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4개 신학대학원 학생 학술교류 논문고려신학대학원한국 교회를 위한개혁주의 부흥관- Again 1907 운동을 준비하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며작성자: 손 재 익(고려신학대학원 M.Div과정 2학년)한국교회를 위한 개혁주의 부흥관- Again 1907 운동을 준비하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며손 재 익 (고려신학대학원 M.Div 2학년)서 론Theologia pro ecclesia (교회를 위한 신학). 이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신학하는 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구호 중 하나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수직적으로는 Soli Deo Gloria, 수평적으로는 Theologia pro ecclesia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는 단순히 구호일 뿐, 실제 신학의 영역(field)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학이 하나님의 영광은 물론이고 교회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하지만 신학과 교회의 괴리가 매우 심각한 상황 가운데 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신학을 교회 현장 가운데 접목해야 할 소명을 갖고 있으며, 교회 현장을 위한 신학을 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으로 하여금 우리를 해석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지난 날의 역사를 통해 현재 교회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을 표방하는 4개 신학대학원이 매년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아 학술제를 개최하고 함께 개혁신학을 고민하는 것은 큰 의의를 지닌다. 특별히 이번 학술제가 정한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즈음하여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현실은 무엇이고, 지향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본 학술제의 취지에 매우 적합하다.그렇다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100주년을 즈음한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부흥관”(Understanding of Revival)일 것이다. 한국교회 곳곳에서 ‘부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100년 전의 부흥을 재현하려는 시대를 목격할 수 없었다. 나아가 그가 끊임없이 무능력한 설교자들이라고 비난했던 바로 그 프린스톤 신학교 출신들은 1812년 부흥이 시작될 때부터 탁월하게 쓰임을 받았다.)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현대 교회에서 주목할 만한 부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찰스 피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니의 영향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교회가 곤고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고 즉각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회의를 소집하여 복음전도 집회를 조직하고 광고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등, 전체적인 시각과 사고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한국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볼 때에 로이드 존스 목사의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피니의 인간관에 대한 오류는 한국교회가 표면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많은 교회나 집회에서 ‘강단초청’이라고 하는 알미니안적 구원론에 기초한 행위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여전히 피니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1904년 웨일즈 부흥운동차후 언급하겠지만,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부흥인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1904년부터 그 다음해인 1905년까지 일어난 웨일즈 부흥운동)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1904년 웨일즈 부흥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1904년 웨일즈 부흥운동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1904년의 웨일즈 부흥운동에 대한 평가는 대개가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웨일즈 부흥운동의 부정적인 면들을 생각해 보려 한다. 왜냐하면 웨일즈 부흥운동의 부정적인 면들이 실제로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의 부흥운동이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유익을 끼쳤다는 사실까지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웨일즈 부흥운동은 이전에도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나타난 ‘무절제한 상황’과 ‘열광주의적 원리들’이 등장한 부흥운동이었다.) 그것은 고, 이 연합회는 초교파 청년단체인 YMCA 학생영역의 신학분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 신학교에 초교파적 복음주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니 이 신학교에서 신학훈련을 받은 분들 역시 넓은 초교파적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그런고로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철두철미한 신앙고백적 개혁주의자들이 아니고, 전형적인 미 복음주의자들이었음이 확실하였다.”)이처럼 허순길에 맥코믹 신학교에 대해서 이렇게 길고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맥코믹 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이 오히려 한국교회가 개혁주의 교회로 서는데 방해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박용규 교수의 대작인 『평양대부흥운동』은 신학적 저술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 박용규 교수의 교회사 저술은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 충실했다기 보다는 일반 역사 기술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양대부흥운동』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작품 전체를 보면 어떤 특별한 신학적 해석이 매우 미비하며, 단지 역사적 자료와 단편 사실 기술에만 충실하고 정작 필요한 신학적 안목과 통찰이 부족하다.) 이는 교회사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신학적 역사(theological history)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사실 이러한 저술은 부흥을 기대하는 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이안 머레이의 지적대로 1860년 이후 미국 부흥을 다루는 거의 모든 복음주의 역사가들이 부흥을 부흥주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데), 한국교회의 부흥을 다루는 박용규의 『평양대부흥운동』역시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다루지 못하고 있다. 박용규 교수의 저술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불고 있는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관심의 대부분이 박용규 교수의 저술에 근거한 것들이며, 민경배의 ‘찬하의 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평양대부흥운동에 관한 한 이 만한 대작이 없기 생기를 불어 넣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입니다.”)James Burn는 부흥에 대한 정의는 좀더 공교회적 시각을 드러낸다.“부흥이란 교회에게는 비하(卑下)를 의미한다. 즉, 교회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쓰라린 인식과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반 성도들의 죄를 드러내놓고 고백하는 비하를 의미한다. 부흥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고도 화려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흥이 오면 교회의 좌석들이 가득찰 것이며 교회는 능력과 권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부흥은 상처를 치료하기에 앞서 상처를 불로 지진다. 부흥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일반성도들의 불성실한 복음 증거를 정죄하며, 그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정죄하고, 십자가를 무시한 죄를 정죄하며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복음서가 가르치는 가난함과 날마다의 깊은 헌신을 위하여서 매일 자신들을 포기하도록 인도한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부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들어서 사모해 왔던 그 능력이 안락함이나 또는 성공에 대해서는 부흥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고발하며, 그들을 죽은자들이라고 부르고, 깨어나라고 하며, 그리고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하기 때문에 그들은 부흥을 좋아하지 않는다.”)Burns의 위와 같은 말은 개혁주의 교회관)을 아주 잘 드러낸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2. 부흥의 전제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주된 관심 중 하나는 “회심”(conversion)이다.) 왜냐하면 회심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적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청교도 신학자인 James Buchanan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을 죄인들의 회심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회심론의 핵심은 “죄에 대한 지성적 이해에서 출발하여 감성적 인식으로 전진하며 그 결과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회심의 주체 역시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심(conversis actualis prima)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오며, 하나님에게로의 헌헌신에 대한 열심의 증가 그리고 자신의 소명과 개인적인 삶에 있어 확고한 기독교적 목적과 더 많은 사랑과 기쁨이었다. 이와 조화하여 교회를 위한 이상은 곧 ‘개혁된’ 성직자를 통해 각 회중의 모든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질서함이 없이 우리가 신앙 부흥이라고 칭하는 상태, 즉 진심으로 철저하게 회개하고 신학적으로 정통이며 건전하고, 영적으로 방심이 없이 예민한, 특징적인 표현을 나타내어 지혜롭고 성숙되고, 원리적으로는 진취적이고 순종적이며 자신의 구원에 대해 겸손하지만 기쁘게 확신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일곱째,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어떤 특별한 방법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임스 뷰캐넌은 말하기를 “어떤 일정한 경우에는 언제나 특별한 방법으로 성령이 부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분명한 근거를 교회가 가지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여덟 번째, 부흥에 대한 낭만주의적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흥은 때때로 교회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흥을 기대하면서 막연히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부흥의 시절에는 신자들의 열심과 수고가 더욱 필요하다. 신자들의 경건의 수고와 인내와 땀과 고통과 눈물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참된 부흥의 계절이 오며, 우리들에게 즐거움이 더하여 질 것이다. 부흥으로 인해 우리와 교회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다고 하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요구되는 수고와 고통을 즐거이 감내할 수 있다 라는 다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열광주의적 위험을 많이 내재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특별히 이안 머레이가 복음주의적 열광주의를 지적하면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다음의 내용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 가능한 모든 것에서 단순한 흥분을 피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계속 지켜 나가야 한다. 밤늦게 모이는 교회 집회들과 철야에 가까운 모임들은 대체다.
Report(기말고사 대체용)현대 한국사회 성규범 변화의실제적 예 & 나의 Opinion교과목명 : 성 사 회 학담당교수 : 김 문 겸학 과 : 사회학과학 년 : 4학년학 번 : 199706122성 명 : 손 재 익차 례Ⅰ. 들어가면서Ⅱ. 본론1. 여성의 성역할 변화2. 어머니의 역할 변화3. 사회화 과정에서 성역할의 구분 모호4. 아우성5. Hot Sex에서 Cool Sex6. 혼전 순결 개념 변화7. 계약동거, 계약 커플8. 클럽 버터플라이9. 트렌스 젠더, 동성애10. 성, 자본의 상품11. 현대 젊은이들의 성에 대한 인식조사Ⅲ. 나가면서 - 우리 성의 이중성Ⅰ. 들어가면서한국사회는 조선조 500여 년간 내려온 성리학(유교)의 영향을 받아 성규범에 있어서도 보수적, 남성중심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남존여비사상과 순결사상에 있어서 전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보수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문화가 유입되고 일본 문화마저도 부분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8년 부산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있었던 마광수 교수의 강의 제목인 "성, 이시대의 영원한 화두"처럼 과거, 숨겨야 할 비밀이던 "성"은 이제는 "당당함" 이 되었다. 당당해진 성은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성규범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변화들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충분하였다.Ⅱ. 본론이 부분에서는 실제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규범 변화에 대해 실제적인 예와 함께 살펴보고 나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1. 여성의 성역할 변화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서 직장여성은 크게 증가하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직장여성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결혼 전의 처녀들로서 고교졸업이후, 혹은 중학 졸업이후 생계 유지를 위한 직장생활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장여성이라 함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이면서 단순히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적인 의미가 매우 강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을 말한다. 이들은 당장 생계가 급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학력을 소국의 기혼여성근로자 8백8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월 평균 2백만원 이상의 고소득 직장여성의 경우 41.9%가 일을 위해 출산조절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혀 저임금을 받는 여성에 비해 비율이 높았다. 월 임금 1백50만∼2백만원을 받는 여성의 경우 응답자의 30.2%, 1백50만원 미만인 경우는 32.9%가 일 때문에 자녀 수나 출산시기를 조절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직종별로는 사무직 여성(38.1%)이나 관리.전문직 여성(35.5%)이 판매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25.4%)보다 출산조절 경험이 높았다. 즉 고소득, 사무.관리직 여성의 경우 일을 위해 자녀수를 조절하고 그 결과 전체적인 출산율이 낮아지는 사회현상에 일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조사에서는 또 학력이 낮을수록, 자녀 수가 많을수록 임신.출산 때문에 직장생활 중단을 고려한 적이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졸 이하의 학력이거나 자녀가 2명 이상인 여성 응답자의 3분의 2 정도는 각각 이 같은 이유로 직장생활 중단을 생각해 봤다고 밝혔다.에 의하면 학력이 낮을수록, 자녀 수가 많을수록 임신.출산 때문에 직장생활 중단을 고려한 적이 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2. 어머니의 역할 변화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여성의 증가는 곧 어머니의 역할 변화로 이어졌다. 직장여성 본인들이 어머니가 되었을 때 이들은 단순히 어머니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아버지들이 전담하였던 생계유지의 부분이 상당부문 어머니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소위 말하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의 역할변화를 말한다. 흔히들 말하기를 요즘 50대, 60대 여성들이 가장 불쌍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린 시절에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경험하였고, 젊은 시절에는 산업화를 이루고자 하는 전국가적 관심 때문에 열악한 근무조건 가운데에서도 경공업 성장을 위해 노력하였고, 결혼 후에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였고, 이제는 조금 쉴 만하니까 손주까지 봉한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같은 영화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성을 말하는 것은 이제 당당한 것이 되어버렸다.구성애 식의 성교육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요소를 많이 주기도 하였다. 그 동안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성교육이 이제 가정 내에서도 떳떳하게 이루어졌고,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지금까지는 청소년들이 자기들끼리 포르노 테이프를 돌려보아가면서 스스로 학습법(?)에 따라 배웠던 성에 대한 지식을 이제는 공식적 통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서갑숙씨의 성체험 고백이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역시 성을 하나의 숨기는 대상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영역이 되었음을 보여주었고, 대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장선우의 영화 "거짓말"의 경우 일종의 사디즘적 요소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영화관에서 개봉됨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성" 이라는 것이 공공영역에까지 뻗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닫혀진 성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된 한국사회의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요, 100여년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미국의 청교도적 요소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청교도 사회에서는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성을 그저 음지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은 오히려 좋지 못하다. 속으로 감추려고 자꾸만 노력하게 되면 오히려 곪게 마련이다. 90년대 이후에 구성애 식의 성교육은 한국사회에 성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면에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장점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이 하나의 화두로 자리매김을 하면서 이제는 그 범위가 확산되어져 갔다. 이것이 바로 문제점이다.5. Hot Sex에서 Cool Sex흔히 Sex 라고 하면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성관계 라고 정의를 해왔다. 하지만 성규범의 변화는 sex의 정의를 단순히 제도적인 틀에 매어두지 않았다. 이제까지 sex는 사랑이 전제된 행위였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하더대상자의 4.6%가 "동거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설문에 참여한 이들은 동거 경험자의 66.7%는 "동거생활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다"고 답했고 "동거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도 찬성 또는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는 답이 74.1%에 이르렀다. 지난해 65.6%가 계약동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대학생들의 동거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http://home.skuniv.ac.kr/%7Ekwany/cibisue/issue4.html특히 지난해에는 '설고연(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계약동거 사이트'가 개설된 것이 사회적으로 큰 issue였다.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게서 성윤리의 심각한 타락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2001년 여름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댄스그룹 쿨의 히트곡 ‘점보 맘보’는 요즘의 세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이십년 가까이 따로 살았는데/도대체 서롤 얼마나 만났다고 쉽게 결정할 수 있겠어/같이 삽시다 살아 봅시다/과연 우리 서로 잘 맞는지 어떤지를 한번 겪어 보면 어떨지/같이 삽시다 살아 봅시다.”불과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요의 가사에 이러한 내용이 담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박진영 등과 같은 가수들은 선정적 내용을 자신의 가사에 담아 표현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혼전의 계약동거를 하는 젊은이들의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앞서 말한바처럼 IMF이후 어려워진 경제상황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이혼율이 급증하는 사회에서 한번 살아보고 나서 결혼을 결정하기 위해 하는 커플들도 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건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인간윤리가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 물론 성 가치관의 기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윤리에 매우 벗어나는 일임을 틀림없다. 이와 같은 일로 인해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가히 격변의 시대이다. 우리들이 수만년동안 끌고 온 가족이라는 것의 개념이의 아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이나 남편이 아는 상태서 다른 여자의 남편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부부 스와핑은 본질적으로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것인데, 외도(外道)보다도 파괴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다. 외도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들킬까봐 걱정하는데 이런 부분을 미리 없애는 섹스 행위가 부부 스와핑이다. 이는 부부 양쪽을 다 파괴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부부 교환 이후 부부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본능적으로는 파괴하고 싶은 욕구가 작동하는 것이다.성 관계의 기본 조건은 두 사람만의 제약 없는 사적인 은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부부 교환은 이런 성 관계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결국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9. 트렌스 젠더) 트렌스 젠더의 사전적 의미 : 성(性)전환 수술을 통해 성(性)을 바꾼 사람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 동성애하리수와 홍석천으로 대표되는 트렌스 젠더(성전환자)와 동성애는 이제 큰 이슈가 아니다. 2000년 9월 탤런트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였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공식적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한국사회에도 동성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고, 95년 연세대학교의 동성애 동아리 컴투게더(Come together)가 대학가에 등장하여 이미 사회를 한번 떠들썩 하게 만들었고, 1999년 서울대에서 '마음 006'이라는 동아리가 정식으로 동아리 연합회에 등록한 것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남 앞에서 떳떳하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큰 무리였다. 하지만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사회적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2001년 5월에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충격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트렌스 젠더 라고 불리우는 성전환자인 하리수씨가 연예인으로 데뷔한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하리수가 2002년 12월 법원으로부터 호적상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변경을 허락받은 것이다. 그래이다.
목 차Ⅰ. 기든스의 주장1. 친밀성의 영역2. 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3. 섹슈얼리티와 민주주의4. 푸코의 주장에 대한 기든스의 입장5. 기든스의 목표Ⅱ. 한국사회의 모습1. 부모; 이제는 타인2. 개방화된 성문화3. 동성애의 증가현상,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범성애로....Ⅲ. 결론Ⅰ. 기든스의 주장역사속에서 섹슈얼리티란 공적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그러나 흥미진진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사적인 관심사였다. 하지만 근 몇 십년 동안에 섹스는 이제 공적 영역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사랑 에 대해서 찾기 어렵고 젠더 는 부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든스는 섹슈얼리티를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분석하였다. 기든스의 주장은 푸코의 견해에 대한 반박에서 시작한다. 그동안 성담론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주장들은 하였던 푸코의 견해를 뒤집고 친밀성과 조형적 섹슈얼리티 라고 하는 새로운 용어를 통해 현대사회의 성과 섹슈얼리티의 변화를 살펴보고 기든스의 주장이 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1. 친밀성의 영역친밀성이란 무엇보다도 평등의 개념에 입각해서 자신과 타인이 나누는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는 것이 기든스의 생각인데, 공적 영역에만 치우친 생활 때문에 남성들이 아무래도 이에 서툴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성들은 ‘감정의 혁명가’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남성들은 감정처리가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친밀성에 관해서 만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친밀성을 이해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기든스는 진정한 의미의 친밀성이 구현되는 민주적 관계의 모델로서 레즈비언들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기든스는 레즈비언들의 성적 성향들에 대해 살피면서 이성애와의 차이점을 살핌으로서 친밀성에 대해서 주장한다. 친밀성은 감정과 행동을 폐쇄함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의 시선 앞에는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친밀성은 자기폐쇄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이 개인의 자적 영역이나 제도화된 정치의 변화가 현대성의 가장 큰 생명력'이라고 보는 하버마스와는 달리 인간의 사적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적하고 민주주의를 개인적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친밀성은 개인 간의 상호작용 영역이 전면적으로 민주화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이 친밀성의 구조가 변화되고 있다고 진단을 하고 있고 정서적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혁명적인 소용돌이 가운데에 '섹슈얼리티'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하버마스가 『공적 영역의 구조변동』에서 말한바처럼, 현대성의 가장 큰 생명력은 민주적 소통구조를 통해 비판적 합리성이 성립가능하다는데에 있다는 생각에서 기든스는 친밀성의 영역 에 주목한다. 하버마스가 공적영역 에서의 정치적 소통을 하나의 전범으로 제시한다면, 기든스는 그 배면에 있는 가장 사적인 영역, 곧 친밀성 영역에서 일어난 사회·심리적인 변동을 추적함으로써 현대성의 그림자를 들추어 내려 한다. 하버마스가 계몽의 이성을 방어하려고 한다면, 기든스는 이성의 뒷면, 곧 감정의 세계에 일어난 변화들을 속속들이 파헤치려 한다.2. 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감정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써,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고 협동하는 것으로써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는 인간 감정이 제도에 의해 묶이기보다는 개인이 각자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것을 결정한다. 여기서 사랑은 신비의 영역에서 내려와 친밀성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이제는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공적 영역 뿐 아니라 개인 관계에까지 확대되야 한다. 섹슈얼리티 또한 인간관계 문제이다. 이제 현대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제도나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서로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 주고 서로 개방되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사랑 역시 상대의 개별성을 존중해 주는 바탕에서 상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혈연에 의해 의무처럼 부과되던 친족관계가 엷어지고 친밀성과 애정에 기초한 관계가 점차 중요시 되는 사회로 변화되는 것은, 현대 사회가 성(sex)이 더사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든스의 관심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기든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공적 영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개인적인 관계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 기든스는 민주주의, 사적 영역이자 친밀성의 영역 속에서 확장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싹을 체계 내로 얼마나 수용하고 포괄할 수 있는가에 따라 현대성의 앞날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공적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육성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남성적인 기획이었으며,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투쟁에 힘입어 나중에야 참여하게 되었다.실제로 현대 이전의 유럽에서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서로 간의 성적 매력이 아닌 경제적 상황이었다. 점잖은 여성들의 성적인 방종이 널리 수용된 것은 오직 귀족집단에서 뿐이었다. 여성이 자기의 독자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의 요구와 일상적 일로부터의 충분한 해방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성적인 자유는 권력에 따른 권력의 표현이었다.기든스는 도착의 쇠퇴 즉, 과거에는 매우 심한 비난을 받았고 때로는 공식적으로 불법이었던 성적 행동들이 오늘날에는 널리 실행되며 또한 많은 집단들이 적극 옹호하는 것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자기 표현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투쟁에 대한 부분적 성공을 들고 있다.4. 푸코의 주장에 대한 기든스의 입장기든스는 푸코의 분석에 힘입고 있으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를 극복하고 있다. 근대라는 제도 속에서 사랑 또한 감시와 통제의 영역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음을 분석하는 푸코의 그 철저함은 이 세상이 악몽이라는 절망감만을 우리에게 준다. 반면 기든스는 자기 감시가 자기반성과 성찰의 출발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기든스는 섹슈얼리티가 일부 힘과 지식의 복합체로 만들어진 담론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현대적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푸코가 주장하는 담론 중심의 이론은 현대의 섹슈얼리티의 문제, 특히 성차의 문제가 인간 주체의 능동적인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이 구조에 영향받는 것은 사실이여성의 자아 정체성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나며, 따라서 친밀성의 변동과정에서도 그들의 역할 또한 다르다고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성적 또는 친밀한 행위를 말로 묘사하는 데에 여자아이들에 비해 훨씬 어눌하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 남성의 확고한 위치 때문에 그들이 사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친밀성의 변동을 아주 소홀히 다뤄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5. 기든스의 목표기든스가 겨냥하는 것은 오늘날 극도로 혼란스러운 사랑의 규범적 기반을 새롭게 모색하는 데 있다. 기든스는 오늘날 사랑이 커다란 혼돈 속에 빠지게 된 원인을 친밀성 이라는 것으로 든다. 전통사회에서 재생산은 자연의 섭리이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인식되어 섹슈얼리티 역시 자연으로부터 이미 결정되어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피임)와 섹슈얼리티 없는 재생산(시험관 아기)이 가능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사랑의 개념이 변해감에 따라 사랑의 아노미 가 생기게 되었다.기든스는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사랑에 대한 대안으로 합류적 사랑 을 들고 있다. 합류적 사랑이란 두 사람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공존의 감정을 교환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함께 형성해 가는 사랑을 말한다. 간단히말해, 차이 속에 동일성을 만들어 가고, 동일성 속에 차이를 승인하는 것이 사랑의 새로운 규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Ⅱ. 한국사회의 모습근현대에서 성혁명 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의 가장 큰 두가지는 아마도 기든스가 말한 것과 같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의 확보와 동성애의 번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전통사회에서 이해되던 재생산 이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적 개념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 성적 순결 개념도 애매모호해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친밀성의 영향으로 가정의 개념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1. 부모; 이제는 타인2003년 10월 1일 MBC 9시 뉴스데스크 방송에 의하면 젊은이들 중에 30%는 부모의 노후는 부모 자신들이 책임져야 관점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정 을 단순한 사회적 제도로서 이해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에게 부모는 이제 자신을 나아주고 길러준 고마운 분들이라는 개념을 뛰어 넘어 자기와 타인으로 구분한다. 부모와 나 는 하나의 평등한 관계로서 이해된다.부모는 이제 나를 키워주신 분이므로 당연히 내가 모셔야 할 분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도 하나의 타인으로서 자신들의 노후도 자신들이 가능하면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이러한 의식이 갈수록 팽배해지게 된다. 한국사회는 20년 후면 노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성인 1명당 2명의 노인을 부양해야하는 사회가 오게 될 때 자녀들로부터 외면받은 수많은 노인들은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지도 걱정해야 한다.2. 개방화된 성문화국도변을 지나다 보면 화려하게 지어놓은 모텔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마산의 해안도로 부근에는 수많은 모텔들이 들어서 있고, 또한 계속해서 들어서는 중이다. 내가 사는 창원에서 부산으로 가는 중에 거치는 김해의 장유에는 주거단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대단위 모텔가가 밀집해 있다. 과거 유흥가를 중심으로 있던 모텔은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모텔의 증가라는 단순한 증거만으로 현대한국사회의 성문화가 개방적이 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하나의 단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경제 논리를 생각하면 모텔의 증가는 성문화가 변화하고 있다고 충분히 단정지을 수 있을 수도 있다.한국사회에서도 이제는 처녀성에 대한 가치관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는 분명히 여성에게 순결이 매우 강하게 요구되었으나, 오늘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남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는 한국사회에서도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느정도 성경험이나 성적 지식을 가지고 결혼을 한다. 홍등가에서만 경험하던 숫총각 딱지 떼기는 이제 홍등가에서 첫경험을 치루었다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처음 만난 연인과 손 한번 잡지 못하고다.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개신교회의 역할-한국 보수장로교회를 중심으로) 본 글은 필자가 2002학년도 제 1학기 사회학과 개설과목인 [한국사회사] 시간에 발표한 리포트의 전문입니다.글: 손 재 익 운동원로마 카톨릭의 전래로마 카톨릭은 선교사를 통해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선조(宣祖)이후 북경을 드나드는 사절(使節)을 통해서였다. 임진왜란 이후 선교사를 통해 카톨릭이 전파되긴 했지만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1800년대, 본격적으로 프랑스의 선교사를 통해서 카톨릭이 전파되었는데 개신교와는 다르게 많은 핍박을 받게 된다. 서구의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중국문화권의 조상숭배사상과 큰 마찰을 빚게 된다. 조상의 제사에 대해 카톨릭은 우상숭배로 보고 이를 거부하게 된다. 이로 인해 마찰을 빚게되는데 이런 종교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인해 희생을 치르게 된다.) 자세한 논의는 이만열, 한국기독교사 특강, 성경읽기사, 1987, pp 30∼32 를 참조하라.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당시의 당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에는 노론과 남인이 대결하고 있었다. 숙종, 영조까지는 노론이 주로 집권하였었다. 사색 당파 중에서 즉 북인이라든지 소론 계통은 거의 거세된 상태에 있었고 노론에 대항할 만한 세력으로는 남인이 있었다. 그러나 남인은 당시 정권에서 소외되어 있었고 이들 남인 학자들 가운데서 천주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든지 종교적으로 신봉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이벽, 정약종 형제들, 이가환 등의 남인계학자들이었다.정조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변하여 남인계 인물들이 정권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영조의 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였던 사도 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종래의 당파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벽파이고 하나는 시파였다. 벽파는 당쟁의 희생물로 된 사도세자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고 비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주로 노론 계통이 많았다. 이에 비해 사도 세자가 당쟁의 희생물이 된 데 대해서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립의식의 고취,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과 만민 공동회를 통한 정부의 실정 비판, 정책 건의 등의 활동을 하였다. 불과 2년 후, 고종과 수구파 대신들에 의해 해산 당하고 말았지만 조선 말기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립협회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당시의 역할은 아주 컸다. 먼저 협회의 중심적 인물인 서재필, 윤치호, 그리고 평양지부의 협회지도자들 중 안창호, 김종섭, 한석진, 방기창 등이 다 기독교인들이었다.) 그 중 한석진, 방기창은 한국 장로교 최초의 7 목사 중 2인이었다.독립협회에 가담한 기독교인들 이외에도 19세기 말의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거의 기독교인의 본능으로 국가의 독립과 사회 개혁에 관해 발언하고 행동했다.선교사들과 정치아직 선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던 시절에 입국해서 선교의 기회를 조심스럽게 확장해 가고 있던 그들이 가능한 한 한국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려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자기들이 평생을 바쳐 사랑하고 복음으로 섬기려는 국민들이 서양식 근대화와 사회 개혁을 통해 독립의 기반을 굳히려 할 때 선교사들이 그것에 협조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예화를 들으면 1895년 10월 8일 새벽 구중 궁궐 깊숙한 데까지 습격해 들어온 일본 폭도들의 칼날에 왕비를 잃어버린 고종이 두려움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무렵,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트, 게일, 애비슨, 존즈 등의 선교사들은 매일 밤 두 사람씩 교대로 왕의 침전을 지키면서 집총 불침번을 섰다.) 이만열, 한국 기독교와 민족 의식, 지식산업사, 1991, p 471.또한 아펜젤러는 독립협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고, 국왕 탄신 축하 예배에 순서를 맡기도 했다. 한마디로 19세기 말 한국인들의 정치활동은 기독교회 및 기독교 기관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조선 멸망기19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은 한국에서의 이권확보를 위해 열을 올렸고 전통적으로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행되어 가는 동안 국내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었다. 즉 이 운동은 민족적 울분을 종교적으로 카타르시스 시킴으로써 민족 문제에 무관심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만열, 한국기독교사 특강, pp 83-84.) 여기에 대한 반대입장도 있다. 자세한 논의는 양낙흥의 책 pp 148-152를 참조하라.한말 항일 운동1905년 이후 일제 침략이 노골화하는 것과 함께 한국 기독교인들의 항일 운동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기독교인의 항일의식의 성장과 항일 운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낸다. 첫 번째로 기도운동을 하는데 1905년 9월의 장로회 공의회는 길선주 장로의 발의로 그 해 양력 11월 감사절 다음날부터 7일간 전국교회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907년 4월 작성된 에 의하면 1907년 경에는 지역교회가 상호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고 '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진행시켰다고 한다.) 위의 책, pp 143-144두 번째로 행동적 시위로 나타난다. 을사조약 이후 야소 교인인 최재학, 이시영 등은 평양에서 상경하여 조약 철폐를 주장하는 격문을 뿌리고 발표 열흘 뒤인 11월 27일에는 대한문 앞에서 을사 오적의 처단을 요구하다가 일본 순사들과 충돌하여 70여일간 구금 당하였다. 기독교인이며 교육지사로 잘 알려진 정재홍은 박영효의 궁내부 대신 취임 환영 축하연에 이등박문이 오리라 짐작하고 이등박문을 암살하러 이 축하연에 나갔으나 그가 오지 않으므로 이를 분히 여겨 자살하였다.세 번째로 경제적 항일운동이다. 통감부 아래에서 징수되는 각종 세금의 납부를 거부하는 세금 불납 운동, 신설된 시장세의 철폐운동 및 국채 보상운동에의 적극적 참여가 그것이다. 기독교인들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항일운동은 국채 보상운동에의 적극적 참여로도 이루어졌다. 출발이 기독교인에 의해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진행과정에서 교회와 기독교계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한말 기독교인들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항일 구국운동은 일제하에서도 계속되어 국산품 애용운동, 물산 장려운동 등으로 발전하였다.네 번째로는 10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우상숭배라는 죄로서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총독부와 한국 교회는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신사참배에 관한 강경한 입장은 호남 지방에 선교 근거를 갖고 있던 미국 남장로교에서 먼저 표명되었다. 이를 주도한 이가 당시 미국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 총무로 활약하던 풀턴(Fulton)목사이다. 그는 부친과 함께 일본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적이 있어서 일본의 신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사란 신격화된 신을 믿는 기독교와는 공존할 수 없고,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 아니라 우상숭배다"라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남장로교의 입장 선언 이후 북장로교도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고 여러 미션계 학교는 신사참배의 거부로 폐교를 하게된다. 이에 반해 천주교와 감리교는 태도를 달리하는데 천주교는 이미 1925년 '신사참배라 하는 것은 확실히 이단이나 아주 금하는 것이오' 라고 분명하게 규정한 바 있지만 1936년 6월 5일 로마 교황청이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애국적 행사 즉 국가의식이므로 그 참배를 허용한다"고 발표하게 된다. 이것은 로마 교황청과 무솔리니 집권하의 이탈리아와 일본 사이의 관계로 인한 것이었다. 장로교회는 처음에는 철저하게 반대하다가 하나씩 신사참배를 결의하게 되는데 마침내 1938년 9월 9일 제 27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의하게 된다. 9월 10일의 가결후 전국 23개 노회의 회장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하였다.신사참배 반대운동교회의 공식 입장은 신사 참배 참여로 결론이 내려졌지만 개인적으로 또는 개교회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신실한 기독교도에 의한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이 격렬히 일어나게 된다. 이 가운데 주요 인물로는 주기철, 이기선, 한상동, 주남선 목사, 이주원, 손양원 전도사, 여성으로는 안이숙, 조수옥) 최근에 있은 유관순 기념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마산에서 인애원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등이 있다. 반대운동에는 많은 사람들이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월례회, 남녀 전도회, 청년회, 학생회 등의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토론과 다수결, 선거제도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해방이 되자마자 북한의 목사와 장로들은 정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1945년 9월 한경직 목사와 윤하영 목사가 "기독교 사회민주당"을 11월에는 조만식 장로와 이윤영 목사가 "조선 민주당"을 1947년 11월에는 김화식 목사가 "기독교 자유당"을 창당했다. 이후 감리교인으로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1948년 5월 31일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국회가 소집되었을 때 임석한 200여 명의 국회의원들 중 50여 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국회개회식에서 이윤영 전직 목사가 기도를 하였고 정부수립과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이승만은 기도를 하였다.1952년 8월, 제 2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기 몇일 전, 한국 기독교 연합회는 모든 교단 대표들을 소집하였다. 그 목적은 종교 단체로서는 좀 엉뚱해 보이는 것으로 한국 교회가 정부통령 선거 대책 위원회를 구성해서 다섯명의 입후보자들 중 한 사람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자는 것이었다. 모임 결과 그들은 이승만 후보를 지지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하고 그 결정을 전국 교회에 통보했다. 선거대책위원회는 또 전직 목사 이윤영 씨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서도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이승만 정권은 수많은 불의를 범했다. 친일파들을 정부 요직에 등용하였고 유명한 사사오입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정부의 비양심적 처사에 한국교회는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승만을 비롯한 기독교 정치인들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이승만은 정동감리교회의 장로로서 그 나름대로는 열성적인 기독교인이었다. 부통령 이기붕을 비롯한 자유당의 고위간부들도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 이들 이른바 기독교인 지도자들은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을 차별하는 정책을 폈다. 예를 들면 이승만은 신학생들에게만 군 복무를 면제시켜 주었다. 또 자신의 정권을 강화시키는 데 한국 교회조직의 협조와 지지를 구했고, 자유당을 위해 많은 재정적 후원을 받았했다.
들어가면서부모교육 Report부모교육을 위한 고전으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성경을 기본으로 탈무드와 병행하여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이 부모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성경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가 무엇인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솔로몬의 잠언에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태인은 우수한 민족이다. 인류의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해서 심리학자 프로이트, 사상가 마르크스, 시인 하이네 등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유태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유태인의 성공비결은 성경에 기초한 교육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교육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이번 서평을 위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1. 부모공경을 가르친다성경은 부모공경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의 십계명은 하나님에 관한 부분과 사람에 관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람에 관한 부분에 가장 첫 계명(제 5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2절) 이다. 성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은 부모에 대한 권위도 부여해 준다. 부모공경에 대한 부분이 십계명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외에도 많은 구절에서 부모공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먼저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친다. 즉 부모에 대한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부모에 관한 성경구절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잠언 28장 24절)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장 15절)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장 17절)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언 20장 20절)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장 25절)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장 9절)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새서 3장 20절)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19장 3절)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신명기 27장 16절)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마가복음 7장 10절)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명기 5장 16절)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장 1절 ∼ 2절)2. 이웃 사랑을 가르친다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에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5절 ∼ 40절)성경은 이타주의를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남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대한 부분은 이미 모세의 시대에 나타난다. 유태인들이 "쉐마(번역하면 들으라)"라고 부르는 신명기 6장 4절에서 10절을 보면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명하고 있다.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불문율이 나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이처럼 성경에서는 이웃사랑에 대해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 이웃사랑의 방법은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닌 "자기의 몸과 같이"이다.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이웃사랑에 대한 성경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창세기 20장 17절)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레위기 25장 14절)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라디아서 5장 14절)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장 18절)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장 8절)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잠언 11장 12절)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출애굽기 22장 26절)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로마서 15장 2절)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출애굽기 22장 22절)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신명기 27장 19절)3. 훈계를 하라고 한다잠언 13장 24절에 보면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즘 부모들을 보면 자녀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나머지, 무엇이든지 좋다는 것은 다 해주면서도 자녀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마당한 훈계를 하는 일이 흔치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랑과 훈계를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사랑 속에는 훈계가, 훈계 속에는 사랑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며 사랑없는 훈계는 진정한 훈계가 될 수 없고, 훈계없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2장 6절)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장 8절)성경에서 말하는 훈계는 꼭 "처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훈계는 잘못을 수정해주는 것, 인도해 주는 것, 혹은 훈련해 준다는 의미이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의미에서 그들을 가르치며 훈련시키는 모든 과정이 성경적 자녀 훈계이다.훈계에 대한 성경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명기 8장 5절)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3장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