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통일정책 분석Ⅰ. 연방제 통일방안의 분석--------------------------------------------------11. 1960년대 연방제 -‘과도적연방제’----------------------------------------12. 1970년대 연방제 - ‘고려연방제’-----------------------------------------23. 1980년대 연방제 - ‘고려민주연방제’-------------------------------------44. 1990년대 연방제 - ‘느슨한 연방제’--------------------------------------6Ⅱ. 낮은 연방제 통일방안의 분석---------------------------------------------81. 낮은 연방제 -------------------------------------------------------------82.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에서의 남북연합---------------------------------------91)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92)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103)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103.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점------------------------------------104. 해결해야 될 문제들------------------------------------------------------11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변천 과정-----------------------------------------12-----------------------------------------------------------------13통일교육론북한의 통일정책 분석Ⅰ. 연.① 남북한 자유총선거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평화통일의 길이라고 인정했다.② 남북연방제는 차선책으로서 과도적 대책이며, 당분간 남북 양쪽의 상이한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바탕위에 서 있다.③ 남북한 당국의 대표들로 협의조정기구인 최고민족위원회를 구성하자고 한 것은 사실상 조약체결의 언급은 없었으나 일종의 국가연합적인 성격의 남북협력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④ 최고민족위원회가 남북한 정부의 외교 군사권 뿐 아니라 내정권까지 침해하지 않는 것 으로 이는 거의 완전한 두 개의 주권국가가 연합하는 형태를 상정했다.1961년 남한에서는 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여 선건설-후통일론을 내세우자, 북한은 이에 대한 대응적 차원에서 남북연방제를 미룬 뒤 느닷없이 남조선 혁명론)을 들고 나와 북한의 연방제 논의는 소강상태로 들어갔다.2. 1970년대 연방제 - ‘고려연방제’1)배경1970년대에 미 ? 소간의 데탕트 추구를 비롯해 미 ? 중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주변강대국들의 정책적 변화가 남북한의 대화를 성립하게 하였으며 1971년에는 남북한 정부간 적십자회담이 개최되었고, 1972년 남북한 최초 공식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7.4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북한 정부가 전개해 온 통일정책의 결실이었다. 남북한이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3대원칙(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은 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통일의 기본 방침과 부합되는 원칙이기 때문이었다.북한은 남한의 제안이 ‘두개의 조선’으로 영구분단을 책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하나의 조선’을 목표로 삼는 통일방안을 모색하였다. 1973년 6월 23일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의 6.23선언이 발표되는 시점에 맞추어 평양시 군중대회의 연설을 통하여, 그 이전까지 통일방안으로 제시된 ‘과도적 연방제’를 수정한 ‘고려연방제’를 새로운 통일방안으로 제시하였다.2)내용1973년 6월 23일 국호까지 갖춘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김일성은 체코 공산당 서기장 후사크를 환영진을 주장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한국내의 진보적인 정치인, 지식인, 학생세력과의 통일전선의 형성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2)내용북한 정부는 198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제안은 완성된 통일정부의 형태로서 연방국가를 창립하는 방안으로, 기존에 제시된 ‘과도적 연방제’와 ‘고려연방제’안의 내용을 좀더 체계화시켜 종합한 통일방안이었다.이러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창립 제안은 ①연방 형성의 원칙), ②연방조직의 구성, 임무 및 기능), ③연방국가의 국호 및 대외정책 노선), ④10대 시정방침) 으로 나눌 수 있다.주요내용을 정리해보면, 첫째,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우에서 북과 남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창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남북한 같은 수의 대표와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로 최고민족연방회의(통일정부)를 구성하고, 최고민족연방회의의 상설집행기구인 연방상설위원회는 정치문제, 외교문제, 군사문제를 관장하고 군대조직으로서 민족연합군을 조직한다. 셋째, 연방정부의 지도하에 사상 및 제도가 상이한 남북의 지역정부들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따라서 북한의 연방제는 남북한이 ‘1민족, 1국가, 2체제, 2지역정부’ 통일방안이다.)북한은 고려민주연방제의 실시에 앞서 남한 정부와 미국에 대하여 남북한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몇가지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그 전제 조건이란 첫째로, 남한의 군사통치를 청산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할 것, 둘째로 남한에서 미군이 조속히 철수하여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 셋째로 미국은 ’2개의 조선‘ 조작책동을 중지하고 남한에 대한 내정간섭을 그만 둘 것 등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남북한이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합의한 3원칙에 기초하여 통일을 실현해야 하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북한이 제시한 고려민주연인 차원에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의식하여 1980년에 제안한 고려민주연방제 안은 현실적인 차원에서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남한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계와 방어자세를 나타낸 것이다.북한의 통일정책이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화한 것은 1993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김일성이 발표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과 ‘4개 대남요구사항’)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 강령의 5항에는 승공의 위구에 대해 지적하면서 서로 신뢰해야 하며 상대방을 흡수하려 해서도 안된다는 것은 1990년대의 흡수통일을 의식하는 다소 수세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북한의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은 1972년에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 1980년에 발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1993년에 발표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지명하였다.김정일은 집권 초기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으나, 1998년 4월 ‘남북조선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50돌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보낸 서한’에서 “온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내용 가운데 ‘민족 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하였다.) 역시 원칙적인 것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방침이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1991년 이후 통일안을 발표 할 때 단계론적 수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진전시키지는 않았다.3) 특징)북한 연방제의 특징은 다음의 세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최종적인 통일방안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하나의 체제’로 가기 전의 과도기적 통일방안 이라고 할 수 있다.북한이 1960년 최초로 연방제를 제안했을 때는 하나의 선택적 대안으로 제시하였으나, 1973년 고려연방제는 과도기적 통일방안으로 제안하였다. 이후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와서는 최종통일안으그 본질상 현존 분단체제의 유지를 노린 반통일적인 1민족 2국가 2체제적 구도”라고 매도하였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의 2항에서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남측의 연합제 안을 무조건 부정하던 과거의 태도로부터 벗어난 것이다.)2.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에서의 남북연합)1)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역대 한국정부 중 통일방안에서 이 남북연합 단계에 대해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노태우 정부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9월 11일 국회연설에서‘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시하면서 통일의 단계로 남북대화 ? 남북연합 ? 민족국가(통일민주공화국)의 3단계에 대해 언급하였다. 남북연합이 두 번째 단계로 설정된 것이다.노태우 정부는 ‘남북연합’이 형성되면, 남과 북이 민족공동체에서 연합 ? 연계됨으로써 국제법상의 국가관계가 아닌,‘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남북간의 현안문제와 민족의 장래문제를 협의, 조정, 해결해 나가며, 대외적으로는 소모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민족의 이익을 증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따라서 ‘남북연합’은 통일을 지향한 과도적이고 특수한 제 3의 결합형태로 간주되었다.‘남북연합’은 1민족 2체제의 연합형태로 남북연합 안에서 남과 북은 각기 외교?군사권을 보유한 주권국가로 남게 되지만, 수천 년 동안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해온 우리 민족의 전통으로 보아 남북연합은 통일을 지향한 잠정적이고 과도적인 결합형태, 즉‘과도적 통일체제’로 설명되었다.2)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8월 15일 제49주년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천명하였다. 이 통일방안에서도 남북연합은 통일의 제2단계로 설정되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점진적 ?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기조위에서 통일과정을 ‘화해?협력단계→남북.
소그룹 운동과 교회 성장M.A 1/4 이효진들어가며...이 책은 전체 4개의 큰 주제를 토대로 각각 주제 안에 소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사람의 개인적, 혹은 공동적으로 지역 교회에서 활동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어있다. 소그룹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소그룹에 대한 가장 훌륭한 표준들은 무엇이며, 실재로 경험한 것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한 것들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며 격려하고 서로를 통해 폭넓은 관점과 풍부한 인간성에 대해 배운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소그룹에 대한 이해는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며, 1부에서는 효과적으로 소그룹을 인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해결의 열쇠가 될 개념들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균형잡힌 소그룹 활동의 중심요소들, 3부는 소그룹 활동을 어떻게 교회 전체 사역과 관련하여 통합해 가는지에 대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마지막 4부는 소그룹 운영에 필요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들과 전략, 도움자료들을 실제로 쓸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제1부. 소그룹의 기초[제1장]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다.롭 말론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과 관계를 갖으며, 또 서로서로 타인과의 관계를 갖도록 지으셨다고 말한다. 인간의 인격적인 성장에 있어서 많은 부분은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의 질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러한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소그룹 활동 속에서 가장 훌륭하게 맺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인간은 여러 형태의 소그룹에 소속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소그룹을 형성하고, 자라면서 대인의 폭을 넓혀가며 더 넓고 다양한 소그룹에 소속하여 여러 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유대를 강화시켜 주거나 공동 과제를 함께 수행한다.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소그룹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모임들은 그 모임의 구성원이 갖는 필요들을 채워 주기 위해 모이거나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모이며, 혹 어떤 모임은 그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성취하기예배는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해 드리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그 어떠한 것들보다 사람들을 결속시켜 주는 힘이 있다.공동체적 교제(Community)-행2장에 코이노니아, 즉 교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 갖는 공동체 의식은 부패한 세대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변화되어 가도록 효과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함께 체험하고서 서로에게 자신을 바쳤을 때, 공동체는 출발이 되는 것이며, 공동체적인 삶의 결과로서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연합하게 되며 온전한 백성으로 세워지는 것이다.(엡4:12-16)선교(Mission)-그리스도인의 모임이 존재하는 것은, 나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기쁜 소식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의 사랑과 능력을 널리 펴서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 분의 통로이다. 선교의 개념은 전도와 사회적 활동을 포함한다. 선교는 가끔 모임에 나오는 각 사람들이 맡은 일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해 주는 일부터 시작된다. 어떤 소그룹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특별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속한 그룹의 선교활동 성격과 함께 교회 전체적으로 지향하는 사역의 방향과 일치하도록 하며, 서로 다른 견해들을 토의하여 하나의 통일된 견해를 만들어 내도록 하면 될 것이다. 각 소그룹은 지금까지 말한 4가지 요소들을 어느 정도는 모두 필요로 할 것이다. 어떤 특정요소를 강조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요소 하나라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코이노니아 그룹은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균형 있게 취하려 한다. 그리스도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최대한 살아 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또 이런 것들은 각 요소마다의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예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공동체적 교제를 강화한다. 소그룹에서 연합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유대와 공동체적인 교제가 유지되어 가도록 돕는 일,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다양한 역할들에 대해 함께 나눔으로써 각 사람이 그룹 내에서 인정을 받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관리자, 선발대장, 정보 및 의견수렴자, 정보 및 의견 제시자, 적극적인 청취자, 의사소통 조력자, 요약전달자, 진단자, 해결사, 조정자, 실천 기준 설정자, 실천성 점검자, 긴장 이완자, 격려자, 평가자 등의 역할이 그것이다.그룹의 리더는 정기적으로 회원과 함께 공동체 의식, 양육, 예배, 전도 등의 요소에 따른 계획들을 돌아봄으로써 그룹이 가지는 균형과 조원들의 견해 곧, 조원 각 개인의 필요 충족도, 주어진 과업의 성취를 위한 필요 충족도, 한 그룹이 공동체로서 가지는 필요의 충족도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그럼으로 각 개인의 필요들이 채워지고, 공동체에 맡겨진 과업도 수행되어야 하며, 한 소그룹은 전체적으로 공동체적인 만족감을 가질 수도 있어야 한다. 각 측면에서의 필요를 충족시켜 가는 데 있어서는 어떤 철칙도 없으며 조장은 자신의 그룹이 균형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 기도하며, 때로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면서 이끌어야 한다.[제6장] 소그룹의 활동주기스티브 바커는 소그룹은 정체된 유기체가 아니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탄생으로부터 유아기, 소년기, 장년기와 때로는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생명주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리더들은 더 나은 그룹의 성장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이것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첫째로, 탐색기는 사람, 능력, 목적 등의 측면과 관련하여 우리가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단계이다. 내가 이 그룹에 포함된다는 느낌을 가지는지, 내 의견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받아들여지는지, 모임의 시간활용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탐색을 하는 시기이다.둘째단계는 전환기이다. 모든 조원들 간에 서로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며,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조원들은 그룹에서 하는 일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개진하며, 그룹 내에서 더양육쥬디 존슨은 영적인 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보여줄 수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양육이라는 영양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사도행전 2:42를 통해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사역을 위하여 어떻게 양육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사귀며 함께 떡을 떼고 기도하는 일에만 힘썼습니다.” 기도가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이다. 기도를 할때 변화가 일어나게 되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소그룹 모임에서 함께 기도할 때에 묵상하기 위한 침묵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하여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도록 기다려야 한다.초대교회에서 떡을 떼는 일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런 교제를 통해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던 모습을 기억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신 사건을 더욱 기억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찬의 시간에 우리는 살아계신 우리의 구세주를 경험하게 된다. 성찬식을 하면서 떼는 떡은 우리가 주님의 몸으로써 함께 풍성하신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며 주님이 구속의 실재를 체험할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만케 되어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된다.소그룹에서 교제를 위한 시간에 함께 식사를 할 수 도 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인해 충만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리스도인의 교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연합한 것과, 서로의 연합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도들이 그들의 재산을 어떻게 나누어 썼는가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서로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은 많은 것이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며 발전하게 해준다.누구든지 사람은 정서적인 궁핍함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말에 긍정의 뜻을 전하며,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없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그룹이 예배를 통해 유익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배에 있어서의 목적은 주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주인이 되셔야 할 뿐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도 그 분을 그 공동체적 활동이나 삶 속에서 중심에 모셔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우리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원하신다.소그룹의 인도를 맡은 장이라면, 예배를 인도할 때 예배에 참석한 각 개인들 뿐 아니라 그룹 전체에도 적절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한 가지 방법은 예배 자체를 소그룹의 활동의 다른 세 가지 요소와 관련짓는 일이다. 예배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양육 시간을 시작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 함께 찬양하며, 하나님께 집중하게 한 후 성경 공부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되 독창성을 발휘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소그룹의 다양성을 이해하면, 소그룹의 예배 속에서도 이런 창의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소그룹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소그룹 활동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실 때, 그 생동하는 능력은 세상으로 번져갈 것이다.[제10장] 공동체적 교제쥬대 존슨은 지속적으로 소그룹 활동에 참여하게 될 때, 한 가지 분명하게 얻는 것은 관계의 성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신앙생활의 기복을 함께 경험해 갈 때,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으며, 서로에게서 유익을 얻게 된다. 타인을 통해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다.어떻게 하면 진정한 공동체를 세울 수 있을까?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한다. 신앙의 내용, 가치관, 관심사 그 외의 감정의 문제들은 더 깊은 교제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소그룹 모임 이외의 비공식 모임에서도 교제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그룹 내에서 서로의 의견이나 느낌, 관심사들을 자유롭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는 다양이다.
Ⅰ.감상문손끝으로 느끼는 세상 이 책이 단지 시각장애인의 삶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책을 보았다. 첫 겉 표지에 있는 점자로 쓰여진 것을 보고 서문을 읽으며 이런 무관심은 사라진 채 나는 이 책에 푹 빠져 감정이 몰입되어 책을 읽었고 존 헐 이라는 사람은 불행하기도 하면서 행복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처음부분에 어디엔가 보면 수술한 내용이 나오는데 나도 눈이 나쁘고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 책을 읽은 다음날은 렌즈를 착용하고 수업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가 수술하면서 느끼는 고통이 꼭 내 아픔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나는 그렇게 서문을 읽고 매일의 일기 내용을 보며 그의 생활 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한 세계가 사라지다.- 한 세계가 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우리를 삼킨다. 그곳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앞을 못보는 것은 영원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항상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존 헐은 영국 버밍엄대 종교교육학과 교수이고 영국 노동당에서도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이다. 그는 열 세살에 백내장에 걸려, 45 세에 완전히 시력을 읽고,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 느낌으로 좌절하다, 뒤늦게, 시각장애인으로의 새로운 세상에 순응하는 작으나 위대한 삶은 살고 있다.존 헐은 볼 수 있었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조금씩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간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흰 지팡이와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 소리로 전달되는 세상의 정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일치를 발견한다.바람으로 나무를 느끼고 빗소리가 얼마나 세상을 활기차게 만드는지 알아내는 그의 '시선'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이 조금씩 열려져 간다.우리와는 다른 시각 장애인들이 느끼는 날씨에 대한 감정들, 밤·낮의 개념, 의식과 무의식, 자면서 꾸는 꿈과 기억의 경계, 몸짓 언어가 없는 대화의 어려움,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시각을 잃은 후에 사귄 얼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차이 등에 대한 느낌과 생활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흰 지팡이로 세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감각을 포착하는 데 익숙해질 무렵쯤, 그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오해에도 눈을 뜨게 된다.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확 트인 공간보다 계단이 더 안전하고, 눈이 오면 미끄러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길을 안내하는 모든 신호가 묻혀 버려서 아예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는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볼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 놓은 상식의 그늘을 거닐면서 그는 악몽 같은 경험과 상실감을 때로는 절망 가득한 목소리로, 때로는 이면을 살피는 지혜로 담아 낸다.시각장애인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종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을 수 있다.'당신이 그를 엘리베이터에 태워 주시겠습니까?' '당신이 그를 사무실에 데려다 주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3인칭으로 이야기될 수 있으며 자주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무시당하는 정도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왜곡되거나 없어졌다는 절망감을 안겨 주게 된다고 이야기한다.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철학과 신학, 사회학적 보고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시각장애를 둘러싼 문제들을 풀어낸다.촉감을 넘어서-당신의 손바닥 안에서 무한성을 느껴 보라. 접촉은 신비한 것, 초월적인 것을 느끼게 해준다.-우리가 막연히 시각 장애에 대한 가지고 있던 편견들과 감정들을 그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바로 잡아 준다.또한 그의 글들은 장애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많은 바른 생활의 자세와 실천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사람을 사귀고 대하는 방법, 대화할 때 미소 짓고 시선 주기, 일의 계획과 준비, 능동적인 교제의 중요성, 하나님의 섭리의 이해 등 이러한 삶의 교훈들은 그가 바로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우리 보다 더 깊게 성찰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또한 이 책을 통하여 시각 장애인을 도와주는 방법, 시각 장애인의 행동 특성, 시각 장애인에게 안전한 장소, 시각 장애인과 대화하기 등에 대한 정보와 바른 실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작년쯤인가 한 시각 장애 자매님이 맹도견과 함께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을 복도에서 보게 되었다. 입장을 하려는 자매님과, 커다란 몸집의 맹도견을 보며, 일반 성도들이 겁을 내고 불편해 할까봐 입장을 삼가 해 달라는 한 교회 중직 분과의 언쟁 끝에, 결국 3층으로 인도되어 예배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시각 장애인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그들의 세상을 이해한다면, 시각 없이 소리나, 촉각, 후각으로 느끼는 시각장애인을 그들이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의 정보들 (소리, 촉각, 바람 등) 이 떨어지는 구석으로 안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때 그 시각 장애인 소녀의 편안한 환한 얼굴이 나의 얼굴과도 같았을 한 교회 중직 분의 인상 쓴 얼굴과 겹쳐서 떠오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교회도 물론이지만, 사회의 다른 장소와 공간들도 그 이용과 초점은 대다수인 정상인에게 맞추어 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그렇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나 의술이 발전해도 우리도 그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될 수가 있음을 상기하면서, 다시금, 손끝으로 느끼는 그들만의 세상 도 보통 사람의 세상처럼 존중되고, 우리의 의식의 변화를 통해, 깊이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시각 장애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듯, 용기와 인내로 극복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적을 통해 치유됨으로 신의 자비가 나타내어지는 것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생활하는 “다른 세상” 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후기에도 나와있듯이 절망의 반대편에 있는, 무언가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과 의식의 변화를 찾는 일이 주제인 것이다. 보통은 우리가 어떤 장애를 겪는다고 했을 때 그것을 딛고 일어서기보다는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에 극복자들은 매스컴에서도 많이 비추어지고 있다.존 헐은 이 아픔과 어려움을 딛고 이것을 책으로 썼고,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삶의 살아야 하는 의미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Ⅱ.의사소통의 교육학의 의미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같은 말을 해도 비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수없이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항상 요구해야 하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함을 말한다.우리 사회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얼굴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세상에 사는 전혀 다른 인종을 대하듯이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이다.
사회보험은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산업화를 배경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부작용의 심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진복지국가의 사회보험 도입과 발전과정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사회보험과 산업화 그리고 경제발전과 연계되어 있선진복지국가(독일, 영국, 스웨덴)의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점사회복지발달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도입과 확대 발전은 선진복지국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우선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늦게 시작하였으나 빠르게 진행된 산업화와 이에 따른 노동자 생활조건의 악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확산된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이에 대한 지배세력의 견제,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필요성에 관한 관념의 대두,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독특한 통치스타일 등으로 인해 시작이 입법화 되었고, 영국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개혁이라고 설명될 수가 있다. 영국과 독일의 비슷한 점은 산업화에 따른 폐해와 이에 병행한 노동운동의 성장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 유사하지만, 차이점은 산업화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였음에도 사회보험제도가 후발 산업화 국가인 독일보다 늦게 등장한 사실은 산업화가 그러한 제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직접적 요인으로 설명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좀더 직접적인 이유는 노동자 정당인 노동당과 일시적이나마 우호적 관계에 있던 자유당정권에 의해서 포괄적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사회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셋째로 스웨덴의 경우를 보면, 이 나라 또한 자유주의 개혁이라고 설명될수 있다. 영국과 비슷하게 자유주의 집권당에의해 주도가 되었고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한 전후의 시기에 사회개혁에 관한 논의와 움직임이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선진복지국가는 산업화의 진전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부수적으로 발생되는 문제점과 불균형적 발전에 따른 한계성으로 발생되는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 사회보험이 도입되고 확대 발전이 이루어진 반면에, 우리나라는 제도에 따라 사회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먼저 도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제성장의 산업화로 인하여 사회문제가 발생되어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도입되는 등의 일관성이 결여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회보험이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1960년의 공무원 연금법이나, 일반 국민계층을 포괄적인 대상으로 접근한 제도는 1963년의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광업과 제조 분야의 500인 이상사업장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인연금과 함께 산업화 이전에 도입된 제도로 분류될 수 있고, 1970년 후반에 개정된 의료보험 (1976년)과 국민연금 (1986년) 그리고 고용보험 (1995년) 등은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법 (1977년) 사립학교 교원 연금법 (1973년) 등과 함께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후 뒤늦게 도입된 제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미분화된 도입현상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이전에 도입된 제도가 그 발전 과정에서 확대 및 개선 속도가 매우 늦은 점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에 대한 정부 및 국민의 관심이 매우 낮았다는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공무원, 군인, 사립교원 등 일부 특수직역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정착은 이루어진 반면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도입시기는 늦어졌고, 이후 급속한 확대과정에서 비체계적인 도입과 확대로 인한 사회보험체제의 종합적 측면에서 비효율성이 나타나고 있다.독일의 사회보험에 대해 보면, 1880년대에 입법화된 3대 사회보험제도들은 1911년에 제국보험법으로 단일화 되었고 이를 통해 전반적으로 가입자 범위는 확대되고 새로운 급여가 추가되는 등의 발전을 하였다. 또 같은 해에 중산층을 겨냥한 직원보험법이 따로 제정되었는데 사무직 및 기술직 노동자를 주된 대상으로 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에서는 국민보험법이 제정됨으로써 구빈법적 전통을 탈피할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법에 기초한 사회보험제도는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에 따라 2차 세계대전후에 노동당이 제정한 포괄적인 국민보험법(1946)이 제정되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1995년 7월부터 고용보험이 도입되어 연금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과 함께 4대 사회보험의 외형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체계는 직역별, 규모별로 적용범위가 분리되어 있고 관리 운영에 있어서 직역과 관련되어 있는 부처 또는 관리공단으로 분류되어 있어 다원화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공적연금제도는 직역에 따라 4개의 분리된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데 도입시기 뿐만 아니라 제도 내용 및 재정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수직역에 대한 공적 연금제도는 국민연금과 비교하여 볼 때 국민연금과 함께 산재보험의 성격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연금의 경우에 있어서도 일반근로자와 농어민 그리고 농어촌 지역 자영자에 대한 제도 적용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대상에 대한 제도적 접근 차이로 인하여 이에 대한 관리 운영에 있어서도 4개의 관계 부처가 관련되어 있다.의료보험의 경우에 있어서도 크게 특수직역 (공무원 및 사립교원)과 일반 국민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는 데, 특수직역의 경우에는 직역관련 종사자 외에 군인가족, 특수지역 연금 수급권자를 포함하였으며, 일반계층에 있어서는 근로자 계층은 직장의료보험조합, 농어민 및 자영자 계층은 지역의료보험조합으로 분리되어 조합방식에 의하여 관리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운영체제는 1999년부터 통합방식으로 전환되어 단계적으로 통합 과정을 행하고 있다. 2001년 현재 특수직역과 지역의료보험조합 그리고 직장의료보험조합의 조직 통합은 이루어진 상태이고, 20002년에는 재정통합을 할 예정이다. 의료보험 급여에 있어서는 질병으로 인한 대상 위험은 진료 등을 위한 비용부담과 소득활동 불능에 의한 소득손실 중 비용부담에 대해서만 제도적으로 보장이 이루어지고 있다.산재보험은 특수직역의 경우 공적연금체제에서 산재(공상)에 대한 보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은 근로자의 산재 및 직업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보험료는 업종별로 보험료율을 차등 적용하는 등 일반보험의 성격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다. 관리운영은 그동안 노동부에서 직접 관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으로 이전하여 관리·운영하도록 하였다. 재정 측면에 있어서는 산재 예방 등에 대한 인식의 확산 등으로 단기적 측면에서는 재정안정 현상을 보이고 있으나, 급여지급 형태의 연금 형태로 전환, 산재 인정범위의 확대, 직업병 판정의 엄격성 환화으로 인하여 장기적 측면에서 의 재정 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대학문화에 대한 전반적 이해Ⅰ. 서 론요즘 사람들은 대학문화라고 불려질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또 '달라져야 한다'라는 이야기도 한다. 정말 대학문화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또 어떻게 변해가고, 바뀌어야 하는지 대학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우리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대학문화는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변화가 바람직한 것인지, 바람직하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변해가야 할지를 알아보고 올바른 대학문화의 지향점을 제시하고자 한다.Ⅱ. 본 론1. 대학문화란 무엇인가 ?대학문화는 한국의 전반적 문화현실에 비판적 태도로 문제를 제기하며 그 출발을 한다. 진정한 대학 문화는 대학인 스스로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을 바탕으로 하는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공동체적 성격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어야 한다.우리의 대학문화가 지니는 강한 공동체적 성격은 우리의 진정한 문화의 의의를 찾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의 사회적 집단의 강한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그 기초로 하며, 이러한 공동체의식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기능이다. 물론, 대학내에서도 대학 문화를 형성하고 수행하는 공동체적 공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학내에서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공동체적 문화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맛보며 생활하기보다는 혼자 밀실에서 갇혀 지내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을 거부하는 현상,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어폰을 꽂고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습들, 강의 시간에 몰려 들어왔다가 강의만 끝나면 흩어지는 고립 분산적인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대학내에 팽배해진 개인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대학내에서 진정한 지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지나치게 눈에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 민감한 것 또한 사실이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적 풍토에 철저하게 뿌리박고 있는 이기주의자에 불과했던 경우에 따라서는 이기주의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우리들을 이제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점점 더 자주보고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창조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건전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대학내에 이러한 이기적 개인주의가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를 하나의 승부로 설정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그 인간관계 속에서 이겨냄으로써 느끼는 승리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상대방과의 교감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이뤄내는 것임을 망각하는 심리상태일 것이다. 이런 태도들은 전체보다는 내가 우선이라는 사고방식을 낳게 만들고, 인간 관계를 더욱 삭막하고 각박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 비인간화되어 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젊음을 어두운 카페 구석에 묶어 둘 수는 없으며, 무관심과 회의로 일괄한 자아의 밀실에 방치해 둘 수는 더욱 없다. 우리는 진정한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젊은이의 특권인 연애 또는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사상과 가치관, 생활 환경과 같이 객관적이며 본질적 세계관에 대해 서로가 공감하며, 변화·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자 단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하며 봉사하며 길들이는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 또한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동이며, 있는 그대로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여기서 우리 대학 곳곳에서 행하는 활동과 의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학회에서 주로 행하고 있는 학술활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대학은 분명 진리탐구를 하기 위해 존재함으로, 학술활동은 대학본연의 제반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동적이고 일방적이며 현실과는 무관한 인식을 주입하는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대학인이 주체가 되어 우리의 현실 문제를 보다 올바르게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학술활동이 가지는 의의이다.이 과정 속에서 대학인은 자신의 고민과 갈등을 해결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적으로 학습과 세미나)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수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공동으로 토론·연구하는 교육방법, 외적으로 심포지움) 공중토론의 한 형식과 전달하여 대학내 공감대와 일체감을 확대하며, 대학인의 전반적 활동에 대해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이론과 논리를 수렴하여 대학인 전반이 공유하도록 확산시킴으로서 측면적 지원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속에서 대학언론은 대학인의 활동과 사회발전 과정에 주체로 참여한다.이 언론활동은 대학인의 주체가 되어 자유언론·민주언론을 이념으로 하여 새롭고 참다운 매체형식과 의미있는 내용을 확보하면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인의 의식세계가 엿보이기 쉬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구체적 현장의 경험과 체험을 요구하게 된다. 그 직접적 활동의 한 방법이 농촌에로의 봉사활동·공장·빈민촌 등지의 국민과의 만남이다. 이 과정 속에서 대학인은 자신의 존재를 돌이켜 보고 노동의 의미를 맞보며 국민들의 생생한 삶과 사회의 모순 구조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대학의 활동과 행사에서 대학문화는 강한 민중 지향성을 띄게 된다. 대학인 자체가 아직 완전히 체제에 편입되지 않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사회발전의 가치와 방향에 있어서 가장 순수할 수 있는 집단이며, 우리의 현실에 맞는 민중문화의 창조와 민중문화의 정립을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과제를 지닌다. 대학은 이제까지 역사발전 과정에서 하나의 부분운동을 차지해 왔으며, 대학문화로 이러한 대학의 진보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진다. 그러므로 대학문화는 대학의 진보성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대학문화는 분명 사회발전에 있어서 대학이 지니는 의의와 상이하며, 올바른 세계관에 입각한 민중을 지향하는 진보적이고, 비판적이며,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이어야 한다.2. 시대별 대학문화(1) 1970년대우리들은 대학문화를 이야기 할 때 70년대를 기점으로 언급한다. 그 시절 대학을 다니는 이는 극히 소수여서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은 그대로 대학문화가 되었다. 시민들은 그들을 따라하고 싶어했기에 그들에게 별다른 비판을 하지도 않았다. 외적으로 그들은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제점들을 고스란히 안은 채 90년대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지금 대학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3) 1990년대 이후지금의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21세기 첨단의 시대에 지금의 대학도 많이 바뀌었고 또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대학문화 즉, 우리들 삶의 형태도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 시대에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대학문화를 이야기 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의 목적 아래 모두가 하나 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들은 노동이나 환경 등의 구조적인 시민운동이나, 자신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는 폭력, 남녀평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관심이 있다.즉 관심의 초점이 이제 더 이상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예전에 대자보나 유인물을 통해 사실을 단순히 접하며 단방향적인 운동이 행해지던 것이 전자 게시판등의 가상공간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 즉, 쌍방향적인 권리 찾기로 진행되고있다는 것이다.Ⅲ. 결 론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판단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정한 사회·정한 시대의 문화가 지니는 성격과 형식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인은 그 사회자체가 가지는 구조형태이다. 이제까지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수단의 발전에 의해 원시 공산제로부터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현재의 자본주의제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지배 계급들은 그 사회의 형태를 불문하고 그 사회가 지니는 문화시설과 문화수단을 독점해 왔으며, 지배계급의 이익에 알맞고 자신의 기초에 부합되는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방법으로 문화를 형성하여 왔다.하지만, 그 문화들은 지배계급들을 위한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문화이면서도 언제나 피지배계급의 노동을 통해서 축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전체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노동자들, 즉 피지배계급의 예술적 자질이 표현되어 왔으며, 민중들의 생활과 감정·취미가 반영되어 왔다.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대학인이 가지는 역할과 임무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일치되는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우러나는 대학문화를 건설문화란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문화 현상 중 대부분이 소비 향락 문화로 접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 대학 문화의 현주소이자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과거 70~80년대의 대학 문화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초로 한 진보적, 실험적 문화였다. 잔디밭에서 몇몇이 모여 앉아 통기타를 연주하며 같이 노래를 하던 참여의 문화였으며, 집회에 집회를 반복하던 비판의 문화였다. 하지만 1990~2000년대 문화는 어떠한가. 새터(새로 배움터)나 대동제, 술 문화 등 대학 문화의 틀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그러한 행사가 갖고 있는 내용과 의미가 변질된 것이 대부분이다.요즘 대학 문화는 소비적이고 쾌락을 중요시하는 퇴폐적인 면이 다분하다. 이는 대학교 주위 환경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대학교 주변은 당구장, 노래방, 락카페, 나이트 클럽 등 온갖 향락 문화로 넘실거린다. 풍요롭고 안정된 시대에 편하게 자란 세대인 대학생들은 소비 문화의 주체가 되어 학업에 나태하게 되고 이에 따라 대학 문화 역시 '놀자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대동제'라 불리는 대학의 축제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대동'은 말 그대로 ‘함께 어우러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대동제는 함께 어울린다기 보다는 이벤트 업체가 와서 행사를 진행하고 학생은 단지 보고 즐기는 데 그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행사를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도 각 과나 동아리에서 축제 기간 동안 운영하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수십개의 주점과 각처에 널려있는 쓰레기, 주정하는 학생들로 인해 대학은 마치 난잡한 포장마차들의 모임을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무런 의미 없이 술과 안주를 비싼 가격에 파는 이러한 행사는 평소의 대학촌 문화를 학교 안에 끌어다 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결국 대동제는 단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으로 인식되어 지는 것이 현실이다.70~80년대 암울했던 시대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