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리즘의 확대와 심화-과 에 관하야최재서1.- ≪조광≫ 8,9,10월호에 연재된 박태원의 중편소설.- 도회의 일각에 움직이고 있는 세태인정(世態人情)을 그림.- 객관적 태도로 객관을 봄.- ≪조광≫ 9월호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 고도로 지식화한 소피스트의 주관세계를 그림.- 객관적 태도로 주관을 봄.※ 공통점- 항간에 흔히 보이는 즉흥적 창작이 아닌 오랫동안 작자의 손때가 묻은 듯 한 작품.- 작자들이 어느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쓴 작품.- 관찰태도 및 묘사수법에 있어서 가능한 한 주관을 떠나 대상을 보려 했다는 점.공통점과 차이점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현대 세계문학의 2대 경향인 ‘리얼리즘의 확대와 리얼리즘의 심화’를 대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우리는 두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작가가 주관세계를 재료로 쓰면 주관적이고 객관세계를 취급하면 객관적’이라는 소박한 논법을 먼저 폐기해야만 할 것이다.소설가가 예술가인 이상 그에게 있어 주관세계와 객관세계 사이에 가치의 우열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작가의 유전이라든가 교양의 힘에 지배되어 한 작가가 똑같은 친밀성을 가지고 두 세계에 접근할 수는 없다.정신분석학자의 을 문예비평에 응용하자면, 인간의 예지는 세 가지 타입으로 구별할 수 있다.행동의 동기가 늘 외부에서 오는 사람은 , 동기가 늘 내부에서 오는 사람은 이라 한다. 그 사이에 중간 타입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외향적 정신은 늘 외계를 향해 움직이고 객관물 사이에 있을 때만 산 듯싶다.반대로 내향적 정신은 자기 자신의 내부세계 성찰을 즐겨하고 내부세계에 있어서만 안정과 쾌감을 느낀다. 우리는 예술가에게 두 세계 중 어느 하나를 취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지만, 진실하게 관찰하고 정확히 표현하도록 (객관적 태도와 리얼리즘을) 요구할 자격은 있다. 그 어느 것이나 객관적 태도로써 관찰하는 데 리얼리티가 생겨난다.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보는 눈에 있다. 주관의 막이 가린 눈으로 보느냐, 막이 없는 맑은 눈으로 보느냐 하는 데서 예술의 성격은 규정된다. ‘막을 가리지 않은 맑은 눈’이란 말에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대로 카메라적 존재가 되려고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2.소설가는 카메라인 동시에 카메라를 조종하는 감독자일 수 있다. 카메라적 활동에 있어 완전히 개인적 편차를 초월할 수 있으나, 감독자적 활동에 있어서는 주관의 습관성을 떠날 수 없고 또 떠날 필요도 없다. 카메라를 어떤 장면으로 향하고 어떤 질서를 가지고 이동하느냐 하는 것은 개성이 결정할 일이다. 개성이 있기에 예술에 존엄성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소설가는 심리적 타입에 따라 외부세계로 카메라를 향할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비교적 사태가 단순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가 동일인 내에 있기 때문에 미묘하다.의 작자처럼 관찰하는 예술가와 관찰당하는 인간을 구별하여, 내부의 인간을 예술가의 입장으로부터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인간 예지가 도달한 최고봉이라 할 것이다. 이는 자의식의 발달-의식의 분열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의식의 분열이 현대인의 현상이라면 이를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할 일이다. 작가는 과학자와 같이 냉엄한 태도로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 생활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카메라적 정신을 갖는 것은 비교적 쉬우나 자기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 데에 그 정신을 가진다는 것은 곤란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잔인한 일일 것이다.박 씨가 혼잡한 도회의 일각을 선명하게 묘사한 점도 존경하지만, 이 씨가 분쇄된 개성의 파편을 질서 있게 카메라 안에 잡아넣은 점은 경복할 만하다.우리가 카메라를 보면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작자는 작품 안이 아닌 작품 밖에서 인물이 움직이는 대로 카메라(소설가의 눈)를 회전하거나 이동하였다. 박 씨는 그 위에 주관의 먼지가 앉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 결과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선명하고 다각적인 도회묘사가 탄생하였다.3.우리는 에 있어서 카메라를 지휘하는 감독적 기능에서도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섭섭하게 생각한다. 박 씨의 카메라는 향한 곳을 잘 촬영하였으나, ‘카메라를 어디로 향할까, 장면 연계에 어떤 의도를 줄까’ 등을 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소설가에게는 소설 기술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면 그 무엇이란 묘사의 모든 디테일을 관통하고 있는 통일적 의식(사회에 대한 경제적 비판, 윤리관 등)을 말한다.이런 점에서 에 다소 의혹을 품지만, 전체적 구성을 말하기 전에 부분들에 나타난 작자의 수법을 더 자세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작자의 카메라는 우선 청계천 빨래터로 향한다. 이곳은 어멈과 행랑살이류의 여인들이 그들의 왕성한 다변욕(多辯欲)을 발산시키고 그 부근 일대의 생활 내막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사교장이다. 작자는 서울의 색채가 농후한 이 천변에 여인군이 빚어내는 생활의 비애와 유머의 리듬은 그들의 동작과 회화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편견없이 표현했다.다음 장면은 ‘이발소’로 이동된다. 이곳은 남자들의 생활 감정의 청산소(淸算所)이다. 여기서 작자의 카메라 대신 이발소 소년의 카메라가 회전을 시작한다. 이 소년이야말로 이 작품의 최대 걸작이다. 이 작품의 인물인 동시에 관찰자인 소년은 왕성한 호기심과 맑은 눈을 가지고 이발소 창밖의 유동하는 생활을 모조리 관찰하고 순진한 마음과 귀여운 유머를 가지고 소년다운 비평을 내린다. 작자 자신을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소년이다. 이후에도 작자는 가끔 이 소년의 눈을 빌려 실재의 단면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였다. 제1회가 비교적 표면 생활을 부감했다면 제2회에서는 인간 생활에 깊이 들어가 감정의 파동을 추구하는 데 노력했다. ‘시골서 온 소년’ 에서는 감상적·소극적인 시골 소년의 생활을 통해 도회생활의 고독과 절망을 표현하였다. 도회 생활의 페이소스와 유머는 ‘불행한 여인’, ‘경사’, ‘몰락’, ‘민 부사의 우울’ 등을 따라 음악같이 흘러간다. 작자의 카메라는 ‘소년의 내부’, ‘행랑방’, ‘민 부사의 첩가(妾家)’ 등으로 신속히 이동한다.제3회에서도 전 회과 같은 수법을 통해 부회의원(府會議員)선거에 몰두하는 일군과 우울한 민 부사와 돈 없는 사람들의 고독과 비참을 카페를 중심으로 한 애욕취인(愛慾取引)의 자태 등을 묘사하였다.이 모든 장면을 통해 작자는 카메라적 존재를 견지하였다. 서로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현실에 접근해가며 그 동태를 될 수 있는 데까지 다각적으로 묘출(描出)하려고 애썼다.그러나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진다. 천변은 일개의 독립한 혹은 밀봉된 세계가 아닌가? 물론 외부사회와의 교섭을 암시하는 점도 있으나, 이는 작자가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점은 아닐 듯하다. 작자가 만일 코올즈와지와 같은 의식과 견해를 가졌다면, 그는 전체적 구성에 있어 이 좁은 세계를 누르고 또 끌고 나가는 커다란 사회의 힘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었을 것이다. 에서는 사회적 연관의식이 보다 긴밀해지길 바란다.4.우리는 김기림의 에서는 알 수 없는 시를 보았고, 이상의 에서는 알 수 없는 소설을 만난다. 이는 우리 문단에 주지적 경향이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작자 자신이 서두에서 한 말이다. 정신이 육체를 초화하고 의식이 생활을 압도하고 예지가 상식을 극복하고 날개가 다리를 휩쓸고 나갈 때, 이상의 예술은 탄생된다.그의 소설은 생활과 행동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전통적 관념에서 이것은 예술의 세계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개인의 의식(그것이 병적일망정)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을 예술 행동으로부터 거부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그 개성이 현대정신의 증세를 대표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그렇다면 에 나타난 개성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의 라는 주인공을 통속적으로 기술해 보자.그는 생활 무능력자이자, 기생식물적 존재이다. 그는 경제생활 뿐 아니라 본능생활에 있어서도 무능력하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주인에 대한 개의 외복(畏服)일 뿐이다. 일상생활 수준에서 사람과 교제할 줄을 모른다. 방안에 누워 외계와 접촉을 두절하였다. 보통 인간의 생활 감정에서조차 무능하다. 아내가 옆방에서 내객과 뒹굴고 농담을 해도 질투심을 느낄 줄 모른다. 무능력자이면서도 그의 신경과 감수성은 면도칼같이 예리하다.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화장품병들과 유희하고 돋보기 장난을 하는 모습은 그의 병적인 신경상태를 말한다.
문학이란 하(何)오이광수신구(新舊) 의의(意義)의 상이(相異)동일한 말도 지방과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① 짐(朕)이나 경(卿)이란 단어는 고대에는 나[이(爾)], 너[오(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그러나 후세에는 제왕과 신하 간에만 사용하였다.이것은 시대에 따라 말의 의미가 변천함을 뜻하는 것이다.② 사(士)의 경우 조선에서는 문인을 뜻하나 일본 고대에는 무인을 뜻하는 것이다.이것은 지방에 따라서 말의 의미가 다름을 뜻하는 것이다.이처럼 형태가 같다고 그 의미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할 경우가 많다.조선에서는 이러한 말의 뜻과 오해가 많았다.시대와 지방을 따르는 것 외에 일상적 의미[상용(常用)]와 학술적 의미[학술(學術)] 사이에 따른 차이도 있다.법률(法律)의 경우 이전부터 사용되던 일상적 의미는 국가가 인민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준수하게 하는 규칙이라는 말이지만 법학상 법률은 법부(法部)의 의결을 거처, 주권자의 허가를 받아 내각원(內閣員)의 부서로 공포한 것을 칭하고 있다.“문학”이라는 말의 의미도 예전부터 사용되던 의미와 현재의 의미는 다르다.현재의 문학은 서양인이 사용하는 문학이라는 말의 뜻으로,서양의 Literatur 혹은 Literature라는 말을 뜻하고 문학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다.문학의 정의(正義)문학은 한마디로 정의되기엔 그 범위가 넓고 내용이 막연하다.엄정히 말하면 정의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하나의 학(學)으로 칭하고 있다.굳이 정의한다면 문학비평가들은 문학을특정한 형식아래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정하고 있다.여기서 특별한 형식이란,① 문자로 기록된 문학 : 구비전설은 문학이라 칭하기 어렵다.문학은 문자로 기록된 후에야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② 문학의 형식: 시·소설·극·평론 등 문학상의 형식으로 기록된 것이다.오직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기록한 것이라야 문학이라 할 수 있다.기록된 것이라도 형식이 없거나 만록(漫錄)[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 읽는 듯하여 미추희애(美醜喜哀)의 감정을 따르니 이 감정이야말로 문학의 특색이다.문학은 학문(學文)이 아니니, 문학은 어떤 사물을 연구함이 아니라 감각함이다.고로 문학자라 함은 그 일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독자)들에게 미감이나 쾌감을 일으키게 할 만한 서적을 만드는 사람(글을 쓰는 사람)이다.과학이 사람의 지식을 만족케하는 학문이라면 문학은 사람의 감정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문학과 감정(感情)문학은 감정을 기초로 한 것이니, 감정과 자신의 관계를 따라 문학의 경중이 나타난다.과거에는 이지(理智)를 감정(感情)보다 중히 여겼고 개성에 대한 인식이 명료치 않았다.근세에 들어 사람의 마음이 지(知), 정(情), 의(意)로 작용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의 정신을 평등하게 구성한다는 것도 인식하였다.정(精)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정(精)의 가치가 높아졌으며 문학·음악·미술 등으로 정(精)을 얻어 만족을 구하려 하였다.고대에도 정(精)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는 지적·도덕적·종교적 의의와 연관 짓는 지(知)와 의(意)의 보조물이나 부속물로 여겼다.약 500년 전 문예부흥이라는 인류 정신계의 대변동 이후 정(精)이 독립적으로 이해되고 지(知)나 의(意)와 동등한 위치가 되었다.(500년전 문예부흥은 한글 창제 이후의 문학계의 변동을 뜻하는 듯하다. 시기적으로는 는 1916년에 『매일신보』에 연재. 한글창제는 1443년이고 반포가 1446년이므로 대략적으로 500년 전. 한글 창제 이후 우리나라의 문학이 많은 방향으로 성장하기도 하였으므로 한글창제시기를 뜻하는 듯함.)문학예술은 정(精)의 만족을 기본으로 하고 목적 삼고 있는 듯하다.문학의 재료정(精)의 만족은 흥미니,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문학예술은 재료를 인생에서 취한다.인생의 생활상태와 사상과 감정이 재료이고 이를 묘사하면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문학예술이 되는 것이다.가장 좋은 문학은 가장 좋은 재료를 최정(最正)·최정(最精)하게 묘사한 것이다.가을 일이다 하고, 독자가 칭찬하게 함이고, 최고의 감정(最精)이라 함은 어떤 사건을 묘사하되, 대강대강 하지 말고 극히 직접 보는 듯하게 하는 것이다.문학과 도덕조선문학은 반드시 유교식 도덕을 고취하고 그것이 골자로 하여 권선징악을 풍유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에 천편일률적이었다. 따라서 조선인들의 사상과 감정은 편협한 도덕률에 속박되었다.이것은 조선에 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최대의 원인이 되었고 이 때문에 타민족의 문학의 왕성함을 지켜보며 이를 안타까워하였다.문학은 사상과 감정을 써내어 설명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오늘날의 문학은 종교 윤리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생의 사상과 감정과 생활을 자유롭고 여실하게 발표하고 묘사하고 있으니 이는 문학의 발달과 고전의 탄생이 가능한 배경이 되었다.앞으로의 신문학(新文學)은 사상과 감정이 넓은 범위 속에 자리 잡아 작품의 재료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묘사하도록 노력해야한다.도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음담패설을 재료로 한 문학은 아니요 도덕률을 사려함과 동시에 인간사의 현상을 여실하게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지금까지의 문학처럼 특정한 도덕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혹은 권선징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위해 문학을 창작하지 말고 일체의 도덕적 잣대를 사용하지 말고 실재한 사상과 감정과 생활을 여실하게 만인의 눈앞에 재현하는 것을 문학작품 저작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이러한 현상은 독자와 저자 간에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작자는 위와 같은 목표로 저작을 하며 독자는 위의 것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책을 읽는 상호 작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문학의 실효문학의 쓰임은 독자의 정(精)의 만족에 따르는 것이다.지(知)의 만족은 진리의 추구로, 의(意)의 만족은 선 또는 의의 추구로 연계되고정(精)의 만족은 독자에게 아름다움(美)의 추구를 가져다줄 것이다.미(美)란 독자의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적 욕망에 필요하다.인간은 진·선·미에 대한 욕망이 균형하게 발달되어야하나 전문가들은 한 가지가 유난히 발달한 경향도 있다. 일반인들매개체로서의 문학은 인생의 정신적 방면에 대한 지식의 습득을 가져다주니 처세와 교육이 필요하다.② 인간이 서로의 인정세태를 이해하므로 인류의 가장 깨달음은 덕(德)이고 또한 다수 선행의 원동력이 되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문학작품 속 타인이 타락하는 경로를 보며 경계심을 가지게 될 것이며, 타인이 진보하는 심리상태를 보며 모범으로 삼는 교육적 역할을 할 것이다.?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세상 속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또한 자유로운 상상 속 이상의 경지를 자유롭게 돌아다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경험을 얻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고상한 쾌락인 문학을 애호하는 습관을 길러 주색 등의 유해한 쾌락에 빠지는 일을 면할 수 있다.? 진정한 문학은 도덕을 고취하려는 의식은 없으나 자연스럽게 일종의 교훈을 수반하고 있으니 문학작품을 읽고 쾌락을 향유하는 중 품성을 닦고 지능을 계발하게 될 수 있다.문학과 민족성진보하는 한 시대의 사상, 감정, 생활방식은 그 시대 민족의 연구와 노력, 수련의 결과이다.이러한 무한한 고심과 노력의 결정은 유산으로 후대에 전하여 그들이 행복을 얻게 하고, 그들의 사상, 감정, 생활방식을 기존의 것에 첨가하여 역시 후대로 전해지고 이는 백대, 천대를 거쳐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며 품질이 더욱 정제되는 것이다.이것이 즉 민족의 정신적 문명이자 민족성의 근원이다.이러한 정신적 문명을 전하는 것이 그 민족의 문학이며, 문학이 없는 민족은 습관이나 구비로 정신적 문명을 약간 밖에 전하지 못해 야만·미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우리나라는 여러 문명국을 거쳐 발전하였으나 그 정신과 문명이 문학의 소멸로 인해 완전히 전해지지 못하였고 특히 선인들은 무심무상하여 중화사상의 침입에 노예가 되어 조선사상과 조선의 문학을 절멸시켰다.하지만, 여전히 한자, 한문을 숭상하며 중국인의 사상에서 탈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신문명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신정신적 문명의 창작을 해야한다.합병이래로 모든 문물제도가 신문명에 의거하였으니 신문 역사문학, 종교문학, 연애문학, 시대문학 등* 형식- 운문문학 : 시- 산문문학 : 논문, 소설, 극, 산문시? 논문 : 발표하려는 바를 소설과 시의 기교적 형식을 취하지 않고 말하듯이 발표하는 것으로 작자의 상상 속의 세계를 작자의 말로 번역하여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전하는 것이며, 비평문이나 평론문이 속한다.? 소설 : 재담이나 이야기처럼 가볍고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 함은 인생의 한 부분을 바르게, 면밀히 묘사하여 독자의 눈앞에 작가의 상상 내에 존재한 세계를 여실(如實)하게, 역력(歷歷)하게, 전개(展開)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세계 안에 존재하여 실제로 보는 듯하는 감정(感)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극 : 소설은 문자로 작자의 상상을 표현하지만 극은 실지의 형상을 무대에서 대본을 가진 배우(광대)가 연출함으로서 관객들에게 감명을 일으키는 것이니 연극은 문학에서 독립한 일종의 예술이다.? 시 : 산문이 읽는 것이고 인생의 한 방향이나 작자의 상상세계를 표현하여 그 일체의 판단을 독자의 의사에 맡기는 것이라면, 시는 읊는 것으로 작가가 인생의 한 면 또는 자기의 상상 속의 세계 중에 흥미가 있는 것을 선택하여 음률 좋은 언어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읊조리게하여 감탄하게 하는 것이다.형식으로 볼 때 압운(押韻)을 맞추고 평측(平仄)을 배열하여 곡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문학의 문(文) 기로에 입(入)하다문학이란 내용을 담는 그릇을 문(文)이라했는데 조선에서는 옛부터 한문만을 문(文)으로 여기고 한문을 이용한 작품만을 문학(文學)이라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문학의 발달을 저해한 큰 장애였다.문학은 그 언어보다 그 내용된 사상을 중요시하는 것이니,논어나 맹자의 ‘子曰’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로 바꿔도 그 의미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조선학자들은 대부분 한문을 익히는 일에 시간과 힘을 허비하였고 아직도 이러한 행태가 유지되어 난삽(難澁)한 한문문구 사용, 한문격(漢文格) 사용, 한문에 국문으로 토를 단 문체사용이 성행하니 과도기 현상일지라도 타파해.
개성과 예술염상섭1.자아의 각성을 논의하고 이로 말미암은 개성의 발견과 그 의의를 서술한 후에 예술적 창작상, 따라서 그 가치평정(價値評定)상 개성은 여하(如何)한 지위를 점하여 하여(何如)한 의미가 있는가?* 자아각성과 자연주의- 자아의 각성(覺性) 혹은 그 회복(回復)은 근대 문명의 정신적 모든 수확물 중 가장 본질적이요, 중대한 의의를 가짐.?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우상을 타파하며, 초자연적 일체를 물리치고 나서 현실 세계를 현실 그대로 보려고 노력함.? 신성과 절대, 숭배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모든 것을 세밀히 검토하는 정신이 근대적 자아 각성.- 주위를 의심하고 비평적 태도로 일체를 탐구, 평가하는 주체가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의미한다.- 근대적 개인을 특징짓는 것은 교권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성과 세계를 이성에 의거해 파악하는 합리성.- 현실 폭로의 비애, 또는 환멸의 비애를 주장하면서, “자연주의의 사상은 결국 자아 각성에의한 권위의 부정, 우상의 타파로 인하여 유기된 환멸의 비애를 수소(愁訴)함에 그 대부분의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계몽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문예상의 자연주의(자아각성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음)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작자는 계몽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이해가 혼란스러웠고 이는 일본식 자연주의의 개념을 자연주의 일반으로 오해하고, 그것을 계몽주의의 논리와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주의와 계몽주의가 뒤섞일 수밖에 없었던 1922년 당시 조선의 현실 문제였고 보기에 따라 3.1운동 실패 이후의 ‘조선적 상황에 대한 은유’로서도 읽힐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현실폭로의 비애나 환멸의 비애라는 감정이 실제로는 3.1운동 실패 이후 조선의 민중과 지식인들의 평균적 감수성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은 시에서의 과잉 낭만주의 또는 퇴폐적 낭만주의가 당대적 문맥 속에서 일정한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에 대응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2.* 개성과 생명- 자아의 각성이나 자아의 존엄은 곧 인간성의 각성 또는 해방이며, 인간성의 위대를 발견함을 의미하고 이러한 의미가 개인에 이르면 개성의 자각, 개성의 존엄을 의미할 수 있다.- 개성이라는 것은 개개인의 품부(稟賦)한 독이적(獨異的) 생명이며, 이러한 거룩하고 독이적인 생명의 유로(流露)가 곧 개성의 표현이다.- 개성을 논하는 중 생명을 끌어들이는 것은 다소 기이한 논리이지만, 작자는 ‘개성=생명의 유로’라는 등식을 세우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론을 정초(定礎)하고자 하는 듯하다.- 작자의 개성론을 보면 개성이란 생명의 유로를 의미한다.그렇다면 개성의 표현을 의미하는바 생명이란 무엇을 의미함인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정신생활이다.( 물적 생명의 욕구나 주장, 감정생활 등의 일반적 인간성의 표현을 넘어선 개개의 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거기에 정신생활을 규지(窺知)하고 그 정신생활이 곧 그 자신의 거룩하고 독이한 생명의 발로(發露)라 할 것이다)? 위대한 개성의 소유자는 위대한 생명이 끊임없이 연소하는 자이다.( 위대한 영혼이 반발약동(反撥躍動)하는 거기에 비로소 숭고한 정신생활이 향상발전되고, 고매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고 그 모든 이상이 성취되고 모든 가치가 창조되는 것이다)? 위대한 개성의 표현은 모든 이상과 가치의 본체 즉 진(眞), 선(善), 미(美)로 표상되는바 위대하고 영원한 사업이 인류에게 향하여 성취케 한다.( 그의 정신생활과 인격의 발로인 위대한 사업에 내재한 그의 개성이 영원히 빛남을 가리켜 영혼의 불멸이라 하며 사후의 재생이라 하니 경전, 문헌, 작품 속에서 영원 분멸한 것이다)3.* 예술과 개성- 예술과 개성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개성의 표현=정신생활=생명의 유로=초월성(영원성의 성취)- 개성의 산물=모든 이상과 가치의 본체 즉 진(眞), 선(善), 미(美)- 그렇다면 예술의 영지(領地)인 미와 개성 간의 관계는 어떠하며, 대체 미(美)라는 것은 무엇인가?
7. 중세후기문학 제1기 고려후기7.1. 무신란 ? 몽고란과 문학7.1.1. 시대변화의 추이1170년(의종 24)에 무신란이 일어나고, 1258년(고종 45)까지 거의 한 세기 동안 무신정권이 지속되었다. 무신정권 담당자들은 스스로 새로운 문학을 일으킬 수 없었다.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주축은 신진사인이라는 중소 지주 출신의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무신정권이 무너진 다음에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특권층인 권문세족과 다투다가 후에 조선왕조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현실을 도피한 채 유흥적인 문학을 하기도 하였으나, 농촌실정을 문제 삼고 농민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는 문학을 하기도 하였다. 문학의 기류는 후자의 방향으로 흘러갔다.무신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에 몽고의 침략이 닥쳐왔다. 몽고는 1231(고종 18)에 시작되어 1259(고종 46)까지 거란이나 여진의 경우와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완악한 침략을 감행하고, 국토를 강점해 주권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무신 정권기 당시 최씨정권은 몽고와 맞서 싸웠다. 투쟁의 과정에서, 새 시대의 문인들은 최씨정권의 항쟁을 지지하면서 민중의 애국적인 역량을 조직하고 동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투쟁 기간 동안 상하의 의지가 일치한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어서, 새로운 문학이 진취적이고 민중적인 입장을 지닐 수 있게 했다.고려후기의 문학은 고려전기 문벌귀족의 문학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중세적인 가치관을 현실의 움직임에 맞게 재편성하는 것을 기본과제로 삼아 문학관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표현양식을 찾으면서 활기에 찬 실험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조선전기에서 이어받아 고려전기와는 다른 차원의 질서와 조화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까지의 문학은 기본적인 동질성을 가지며, 고려전기까지의 중세정기문학과는 구별되는 중세후기문학을 이루었다.7.1.2. 김극기가 택한 길김극기(1150년 무렵~1204년 무렵)는 살아서 불우했으나, 사후에는 남긴 작품 때문에 큰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방대한 문집을다고 나와 있다.천책(天?, 1206~?)은 천인의 후계자이다. 천책의 시는 정약용(丁若鏞)이 높이 평가하였다. 아마 천책과 정약용 모두 유학과 불교, 문학과 신앙을 관련시키고 견주는 등, 이질적인 정신세계를 함께 지녔기 때문이라 생각 된다. 김구와 교유하면서 지은 (次韻答秘書閣金坵)에서는 심각한 논란이 필요한 문제를 제기해 은거시에서 찾기 어려운 긴장감을 선보이고 있다.천책의 후계자는 이안(而安)이고, 그 다음이 운묵(雲默)이다. 운묵시절에는 백련사가 전날의 영향력을 잃었고, 천태종은 무력해졌다. 운묵은 선종이 불교계를 지배하기 전에 천태종에서 할 일을 하였다. 불교의 내력을 깊이 탐구해 1328년(충숙왕 15)에 (釋迦如來行蹟頌)이라는 서사시를 이룩하였다. 상하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권에서는 우주의 내력에서 시작해서 석가의 일대가까지 말하고, 하권에서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경위를 다루고 신앙의 자세를 말하였다. 흔히 있던 단편적인 게송과는 다른 장편 서사시를 썼는데, 서로 다른 교리를 합쳐서 체계를 갖춘 저술을 하는 천태종 승려의 장기를 발휘해 불교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또한 다시 (月印千江之曲) 이라는 불교서사시를 국문으로 지었다. 이는 당시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다른 나라가 인도 작품 한역인 마명(馬鳴, Asvaghosa)의 (佛所行讚, Buddhacarita)을 애독하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그친 것과 대조를 이룬다.7.3.4. 충지충지(沖止, 1226~1293)는 조계산 수선사에서 지눌과 혜심의 뒤를 이은 사람이다. 충지의 글을 모은 (圓鑑錄)은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으며 문집이라 할 수 있는 편제를 갖추고 있다. 수록된 작품은 성격이 다양해 선시도 있고, 전에 볼 수 없었던 형식의 노래도 있다. 일반문인이 지은 것과 같은 시문 또한 적지 않다. 또한 에도 승려의 작품으로 가장 많은 수가 전해진다.그윽한 곳에서 산다하여 (幽居)라 제목 붙인 시의 서두에는 산승의 흥취를 적절하게 나타내 자기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조화는 깨어지고럼 앞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 장이 독립되어 있다. 논리적인 연관을 따지려고 하지 말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서러움을 각기 다른 사정을 통해 이것저것 말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여음인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얄라"는 힘차고 밝고 유려하다. 이는 후대의 "아리랑 아라리오"로 이어진다. 라고 하던 민요를 속악에 넣을 때 채택한 사설 첫 마디의 말을 따서 이라는 이름을 다시 붙였으리라고 생각된다.7.6.6. 소악부소악부(小樂府)는 속악가사를 다른 측면에서 재겈토하고, 속악가사로 전하지 않는 우리말 노래까지 어느정도 알아 볼 수 있게 해주었다.이제현(李齊賢, 1286~1367)과 민사평(閔思平, 1291~1359)이 남긴 일련의 한시는 이제현의 것은 (益齋亂藁)에 11편, 민사평의 것은 (及菴先生詩藁)에 6편이 전해진다. 악지에 소개했으나 우리말 사설이 전하지 않는 것들 여덟편이 소악부에 있다. (長巖)은 이제현 1번, (居士戀)은 이제현 2번, (濟危寶)는 이제현 3번, (沙里花)는 이제현 4번, 는 이제현 6번, (五冠山)은 이제현 7번, 또는 의 "구스리 바회예 디신들" 대목은 이제현 8번이다. 충혜왕이 지었다는 (後殿眞勺)은 민사평 1번으로 추정, 의 한 부분이 민사평 4번, (安東紫靑)은 민사평 5번, (月精花)는 민사평 6번이다. 이렇게 열거하고 남은 것이 이제현 5 ? 9 ? 10 ? 11번, 민사평 2 ? 3번이다. 이 여섯은 다른 문헌에 언급된 바 없고 오직 두 사람의 소악부에 다 모습을 남겼을 뿐이다.은 벼슬하는 사람의 탐욕을 경계했다. 이제현이 자신을 생각하면서 특히 관심을 가진 노래로 보인다.은 아내가 객지에 나간 남편을 생각하면서 부른 것이다. 와 상통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점이 다르다. 는 죄를 지어 노동의 징벌을 받게 된 여자가 외간남자에게 손마저 잡힌 치욕을 한탄하며 부른 노래라고 했다. 는 농사를 지어도 권력 있는 자들이 빼앗아가고 마는 처사에 댛나 원망을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나무라면서 나타냈다. 사대이규보가 한 작업을 이어서 '물'의 이치를 밝혀 사람과 연고나짓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얻은 원리를 (直說三篇)에서 정리해 논하였다. 그 내용은 "在人者性也 在物者亦性也"(사람에 있는 것도 성이고 물에 있는 것 또한 성이다)와 "同一性則同一天"((이 둘은) 같은 성이니 같은 천이다)라고 했다. 그런 원리를 분명하게 해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문학의 목표라고 했다. 그런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고, 그 이유를 둘 들었다. 하나는 문학이 본래의 임무를 저버리고 문장 수식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본이치에 대한 이해가 흐려지는 말세에 이른 것이다. (栗亭先生逸藁序)에서는 도학이 본도라면 문장은 외도라고 하였다. (觀魚臺賦)에서는 사람과 물이 함께 지닌 원리를 밝혀 말세에도 올바른 소리가 잊혀지지 않은 것을 알리는 외로운 봉의 울음과 같은 작품을 쓰고자 한 이색의 이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색은 물아일체이고 고금불변의 원리를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였다. (蠶婦), (樵童), (農夫), (漁者) 등의 작품은 민중의 모습을 생동있게 그리고 있다. (驅儺行), (端午石戰) 등의 시에서는 풍속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貞觀吟)에서는 당태종의 침략전쟁을 물리친 고구려 사람들의 투쟁을 노래하고 자기 시대의 지표로 삼을 것을 암시했다. (山中謠)는 왜구 때문에 벌어진 시련을 다루고 있다.정추(鄭樞, 1333~1382)는 (觀物齋箴)에서 물(物)이 달려들어 괴롭히더라도 동요되지 않고 조용하고 안정된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했으나, 자기는 그럴 수 없어 시대의 문제와 처참하게 부딪혀야만 했다. 신돈을 규탄하다가 죽을 뻔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내쫗긴 시절에, 내우외환으로 빚어진 마음의 상처를 아프게 나타내고 있다. (汚吏同朴獻納)에서는 궁궐문을 호랑이나 표범이 지키고 있어서 실정을 알릴 길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聞倭賊破江華郡……)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개구리 우는 소리에서 국문시가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좋다. 그러면서 악장에는 한시이지만 한 것부터 우리말 노래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것까지 있었으나, 경기체가는 한번 마련한 형식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경기체가에서 사용한 한자어는 사물의 이름이자 사물을 인식하는 틀이어서 순 우리말로 바꾸어놓기 어려웠다. 그런 형식과 표현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고쳐보려고 하다가 갈래의 해체를 촉진하고 말았다. 악장은 기능이 단일하고 형식은 다양한 것과 대조를 이루면서, 경기체가는 형식은 일정하면서 기능에서 몇 부류로 나누어졌다. 새 왕조의 건국을 찬양하고 질서를 수립하자고 하는 경기체가는 악장 노릇을 했다. 승려가 만들어낸 가사를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대부가 받아들이고, 사대부의 노래이기만 한 경기체가를 승려의 노래로도 이용했다. 사대부가 자기 생활을 다루고 개인적인 관심을 표현한 작품이 차츰 많아져서 경기체가의 주류를 이루었다. 악장노릇을 한 경기체가의 첫 작품은 권근의 (霜臺別曲)을 들 수 있다.변계량(1369~1430)은 서울을 찬양하는 (華山別曲)을 1425년(세종 7)에 지었다. '화산'은 삼각산의 다른 이름이며, 서울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서울의 모습을 들어 새 왕조를 칭송하면서 어진 임금이 들어서서 훌륭한 정치를 베푸는 태평성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다채롭게 열거해 그 시대의 정치철학을 제시했다.(五倫歌)와 (宴兄弟曲)은 작자나 지은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에 전하니 널리 불렸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윤리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이다. 오륜이 두루 소중하다고 하고, 형제의 우애를 따로 강조했다.가 크게 존중되자 승려들도 경기체가를 받아들여 신앙의 대상을 찬양하는 노래로 삼았다. 특히, 기화(己和, 1376~1433)는 그 일을 맡아 (顯正論)에서 불교가 유교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펴서 불교 옹호의 논리로 삼고, 경기체가를 차용한 형식으로 (彌陀讚) ? (安養讚) ? (彌陀經讚)을 지었다.승려 의상(義想)이 지은 (西方歌)도 전하는데, 세종 때쯤의 작품이 아어졌다.
CEO 히딩크 -게임의 지배를 읽고처음에 CEO에 관련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라는 교수님의 과제를 듣고 상당한 고민에 휩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월드컵으로 인기가 많은 히딩크 얘기를 하셨을 때 나는 벌써 과제의 방향을 CEO 히딩크로 잡았다. 거기에는 내가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하기도 이지만 2년동안 축구동아리 회장을 맡아오면서 수많은 고민과 이럴 때 동아리(조직)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지난 2002년 6월. 대한민국을 흔들고 축구의 열기에 휩싸여 온 국민이 흥분에 못이겨 밤잠을 못이루며 전 세계의 유수의 언론사에서 대서특필했던 대한민국의 응원문화와 질서의식,심지어는 국민성을 들먹이며 그 이면에 있는 경영자 히딩크에 주목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나름대로 아시아에서는 축구의 강국이었는지는 몰라도 세계무대에서 특히,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는 연속 6회 본선진출국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1승도 못 거두며 초라한 성적표를 달고 다녔던 대한민국에 월드컵을 불과 1년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남겨놓고 부임한 히딩크 전 네델란드 국가대표 감독 히딩크, 그는 과연 어떻게 한국 축구를 세계 무대에 자랑스럽게 내놓았으며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조직)을 어떻게 경영했을까라는 점이 궁금하다.그래서 전에 읽었던 히딩크의 힘보다는 CEO 히딩크 - 게임의 지배를 다시 읽으며 조직혁신적인 면에서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2002 한일월드컵의 최대 이변을 연출한 한국팀의 감독, 거스 히딩크가 행한 한국 축구 개혁의 시나리오 전말을 분석하고 이를 조직의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를 살펴본 책이다.이제 월드컵이 끝나면 승리의 흥분과 감동은 서서히 잊혀져 가겠지만, 우리가 결코 쉽사리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이 책은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개인으로서의 히딩크가 아니라 리더 혹은 경영자(CEO)로서의 히딩크,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가 그것을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히딩크 성공의 객관적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분출된 한 국민의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범용의 모델로서 히딩크를 바라본다.월드컵 4강이라는 한국 축구사에, 나아가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연출한 명장 히딩크. 남은 시간 500일, 2.5류 밖에 안 되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냄비 국민들…….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도 그가 기적을 일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한국팀에게, 한국 국민들에게 남긴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리고 월드컵 잔치가 끝난 뒤,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이 책 "CEO 히딩크 - 게임의 지배"는 히딩크를 단순한 축구 기술자가 아니라 축구 경영자로 파악한다. 경영자(CEO)라는 시각을 통해 탁월한 전략가, 능란한 변화관리자, 그리고 냉철한 조직전문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냉철하게 살핀다. 이런 냉정한 분석을 통해 히딩크가 축구에서 보여준 성취를 미래를 개척하려는 청년, 일류 기업을 꿈꾸는 경영자, 조직을 개혁하려는 리더 등이 실감할 수 있는 개혁의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자 한다.한국 축구의 성취는 요행이나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었고, 히딩크라는 탁월한 CEO를 통해 그것이 실현됐을 뿐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은 세계 일류로 도약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히딩크의 개혁 모델을 제대로 벤치 마킹한다면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이 책은 IMF 이후 패배주의에 시달렸던 한 국민의 한을 한 번에 씻어준 통쾌한 골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냉소와 회의를 보냈던 바로 그 입으로 한국팀의 눈부신 성과를 보면서 갑자기 '히딩크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이중적인 냄비 여론과도 무관하다. 경기장에서, 길거리에서 보여준 열광과 함성이 가신 뒤 냉정하게 성공의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한국 축구가 거둔 기적을 일회적 흥분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는 나침반이 되고자 한다. 붉은 물결이 넘치던 경기장에서 TV를 보며 얼싸안고 환호했던 승리의 기쁨을 두고두고 한국 사회 전반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공의 지침으로 보여주려 한다.그러면 "CEO 히딩크 - 게임의 지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알아보면,이 책은 축구 마니아이면서 히딩크를 한국 개혁의 롤 모델로 삼고자 시도하던 이동현(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과 히딩크를 500여 일간 취재해온 경영학도 출신의 일선 기자 김화성(동아일보 체육부 차장)의 만남에서 시작됐다.두 사람의 고민이 합쳐졌던 당시는 "위기의 히딩크호 침몰 위기"라는 비판 여론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가전의 결과보다 히딩크가 일관되게 준비해온 성과들이 하나씩 이룩되는 과정을 주목했다. 이들은 히딩크의 시도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한국 축구의 개혁 과정이 매너리즘에 빠진 개인이나 조직, 기업이 혁신을 통해 성공을 거두는 과정과 근본적으로는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을 통해 펼쳐보인 혁신의 과정이 어떻게 보편적인 성공 사례와 근본적으로 통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히딩크가 비록 16강에 들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 축구에, 그리고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줄 것으로 믿지 못했다면 이 책은 애당초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축구와 경영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목표가 있고 리더가 있고 조직이 있다. 축구팀의 경우 승리가 목표라면, 기업 경영의 경우 이윤 창출이 목표다. 축구팀에 감독이 있다면, 기업에는 CEO가 있다. 축구팀에 선수들이 있다면, 기업에는 조직 구성원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축구나 경영이나 경쟁자가 있다. 이들 경쟁자와 게임을 벌여 이겨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의 특징이 미드필드에서의 강한 '압박(press)'으로 게임을 '지배(domanation)'한 팀이 유리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바로 히딩크의 지론이기도 하다. 히딩크의 철학인 '게임의 지배'는 축구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필요하다."이미 구미에서는 '스포츠 리더십' '스포츠 경영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다. 각종 프로 스포츠 팀의 감독이나 코치들의 책이 기업체들에서 최고의 리더십 교재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국내 저자들이 단일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 최초의 스포츠 경영학 책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또한 이 책은 최근 한국 출판 시장에 미국산 경영서 번역물이 범람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기획된 흔치 않은 정통 경영서이기도 하다. 번역서에 편중된 경영서 시장에서 우리 독자들은 먼 나라 기업의 성공 사례에서 큰 공감을 얻지 못했고, 이는 결국 경영서 코너를 찾는 독자를 점점 잃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성공 사례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은 경영서 분야에서도 국내 기획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한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1) 먼저 히딩크가 거둔 한국 축구팀의 성공이 어떻게 준비되었는가, 500일 동안의 히딩크의 족적을 세밀하고 냉철하게 살핀다. 여기에는 히딩크가 기적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어떻게 추진했으며, 어떤 시련을 뚫고 왔는지, 승리의 환호 뒤에 가려진 풍성한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편의 기적을 이룬 드라마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축구 마니아뿐만 아니라 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매력을 맛본 일반인들도 흥미로울 것이다.2) 또한 부임 이후 8강에 오르기까지 500여 일 동안 히딩크가 남긴 말 400여 개가 논지의 근거로서 발언 당시의 구체적 정황과 함께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히딩크의 지도를 받았던 23명 대표팀 선수들이 가진 히딩크에 대한 솔직한 생각뿐만 아니라, 히딩크식 한국 축구 개혁을 의심하고 비판했던 많은 축구계 관계자들의 주장도 상당수 실려 있어 흥미롭다.(책 끝에는 히딩크가 부임하기 직전부터 가장 최근까지 행한 인상적인 말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놓았다.)3)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드라마에는 과거를 복기하는 것 이상으로 히딩크가 한국 축구 개혁을 통해 보여준 범상치 않은 의미까지 짚고 있다는 점이다. 히딩크가 접목시킨 '토털 사커'를 "축구의 세계화" "개인에서 시스템으로 전환이라는 글로벌리제이션의 대세" 등으로 파악한 것이 일례다. 이를 통해 축구를 단지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 조직 운영의 표본으로 삼아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한다.4) 히딩크가 이룩한 한국 축구 개혁의 과정을 보여준 뒤에는 이를 경영학적인 시각으로 냉철히 분석한다. 히딩크 축구 개혁의 의미를 한국형 조직 개혁의 롤 모델이란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서, 한국형 경영 조직이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해답을 찾는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비전을 성취하고자 하는 각계의 개혁가들을 위해서 가급적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최근 기업 경영 분야에서 나온 최근의 경영 조직의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려 노력했다.5) 히딩크의 축구개혁을 경영에 접목했을 때 거둘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공 케이스 스터디를 보여줌으로써 심도 있는 이해를 도왔다. 이 책에 수록된 50여 개의 케이스 스터디에는 '21세기 경영학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부터 한국 기업의 벤치마킹 사례로 연구되고 있는 일본의 소니(SONY), 3M, 월마트, 델컴퓨터, 질레트 등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 LG 대우 한국전기초자 등등 한국 기업들의 구체적인 성공 사례를 비중 있게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