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그 가치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옳은 일이고, 그른 일 일까? 그 가치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지금 이 시대의 기준. 내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기준이란 조금은 슬프게 느껴질 정도로 각박하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존귀함과 존엄성은 잊혀진지 오래다. 그저 보여지는 곳에만 가치를 부여할 뿐이다.오오카 쇼헤이의 들불 에서처럼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서도 다무라, 나가마쓰, 야스다같은 이젠 더 이상 쓸모 없어진 병들은 패전병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아, 삶을 찾아 끝이 안 보이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들불 은 일본의 패전이 확실해질 무렵 필리핀의 섬에 고립된 일본군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미군의 공격위협과 폭격에 떨면서도 마지막 집결지인 파론폰으로 가려고 애를 쓴다.그 속에 다무라가 있다. 그는 이제 중대에서는 쓸모 있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는 결핵환자이다. 공격위협과 식량부족. 군대는 그를, 그의 존재를 이제 필요 없는 사람으로 단정 짓고, 국가를 위해 중대를 떠나달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린다. 고구마 6개에 생명의 끈을 유지한 채 길을 떠나는 그의 머리 속엔 그저 황망함과 냉소가 흐를 뿐이다.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전사에게 남은 것이라곤 병들은 육체와 상처투성이인 가슴뿐이었던 것이다.길을 떠나며 그는 죽음의 두려움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게 되고 점점 그의 머리 속은 죽음과 배고픔으로 황폐해져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이 숨어있던 집에 필리핀 남녀가 들어오면서 아니 여인이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정말 우발적으로 살인이란 걸 하게 된다. 자신이 쏜 총알이 하필이면 그녀의 가슴 치명적인 부분을 맞춘 것이다. 정말 우연이었다. 그들이 그 집에 들어 온 것도,그녀의 가슴에 총알이 맞은 것도. 전쟁에서의 살인이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다무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죄책감에 싸여 또 다시 이방의 땅들을 헤매고 다니게 된다. 끝없는 길. 어둡운 그림자는 다무라를 계속해서 쫑는다. 이미 떨어진 식량과 정신적 고뇌는 다무라를 점점 더 낭떠러지로 치몬다.
부르주아 경제학 비판하기대학에 들어와 우리가 배우는 경제학의 대부분은 이 사회를 움직인다고 하는 주류경제학인 부르주아 경제학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은 거의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케인즈 경제학으로 대표된다. 그럼 우리가 정답으로만 알았던 이 부르주아 경제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부르주아 경제학이 정답이 아니란 걸 표면적으로 드러낸 것이 공황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과연 공황이란 무엇이며, 왜 일어나는지 먼저 살펴보자.공황의 정의-공황이란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근본적 모순의 순간적 ·폭력적 폭발이며, 종종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심각하게 동요시키고 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정도의 위력을 떨친다. 공황은 그것이 발생하는 경제부문에 따라 농업공황 ·금융공황 ·거래소(증권)공황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 발생하는 일반적 과잉생산공황, 즉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의 균형이 전반적으로, 또한 급격히 파괴되는 현상이 가장 일반적인 공황이다.과잉생산공황이 발생하면 상품의 판매악화, 체화(滯貨)격증, 투매(投賣)속출, 물가폭락, 생산격감, 기업의 도산(倒産), 공장폐쇄, 신용의 붕괴, 어음 ·수표의 부도(不渡) 증대, 금리폭등, 주가폭락, 은행예금의 인출 쇄도 등외에, 임금인하 ·해고 ·실업자 증대 ·노동조건의 악화, 이에 따른 폭동 ·자살의 증대, 정치불안 등으로 심각한 사회불안이 야기된다. 이러한 현상은 약 10년을 주기로 하여 정기적으로 일어난다.이렇게 공황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근본적 모순의 순간적, 폭력적 폭발이다. 그러면 어떠한 모순이 내재하기에 약 10년을 주기로 일어나 자본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일까?첫 번째로, 자본주의가 가진 모든 자본가는 다른 자본가와 벌이는 경쟁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을 하도록 하면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는 경향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한편으로는 '생산수단의 대폭적인 증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된 노동자 수와 임금의 제한된 증대' 사이의 불 비례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과연 누가 (갈수록 양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상품을 살 것인가?'하는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그들이 자기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을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임금을 올리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금인상은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인 이윤을 감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자본가의 기업이 생산된 상품을 팔 수 없다면, 그 기업은 공장문을 닫고 노동자를 해고해야 한다. 그러면 임금으로 지출되는 총액은 훨씬 더 줄어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더 많은 기업들이 자기들의 상품을 팔 수 없게 된다. "과잉 생산"의 위기가 시작되고, 대중이 구매할 수 없는(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상품들이 경제 전반에 걸쳐 쌓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경제전반은 흔들리게 되고, 결국 공황을 맞게 된다.두 번째로, 첫 번째에서도 조금 언급한 과잉생산 의 문제다. 생산은 개인적인데 반해 소비는 사회전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은 언제나 적정 선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부르주아)사회에서 자본가의 최종목표는 어떻게든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어떻게, 얼마만큼의 생산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얼마나 많이, 비싸게 파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살 소비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생산을 하는 생산자는 많기 때문에 공장에는 물건이 쌓여가고, 결국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란 무의미해진다.그렇다면 기업들의 신규 투자에 의해, 정부에 의해 고칠 수 없는 문제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신규투자는 노동자들한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고, 이번에는 이것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팔리지 않는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신규 투자가 있는 한 생산된 모든 상품은 팔릴 수 있고 자본주의 체제는 완전 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합당한" 이윤이 보장된다고 생각할 때에만 상품에 투자할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러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는 그의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은행에 넣어 두고 있거나, 투기나 사채놀이를 할 것이다. 자본가가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그가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경제 상황이 좋아 보이면, 자본가들은 모두 동시에 투자하기 위해 덤벼들어 건설부지를 찾고, 기계를 구입하고, 원자재를 찾아 지구를 샅샅이 뒤지고, 숙련된 노동을 돈을 특별히 더 주고 쓰는 등 서로 부딪쳐서 나자빠질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소위 "호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 원자재, 숙련 노동을 확보하기 위한 광기 어린 경쟁은 그것들의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기업들은 그것들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이 올라 자기들의 모든 이윤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음을 갑자기 깨닫게 된다. 투자 붐이 갑자기 투자 위축으로 바뀐다. 어느 누구도 새로운 공장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설 노동자들이 해고된다. 아무도 새로운 기계를 사길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기계 도구 산업이 공황에 직면한다. 아무도 생산되고 있는 철과 강철을 사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철강 산업의 가동률이 갑자기 평균 수준 훨씬 이하로 떨어지고, 이윤이 남지 않게 된다. 폐업과 조업 중단이 전 산업으로 파급되면서 일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다른 산업 부문의 상품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대폭 하락할 것이다. 또한 정부의 개입도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한다. 사적 투자가 잘 안될 때는 국가가 투자를 늘리고 사적 투자가 너무 많은 때는 국가 투자를 줄이는 식으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함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