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뜻으로 본 한국역사저자양력함석헌 선생님 양력(咸錫憲 1901.3.13∼1989.2.4)사상가 ? 민권운동가 ? 문필가평북 용천출신1923년 오산(五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일본 도쿄[東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모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40년 평양 근교의 송산농사학원(松山農士學院)을 인수,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계우회 사건으로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8?15광복 때까지 은둔생활을 하였다.광복이 되자, 평북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으나 같은 해 11월에 발생한 )신의주학생의거 1945년 11월 23일신의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반소?반공의거(反蘇反共義擧)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북한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다. 1947년 단신으로 월남, )퀘이커교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도로서 각 학교?단체에서 성경강론을 하였다. 1956년 《사상계(思想界)》를 통하여 주로 사회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한국기독교에 할말이 있다〉라는 글로 신부 윤효중(尹孝重)과 신랄한 지상논쟁을 펴 큰 화제를 일으켰다.19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통렬히 비판하여 투옥되었고, 1960년 이후 퀘이커교 한국대표로서 종교활동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집권군부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62~1963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각지를 시찰하고 돌아온 후, 언론수호대책위원회 ? )3선개헌 1969년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던 제6차 개헌 반대투쟁위원회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등에서 활동하였다.1970년 《씨알의 소리》를 발간하여 민중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76년의 명동사건, 1979년의 YMCA 위장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1980년 《씨알의 소리》가 강제 폐간되어 문필생활을 중단하였으며, 1984년에는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을 지냈다. '폭력에 대한 거부''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중을 뜻하며 민중이 알아야 할 것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발행 목적은 '첫째, 바른 말을 하자. 한 사람이 죽는 일이 있더라도 옳은 말을 하자. 둘째, 유기적인 공동체를 기르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1970년 5월 제2호를 펴낸 뒤 문화공보부로부터 등록취소 처분을 받았으나, 대법원의 승소판결을 받아 1971년 9월호부터 복간하였다. 그러나 정부 비판의 글을 많이 실어 1980년 7월 31일 정기간행물정비 때 통권 95호를 펴내고 등록이 취소되었다. 1988년 12월 10일에 다시 속간되었으나, 1989년 함석헌이 죽자 편집 겸 발행인이 김용준으로 바뀌어 1991년 3월까지 발행된 뒤 휴간되었다.종교 경전의 재음미와 문명 비평, 역사적 반성, 시사논평 등을 통하여 건전한 상식을 길러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려 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으나, 정부 비판적인 논조로 당국과 많은 대립을 겪었다.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을 하였고,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구어체 표현을 써서 일반 민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책의 배경'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함석헌 선생이 1933년 12월 31일부터 1934년 1월 4일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했던 것을 잡지 '성서조선' 1934년 2월호부터 1935년 12월 호에 실었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토대로 하여 1950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1961년에 셋째 판을 내면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사관을 풀어 밝히고 책의 제목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꾸어 전면적이 개정작업을 하였다.책의 내용함석헌 선생님의'뜻으로 본 한국역사책을 읽으며 친 할아버지가 인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한 성질과 더불어 6.25까지의 한국역사를 삶의 철학을 불어 넣어 설명 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1부에서 '새로 고쳐 쓰는 역사'라는 주제를 통해 삶과 인생, 세계의 역사, 한국역사의 특징, 한국사람에 대해 종교적인 철학 그리고 지리적으로 결정된 성질 등을 설명해 민본주의(民本主義)안에서 역사에 대한삼국시대에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시작까지의 이야기를 다뤘었다.고구려를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기개가 있고, 문과 무를 두루 갖춘 큰 정신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표현하였는데, 고구려의 망함을 횡사(橫死) 혹은 요사(夭死)로 이야기 한 함석헌 선생님은 이런 고구려의 죽음이 고구려의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일이고, 한 시대의 실패만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라고 말하였다.신라가 당의 군사를 끌여들여 고구려를 멸하게 함으로 이때로부터 외세의 힘이 한(韓)민족에 개입하게 되었고, 이것을 약점으로 지금까지도 줄 곳 한민족은 외세의 개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설명 하였다.고려의 초기에서부터 말기까지 북진을 소리치며 만주를 취하여 민족의 뜻을 크게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큰 나라(漢族)에 대한 구차한 애정과 구걸을 통해 그들의 관제를 배우고 교육에서 종교까지 겉과 속을 모두 중국화 되려기에 겨를이 없었다. 사대주의가 들어오고 모화사상이 생기면서 현상유지를 하는 권력계급은 민중이 어떻게 되거나 자기가 죽기 전까지 만의 평화를 바라게 되었고, 이대로 영원히 해먹기 위해 발버둥과 발악을 떨었다.점점더 더럽고 치사한 혓바닥으로 나라의 정치는 이루어져 가고 있었고, 모화사상만을 고집하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백은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짐승만도 못하다던 여진족에게 군신의 관계라는 치욕스러운 상황이 되기도 하였으나, 절대 깨우치지 못하고 난중에만 숨죽이며 살던 인간들은 씨?(민중)들이 가까스로 나라를 구해 놓으면 다시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혓바닥을 놀리게 되었다.이렇게 자신은 없고 오로지 남에게 기대어 당장의 몸뚱아리의 편함만을 추구하던 민족은 끝내 자기 손으로 스스로의 민족정신과 국민이상을 내팽개쳐버리고, "상국(上國)지경을 범하면 천자께 죄를 지어 나라와 백성에게 화가 당장 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 조선을 세우게 된다.꿈을 던진 이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이고, 목표가 있을 것이며 환점이 되었다. 그 후로 세종이나 율곡과 같은 인물들이 나와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꾀하려 했으나 이미 꺽여 버린 민족의 꿈 앞에서는 힘이 부쳤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는 전 세대 보다 더욱더 강력하고 많은 침략과 약탈이 있었다. 3부에서는 그런 수난의 조선역사에 대해 다루게 된다.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왜를 비롯해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쥐어짜서 버텨낸 한민족의 힘은 정치를 하는 놀이패들이 아니었고, 이순신과 임경업과 같은 민족에게 주어진 인물들과 더불어 씨?들 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란을 씨?들이 이겨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들을 핍박하고, 또 다시 붕당정치를 통해 자기 안일주의만을 꾀하는 인간들이 정권을 휘어잡게 되어 나라는 점점 더 쇄국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두번의 환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기력을 완전히 소진한) 조선은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민족이 완전히 식민화가 되어 말살되기 직전까지 다다르게 된다. 조선시대 수많은 침략으로 난자당하는 동안에도 분명 새로이 일어 날 수 있는 힘들이 있었지만, 붕당정치라는 거짓부렁이 같은 세력간의 다툼으로 불필요한 정쟁을 벌이다가 끝내는 일제의 식민화가 되었던 것이다.식민지 후에 광복이 된 우리는 또다시 소련과 미국의 냉전체제하에서 두개의 이념을 갖는 나라로 나뉘게 되고 6.25까지 거치면서 완전히 분단된 나라를 이루게 된다.마지막 4부에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한(韓)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고난)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사명에 대해 다잡아 보고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주면서 책을 마무리 하게 된다.우리 역사의 잘못과 실패는 무엇인가?역사를 통해 보면 우리는 첫째로 가난이었고 둘째는 다른 나라의 간섭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우리 정치인들의 잘못이고 넷째는 국민정신이 약한 것이다. 마지막은 국민적 판단의 잘못 이다.국민적 판단의 잘못은 38선의 승인이고 그 바탕에는 외국의 원조 없인 나라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믿는 이 버릇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곧 지성의 패배는 모든 것의 패배를 말한다. 이것이 새로운 새계 씨?의 화두이다. 지성을 통해 덕성을 쌓고 덕을 회복하여 이성을 활동시켜야 한다. 그것은 강력한 무언가가 나와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능(能)이 필요하다.천재가 독재를 하는 시대는 영원히 지나가고 말았고, 부(富)와 권(權)이중 하나만 잡고 모든 것을 얻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이젠 지(知)가 필요한 세상이다. 역사를 보더라도 부권(富權)을 가지고 자신만만하면서 사업을 하게 되면 망하게 되었다.지성을 회복하여 덕을 배풀며 전체의 의지와 지혜를 모아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이 있어야 하고 올바른 지식과 덕을 갖추면서 부와 권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지성을 필요로 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칼을 꺾고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감상친 할아버지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처음에서부터 지금까지 조목조목 이야기 해주면서 그 역사를 통해 느끼고 배워야 하는 것들을 설명해준 글 같다.지금까지의 역사책을 읽으면 읽다가 내 팽개쳐 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상황이 이뤄진 것들에 우리들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하여 항상 성찰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 우리는 분단이 되었으며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 이고, 우리의 어떠한 슬픈 모습을 통해 이루어 졌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나와 있는 이 글들은 잘못의 이유를 궁극적인 이유를 성찰을 통해 우리 자신으로부터 찾음으로써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을 넣어주었다.씨?의 세계인 앞으로의 세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역사를 익히고 새로운 세계를 지와 덕을 살찌움을 통해 스스로 깨어나고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함석헌 선생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독자의 입장에서 폐쇄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에 대한 반대를 하셨다. 함석헌 선생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역사책을 읽으며 그동안 어려서부터 국사수업을 들으며 내가 가진 역사에 대한 편협한 생각들이 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흐름
독후감-당신들의 대한민국-저자양력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19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 졸업1996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역임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편집위원우연히 ‘춘향전’을 보고 한국의 매력에 빠져들어 대학 전공도 한국사학을 택한 그는 한국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더더욱 한국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고, 결국 2001년에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귀화까지 하게 된다. ‘노자(露子)’라는 이름은 러시아를 뜻하는 한자어 노(露)에 아들 자(子)를 붙인 것이다. 귀화하기 전부터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던 박노자는 2001년 이후 두 권의 사회 비평집과 두 권의 역사 관련 책을 내고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박노자는 이제 그의 책들이 나오는 즉시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인기 있는 사학자이면서 논객이 됐다.박노자의 글을 읽게 되면 두 번 놀라게 된다. 하나는 그의 뛰어난 어학 실력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야 배웠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박노자의 한국어 실력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사회를 보는 예리한 눈이다. 박노자가 보기에 한국은 사대주의가 가미된 인종주의적 편견, 오랜 국가주의적 군대문화에 ‘찌들은’ 사회다. 이나 에는 이런 주장에 대한 증거들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그는 어느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어떤 한국의 지식인보다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다. “명색이 비판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내가 40년을 넘게 살면서 두루뭉실 인식하고 있던 문제들을 ‘불과’ 10년을 산 박노자가 너무나 분명하게 끄집어 낸다.”는 유시민 의원의 말은 박노자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책의 첫 느낌한국사람이 세계를 접하고 한국과 한국인데 대해 자신의 생각을 쓴 글은 많이 있었다.박노자씨는 우연한 계기에 춘향전을 듣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북한유학으로 풀어 낸 뒤, 냉전시대가 미침으로 해서 한국에 찾아 생활을 하고 귀화까지 하게 된 러시아인이다. 이러한 사람이 한국과 한국사회를 바라보며 느낀점을 쓴 칼럼이어서 그럴까?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고, 다른 나라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해 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이 든다.전체적인 줄거리총 4부로 나뉘어져 있다.1부 한국사회의 초상에서는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인 '우상숭배',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문화,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역사 속의 교훈들”,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에서는 “'진보' 꺼풀 속에 숨은 전근대성, 대학교수,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 상아탑에 드리워진 망령들”,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 국가주의”,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의 이방인,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를 통해 외국인으로써 바라 본 한국인에 대한 특별한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책을 읽으며 박노자씨가 이야기한 한국사회의 극단적이고 폐쇠적인 패거리문화가 어디로부터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특성 중 하나가 ‘중간을 가자!’가 아닐까 한다. 그 중간을 가자를 통해 그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포함되지 않은 위에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를 하게 되고, 중간에 참여하지 못 한 사람에게는 돌과 화살이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역사적으로 보아도 정권을 잡아야 왕과 민(民) 사이에서 중간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패거리 문화와 각종 폭력 등이 난무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책의 내용에서 "귀한 외빈들이 오니 소음공해를 줄여야 한다"며 자기 나라 노동자를 탄압하는 정부와 경찰 당국의 추태를 지켜보면서 맨 먼저 생각난 것은 외화벌이와 종주국의 눈치를 자기 민족의 피보다 훨씬 더 중시하는 베트남 파병 당시의 사고방식이 조금 변형된 형태로 아직까지 한국 정부의 '행동강령'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라고 말한 것과 같이.그러한 행동들은 나라 안의 문제와 나라 밖의 다른 나라와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이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이러한 중간을 가겠다는 생각과 개인주의적 성향이 짖은 패거리주의는 자기종교 이외에는 무조건 선교의 대상이 된다는 획일화 된 생각으로 밖에 보질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이 이외에도 책을 통해 박노자씨는 다양한 한국사회의 패거리주의에 대해 이야기 했다.이러한 패거리주의를 풀어내기 위해 그가 말한 해결방법은 4부 “서울의 이방인”에서 말한 “현재 의 일부 국수주의자들이 한민족을 '몽골계 기마민족의 후손'으로 보려고 하고 몽골인의 '야성'과 '필승의 정신'을 한민족의 본래적 민족성으로 설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설이 학술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몽골인들을 오리엔탈리즘의 스테레오타입대로 '야성적이고 무서운 존재'로 보는 것도 너무나 큰 무식과 무지다. 서울에서 사는 몽골인들에게 특징이 있다면, 상대를 따듯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약자의 무기는 배부른 관계자들이 말하는 '야성미'가 아니고 상생이다.”와 같이, 패거리를 패거리 안에서만의 평화와 행복추구만이 아니라 다양한 패거리와 중간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나도 많이 부족한 부분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조직, 우리 모임이 아니면 대화의 대상이 아닌 경쟁적으로 보는 시선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유치한 노력들 말이다. 박노자씨의 글에서처럼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는 나에게 도움이 안 될 듯 하다.감상지난 주말에 서울로 시험을 보기 위해 놀라갔다. 누나네 집에서 묶으며 헌제의 행정수도 위헌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 하다가 외국의 경우를 이야기 하였고, 그러다가 박노자씨의 이 책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였다.그때 누나가 “박노자씨의 글이 한국인들에게 관심이 일으켜진 부분이 외국인으로써 한국에 대한 평가였기에 그렇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중간의 윗 사람들(서양인)들이 바라본 한국인의 특이한 점들을 한국인에 대한 고언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기에 중간 이상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그것에 대해 중간의 한국인들이 호응하는 것과 같아 썩 좋지 않다고 말이다.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 학생이 “도대체 박노자란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모르지만, 너무 자기의 편협한 생각만으로 한국 기독교 전체를 외도할려는 것이 아니냐?”라며 화를 냈던 것이 생각났다.누나의 말이나 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노자의 칼럼은 칼럼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그러한 생각도 이해해 주고, 그런 그의 모습을 우리 사회 속에 살아가는 하나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임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한 말과 모습들이 다양해 지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이렇게 내가 책을 통해 느낀 것은 역시나 내 안에 있는 편협한 경쟁의식을 깨는 것이고, 共生을 위한 다양성의 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