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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기형도론 평가A좋아요
    기형도- 그의 삶과 時 -Ⅰ. 序 論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기형도 시인, 나는 그의 이름도 그의 시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처음 접할 수 있었다. 그의 시는 김춘수나 김소월 혹은 서정주나 한용운 등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의 시보다 훨씬 더 암울했고 절실했다고나 할까. 혹자들의 평처럼 그의 시는 충분이 그로테스크했고 나는 그 분위기에 금새 매료되어 버렸다. 그가 살다간 80년대까지 마저도 말이다.시인 기형도의 죽음은 그의 시에 나타나는 현실인식과 더불어 우리 시대 삶의 위기에 대한 커다란 경종을 울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삼류 극장 안에서 극장 밖의 어두운 세계로 되돌아 나가길 멈추고, 조용히 죽어갔다. 폭력과 부조리가 만연된 극장 밖의 현실보다는 차라리 극장 안의 외설과 폭력으로 가득 찬 화면이 더 견디기 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그의 시는 이전에 사회변혁을 지향하면서 민중해방을 구가한 시들이 오히려 낭만주의적인 환상으로 비춰질 정도로 현실을 철저히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삶은 짧게 끝났지만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던져준 어두운 현실에 대한 고통의 반향은 10년도 훌쩍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다만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은 그 고통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루탄을 던지는 대학생들과 분신자살을 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너무 옛이야기가 되어서 오히려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80년대가 이럴진대 하물며 50년대의 동족상잔의 비극과, 40년대의 광복의 기쁨, 2~30년대의 민족적 수치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다.)다음 본론에서는 기형도의 시 세계를 살펴 보기 앞서 간략하게나마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는 작업은 시를 이해하는 모든 근거로 제시될 수는 없겠지만, 시를 이해하는 기본 바탕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Ⅱ. 本 論1. 기형도의 등장하는 시들에 많은 화초들이 등장하는 것이 이런 개인적인 체험이 뒷받침이 되었다고 여겨진다.누이들과 함께 마음에 맞는 책을 들고 호박씨나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쪽수가 비슷한 책을 찾아 누가 빨리 읽는지, 바꾸어서 내용을 알아 맞추기 따위의 놀이로 ‘흔해빠진 독서’를 했는데 꼼꼼한 책 간수, 밑줄 긋기, 책 모아들이기 등의 버릇은 이때부터 싹텄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집은 그의 여러 시에 나타나듯 외풍이 심한 ‘바람의 집’이자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으로 ‘바람 같은 그대 쪽으로’부는 들판이 보였으며 종내는 ‘빈집’―이사를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씀―이 된다.1969년 정초에 아버지가 갑자기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위험한 가계(家系)」中’이 쓰러지는 바람에 얼마 없던 전답은 아버지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어갔다. 어머니 장옥순 씨가 생계 일선에 나서고 누이들은 신문 배달 등으로 가계를 도왔다. 「엄마걱정」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등은 이 무렵의 체험을 시화한 것으로 보여진다.1973년 시흥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 신림 중학교에 입학했다.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노래와 그림에 재주를 보였고. 특히 만화를 잘 그려 수십 권의 만화책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이 빌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1976년 5월 16일 바로 위 누이인 순도가 같은 교회에 다니던 교인의 잘못으로 죽게 된다. 어린 날의 친구이자 보호자였던 누이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상당히 컸다. 형제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무채색 옷을 입음으로써 혹은 방황으로 각각 슬픔을 삭였다. 이 사건은 그의 감성에 깊은 상흔을 남겼으며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 하였다. 「나리 나리 개나리」는 그 때를 회상하며 쓴 시이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1976년 제 1회로 신림 중학교를 수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됐다. 2월 졸업과 동시에 신문사에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되었다. 문예지에 「專門家」,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白夜」, 「밤 눈」, 「오래된 書籍」, 「어느 푸른 저녁」을 발표했다.1986년 문화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문학과 출판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많은 문화관련 인사와 활발한 교류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작품도 발표하였다. 「위함한 가계? 1969」「조치원」「집시의 시집」「바람은 그대쪽으로」「포도밭 묘지1,2」「숲으로 된 성벽」등이다.1987년 여름에 짧은 유럽 여행을 떠났고. 「나리 나리 개나리」, 「植木祭」,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미빛 인생」 을 발표했다. 이 시절을 그의 동료인 바해현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기형도는 정치부에서 중앙청 출입기자로 활동하면서 신작시는 거의 쓰지 hat하고 등단 이전에 써놓았던 작품에 손질을 해서 발표했다. 반응은 본인이 기대했던 것만큼 조지 않았다. 그는 갓 등단한 무명시인 중에 하나였고, 정치부의 숨 가쁜 일상에서 시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는 좋은 신문기자보다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문화부로 옮기면서 그 희망을 비로소 실천할 수 있었다.1988년 여름에 대구, 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이때의 기록은 『짧은 여행의 기록』에 실려있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겨울版畵Ⅰ」, 「흔해빠진 독서」, 「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삼촌의 죽음-겨울版畵4」, 「너무 큰 등받이 의자-겨울版畵7」,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발표했다. 박해현에 의하면 이때는 정말 기형도에게 시의 폭죽이 터지던 시대였다. 김현은 이미 그때 《중앙일보》 문학월평을 통해 기형도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때 기형도가 바로 월평을 담당한 기자였는데 자신의 시가 크게 다뤄지사는 사람은 누구나 ‘쓸쓸한 가축’처럼 건너야 하는 ‘건대한 안개의 강’이라는 상징성을 띠면서, 안개는 샛강에 버티고 서서 이 읍 사람들의 바른 의식의 지평을 가로막는 ‘안개의 군단(軍團)’이라는 적대적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안개가 걷히고 이 읍 사람들이 경악하게 되는 것은 갇혀 있음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사물화된 삶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친화적 자연은 시인의 의식 속에서 모두 사물화되어 보인다. 밀폐된 삶의 천장(하늘)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으로 덮혀 있고, 그 위에 노랗고 딱딱하게 변한 태양의 그림자가 붙어 있을 뿐이다. 시적 화자의 이러한 상황 의식 속에서 ‘출근하는 여공들’의 웃음소리는 오히려 어둠을 환기시키는 이미지로 들린다. 그리고 안개의 어둠에서 풀려나면 밝은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아이들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안개’속을 둟고 다니는 읍 사람들의 생활은 습관이 됨으로써 ‘쉽게 안개의 식구’가 되어 송전탑 사이를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처음에는 적대적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안개는 공원(工員)들의 자동화된 삶의 틀 속에서, 감각이 마비된 사람들의 집단적 무의식이 되고 이들의 정체서을 가로막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의식의 안과 밖이 다 ‘안개’가 되었을 때, 읍 사람들은 안개를 의식하지 못하고, 시의 화자만이 그러한 안개의 부정적 존재를 뚜렷이 읽어낸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 화자의 눈에 비친 방죽 위를 걸어가는 공원들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 뿐만 아니라, 서로 경계하는 부정적 관계를 드러낸다.‘안개의 성역(聖域)’인 샛강에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차고’, 식물들 공장들 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그 은폐된 공간 속으로 끌어들여 모든존재 현상을 무화시킨다. 고체적 물질로 감각되는 은폐된 안개의 어둠 속은 여직공이 겁탈당하고, 취객이 얼어죽어 쓰레기로 취급당하는 윤리가 죽은 세계이며, 공장의 검은 굴뚝들이 하늘을 향해 죽음의 공해를 겨눈인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가늠할 수 없는 넓이로 바람은/손쉽게 더러운 담벼락을 포장하고/싸락눈들은 비명을 지르며 튀어오른다./흠집투성이 흑백의 字幕(자막) 속을/한 사내가 천천히 걷고 있다./무슨 農具(농구)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사내는/문닫힌 商會(상회)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빈 골목은 펼쳐진 담요처럼 쓸쓸한데/싸락눈 낮은 촉광 위로 길게 흔들리는/기침 소리 몇. 검게 얼어붙은 간판 밑을 지나/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이 밤,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꽝꽝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백야)/밟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눈길을 만들며/軍用(군용) 파파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白夜」전문-이 시에서처럼 기형도가 현실의 어둠을 직시해내는 시각을 지니게 된 것은 유년의 가난한 체험과 닿아 있다. 그는 아버지가 입고 있었던 군용파카를 전경화 시킴으로써 현재의 어두운 현실이 6 ? 25전쟁과 그로부터 비롯된 분단모순의 근원에서 조성되고 있음을 번역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직업을 잃고 노동판을 전전했던 아버지의 등에 업혀 추위와 배고픔으로 칭얼거렸던 자신의 유년을 새삼스럽게 기억한다. 현재 또 다른 의메엇 삶의 궁핍을 겪는 자화상을 전후(戰後)의 가난 속에서 아버지가 살아갔던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 무서운 백야’의 겨울밤, 그 극한 상황 속에서 휘적 휘적 방향도 없이 걸어가는 한 사내의 모습에서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형도에게 서울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인식되며, 무의식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서울을 떠난다.서울의 삶이 그에게 왜 분노와 외로움을 겪게 하는가는 시 「대학시절」에 잘 반영되어 있다.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그리고 졸업이었.
    인문/어학| 2004.06.21| 10페이지| 1,000원| 조회(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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