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요즘 신문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교실붕괴', '교육개혁'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강제적이며, 학생들의 수준 차를 무시한 획일적, 몰개성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 우리 학교에서는 더 이상 줄탁동시의 따뜻한 인격적인 감화를 찾아보기 힘들며,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교사는 이제 학생들의 진정한 의미의 스승의 자리에서 끌어 내려지고 있고, 이러한 교육현실은 많은 청소년 문제와 더불어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과연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대안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그에 대한 대책 중의 하나로 대안학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학교는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은 말이 되었다.학교 교육의 진지함과 제도적 장치들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현재 학교에서 소외되어지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에서 열린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 교육에서 벗어난 대안 학교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러한 대안학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A.S.Neil의 「섬머힐」) 문음사,1996.을 읽게 되었다. 섬머힐은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자신들의 소질을 개발하는 전인적 교육 공간으로 대표된다.그러면 이러한 섬머힐의 교육이 과연 어떤 이념 속에서 시작되었고, 또 어떠한 점에서 우리의 학교 교육과 다른지 살펴보고, 섬머힐의 창립자이자 교장인 A.S.Neil의 교육 철학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다.본 론1. 섬머힐의 이념섬머힐은 영국의 아동심리학자이자 자유교육 실천자인 A.S. Neill이 1921년에 세운 학교이다. 이 학교는 런던에서 약 150km 떨어진 서포크의 레이스턴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섬머힐은 비형식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립학교로 이 학교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과정이 있는데, 빠른 어린이들은 이미 다섯 살 때 섬머힐에 오며 어떤 어린이들은 열 에 있게 된다.실험학교로 시작한 섬머힐은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도록 해야겠다( p12. 본문 인용)」는 것을 중요한 이념으로 두고 설립되었다.즉, 아이들은 본래 선한 존재로 태어날 때부터 슬기롭고, 현실적이라는 생각 하에 아이들을 옭아매는 모든 훈육, 지시, 제안, 도덕훈련, 종교수업 등을 철폐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를 만들었다. 또한 아이의 개성과 인격을 학습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이러한 섬머힐의 이념은 섬머힐만의 독특한 교수법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놀이를 통한 자율적인 교육이였다. 이떠의 놀이는 조직된 유희가 아니라 아이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아무 구속이 없는 놀이이다.섬머힐에서는 모든 사람, 즉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나이가 많거나 혹은 교사라 할지라도 그에 따른 권위를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섬머힐의 아이들은 어른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공동의 규칙 속에서 모두 평등하며 자발적으로 사회의 규범을 학습하고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며, 자율적인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아이들로 스스로 커나가게 하고 있다.2. 섬머힐의 교육과 일반교육과의 차이섬머힐이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을 대표적으로 몇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첫쩌, 섬머힐에는 시간표는 있으나 강제적인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 공부하길 원할 떠에 만이 스스로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 섬머힐의 A.S.Neil은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책상에 붙들어 놓고 대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나쁜 학교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며, 이것은 곧 청소년들의 어깨 위에 노인의 머리를 얹어놓는 것처럼 아이들을 겉늙게 한다」고 말한다.둘째, 섬머힐에서는 아이의 흥미있는 놀이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갖게 하며 아이들은 자율성을 통한 창의적인 사고력과 실천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섬머힐에서는 지식주입의 기존 교육체계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 공부는 노는 일 다음에 와야 하는 것으로 공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어느 누구에게나 다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셋째, 섬머힐에는 또한 기존 학교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개별지도」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의「개별지도」는 교사가 주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필요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상담치료의 성격도 갖는다. 그러나 상담치료도 문제가 있다고 느낀 학생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이지, 결코 어른의 훈계나 꾸짖음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넷째, 섬머힐은 그곳만의 독특한 학교 「자치제도」에 의해 운영된다. 민주적인 자치학교를 표방하는 섬머힐은, 규칙위반에 대한 처벌까지를 포함하여 사회생활, 또는 단체생활에 관련된 모든 일을 토요일 밤에 열리는 전교회의에서 투표로써 정한다. 교직원이라고 해서 그의 발언이나 안건이 특별취급을 받는 경우는 없으며, 6살의 한 표나 교사의 한 표는 모두 똑같은 한 표일 뿐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힘으로 약한애를 놀리는 경우이다. 의장이나 서기 모두 돌아가며 맡게되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재판을 상당히 공정하게 운영해 가는 놀라운 행정능력을 보여준다.다섯째, 섬머힐은 학생들의 여가를 존중하며 특별히 스포츠를 강요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이 원하면 언제나 매일 저녁 닐의 거실에서 함께 춤을 출 수 있으며 체육시간 또한 학생의 자유이다. 섬머힐에서는 스포츠는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기 떠문에, 운동경기를 하지 않는 어린이라고 해서 얕보거나 열등아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통해 섬머힐의 교육이 일반 학교와 어떻게 다른지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섬머힐의 선생님들이 "얘들아! 어서들 운동장으로 나오너라!"라고 했다면, 섬머힐에서의 스포츠도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됐을 것이다. 스포츠를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자유로움 속에서만이 비로소 진정한 스포츠맨 정신은 길러질 수 이 세상에는 잘 다듬어지고, 규제되고, 훈련되고, 억압된 부자유스러운 어린이들이 많다고 보았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이루어지는 부자유한 교육은 그 생명이 충분히 살아갈 수 없게 만들며, 만약 여러 가지 감정이 정말 자유스러울 수 있도록 허용된다면, 지성도 저절로 싹트게 된다고 주장한다.그는 문제아의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고 말하며 아이를 신뢰하고 자율적으로 양육하길 원한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버리고 아이를 사랑으로 이끌 떠에 바로 인간성 회복의 미래가 열린다고 보았다.또한 그는 아이를 양육 할 떠에 주는 상과 벌의 위험성에 대하여도 경고한다. 그는 상과 벌은 아이를 흥미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흥미는 아이의 생명력에 의한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벌은 언제나 증오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특히 벌이라는 것은 반드시 악순환을 되풀이한다고 보았다. 체벌은 미움을 드러내게 되고, 매번 매를 맞을 때마다 아이는 마음속에 더욱 큰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증오심은 한층 더 나쁜 행동으로 나타나 점점 더 많은 매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그는 또한 음식물이나 수면 등에 대하여도 부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어린이들의 문제닐은 어린이들이 보이는 잔인성과 새디즘은 억압의 상황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어떤 강한 감정을 강제로 억제하지 않는 한, 결코 아이들이 잔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또한 아이들의 범죄성이라고 하는 것은 증오심의 표현으로 이것은 곧 그 아이의 상처받은 자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자아가 굶주렸을 때에는 범죄라는 것을 저지르게 되므로, 범죄자는 사회가 그에게 사랑을 보임으로써 그의 자아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회에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범죄성 또한 앞의 잔인성과 같은 맥락에서 억압에 반한 행동으로 아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통해서만이 치료될 수 있다고 보았다.다음으로 그는 아이들이 한번은 거치게 되는 도둑질에 . 정상적인 아이의 경우 그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차차 아이가 성숙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정되는 반면, 두번째의 경우는 애정결핍의 표시로 보았다. 그리고 신경증적인 아이의 도둑질에 대한 치료는 그를 인정해 준다는 방법이 최선임을 주장한다. 그는 감옥과 형벌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대신할 수 없으며, 이러한 신뢰는 문제에 처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그를 사랑하고 있고 미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아의 치료는 사랑을 통해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아이의 편이 되어 줌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그는 아이들을 그들의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게 하는 길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권위를 버려라. 어린이가 그 자신일 수 있게 해주어라. 어린이를 몰아 붙이지 말라, 어린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 어린이를 나무라지 말라, 어린이를 고상하게 만들려 하지 말라, 무슨 일이나 어린이에게 억지로 시키려 들지 말라」이러한 그의 철학은 섬머힐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3. 부모들의 문제마지막으로 그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입장에 서서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들의 자녀가 일과 지식과 사랑에 있어서 자유로운 인간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행동할 것을 권한다. 문제아의 뒤엔 문제부모가 있다고 봄으로써,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가정에서의 불안과 갈등은 아이에게 공포와 여러 가지의 문제들을 일으키며, 불안과 갈등 없이 자란 아이는 모험심을 갖고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한다.이와같이 중요한 부모의 역할은 학교교육과도 반드시 연계되어 일관적으로 이루어질 때 아이는 올바른 자아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이상과 같이 섬머힐에서의 교육은 본래 선한 존재로서의 아이를 신뢰하고 그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율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전인적인 교육이었다. 그곳에는 교사로서의 권위도, 아이들간의 소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 자율적인 학교를 통해 성장하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