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론이문열 아가 를 읽고김 홍 식당편이 밥죽 - 반찬을 집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비빕밥 형태로 하되, 함부로 퍼흩지 않게 긴 나물 같은 건더기를 많이 섞고, 또 너무 묽지도 되지도 않게 해서 만든 것재활원에서 실습을 했었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생활하는 그 곳에는 마냥 눕거나 기대서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잘 씹지 못하는 그들의 식사는 아가의 당편이 밥죽 과 같은 형태로 제공되었다. 싸움을 하듯 밥을 먹고 있는 당편이를 위해 을순이와 칠보네가 머리를 모아 만들어 낸 음식에는 재활원에서의 잘게 다진 반찬처럼 배려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시설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장애인들이 오히려 대접받고 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의 한 일원으로써 그들의 역할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들이 격리 되는 것이 옳다고 당연히 생각하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일까? 재활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산책을 갔었다. 뒷문을 통해 나가서 뒷문으로 돌아오는 황량한 코스가 친구들의 사회적응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그 이유를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았다. 많은 지역주민이 싫어한다고 했다. 무슨 권리로 싫다고 하는지 갑자기 본인이 부끄러웠다.우리가 사는 이 곳은 정상인만의 세상이 아니다. 아니 정상 이라는 관념조차 내가 생각할 때는 정상적인 생각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 사회에 살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가 있고 구성원들이 그 자리를 찾을 때에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입체파는 답답한 병 속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현대 회화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Ⅰ서론피카소 그림은 그림 같지 않다. 수리력이 뛰어난 유치원생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단순한 각도를 버리고 엉뚱하게(?) 뒤틀린 입체적인 시선으로 상식을 뒤엎는 작품세계를 보여준 피카소는 그 똑똑한 유치원생보다는 깊은 감성을 우리에게 전달한다.피카소를 통해 회화는 마침내 사진이 결코 보여 줄 수 없는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입체파는 분해된 현실을 전체적으로 결속시키는 묘한 힘으로 단번에 매력 있는 그림이 되었다. 그것은 그림이라기보다 종합된 미지의 공간이다.Ⅱ 개요1907년부터 1914년까지 피카소, 브라크, 레제, 그리 등이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입체파(Cubism)는 Cube(입방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 회화의 전통의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재구성하였다.Ⅲ 전개1 초기(세잔적) 입체주의(1907~1909)사람들은 주의를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다. 세잔은 눈앞에 있는 것을 정확히 관찰함으로써 세잔이 되었다.세잔은 “미술의 본질은 형태에 있고, 지상에 있는 모든 형태는 구나 원통, 원뿔이라는 본질적인 형태로 단순화 시킬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세잔은 원하는 완전한 형태를 그리기 위해 시점을 옮겨가며 본 것들을 하나로 종합화 하였다. 그 결과 시점을 고정시킬 때와는 달리 형태에 왜곡이 생기게 되었다. 완벽한 형태를 그리기 위해 세잔은 시점까지도 파괴 시켜 버린 것이다. 명암법의 파괴에 이은 시점의 파괴는 미술에서 혁명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전통적인 서양미술은 공간과 그 속에서의 대상물을 표현할 때 항상 원근법이라는 철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세잔의 그림에서 원근법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다. 세잔은 완전한 형태를 그리기 위해 언제든지 시점을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세잔의 조형사고를 그대로 계승한 피카소는 하층민들의 어두운 생활상과 고독감을 청색으로 표현한 ‘청색시대’등을 거쳐 기념비적인 명작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그림을 이 시기에 발표하기도 했다.2 분석적 입체주의(1910~1911)분석적 입체주의의 핵심은 다시점의 관찰과 화면의 재구성에 있다. 형태를 각각의 면들로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렸다. 사물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 위에서 본 모습, 밑에서 본 모습을 한 번에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고 입체파는 생각했다.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은 매우 과학적이었다. 입체적 본 형태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거기에 시간까지도 하나로 결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은 제목을 보고 내용을 유추할 뿐이지 사람들은 그것들을 알아 볼 수 가 없었다. 더 큰 고민은 눈, 코, 입 등 입체파가 그린 형태들은 모두 조각 조각으로 분해가 되어 그 형태들에다 삶의 정서를 반영할 수가 없게 되었다.예를 들어, 피카소의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1911)」은 미술과 현실간의 다툼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여기서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일단 사람의 머리와 파이프를 찾은 후에는 나머지를 해독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이것은 후에 종합적 입체주의가 나타난 배경이 된다.3 종합적 입체주의(1912~1914)1912년에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업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종합적 입체주의는 미술작품이 자연이 아닌 예술이나 인공물에서 유래한 각 요소들의 조합으로 창조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회화예술은 물감을 표면에 바르는 예술이다. 피카소는 그의 유명한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1912.5)」에서 그림의 3분의 1에 프린트 된 유포조각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유표조각은 그의 입체주의적 물체들, 신문, 파이프, 유리잔등이 그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은 표면의 역할을 한다. 또, 「병, 유리잔, 바이올린(1912~13)」에서 바이올린 형태의 일부분은 신문조각과 화면의 종이 위에 그린 목탄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는 잘라 붙인 모조 나무껍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 옆에 있는 다른 신문지 조각의 잘려진 면은 바이올린의 또 다른 윤곽선을 이루고 있고, 그 위에는 유리잔을 상징하는 형태가 그려져 있다.이와 같은 작품과 대면하였을 때, 우리는 취향에 따라 찬양조로 또는 경멸조로 그 새로움을 강조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통과의 깊은 관련성을 강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새로움이라는 속성이 보다 두드러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미술의 전통적인 영역 이외의 세계 또는 하위의 영역이라고 생각되기 쉬운 곳에서 취한 재료를 사용하는 점, 현실세계와 긴밀하게 또는 느슨하게 게임을 하면서 이상화된 미를 성취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게임 자체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점, 하나의 그림에서 서로 모순되는 정보를 제시하는 점, 콜라주 방법을 사용하여 모든 채색의 개념을 전반적으로 거부하는 점, 그리고 그림의 표면이 관람자가 그것을 통해서 환영적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과 같아야 한다는 통념을 완전히 부정하는 점 등이 그 혁신성이라 하겠다.
〔주요 생명 복제 일지]다음은 생쥐, 돌리양 등으로부터 복제아기에 이르기까지 최근20여년간 생명체 복제의 역사이다.▲1983년= 수정란의 세포를 나눠 생쥐 복제 (생식세포 복제)▲1986년= 면양 복제(생식세포 복제)▲1997년=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에 의한 복제양 돌리 탄생, 미국클린턴 대통령 인간복제 금지법안 의회 제출▲1998년= 복제 쥐. 소 탄생▲1999년= 한국서 복제 젖소 영롱이 탄생▲2000년= 복제 돼지 탄생. 미국 클로네이드 인간 복제 추진 발표▲2001년=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 등 인간복제 강행 발표▲2002년= 일부 유전자 조작한 복제돼지 탄생, 고양이 복제. 클로네이드, 복제한 인간 배반포기 배아 비디오 공개▲2002년 11월 26일= 안티노리 박사, 인간복제 아기 2003년 1월 출산 발표▲2002년 12월 26일, 클로네이드의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인간복제 아기 1호 탄생 발표▲2003년 1월 19일, 복제된 남자아기 첫 탄생(클로네이드)▲2003년 2월 4일, 5번째 복제아기 출생(클로네이드)Ⅰ서론97년 봄, 영국 로슬린연구소에서 이안 윌멋 박사에 의해 돌리라는 양이 처음 복제된 이후 인간복제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우리나라에서는 98년 서울대 황우석교수에 의해 송아지 영롱이가 복제되면서 동물복제가 본격화되었고, 우리나라의 복제기술은 세계 5위권 안에 이미 들어섰으며, 이와 유관된 불임치료술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기에 사실 인간복제를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완료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이 인간복제를 뚜렷이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마저도 생명공학육성법으로 생명공학을 국가적 차원에서 오히려 지원하겠다는 취지의 법률인 만큼 인간복제금지를 강력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여기에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생명공학을 장려하고 있으며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는 오늘의 상황이 우리나라가 인간복제공장을 차리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하는 인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이러한 시점에 인간배아복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인간배아복제의 과정에 관해 언급하고 이어서 윤리적 문제점과 이에 대응하는 종교계의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인간배아복제인간복제에 사용되는 기술은 그동안 동물복제에 많이 사용돼 온 체세포 핵이식과 수정란 분할법의 두 가지가 있다.1 체세포 핵이식법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 사용됐는데 성숙한 난자에서 핵을 빼낸 뒤 복제하려고 하는 대상인물의 귀나 피부 등에서 체취한 체세포를 핵 대신에 넣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체세포가 핵이 제거된 난자에 잘 삽입될 수 있도록 전기충격과 난자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배아를 배반포기 단계(4-5일)까지 배양하는작업을 거친다. 이때 복제된 배아는 치료용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는 ‘공 모양의 세포덩어리’와 태반으로 형성되는 ‘영양배엽세포’로 갈라지게 된다. 여기서 내부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할 수 있는 배반포단계까지를 ‘치료용 복제’라고 하며, 배반포기 단계의 난자를 대리 여성의 자궁에 이식시키면 이는 ‘생식을 위한 인간개체 복제’가 되는 것이다.제작년 11월 미국의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사가 세계 처음으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도 바로 이 방법었으며, 이번에 클로네이드가 복제인간을 탄생시킨 것도 이 기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2 수정란 분할법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후 분열해 4∼8개의 세포가 됐을 때 각각의 세포를 분리, 배양시킨 다음 대리모의 자궁에 넣어 복제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이는 정상적인 임신에서 일란성 쌍생아가 생기는 원리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자. 난자가 섞여 유전형질이 혼재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자기복제는 아닌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또한 이 복제방법은 지난 93년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에 의해 처음 시도됐으나거센 윤리적 비난을 받음으로써 현재는 거의 시도되지 않고 있다.Ⅲ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생명의 시작이 수정 시점부터라는 의학적 논거를 받아들일 때, 인간의 가치는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은 시기에 의해 변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수정란과 배아가 가치에서 차이가 날 수 없으며, 배아와 태아가 생명의 존엄성에서 구별될 수 없으며, 신생아와 영아가 인간의 가치적 관점에서 차이를 둘 수 없는 것이다.배아복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인간배아들이 손상받으며 상당부분의 배아들은 폐기처분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인간들이 현미경 하에서 갖은 폭력을 당하며 무참히 살해되는 셈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21세기를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로 예고대로 항거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배아는 거대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물론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암과 같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을 개발해낼 수 있으며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장기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식분야에 획기적인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닌 여분의 인간을 냉동보관함으로 언제든지 이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도덕적 지위를 지닌 존재로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인간은 그자체로 목적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그 혜택이 크다 할지라도 수단적 존재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의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고귀함이 짓밟힌다면 이는 오히려 인류역사의 퇴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인간배아복제는 인간개체의 정체성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키며,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그동안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부부간의 유성생식을 통해 자녀를 출산해 오던 전통이 무너져 내리고, 남성과 여성이 필요치 않는 무성생식이 가능함으로써 인간사회의 버팀목이었던 가정마저도 여지없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인간배아복제를 단지 과학적 행위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며, 사회학적, 인류학적, 철학적 및 종교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며 이를 위한 범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복제실험은 소영웅주의 내지 실용주의적 이기주의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Ⅳ 종교계의 대응양의 복제 실험이 성공한 이후 대부분의 기성 종교는 생명, 나아가 인간 복제의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그런 연구와 실험을 금지하도록 촉구하였다. 천주교는 인간의 생식과 관련한 문제들에 관해 가장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특히 1987년 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반포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는 사람의 생명은 수태된 순간부터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 배아를 가지고 하는 모든 실험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며 부부간의 결합에 의거하지 않은 모든 수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한국 천주교회도 이런 교리에 근거하여 1997년 청와대에 인간복제 실험금지법을 제정하도록 청원하였으며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1999년 1월 "인간복제실험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폭행이자 회복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I 서론「철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이 철학 이란 단어의 본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의구심을 가져볼 수 있다. 철학 이란 단어는 정말 매력있고 멋져 보인다. 그러해서 인생철학 , 경영철학 등의 말들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철학은 그런 가벼운 의미의 학문이 아닐 것이다.철학이 그 옛날부터 끝없는 물음으로 현재까지 발전해 온 것은 그 만큼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는 점이 클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라는 말은 철학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고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그럼 철학을 기초학으로 말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를 들어보자.첫째, 철학은 삶과 세계의 보편필연적 근거 내지 원리를 탐구한다.둘째, 철학은 특정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대상을 연구한다.셋째, 철학은 개별학문들의 성립근거를 해명하며 또한넷째, 개별학문들의 성과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검토함으로써 개별학문들과 아울러 현실의 방향을 제시한다.본론에서는 이런 철학의 어원을 알고 그 본질을 파악한 후 철학의 분야에 대한 성격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철학이 가야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철학의 뜻철학(philosophia)이라는 말의 희랍어는 사랑(philos)과 지혜(sophia)가 합성된 것이다. 따라서 철학의 원 뜻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희랍어에는 지식을 의미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그것들은 독사(doxa), 에피스테메(episteme), 프로네시스(phronesis), 소피아(sophia)등이다. 독사는 상식적인 속견을 말한다. 에피스테메는 객관 대상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프로네시스는 양식내지 사려를 뜻한다. 소피아는 근원적 진리를 파악하는 자각적인 지적활동을 뜻한다.철학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기원, 그들 존재의 원상, 원리, 양태, 목적 및 방법 등의 본질성을 인식하는 데에 있으며,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함으로써 인간들과 세계 사이의 극치적 조화와 질서, 그리고 균형적 존속을 조성하려는 일종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 철학의 분야1) 논리학논리학은 철학 및 다른 학문들의 예비학이다. 논리학의 어원은 로고스(logos)에 있으며 로고스는 이성, 법칙, 명제 등의 뜻을 지닌다. 논리학은 사고의 질서와 규칙을 취급한다. 노리학은 우리가 오류를 범하지 않고 옳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사고의 특정한 법칙과 질서를 지킴으로써 참다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해 준다.직관적 느낌 내지 앎은 논리학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사고된 형식적 판단이 논리학의 대상이다. 논리학은 예컨대 모든 사람은 생각한다. 김홍식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김홍식은 생각한다 와 같은 사고된 판단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2) 인식론인식론은 앎의 문제를 탐구한다. 인식론은 앎이 무엇인지, 앎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앎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보편타당한 앎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한다.인식은 앎이며 앎은 일정한 체계를 가진다. 만일 내 앞에 아리따운 여인이 서 있는데 내가 그 여인을 보고 나무 한그루가 서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앎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앎이란 체계적으로 구성되는 대상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앎의 가장 기본적 조건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인식론은 경험론적 인식론과 합리론적 인식론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진다. 감각경험이 앎의 가장 기본적 조건이라고 보는 것은 경험론의 입장이며, 앎의 기본조건을 합리적 이성이라고 보는 것은 합리론의 입장이다.3) 형이상학형이상학은 인식론과 함께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들 중 하나이다.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하여 매우 다양한 의미로 이해되어 왔다.형이상학이란 존재하는 것들과 아울러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 원인을 체제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들 주변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일컬어 우리는 현상 또는 존재자라고 부른다. 이 애기, 저 들판, 그 여인 등은 구체적 현상으로 우연적이다. 그것들은 없어질 수도 그리고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른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애기는 튼튼한 청년으로 또 여인은 할머니로 그리고 들판은 연못으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서 그 원인을 하느님 또는 도(道) 또는 생명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얼핏 보기에 형이상학적 탐구는 쓸모 없는 공허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사고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담당한다. 삶과 세계의 근원을 물질로 보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닌다. 반대로 궁극 원인을 정신으로 보는 사람은 신이나 정신은 참다운 것이고 물질은 헛된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 사고를 기초로 하여 유물론적 공산주의라든가 자본주의 경제이론, 자유민주주의 이론, 유심론적 세계관등의 이론이 성립할 수 있다.4) 윤리학윤리학은 도덕철학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인간행위의 규범과 원리 그리고 규칙을 연구한다. 윤리는 한편으로 사회적 규범을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인간의 자발적 자유의지를 기반으로 삼는 행위에서 성립한다. 인간의 행위는 우연히 제멋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실천적 근거를 바탕으로 삼아 성립하기 때문에 행위으 원리와 규칙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윤리학에서는 선과 같은 규범의 성격과 의무, 양심, 자유의지와 같은 규칙이 어떻게 도덕적 근거의 역할을 담당하는가도 함께 탐구된다. 따라서 고전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윤리학에서 가장 최종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행복이다. 어떤 사람은 철학의 출발점과 종착점 그리고 더 나아가 학문의 시초와 종말은 바로 윤리학이라고 주장한다.5) 미학미학은 아름다움을 논하는 철학의 한 분야로서 예술철학과 거의 동일한 문제들을 취급한다. 아름다움은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된다. 산, 꽃, 여인 등의 아름다움은 자연미에 그리고 춤, 그림, 음악 등의 아름다움은 예술미에 속한다.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은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해학미, 추미 등의 여러 가지 아름다움의 유형으로 구분된다.아름다움이란 사물을 분석·종합하여 분별하는 오성이 아니라 사물을 느끼는 감성인식에 의해서 판단으로 구성된다. 예컨대 르누아르의 인물화는 자연스러우며 아름답다 라고 할 때 우리는 르누아르의 인물화가 지닌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떤 붓으로 어떤 재료의 색채를 얼마나 강하게 칠했는지도 살피지 않고, 보고 느낌으로써 그 그림이 자연스러우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미학은 미적 판단에 관한 철학의 한 분야이다.이 이외에도 개별학문과 연관하여 사회철학, 역사철학, 종교철학, 교육철학, 법철학, 정치철학, 과학철학 등을 철학의 부차적 분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들은 엄밀히 말해서 철학의 분야들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 자체이다. 왜냐하면 사회철학이나 과학철학 등도 철학으로서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 철학의 기본분야를 기초삼아 성립하기 때문이다. 사실철학이란 사회철학이나 정치철학, 과학철학 등이지 오로지 철학만은 있을 수 없다. 철학이라고 할 때는 이미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원리와 의미 그리고 가치를 묻기 때문에 철학은 이미 교육철학, 과학철학 또는 역사철학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철학이 기초학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예컨대 역사학의 기초학은 역사철학이다. 왜냐하면 역사학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삼아 역사적 사실의 해석과 의미를 묻지만, 역사철학은 역사가 성립할 수 있는 원리를 탐구하며 동시에 역사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서론제3의 길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즉, 위험사회에 대한 적극적 복지, 성적 평등, 세계 민주주의 등 고단위 처방을 하는 것과 동시에 성찰적 현대화의 가치를 기든스는 내걸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고방식은 대단히 개방적이고 탄력적이다. 예컨대 범세계화에 대해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사례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제적 시민연대의 가능성을 엿보는 식이다. 그는 고전·현대의 사회이론은 물론이고 철학과 환경, 여성, 문화 등 인접 학문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나의 이론을 구축했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넘을 제3의 길은 ‘사회민주주의’에서 일단 멈춘다. 이 사회민주주의는 이전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급진적 중도를 표방한다.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이 이뤄지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신혼합경제’와 다양한 시민사회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범세계화는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민족의 공존에 입각한 세계주의적 시각이다. 21세기를 헤쳐나갈 유력한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제3의 길은 중도좌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제3의 길을 개척할 중도좌파들이 서 있을 자리가 너무 좁다.다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이 때 옮긴이의 말대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시장경제의 논리와 시민적 연대 및 정의의 원리를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3의 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적 지식인의 최소한의 양식과 개방적 사고를 상징하는 것이지도 모르겠다.본론Ⅰ 사회주의와 그 이후현재 좌파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정부들은 예전에 가졌던 확신을 완전히 상실하고 곧 폐기될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치적 이상주의가 부흥할 수 있도록 강한 방향 감각과 목적의식의 제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사회주의 경제 이론은 늘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응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소 평가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시장이 구매자와 판매자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정보 장치로서가 긴장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한편으로는 자유시장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 가족과 민족에 헌신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시장세력은 끊임없이 전통을 해체시킨다. 시장 사회의 역동성은 전통적 권위구조를 훼손하고 국지적 공동체를 파괴한다.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위험과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면서 시민들에게 그것들을 무시하라고 요구한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시장 그 자체의 사회적 기반을 간과하고 있다. 시장이란 시장 근본주의가 무관심하게 도외시해 버리는 바로 그 공동체 형태에 의존하고 있다사실상 모든 서방 국가들에서 투표는 더 이상 계급 구분과 부합하지 않으며, 좌·우 양극화로부터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유권자들이 '사회주의적' 또는 '자본주의적' 입장으로 분리하곤 했던 경제의 축은 훨씬 저조한 수준의 현시성을 갖게 되었는 반면, 자유지상주의적 : 권위주의 또는 '현대적' : '전통적'의 대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즉, 리더쉽 스타일과 같은 우발적 영향 요소가 예전보다 더욱 중요하게 된 것이다.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더 이상 의존할 만한 일관적인 '계급블록'을 갖고있지 않다. 이 정당들은 과거의 정체성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으로 복잡한 환경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Ⅱ 다섯가지 딜레마1) 범세계화(globalization)정치적·경제적 영향들의 혼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과정의 복합적 영역이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현대 정책들의 배경 이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범세계화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사회민주주의의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새로운 개인주의 의 부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2) 개인주의(individualism)새로운 개인주의는 우리 생활에서 전통과 관습의 후퇴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시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범세계화의 충격에 수반되는 현상이다.사망과 함께 좌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구분선 중의 하나는 사라졌다. 이제 남은 논쟁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규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또한 기존의 좌우파 구도의 범위 속에서는 없었던 문제들과 가능성이 전면에 대두되었다. 생태적 문제, 가족, 노동, 개인적 문화적 정체성의 질적 변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 문제들과 쟁점들은 사회정의 및 해방의 가치와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우리는 고전적 좌파의 '해방의 정치'에다가 '생활정치(life politics)'를 덧붙여야 한다. 이것의 의미는 해방의 정치가 생활에 기회를 주는 것과 관련 있다면, 생활 정치란 생활의 결정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고찰들은 정치적 중도주의를 새롭게 바라봐야 함을 의미한다. 기존의 좌파는 기회주의적 이유로 중도로 이동했었으나 좌파와 우파의 경계가 덜 명확해진 지금은 '적극적 중간(active middle)' 또는 '급진적 중도(radical middle)' 개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것은 '중도좌파'가 반드시 온건 좌파와 동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4) 정치적 행위체정치쇄신을 위한 모든 시도에는 행위체의 문제가 제기된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념겪고 있는 것 외에도 새로운 사회운동과 다른 정당들에 의해 측면에서 협공을 받고 있고, 정치가 가치를 상실하고 정부가 뚜렷하게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 얽매여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계속 비판을 전개해 왔으며 현실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시장은 이들 영역 중 어느 곳에서도 정부를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시대에 부적절해졌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그리고 탈정치화로 보여지는 정부와 정당들의 영향력 고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치 참여와 행동주의의 확산이었다.'하위정치'는 어느 정도까지 전통적 정치와 정부의 영역을 대체할 것인가? 사회운동단체, 단일 쟁점으로 형성된 집단들, 비정부 기구들 그리고 여타 시민단체들은 지방에서 세계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기반 위에서 중요한 정피하고 있다.{※ 제3의 길 가치1 평등 2 약자 보호 3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4 책임 없이 권리 없다.5 민주주의 없이 권위 없다. 6 범세계적 다원주의 7 철학적 보수주의Ⅲ 국가와 시민사회먼저 제3의 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1 급진적 중도 2 새로운 민주국가(적이 없는 국가) 3 활발한 시민사회4 민주적 가족 5 신혼합경제 6 통합으로서의 평등 7 적극적 복지8 사회 투자 국가 9 세계주의적 민족 ⑩ 세계적 민주주의등을 들 수 있다. 제3의 길은 정부를 적이라 말하는 우파와 정부가 해답이라고 말하는 좌파를 넘어서 국가를 다시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건강한 시민사회는 압도적인 국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자발적인 질서와 조화의 원천은 아니다. 공동체의 회복은 그에 따른 문제와 긴장을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갈등에 대해 중재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국가는 또한 시민사회에 늘 내재하는 이익의 상충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야 한다. 범죄를 막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것은 모두 공동체의 쇄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민주적인 가족은 '남녀평등의 원리'에서 시작해야 하며 오늘날 가족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바로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가족의 관점에서 민주화는 평등, 상호존중, 자율성, 소통을 통한 의사결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거의 동일한 특성들이 부모와 자식관계에도 적용된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경우에도 자율과 책임의 균형을 확보하는데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Ⅳ 사회투자 국가고전적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보장과 재분배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고, 부의 창조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신자유주의는 경쟁력과 부의 산출을 좀더 중요하게 여겼고, 제 3의 길 정치도 이러한 능력을 매우 강조한다. 제 3의 길 정치는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를 주창한다. 신혼합경제는 공공 부문과 민간부문 사이의 상승 효과를 추구하며, 공익을 염두에 두고 시장의 역동성을 이용한다.오늘날 평등로 뿐만 아니라 삶의 실재로서 가져야만 하는 정치적 권리 및 의무를 지칭한다. 이것은 또한 기회와 공적 영역에 대한 참여를 말한다. 배제에는 두가지 형태가 두드러진다. 첫째, 최하층을 배제하는 것이며 둘째, 상층부에서의 자발적 배제가 그것이다.배제는 불평등의 정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집단들을 사회의 주류로부터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메카니즘이다. 엘리트들의 자발적인 배제를 제한하는 것은 하층에서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하다.복지국가의 역사에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제 3의 길 정치는 우파가 제기한 일부 비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제 3의 정치는 복지국가의 여러 문제들을 복지국가의 소멸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복지국가를 재건해야 할 이유로 인식한다.복지국가는 자원보다는 위험성을 공동부담 하는 것이다. 복지를 개혁하려면 위험성에 대응하는 요점들을 인식해야 한다. 효과적인 위험성 관리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거나 그것에 대하여 보호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한 위험성의 긍정적 혹은 활력적 측면을 이용하고, 위험의 감수에 대하여 자원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극적 위험 수용은 기업 활동에 고유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 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혜택을 포기하고 직업을 찾는 것, 혹은 특정한 산업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은 위험성으로 고취된 활동이다. 이러한 위험 수용은 개인에게, 좀더 넓게는 사회에게 종종 이익을 준다.우리는 복지국가 대신에 적극적인 복지사회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사회 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를 건설해야 한다.제3의 길의 입장은 전면적인 탈규제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복지 지출은 미국 수준보다 유럽 수준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가 야기되는 곳에서 급여제도는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유인책을 통해서, 필요하다면 법적인 강제를 통해서, 좀더 능동적으로 위험을 수용하는 태도를 촉진시켜야 한다.공공 사업에서의 민간과 정부의 협력은 공익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