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우리는 소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배워 왔다.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삶의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기에 소설은 그 의미를 가진다고 소설이란 장르를 처음 대면했던 어린 시절부터 배워 왔다.매일매일 치열하게 호흡하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실이나 몇 년 전 조선 시대의 현실이나 그 중량감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본고는 칼의 노래의 큰 특징으로 꼽히는 문체를 비롯 시점과 배열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2.1. 그의 문체칼의 노래를 읽어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문체다. 이순신은 난중일기 들을 통해 예의 그 날카롭고 분명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 바 있다. 이른 바, 무인 된 글쓰기라는 것으로 사적인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한 일지 성격에 가까웠다.김훈의 문체는 되도록 간명하고 뚜렷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단문으로 일관한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새롭다는 느낌을 주었다. 헤밍웨이도 지독할 정도의 단문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꽤 오래 전에 읽어서인지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헤밍웨이의 문장은 약간 무미건조하고 까탈스러웠다. 반면에 김훈의 문장은 날카롭지만, 툭툭 끊어진다. 물국수를 먹을 때 부은 면발이 끊어지듯이 말이다. 현대소설의 문체는 간결하고 직설적이며 또 일상적 문어체이다. 소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는 간명한 묘사를 선호한다. 수식어의 사용을 억제하며, 과장을 기피한다. 그대신 현대 소설의 문체는 개성적이다. 현대소설에서는 문체의 개성이 매우 존중된다. 김훈의 문체는 이런 현대소설 문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물국수의 부은 면발이 떠오르는 것일까. 우리는 고전소설이 대부분의 상황과 인물을 과장하고 있는 반면 현대 소설은 사실적이고 어느 면에 있어서는 위축되어 있다고 배웠다. 칼의 노래의 경우는 현대소설적 특징을 지니지만, 고전소설적 배경과 인물을 다루다 보니 문체가 받혀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장이 많다 보니 완결된 형식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 많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호흡이 길어 전체 문장이 하나의 추상화로 남는다. 전반적인 과잉이다. 뚜렷한 그림을 확대해 나가면 어느 부분을 지시하고 있는지 혼동하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본다.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문체의 시도는 우리 소설에세 꽤 중요하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서술자의 역할이 크고 수사가 긴 우리 소설에서 이런 새로움은 반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2.2. 시선 또는 시점이 소설은 철저하게 이순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형식이다. 서술자의 개입 없이 내적 독백이나 생각 위주로 이야기에 진행되기에 ‘의식의 흐름’ 기법이 생각난다. 이런 시점은 독자와 작중 인물간의 친밀도를 높인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의 삶에 집중했기에 흡입력이 높다. 이순신이라는 비극적 영웅은 우리에게 강건하고 굳센 아픔이 없는 사나이였다. 하지만, 난중일기를 보면 일지의 성격이 컸음에도 그의 아픔이나 눈물이 적지 않게 녹아 있다. 이 소설처럼 인물에 집중하면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개인의 삶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진다. 이 소설에 드러난 이순신의 모습이다.……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교서 아래서 잠 깨는 새벽마다 어둠 속에서 오한이 났고 식은땀이 요를 적셨다. (1권 pp. 78~79)새벽에 쌀밥과 소금에 절인 배추와 쇠기름 뜬 무국으로 군사들을 먹였다. 연안 읍진들의 군량은 바닥이 났고, 백성이 없는 내륙 관아에서 군량은 오지 않았다. 밥이 모자라 그릇마다 수북이 담아주지 못했다. 밥 주걱응 쥔 배식 군관들의 팔이 떨렸다. 배마다 찐 고구마와 말린 미역을 실었다. 바다에서 점심을 먹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밝은 날 아침에, 바다 위에서 적의 군량으로 나의 군사를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먹일 필요가 없을 것인지를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명량의 물길은 엎치락뒤치락 네 번은 바뀔 것이었다. (1권 p. 98)면의 죽음을 알아챈 종사관과 군관들은 내 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옆방에는 종사관 김수철이 보고 서류를 부시럭거리고 있었고 마루 밖 댓돌 앞에는 창을 쥔 위병이 번을 서고 있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 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1권 p.154)몇 부분만 보더라도 그가 광화문에 세워진 동상처럼 근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처럼 공포를 느끼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는 너무나 평범한 존재. 그 평범함으로 명량에서 적을 맞았을 때 그도 물론 두려웠을 것이다. 일자진으로 적을 맞는 부분에서는 내 소름이 돋았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작가의 역량이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고 마는 사실을 한번쯤 되돌아보게끔 해 준 그의 통찰력이 부럽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 싸인 상황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이순신의 삶이 눈물겹다.2.3. 선택과 배열에 대하여서사를 만드는 일은 곧 선택과 배열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쓰는 이가 어떤 식으로 선택과 배열을 하는가에 따라 그 서사의 의미와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선택과 배열은 문체를 결정하는 한 요소이기도 하고, 또 의미를 형성하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특히 배열은 구성의 문제와 직결됨으로써 동일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담화의 모습을 크게 바꾼다.이 선택과 배열의 문제는 칼의 노래에서 매우 중요하다. 위의 말처럼 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그날 밤, 내륙 깊숙한 곳 남원이 함락되었다. 조선 관민 4천과 명군(明軍) 3천이 전멸되었고 살아남은 백성들은 흩어졌다. 남원을 무너뜨리고 나서 육지의 적들은 전주로 향했다. 밤새 바람이 불었고 새벽에 비가 내렸다. 배설을 잡지 못했다. 저녁때 여종을 불러서 머리의 서캐를 잡게 했다.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배설을 잡지 못했다.이 부분은 직접적으로 배설에 대한 이순신의 분노를 야기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문체와 이어져 과잉의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간을 통해서 독자의 서사적 추론을 통해 감정을 따라가게끔 한다. 호흡이 길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집중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런 부분들은 자주 등장한다. 몇몇의 소제목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적은 오지 않았다’ 라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통일성을 확보하고 긴장된 이순신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강점이다.3. 결론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나도 이따금 징징징 울리는 칼의 노래 혹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육사님의 절정이라는 시도 계속 맴돌았다.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디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서릿발 칼날진 곳에서 강철로 만든 칼로 무지개가 아니라 무인 된 자로서의 자연사를 꿈꾸었던 이순신은 소설 속에서 자연사했다. 작가는 이순신의 개인적 삶에 집중했고, 이순신은 자신 앞에서 죽어가는 적과 백성들, 임금의 개인적 삶에 집중했다. 그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개별적인 죽음들을 이해하고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도 이런 성웅의 인간적 고민을 드러내고 그 고민의 극복을 통해 오히려 더 강한 이순신으로 부각시켰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전형적인 고전소설적 배경과 주인공으로 빚어낸 현대소설. 절반의 성공이다.PAGE PAGE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