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政治的 人間 1)1. 政治와 人間性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성격상 정치적 동물 (man is by nature a political animal)이라고 喝破했거니와 그 전에도 이미 플라톤 역시 효율적인 시민권에 필요한 인물의 질적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의 헌법을 인민의 성격에 적합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Allport에 의하면 인간의 정치적 성격은 전체로서의 개성체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2) 그에 따르면 인간의 개성은 태도체계이며, 한 인간의 의견은 생활에 적응하는 특성있는 양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개인의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결국 한 인격의 반영인 셈이고 그 개인의 심리적 구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성에 따라 정치체계를 선택하는 정치적 태도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성에 따라 정치체계를 선택하는 정치적 태도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인간이 교육이 가능하고 평화적이고 신뢰할 수 있고 합리적이라면 그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으며, 충동적이고 호전적이며 집단지향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그는 다른 형태의 정치적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3) 즉, 한 인간의 인간성을 이해하면 그의 정치적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통상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의 태도에 기초하기 마련이므로 그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행동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정치적 행동이 개인의 태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적 결정과정에서 한 개인의 행동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구조나 조직체 속에서 개인적 성격이나 개성, 또는 선호와는 관계 없이 집단의 결정이 이루어져서 그 개인은 집단의 결정이 이루어져서 그 개인은 집단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행동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狀況的 要因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그러나 여기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인간의 성격, 태도, 행위 등에 초治的 欲求스미스 등에 의하면 인간들은 세가지 欲求(needs)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이다. 즉 1세계를 이해하고 제반 사건을 관리하기 위해, 2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3정신적 긴장을 표출하기 위해서 등이다.4)물론 이러한 설명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정치적 동기를 설명하는 데 유익한 지침으로 사용할 수는 있다. Lane은 인간의 정치적 활동을 촉진하는 욕구를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첫째, 인간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경제적 내지 물질적 복지, 소득, 재산, 경제적 안정 등을 증진하려고 한다.둘째, 인간은 정치적 수단을 통해 우정, 애정, 무난한 사회적 관계를 위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셋째, 인간은 정치를 관찰하고 토론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諸事件에 영향을 주는 원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넷째, 인간은 정치적 표현을 통해 주로 공격적이고 성적인 충동에서 오는 정신내적 긴장을해소하려고 노력한다.다섯째, 인간은 정치적 통로를 통해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추구한다.여섯째, 일반적으로 인간은 정치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자존심을 방어하고 향상시키려고 노력한다.그런데 이상에서 열거한 동기들은 상호배타적일 수도 있고 중복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행위를 추적하다 보면 빈번히 나타나는 것들이고 그것들은 곧 政治的 人間性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들이다.4) H. B. Smith, J. Bruner, and R. White, Opinions and Personality" (New York : Wiley, 1956), p.41.Ⅱ. 大衆의 特質1. 大 衆대중이 어떠한 존재이냐에 대해서도 사상가들이나 사회과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다. 대중이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Ortega Y. Gasset 5) 의 경우처럼, 자유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이 발전한 결과로 생긴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서였다. 또 이것은 계급을 유일한 역사적·정치적 주체라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견해에 대한 批判과 抗議라는 의의를 가졌다는 이른바「보통인」,「일반인」에 대한 새로운 신앙의 회복과 재평가라는 형태로, 또 대중이 갖는 가능성에 대해 올바른 위치를 설정하려고 하는 민주주의자의 학문적 노력으로서, 대중의 중요성에 시선을 돌리게 하려는 實踐的 潮流가 대두되고 있다.이처럼 대중의 경우도 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와, 대중에 대해 역사적 主體性을 인정하고, 역사적 운명을 담당케 하려는 哲學的·世界觀的 見解가 交錯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문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 것은 대중을 노동자 계급이나 피지배자 계급의 별명에 불과하다도 주장하는 뿌리깊은 마르크스주의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대중이 어느 한 계급의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면 대중의 문제는 그 固有性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은 프롤레타리아나 인민 등과 동일시될 수 없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으로 규정될 수 있는 사람들도 대중적 존재로서의 특징을 다분히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問題性이 생겼다고 해석될 것이다.민족이나 계급과 같이, 대중은「함께 소속(共屬)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이 가지는 그러한 歸屬感의 기초에 있는 객관적 조건은 형대의 기술사회의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낳았듯이 기술의 발전이 대중을 낳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불가결의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대중의 문제도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체제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의 공업화하고 도시화한 기술적 사회의 공통문제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국이나 소련이 다같이 대중사회적 성격을 전면에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大衆은 영어에서 mass라고 하는데, 이 말은 문자 그대로「量」내지「大量」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양의 증대에 따라 양이 질로 전환되었다는 데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대중은 「많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質的 存在」로서 역사적 주체로서의 가능성速 運輪의 수단을 매개로 하는 거대조직이 발전하고 관료제가 진전한다. 政治的 操作의 가능성이 증대하는 동시에 정치참여의 가능성도 증대한다. 지배자에 대한 통제와 정치에 대한 압력이 강화되는 동시에, 사적 생활에까지 정치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리하여 대중의 등장은 絶望의 豫言이기도 하고 希望의 表現이기도 하다.우리의 사회가 이상과 같은 대중의 사회로 변모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 나라도 고도 산업사회 내지 기술사회로 지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상, 대중사회에로 발전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현실상황은「大衆社會的 狀況」에 처하여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도 대중사회에 있어서의 대중의 성격을 충분히 고려해 보아야 하고,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정부를 대중의 대표자가 되도록 하며, 치자가 진실로 대중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현대의 정치상황의 향방은 민족, 계급 및 대중이 제각기 역사적·정치적 주체가 되려고 하는 가운데서도,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대중사회로 향하고 있다. 대중사회론자들은 대중이 자각적 대중으로 되고 목적의식을 가진 조직화된 대중이 되어 「새로운 公衆」이 됨으로써 역사적·정치적 주체가 되는 것이 현대인의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한다.6)이상과 같이 현대의 정치상황을 파악함에 있어서는 민족, 계급 및 대중 가운데 어느 것이 오늘날의 정치적 주체로서 유효하고 역사적 사명을 다할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과학의 문제라기보다 실천의 문제이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족을 절대화한 나치즘이나 계급을 절대화한 프롤레타리아 메시아니즘(messiahnism)처럼 대중을 절대화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인간과 사회를 위협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科學과 哲學의 協力이 오늘날처럼 절실히 요청되는 때도 없을 것이다.5) Ortega Y. Gasset, La Rebelion de la Massos", 1930.6) 金宇泰 著, 정치학원론, 螢雪出版社, 1992. pp.2에 따라 활동한다. 인간 사회 속의 개인들은 탐욕적·물욕적 충동 등의 소유욕과 지배욕 그리고 명예욕 등 권력적 욕망에 의해 형성된 무질서한 이기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富와 권력을 더욱 증가하고 확대시키는 데만 마음을 쓴다. 인간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윤리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향락을 지키고 향락을 충족시키고 권력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데 인생의 모든 목적을 두고 있다.(2)사회적 강자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의지일상적 인간사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富와 權力에 대한 의지이다. 부와 권력에 대한 의지는 인간사회의 구조 자체이다. 사회적 강자를 인간사회 구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부와 권력에 대한 의지를진실로 體現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강자들은 인간사회에서의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특권의식을 지니면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보다 크게 보다 강하게 확장하려는 의지를 인간의 근원적 생명력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약자에게는 고난을, 강자에게는 행복을 주는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는 사회적 강자들은 부와 권력을 향한 힘의 논리 이외의 도덕원리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강자들에 의하면 인간사회에서는 弱肉强食의 삼라만상의 최고법칙이 되고 强貴弱賤이 최상의 도덕원리이다.7) 이수윤 저, 정치학개론, 法文社, 1998.(3)극단적 불평등 현상극단적 불평등 현상은 인간사회에서 그 누구에게나 가장 친숙해져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사회에서 일상화되고 있는 격심한 불평등 현상은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인간사회에는 부유층과 빈곤층,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사이에 항상 불평등과 격차가 존재한다. 인간사회에는 사람들의 권리행사와 기회활용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 언제나 불평등이 존재한다. 인간사회에서는 특권적 존재를 인정하는 차별적 대우가 주저 없이 행해진다.(4)권력과 사회적 불평등 구조인간사회에는 화폐와 부와 권력 등과 같은 경제적·물.
【인간과 정치 기말고사 대비】# 1999년 6월 17일경제학과 4학년 김 태 진1. 권력의『미란다』와『크레덴다』①「미란다」와「크레덴다」의 의미메리암(C. E. Merriam) 교수는 권력을 신성화·미화시켜야 한다고 보고, 권력을 신비롭고 성스럽고 웅대하고 감탄할 만한 것으로 미화시키는 측면을 권력의「미란다」(miranda)라고 불렀다.「미란다」라는 말은 본래 '감탄할 만한'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또한 권력을 정당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그 존속에 동의케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권력을 정당화·합리화시키는 측면을 권력의「크레덴다」(credenda)라고 불렀다.「크레덴다」라는 말은 본래 신학용어로서 신조라든가 신앙개조(信仰箇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치 종교에 있어서 종교적 신앙의 기본적인 본질적 요소의 표명인 것처럼, 권력의「크레덴다」도 권력에 대한 일종의 호교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본원리의 표명으로, 이론이나 신조체계 등의 지적·합리적인 요소에 의해서 권위를 획득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권력의「미란다」가 정서적·비합리적 측면에 호소하는 데 대하여 권력의「크레덴다」는 인간의 이성적·합리적 측면에 호소한다. 권력은 이러한「미란다」와「크레덴다」를 통해서 사람들을 내면으로부터 복종시킨다. 이것에 반하여 물리적 강제는 오직 사람들을 외면으로 통제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의「미란다」와「크레덴다」는 권력상황의 초석이다.② 권력의「미란다」와 정치적 상징조작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원래 고독에 대한 공포를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격리불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일반적으로 ⅰ)어떤 정서적인 공감의 유대를 희구하며, ⅱ)또한 어떤 질서에 귀속되기를 바라게 된다. 전자의 심리에 호소하는 상징을 '동일시의 상징'이라 하며, 후자의 심리에 호소하는 상징을 '합리화의 상징'이라고 한다. '동일시의 상징'이란 그것을 바라볼 때 또는 그 노래를 같이 부를 때 모두가 동일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일체감을 자아내게 하는 것과 같은 상징이다.건립ⅲ) 특정 음악의 장려와 금지 ⅳ) 여러 가지 예술적인 의장(意匠)의 제작ⅴ) 일화(逸話)와 역사의 미화(美化) ⅵ) 집단적 의식의 장엄한 거행 ⅶ) 대중적 시위이와 같이 권력의「미란다」는 '인적 상징'과 '물적 상징'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권력은 그 자체의「미란다」를 카리스마적인 위대한 인물로써 상징하려고 한다. 국가권력의 위대성은 그와 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위대성에서 대표됨으로써 그의 위대성은 국가권력에다 신비와 영광의 빛을 비춰주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숭배는 곧 국가권력 그 자체에 대한 찬미와 숭배에로 전화되기 마련이다. 권력의「미란다」는 이와 같은 '인적 상징'뿐만 아니라 '물적 상징'에 의해서도 표현되어 그 인적·물적상징을 자유자재로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을 자기의 지도에 따르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③ 권력의「크레덴다」와 정치권력의 정통성(정당성)권력의「크레덴다」는 권력을 사람들에게 합리적으로 납득시켜 그 존속에 동의케 하려는 권력의 합리화·정당화의 측면을 나타낸다. 정치권력은 그 자체의 유지수단으로서 그 정치권력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크레덴다」인데, 그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것에 의존한다고 메리엄 교수는 말하고 있다. ⅰ) 정부에 대한 존경 ⅱ) 복종 ⅲ) 희생 ⅳ) 합법성의 독점정치권력의 정통성과 막스 베버의 세 가지 지배유형을 살펴보자.ⅰ) 전통적 지배 : 옛날부터 통용되어 노는 전통의 신성성에 대한 신념과, 그 전통에 의해서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스스로의 신분의 정통성에 대한 신념에 기인되는 지배이다.ⅱ) 합법적 지배 : 법규화된 질서의 합법성과 또한 그것으로써 지배권 행사의 권리를 부여 받은 자의 규칙에 적합한 지배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승인되는 지배형식이다.ⅲ) 카리스마적 지배 : 어떤 특정한 인격자의 신성성·영웅적 권력·이상적 모범성 및 그에 의해서 계시 또는 창조된 질서의 신성성 등에 대한 열렬한 신뢰에 기대 정치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길은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이념에 깊이 뿌리를 박게 하고, 그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초조건인 기본적 인권을 보장케 하는 것과 더불어 그 정치권력을 피치자의 자율적인 규제력으로 하는 데 있는 것이다.2. 리더쉽의 유형① 전통적(신분적) 리더쉽정치를 군주, 귀족, 명망가 등과 같은 특권적 신분의 '고귀한 의무'로 간주하던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타입의 리더쉽이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지도자는 그 능력이라든가 민중의 지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신분에 의해서 그 지위에 올라 관습과 전통적 형식에 의거하여 지배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사회에서 보여지는 리더쉽은 신분적 리더쉽이라고 할 수 있다.② 대표적 리더쉽근대와 현대의 안정된 정치사회에서 성립되는 전형적 타입의 리더쉽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정치는 그 구성원의 일반대중의 동의와 지배에 기인되어 행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제도의 원리로서 성립되게 되었으며, 동시에 일반대중은 주권의식을 가지고 그들의 이익의 충족을 정치에다 구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 사회에서 수행되어야 할 과제는 그러한 이익을 중심으로 하여 특정화되었으며, 지도자는 일반대중의 이익의 대표자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즉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신분적 리더는 물러가게 되고 이제는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부동적 리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이와 같은 리더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의 확대는 신분적 리더로부터 부동적 리더에로의 전화가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표적 리더쉽은 지도자가 집권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해와 요구 및 기타의 가치를 표현하고 대표하는 경우의 리더쉽이다.③ 투기적(선동적) 리더쉽이런 형의 리더쉽은 경제적 불황이나 패전 등의 혼란기에 일반대중의 심각한 욕구불만을 투기적으로 충족시키려는 의도하에 등장하는 것이다. 일반대중의 이익이 대표적 리더쉽을 통해서 충족되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심한 욕구불만의 분위기가 그 사회의 밑바닥을 흐르게 된다. 이익의 획득이나 생계의 유지가 곤란하게 되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창조적 리더쉽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상황에 더하여 또한 종래의 가치체계나 생활양식에 대신하는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며, 체제의 변혁이라는 과제가 제시되는 것이다. 일반대중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사회에 있어서 생활의 회복을 단념하고 지도자가 표방하는 목표에 전적으로 기대를 걸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것이 창조적 리더쉽이다.① 민주적 리더쉽 : 지도자는 피지도자 속에서 선출되며, 공개적으로 행동하며, 비판을 받으며, 책임을 지며, 끊임없이 경질유동된다. 민주주의하의 지도자는 외적 권력이라든가 초월적 권위와 같은 권위성 위에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지도자와의 윤리적인 인격교감관계를 그 지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민주적 리더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적합한 창조적인 플랜을 작성하여 이것을 능히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짐과 더불어 그 과정에 있어서 언제나 일반대중과 교류하며 비판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분야에서 리더라 할지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추종자가 되며, 어떤 분야에서의 추종자가 다른 분야에서는 리더가 되는 모양으로, 리더의 만능화·고정화는 원칙적으로 부정된다. 민주적 지도자는 언제나 제도의 대표로서 머무르고 있으며, 독재자처럼 제도에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일은 없다.② 전체주의적 리더쉽 : 이것은 파시즘의 경우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파시즘의 리더는 오직 '긴장의 확대재생산'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유지해 갈 수 있는 일원적 사회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지배자는 피지배자와는 종류가 다른 특권적 존재로 생각되어지며, 책임을 지지 않고 비판을 초월하며, 비밀적으로 행동하며, 그 지위를 고정화시킨다.③ 권위주의적 리더쉽 : 권위주의 정치체제란 단일한 권력보유자가 일반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적 조직이다. 또한 어떤 정치학자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전제주의적 정치체제와 구별짓는 데나우어 등은 현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위대한 정치적 리더였다고 간주된다. 그들은 지도자의 기능인 정확한 입법부나 사법부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리더쉽을 보였다. 또한 행정부의 수상으로서 정보의 수집이나 처리에서 뛰어나고 있었으므로 이른바 행정권의 우위나 관료제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계된 리더쉽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지도자의 인격이나 행동양식의 매력이 다소간 상징화의 경향을 갖는 데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현대의 리더쉽이라는 것은 다분히 조작된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는 면을 보인다. 위대한 리더쉽으로 불리우는 것도 일면으로는 연출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현대의 대중사회에서는 더욱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②「서브 리더」의 문제오늘날과 같은 거대집단에 있어서는 지도자와 그것에 추종하는 일반민중과의 사이에서 매개체기능을 수행하는「서브 리더」(하부지도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지도자와 추종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지도자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침투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지도자의 의향을 알기 쉽게 일반민중에게 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민중의 의견이나 요망사항을 지도자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서브 리더」의 존재가 필요하게 된다. 톱 리더로부터 제시되는 제정책이나, 지령은 서브 리더에 의해서 일반민중에게 전해짐으로써 일반민중의 광범한 지지획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거대집단에 있어서의 리더쉽은 이와 같은 서브 리더의 매개를 통해서 비로소 유효한 기능을 수행하에 되는 것이다.3. 사회적 인간의 유형과 정치의식① 전근대적 전통사회의 인간형과 정치의식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이전의 이른바 전통적 사회의 인간유형을 일반적으로「전통지향형」으로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전통사회란 주로 농업과 목축업, 어업 등과 같은 원시생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단순재생산사회이며, 높은 출생률과 사망률이 상쇄되면서, 인구증가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정체적 사회이다. 이와 같은 전통사회에서 형성된 전통지향형 인간의 성.
Ⅰ.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과 정치1. 현대사회의 정치화와 인간생활(1) 인간과 정치* 버트랜드 럿셀 卿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래 무엇이든 상대하여 투쟁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한 투쟁에서 어떤 사람은 승리하고 어떤 사람은 패하게 된다.…인간들이 행하는 투쟁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1 인간과 자연과의 투쟁 : 自然惡과 싸워 이겨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평안한 삶을 누리며, 이를 위해 위대한 무기가 되는 것이 과학과 기술과 기계의 힘.2 인간과 인간과의 투쟁 :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 가 사이의 싸움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인간은 자유로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3 인간의 그 자신과의 투쟁 : 괴테(Goethe) -사람의 마음 속에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충 동, 즉 현세에 집착하여 육체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과 속세를 벗어나서 숭고한 정신 세계에로 오르려는 충동이 공존-*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은 정치와 전쟁에 의해서 발생된다. 정치현상은 인간생활 자체의 특 성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 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하거나 또는 부적당한 성질의 대규모적 인 것과 公共的 意義를 갖는 것이 적지 않은데,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어떤 정책 을 수립하여 이것을 집행하는 것이 -사회적인 제가치를 둘러싼 의견의 차이를 조정하여 이것을 정책으로서 결정하고, 이것에 기인하여 사회나 집단을 통합하는 것이 그 사회에 서의 정치이다. 통합이라는 것은 사회나 집단에 있어서의 대립이나 투쟁을 해소시킴으로 써 질서와 안정을 만들어 내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정치라는 것은「질서의 조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복잡성에서 유래되는 인간과 인간과의 대립·경합·투 쟁을 적절하게 해결하여 사회의 통합을 이룸으로써 통일적인 질서를 형성·유지해 가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근원적으로는 인간성 자체 속에 정치 발생의 기반이 있다.* 인간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회 있는 곳에 분쟁의 발생은 좀처럼 피할 수 없 기 때문이며, 정치란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사회적 분쟁을 처리하여 사회를 통합·유지해 가기 위한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이다.(2) 현대는「정치화의 시대」이다.* 현대는 정치의 시대 또는 정치화의 시대 라고 불리운다. 인간생활의 일체가 정치와 깊이 결부되어짐으로써, 인간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곧 정치의 선악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또는 크게 좌우되게 되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현대 인간생활의 속임없는 모습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정치과정의 넓이와 깊이의 증대, 즉 정치화의 진행으로 말미암아 인 간은 누구나 정치로부터 오는 세찬 압력을 좀처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의심할 바 없 이 우리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정치는 우리들의 현존재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원 래 국가라든가 권력이라는 것이 를 그 기본적 속성으로 하는 이 상, 인간이 정치에 구속당하는「정치에의 피구속성」이라는 사태는 적어도 인간생활에 있 어서는 어느 시대에서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2. 현대사회의 특질(1) 기술의 시대ⅰ) 기술의 경이적 발달☞ 현대는「기술의 시대」또는「기계의 시대」로, 현대사회는「고도기술사회」또는「고도산 업사회」로 각각 불리워진다. 인간은 생물의 에너지 대신에 기계의 에너지를 사용, 대체 하게 됨으로써 제1차 산업혁명을 특정지으며, 인간의 사고조차도 기계의 사고에 의해 서 대체되는 것을 제2차 산업혁명으로 특정짓는다.ⅱ) 기술시대의 지도원리☞ 프롬(Eric Fromm)의 두가지 원리1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만일 기술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설령 그것에 어떠한 부작용 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땅히 만들어져야 한다는 원리.2최대의 효율과 생산의 원리 즉, 무슨 일에서든지 능률과 생산을 올리면 좋다는 원리.ⅲ) 기술시대의 문제점☞ 1기술의 시대에 사는 인간은 잘못하면 기계의 부분품으로 化해 버리기 쉬운 존재이다.2현대의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사회의 조직화와 관료제화를 더욱 촉진시킴으로써 근대 에 이르러 개인과 조직 사이에 세워졌던 이념상의 관계 즉, 사회 내지 조직에 대한 개인의 우위의 원리에 입각한 관계를 사실상 역전시켰다.3현대의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각종 전문가의 우위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전문가들에 의 해서 관리되는 조직의 사회, 이른바「관리사회」로 化하게 하고 있다.4수단의 절대시와 능률을 중요시하며 찬양하는 태도는 기술지상주의를 낳게 할 것이다.5오토메이션의 현상으로 수많은 기술적 실업자를 초래하고, 인위적인 환경(기술적 환경) 속에서 생활하게 되며 기계적 집합체, 즉 인위적 조직체가 증가하게 된다.6분업=전문화의 고도화와 여가 시간의 증가로 인한 부작용 : 기술적 허무주의7정치와 국제관계에 영향 : 기술적 우월성을 갖는 국가의 강대한 권력8공업화와 도시화의 현저한 진전ⅳ) 기술의 인간화☞ 기술은 실제로 인간에게 한없이 많은 혜택을 가져다 주지만, 기술은 그 사용 여하에 따 라 선을 가져다 줄 수도, 악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술시대의 인간은 스스로 기술의 법칙과 기계의 윤리에 따라서 생활해 가려고 한다. 인간과 기술과의 관계에서 어 디까지나 인간이 주인공이다. 따라서 기계와 기술의 선악은 사용하는 인간의 병리현상 (病理現象)이라 할 것이다. 기술시대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기술의 자율적인 주체자가 아 니라, 도리어 기술의 객체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되어 버린다면 그 때에는 가공할 만한 기술의 비인간화현상이 보여질 것이다.(2) 대중(大衆)의 시대ⅰ) 대중의 출현☞ 많은 수의 大衆은 역사 속에서 무력한 피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써 역 사를 형성해 가는 주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보통·평등참정권제의 확립은「1인1표」 (one man one vote)씩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케 함으로써 대중의 정치적 지위를 높여주 게 하였다. 그래서 현대를 대중의 시대(the epoch of the masses)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ⅱ) 대중의 특질☞ 근대국가의 초기에 있어서는「민족」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정치의식과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민주주의사상이 널리 전파되어감에 따라서 마침내「시민」으로서의 자 각이 높아가고, 자기 자신을「공중(公衆)」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중의 존재나 관념이 시대의 진전과 더불어 희박해지자 그것 대신에「대중」이라는 것이 등장 하게 되었다.☞ 대중(mass)과 공중(public)과의 차이점1공중은 정신적 공통성과 문화가치에 대한 관심으로써 결합되는 데 대하여, 대중은 오 히려 본능적인 욕구와 외적인 압력에 의해서 결합되고 있다.2공중에게는 자유로운 상호간의 토의와 의견의 교환이 있지만, 대중에게는 일방적인 이 야기의 전달과 무비판적인 동조가 보여지기 쉽다.3공중은 자아에 대한 자각을 갖지만, 대중은 자아에 대한 각성이 희박하여 자기소외에 고민한다.
Ⅰ.序論오늘날 현대사회는 산업화·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매우 복잡하고 동태적이며 급격한 사회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다양한 사회계급의 여러 요인들을 종합·조정하면서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이룩하고 아울러 민주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주구해 나가야 하는 한국에 있어서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이에 현재했던 한국정치지도자의 리더십유형을 분석·고찰하고 아울러 한국의 행정문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리더십유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제시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역사적으로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국가발전과 위기상황의 극복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다.일반적으로 리더십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며 이러한 제유형에 관하여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이론들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리더십의 어는 특정유형이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나 가장 적절한 유형으로 통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一例로서 국민들의 의식이 고도로 민주화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복지수준이 높아서 사회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자유방임적인 리더십의 유형이 적절할 듯도 하다. 그러나 국가사회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저절로 나갈 수는 없는 것이며 항상 다른 나라와의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여야 하고 때로는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돌발적인 사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자유방임인 리더십 유형은 많은 문제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느 국가나 집단을 막론하고 급변하는 상황과 역동적인 변화에 대응하고 도전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부단히 발전해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특히 후진국,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국민의 정치참여가 효과적으로 조직화되고 정치과정이 바람직하게 제도화되어범에게 있어 어머니는 애국투쟁의 신념의 화신이었고 항상 가장 힘있는 정신적 후원자였다. 또한 후일에 백범이 구국교육 활동을 전개하여 나가게 되는 잠재적 사상의 토대 속에는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백범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열의가 묻혀있다고 할 수 있다.백범은 젊은 시절 역경 속에서 생을 방황하였다. 백범은 빈곤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17세에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방향을 돌려 관상공부를 하다가 자신의 관상에 낙심하고 19세에는 동학혁명운동에 참여하고, 20세에는 의병단에 가담하였으며, 21세에 왜놈 장교를 살해하여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사형을 모면하고 이듬해 탈옥한 후에는 전국 각처를 여행을 하던 중 중이 되기도 하였다. 백범은 결혼도 순조롭지 못하여 여러 가지 난항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 백범은 가정을 가진 후에도 신민회에 가담하고 2차, 3차투옥을 겪으면서도 국난회복을 위한 투지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여 나가는 백범의 투지는 백범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분출력 과 결합되어 백범 특유의 행동주의를 형성하여 나갔다고 볼 수 있다.백범은 이러한 끈기 있는 투쟁을 계속하는 가운데서도 인간애의 정신을 잃지 아니하였다. 백범은 효를 유교사상 가장 기본적인 실천도덕으로 받아들여 이것을 실천하기에 온 정성을 다하였다. 백범은 1차 투옥시 효자 李昌海之墓 앞에서 허둥지둥 넋을 잃으시고 따라오시는 어머니를 보고 순검들과 어머니가 알세라 하고 피섞인 눈물을 흘렸었다.백범은 아버지가 병환중일 때 斷指 대신 넓적다리 살을 한 점 베어 피를 받아 아버지 입에 흘려 넣고, 살은 구어 약이라 하여 아버지가 잡수게 하였다. 백범은 감옥 생활중에 면회실에서 사식을 먹으면서 같은 감방에 동료에게 먹이기 위하여 밥과 반찬을 한입 잔뜩 물고 감방에 돌아와 제비가 새끼를 먹이듯이 먹여주었다. 이처럼 백범은 자신의 고난과 역경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면 갈수록 그곳에 남아 있는 모습은 오직 인간 만이 남아 있게 됨을 느끼는 속에들이 덕천막부 말기에 개국정책을 초기에 반대하였다가 후에 개명하여 부국강병으로 패권을 다투자는 大攘夷로 전환한 과정과 흡사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리하여 행동주의적인 백범은 벌써 감옥에서 죄인들에게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대해 당시 황성신문은 감옥이 학교가 되었다 고 보도하기까지 하였다.백범이 탈옥한 후 중이 되어 방랑하는 동안 서울에서는 민권운동의 표상인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으며, 전차와 경인철도가 개통되고 방곡령이 전국에 확산되는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1905년 소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서울 상동교회의 사람들과 함께 백범은 대한문 앞에서 조약의 철회를 상소하며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은 이듬해 이등박문을 초대 총감으로 취임시켰으며, 이 때 백범은 학교설립 추진과 함께 구국운동강연을 전개해 나갔다. 한번은 송화군에서 군수를 위시하여 각 관청의 관리와 왜의 장교들도 많이 출석한 자리에서 황제폐하의 인진경을 모셔 오라 하여 강단 정면에 봉안하고 일동기립 국긍을 명하고 왜의 장교들까지 모두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 백범은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나는 한인이 排日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는 연제로 일장의 연설을 하였다. 과거 日·淸, 일·아 두 전쟁 때에는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신뢰하는 감정이 극히 두터웠다. 그후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 주권을 상하는 조약을 맺음으로 우리의 惡感이 격발되었다. 또 왜병이 촌락으로 횡행하며 남의 집에 막 들어가고 닭이나 달걀을 막 빼앗아서 약탈의 행동을 함으로 우리는 배일을 하게 된 것이니 이것은 일본의 잘못이요 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탁을 두드리며 외쳤다. 자리를 돌아보니 성낙영, 구자록은 낯빛이 흙빛이요 일반 청중의 얼굴에는 격앙의 빛이 완연하고 왜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였다.공교롭게도 이튿날 이등박문이 안중근에게 射殺되었다는 신문보도가 났으며, 백범은 이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불기소로 사면되었다.백범은 보강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10년 백범은 서울적되어 온 인간불평등의 문제를 해결시켜 준 것이다. 한편, 백범이 줄기차게 추수하여 왔던 좋은 마음 은 동학의 하늘도 와 융합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게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동학의 새나라 건설 에 대한 이상은 백범의 내면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양의 의지들을 포용하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백범은 23살에 불도에 입도하여 중이 되었다. 치하포 사건으로 복역중에 탈옥하여 전국을 방황하던 중 공주 麻 寺 주지의 상좌가 되기로 작정하고 머리를 깎았다. 법명을 단종이라 명하고 날마다 절하는 공부를 하면서 진언집을 외우고 초발심구문을 일고 중의 여러 가지 예법과 규율을 배웠던 것이다. 백범은 승행에는 하심이 제일이라 하여 교만한 마음을 떼는 수양을 쌓았다. 또한 칼날 같은 마음을 품어 성나는 마음을 끊으라 하여 인 자의 이치를 배우기도 하였다.그러나 백범은 청도숙멸의 불법에 일생을 바칠 생각이 생기지 아니했다 이 때의 불교는 가장 타락되어 있을 때인데다가 환경이 나쁜데 걸려 백범 자신도 이때를 일생일대의 치욕으로 생각했었다. 후일에 백범은 평양 근처의 운천봉의 주지가 되었으나 결국에는 매일 고기를 한 짐씩 져다가 끓이고 굽고 하여 중의 옷을 입은 채로 터놓고 먹었으며 손에 돼지 대가리를 들고 입으로 경을 읽는 중이 되었다가 그 해 가을 다리를 들여서 상투를 짜고 선비의 의관을 하고 본부로 돌아왔다. 백범은 불도의 입도하게 된 동기가 그러하듯이 불도 자체에는 뜻이 없었으나 불도의 수양생활을 경험하였으며 불도의 기본교리를 전수하였던 것이라고 본다.그러나 백범은 종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처음에 기독교를 서양 오랑캐의 천주학 이라고 이단시 하였던 백범이 기독교 신자가 되게 되는 계기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 당시에 철저한 유교적 교양이 있는 개화파 인사들이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고, 특히 개신교의 영향아래 관서지방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활기를 띠었는데 백범은 이러한 전세적인 추세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키면서 일제의 밀정을 잡는 데 많은 업적을 세웠다. 가장 천한 자리 를 희망해 경무국장이 되었으나 사실은 이 자리가 임정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 을 하였다. 김구는 이동녕 의정원 의장이 찾아와 국무령이 되어달라고 했을 때 나 같은 미천한 사람 이 어떻게 국가 원수가 될 수 있겠느냐고 국가와 국민의 위신에 큰 관계가 있다 하여 한사코 사양한 일이 있다. 김구는 자기가 상민 출신이라 하여 높은 벼슬 을 고사한 것인데 이것은 그가 겸손한 때문이요, 또 자기 분수에 넘는 자리에 앉아서는 안된다는, 보기에 따라서는 출세욕이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대통령 아니면 절대 수락할 수 없다고 왕자연한 이승만하고는 본질적으로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김구는 자기 호를 백범이라 이름지었는데 이것은 백정이나 범인과 같은 미천한 사람들과 자기를 관련시켜 생각한 때문이다. 김구는 상해에서의 생활이나 윤봉길 의사의 거사 후 피신생활을 할 때나 언제나 초라한 옷에 가난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 자신 가난한 서민의 한 사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김구의 민족사상이 친미사대적인 이승만의 것과는 달리 강한 자주성을 보이고 있는 이유가 이런 점에 있었는지도 모른다.제2절 민족에 대한 신념김구는 한번 품은 사상에는 일편단심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그의 민족사상·운동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민족을 위해 조국을 떠나 중국으로 망명할 정도라면 보통 신념과 의지로는 불가능했으며 상해에 모여든 사람들은 거의 이러한 인사들뿐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사람이었고, 이같이 강한 그의 신념은 상해 임정의 간판을 끝까지 고수하여 8·15후 귀국할 때 임정 주석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집념이 없이는 일제하에 항일독립운동이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김구는 그의 자서전『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는 애당초 임시정부의 문파수를 지원하였던 것이 경무국장으로, 노동국총판으로, 내무총장으로, 국무령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