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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와 루이암스트롱 평가B괜찮아요
    《 목 차 》1. 재즈란 무엇인가1) 대중속을 파고드는 문화코드2) 자유에의 갈망을 담은 미국음악의 뿌리3) 역사를 통해 이해되는 재즈의 세계2. 루이 암스트롱1) 루이 암스트롱의 삶과 예술2) 진정한 예술을 추구했던 광대의 삶1. 재즈란 무엇인가...나에게 있어서 재즈 음악은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 속에서 항상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그만큼 친근하고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재즈 음악을 처음 접한 날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버지의 턴테이블에서 항상 흘러나오던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인식하지 조차 못하던 시절, 어느 여름밤 까만 밤하늘 아래서 내 귀를 처음으로 뚫고 들어와 철없던 한 아이의 정서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재즈 음악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음악이 사람에게 진정한 감동을 준다한들 그보다 더 하진 않을 듯싶었던 그 때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남아있다. (Gladys Knight 'Help Me Make It Thru The Night' 올 여름 교수님께도 그 감동이 전달되길 바랍니다.)과연 재즈란 무엇일까...? 어떻게 기껏 동요나 부를 어린 아이를 그토록 감동시킬 수 있었을까? 하지만 재즈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쉬운 음악은 결코 아니다. 재즈는 연주자의 고유한 감각에서 우러나오는 즉흥성을 뼈대로 하고 있는 ‘열린 구조’의 음악이다. 그래서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재즈는 불규칙 화음과 반복되는 장식음의 변주, 즉흥적인 돌발성 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재즈는 순간순간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낼 수 있는 ‘혼돈과 자유’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일종의 두서없음, 불규칙, 부조화, 무정형성, 돌발성 따위를 재료로 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재즈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른 음악들과의 뚜렷한 차이점이 또한 재즈로 하여금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가지게 한다.1) 대중 속을 파고드는 문화코드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재재즈음악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재즈는 분명 고급스럽다. 그러나 좀더 파고 들어가면 재즈음악의 성격과 오늘날 젊음의 스타일간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흔히 재즈를 오프비트(off-beat)와 싱커페이션(syncopation)이라는 '엇박자 리듬과' 임프로비세이션(Improvisation) 또는 애드립(ad-lib)이라는 '즉흥연주'를 생명으로 하는 음악이라고들 한다. 쉽게 말하자면 연주자가 일반적인 박자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악보에도 따르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매우 자유롭고 연주자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다.고전음악과 한번 비교해보자. 클래식에서는 연주자의 개성이 없다. 작품에 맞게 충실히 연주하는 것이 미덕이다. 재즈평론가 ‘에드워드 리’는 “작곡(작품)에 중점을 두고 있는 고전음악에 비해 재즈는 항상 연주가 중심이며, 연주자는 즉흥적인 창조와 연주자 자신의 개성표현을 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재즈에서 즉흥성은 클래식의 작곡활동과 마찬가지의 개념이 된다.즉흥성으로 나타나는 연주의 개성을 전제하면서 요즘 20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왜 그들이 재즈를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한국의 젊은 층은 개성을 자기세대의 상징처럼 여긴다. '아름다운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의 눈에 정박이 아닌 엇박을, 정해진 틀이 아닌 즉흥성을 강조하는 재즈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재즈는 팬들뿐 아니라 연주자를 비롯한 음악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악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누구나 자기 음악을 갖고 무대에서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어 한다. 남들이 서준 곡을 꼭두각시처럼 부르는 가수들은 더욱 그렇다. '흑인음악의 메카'로 불리며 수많은 흑인인기 팝가수를 배출한 ‘모타운(Motown)’ 레코드사의 ‘베리 고디’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모타운을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종국에 재즈로 빠지려 한다. 뿌리'미국인들은 재즈를 미국의 '특산물'로, 미국의 최대 문화유산으로 자랑스럽게 여긴다. 미국이라는 독특한 사회 환경 속에서 잉태된, 미국 고유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재즈는 통상적으로 뉴올리언즈(New Orleans)를 중심으로 한 미국 남부에서 발전되어 온 '흑인파 크리올(Creole)의 연주음악'으로 일컬어진다. 크리올은 흑인과 남부 프랑스계 백인의 혼혈을 말한다. 크리올로도 짐작할 수 있듯 재즈는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니다. 흑인 고유의 음악에 유럽계의 백인 이주민이 갖고 있던 음악적 요소가 혼합되어 정형화된 음악이다. 전형적인 흑백의 혼혈 음악이다. 그렇기에 재즈는 흑인도 좋아하고 백인도 즐기는 음악이 될 수 있었다.흑인 창조한 문화 특산물로는 또 블루스(Blues)란 것이 있다. 재즈는 일찍부터 백인 요소와 합쳐 상류층의 대중음악으로 뻗어간 반면, 블루스는 미국 남부 노예들의 음악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다가 뒤늦게 북부 대도시로 올라가 로큰롤(록)의 기초를 제공했다. 록은 하류층 청춘들의 아우성이다. 이 같은 상이한 경로와 수요층 때문에 보통 재즈는 미국 음악의 아버지, 블루스는 미국 음악의 어머니로 표현하는 것이다.재즈의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미국 사회에서 학대받은 흑인이 비참한 환경과 답답한 일상사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연히 그 음악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린다. 때문에 재즈는 인간을 억압하고 있는 정치와 사회 제도에 대한 저항, 지배와 피지배의 낡은 가치와 도덕에 대한 도전이 한데 엉겨 있는 음악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으레 연상되는 것은 흑인 인권운동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사가 곧 흑인 공민권 운동의 역사임을 상기하면 왜 재즈의 역사가 '미국 민주주의의 정착과 궤를 함께 하는 음악'으로까지 얘기되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3) 역사를 통해 이해되는 재즈의 세계재즈를 제대로 알려면 재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각 시대에 따라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 재즈가 생겨났고 또 그것을 이끌어간 재즈 연‘킹 올리버’, ‘루이 암스트롱’을 기억해야 한다. '재즈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루이 암스트롱’은 ‘타임’지에 의해 '20세기를 장식한 문화연예인 20인' 중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시기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다음이 스윙(Swing) 시대. 30년대 초반기에서 40년대 말까지 유행한 대형 악단. 이른바 빅 밴드(Big Band) 시대인데, 스윙이란 말이 그렇듯 신나고 경쾌한 음악이 주로 연주되었다. 당시의 '댄스 음악'이었다고 할까. ‘루이 암스트롱’을 포함, ‘듀크 엘링턴’,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 등이 전설적 연주자들이다.흔히 재즈를 딱딱한 음악으로 연상하는데 만약 이 스윙을 먼저 익힌다면 그 느낌을 벗을 수 있다. 즐겁고 유쾌한 재즈 감성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어려운 재즈를 한 ‘아트 블레키’도 이런 말을 했다. “스윙이 느낌이 없으면 재즈는 사라지고 만다. 재즈는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음악'이어야 한다.” 따라서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재즈음악이 스윙이라고 할 수 있다.다음 40년대 초기부터 50년대 중반까지의 ‘밥’ 또는 ‘비밥(Be-bop)’은 다시 연주자의 개성을 앞세워 어려워진 형태이다. 스윙에 맞춰서는 춤을 출 수 있지만 밥에는 춤추기가 어렵다. ‘찰리 파커’, ‘디지 킬레스피’가 밥의 대표주자들로 그다지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50년대에는 딱딱하고 어려운 흑인 주도의 비밥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데이브 브루벡)'과 '쿨 재즈(마일스 데이비스)'가 생겨났으며 다시 이것들과 정반대로 나간 '하드 밥(hard bop)'의 흐름도 형성되었다. 하드 밥은 어려운 주법에 매우 격렬하며 전개가 복잡하다.60년대 이후와 70년대 말까지를 모던 재즈의 시기로 분류하는데 '프리 재즈'를 위시해 여러 경향의 재즈로 한층 분화(分化)를 거듭했다. 이 시기에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매우 낯익은 용어가 된 '퓨전(fusion) 재즈'. 융합 또는 뒤섞임을 의미하는 퓨전은 정통을 괄하고 이어서 아티스트를 연구하라고 한다. 재즈가 특히 그렇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섣불리 역사나 아티스트로 가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시 말해 음악에 대한 느낌을 우선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또 하나 재즈에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만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재즈는 고급스런 분위기의 카페에서 와인을 걸치며 듣는, 그런 '무드 음악'이 결코 아니다. 94년과 95년에 국내 음악시장을 강타했던 재즈의 열기는 97년에 이르러 눈에 띄게 퇴조했다. IMF 경제난도 작용했지만 우리의 재즈 열기가 음악에 대한 관심이 아닌 '분위기'를 쫓아 들어온 사람들(유난히 20대 여성들이 많았다)에 의해 조성됐던 탓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당시에도 '거품' 열기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재즈를 절대로 도시의 멋쟁이들 음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재즈는 그런 허영이나 부르주아적 낭만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먼저 이런저런 선입견이나 거부감 없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음악에 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2살의 한 어린 소년조차도 재즈를 통해 더할 수 없는 감동을 맛보았다. 자칫 어렵게 느껴지는 재즈 장르도 반복해 들으면서 언젠가 느낌을 얻게 되면 그 즉흥성과 엇박의 연주 속에서 '충만한 자유로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장담컨대 그 때의 즐거움과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2.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1 ~ 1971)흔히 재즈라는 음악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는 의미로 '대중 예술'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곤 한다. 대중성(Popular Music)과 예술성(Art)라는 상반된 속성을 함께 품고 있는 이 모호한 음악을 설명함에 있어 루이 암스트롱은 가장 적합한 대상이 될 것이다. 그는 20세기에 파생된 재즈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재즈는 예술이다'라는 신앙을 지니고 있는 팬들 사이에서는 그를 재즈 아티스트로서 수용하는 것은 어쩌면 견디기 힘든 굴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역사에서 반드시 알아야되었다.
    예체능| 2003.09.01| 9페이지| 1,000원| 조회(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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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대학의 이해 - 캐나다 UBC와 토론토 대학
    최근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미국 외에도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유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어권 국가 중 미국의 명문 대학 못지않은 학문 수준과 교육 환경을 자랑하면서도 비용은 훨씬 저렴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세계 명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캐나다의 두 명문 대학과 캐나다의 교육과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캐나다의 교육제도캐나다의 교육제도는 유치원부터 대학 예비과정까지 공립과 사립학교 모두를 포함한다. 교육정책은 주정부 책임하에 있어 각 주마다 독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4,5세의 캐나다 어린이는 자발적으로 1,2년쯤 유치원에 다니게 되며, 그 밖에 대부분의 어린이는 초등학교 1학년을 6세에 시작한다.캐나다 중/고등학교의 1학년은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기제는 학교에 따라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9월 ~ 12월과 1월 ~ 6월의 2학기로 나누는 시메스터(Semester)제이거나 9월 ~ 12월, 1월 ~ 3월 그리고 4월 ~ 6월의 3학기로 나누는 트라이메스터(Trimester)제를 채택하고 있다.또 학년은 그레이드 1(Grade1)~그레이드 12라는 식으로 부른다.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것이 그레이드 1,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은 그레이드 12에 해당된다.캐나다의 다른 지방 혹은 외국에서 오는 학생들은 Guidance Office에서 실력을 평가받고 이전 학교에서의 학업 성취도나 학년이 어느정도 수준에 머물렀었는지에 따라 적정한 곳에 배치 받게 된다. 캐나다에서는 월반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학업기간을 줄일 수 있다.캐나다의 의무 교육은 16세까지이다. 초중고등교육은 Quebec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12학년제이다. 중등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진로에 따라서 인문계통이나 기술계통 또는 직업교육의 기초과정을 선택에 따라 공부한다. 고등 교육은 대학진학을 위한 과정과 지역사회 대학지는 둘째치고 그 이름만으로도 주눅이 들기까지 했다. 때문에 처음 캐나다에 있는 대학을 방문했을 때에도 나는 그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방문했었고 지금부터 소개할 학교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주립대학인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이하 UBC)이다.서부 캐나다 최대의 대학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 최대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밴쿠버(Vancouver), 그 밴쿠버의 다운타운 서쪽 해안에 UBC가 자리 잡고 있다. UBC는 세계 초일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뛰어난 교육 수준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우리 나라 학생들이 가장 진학하고 싶어하는 대학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1908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州) 정부에 의해 설립된 UBC는 1915년에 379명의 첫 신입생을 받으며 역사에 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 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드넓은 캠퍼스와 최고의 자연 경관을 가진 서부 캐나다 최대의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UBC는 200개 이상의 대학 건물, 3만 명이 넘는 학생,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망라하는 폭넓은 교육 프로그램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학교 곳곳에 위치한 21개의 도서관을 통해 학생들의 공부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농구와 배구 등을 즐길 수 있는 실내 체육관·수영장·아이스 링크·헬스 클럽 등을 개방해 학생들에게 체력 단련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이 같은 외적인 규모의 성장과 더불어 학문적인 발전도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UBC는 세계적인 석학들로 이루어진 교수진과 최고의 교육 수준을 갖춘 명문으로 손꼽힌다. 특히 지난 1993년에는 마이클 스미스 교수(Michael Smith, 1932∼2000)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여 학교의 명성을 드높였다. 또한 12개의 학부에서 다양한 전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명 과학·환경·아시아 관련 분야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그 못지않게 그 전통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교육 환경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캐나다의 대학에서 취득한 학위는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으며, 해외 유학생들도 졸업 후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새삼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최근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캐나다 유학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특히 캐나다에서 가장 입학하기 힘든 명문 대학 UBC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현지 학생 및 유학생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UBC는 최근 몇 년 간 지원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커트라인이 이공 계열 86%, 인문 계열 82%, 경영학부는 88%나 치솟았다. 그 결과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동부의 명문인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퀸즈 대학교(Queens’s University),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 등을 제치고 입학 성적 순위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였다. 또 UBC는 캐나다의 시사 주간지 〈맥클레인스(Maclean’s)〉가 지난해에 실시한 캐나다 대학 순위 평가에서 2위를 차지하여 그 같은 급성장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다양한 산학 연계·국제 교환 학생 프로그램UBC는 진정한 학문은 단순히 연구 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다양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초 학문 연구에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연구소들을 대학 내에 설립하고 있다. 산업과 연계된 UBC의 이 같은 학술 연구는 캐나다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또한 UBC는 전세계 130개 대학과 교류를 맺고 국제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대학 중에는 서울대 · 고려대 · 연세대 · 이화여대 등이 UBC와 협정을 맺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 학생들은 이들 대학에 입학한 뒤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UBC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서 온 외국 유학생들(교민 제외)이 전체 학생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UBC는 캐나다 정부의 유학생 유치 장려 정책과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외국 유학생의 비율을 2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교수는 1,870명이며 그중 87%가 박사 학위 소지자인데, 이것은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1명이다. 캠퍼스 내에는 5,66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와 아파트, 부부 학생용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UBC를 직접 체험하고...앞서 말했듯이 UBC는 밴쿠버 시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9km 떨어진 포인트 그레이(Point Grey) 반도에 위치해 있다. 태평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캠퍼스의 아름다운 전경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한 세심하게 배려가 돋보이는 각종 시설들을 보면 “아, 이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밴쿠버에 이런 대학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주변사람들을 통해서 이 대학이 문과, 특히 사회과학 계열 분야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굳이 순위를 따진다면 캐나다 내에서 토론토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 이어 두번째 정도라는 것쯤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규모는 여느 미국의 대학들 못지않게 컸다. 대학 내에만 일반 시내버스 정류장이 3군데나 있었고 자연 경관이 뛰어난 밴쿠버의 대학답게 대자연에 파묻힌 모습이었다. 그러나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받은 느낌은 그런 규모나 자연 환경들이 아니라 건물들이 무척 현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나름대로 캐나다에서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느 세계 명문대학의 캠퍼스가 지니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존재감은 찾기 힘들었다.내가 이곳을 방문했던 목적은 이 학교가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온 외국 학생들을 위해 ESL(English for Second Language) 코스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ESL 프로그램을 통해서 UBC라는 대학의 실체나 분위기 전체를 파악하기는 한계가때문에 나는 캐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학생이라고 하면 무언가 또래의 다른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현학적이고 진지한 모습을 상상했었다.(줄곧 수업시간에 비디오를 통해서 익히 봤듯이...) 그러나 가방대신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다니고 공부에 찌든 얼굴과 복장 대신 짙은 화장에 목과 손목에 가시박힌 쇠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나는 이들이 차라리 자연과 여가를 즐기는 과정의 하나로 대학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어디를 봐도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UBC의 학생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단지 문화의 차이일 뿐, 그들도 나름대로 UBC학생이라는 자부심과 학업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대학 교육이 갖는 의미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절박하거나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왜 이 대학에 들어왔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훗날 대학에 오지 않은 다른 친구들 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대학생이어서 얻는 이점은 버스를 탈 때 할인이 된다는 점뿐이다.” 우리들이 대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중요한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 말이었다.2. 캐나다의 역사와 함께 해온 토론토 대학(The University of Toronto)토론토대학은 1827년 Yorktown에 이 학교의 전신인 King's College가 세워졌고, 이 후 1851년 토론토대학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 지금의 캐나다 명문대학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캐나다 형성과 함께 설립된 학교답게 토론토 시내의 여기저기에 캠퍼스가 퍼져 있으며 학교와 도시를 구분하는 담장이나 울타리가 특별히 없어 도시 전체가 캠퍼스와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명실공히 캐나다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학으로
    교육학| 2003.09.01| 7페이지| 1,000원| 조회(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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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케팅] 스포츠마케팅 평가B괜찮아요
    Ⅰ. 서론 – 스포츠 마케팅의 개요 Ⅱ. 스포츠 산업 Ⅲ. 스포츠 마케팅 Ⅳ. 스포츠 마케팅의 실태 Ⅴ. 국내 스포츠 마케팅 산업의 발전과정 Ⅵ. 국내 스포츠 산업 현황 Ⅶ. 국내 스포츠 마케팅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 Ⅷ. 결론Ⅰ. 서론 – 스포츠마케팅의 개요스포츠 산업은 21세기에 가장 각광받을 문화산업의 대표주자 레저스포츠 관련 제조업은 물론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올림픽에서까지도 스포츠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인지하고 사업으로서의 측면을 인식 각종 국제대회의 증가, 다국적 기업의 진출, 프로스포츠의 발달로 인한 선수와 스폰서와의 관계 등 스포츠와 돈과의 관계는 현대사회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고 있다. 기업들은 자사의 이미지 고양이나 제품판매를 프로모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현대의 스포츠는 곧 새로운 비즈니스?1. 미래의 황금시장『스포츠 마케팅』스포츠 마케팅이 기업들의 강력한 글로벌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엄청난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 양대 스포츠 이벤트의 경제적 파급효과 스포츠 마케팅을 향한 기업간 치열한 각축전 스포츠 스타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의 스폰서십 마케팅 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 스포츠를 매개로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범세계적 이미지 창출 스포츠를 공감대로 전세계 소비자 공감대 형성2. 스포츠 마케팅의 위력 - 올림픽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단기간에 글로벌 톱 브랜드의 위상을 확보한 성공 사례 64년 동경올림픽에서 아식스와 미즈노 72년 뮌헨올림픽의 아디다스 84년 LA올림픽에서 일본의 브라더공업 등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와 함께 세계적인 브랜드의 위상을 확보 올림픽 마케팅의 전개를 통해 기업들은 인지도 제고와 이미지 개선이라는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올림픽이라는 인류의 축제를 후원함으로써 사회적인 책무를 다한다는 부수적 효과를 얻음.그Ⅰ-1 하계 올림픽의 TV중계료 추이3. 스포츠 마케팅의 위력 - 월드컵축구라는 단일 종목으로 프로모션의 집중도가 높아 올림픽을 능가하는 마케팅 효과가 있음 전세계 200여개 국가에인식은 80년대 초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에 이루어졌으며, 88올림픽이후 프로스포츠시장의 확대 와 참여스포츠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인하여 더욱 강화됨1. 스포츠 산업의 특징① 스페이스ㆍ입지중시형 산업이다 ② 시간 소비형 산업이다 ③ 서비스업으로서의 중요성이 높다 ④ 최종소비재·서비스를 다루는 산업이다2. 스포츠 산업의 분류스포츠 시설업스포츠시설건설업-스포츠시설설치업 -경기장시설건설업-종목별스포츠 시설운영업 -리조트형 스포츠시설업 -스포츠시설임대업스포츠시설운영업스포츠 용품업스포츠용품제조업-운동구제조업 -스포츠신발제조업 -스포츠어패럴제조업스포츠용품유통업-스포츠용품도매업 -스포츠용품대여업 -스포츠용품수리업-스포츠신문-출판업 -스포츠방송업 -스포츠인터넷업스포츠 경기업스포츠 서비스업-프로스포츠업 -아마추어스포츠업 -경륜스포츠정보업스포츠마케팅업-스포츠마케팅대행업 -스포츠에이전트업 -선수양성업3. 스포츠 산업의 역활① 스포츠산업의 문화성과 공익성 - 국민생활의 충실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사명 ② 스포츠의 여러 기능 발휘를 위한 스포츠 산업 - 국민의 생활의 풍부성ㆍ질의 향상에 기여 ③ 소비자 측에서 본 스포츠산업 - 소비자의 각종 요구를 복합화,체계화를 통해 제공도Ⅱ-2 스포츠의 근대 산업화 과정건강유지교 육오 락스포츠「하는」스포츠「보는」스포츠작은시장큰시장근대 산업화미디어 매개산업화도Ⅱ-3 스포츠 산업에서의 수요자 구조입장료스포츠 경기 (경기자측)T V 방송국팬기 업중계료스폰서료광고료시청료도Ⅱ-4 스포츠 산업에서의 중간 수요자경기 (상품)T V 케 이 블 P P V 스포츠신문 스포츠잡지 전 화 라 디 오 인 터 넷 P C 통 신 비 디 오 CD-ROM팬, 기업 (소비자)Ⅲ. 스포츠 마케팅스포츠 마케팅의 정의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의류 및 용품 생산업체에게는 매출과 직결되는 마케팅 활동 스포츠 팀과 경기연맹 등 스포츠 단체에게는 보다 많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 일반기업에게는 스포츠를 이용해 기존의 광고 또는 홍보 활동 등을 보조해주는 강력한 마케팅 커뮤니스포츠 마케팅의 실태국가별 사례 (1) 일본의 'J 리그' - 하쿠호도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 -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한 치밀한 계획 (2) 미국의 'NBA' - 경기 자체가 달러박스 - 미국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공식협찬 비용 지출 (3) 프랑스의 'FⅠA' - 포물러 원 그랑프리를 통한 스폰서 십 - 각 대회 타이틀 스폰서 금액 약 8백만 달러2. 개인적 사례골프 신동 타이거 우즈 도Ⅳ-1 타이거 우즈 마케팅 구도타이거 우 즈IMG협 상대행료 지급스폰서 비용 지급초상권 판매매니저 서비스 제공나이키2. 개인적 사례코리아 특급 박찬호 표Ⅳ-1 「박찬호 경기 중계」와 「모래시계」, 「용의 눈물」 비교박찬호 경기모래시계용의 눈물중계료(제작비) 편 당 중계료 평균 시청률 제작기간13억 원 1,200만원 17% 없음28억 원 1억1,600만원 30% 2년160억 원 1억60만원 26% 2년 이상Ⅴ. 국내 스포츠 마케팅 산업의 발전과정초기에 흥행사들에 의해 시작 - 60년대 초반 프로권투의 출발이 '스포츠 프로모터'라는 개념을 일반에게 소개 TV 수상기의 보급 - '관람스포츠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계기 마련 1982년 프로 야구의 출범을 시작으로 스포츠의 프로화가 진행 - 스포츠 상업주의를 스포츠 마케팅으로 승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함 '86년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의 국내개최 – 국내 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본격적 인식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 스포츠 마케팅은 질과 양 모두에서 급성장 - 국내기업의 폭넓은 참가로 90년대에는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활동 무대가 해외로 넓어짐표Ⅴ-1 한국 스포츠 산업 발전 과정상업주의 시대마케팅 시대시기60년대∼80년대초80년대 중반 ∼60∼70년대1982∼1986∼1994∼1998∼특 징스타 의존스타 의존 칼라 TV 보급확대마케팅 개념도입에이전트 탄생팬 주권시대 개막발전요인애국심호소지역연고제 미디어가치 인식기업수요자 탄생기업형 에이전트 활동활발한 스포츠 팬 활동대표 상품김기수, 홍수환 (복싱)이만수 등 (프로야구)'86아시안 게임보업스포츠신문/출판업4,0005,040스포츠방송업300스포츠인터넷사업200스포츠여행업300스포츠복권 및 복표업140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복권 총매출 280억회원권판매업100소계19,309합계112,693표 Ⅵ-2 한국, 미국, 일본의 스포츠산업 규모비교구분 국가한국(1999)미국(1998)일본(1997)GDP490조원7조6,360억달러500조3,100억엔스포츠산업11조2,693억원2,555억 달러19조 3,892억엔GDP대비 스포츠산업비율2.30%3.35%3.88%비고그 Ⅵ-1 전국등록 신고 체육시설, 문화관광부 1999표Ⅵ-3 국내 프로구단의 스포츠 시장 규모종목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합계규모1,0126454502,107(1999년 기준, 단위 : 억원)표Ⅵ-4 프로 스포츠 연간 입장 인원 (단위:명)연도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남)프로농구(여)계전년대비 증감율19851,688,000452,9722,140,97219903,189,000527,3503,716,35073.6%19944,194,000762,6324,956,63233.4%19955,534,0001,250,0076,784,00736.9%19964,498,0821,911,3656,409,447-5.5%19973,902,9661,204,794407,2815,515041-14.0%19982,639,1192,117,448750,40330,0005,536,9700.6%19993,220,6242,752,953788,10435,7236,797,40423.4%표Ⅵ-5 스포츠 산업 부문별 현황스포츠 경기업스포츠 마케팅업스포츠 정보업현황낮은 중계수입 낮은 인력들의 전문성과 인식부족 프로구단의 낮은 독립성열악한 환경 노하우와 전문인력 부족 외국 회사와의 업무제휴 가능성 예상스포츠 컨텐츠의 부족과제스폰 기업 유인책 강구 관람 인구 증가 노력 경기 시설 보강을 통한 수익성 제공 스포츠 이벤트 활성화 여건 조성전문 스포츠 마케팅 인력 자원 공급 스포츠 마케팅 업체의 전문영역 개척업체 육성 스포츠를 주제로 한 소프트웨어 개발 활성판 수입 입장수입 - 6억 7,400만원(21%), 입장료 수입 상품수입 - 5,600만원(2%), 라이센싱상품 판매수입 기타수입 - 4억 8,800만원(21%), 우승상금 및 선수이적을 통한 차익 방송수입 - 타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리그 중계권 분배금 또는 지역방송 중계수입은 없음※ 지출 구조선수연봉 - 52억원 직원인건비 - 4억7천만원 팀 운영비 - 28억원 기타지출 등(2000년 기준)(2)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 (스폰서쉽)“기업이 운동선수, 팀, 연맹, 협회, 스포츠행사에 현금이나 물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마케팅 목적을 달성하려는 활동”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의 스포츠를 기업이나 제품에 전이, 기업 이미지제고 매출향상 글로벌 마케팅“브랜드 노출을 위한 기업의 재정적 후원”스포츠 스폰서쉽스폰서쉽표Ⅵ-8 국내 주요 프로리그 스폰서 현황종목대회명스폰서료(백만)비고축구98년 정규리그(현대컵 k-리그)80099년 정규리그(현대 바이코리아배)1,5002000년 정규리그(삼성 디지털 K-리그)2,000야구98년 포스트시즌(바이코리아배)40098년 99년에는 정규리그 스폰서 없음99년 포스트시즌(아토스배)5002000년 정규시즌(삼성fn.com배)3,000농구97~98 필라코리아배2,00098~99 현대 걸리버배1,30099~2000 애니콜배2,300(3) 방송국의 스포츠 마케팅 현황박찬호 경기 (MLB)1000만달러(97-34만,98-100만, 99년-150만,00년-300만달러)국내 프로 야구70억원(2000-52억원)프로농구18억원(2000-15억원)NBA27억원(2000-17억원)월드컵 중계권료 (한국)100억 달러(미정) 98프랑스월드컴- 15억 천억달러월드컵 중계권료 (일본)660억원(4) 대행사의 스포츠 마케팅 현황(국내)회사명주요현황(2001.현재)금강기획국제유도연맹 마케팅 대행(종료), 현대자동차, 현대해상, 주택은행 월드컵 마케팅 대행, 수원시, 광주시 월드컵 행사대행, 대전, 광주 월드컵 경기장 개장 기념 경기 대행대흥기획아디다스 월드컵}
    경영/경제| 2003.09.01| 47페이지| 1,500원| 조회(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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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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