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의 『인생』을 보고과 목 : 중국바로알기학 과 : 중어중문학과학 번 : 9810170이 름 : 윤희정제출일 : 4월 8일교수명 : 류창교 교수님"인생"은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감독인 장예모 감독에 의해 소설 '살아간다는 것'이 영화화된 작품이다. 아름다운 영상, 절제된 대사로 장예모 감독은 특유의 연출법으로 중국 현대사의 모습을 한 가족의 '인생사'를 통해 단면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이 영화속의 내용은 크게 네 무대로 나뉘어져 이를 토대로 시간상, 공간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봉건제 아래서 부패해가는 지주계급인 복귀의 방탕한 생활을 그린 40년대, 대약진 운동을 그린 5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한 암울한 60년대, 마지막 대목인 70년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화면만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지난 50여년 동안 중국에서 일어난 국공내전, 중일전쟁,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을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각 시기에 중국에서 주창한 혁명노선과 정부의 방책, 그로 인한 중국 전인민들의 고난과 고초, 미래에 대한 막연한 인민들의 희망등을 느낄 수가 있었다.인생을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복귀의 그림자극 놀이다. 장예모는 패왕별희에서 경극을 알린 것과 같이 그림자극 놀이라는 것을 통해서 중국적인 것을 알리고자 한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많은 민중예술 중에서 '그림자극'을 택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그림자극을 통해 복귀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복귀의 인생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그림자극 속의 꼭두각시 같다. 단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헤쳐나간 적이 없다. 도박에서 지는 것도, 국민당군, 공산당군에 차례로 부역하는 것도, 그리고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든 상황이, 현실이 그를 그렇게 몰고갔을 뿐이다. 또한 영화에서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림자극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복귀가 그림자극을 공연하던 중 국민당군대의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되는 장면인, 그림자극이 비춰지고 있는 조그만 스크린 한가운데를 찢는 총검의 칼날은 국공내전을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복귀는 전쟁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나중에 공산당군에 잡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상황에서 춘생과의 전우애라는가, 공산당(혁명군)의 당위성을 표현해내고 있다. 국민당군에게 벗어나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는 장면에서 공산군은 굶주린 사람에게 뜨거운 만두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여비를 주는데, 여기서 중국 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복귀는 공산당에게 개인적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공산당에게 그림자극을 공연한 대가로 준 혁명증서를 액자에 넣어 보관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영화를 통한 대약진 시기는 시대상황은 암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밝고 희망차 보였다. 온통 강철을 만드는 작업에 매달려 때로는 작업장에서 쓰러져 자기도 하고, 온갖 열의를 다 보인다. 곧 공산주의를 달성하고 미국과 영국을 따라잡아 경제성장을 이룰 것 같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아들 유경이 죽고만다. 남녀노소 할 거 없이 재철, 제련 작업에 참여했는데 유경도 예외가 아니었다. 피로에 지쳐 잠든 아들을 깨워 학교에 보냈는데 후진하는 현장의 차에 치어죽었던 것이다. 피곤해서 담장 밑에 누워자는데 현자의 차가 담장을 들이받아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죽는다. 유경을 업고 시골길을 걸으며 나는 병아리는 커서 닭이 되고, 닭은 다시 양이 되고, 양은 마침내 황소 되고, 황소는 사회주의가 되며, 사회주의가 되면 매일 고기와 만두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유경의 죽음을 통해서 부정된다. 장예모가 대약진 시기를 무사히 넘기는 듯 하지만, 비판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봉하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봉하가 병원에서 출산하는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복귀의 딸 봉하가 다리를 저는 기술공인 호위병 청년 만이희와 결혼을 하게되는 것으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는데, 봉하는 얼마 후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게된다. 이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거리에서 지식인을 비난하는 글이 적힌 푯말을 목에 걸고 굶어 쓰러져 있는 늙은 의사를 데려오게 된다. 갑자기 많은 하혈을 하게 된 봉하에게 의사가 필요했지만 유일한 그 의사는 이희가 사다준 만두 7개를 급히 먹느라 쓰러져 있어 봉하를 도울 수가 없다. 결국 봉하는 숨지고 복귀는 대약진과 문혁으로 인한 새조국 건설을 위해 유경과 봉하를 바친 셈이다. 광란의 중국 역사를 보는 감독의 눈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의사가 있지만 결코 도움이 안되고, 자신만만한 홍위병 여학생 의사가 있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