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희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엄마, 난 장래에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고싶어요.”어린 시절 나는 물론이거니와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꿈이라는 것, 장래 희망이라는 것!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품어왔던 그 포부를, 지금에 와서 되돌아 생각하면 제법 어긋난 경우가 허다 할 것이다. 물론, 자라오면서 미래에 대한 꿈과 생각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며 그것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을 가졌을 수 도 있으며 혹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에 스스로가 모자란 부분이 생겨났을 수 도 있지 않을까?사람은 누구나 꿈을 간직하고 살아간다.즉,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가슴 한 켠에 꼭 담아둔 채 그것을 잡기위해 무던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장래 희망처럼, 미래 자신의 삶을 그려보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거나, 대통령이 된다거나,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 . 혹은 히틀러나, 시저(ceaser)처럼 세계 정복의 꿈을 가질 수 도 있다.우리네 인간이란 집단은 이미 알다시피 사회적 존재이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유토피아의 개념 역시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협의의 의미에서 이처럼 해석 될 수 있고, 사회라는 큰 틀에서는 나 혼자만의 영달보다는 우리 인간 전체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가 속한 이 테두리가 펼쳐보여야 할 울타리를 바라보는 광의의 개념에서 해석 가능하다.유토피아(utopia)라는 용어는 16C초반 토마스 모어가 그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데, 동시에 이 말은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연상하게 하는 이중기능을 지니고 있다. 당시의 의미로 파악할 때 유토피아는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로 옮아가는 재편성의 시기를 맞아, 또는 거기에서 생긴 사회 모순에 대한 단적인 반성으로서, 또는 근세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지 않는 이상향이 유토피아이다.현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나 유토피아의 이론적인 가능성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이론적인 실현 가능성이 유토피아가 갖는 진실성이며, 현실 비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상상력은 자연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유일한 은총이다. 이런 상상력을 현실에 적용시킬 때 단순히 맹목적으로 현실도피를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현실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적극성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만일 사회의 관습적인 요구에 맹목적으로 타협해 버린다면 우리는 현실속에 영구히 매몰될 것이며, 우리는 현실, 즉 사회에 속박되어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의 발전에 쐐기를 박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현실에 정체되어 버린다면 더 나아가서는 인류 문화의 창조에도 장애를 가져온다.따라서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현실 비판이야말로 유토피아의 진실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모어의 저서를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16C이전에도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이상향을 꿈꾸고 바라는 사고는 널리 퍼져있었다. 서유럽 사상에서 유토피아의 역사는 보통 플라톤의 에 나오는 이상국이 시초라고 보고 있으며, 동양 사상에서는 노자,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의 소국과민 사상과 공자, 맹자의 계보를 잇는 유가의 대동사상에서 이상 사회를 찾을 수 있다.방법론 상의 차이는 조금씩 존재하지만 철인 정치와 엘리트화를 통한 이상 사회 건설과, 국가를 작은 마을 단위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도가의 사상, 그리고 모두가 잘 살길 원했던 유가의 사상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궁극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조선조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율도국이나, 장길산이 원했던 삶 역시 이상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가 역사를 되돌아 볼 때는 그 시대의 주된 패러다임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은 경제라는 큰 틀에 의해 개인, 국가, 지구촌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정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문화, 종교, 이념 등의 주된 관심사가 경 개인이 꿈꾸는 그들만의 유토피아도, 사회의 주류가 외치는 이상적인 사회도, 간단히 말하자면 모두가 잘 사는 사회, 부유하게 사는 사회이다.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구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기 이전)세계를 이끄는 패러다임은 이념, 즉 이데올로기였다. 마르크스, 엥겔스를 거치면서 서양의 수 많은 학자들이 말하길 자본주의의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로의 진입이라는 경제구도는 사회주의 이념과 결합하여 지구촌을 양분하였다. 빈부격차, 계층간의 갈등 등 수 많은 문제를 내포하며 곧 무너질 것 같던 순수 자본주의는 20C초 수정 자본주의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늘날의 주류가 되었고, 그로 인한 사회주의 이념 역시 대부분 붕괴되고 말았다. 1960~70년대만 보더라도 세계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 경제적인 손해를 서로 감수하며 군비 경쟁을 벌여왔었음을 알 수 있다.중세 서양은 어떠하였는가? 그 때는 종교가 시대를 이끌었다. 국가의 1인자인 왕 이라는 자리 위에 군림하는 교황이 존재하였고, 대표적인 예로 잔다르크를 들 수 있다. 프랑스를 구한 위대한 영웅 잔다르크라는 처녀는 마녀사냥 이라는 이름 하에 뜨거운 불길 속으로 사라져가고 말았다. 이 때는 사회의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종교라는 큰 틀 하에서 움직여 나간 것이다.이처럼 유토피아는(물론 이전에는 이상향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해왔지만 동 시대의 패러다임이 무엇이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음을 알 수 있다.또 하나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하나의 사실은 수 천년전의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지식인 혹은 영웅들이 바라던 세상이 한 번도 찾아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저 마다의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이는 현실에서는 그 환상이 펼쳐진 적이 없다. 앞서도 말했듯이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인간들은 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꿈꾸는 것일까?신들의 신인 제우스의 뜻을 어기고 조그만 상자를 열어본 판도라 덕에 상자 속에 유일하게. 꼭 신화적인 설명이 아니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내일이라는 새로운 희망이 없다면 그 삶이 얼마나 무료 할 것이며, 하루 하루가 헛되게 보일 것이다.여기에 나름대로 약간의 과학적인 이유를 붙이자면,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 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인터넷을 통하면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되고, 그저 밤 하늘을 쳐다보며 소원을 비는 존재로 알던 달이라는 곳에 사람이 직접 다녀오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등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것들이 하나식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각각의 개인 개인이 어떤 이상향을 가지냐에 상관없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리라는 가능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희망을 바라보기에 우리네의 삶이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얼마 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이자, 자치정부의 초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75세의 일기를 끝으로 사망했다. 세계 각 국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는데 아라파트 역시 그와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다. 물론 그들의 유토피아는 남은 팔레스타인 인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여기서 잠시 그의 삶을 반추해 보기로 하자.50년간 PLO의장을 지내면서 이스라엘과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 뛰어난 외교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협정을 이끌어내어 중동 평화에 기여하였고 그로 인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고, 최고의 영예라고 불리는 노벨상(평화상)을 1994년에 수상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이 노벨상을 받은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인 라빈이 이스라엘 극우파에 의해 제거되면서 팔-이 분쟁은 테러 대 테러의 양상으로 오늘날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그의 꿈이었던 독립국가의 건설도 멀게만 느껴졌고 결국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이룩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대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일신의 영달을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그는 경을까?하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와 민족의 희망을 안은 채 50년간의 투쟁과 도피와 망명을 반복하는 힘든 삶 속에서 독립국가라는 이상향을 버리지 않았으며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는 자치정부를 수립하였으니 그의 죽음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유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지금 나에겐 수 없이 많은 꿈이 있다.나만의 유토피아라는 궁금적인 목표를 위해서 수반되어야 할 많은 목적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작게는, 단순한 리포트의 의미가 아닌 내 삶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들어 며 칠을 고민하게 만든 이 과제물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다는 것. 이번 학기에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어 장학금을 받았으면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나 학교에서 늘 웃으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건강하게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소비 생활을 함에 있어서 지금보다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나 살아생전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 나라 경제가 잘 풀려 청년 실업자가 모두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 정치하는 아저씨들의 찡그린 얼굴을 뉴스의 1면에서 보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모두 나의 희망이다.참 막연한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유토피아는 “후회 없이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돈이 행복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것에 대한 압박에서 여유로워 질 수 있다면 나의 유토피아 건설이 좀 더 쉽게 이루어 질 것 같은 생각도 가지게 된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그 기준을 설명하기가 모호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나의 행복에도 정답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나만의 작은 소망인 유토피아를 정형화 시켜버린다면 그 실현가능성이 너무 낮아져 버릴 것만 같다.불혹을 넘긴 나이에 한 번, 지천명을 넘어섰을 때 한 번 그리고 이순을 넘겼을 때 지나온 삶을 가끔씩 되돌아보면은 “아! 예전에 이렇게 했었어야 하는데..”라는 조금의 후회야 반드시 생기겠지만 전체적가!
문화란 무엇인가??문화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는 참으로 쉽고 간단할지도 모른다.고금의 생활 양식, 언어, 습관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 걸쳐 전해오는 유구한 유물 및 건축물 또한, 현대인의 생활 방식, 가치관, 의식주를 포함한 사회상 전체를 광의의 문화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좀 더 세분화 하자면 개인과 사회의 단위에서 세대간의 문화, 성별간의 문화, 사회 구성원간의 문화 등 문화라는 의미를 어떤 이가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쪼개어 질 것이다.내가 생각하는 문화란 이런 것이다.가령, A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삶을 영위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A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아 개발에 힘쓰고,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삶의 변화를 꾀했을 수 도 있으며, 대충대충 하루를 살아가는데 연연했을 수도 있을 것 이다.후자의 삶을 살았다고 A의 인생에 문화가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싶다.문화라는 것은 결코, 너무나 어려워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탐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 그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한다.다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주어진 문화를 어떻게 인식을 하며 그것의 우수성을 찾고 영속시키려는 노력을 하느냐의 차이가 존재하며,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층의 문화 인식에 역사성의 결여, 가치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즉 본질을 바라봄에 있어 상대성이 존재하는 것이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는 할 수 없다.그렇다면 높은 문화인식의 제고는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질까?우리의 위대한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팔만대장경을 한번 살펴보자.거창하게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위대한 우리 문화를 바라보며 “야 이걸 정말 사람이 만들었단 말이야! 대단한데”라고 느끼는 것과 “아! 고려시대 사람들의 호국 정신과 부처님의 힘을 빌어 몽고족을 쫓으려고 한 그 시대의 종교문화 그저 감탄사만 연발시키는 이 위대함에 그들에게 경외감이 생기는 걸”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 이다.여기서의 감흥은 절대 교육 수준에 의해 나뉘어 지는 것은 아니다.높은 수준의 교육을 거치더라도,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인이나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이는 전자의 견해를 보일 수 있고, 역사의식이 투철한 이는 팔만대장경을 통해 민족의 우수성과 애국에 대한 마음, 나아가서는 고려 시대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자 할 것이다.또 하나 예를 들자면, 한국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꼽히는 ‘한글’을 들 수 있다.1446년에 반포되어 560년 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세계에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인 한글은 제정이래 500년 이라는 시간을 어둠 속에서 천시 받아왔다.조선조의 식자층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만든 이들 역시 그 우수성을 알면서도 서문에서 사용하지 않았으며, 한글은 ‘언문’이라 하여 부녀자나 한자를 모르는 이들의 서신왕래 등에만 사용된 것이다.이 얼마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1945년 해방을 전후해 민족의식 고취와 함께 우리 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실생활에서 한자의 사용이 줄어듬에 따라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깨우치게 되었으나, 아직도 몇 몇 보수적이고 소위 학자 층이란 이들은 서문을 쓸 때 한자를 넣어야 뭔가 있어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높은 수준의 교육이 문화인식에 있어서는 능사만은 아닌가 보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21C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나는 ‘인터넷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익명성과 비 제도화, 즉흥성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는 예전부터 써오던 세계화를 더욱 더 굳건히 하였으며 정보화 사회에 대한 대처 온라인 생활이라는 신 개념의 생활 패턴을 제공해 주고있다.이 곳에서는 같은 문화에 대한 여러 시각이 교차되며 개인의 능력 발로의 장이 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문화 인식에 있어 획일성을 거부한다.한 가지 예로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과 공감에 대한 많은 의견이 따른다.최근 정치권에서 시작된 이 현상이 인터넷 상에서는 사회 각 분야, 여러 인물에 있어 냄비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포퓰리즘을 두고 그저 인기에만 영합한 일시적인 현상이란 시각과,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시각 등 여러가지 의견이 표출된다.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는 오늘날의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인식의 차이는 다른 어떤 사회 현상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훗 날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에 따라 기록되어 존재하는 21C의 대표 문화로 자리 매김을 하던지 그저 한 시대에 스쳐지나 간 현상으로 비칠 것 이다.결론을 말하자면, 개인적인 삶이 더 높은 문화를 위한 투쟁과 노력의 삶이던, 그저 지나온 삶이던 어느 쪽에 문화의 중요성을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그 삶 자체 혹은 사회적인 현상 자체를 문화라는 큰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역사 속에서 평가는 우리의 몫이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가 평가해야 할 지나온 문화들은 개인의 기준과 상식의 틀 안에서 바라보되 지나친 왜곡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발전이론의 비판사미르 아민은 저발전-단지 익숙하고 쓰이기 편하기에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은 주변부 자본주의 구성체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이론을 비판하면서 19C 후반부터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온 한계효용이론이 저발전을 분석하는데 있어 구조라는 아주 중요한 개념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론 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고 한계효용이론의 틀 속에서 저발전이론을 확립하려는 시도자체가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다.필자가 바라보는 현재 저발전이론의 문제는 한계효용이론 안에서 저발전 이라는 개념을 가난과 동일시 보고 있다는 것과 인구학의 관점에서 보는 높은 인구 증가율이 저발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 그리고 빈곤의 악순환을 통한 즉, 낮은 저축이 저발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들은 모두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유일한 과학으로 존재해야 할 사회과학의 존재속에서 경제과학이 사향화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경제이론이나 나아가서는 사회과학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 발전경제학이라는 것이다.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저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계효용론의 틀을 완전히 헤어나고 발전경제학의 목표로 삼고있는 저발전과 발전의 관계 정립, 발전이론으로부터 나온 경제관리기술의 현실 적용에 관한 부분을 명확히 해야함도 뒤따른다.저발전을 나타내는 표면상의 특징으로는 부문 간의 생산성 불균등, 경제체계의 단절성, 외적 지배를 꼽을 수 있다.여기서 연결되어 지는 것이 종속인데, 저발전국가의 무역 구조를 살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저발전 국가는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1차 상품을 주로 수출하고, 그 대상국은 대부분이 선진국이 된다.그렇다면 선진국은 어떤가?그들의 무역 상대국은 대부분이 비슷한 관계의 집단이고 저발전 국가와는 극히 일부를 또한 그 업종에 있어서도 10개에 100원 하는 물건을 저발전 국가로부터 수입한다면 그들은 1개에 100원 하는 물품을 수출하고 있다.이러한 구조와 나아가서는 금융에 의한 종속으로 이어지고 저발전 즉,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끼어들려는 움직임은 저발전 내의 발전에 그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어떤 김치무리를 담가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던 중국과 일본의 기록을 참고하여 김치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시대의 김치무리에 대한 모습을 대강 알 수 있다. 중국의 "시경(詩經)"에 “밭 속에 작은 원두막이 있고 외가 열려 있다. 이것으로 정성껏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수(壽)를 누리고 하늘의 복을 받는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의 `저'가 최초로 기록된 김치무리로 보인다. 그 후 진나라 때 편찬된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주 문왕이 저를 즐겼다는 말을 듣고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며 `저'를 먹어 3년 후에야 비로서 그 맛을 즐겼다"라고 하였고 "설문해자(說問解子)"의 "저(菹)"는 신맛의 채소이고, 저(菹)는 초에 절인 오이"라고 한 구절에서도 김치무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주례(周禮)"에는 `칠저(七菹)'가 나오는데 이것은 부추, 순무, 순채, 아욱, 미나리, 태(죽순의 일종)와 죽순 등으로 담근 김치무리로 보인다.그러나 이러한 문헌으로는 구체적인 조리법을 알 수 없다. 후위(後魏) 말엽(439~535년)에 편찬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젖산 발효를 이용한 김치무리 12종과 초절인 김치무리 16종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리법을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제민요술"이 편찬된 때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이므로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김치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일본의 문헌으로도 우리의 김치무리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3세기경에 일본 규슈 북부로 건너간 한반도인들은 벼농사와 앞선 문화를 전하여 일본의 야요이 문화를 꽃피웠고 한문, 불교 등 문화 전반에 걸친 전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일본의 "정창원문서(正倉園文書)"에 나오는 채소 발효 식품은 우리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 술 빚기와 기타 발효 전수 기술을 처음 전해 준 백제 사람 인번(仁番)에 의해 만들어진 수수보리지(須須保理漬)는 지금도 일본인들이 즐기고 있다. "정차원문서"에 나오는 김치무리는 소금에 절인 것, 장에 절인 것, 곡물 죽에 절인 것, 술지게미에 절인 것, 식초에 절인 것, 감지(甘漬) 등이 있어 그 당시의 우리나라 김치무리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김치의 영양성 >김치는 채소의 발효 식품으로 겨울철에도 채소의 영양을 섭취하게 하는 중요한 부식이다. 김치류는 재료나 숙성 조건에 따라 영양소의 변화가 다양하다. 김치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대개 칼로리가 낮고 수분이 많으며 섬유소와 비타민류를 다량 함유한다.배추나 무, 열무와 같이 녹색 잎을 이용하는 것들은 잎에 비타민 A가 상당량 들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너무 제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추도 비타민 A가 풍부하고, 고춧가루는 김치 재료 중 가장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다. 마늘은 살균력이 높은 알릴설파이드라는 자극성 물질을 갖고 있어 여러가지 효능을 나타낸다. 파 역시 마늘과 같은 자극 성분을 갖고 있으며, 파의 적색부분은 비티민 A와 C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오이에 들어있는 엘라테린(elaterin)이라는 쓴맛 성분은 소화를 돕고 칼륨 성분이 이뇨 작용을 돕고 있다.새우젓이나 멸치젓은 야채류에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 아미노산 및 지방질의 좋은 공급원이며 김치 고유의 독특한 맛을 형성하는 데 한 몫한다. 또 이들은 칼슘 함량이 높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액을 중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해산물 가운데 김치의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할 정도로 칼슘, 철분, 글리코겐과 비타민류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굴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고 글루탐산, 글리신 등이 감칠맛을 낸다.김치는 영양학적으로 저열량 식품이다. 당질과 지방질 함량은 낮으나 식이섬유,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고 칼슘, 인 철분 등의 무기질 성분도 많다. 김치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젖산과 젖산균은 항균성과 항돌연변이성, 항암성의 효과를 지닌 기능성 물질이다. 특히 배추, 마늘, 고추 등에는 비타민이나 무기질 외에도 다양한 약리 성분이 들어 있다.배추 등의 채소에서 얻게 되는 식이성 섬유소는 영양 물질은 아니지만 장에서 음식과 소화 효소가 잘 섞이도록 돕고 연동 작용을 원활히 하여, 소화 흡수를 증진시켜 변비와 대장암을 예방하는 데에도 좋다. 고추나 마늘은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효과와 함께 혈전 용해력이 높고 항산화 작용도 한다. 따라서 김치는 채소 발효 식품으로서 영양성과 기능성 및 기호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뛰어난 건강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발효 과정의 성분 변화**젖산김치의 발효는 다양한 미생물로부터 실행된다. 젖산 박테리아는 성장하여 젖산으로 다른 미세 생물을 조절한다. 잘 발효된 김치는 하루에 발효되는 요구르트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젖산 박테리아와 젖산을 포함한다. 유기산과 활성 젖산 박테리아는 인간의 대장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러한 젖산 박테리아들은 김치에 항균성을 부여하는데 여러 실험에서 항균성이 입증되었다. 또한 풍부한 식이섬유와 비타민, 저지방은 인간의 신체에 활력을 준다.**유기산김치가 숙성되는 동안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성분은 유기산이다. 김치의 유기산은 채소에 함유된 효소나 숙성에 관여하는 여러가지 미생물의 분비 효소들이 김치 재료의 여러 성분에 작용하여 생성된다. 그러므로 배합 원료의 종류, 숙성 온도와 기간, 소금 농도에 따른 유기산 함량이 큰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차이는 맛으로 나타난다.김치의 주요 생성물인 유기산과 부수적으로 발생되는 탄산가스는 김치의 상쾌한 맛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성분이다. 유기산 함량이나 탄산가스의 생성 정도는 김치 관련 미생물의 특성과 생육 조건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소금 농도가 낮고 저온에서 숙성시킨 김치는 소금 농도가 높고 실온에서 숙성시킨 김치보다 휘발성 유기산인 초산의 함량과 탄산가스의 생성량이 많다. 그래서 더욱 맛이 있다고 여러 번의 실험 결과에서 보고되었다.**유리아미노산김치의 독특한 맛은 유기산, 탄산가스, 조미 향신료뿐만 아니라 유리아미노산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유리아미노산은 주로 김치의 단백질 공급원인 젓갈류나 굴과 같은 해산물과 육류에 의해 변화된다. 어느 김치에서는 17종의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멸치젓을 넣으면 각종 유리아미노산 때문에 김치 맛이 좋아진다. 또 금방 담근 김치에 비해 숙성 김치의 유리 아미노산은 감소하는 현상을 보인다.**비타민류일반적으로 배추, 무 등 채소에는 비타민 C나 카로틴이 들어 있으며, 비타민 B군은 채소뿐만 아니라 젓갈류 등의 해산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김치에서 고춧가루는 비타민 C의 공급원으로, 굴을 비타민 B군의 공급원으로 중요하다.비타민 B1,B2 는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맛이 좋은 시기인 3주째에는 초기 함량의 2배 가량으로 최대가 되고 그 후 다시 감소하여 산패될 때에는 초기 함량만큼 남는다. 비타민 C는 숙성 초기에 일단 감소된 후 약간 증가하는데 이것은 배추 성분의 펙틴이 분해되어 생성된 당으로부터 비타민 C가 합성되며 발생한다. 이때 관여하는 합성효소는 미생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채소가 갖고 있는 자가 효소로 추정된다. 비타민 B 는 처음 일주일에는 초기보다 약 반으로 감소하다가 급진적으로 증가하여 3주째에 최고 함량을 나타낸다.
연안에 따른 양식업의 특성화. !!바다는 천연 자원의 보고 일뿐 아니라, 지구라는 정해진 땅위에 남은 무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마지막 보루이다. 지구 전체의 70%이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물의 97%(거의 대부분이)가 바다이다. 이렇게 방대하고 큰 효용성을 지닌 바다를 우리는 이제껏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염에 시달리게 만들어 바다를 병들게 하고 있다.전 인류는 최근에 와서야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로 다투어 많은 해역을 차지하려 하고있으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저터널을 이용한 관광 및 물류수송,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정보, 통신 사업 그리고 해상도시 같은 최첨단 발전 프로젝트부터 석유, 천연가스등의 부존 자원의 개발과 수산업 분야의 고도의 성장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사회는 바다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야심찬 계획들을 준비중에 있다.그 만큼 바다 라는 곳은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고, 우리 삶에 어떠한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임이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서는, 이런 특성들을 최대한으로 살린 수산 연안 양식업에서 친환경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우리 나라의 양식업은 개인이 아닌 집단 공동체의 형식으로 잡는 어업 에서 기르는 어업으로의 전환 으로 인해 나날이 어려워지는 어촌 경제의 근본을 이루는 사업이다. 양식의 종류로는 이미 알고 있듯이 연승식 양식, 가두리 양식, 송지식해태양식등 많은 종류로 행해지고 있으며, 양식되는 물품으로는 김, 다시마, 미역 등의 해초에서부터 수 없이 많은 해산물(굴, 멍게, 전복..)과 어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한반도의 특성상 우리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고 동·서·남해안의 바다특성(수온 및 지형)이 달라 각 해역에 따라 주로 양식되는 품종이 다르다. 동해안은 수온이 낮고 해안선이 가파르고 깊기 때문에 한해성의 품종인 큰가리비와 넙치가 주로 양식되고 있으며, 이외 다시마 양식을 하고 있다. 서해안은 해수가 얕고 간석지가 발달하여 있으므로 굴, 바지락 등의 패류양식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새우인 대하나 조피볼락 같은 어류를 주로 양식하고 있다. 남해안은 다른 해역보다 수온이 높기 때문에 많은 어종이 양식되고 있는데 어류로서는 넙치, 조피볼락의 양식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패류로서는 굴, 피조개 등이 해조류로서는 김, 미역이 기타 품종으로서는 우렁쉥이 등이 양식되고 있다.그러나 우리 나라는 어촌경제의 구심점이며 많은 해외 수출로 국가 경제에도 (+)요인으로 작용하는 이러한 양식업에 대한 적극적 지원 부족과 연근해 주변의 환경 파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21세기 바다의 이용에 있어 가장 기초를 이룰 양식업을 등한시하고 있다. 양식장의 노후화로 인한 수확량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선박의 페인트로 사용되는 유기주석 화합물이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다이옥신, PCB등의 환경 호르몬의 방출에 적극성을 띄지 못한 관계로 한반도 연안이 여타 어느 곳보다 오염이 심각하며, 이로 인해 양식업을 더욱더 힘들게 함을 좌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진해연안의 굴 양식장의 수확량이 90년대 1만톤에 이르던 것이 95년을 전후해서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보고는, 오염으로 인한 종자수의 급격한 감소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런 상태로 나아간다면,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식기능 장애와 종의 단일화, 결국엔 생물의 번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