나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마가는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낸다고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겨자씨 비유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누룩의 비유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가는 겨자씨 비유 이전에 ‘자라는 씨의 비유’를 연결시키고 있다.이 이유를 김득중)은 E. Schweizer의 The Good News According to Mark를 인용하여 두 비유가 처음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전해지다가 초대 교회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더 세부적으로 비교해본다면, 복음서 기자들의 저술 목적에 따라 내용적 강조점이 더욱 달라짐을 볼 수 있다. ‘성장’과 ‘대조’라는 항목에서 더욱 비교되며 명확해진다.마가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마가는 어떻게 씨가 싹트고 다른 어떤 나물보다도 크게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는지를 말한다. 마가복음은 다니엘 4장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두가지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큰 나무의 그늘’(보호를 마련해 주는) 주제와 ‘그 가지’(새들의 둥우리를 마련해주는) 주제이다.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마가가 의도하는 이 비유의 의미는 “ 하나님의 나라가 비록 지극히 작은 겨자씨 같지만 다 자라면 은신처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호를 마련해주게 될 것이다‘라는 하는 교회 안에 많은 이방인들이 포함되게 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Q자료에서는 다니엘 4장의 나무 표상에 의해 이 비유를 이방 선교에 대한 비유로 연관시켰다. ‘공중의 새’라는 용어가 묵시문학과 랍비 문헌들에서는 이방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종종 사용되기 때문이다. 에레미아스도 ‘깃든다’라는 동사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합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종말론적 전문 용어임을 언급하고 있다.)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저자는 이방 선교 문제보다는 보호 주제가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가가 다른 공관 복음과 달리 누룩비유를 삭제한 이유도 그 비유에는 보호 주제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이유이기 때문이다.마태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반면, 마태복음에서는 대조와 함께 ‘성장’이 강조되고 있다.마가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과 모든 나물보다 큰 것이란 용어에서 나타나듯이 대조에 강조점이 있고, 가장 작은 씨가 가장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어 보호받게 됨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대조와 성장을 다 강조하고 있다.마태복음에서 겨자씨가 ‘밭에 심어지고’(성장). ‘모든 씨보다 작은 것’(대조), ‘자라면’(성장), ‘나물보다 커서’(대조). ‘나무가 된다’(성장과 대조)고 정돈하는 데서 대조와 성장은 명확해 진다.마태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큰 나무가 되는 작은 씨이다. 즉, 작은 겨자씨가 어떤 것이 되는가에 관심이 있다. 새가 둥지를 만들 만큼 자라버린 큰 나무는 마태에게 있어서 자기 시대에 완전히 성장해 버린 교회와 잘 비교될 만한 것이다.누가복음에서의 겨자씨 비유또 다른 공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대조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누가의 경우 씨의 크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물론 씨가 나무가 된다는 말에서 마가와 마태에서와 같이 대조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의 강조점은 분명 성장에 있다. 그 예가 ‘자라서... 되어...’라는 누가만의 표현이다. 성장의 불가피성이 바로 이다.
    사회과학| 2012.04.18| 8페이지| 3,000원| 조회(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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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서에 나타난 여성관 연구-소논문
    복음서에 나타난 여성관 비교 연구복음서에 나타난 여성관 비교 연구들어가며“여인”이라는 단어는 공관복음서 중 마태복음에서 14번, 마태복음에서 14번,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24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소 비중있는 성경의 기록에 비해 복음서의 시대나 초대교회의 여인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소외된 존재들이었다. 신구약의 성경속에 나타난 숫자를 표시할 때 여성이 제외된 것이 단적인 예이다.본 考는 복음서에 나타난 여인의 특성을 교재)를 중심으로 알아 보고자 한다. 우선 신구약을 통해서 유대세계의 여성관을 살펴보고, 순차적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본문을 근거로 여성관을 살펴볼 것이다. 이후 결론적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여성들의 특징을 종합하고자 한다.유대 세계의 여성관구약성경에서 여성에 대한 모습은 남성위주의 편견이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물론 드보라나 에스더 등을 통해서 여성의 지위를 말하고 있긴 하지만, 창세기 1장과 2장의 비교를 통해 남자가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형성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십계명을 통해서도 열 번째 계명이 여성을 남자의 소유물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신약시대에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 그리고 바울의 언급 등을 볼 때 사회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세밀히 살펴본다면 여인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왔다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그 예이다.(골 3:18-4:1, 엡5:22-6:9>마가복음에서 나타난 여성관마가복음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전체 여성관을 파악하려면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하는 것이 좋겠다. 우선, 여인에 관한 자료를 얼마나 많이 수집, 소개하고 있는지, 둘째로 왜 이런 이야기를 그렇게 선택하여 소개하고 있는지, 셋째로 그들이 선택하여 소개하고 있는 이런 여인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여성문제에 관한 어떤 특별한 관점들이 드러나고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음서 기자들이 여인들의 이야기들을 다른 어떤 이야기들과 연예수와 제자들을 ‘섬기는 자’로 묘사되고 있고,(4:40) 혈루증 앓던 여인을 보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5:34)는 선언을 듣게 된다. 마가가 기록한 예수의 공생애 첫 이적 역시 유대인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남자’를 고친 직후에 열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는 이야기를 기록(1:29-31)하는 등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한 예수의 이적 활동이 남자와 여자를 고쳐주는 이야기로 편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기록에는 여인들이 중요한 위치에서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비싼 향유를 예수의 몸에 뿌린 여인이나, 제자들은 모두 도망해서 찾아 볼 수 없는 예수의 수난 현장에서 세 여인들은 계속 목격자로 남아있는 기록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이제 더 본문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자.1:29-31에 나타난 베드로의 장모의 경우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치료해준 첫 번째 여인이다. 이 이유를 저자는 Women and the Genesis do Christianity의 의견을 빌어 예수가 남자와 함께 여자를 고쳐주셨음을 강조하면서 남자와 여자를 전혀 구별하거나 차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7:24-30에 나타난 수로보니게 여인과 그의 딸에 대한 언급은 중요한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해야 된다. 첫 번째로 마가는 5장에서 유대인 회당장과 그의 딸을 살려준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제시하면서 예수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여인과 그의 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심을 강조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마가는 이 기록을 통해서 여인의 믿음을 강조한다.5;21-43의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여인은 이야기간의 유사성이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여자’를 고치는 이적 이야기이고, 두 이야기 모두 ‘12’라는 숫자로 연결되어 있다. 야이로의 딸은 12살 먹은 아이였고, 혈루병 여인은 12해를 그 병으로 고생한 여인이었다. 셋째로 두 여자 모두 예수와의 ‘접촉’을 있다. 이들은 모두 제자들앞에서 칭찬을 받고 있다. 또한 예수의 말씀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로 소개되고 있다. 셋째로 인접한 이야기인 서기관들에 대한 정죄이야기나 유다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의도적인 비교이다.마가복음에서 여성관과 관련해서 하나 더 주목할 부분은 아내의 이혼에 관한 부분이다. 마가는 10장 12절에서 여자가 남편을 버릴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있다. 이는 병행구절이 마태의 기록(19:1-12)과는 비교된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사상을 돋보이게 강조하는 부분이다.마태복음에서 나타난 여성관마태의 여성관은 자신만이 독특한 견해를 드러낸다기보다는 소개하는 과정에서 앞선 언급한 마가와 약간의 다른 견해들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있다.우선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이야기(8:14-15)를 보면, 마가에 비해서 마태는 예수가 베드로의 집에 들어갈 때, 예수의 동행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람들이 장모의 병에 대해 예수에게 보고했다는 부수적인 설명도 삭제되었다. 이는 마태가 마가복음)의 본문 내용을 일부 삭제하여 축소한 것은 부수적인 것을 삭제함으로써 이야기의 본질적인 것을 좀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편집 의도 때문일 것이다. 마태는 베드로의 장모라는 여인을 더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종 들고 섬겨야 할 대상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여야 한다는 점을, 그리고 여기서 베드로의 장모가 바로 그런 모범을 보인 첫 번째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9:18-26의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마태가 오히려 마가에 비해 축소되어 소개되고 있다. 마태는 부수적인 부분들을 제거하고 삭제해 버림으로 오히려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것을 더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믿음 때문에 불쌍한 여자 아이가 예수로부터 구원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혈루병 여인 역시 율법에 의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받아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가치를 완전히 무시 당하고 있던 여인을 부수적인 위치에서 핵심적인 위치로, 부대의 변두리로부터 무아 들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가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태는 이방여인의 ‘믿음’을 강조한다.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며 비록 이방인 여인이지만, 남자 제자들보다 큰 믿음을 가졌고, 예수로부터 병 고침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한편 마태는 마태만이 소개하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예수의 족보에 나오는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1:1-7), 빌라도의 아내(27:19), 빈 무덤에 나온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28:1-15) 등이다.먼저 예수의 족보에서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이름 외에 다른 네 명의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다. 마리아를 제외한 이 여인들은 모두 이방인과 관련된 여인들이다. 이는 마태가 의도적으로 예수가 이방인의 구원자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또한 여인들의 이름 앞에 공통적으로 ‘...로부터’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여인들로부터 다윗 가문의 메시야 혈통이 이어져 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과 그 탄생에 여인들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마태는 또한 그의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 가운데서 이방인 빌라도의 아내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그녀가 예수의 무죄를 변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했다고 표현되고 있는데, 이 또한 마태가 여인과 아내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기록을 통해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여성관여성에 대해 가장 긍정적이며 우호적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누가다. 복음서들 가운데서도 여성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다. 그는 특히 마가복음에 소개된 여인은 거의 다 소개 한다. 시몬의 장모, 야이로의 딸과 혈루병 여인,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과부, 예수의 죽음과 매장을 목격했던 갈릴리 여인들 등등이 그렇다. 누가는 여인들의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더더욱 주목되는 것은 누가가 단지 자신의 자료에 나오는 여인들의인(7:36-50),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10-38-42), 허리 굽은 여인(13:10-17), 정의를 요구한 과부(18:1-8), 예루살렘을 위해서 울었던 여인들(23:26-32) 등은 오직 누가에 의해서만 기록된 구절들이다.여인이란 단어도 마가복음 8번, 마태복음 14번인데 반해 누가에서는 24번 사용되고 있다.왜 이럴까?김득중은 여러 연구가들의 전언을 통해 누가가 이런 배열과 기록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 함께 그리고 나란히 서야 할 존재임을, 그리고 그들은 명예와 은총에서 동등하며, 똑같은 은사를 받았고, 똑같은 책임을 가진 존재임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누가는 다른 누구보다도 남자와 여자의 평등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여성에 특별한 관심을 둔 기록자였다고 할 수 있다.)이제 구체적으로 누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의 탄생이야기와 관련해서만 등장하는 엘리사벳을 살펴보자. 복음서의 여인들이 대개 누구누구의 장모나 누구누구의 딸 등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달리 엘리사벳은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이는 그 이름이 ‘나의 하나님은 그분에 의해 맹세하는 분’이란 뜻으로 독특한 임무를 수행할 여인임을 암시한다. 누가는 1:6에서 이 여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며, 더 나아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음을 말해준다. 엘리사벳은 성령충만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등 긍정적 표현들 속에서 여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예수의 탄생과 관련되어 표현되는 모친 마리아, 그녀를 ‘은혜 받은 자’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자로 기록되고 있다. 누가는 어쩌면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하나님 앞에 서는 존재이며, 남성과 똑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 같아 보인다.눅7:36-50에 나온 여인을 보면서 주목되는 것은 이 여인과 시몬의 행동을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44-46) 시몬은 손님인 예수를 제대로 대접하지도 못했다. 예수에게 발을 씻을 물도 제공하지 않았고 머.
    사회과학| 2012.04.18| 7페이지| 2,0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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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장로교회의 정치원리
    장로교도이면서도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장로교회의 신앙과 정치 체제,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역사 서문을 통해 이 책의 번역된 이유를, 그리고 대부분이 장로교회인 한국 교회를 향해 이처럼 사뭇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고 있다.사실 요즘처럼 대형교회가 교단화되고, 독립적인 사역을 펼치는 시대에 장로교회의 성도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의미를 찾는 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로도 인지될 것이다. 그러나 장로제도가 '성경적'이라고 했을 때는 그 맞닥뜨려지는 중압감은 매우 달라진다.이러한 의미에서 존 맥퍼슨의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장로교도이면서, 그 신학을 배우는 자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장로정치의 흐름속에 어떠한 목회를 해야 될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역자는 서문에서 이미 정확하게 핵심을 펼쳐 놓았다."지도자도, 신자도 모두 신앙고백이라는 틀이 교회 형성의 공통분모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장로교회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시낭고백과 일치하는 것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실제로 이 세상에서 건전하고 튼튼한 신앙과 교회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p.4).결국 이 책을 통해서 당연하면서도 지극히 성경적인 정치원리가 무엇인지를 여러 정치제도의 비교를 통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우선, 서론을 통해서 교회 정치에 대한 비교를 통해 장로주의 정치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중정치, 감독주의, 그리고 장로정치의 여러 행태 중에 장로정치의 新定說(Divine Right)을 주장한다. 교회의 본질에 관한 깊고 철저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교회의 헌법의 중요한 핵심이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며, 장로주의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최근 성경의 권위가 무시당하고, 신정설에 대한 회의가 많아지는 즈음에 성경적 원리를 고민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바이기 때문이다.이어 제1부에서 이러한 성경적 원리에 입각한 장로주의에서 갖게 되는 직분자와 그 직무에 대한 이야기로 그 논의를 이어 나간다. 그러나 본격적 직분자의 임무를 언급하기 전에 교회관에 대해 먼저 정돈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교회를 신자들의 교회라고 정의하며, 그 목적을 신자들의 거룩함의 원천이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교제와 동시에 신자 상호간의 사랑안에서 교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라고 명명하고 있다. 장로교회는 이러한 목적을 통치자를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그 통치자가 성직자 위계론이 아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본격적으로 직무에 대해서 논하면서는 은사와 구분하고 있다. 그것은 직무의 개념이 여러 기독교공동체에서 개인의 특별한 은사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도직이 그 예이다. 사도직은 그 후에 확립된 직무들처럼 은총의 은사를 소유한 것과 본질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 치리하는 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 등의 직무가 바로 은사와 관련된 직무들이다. 저자는 은사가 없이 선택된 사람의 흔적도 없다고 항변한다.더 진행하면서 클레멘트와 터툴리안의 의견을 존중하며 직무에 대한 논의를 끄집어낸다. 그것은 직무가 성직자의 계급제도의 경향에 관한 흔적은 전혀 없으며, 직무관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러한 관점은 몬타니스트에 의해 변질되면서 왜곡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직자는 초대교회에서 단지 일반 신자와 구별하기 위한 임직된 자들이었다.톺아볼만한 대목이다. 최근 성직이 계급화되면서 치리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사이의 간극성 등을 무분별하게 벌려놓는 것을 볼 때 초대교회의 관심은 새롭게 현재에 정립해야 될 부분이기도 하다. 심지어 현재에 중요한 부분인 세례와 속죄에 대한 선언도 당시에는 둘 다 성직자 계급에 속해 있는 않는 자들에 의해서 종종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세례와 속죄에서 안수는 분명히 상징적이며 선언적이고,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 사이에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기원할 때 기도에 덧붙여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장로교회에서 있어서 구체적인 직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로마서 12장 7, 8절 등을 들어 말씀사역, 치리, 자비를 베푸는 것 등이다. 즉 교리, 훈련(권징), 분배이다. 이들은 목사(설교자), 장로(치리자), 집사(분배자)등으로 임무가 정해지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된다. 현재에 있어서 치리 장로에 대한 생각이나 안수집사의 구제나 분배의 역할은 자칫 소홀히 여겨지는 부분이다. 이런 의미 속에서 다시 곱씹어 보아야 한다.그래서 그런 것일까?저자는 치리 장로, 교사 장로, 집사 등 각각의 임무에 대한 성경적 기원과 그 바른 역할에 대한 긴 호흡의 글을 이어간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치리장로의 경우 감독제도와 비교를 많이 하고 있다. 즉 치리장로가 현재의 감독주의의 감독과 같은 역할로 인식하기에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치리장로와 가르치는 장로의 차이를 오직 은사의 차이이며 은사의 계발의 차이라고 정리하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현재의 장로정치의 제도는 신학교육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의 구별이 목사와 장로라는 직무의 구별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러한 임무를 이 책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초대교회와 루터파 교회, 그리고 개혁파교회인 츠빙글리, 칼빈 등의 언급, 더 나아가 프랑스의 개혁파 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그 직무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고 지도하며, 곤고한 자를 위로하고, 타락한 자를 깨우치며, 도움이 필요로 하는 자에게 조언을 하기 위하여 심방하며, 목사를 돕는 역할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 치리장로는 먼저 앞장서서 근면함을 보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교사로서의 장로는 설교자로서의 직무와 관련해서 그 중요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사직의 본질이 봉사직이지 사제적인 측면은 아님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자로서의 장로를 언급하면서 사도직은 계승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설교자로서 장로는 말하는 자의 영적인 공감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마지막으로 언급되는 집사직은 현재 장로교회에서 가장 혼돈되는 직책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봉사하는 것, 도는 봉사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을 일컫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바울서신의 후기에 속하는 빌립보서에서 처음으로 '디콘(Deacon)'이라는 말이 교회의 직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최초의 일곱 사람을 선출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도들은 말씀에 봉사하는 모든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책임져야 할 임무를 새롭게 뽑았다. 그들을 선출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집사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다. 그들은 가난한자, 과부, 고아들 등 비교적 소홀히 도움을 받고 있는 자들을 위해 정직하고 참되며, 기독교적 품성으로 인해 신뢰를 받는 자로 한정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집사의 임무를 교회의 물질적인 것과 관여하고 있다. 또한 항존직 직원으로서의 위치를 갖고 있기도 하다.직무에 이어서 제2부에서는 교회회의와 헌법에 대한 논제를 펼쳐내 보인다. 당회, 노회, 총회 등 현재 장로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회의들이 어떠한 근거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개하는 것이다.먼저 교회회의(church courts)를 교회 헌법 가운데서 의원직과 치리권을 규정하고 있는 조직단체를 일컫고 있다. 따라서 의회의 직능은 입법, 행정, 사법의 기능을 모두 갖는다. 이러한 교회의의의 구성원은 유일한, 그리고 불가결하게 그 자격을 장로직으로 밝히고 있다. 독립교회의 회중이라고 답하고 있는 것과 명확히 그 선을 긋는다.이러한 구성원이 갖게 되는 공통적 직능은 그들에게 맡겨진 무리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을 분담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에 따른 의무를 권면하고 회의에서는 좋은 질서의 증진과 치리의 실행을 요구하는 일 등을 해야 하는 것으로 단정 짓고 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치리서에 따른 것이다. 물론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 치리장로와 목사 사이에는 권능에 대한 구별이 있음도 말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12.04.18| 4페이지| 1,000원| 조회(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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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_구약신학 요약 및 독서보고서
    ? 알게 할 수만 있다면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그 절대적 사실을...그리고 그 진리는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라는 것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그들이 눈을 열어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인한 소망과 기쁨,그리고 영광을 보게 할 수만 있다면...구약성경신학 월터 카이저 著1. 서 론구약에 관해서서평 / 구약성경신학 월터 카이저 著논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리 녹녹치 않아 보인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함으로써 성경을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사람들조차도 구약에 대한 연구에는 얼굴을 돌린다고 표현하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구약을 다루는 주제나 방법 역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Elmer A. Martens는 그의 책, 『God's Design』에서 계획(또는 언약)이라는 중심성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으며, Gerhard von Rad 같은 경우에는 구약성경의 다양한 신학에 눈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이후 하나님나라 개념이 확대되면서 ‘구속계시사’적인 측면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최근에는 구약의 율법이나 절기 등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교회들이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시도는 개혁주의 교회들 중에서도 보여 지고 있다.구약에 대한 이러한 상황인지 때문인지, 이 책의 저자인 Walter C. Kaiser는 그 서문에서 구약의 관심을 갖고 다루어야 될 주제들이 무시되고 있음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p.3). 가장 무시되는 부분을 그는 ‘방법론과 정의’적인 부분으로 지적한다. 특히 현대적 상황과 구약과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아 보인다. 그래서 그는 1부의 전 부분을 정의와 방법에 대한 고찰로서 구약신학의 말문을 열어가고 있다.이어서 그는 이 방법론에 기초한 ‘언약’ 중심성으로 구약성경 신학의 자료들을 풀어 낸다. 족장 이전부터 족장시대, 모세시대, 왕국 이전시대, 다윗 시대, 지혜시대, BC 9~7세기를 거쳐 포로시대와 포로 후기의 예언자들까지의 신학을 언약이라는 틀 속에서 정돈하는 방식이다.마지막으로 그는 여기서 구약 연구를 조직신학이나 종교사 연구 방법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카이저에 따르면 구약의 각 책들은 저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으로 그 속에는 내적인 중심점 혹은 기본 틀이 있다고 말한다. 좋든 싫든 구약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며 거기서 통시적, 구조적 연구방법을 도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그는 강해설교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리는 몇 안 되는 성경신학자다. 강해설교란 "본문이 메시지의 내용뿐 아니라 메시지의 형식도 안내하는 설교"다. 대부분 강해설교가 성경 구절들을 찾아내 설교를 만든다는 생각에서 한걸음 나아가 메시지의 형식까지도 본문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그는 현대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구약의 스토리를 우리 현실에 맞게 접목시켜 주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3. 조직신학이나 교회사와 구분되는 성경연구 방법론저자가 이 책을 통해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성경신학, 특히 구약신학에서의 방법론적인 부분에 우선 유념할 필요가 있다. Kaiser는 최근 사용되는 구약신학의 형태들에 대해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구약성경 사상과 신앙의 기본 윤관을 조직신학이나 사회학 등에서 선택된 신학적 원리에서 기인함으로 우선으로 하는 구조적 형태나, 전승사적 방법인 통시적 형태, 더 나아가 성경의 인물들이나 어휘 등을 통해 고찰하는 사전 편집적 형태, 주제별 형태 등에 대해 애매모호하다는 것으로 그 전제를 두고 있다. (P.20)이어 그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그렇다면, 구약신학의 연구 분야에서 특별한 방법론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구약성경에 대한 중심적인 관심을 구분할 수 있는 내적이고, 지속적이며 특수하고 독특한 주제나 계획은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는 이 책의 중요한 관심이자 특징이다. 아마 저자가 성경신학적 설교에 중점을 두면서 고민하게 되는 결과의 표출인 듯 싶다. 기존의 모든 방법론적 현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그의 방법론적 중요성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카이저는 이 부분을 것이다.(p.37))카이저는 여기에 단호한 반증을 시도한다. 성경의 통일성이 깨어지는 것은, 성경기자들이 주장하는 조직과 계획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자연적인 발전 원리라든가 헤겔의 변증법적 원리가 본문을 지배하게 될 때다(p.43)라는 것이다.카이저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이러한 단호함이 보인다. 그것은 성경을 성경의 앞뒤의 문맥과 연관시키면서 그 주제를 찾고자 할 때이다. 창세기 3:15, 9:25-27, 12:1-3 등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본문에서 그 중심성을 ‘언약’으로 풀어가고 있으며, 그 언약을 ‘축복과도 연관시키고 있다.5. 시기에 따른 언약의 발전이제 카이저는 이러한 중심성 고찰을 통한 방법적 전제하여 구체적인 발전을 시도한다.역사-지형, 인간 그리고 사건이 따르는 실제 역사 안에서 개념적 규칙을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음 4가지로 요약하며 전개한다.(p.78)1. 족장 이전시대의 ‘축복’과 족장 시대의 ‘언약’2. 족장 시대의 ‘언약’과 모세의 ‘율법’3. 왕국 이전 시대의 ‘신명기 사상’과 다윗의 ‘언약’4. 지혜 시대의 ‘창조신학’과 예언적 ‘언약’첫 번째 언급은 족장 이전시대이다. 카이저는 창세기 1장-11장까지의 핵심적인 특징과 확증은 에덴, 노아, 아브라함의 ‘축복’에서 발견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의 선포와 더불어 前족장시대의 과정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타락이나 홍수, 바벨탑 사건으로 인한 분산 이후에 축복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이 책의 중심성을 추구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특히 창11장의 바벨탑 사건을 이후에 나오는 12장과 연관시키면서 ‘세계적인 축복의 언약’으로 언급하는 것은 신선한 접근으로 다가온다. 타락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타락을 언급하면서 창3:15절의 언약이라는 중심성을 논하고 있고, 이어서 ‘축복’을 논한다.자손의 축복 - 셈의 축복 - 모든 족속에세 축복으로 그 중심성을 확대해 나가는데 그 기저를 ‘언약’에 두고 있는 것이다.족장시대는 언약의 준비들이라는것을 기원6. 축복과 저주물론 구약의 어느 계약도 이러한 원칙에 반드시 충실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모세시대의 언약을 진행할 때는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왕국이전시대는 언약의 장소로서 그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신명기 기자의 언급에서만 69회에 걸쳐 언약한 땅을 ‘소유하고’, ‘상속’하게 될 것ㅇ라는 언질을 반복한다. 결국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은 민족적 우월감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았던 말씀을 명확히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언하는 증거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서 카이저는 또 다시 중요한 접근을 하게 된다.‘안식’에 대한 조항이다. 신명기 12:9, 열왕기상 8:56, 역대상 22:9, 이사야 28:12, 미가 2:10 등의 본문을 설명하면서, 본문의 ‘안식’은 지형학적으로 장소, 물질적인 것으로 강하게 관련되었음을 강조한다. 이 ‘안식’은 더 이상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준비했던’ '장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안식에는 지형학적인 의미 이상의 내용이 있었다. 안식처는 하나님께서 머물거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었다. 더 나아가서 이 장소는 ‘전쟁의 신’인 여호와를 통해 정복하고 이루시는 땅을 나타내고 있다.이어 카이저는 언약의 왕으로서 다윗을 언급한다.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장인 사무엘하 7장의 위치를 통해 언약을 풀어나가고 있다. 앞선 창세기 12장의 언약과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예레미아 31장의 새언약을 염두해 두면서 진행하는 것이다.다윗은 사무엘에게서 먼저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런 후에 그는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사무엘상 16:13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로 여호와의 신이 강하게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름 부음 받은자’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 39회 나타나며,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에 대하여는 23회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연이어 제시하는 구절들은 다윗이 지상위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통치할 여호와의 왕이며,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다윗과 회개를 요구하는 선지자들의 일성이 일어나게 된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현재는 받아야만 했으나, 이것 다음에는 새로운 날, 새로운 종, 새 계약,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승리가 따르게 되었다.6. 새 언약소위 새 언약이다.그러나 유념할 것은 새 언약이란, 이전 것에 기반을 전혀 두지 않고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관련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새 언약은 결코 언약의 갱신이 아니고 언약의 확고성을 말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이를 설명하는 7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 역사 가운데 가장 중대한 시대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p.301) 왜냐하면 국가의 멸망과 오랫동안 예언되었던 바벨론 포로에 직면한 위기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처참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속에 멸망하게 된다.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렘31:31에서만 표현된 ‘새언약’을 통해서 이러지게 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32절) 이 새언약을 출애굽 광야시대 기간 동안 이스라엘과 체결한 옛 언약과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새언약은 옛 언약의 확고성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한 이전의 모든 선언들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새언약은 옛언약보다 더욱 포괄적이며, 더욱 효과적이며, 더욱 영적이며, 더욱 영광스러움을 나타낸다.(p.319) 새언약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 제시된 옛 언약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그 모든 언약들을 더 영속시키고 있다.이러한 새언약의 영광은 포로라는 최악의 상태속에서도 햇살같이 이어가고 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승리를 극대화시킨다.이러한 예언대로 언약의 나라는 신약시대의 ‘더 좋은 언약’으로 이해되어지며, 영원한 과정속에서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7. 긍정적인 측면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책은 여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1> 언약 중심으로 해석다.
    독후감/창작| 2012.04.18| 12페이지| 2,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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