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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근현대사의 이해 report
    유럽은 세계의 식민지화로 인하여 부의 팽창과 눈부신 경제적인 성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유럽이 내제적인 요인을 경제발전과 근대화로의 이행과정의 중요 과정이라고 여기고 외재적인 요인인 식민지화를 가능한 일축하여 설명하고 축소해석한다고 하는 설들이 있다.식민지가 어느 정도 제국주의 종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는지,식민지가 없었다면 서유럽의 산업화가 불가능했는지, 혹은 지연되었는지의 문제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월러스틴류의 세계체제론이나 저발전론을 주장하는 제3세계 학자들은 원료의 공급지 및 제품의 시장으로서 식민지가 매우 중요했고, 식민지에서 창출된 이윤이 산업혁명의 처음 단계의 자본을 제공하는데 결정적이었으며, 이 관계는 산업화 이전에 이미 성립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최신 연구들은 그러한 주장이 단지 신화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대양을 연결하는 망은 16세기에만들어졌지만 중상주의 시대의 국제적 상업을 진정한 의미의 세계경제로 구체화하는 것은 현재적 개념을 역사에 잘못 적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인 것이다. 교통, 통신상의 제한 때문에 유럽의 전통사회와 식민지의 경제관계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오히려 산업화로 인한 기술혁신이 있은 후에야 서유럽은 세계 여러 영역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유럽의 전통사회는 생활수준과 소비 정도에서 식민지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산업혁명이 그것을 훨씬 더 확대시켰다. 영국의 일인당 차 소비는 1700년의 10g에서 1790년에는 520g, 1910년에는 2350g으로,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에서의 설탕소비는 1700년의 0.5kg에서 1910년에는 17kg이 되었다. 이것은 산업화의 결과 생활수준이 향상하여 소비가 늘 때가 되어서야 거대한 식민제국이 이익이 되었으며,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제적 차이는 산업혁명에의한 근본적 변화가 있은 후에야 부각되기 시작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식민주의가 산업혁명을 촉진하는데 얼마나 중요했는가의 문제는 특히 최초로 산업혁명을 수행하고 가장 방대한 식민제국을 대부분이 17 50년 이후에 광범위해졌다고는 해도 그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였다. 몇가지 예를 들면 석탄을 사용한 선철 생산과정이 이미 1709년에 개발되었고, 루이스 폴의 방적기도 1737년에 특허를 받았으며, 토마스 뉴코먼의 증기기관은 1712년에 발명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런 기술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던 18세기 전반기에 영국의 식민제국은 매우 빈약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 북아메리카 식민지였는데 1720년경 이 지역의 인구는 50만에 불과하였고, 봄베이, 마드라스등 전세계에 퍼져 있는 나머지 식민지들의 총인구도 30만을 넘지 않았다. 이 때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의 인구는 합해서 1천만이 넘었다. 1780년대 이후에야 식민지 인구가 영국 본국의 인구를 능가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1780년 인도에서의 확장 때문이었다. 게다가 1780년대 초까지 영국 식민지들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훨신 덜 '무역 지향적'이었다. 18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와의 교역은 영국이 자국 식민지와 행한 교역량의 5배 내지 7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은 1913년이 되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 해 영국과 식민지들 사이의무역량은 나머지 식민제국들의 총무역량의 72%에 육박하였는데 반해 이때 스페인, 포르투갈 제국의 무역량은 합해서 1%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확실히 식민제국의 경제적 유대의 확대가 산업 발달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월러스틴파의 주장과는 달리 산업화 이전에 해외무역은 유럽의 경제활동에서 단지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인 1780-1790년 유럽 총생산의 4% 정도만이 국경선을 넘었고, 1% 미만만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로 팔려 나갔다. 이들 지역으로의 수입도 수출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같은 해운국들의 경우에는 무역의 비중이 다소 높아 수출은 18세기 후반기에 국민총생산의 약 10% 정도에 육박했지만 그 중 반 이하만이 주 변부로 향했으며 주변부로부터의 수수 있다는 것이다.보다 구체적으로 유럽이 산업화에 필요한 원료를 식민지로부터 구입했는지를 확인해 봄으로써 식민지가 유럽의 산업화에 결정적 요소였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서양이 제3세계로부터 동력의 상당부분을 구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973년 현재 서유럽은 동력자원의 61%를 제3세계로부터 구입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의 현상이고 1920년대까지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소비한 것보다 더 많은 동력자원을 생산하였다고 경제사가 베이로크는 밝힌다. 석탄과 석유 모두에서 선진국들은 수출국들이었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20세기 전반기까지 경제적으로 발달한 나라인 영국이 동력자원의 최대 수출국 가운데 하나였 다. 영국은 후에 '제3세계'라고 불리게 되는 지역에까지 석탄을 수출했는데, 수출량은 1837년에 100만 톤, 1882년에는 2000만 톤, 그리고1913년에는 7800만 톤에 이르렀다. 독일도 석탄 수출국이었다. 한마디로 서유럽에는 석탄이 남아돌았다는 것이다.한편 상업적 석유의 생산은 1860년대에 시작되었다. 미국은 당시 최대 산유국으로 1870년대부터 수출을 시작하였다. 1913년 현재 선진국들은 석유의 9%의 부족을 보이는데 주로 유럽에서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 석유는 유럽이 소비하는 전체 산업에너지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동력자원이었다.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마도 전체 에너지 소비의 0.5% 미만이었을것으로 추정된다. 선진국들의 에너지 자급자족은 1939년까지 계속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석유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의존도는 들쭉날쭉하였다. 다음으로 금속자원을 살펴보면 1973년 현재 서유럽이 사용하는 금속의50%가 제3세계로부터 구입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 금속자원의무역은 유럽 내에서 이루어졌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선진국들이 사용한 금속자원의 90%가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수입되었는데, 선진국들은 철, 구리, 납, 보크사이다는 말을 뒷받침해 준다는 것이다. 동력과 금속자원의 90% 이상이 선진국끼리의 무역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제3세계에 대한 의존은 1950년대에이르러서야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1955년 이전에 유럽이 산업의 원료를 제3세계에 의존했다는 주장은 신화이며 선진국들은 그 지역에서 생산된 원료와 그 지역의 노동력을 가지고 산업화의 높은 수준에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상 원료에 접근하는데 있어 정치적 통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있는유럽제국의 식민지보다는 남,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치령들이 유럽 산업의 가장 큰 원료 공급지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연구들은 잉여 상품의 시장으로서의 식민지의 유용성 역시 오류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시장이야말로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장이 서양의 산업화에 결정적이었는가? 여기에서도 답은 그렇지않다는 것이다. 선진국 전체를 볼 때 1800-1938년간 전체 수출의 17%만이 제3세계로 향하였고 그 중에서 단지 반 정도가 식민지로 수출되었다. 따라서 유럽 총수출의 9%만이 식민제국으로 향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기간 동안 선진국들의 총수출은 국민 총생산의 8-9%를 차지했기 때문에 제3세계의 수출은 이들 국가들의 총생산의 1.2-1.7%에 불과했으며 식민지로의 수출은 단지 0.6-0.9%에 머물렀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식민국 전체가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유럽으로만 국한시킨다면 수치는 약간 높아진다. 물론 영국의 경우는 달랐다. 영국에서는 제3세계로의 수출이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했는데, 아마도 이 사실이 신화가 생긴 원인 가운데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국민 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몫도 영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컸다. 19/20세기 전환기, 직물공업에서는 생산품의 35%가 제3세계로 수출되었는데 특히 면직물의 경우는 67%에 이르렀다. 그러나 식민지 시장의 기여는 시기적으로 근대적 상업발달이 진행된지 50-60상품수출에 있어 정치적 통제는 필수요인이 아니었다. 독일인들은 독일 식민지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을 인도에서 팔았고, 프랑스는 알제리아에서보다 인도에서 더 많은 판매량을 보였다. 유럽의 산업국, 제국들은 주로 서로 간의 무역에 초점을 두었다. 독일 제품의 가장 큰 해외 구매자는 영국이었고 영국에서도 독일은 가장 큰 시장의 하나였으며, 프랑스도 영국과 독일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던 것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시작에 있어서 식민지 시장의 불가결한 역할이라는가설은 영국에만 적용되는 가설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여기서도산업화는 식민지보다 앞섰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00-1750년에영국 경제가 상당히 발달했을 때 영국 식민지는 총인구 100만 명 정도로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초기에 견인차 역할을 한 면직물 제품생산의 성장률과 수출의 신장률은 1750-1829년 간에는 그 상관관계가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수출이 영국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01년에 18%였지만, 1841년에는 11%로 떨어졌고, 1851년에 다시 14%로 증가하였다. 한편 수출이 공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01년에는 76%로 매우 높은 비중을 보였지만 1841년에는 32%로 떨어졌다. 수출이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가정이성립되려면 산업화가 가장 진척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1815)시기에 수출의 비중도 가장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수출과 산업화의 상관관계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1700년에 식민지는 영국 공산품 수출의 24% 정도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1760년에는 35%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1815년 이후에는 30% 미만으로 오히려 그 비중이 감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산업부문에서는 제3세계의 중요성이 증가하였다. 1820-1830년을 기점으로 식민지 시장은 영국 제조업에 매우 중요해졌고 그 중요성은 수십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18세기를 통해 식민.
    인문/어학| 2001.10.18| 7페이지| 1,000원| 조회(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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