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 발표문은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2006년을 살고 있는 발표자가 읽어보아도 파격적이고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 당시의 독자들이 과연 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은 단지 특이한 작가의 독특한 정신세계에서 태어난 작품인 것일까?, 아니면 그 당시 몇몇 여성들은 이러한 것을 꿈꾸고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점점 더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향해 가고 있으며 여자의 혼전순결이나 동거에 대해서도 예전 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남녀의 결혼이 당연지사라고 생각했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에는 화려한 싱글로서 독신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남자로 태어나서도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다양하고 개방된 21세기 사회이지만 아직까지 동성 간의 결혼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설사 그러한 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일이다.그렇기에 조선 시대에 여성영웅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동성 결혼을 생각하였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파격적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대중매체나 소설에서 공공연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발칙한 상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들, 그리고 남성의 등장을 배제한 설정, 여성의 힘으로 굴러가는 사회라는 발칙한 상상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1. 뭔가 좀 수상한 여성영웅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방관주이다. 하지만 소설의 제목은 이 아니라 이다. 한림이라는 것은 방관주가 한림학사의 신분임을 나타내주는 호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여성인 방관주가 남성의 영역이었던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동할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바로 제목에서부터 기존의 여성영웅소설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은 다른 여성영웅소설 작품들이 그 부모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소설의 첫 부분에서 여주인공인 방 여성주인공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른 여성영웅소설에서는 부모에 대한 언급과 태몽에 대한 서술이 약 한 페이지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6줄 정도로 그치고 있다. 그 대신에 주인공인 방관주의 능력과 성품에 대한 설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방한림이란 여성, 그 주인공에게 오롯이 초점을 두고자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초점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방한림의 업적과 그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다.또한 이 소설에서는 방한림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나 갈등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의 경우, 세 자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무예보다 방적이나 수선 등의 여공을 하기를 강요당한다. 급기야는 그들 셋 중 한 명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세 자매는 집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방한림에게는 이러한 시련은 없었다. ‘방공 내외 여아의 뜻을 맞추어 소원대로 남복을 지어 치니’ 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방관주가 어려서부터 부모의 동의 아래 스스로의 의지로 남장을 하고 공부에 정진하였으며, 그녀의 부모는 친척들에게도 아들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뜻에 따라 어렸을 적부터 남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며 그러한 삶에는 아무런 장애가 따르지 않았다.2. ‘남장’을 선택한 방관주여성영웅소설에서 남장은 공적 영역에 나아갈 수 없는 여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나타난다. 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남장의 모티프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양상은 다소 차이가 있다. 첫째, 남장을 하게 되는 동기에 있어서 방관주는 그 누구의 뜻도 아닌 자신의 선택에 의해 남장을 하게 된다. 둘째, 방관주의 부모는 방관주의 능력을 인정할 뿐 아니라 남장을 하겠다는 그녀의 의사에 순순히 응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부모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들이 품은 입신양명의 뜻을 이루기 및 5세에 부모와의 이별을 겪게 될 운명을 타고난 홍계월을 안타깝게 여긴 부모가 남장을 시켜 강인하게 키우고자 한 동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에서 주인공 방관주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 부모에게 남복입기를 스스로 청할 뿐 아니라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난 후에도 유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척은 물론 아무도 알지 못하게 남성으로서의 삶을 지속한다. 이는 부모의 대를 남성이 잇는다는 고정관념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나 여성 또한 입신출세하고, 가문을 이어갈 수 있는 강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3. 방관주와 영혜빙의 결혼 ‘知己’은 동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특이하다, 충격적이다, 심지어는 엽기적이라는 평까지도 받는 작품이다. 따라서 방관주와 그의 아내 영혜빙의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방관주는 12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다. 이로 인해 한림학사라는 벼슬을 제수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청혼을 받게 된다. 남성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안정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란 측면이 클 것이나 여성에겐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 인내, 포기 등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입신양명과 공적영역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방관주에게 다시 여성의 삶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는 것은 유자주 자매들이나 홍계월이 보국과의 결혼에 앞서 망설이는 것처럼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남성으로서 행세하고 자신의 원대한 꿈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결혼은 자신의 비밀을 더욱 확고히 지킬 수 있는 장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방관주는 이와 더불어 자신의 비밀을 지키지 못하게 할 경망스러운 여성과의 혼인이나 한 여성의 일생을 망칠수도 있다는 문제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러한 방관주의 고민은 영혜빙이라는 또 하나의 뛰어난 여성으로 인해서 종료된다. 여성과 남성의 결합이 아닌 동성 간의 결합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충격일 수도 있으나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의 가치를 공적영역에서 여자라리한 상황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사회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배우자감을 스스로 알아보는 것도 운이고 능력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결혼이 주종이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적 관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4. 남자아이 ‘낙성’을 입양하다여성과의 결합 속에서 자식은 태어날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낙성의 입양은 방관주와 영혜빙의 관계를 하늘도 인정한 것이며, 그들의 어쩌면 비정상적인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들에서 여성영웅과 남성의 결합 후 간략하게 그 후의 생산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방관주의 일생 속에서 낙성이 입양되고, 또 낙성이 자라나 출세하고 자식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방관주와 영혜빙 부부는 낙성을 자신들의 혈육과 전혀 다름없이 사랑으로 훈육한다. 개인적인 생각일 지도 모르겠으나 그들은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간파하고 있는 존재들임과 동시에 남성과의 대립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더불어 조화롭게 살기를 꾀하는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여아를 입양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남성이 없이는 이 세계를 온전하게 이끌어 갈 수는 없다. 입양한 아이도 결국은 남녀의 결합에 의해서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로서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다. 서로 어울리고 화합할 때 진정한 평등적인 관계로서 여성이 정당한 권리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여성의 포용성을 가지고 억압기제를 달래고 포용함으로써 부드러움 속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낙성이 방관주와 영혜빙의 가족에 부드럽게 융화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남성을 배척하지 않고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여성성이야 말로 진정한 여성영웅으로서의 면을 것이다.5. 여성이면서도 남성인, 남성이면서도 여성인 ‘방한림’의 결말 또한 지금까지의 여성영웅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두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에 의 방관주는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 현산도사라는 기인이 나타나서 방관주에게 말을 하고는 사라지는데 그때 화살이 내려오고 거기에는 도사의 글이 있었다. 도사는 방관주가 음양의 이치를 어겼기 때문에 즐거움이 다하고 슬픔이 온다고 하면서 옥황상제가 명년 삼월 초사일에 신하를 보고자 한다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방관주는 자신의 천벌을 받는다며 자신이 남장을 했음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결국, 방관주는 남장을 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이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당할 수 있지만, 이것은 한계가 아닌 소설적 장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천자는 이 사실을 안 이후에도 그 사실에 개의치 않은 채 방한림의 능력을 인정하고 한림이 죽은 후에도 그 장례를 국례로 하게하고 초종 범구도 다 남장으로 하는 등 한림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켜준다. 천자는 방한림 자신이 남자의 행색을 하고 남자의 영역 안에서 살기를 바랐기에 죽는 그 날까지 그녀를 남자로서 대하였던 것이다. 이는 그녀가 여자이건 남자이건 상관없이 그녀가 그동안 행한 업적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천자가 여성임을 스스로 밝히는 방관주를 벌하지 않고 그녀를 훌륭한 능력을 지닌 한 개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제도권에서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성과 남성의 선천적인 기질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인의 가치와 위치를 평가해주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즉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대 사회에서는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소설적 장치로서 여성영웅의 영웅성을 더 극대화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녀를 남자로 대하였던 것은 그녀가 그것을 원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렇게 방함림이란 여성은 세상 속에 남자로서 기억된 채 여성이면서도 남성인, 남성된다.
의 영화화를 통해 살펴본 고전소설의 콘텐츠化1. 들어가며고전 소설을 현대에 되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소설적인 재미를 중심으로 새롭게 현대적 소설로 바꾸어 출간하는 방법은 다른 무엇보다 고전 소설을 소설로서 현대인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글, 책을 읽는 인구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현대는 영상의 시대라 할만큼 시각적인 효과에 기댄 다양한 매체들이 더욱 각광 받고 있다. 고전 소설의 현대화 방안으로 게임이나 영상화를 시도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영상 매체들을 통한 대중성의 확보에 그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필자는 고전 소설의 현대적 창조 방안 중 소설적인 텍스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매체로 영화를 선택하였다. 소설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고 있는 극화 형식이 소설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이라 판단하였다. 영상물을 통하여 고전 소설에 대한 선입감을 버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고전 소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본인의 의도이다.먼저 고전 소설이 영화화된 예를 살펴본다. 고전 소설을 영화화할 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여기서는 고전적인 창조와 현대적인 창조 두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그리고 한글 소설로 유명한 을 영화로 기획해 보려한다.2. 고전 소설의 영화화고전 소설을 영화화 한 예는 의외로 많은 편이다. 영화가 일정한 서사 구조를 지닌 극화 형식이라는 점에서 영화와 문학은 많은 부분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영화가 이야기를 문학에 기댄 경우는 상당히 많은 편이고,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 소설이나 고전 소설, SF물이나 판타지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문학이 영화화되었다.고전 소설이 영화화 된 예를 살펴보자. 고전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왔던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생명력이 강하고 극 중 인물이나 이야기 구조 또한 잘 알려진 것이 많다. 이들은 극적인 요소와 친근감 있는 소재로 인하여 이야기 자체나 캐릭터의 인용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변주되어 영화화되었다. 고전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한 경우나, 원작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한 경우, 시대를 현대나 미래로 옮겨온 경우 등 그 인용 방법 또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영화화의 결과를 ‘고전적 창조’와 ‘현대적 창조’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가. 고전적 창조고전 소설을 시대적인 배경 그대로 영화화하는 경우이다. 외국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채 어떻게 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재현해내는가에 그 완성도를 평가하고 있다. 의 경우 레나토 카스텔라니 감독의 54년 작과 가장 유명한 프랑코 제필레리의 68년 작 등이 고전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 , , , , 2000년 이연걸 주연의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은 배경만을 현대로 옮겨놓은 작품이지만 MTV적 화면과 화려한 배경음악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와 는 뮤지컬과 액션 영화로 변형되어 나타난 경우이다. 제인 오스틴의 를 원작으로 한 95년 에미 헤커링의 와 를 현대 미국 고등학교로 옮긴 2000년 길 정거 감독의 등도 고전의 현대화라는 주제에 적합한 예이다. 두 작품 모두 현대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각 인물을 다양하게 변주하여 현대적인 취향에 걸맞는 시도를 하였고 이러한 결과물로서의 두 작품 모두 일정한 성과를 얻고 있다.국내의 경우, 고전의 현대화는 찾기 힘들다. 고전을 고전 그대로 수용하거나 그 가치를 대중, 어린이용으로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 보인다. 특이한 예로 을 현대화한 96년 임종재 감독의 이란 작품이 있으나 인물의 캐릭터만을 따온 경우로, 산만한 플롯과 지나친 현대적 해석으로 의 의미나 색깔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패로 인식되고 있다.3. 그동안의 컨텐츠化 노력들 그리고..이제까지 은 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의 내용 방식이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여겨진다. 선악의 이분법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액션 등의 눈에 띠는 장면을 만들기 쉽다는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싶다. 67년 애니메이션 으로부터 시작한 에 관한 이러한 관심은 몇 차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 제작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심각한 오류를 갖고 시작하고 있다. 67년作 은 고전 소설 이 아닌 감독의 동생인 신동우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곧 영화가 지닌 주제 등이 만화라는 양식으로 한 번 걸러진 것을 다시 영화화한 것이다. 이후의 홍길동의 영화화는 대부분 67년作 에 근원을 두고 있다. 즉 대다수의 작품이 원작 소설과는 다른 기반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상 매체의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현재 알려진 에 대한 이야기가 원작 소설과는 다른 의미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95년 제작된 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절정에 해당한다. 95년作은 분명 홍길동의 이름과 활빈당 등의 소재를 포함하고 있으나 이야기의 구성과 주제는 원작 소설과는 전혀 다르다. 작품의 주제는 영웅 홍길동이 악당 세력을 이긴다는 단순한 선악 대결의 영웅담으로 원작 소설이 가진 주제 의식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곧 만화 에서 홍길동의 모험담으로 한번 변주된 양상을 다시 변주하여 원작과는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는 일종의 사무라이 액션 활극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적인 소재의 만화라는 점에서 의 영화화는 좋은 시도로 보이지만 원작 소설을 배제한 이러한 기획들은 본래의 주제나 그 소설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서는 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기획해 보고자한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이 기획안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서사 구조는 대부분 원작을 따르되, 역시 현대적인 재창조라는 점에서 약간의 첨가와 삭제가 있을 것이다.은 여러 판본이 있으나 여기서는 완판본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완판본 의 대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조선 세종 때 재상 홍 모는 명문 거족으로, 정실부인 유씨와 아들 길현이 있었다. 어느 날 청룡의 꿈을 꾸고 나니, 꿈이 너무 좋아, 부인과 동침하려 하였으나 비루하다는 핀잔을 듣고 돌아 와서는 시중드는 춘섬과 정을 통해 길동을 얻는다.길동이 대단히 총명하나 호부 호형을 못하여 애석해 하는데, 아버지가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니 어쩌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통곡하며 집을 떠나려 하나 그것도 어렵다. 공의 첩 초란이 길동을 모함하여, 무녀를 초대하여 점을 치니 길동이 반역을 하리라 예언하게 한다. 이에 초란이 정실 유씨와 의논하여 길동을 죽이려 자객 특재를 보내나, 길동이 도술로 물리치고 특재를 죽인 뒤 공에게 하직 인사를 하니, 이 때 공이 앞으로 호부 호형을 허락한다. 길동이 떠난 뒤 공은 사실을 밝혀 초란을 죽인다.길동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천 근 되는 돌을 들어 두목이 되고는 도적을 훈련시킨다. 공부하는 선비로 가장하여 해인사를 습격하여 재물을 털어 오는 등, 활빈당의 행세를 하여 탐관오리를 죽이고 재물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니, 조정에서는 현상금을 걸고 잡으려 나선다. 한 포도대장이 나섰다가 길동의 도술과 검술에 눌려 포기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길동의 아버지와 형 길현을 잡아들여, 길현을 경상감사로 보내니, 길동이 풀로 일곱의 길동이를 만들어 각도로 보내다가 형의 소식을 알고는 자수한다. 길현이 울며 포박하여 한양으로 보내니, 이렇게 잡혀 도착한 길동이 모두 여덟이다. 임금 앞에서 천비 소생의 한을 토로하고 모두 풀로 변한다. 다시 길동이 자기를 병조판서에 봉하면 자수하리라 하여 병조판서에 임명하여 주니, 자수하여 임금 앞에서 이제 조선을 떠난다고 하고는 길을 떠나 성조에 정착한다.
- 서민적 풍자와 해학 속, 일말의 아쉬움은 인도의 본생설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국의 한역경전을 거쳐 전래된 불전설화에 그 근원을 두고 성립된 설화계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문헌설화로는 소재의 구토설화가 해당된다. 외국의 전래설화가 토착화되어 구토설화나 기타 구전설화가 되고, 이들이 다시 판소리 사설화하여 가 되었다가, 판소리 대본의 정착과정에서 문자화되면서 으로 소설화된 것이다.작품에 나타난 수궁계는 강자, 즉 통치자의 세계이다. 그리고 육지계는 약자 즉 서민층과 피지배계층의 세계이다. 이들의 상호대립이 심화되면서 갈등과 긴장을 더해주고 있다. 또 등장인물간의 대립양상을 살펴보면 강자인 용왕과 약자인 토끼의 대립, 강자인 호랑이와 약자인 다른 동물들과의 대립, 그리고 주목할 것은 지배자인 용왕과 피지배자인 자라와의 대립이다. 에는 많은 이본들이 있는데 그 이본들마다 조금씩 나타내고자하는 주제가 다르다. 크게 세가지 부류로 그 주제들을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유교적인 충(忠)의 개념을 앞세워 지배논리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고 두번째는 이러한 충과 유교적인 도덕률에 대한 야유와 비판, 서민적 풍자적 해학이 주제인 경우가 있다. 세번째는 이러한 두 가지 양상이 공존 내지 혼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제의 구분이 선명하지가 않다. 첫 번째의 경우에서는 용왕과 자라는 대립관계로 설정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경우에는 용왕에 대한 희화화가 다른 두 번째나 세 번째의 주제의 이본들보다 적게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음으로서 용왕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자라의 충성을 강조함으로서 그 주제를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토끼는 단순히 간사한 꾀를 부리는 책사 정도로 묘사 되고 있다. 토생전 경판본이라고 하는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의식은 시대의 사회적인 환경과 사회계층적 변동 속에서 시대적인 현실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고, 그러한 시민들의 입장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당시의 사회의 여러 가지 방면-윤리나 도덕, 정치, 사회-에서의 모순들을 유식한 지식계층의 사류(士類)들은 개혁 시정하려고 했으며, 서민이나 천민계층에서는 민란들의 과격한 방법 등으로 사회를 바로 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식인도 아니고 과감하지도 않았던 서민들은 저항의 방법을 문학에서 찾았다. 모순된 사회의 현실 속에서 안주하면서 풍자와 해학이라는 방법으로 동물우화라는 연막탄을 터트리면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저항을 하였고 자신들의 상대 계층인 지배 계층에 대한 야유와 비판을 하면서 현실에서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조웅전 - 짜릿한 롤러코스터? 고전영웅(군담)소설고전영웅소설(혹은 군담소설)은 그 배경이 우리나라인지 중국인지에 따라 크게 둘로 분류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이 분류의 한 축을 이룰 정도로 그 수가 많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현실과 비교해 물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보통 영웅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간신과 대결을 벌이는 충신으로, 왕은 주로 바보나 무능력자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을 배경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당시의 중국은 앞선 문화와 문물로 인해 어느 정도 환상을 갖고 생각하던 곳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이 많이 씌여진 것에는 그러한 동경적인 인식도 일조를 하였다.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영웅소설로는 유충렬전등을 꼽을 수 있는데 마침 예전에 읽어보았던 작품이기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조웅전과의 비교를 통해 두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등의 실마리를 찾아보면서 고전영웅소설을 더 잘 이해해보고자 한다.상실유충렬전과 조웅전은 주인공이 자기 가문이 소유하였던 특권을 상실하고 나서 그것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첫 번째 공통점이 있다. 이 특권적 가치의 상실은 주인공의 의식 속에 그 상실 의식을 명백히 심어주어 강렬한 회복의지를 갖게 한다.유충렬전에서 주인공은 대대로 부귀공명을 누려온 명가에서 부친이 현직 고관에 있을 때 태어난다. 조웅전의 경우 조웅이 유복자로 태어난다는 점에서 약간 다르기는 하나 부친의 묘호를 충렬묘라 하여 황제가 친히 돌보는 정도의 집안의 자손이다. 이처럼 이 유형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렸을 때 특별한 권리를 누린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특권을 상실하게 될 경우에는 그 회복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권 상실 의식은 이 소설 구성을 이루는 주인공의 행위 유형의 결정적인 동인이 되며 이는 정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다 분명해진다.유충렬전에서는 유충렬의 부친인 유심을 참소하여 귀양 보내버리는 정한담과 최일귀가 정적으로 등장하며, 조웅전의 경우에서는 조웅의 부친인 조정인이 자살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이두병이 이러한 적대자의 역할을 한다. 이렇듯 고전 영웅소설의 주인공이 속해있는 가문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적대적 세력에 대해 명확한 자각 의식을 갖고 그들을 물리쳐서 가치를 회복하려는 뚜렷한 의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시련과 대결고전 영웅소설의 주인공은 적대 세력의 강력한 추적 속에서 시련을 겪는다. 일단 유충렬전을 살펴보자. 유충렬의 부친 유심을 귀양 보낸 두 적은 유충렬이 영웅의 정기를 받고 있음을 알고 그를 죽이려 하나, 충렬 모자는 꿈에 계시를 받고 탈출한다. 강물에 던져진 충렬은 용왕의 도움으로 살아나 고된 시련 끝에 어느 절에 이르러 힘을 기르게 된다. 이상이 주인공이 적으로부터 시련을 겪으면서 대결력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조웅전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 조웅은 이두병이 반역을 하여 황제가 되는 것을 보고 대궐문에 이두병을 비난하는 글을 써 붙임으로써 쫓기게 된다. 그 도주 중, 부친의 화상을 그려 주었던 중을 만나 구원을 받고 철관도사를 만나 힘을 기른다. 이상과 같이 조웅도 자신을 추적하는 적으로부터 받는 시련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유충렬전과 조웅전 같은 고전영웅소설에서 대결의 초반 형태는 현실적인 힘을 박탈당한 무력한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적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과정의 연속이다. 강력한 적대자에 비해 힘이 부족한 주인공이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소설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독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시련에 동정하고 가슴아파하는 독자들은 그 이후 있을 주인공의 활약에 몇 배의 쾌감과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회복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고전영웅소설 전반부에서의 대결이란, 주인공과 적대자와의 극단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시련을 당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대결력을 획득하고 난 뒤에는 서로 팽팽한 힘을 가지고 맞서나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다시 말해, 적과의 군담적 대결이 주축을 이루는 것이다. 군담소설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하는 고전영운소설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충렬전의 경우 완판 86장본에서 50여장이 군담이고 조웅전은 완판 88장본에서 55여장이 군담이라고 한다. 즉, 전반에서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벗어난 주인공이 이제는 역으로 통쾌하게 적을 제압해 나가는 군담 내용이 소설 구성의 주축을 이루게 된다.
김시습 - ‘현실을 뛰어넘은 현실’전기적이라는 말은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 진기한 것 초현실적인 것 곧 일상적, 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허구적으로 짜놓은 것을 말한다. 현실의 인간 세계와 초현실의 세계가 구분됨이 없이 상호 출입하는 관계 속에서 사건이 전개되어가는 것을 전기적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현실(불행) - 초현실(행복) - 현실(절망) - 초현실(상승)의 구조를 가진다. 특히 은 사람과 귀신이 서로 교류하며 사랑을 나누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작가 김시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야기로 꾸미게 된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생은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 처녀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어렵게 성취한 두 사람의 사랑은 홍건적이 출몰하는 난리 중에 최 처녀가 죽음으로 해서 깨어지고 만다. 작자는 깨어진 두 사람의 사랑을 최 처녀의 환신과 이생의 사랑이라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다시 이어 놓았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욕망의 장애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작자로 하여금 초현실 세계를 끌어들이게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오늘날에도 귀신 혹은 영혼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가끔씩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 과 같은 외국 영화나. 와 같은 한국 영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최첨단 문화를 자랑하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먼저, 언제나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라는 점이다. 현실은 인간의 욕망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쾌락이 현실에서 허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상적으로라도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쳐 사랑이 파국을 맞은 사람이 상상 속에서 사랑의 완성을 그려 보기도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는 이 창작된 조선 초기를 포함해 어느 시대에나 몽상적인 기법을 활용한 문학 작품이나 예술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다른 한편 이런 종류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인간의 인간다움을 억압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세상은 불순해져 간다. 그러나 인간은 이에 맞서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된다. 세상이 불순해지는 한편으로는 순수함을 추구하게 되고, 인간이 타락해 갈수록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순결함을 갈망하게 된다. 순수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은 사랑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현실 생활의 이면에서.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을 꿈꾸는 욕망이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화들이 과 같이 주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