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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 북위의 멸망
    11.귀족제 국가에서 부병제 국가로...-6세기의 화북-1)북위 제국의 해체ㄱ.낙양의 번영*불교도시 낙양 : 태무제때부터 불교가 북위 국내로 확산되었지만 태무제는 도교를 숭상하 고 불교를 탄압. 문성제에 이르러 태무제의 폐불정책을 고쳐 불교를 부흥 시킴.(원강석굴이 불교훙륭의 작품), 효문제에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낙양의 발전이 시작. 그 아들인 선무제(재위499-515)는 많은 인원을 동원 해 낙양에 대규모 수축을 행함. 약 11만에 달하는 민가 외에 수많은 불교 사원까지 수용하는 대도시를 탄생시킴.이 시기 불교는 황제,귀족의 신봉 과 보호를 받으며 성황.(양현지의 낙양가람기,용문석굴)*국제도시 낙양 : 불교의 중심지 일뿐만 아니라 각국의 망명자, 귀화자를 받아들이는 시설 과 거주구역이 설정되어 있었음. 동서의 시장에서는 대량의 물자가 거래 되고 서역으로부터 불승과 상인이 왕래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소비도시.ㄴ.귀족제 국가의 이완 : 화려한 번영의 그 이면에서는 귀족과 평민간의 계층차, 중앙 과 지방, 도시와 변경사이의 격차가 아주 벌어지게 됨.ㄷ.우림의 변(중앙군인의 불만 폭발)*원인: 북족출신의 군인들은 화북통일의 대사업을 완수한 공신의 자손이라고 자부. 그러나 낙양 천도후 그들은 우림.호분의 근위 군단에 편입된 채 거의 특권다운 특권은 부여받지 못한 상태로 방치. 그리고 관리 선발시 가문의 고하와 함께 '현명한지 어리석은지'를 문제 삼을 경우 교양이 낮은 그들은 불리. 또 중하위 관직을 차지한 한족 지식인 입장에서 자신의 세력권을 지키려고 그들의 진출을 막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519년 한인의 명문 장중우가 엘리트 코스의 관직에 무인을 등용하지 말 것을 건의.*경과: 그러자 근위 군인의 불만이 폭발하여 우림. 호분의 병사 약 1천명이 모여 상서성에 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장중우의 저택을 불태움. 장중우 아버지는 화상을 입고 사망, 장중우는 도망.*결과: 우림,호분의 군인 가운데 가장 흉포한 8명 사형. 사건을 불문에 붙이고 무관의 지 위에 따라 문관의로의 평행이동을 승인. 그러나 관직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자격 자는 급증해서 관직임용을 전직을 그만둔 기간만을 기준으로 하여 오래 된 사람부터 차례대로 선발하는 정년격을 시행.ㄹ. 심화되는 지방군인의 불만 : 정년격으로 우림,호분군사의 불만은 일단해소. 그러나 중앙의 북족군인의 불만보다 지방, 특히 변경에 배치된 군인들의 불만이 더 심각했다. 군인으로서 북위를 지탱한다는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효문제 이후 귀족제 국가로의 전환은 이들이 벼슬길로 나길길을 막아버렸고, 신분도 격하되어 진병이라는 사실과 군적에 있다는 사실이 통혼의 장애물이 됨. 그러면서 중앙에 거주하며 귀족풍 생활에 익숙해진 동족과의 사이에 격심한 차이를 낳았다.ㅁ.6진. 성민의 대란*원인: 효문제 무렵부터 한족계 군인은 군적을 면하게 되어 사대부 생활로 돌아가는 반면, 유형자가 진병으로 보내져 호족계의 명예로운 군사들도 유형자와 같은 부류로 간주되 고 천민으로 취급당하게 됨. 또 부호로 간주되어 진장에게 천민처럼 사역당하게 됨. 또 진장도 용렬한 인물이 임명되어 축재에만 관심을 가져, 진장과 진병의 관계는 수 탈과 예속의 관계로 전환.*경과: 523년 봄에 북진의 하나인 옥야진에서 파육한발릉이라는 이름의 진민이 진장을 죽이고 북위왕조를 부정하면서 일어남. 이 반란은 곧 5진으로 파급되고 동으로는 요서, 서로는 감숙에 까지 이르는 장성지대 전역으로 파급. 그 뒤 하북일원을 반란으로 몰아서 점차 남하.*결과: 화북각지에 잔존한 진 또는 진으로 전환된 곳에도 잔존해 있던 주군의 병사들이 북방 6진의 진민들과 같은 처지에 있어, 그 반란에 호응하여 성민(진성에 소속된 민으로 일반 주군의 민과 구별되어 군적에 편입)반란의 형식으로 전국적규모로 확대됨.그럼에도 낙양정부는 무력했고, 궁정 내부에서는 효명제파와 호태후파의 싸움이 계속됨.2)동서 이중정권의 출현ㄱ.북위의 멸망.계호족(흉노계) 이주영 : 산서 북방에서 부락민들의 추장으로 큰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는 데, 북위정부로서는 근위군 이외에 지방군이 동요하고 있을 때 이주영의 세력을 경계하면 서도 그에게 원조를 요청. 그는 화삭진민 고환, 후경등의 옛진민을 휘하에 넣어 신흥세력 으로 성장..528년 효명제가 호태후에의해서 독살되자, 이주영은 원유를 효장제로 옹립하고, 부패한 정계를 쇄신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낙양에 육박하여 태후 이하 종실, 백관 2천명 이상을 하음에서 학살..그러나 하음에서의 대학살로 북위황실의 원한을 사게 되어, 이주영은 결국 530년에 낙양에서 암살되고 조카인 이주조가 복수를 내세우며 낙양으로 진입해 황제를 죽이고, 다른 황족을 황제로 옹립. 이에 고건형제와 동군의 봉씨, 범양의 노씨,조군의 이씨 등 하북각지의 명족은 향리에 병력을 결집해 서로 연계하면서 이주씨에 대한 반항운동을 일으킴..다른한편, 이주조의 부장으로서 북진의 반란군 20만 남짓을 통솔하던 고환은 고건과 연계하여 북위 황실의 한사람인 원랑을 추대하여 연합정권을 수립. 그 뒤 연합군은 한릉산에서 이주씨와 싸움을 해서 이주씨를 섬멸. 낙양에 입성환 고환은 새로이 원수를 황제로 옹립(효무제)하고 진양에 막부를 열어 낙양의 북위 조정을 조정.-이미 북위 제국은 이주영이 실권을 장악했을 때 이미 사실상 소멸 되었음..또, 독자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6진의 하나인 무천진에서 남하한 우문태(선비계)등은 534년 낙양에서 탈출해온 효무제를 장안으로 맞아들이고, 이에 고환은 다른 황족인 원선견(효정제)을 황제로 옹립하고 동쪽의 업으로 효정제를 옮기고 이곳을 수도로 정함.
    사회과학| 2001.11.13| 3페이지| 1,000원| 조회(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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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안] 수업지도안 평가B괜찮아요
    본시 (8/9차시) 수업안지도교사김중락교 생김현지소단원(4)장원제도의 붕괴(5)교황권의 쇠퇴(6)중앙 집권 국가의 출현대상2학년9반 (여42명)일시2001년 5월 30일 수요일장소2학년 9반수업목표(1)장원제도의 해체원인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2)교황권의 쇠퇴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3)장원의 해체와 교황권의 쇠퇴를 통해 중앙 집권국가가 출현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4)역사의 전환기를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기르려는 태도를 가진다.수업매체교 사학 생괘도,인터넷자료,교과서,ㅇhp탐구학습지,개별 학습지,교과서수업단계수업의흐름수업요강시간(분)수 업 활 동지도상의유 의 점도달점수업형태교 사학 생도입시작전시학습질의응답비디오질의응답설명수업준비전시학습상기학습동기유발수업목표제시32(5)인사 및 출석점검지난 시간의 진도를 확인한다.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질문한다.십자군 전쟁이 중세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을 묻는다.자치도시의 성장에 대한 것도 배웠는데 이런 자치도시 성장의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질문한다.긍정적 강화를 주고,'뱀파이어와의 인터뷰'중 흑사병부분과 관련된 부분을 보여준다.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고, 비디오에서 보여준 병이 무엇인지 묻는다.흑사병에 대해 설명하고,이것이 중세 봉건제 사회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하나의 원인임을 설명한다.수업목표 제시한후 다함께 읽게한다.인사"P147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까지" 라고 대답한다."정치적으로는 교황권위의 실추와 국왕권의 강화, 경제적으로는 도시발달, 사회적으로는 장원이 붕괴되고 시민계급이 성장했다"고 대답한다."인구와 잉여생산물의 증가, 상업발달, 길드를 조직해서"라고 대답한다.비디오를 본다.흑사병이라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다함께 읽는다.수업상태 준비확인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상기한다.흥미를 유발한다.수업준비이번시간에 배울 내용을 파악한다.문답식시청각식문답식강의식전개설명질의응답설명질의응답설명질의응답설명질의응답설명ohp 1질의응답장원붕괴 원인1514-15세기에 중세 봉건사회가 붕괴의 길을 걷게 됨을 전체적으로 설명한다.장원제도하에서 농노는 장원의 영주에게 어떤 의무가 있었는지 묻는다.긍정적 강화를 주고,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로 시장경제가 발전해서 지대의 금납화가 이루어졌음을 설명한다.농민의 경제적 지위가 어떻게 되었을지 묻는다.긍정적 강화를 주고, 그외 장원제도의 붕괴인 인구 격감에 대해 설명한다.(농노의 도망, 큰 규모의 기근, 대전쟁, 흑사병의 유행)이런 중세 사회의 상황으로 봉건제가 어떻게 되었겠냐고 묻는다.영주는 부역의 금납화와 농노해방으로 농민에게 양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을 설명한다.중세 유럽 인구감소를 가져온 질병이 무엇인지 묻는다.흑사병은 봉건사회가 붕괴의 징조를 보이게 된 14세기 중엽에 발생하여 중세 말의 사회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한다.(에이즈와 비교)흑사병의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자료를 제시한다.자료를 읽고 흑사병의 결과로 인구가 격감하자 농노의 사회적 지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설명을 듣는다.부역노동과 공납이라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지위가 향상되었다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봉건제는 위기를 맞게 된다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흑사병이라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자료를 읽는다.농노의 사회적 지위 또한 높아졌다고 대답한다.장원제도의 붕괴과정에 대해 쉽게 설명한다.당시 시대상황을 명확히 인식시킨다.쉬운 사료를 통해 그당시 불치병이었던 흑사병에 대해 설명한다.장원제도의 붕괴과정에 대해 안다.당시 상황을 쉽게 이해한다.강의식문답식강의식문답식강의식문답식강의식문답식강의식시청각식문답식(20)긍정적 강화를 준후, 일부 영주들은 농노해방을 하였지만,일부는 봉건적 반동을 주장했다고 설명한다.농민들이 어떻게 행동했겠는지 묻는다.설명을 듣는다.반항했다.또는 반란을 일으켰다고 대답한다.강의식문답식전개ohp2발표설명설명질의응답설명설명ohp3설명질의응답ohp4농민반란교황권의 쇠퇴교회개혁운동10(30)10긍정적 강화를 준후, 프랑스 쟈크리들의 난의 자료와 와트타일러의 난의 탐구 자료를 제시한다.이두난의 일어난 원인과 주장들, 결과를 질문하고 학생들이 각자 써넣어 발표하게 한다.학생을 발표시키고, 두난의 원인과결과, 의의에 대해 정리해서 설명한다,흑사병이 교황권에도 영향을 주었음을 설명하고,교회가 쇠퇴하게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다.긍정적 강화를 준후,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교황권역시 무너지게되었음을 설명한다,뒤이어 더욱더 교황권이 실추되게 되는 사건인 아비뇽 유수가 있게 된다고 설명한 뒤, 교황권과 왕권 비교 그래프를 보여주고 질문을 한다.그래프를 보며,교회의 대분열에 대해 설명하고 교황권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이에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교회개혁운동을 일으킨 존위클리프의 사료를 제시한다.자료를 본다.탐구자료를 읽고 질문에 각자 대답을 써 넣느다.발표후 설명을 듣는다.설명듣고, 십자군 전쟁의 영향이라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설명들은 후, 그래프를 보며 대답한다.더욱더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대답한다.한 학생 일어나서 읽는다농민반란에대해 보다 쉬운 자료를 제시하여 사고를통한 답을 유도한다.교황권의 쇠퇴에 영향을 준 사건을 설명한다.교황권이 더욱더 실추된 사건을 보다 쉽게 설명한다.탐구자료를 보고 쉽게 답을 써 넣을 수 있다.교황권이 실추된 과정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다.그래프 제시를 통해 좀더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탐구식발표식강의식강의식문답식강의식강의식문답식문답식전개ohp5설명설명질의응답설명질의응답질의응답설명ohp6왕권강화와 신분제의회(40)6(46)이러한 위클리프의 주장이 후스에게 계승되었다고 설명한 뒤 후스의 주장을 자료로 제시한다.이들의 주장을 간단히 설명하고,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교회의 개혁을 도모하기 위해 콘스탄츠 공의회가 소집되었음을 설명한다.그 결과로 후스가 화형되고(책의 그림),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킬려고 노력했음을 설명한다.교황권의 쇠퇴와 봉건영주가 세력이 약화 되었는데, 왕권은 어떻게 될지 묻는다.긍정적 강화를 준후, 국왕은 도시민과 협력하여 중앙 집권적 근대 국가를 형성하였다고 설명한다.관료제와 상비군에 대해 설명하고 이것으로 왕권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긍정적 강화를 준후, 왕권강화와 중앙집권국가 형성과정에서 왕과 제휴한 세력이 누구인지 묻는다.이들은 귀족 성직자와 함께 신분제 의회를 구성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동시에 견제도 했엇다고 설명한다.개별학습지를 꺼내라고 해서 정리하며 다함께 풀어 본다.설명듣고, 한 학생 일어나서 읽는다.설명듣는다.책을 보며 설명듣는다.왕권이 강화되었다고 대답한다.왕권강화의 뒷받침이 되었다고 대답한다.도시민이라고 대답한다.설명을 듣는다.개별학습지의 괄호를 채운다.적절한 사료를 제시한다.왕권강화를 통해 다음 시간에 중앙 집권 국가의 출현에 대해 배울것임을 알게한다.사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개별 학습지를 보고 수업외 시간에도 내용을 이해 할수 있다.시청각식강의식강의식문답식강의식문답식문답식강의식개별학습식정리본시수업정리본시수업정리1(47)개별지와 수업목표를 중심으로 이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의문나는 것을 질문하게 한다.수업목표를 중심으로 수업내용을 정리한다. 의문 나는 것은 바로 질문한다.핵심내용을 지적한다.이번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다.시청각강의식형성평가실시형성평가2(49)형성평가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을 지적하여 풀어보게 한다. 정답은 적절한 강화를 주고 오답의 경우 피드백을 실시한다.문제를 풀어 보고 정답여부를 확인한다. 모르는 부분은 다시 찾아 본다.문항마다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다.시청각강의식문답식문항마다 오답이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차시수업예고차시수업예고1(50)다음 시간에는 중앙집권 국가의 출현(p150-153)에 대해 공부할 것이니 책을 읽어오라고 한다.차시 수업범위와 과제를 확인한다.강의식평가기준1장원의 해체 원인과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가?2.교황권의 쇠퇴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가?3.장원제의 해체와 교황권의 쇠퇴로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중앙 집권국가가 출현하게 된 사실을 알 수 있는가?예상되는발전1.장원의 해체와 봉건사회 붕괴과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2.장원제 해체나 교황권 쇠퇴등이 중세 봉건사회를 붕괴한 중요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학| 2001.11.13| 7페이지| 1,000원| 조회(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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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애국계몽운동에 대해.. 평가A좋아요
    Ⅰ.서(序)대한제국의 주권은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위기를 맞았다. 이와 함께 근대화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줄기차게 전개되던 근대 변혁운동은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운동으로 전환되어 갔다. 이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개명 관료층, 지식인층, 자산가층 등을 중심으로 한 국권 수호 및 회복 노력이 애국계몽운동이다.이런 계몽운동의 연구에서 비판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계몽운동의 '애국성'에 관한 문제인데 이들의 행동이 오히려 일제침략을 용이하고 있고 또 민중을 배제한 지식인 중심의 운동이었다는 점등이 지적되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의병처럼 무기를 들고 일제와 싸우는 것을 무모한 짓이라 보고 먼저 지식의 보급과 산업의 개발을 통해 실력을 양성한 후 독립을 얻자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 의병운동과의 상호 관련 문제도 파악해 보아야 한다. 즉,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이 '상호보완적'이었는지 아니면 시종 상호 대립적 관계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아직 까지는 상호 대립적 관계였다는 경우가 일반적인 견해로 파악되고 있다.여기서는 먼저, 애국 계몽운동 단체의 정치, 경제, 종교등 사회전반적에서의 주요 활동을 알아보고 그들의 의의와 한계점 또 의병운동과의 상호 관련성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Ⅱ.본(本)1.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사의 조직과 활동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일제의 한국 침탈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계몽운동가들은 반일투쟁을 전개하면서도 국가체제의 근대적 개혁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들은 한국이 당면한 정치·사회적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정치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정치운동을 전개한 단체로는 1904년에 조직된 보안회(輔安會)가 있었는데, 일본이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며 영토강탈의 의도를 드러내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보 안회는 보다 더 강력한 반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출발하였다[미주 1]. 봉건적 관료층인 신기선(申箕善)·이유인(李裕寅)·송수만 등이 주축이 된 보안회는 보국·안민을 기치로 하여 일육과 식산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계몽하는 방법만으로는 진정한 독립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일제의 지배체제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무장독립투쟁론이 주장되고 있었다.대표적인 단체로 합법적인 문화운동을 표방하면서 비밀리에 반일 정치활동을 벌이던 신민회(新民會)가 있었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전덕기(全德基)·이동휘(李東輝)·이갑(李甲)·이승훈(李昇薰) 등이 중심이 되어 종교인·언론인·군인·실업인 등을 모두 망라하여 결성된 단체였다. 활동목표는 공화정체의 독립국을 건설하여 국민이 주인인 국가가 되어 자주독립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국민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신민(新民)이라 하였다. 신민회의 입헌공화제 설립구상은 이제까지의 입헌군주제 수립운동에서 한단계 발전된 것이었다. 신민회의 활동목표는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의 고취와 청소년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의 설치, 상공업체의 운영을 통한 민족자본의 형성 등이었다. 신민회는 합법적인 단체로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조직하고 비합법적인 청년단체로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조직하였다. 또한 교과서와 서적의 출판보급을 위해 서울·평양·대구에 태극서관(太極書館)과 안악(安岳)에 면학서포(勉學書 )를 설립하고,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조직하여 고전을 간행하였다. 교육은 청년학우회와 대성학교에서 이루어졌다[미주 3]. 또한 민족자본을 바탕으로 민족경제를 수립하고자 평양에 자기제조주식회사·협성동사(協成同事)·상무동사(商務同事)를 운영하고 방직공장과 연초공장, 모범농촌건설 등을 계획하였다[미주 4]. 신민회의 회원은 8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었으나 민족운동의 방향을 두고 둘로 세력이 갈라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안창호는 계몽운동이 본래 추진하고 있던 교육과 식산을 통한 실력양성론을 주장하였다. 한편 이동휘·이시영(李始榮) 등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실력양성운동을 극복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직접적인 무장독립투쟁으로 전환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만주 인격과 애국심을 구비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으로서 애국자의 조건으로 성실을 근본으로 하고 있었다[미주 6].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배워야 산다’는 기치 아래 불타오르기 시작한 사립학교의 교육열로 민족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자체적인 교과서를 편찬하는 적극성까지 띠게 되었다. 당시 교과서는 학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고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은 일절 싣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립학교에서는 그들의 취지에 맞는 교과서를 별도로 편찬하고 있었다. 교과서 편찬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인물로는 안국선(安國善)·장지연(張志淵)·신채호(申采浩)·원영의(元泳義)·안종화(安鍾和)·김우식(金宇植) 등이 있었다[미주 7].계몽운동가들은 국권회복에 전국민의 역량을 동원하기 위해서 모든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개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이 의무교육의 실시를 주장하고 보통교육을 강조한 것은 대중교육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미주 8]. 그들은 가정교육·여성교육·유아교육 등을 강조하고 교육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교육에 방해가 되는 폐습들을 타파할 것 등도 주장하였다.교육계몽운동은 기본적으로 제도권 교육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지만 교육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민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민족운동의 주축이 되었고 운동을 추진할 요원들을 양성해내고 있었다.이 시기 교육계몽운동의 특징과 그에 따른 한계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첫째로 국권회복을 달성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즉 계몽운동가들은 국가의 주권을 빼앗긴 이유가 대중의 무교육(無敎育)에 있다고 보아 교육운동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의 목표가 국권회복에 있었던 만큼 교육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두어지는 국가주의적인 교육이 중심이 되었으며 교육을 통해서 확립하고자 한 인간상도 국권주의적인 인간으로 그쳤을 뿐, 완성된 인격체를 갖춘 인간상은 아니었다. 그 당시 계몽운동가들이 정치적으로 개개인의 권리에 기초를 둔 국가가 아니라 국권이 민권보다 우선되는 국가체제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처학문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되 유교를 전적으로 배격하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일제의 보호정치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애국정신·국가정신을 진작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1904년부터 외국 통신(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계약을 맺고 외국 소식을 게재하기도 하였다.『황성신문』은 반일논설을 게재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중 1905년 을사5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5건조약체결현말」을 실어 경과를 자세히 보도하였다. 장지연도 1905년 11월 20일자 사설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실어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을사5조약을 체결한 정부대신을 매도하고 국민들에게 항일구국의식을 일깨웠다. 이로 인해 『황성신문』은 3개월간 정간당하고 일제에 의한 언론탄압이 더욱 심해졌다.『황성신문』 정간 이후 영국인 베델(E. T. Bethell)이 양기탁(梁起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였다. 처음에는 국한문혼용체로 간행되었으나 일반대중을 위해 한글판이 발간되고 외국인을 위한 영문판 The Korea Daily News 도 발간되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인 베델을 내세워 일본의 검열을 피해 일제의 침략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국민의 애국의식과 정치의식을 앙양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계몽운동가들이 폭도로 매도하였던 민중의 무장투쟁을 의병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계몽운동가들이 지니고 있던 우민관을 극복하였다[미주 10].해외에서도 국내의 언론활동에 호응하여 많은 신문이 발간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신한민보』(新韓民報)와 『한인합성신보』(韓人合成新報, 하와이)가 발간되기에 이르렀고 연해주에서는 『해조신문』(海朝新聞)이 발간되었다.이에 일제 통감부는 일진회의 『국민신보』(國民新報), 이완용계의 『대한신문』(大韓新聞)·『한성신보』(漢城新報) 등 왜색신문을 발간하여 언론에 대한 방해공작을 펴는 한편, 1907년 신문지법을 제정하여 언론에 대한 탄압을 한층 강화하였다. 끊임없이 영국에 교섭을 벌여 베델을 소환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탄압과 경영난이 겹쳐서 대부 지행합일 및 세계평화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실천성이 강한 사상이었다[미주 12].박은식 등은 대동사상을 기반으로 한 대동교(大同敎)를 창설함으로써 일제의 사주를 받는 대동학회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대동교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는 반면 대동학회는 유림계의 일진회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일반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자 일제는 당황하였다. 그들은 대동학회를 공자교(孔子敎)로 개칭하는 동시에 대동교의 회장이었던 이용직을 포섭하여 공자교 회장으로 추대함으로써 대동교의 세력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등 탄압공작에 열을 올렸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동교는 유림계의 단결을 강조하여 일제의 유림계 친일화 공작을 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었던 유림을 계몽운동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박은식 등의 대동사상은 전통적인 종교인 유교를 개혁하는 방법을 통하여 전민족의 단결과 각성을 끌어내고 나아가 민족의 정신세계를 일제의 침략에서 지켜내려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대동사상에서는 국민내부의 계급적인 이해관계 등은 무시한 채 관념적인 민족의 단결만을 강조했기 때문에 유림계의 친일화를 막는 데는 효과를 거둔 반면 전국민의 단결 에너지를 동원한다는 측면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기독교계에서도 1903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와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통해서 유교적 사고방식을 타파하고 서양의 근대문명을 보급하였다. 기독교는 민중들의 반일정신이 고양됨에 따라 큰 인기를 모았고 신도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을 표방하여 반제반일운동을 기도·설교회·부흥회 등의 내적인 영적 운동에 국한시켰기 때문에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반일투쟁을 전개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계몽운동에서는 국권의 주체를 국가로 인식하면서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특히 그들은 국민을 국권의 주인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국민들이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 즉 국어·국문·국사·국교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계몽운동가들은 ].
    사회과학| 2001.11.13| 12페이지| 무료| 조회(2,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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