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1. 마르크스 엥겔스와 예술1) 마르크스 엥겔스의 생애와 미학칼 마르크스(1818 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 1895)는 라인주 출신이다. ■그들은 청년시대에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을 받아들여 스스로 '헤겔의 학생'이라고 일컬었다.1839년에서 1843년 사이에 포이어바흐의 [헤겔철학 비판], [기독교의 본질], [철학개조에 관한 임시 테제], [미래의 철학원리]등이 발표되었는데, 이들 저서에서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즉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여 '포이어바흐파가 되었다. 그들은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을 신봉할 때 헤겔의 사상을 초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신봉할 때도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초월했다.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과 그 책의 서문에서, 유물론에서 출발하여 헤겔의법철학을 비판하였다. 헤겔은 국가가 '시민사회'를 결정한다고 인식하였지만 마르크스는 그와는 상반되게 '시민사회', 즉 특정한 경제관계가 국가를 결정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청년시대부터 문예를 애호하고 문예창작활동에 종사하였으므로 문학예술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건립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은 과학적 문예이론 건립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세가지 구성부분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문예 문제도 동시에 연구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문예사상을 건립하였던 것이다.1844년, 마르크스는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역사의 수수께끼'의 해답을 탐구하였고 인간 본질의 형성 발전에 대해 논술할 때 인간의 심미감각 심미능력의 형성과 인간은 '미의 법칙에 따라 건조(建造)해 갈 수 있는가'의 문제에 언급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젠느 쉬 및 '진정한 사회주의자'의 정치경향과 창작경향을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론 가운데 현실주의의 기본원칙을 체현하였다.1자연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본질의 대상화란 인간이 노동을 자신의 지혜와 지능, 정신역량과 육체역량을 노동생산물 속에 응결시켜 노동생산물을 제2의 자아로 만들어 스스로 창조한 생산물로부터 자신을 직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우리들은 공업의 역사와 공업이 이미 생산해 낸 대상화된 존재들이 인간의 본질역량을 밝혀놓은 한 권의 서적이요, 우리의 눈앞에 감성적으로 펼쳐져있는 심리학임을 알 수 있다."(전집42권 127쪽) 여기서 말한 '공업이 이미 생산해 낸 대상화된 존재'란 인간의 물질생산활동에 의해 창조된 일체의 생산물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본질 혹은 본질역량의 감성적 체현이다. 마르크스는 또 예술과 문학같은 것도 인간 본질역량의 현실화요, 인간의 유적(類的)활동이라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제까지 모두 노동이요, 공업이었다"(전집42권 127쪽)라고 말했다. 이는 문학예술의 창작역시 일종의 생산활동이기 때문에 생산의 일반법칙, 즉 인간 본질의 대상화된 법칙에 똑같이 복종함을 말한 것이다.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르면, 물질생산과 예술생산은 모두 노동이며 인간본질역량의 대상화이다. 그렇다면 양자의 구별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비판 서문}중에서 인류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과학적, 예술적, 종교적 그리고 실천적 방식의 네 종류로 나누었다. 앞의 세 종류는 세계에 대한 정신인식을, 나머지 하나는 세계에 대한 실제개조를 가리킨다. 여기서 실천적이란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일종의 실천활동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인식과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인식을 실천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예술인식과 세계에 대한 실천적 인식을 물질생활과 구별되는 정신활동이라 했고 또 예술을 과학, 종교와도 구별하였다. 앞에서 분석한 것처럼 물질생산과 예술이라는 정신생산은 모두 인간본질의 대상화이다. 그러나 인식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르면 인간본질이 대상화된 내용 역시 다르다는데서 서로 구별이 된다. 물질생산의 대상헤겔의 견해는 정확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기본관점은 '독립 자족적'주체성격의 존재 여부를 한 시대 예술의 번영 여부를 가늠하는 조건으로 삼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성립되기 힘든 것이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 어느 시대건 인간은 모두 환경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 자족성'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인간의 완전한 '독립 자족'은 불가능했다. 둘째, 헤겔의 관점에 따르자면 '영웅시대'에는 오직 씨족의 우두머리만이 독립 자족성을 갖는다. 인류사회가 계급사회로 들어선 다음, 착취계급의 대표적 인물이 예술의 노래 대상이 되었고 노동인민은 작품과 무대 속에서 말단역으로 변하게 됐다. 이것은 원래 '역사의 전도(顚倒)'이다. 그런데도 헤겔은 이러한 '역사의 전도'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바, 이 점이야말로 헤겔의 계급적 한계와 그의 본색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셋째, 헤겔의 관점은 예술의 역사에 부합되지 않는다. '영웅시대'와 그리스의 노예사회에서 예술의 주요대상은 분명히 씨족의 우두머리나 노예주 가운데서 권세 높은 가족이었으나 유럽의 중세기에는 황제나 제후들을 묘사한 우수한 작품이 출현하지 않았고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즉 문예부흥시기에 이르러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보통사람들이 묘사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은 결코 '독립 자족성'을 갖춘 것이 아니었는데도 예술적 번영이 출현했던 것이다.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은 예술생산과 물질생산의 불균등 발전의 원인을 해석할 수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적유물론만이 '불균등'의 여러 가지 현상과 그것의 근본 원인을 밝힐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세가지 상황이 그것이다. 그와 동시에 예술은 그 자체의 상대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고, 계승 혁신하는 자체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의 예술번영의 가능성 여부는 단순히 그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귀감으로 삼을 만한 조건 여부에 의해서도 결정되어진다. 각 민족의 문화와 문예는 상호영향속에 있다. 특히물을 가리킨다.3)경향성과 진실성에 관하여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창작에 있어서 작가나 예술가의 계급적 입장 및 세계관과 정감의 작용을 중시하는 한편, 작품의 사상적 정치적 경향성 또한 중시하였다. 엥겔스는 문학과 예술의 특징에 근거하여 경향성이 반드시 형상속에 용해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다시말해서 엥겔스는 현실주의의 특성에 입각하여 경향성은 현실관계에 대한 진실한 묘사와 상호통일, 즉 생활에 대한 묘사와 생활 그 자체 발전의 논리를 통해서 일정한 경향을 표달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창작에 있어서 이상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 엥겔스는 모순과 갈등에 대한 미래의 역사적 해결책을 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를 떠나 경색되게 독자에게 제시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였다.엥겔스는 생활에 대한 진실한 묘사를 떠난 경향성이나, 작가로서의 재능의 부족을 정치적 암유(暗喩)로 보완하면서 모두들 두려워하는 반정부적 정서를 표현하는 이른바 '경향문학'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2.마르크스주의 미학Marxism은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협력으로 만들어 낸 사상가 이론의 체계로 헤겔, 포이에르바하 등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그 중에서도 특히 리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 . 통일시킴으로써 형성되었다.마르크스주의 미학의 반영이론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노동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현실을 보고 느끼고 듣게 함으로써, 어떠한 형태보다도 현실의 본질과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이는 노동자계급이야말로 혁명의 유일한 주체세력이고, 이 계급의 투쟁으로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혁명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한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와 통한다고 하겠다.마르크주의적 미학에서 본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주관적 작품들이나 사회로부터 개인을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예술적인 경향들이 현상을 부단히 강히 객관적인 현실로만 묘사하지 말고, 혁명적인 삶의 전 개에서의 현실을 포착해아 한다고 주장하면서 바람직한 공산주의 미래를 예견 할 수 있게 하는 예술적 경향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공식화 했다.스탈린 시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당의 엄격한 문화정책에 의한 개인 숭배 로 특징지워진다. 스탈린과 레닌이라는 지도자의 인간성이 지나치리만큼 미화 된 형태로 인민들 앞에 회화나 조각으로 제시된 것이다. 자본주의와 파시즘 같은 일체의 현상에 대한 투쟁의 사회정책적 주제, 그리고 집단주의의 천명과 개인적 이기주의 배제 등이 너무 이상화되어 고유한 시대 문제 등에 대해서 는 침묵화되어 고유한 시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직 혁명의 미래상 이나 집단의식으로 이뤄진 공동체만이 부각된 정도이다.사회주의의 영웅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당에 복종하고 사회주의 노동에 열성을 보임으로써 탈개인주의화된 화신인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와같이 이상 화되고 이데올로기적 전형화로 인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적인 모든 문제 를 성실하고 솔직하게 묘사하려는 서구 예술학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현실적 인 갈등을 주제로 삼아 고찰하려는 입장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곳곳에서 생겨 났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에서 두드러졌다. 특히 조형예술 분야에서는 60 년대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변화를 본질적으로 저해하려는 움직임 이 다른 세계의 예술사 전개와 동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최근의 새로운 발전적 시각은 무엇보다도 헝가리, 폴란드, 그리로 동독에서 이뤄졌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이미 50년대 초 일련의 예술가들이 서구 양 식과의 연결을 시도했는데 그 때문에 국외자로 취급받았다. 그와 달리, 동독에 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70년대 이후 관료적 문화정책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꺼이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데올로 기적인 테마를 유지하는 한에서 현실주의적인 회화기법의 폭을 넓히고 다양화 시키려 했다. 시민예술의 다양한 품목들로부터 도상들이 결합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