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파이프라인(Superpipeline)과 수퍼스칼라(Superscalar)1.수퍼파이프라인 : 파이프라인 기술은 시간의 병렬성에 기반을 둔 방법이다. 공통된 하드웨어 여러 명령어를 중첩시키는 것이다. 이 기술로 한 클럭당 1개의 명령어를 구현하는 것이다. 슈퍼파이프라인은 파인프라인의 중첩의 정도를 더 깊게 만든 것이다. 수퍼파이프라인이 하나의 하드웨어를 시간적으로 적절히 이용하는데 반해 수퍼스칼라는 분리된 하드웨어를 이용하여 구현한다. CPU가 하나의 명령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4가지 단계를 거친다.2.CPU의 명령어처리의 4단계 1.단계는명령어를읽는다.2.단계는명령어를해독한다.3.단계는연산을한다.4단계는 메모리에 처리된 데이터를 저장한다. 하나의 명령어 처리를 위해4가지 단계가 있으므로 파이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4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첫번째 명령어가 1단계에 들어가고 처리되면 2단계로 넘어간다. 이와 동시에 비어있는 1단계에 두번째 명령어가 들어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첫번째 명령어가 처리되어 나오게되면파이프에는두번째명령어가 4단계에서, 세번째 명령어가 3단계에서, 네번재명령어가2단계에서처리되게 된다. 위의 단계에서 보면 모든 단계가 각기 다른 명령어를 동시에 수행되는 듯이 보인다.만약 위의 4단계를 10개의 단계로 나눈다면 첫번째 명령어가 처리될 때쯤 다른 명령어들이 파이프에 꽉 차 있게 된다. 마치10개의명령어가동시에실행되는듯이보인다. 이기술이바로수퍼파이프라인이다. 그러나 단계를 어느 이상 세분화시키면 더 이상 잇점이 없게 되며, 하드웨어 구조는 수퍼스칼라보다 간단하지만 고속의 클럭을 요구하는 단점이 있다.3.수퍼스칼라 : 수퍼스칼라는 2개 이상의 명령어를 동시에 해석하여 각각 분리된 하드웨어로 보내지게 된다. 이 구현방법은 한 클럭당 여러 개의 명령어를 인출하여 각각의 다른 하드웨어(그래픽, FPU) 등에 보낼 수 있다. 분리된 하드웨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꽤 복잡한 하드웨어 구조를 필요로 한다. 요즘 대부분의 CPU는 수퍼파이프라인에 수퍼스칼라 기술을 접목시키고 있다.4.파이프라인의 원리1.파이프라인의 원리세차장 : [1]살수(S)[2]세척(W)[3]헹굼(R)[4]건조(B)○ 지연 시간은 변화하지 않는다.○ 대기 시간은 단축 된다.○ Throughput 향상2.파이프라인의 단계수와 파이프라인 속도 파이프라인의 단계 수가 많아지면 파이프라인 각 단계의 지연시간은 짧아지므로 파이프라인 전체의 지연시간에는 큰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Throughpu 는 커진다.(파이프라인의 throughput 향상은 파이프라인 단계의 수에 비례)3.파이프라인 단계의 지연시간파이프라인 단계의 지연시간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한 단계의 작업이 끝났을 때 곧 다음 단계의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러한 파이프라인을 제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파이프라인 단계의 지연시간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파이프라인 제어를 단순화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지연 시간 중에서 가장 긴 지연시간을 파이프라인 단계의 지연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실용적이다.파이프라인 단계의 지연시간이 동일 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파이프라인 지연시간이 길어 진다.○파이프라인 throughput 가 감소 된다.2.인스트럭션 수행파이프라인파이프라인 단계간 버퍼 -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기억장소로 래치로 만든다.① IF-PC에 기억되어 있는 주소를 이용하여 주기억장치에 접근 하여 인스트럭션을 읽어내는 작업과 그 인스트럭션을 IR 레지스터에 기억시키는 작업,PC의 내용을 n(인스트럭션의 길이)만큼 증가시켜서 브랜치 인스트럭션이 아닌 경우에 다음에 수행할 인스트럭션의 주소를 나타내게 한다.② DR-인스트럭션의 각 부분을 분해하여 버퍼에 따로 기억시킨다.③ A-연산장치를 이용하여 함수 연산 기능 인스트럭션의 연산을 수행하거나 전달 기능 인스트럭션이나 제어 기능 인스트럭션을 수행하기 위하여 유효 주소를 계산하는 단계④ M-함수 연산 결과에 주기억장치에서 읽은 데이터를 레지스터에 저장한다.⑤ SR함수 연산 결과와 주기억장치에서 읽은 데이터를 레지스터에 저장한다.4.파이프라인 장애⑴ 구조적 장애 하드웨어 구조로 인한 장애로 두 개 이상의 인스트럭션들이 동시에 수행되어야 할 때 이들 인스트럭션들의 수행에 필요한 하드웨어 자원을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 수행이 불가능하므로 발생하는 장애.○ 하나의 파이프라인 단계가 같은 클록 사이클에 하나 이상의 인스트럭 션의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발생하지 않음.
▶감 상 작 품◐ 해 녀 ◑▶작 가 소 개이 양 지 (1955 ~ 1992)일본명은 다나카 요시에 이며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출생하여 작품을 통하여 재일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의 뿌리에 대한 갈망과 고뇌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던 재일 한국인 소설가이다.1975년 와세다 대학교에 들어가갔다가 중퇴하고, 1980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1982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휴학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군상》에 첫 소설 ‘나비타령’을 발표하였다. 1984년 서울대학교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 대학원에 입학 「유희」를 《군상》에 발표하였는데 1989년 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다.1992년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돌의 소리’를 집필하던 중 심근경색증을 37세의 나이로 아깝게 타계하였다.모든 작품을 통해 재일한국인의 모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또 이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들이 설 땅과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갈등과 고뇌를 집요하게 모색하였다. ‘돌의 소리’는 10장에 이르는 방대한 장편소설로 구상되었으나 그 중 제1장만이 유작으로 남아 있다.저서로는 「유희」「나비타령」「내의」「청색바람」등이 있다.▶작 품 감 상선택되어진 단원 중 제일 흥미가 가는 것은 「비디오/콤플렉스」였다.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하재봉] 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그의 글이나 평론들은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그 어떤 글들과는 조금 구별된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와 영화관람도 그의 평을 듣고 선택하는 경향이 다분하다.그 다음은 「흑백 텔레비전 꺼짐」이었다. 베스트셀러라는 한 권을 위해서 제목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것인지를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그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도 저것도 아닌 「해녀」를 선택하게 된 것은 그 주변사이를 훑어보다가 눈에 들어 온 그 글귀들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해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재일 문학 즉 “재일 한국인”에게 있어서 ‘재일’이 담고 있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가를 조금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캐캐 묵은 감정에서 시작된 재일을 비롯해 제3세대에 오기까지의 재일에 대한 주관적, 객관적 사고를 종합해 볼 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불우했던 한국 가정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일본인인 의붓아버지와 그 형제들을 만나 갈등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점차 생각이 고립되고 자신으로부터 사회를 떠나게 하여, 결국은 죽음을 택한다. 그러므로 남겨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고통을 되집게 한다는 이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섬뜩하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단적으로 표현해준다.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던 그녀 어머니의 생활에서 인간이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보다는 그저 현실에 얽매여 고통받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삶 자체는 인간에게 그저 시간을 흘러보내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이 그녀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그녀가 유일하게 허락했던 사람은 서로의 갈망이라기 보다는 그녀 내면의 어떤 인간성이 꿈틀거려서 취한 일련의 본능이었을 지도 모른다.그녀를 유일하게 이해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인간적인 본능으로서 사랑받고 소속되고 싶은 애정의 욕구가 그녀에게도 잠재된 행동으로 표출되었으리라 생각된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은 그 시대의 영향을 수량화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받는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에 맞게 인간생활이 굴러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중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고 고취하는 사람은 범상한 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평범하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이 글이 쓰여진 1980년대 초반은 우리나라도 격동의 세월이었다. 깨어지는 시민의식의 비롯해 1980년 후반에는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 사상에 입각한 소설들이 대거 출간되어 판금이 되기도 하고 일부 계층에서는 학습되는 필독도서로도 읽혀지기도 하였다. 그 대표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이 윤정모의 「고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님」「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제2의 성」「껍데기를 벗고서」등이 있지만 「고삐」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울분이었던 양공주 문제를 프리즘 삼아 한미관계의 예속적 본질을 속시원히 드러내 주고 있다. 또한 “고삐”라는 것은 그저 사슬이 아니라 민중여성의 삶에서부터 이세상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도 우리와 같은 여자라는 커다란 결속력을 갖게 하는 맥락이 된다. 의문의 죽음, 의문의 실종… 알면서도 모른체 하고 또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 속에서 식민지와 같은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그 설움을 피부로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자고로 전쟁에서 나라가 망하면 남자들은 포로를 끌려가거나 그 목숨을 잃지만 남은 여자들은 성의 노예가 되거나 그 몸 자체가 강대국의 집기처럼 예속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해 타국으로 끌려가 원하지 않는 설움을 당하고 모국으로 돌아왔다는 뜻에서부터 출발한 이 말은 지금은 그 뜻이 왜곡되어 성을 상품화 시키는 여성을 일컫는 부정적인 뜻으로 주로 통용이 되고 있다.그와 관련 지어 생각해 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불과 몇 십년 전에 있었던 “정신대” 사건이다. 정신대라는 말을 잘 몰랐던 어렸을 적에는 어감이 괜찮은 것 같아 그 뜻이 한나라의 억압된 설움이라는 것을 잘 몰랐었다. 30대인 지금 생각해 볼 때 그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지는 말로서는 감당하기 조차 힘들다.가난하고 못 배운 대부분의 여성들이 정신대로 끌려가 자기의 정체성은 커녕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때에도 남의 일 바라보듯 방관했던 같은 시대의 여성과 성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한창 성숙해야 할 시기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은 식민지국민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는 결코 합당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은 한번 가면 절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며 아무도, 그 무엇으로도 그것은 보상될 수도 없을 것이기에 그것은 마땅히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식민지란 무엇이고 피식민지란 무엇인가? 또한 그 안에서 부를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어떻게 다른가?나라가 없어져도 부는 남아 있으며 국가가 IMF속에서 허덕여도 부를 축적했던 사람은 이민 갈 준비를 빈틈없이 참 잘도 한다. IMF가 오자 나 같은 평민은 모라토리움 사태가 오면 전기를 써도 되는지 자차를 운전해도 되는 건지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건지, 혹시 나에게 남아있는 금붙이는 없는지 고민에 고민을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 옛날 부의 힘을 이용해 모든 특권을 누렸듯이 재산을 적절히 분배해 놓고 눈속임을 하고 있는 현실은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그 가운데 사실상 피해자는 누구인지는 모두가 생각해 볼 문제이며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의 숙제일 것이다.이 글을 읽고 나니 정신분석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성장하면서 그 단계별로 주어진 과업을 학습하지 못하면 그 학습과업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쌓여 잠재된 욕구로 남아있다는 말이 떠올랐다.주인공도 잠재되어진 욕구의 표출로 술집을 전전하면서 자신을 학대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급기야는 자신의 자궁을 없애버리려는 성인식을 선택하기도 한다.이양지의 문학에서 볼 때 그녀는 특유의 감성으로 여성의 심리, 내면세계와 육체의 조화를 섬세하게 연결시켜 가족의 붕괴를 표현한다.이것은 그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으로부터 받았던 위화감과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의 불안등에서 벗어나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된다.비록 37세란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을 알고 존중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과 그것을 작품화한 것에 대해서는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또한 우리는 재일 한국인 문학에 대해 특수성과 더불어 시대적 보편성을 담은 문학으로서 일본문학 안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우리에게도 문학적 자극으로 다가와 새로운 관심을 충분히 가질만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욱 더 큰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감독 : 밀로스 포먼출연 : 잭 니콜슨루이스 플레쳐이 영화의 제목은 예전부터 이미 많이 들어서인지 낯설지는 않았지만 한번도 감상한 적은 없는 작품이다.솔직히 지금까지 살면서 영화를 통한 작품세계를 이해하거나 감상한다는 의미보다는 재미나 흥미 본위로 대해왔다.그러나 이 작품을 감상한 이후로는 영화의 작품 세계도 나름대로의 간접 경험이나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영화의 배경이 되는 정신병원은 공포영화나 범죄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양들의 침묵’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공포영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를 다루는 영화도 아니다. 오로지 정신병원이라는 구속에서 정상적인 한 인간이 자기의 자유를 유지하고 다른 구속 받은이(정신병자)에게 마음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과정에서 서서히 마음의 눈을 뜨는 환자들로 인해 당황한 병원측(전제적이고 권위적인 독재)의 힘에의한 지배, 이에 맞서는 맥 머피…그러나 맥 머피가 변화시키기에는 병원이라는 사회(독재의 힘)는 너무도 거대하고 역부족이었다. 결국 병원의 강제적 뇌수술로 식물인간이 되고 너무나도 허무한 삶이 되지만, 그에게서 자유가 뭔지를 깨달은 환자들은 비로소 피지배자가 아닌 사람으로 일어서게 될 거라고 판단했다.정신병원이라는 국한된 무대 배경임에도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잭 니콜슨의 화려한 내면 연기와 조연배우들의 잊을 수 없는 명연기 때문이다. 수형생활을 피하려고 꾀를 내 정신병원에 자진 수감되서, 병원에 반항하면서 서서히 미쳐가는 리얼한 연기에서 정상에서 비정상의 경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맥 머피의 반항은 멀쩡한 사람이 미쳐가도록 강제하는 사회체제의 비인간성을 폭로함으로써 해방감을 준다.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안타까움과 충격적이면서도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지배자의 힘, 피지배자의 무기력함…우리는 부당한 권력 사회의 부조리나 부정부패를 요즘 너무나 많이 접하면서 살고있다. 어쩌면 그래서 이젠 아예 체념하고 무감각 해져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맥 머피는 영화에서 끝까지 자기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확실히 자기에게 주어지는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도 자신의 주관을 끝까지 믿었다. 우리의 인생도 결코 길지도 않지만 아주 짧지만도 않다. 나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다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얼마전 흥행했던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 의 잭 니콜슨의 심리표현이 아주 돋보였고, ’76년 아카데미 5개 부분 수상한 명작이다.영화는 종합 예술이라고한다. 시대적인 고증과 문헌으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최대한 현실적이고 실감나게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앞으로 21C는 문화의 시대라고한다. 스티븐스필버그의 영화 한편이 우리나라 1년 자동차 수출액과 맞먹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영화 및 문화 선진국이 되도록 우리 젊은이의 패기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을 보고…감독 : 김기덕주연 : 서정,김유석섬을 보고… 보다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 [섬]을 보고… 라고 하는 표현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김기덕 감독에 대해서는 논평이 많아 익히 들어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선뜻 그의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감독이름은 알지만 그의 영화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98년에 개봉한 [파란대문] 정도나 앞으로 개봉할 [실제상황] 정도를 알 뿐…더구나, 실제상황–주진모 를 설정하는 것이, 김기덕 감독의작품–실제상황을 연결시키는 것 보다 더 용이한 것이 우리 영화계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고독한 섬의 이미지를 자기내면에 포함하고 있는 희진이나, 자신의 고립감의 표출로 섬을 찾은 현식을 이해하기에는 내 생활들이 너무도 평범했음을 느낀다.영화 [섬]에는 김기덕 감독의 많은 기대감들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고립된 장소로 저수지의 낚시터를 배경으로 한 것이나 대사 한마디 없는 여주인공의 현실적 연기를 통해 희진이와 현식이 서로 동화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카데고리를 제공한 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삶이 희진이의 맹목적인 집착을 불러 일으켜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지만 여러가지 상징적인 캐릭터를 통해 지나친 고립감으로부터 관객인 나를 해방시키기도 하였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개인이 자유로워지지 못했던 주인공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잠재적 의식을 대변한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내 생각이 너무 편협한 것일까..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끝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망치듯 떠나 결국은 전라로 죽고마는 희진을 바라보는 현식, 그러므로 이들은 소외된 개인들이 서로에게 영원을 선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사랑이라 함은 너무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느낌을 나에게 준다. 그러나 섬이라는 영화에서 나에게 주는 사랑은 환상적이긴 하지만 아름답지는 못했다. 무작정 관람한 영화 [섬]은 심리극도 아니고 포르노도 아닌 드라마의 장르이다. 나는 처음 영화가 끝난 후 [노랑머리],[거짓말] 등의 영화가 떠올랐다. 더불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안이한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점은 같은 맥락이 아닐까!나는 솔직히 말해 감동적인 드라마나 기분이 산뜻해지는 해피앤딩의 영화를 주로 관람한다. 혹시나 해서 주위에 물어보아도 [섬]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관련된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영화를 기피하여 개봉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싶어도 그럴수 없게 만드는 우리나라 영화사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영화를 관람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계기가 없었더라면 그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영화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영화를 다시 되짚으면서 느낀점을실토한다면,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영화를 예술과 접목시키지 못하는 소극적인 편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섬]이라는 영화는 영화를 단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사회에, 그리고 나에게 피력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느끼게 해주었다. 관람객이 적어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맥락을 이을 수는 없겠지만 김기덕 감독의 고유한 색깔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고, 이런 도전을 나에게 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제출일 : 2000. 06. 15담당교수 : 김 기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