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노버트 엘리아스 옮긴이:유희수 출판사:신서원2001104012 역사교육과 박 희 진대학국어 과제문명화 과정- 매너의 역사저자 노버트 엘리아스(1897~1990)는 독일의 역사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프랑스 아날 그룹에 의해 재평가 되면서 엘리아스가 유럽지성게에서 각광을 받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엘리아스는 아날 의 1세대인 뤼시앙 페브르 맡 마르크 블로크와 거의 같은 시대에, 심성사의 개척자 였다. 엘리아스는 심성사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70년대 프랑스 역사학계, 아니 좁게는 아날 그룹의 방향에 부합한 선구자요 지적 동료 였다. 사회학을 본령으로 하여 출발한 엘리아스와 역사학에서 출발한 아날 의 심성사가들이 만날 수 있는 공통장소 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 즉 일상적 삶의 구조에 대한 역사적 탐구였다.그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대학원과정을 밟으며 이 대학에서 칼 만하임을 만난다. 후에 1933년 파리로 망명을 하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두 해 후에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유대인 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대영박물관에서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이 곳에서 그의 연구 주제는 19세기 자유주의 였다. 자유주의의 기원을 탐구하던 중 그는 궁정예절 예절 문명화 와 같은 말들을 여러 책에서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그는 어러한 말들의 역사적 형성과 사회적의미에 대한 호기심에서 옛날의예절서들을 탐구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즉 육체와 물리적 생존에 대한 유럽인들의 감수성이 중세 이래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이 책은 역사학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론적이고, 정치학 이라고 하기에는 너구나 역사학적이며, 심리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회학적이었다. 그는 사회구조 변동에서 상부구조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그는 비자본가 계급인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인간결합체 를 매개로 한 국가형성과 문화적 모델의 성층화된 하향적 전파 사이의 역사적 연관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모델을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사가들에게 제공해 준다.그의 기본적인한다. 이후의 단계는 전문 부르주아 산업사회 단계이다.서양사의 과정은 적어도 중세 이래 현대까지 매너의 세련화과정인 동시에 본능적 충동의 억압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얻은 것은 세련된 행동양식이요, 잃은 것은 자연스런 삶이다. 문명화된 세계의 삶은 바로 정신에게는 가혹한 삶이다. 이것이 바로 엘리아스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문면화의 역설 이다. 저자는 문명화과정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이 역설에 대한 자각적 통제가능성을 주장한다.그는 오늘날의 사회사가들이 지양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를 총체적 으로 인식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회적 영역 을 고려하면서 사회현길의 상이한 수준의 상호의존과 발전노선의 복합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를테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행동적인 것, 사회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사이의 얼크러진 관계를 드러잰다. 다른 하나는 그가 사회현실을 하나늬 과정 으로 인식하면서 사회학자의 관점과 역사학자의 관점을 종합했다는 점이다.이 연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문명화된 서양인의 전형적 행동양식들이다. 그가 그 자신의 문명 기준으로 무엇을 이해하든 간에 서양사의 이러한 지나간 단계의 사회가 오늘날의 서양사회와 동일한 의미와 정도로 문명화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확실하게 느낄 것이다.서양의 이러한 문명화 는 과연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그리고 그 원인이나 원동력은 무엇인가?독일과 프랑스에서 문명 개념에 부여한 상이한 의미와 평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제 1부는 이 문제에 대한 탐구로 채워졌다. 양국에서의 문명 개념보다 좀 덜 엄격하고 덜 자명하게 대립되는 것으로서 독일의 문화 개념과 프랑스의 문명 개념은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인들의 행동과 정서적 삶이 중세 이래 어떻게 서서히 바뀌었는가에 대한 좀더 명확한 상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문명화의 심리적 과정에대한 이해의 길을 열어주려 노력했다.제2부는 일련의 수많은 실례들을 담고 있다으로는 지적 예술적 종교적 사실들을 가리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류의 사실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사실들 사이를 날카롭게 구분한다.프랑스와 영국어법에서 문명개념은 업적들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이것은 또한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겋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양식 도 가리킨다. 독일의 문화 개념에서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본구적 가치보다는 특수한 인간적 산물의 가치와 특징을 의미한다.이 두 개념 사이의 이러한 차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문명 개념은 하나의 과정이나 적어도 한 과정의 결과를 의미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전진 해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들판의 꽃돠 비슷한 인간의 산물들, 즉 한민족의 개성이 표현되어 있는 예술작품이며 저술이며 종교적 도는 철학적 체계등을 가리킨다. 민족들의 자신감의 표현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문화 개념은 민족적 차이와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을 특히 강조한다. 주로 이 때문에 그것은 민족학적, 인류학적 연구와 같은 분야에서 이 개념이 발생했던 독일어권과 상황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 중요성을 띤다. 문명개념이 식민집단의 지속적인 팽창주의적 경향을 표현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문화 개념은 정신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국경을 늘 새로이 추구 설정하고 우리의 주체성을 과연 무엇인가? 라고 거듭해서 자문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 민족의 자의식을 반영한다.이와같이 문화 와 문명 같은 개념들이 나타내는 민족적 자화상은 서로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그들의 문화 와 문명 을 이를 통해 인간세계 전체를 바라보고 판단하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간주하는 데 언혀 인색하지 않다.이 두 개념은, 종족이나 종파, 학급이나 단체 같은 어떤 소규모 집단에서 이따금 등장하는 은어들처럼, 자기들끼리는 그 의미가 잘 통하지만 국외자에게는 어리 이해되지 않는 말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이 말들은 공통의 경험에 근거하여 구체성을 띤다. 이할들은 이 말들을 쓰는 집단이는 독일의 통일을 적어도 얼한 지적인 분야에서만이라도 확립하려고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유식한 중산층 출신의 재후의 시녀들 이다. 문화 의 개념은 이와 동일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모비용이후 40년이 지나고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780년- 프랑스와 영국이 그들의 문화적 민족적 발전의 결정적 단게를 이미 거치고, 이 두 서양국가의 언어는 그들의 고전적, 영속적 양식을 오래 전에 발견했던-에 프리드리히대제는 독일 문학론 이라는 저술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그는 독일문학의 미숙한 발전을 개탄하고, 독일어에 대해 모비용과 대체로 동일한 주장을 피력하며, 이러한 개탄스러운 상황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를 그 나름대로 개진한다.프리드리히의 예연은 옳았는가? 그의 책이 나온 지 1년 후인 1781년에 쉴러의 군도 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이 나오고 뒤이러 1787년에는 쉴러의 돈키를로스 와괴테의 이피게니 등이 나왔다.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독일문학과 철학의 완전한 만개가 프리드리히 이후 줄을 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예연을 확증새 주는 듯하다.그러나 이 새로운 만개는 오랫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쳤었다. 독일어가 2~3년 만에 새로운 표현력을 잘 생산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문학론 이 나왔던 1780년에 이미 독일어는 프리드리시가 말하는 반 야만적인 방언 이 아니었다. 오즐날 회고적 입장에서 우리가 상당한 비중을 두는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가 그 전에 이미 등장했었다.프리드리히는 말한다. 하층계급에 대해 말하고 난 다음, 나는 대학에 대해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게 계속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당사자는 프러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발전을 위해, 그리고 아마도 간접적으로는 독일의 정치적 마련을 위해, 동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가 그 속에서 성장하고 그를 통해 드러낫던 지적 전통은 유럽의 상류사회 에 공통되는, 국민적 단계 이전의 궁정사회의 귀족적 전통이다. 그는 궁정사회늬 언어인 불어를 사용한다. 그는 궁정사회의히 이 계층 여성들의 정서적 조건의 특징 귀족에 대한 특유한 양면적 태도 독일 대학은 어떤 의미에서 궁정에 대한 중산층의 대응물이었다.카롤리네 폰 볼쪼겐나를 불행에 빠뜨렸던 궁정사회로부터 너를 멀리 떼어놓지 않을 수 없었던 나의 신중함에 대해 난 고마움 같은 것을 느낀다. 정신의 참되고 건전한 형성이 상류사회에서는 어렵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너는 여론에 따라 이리저리 춤추는 작은 인형이 되었을는지 모른다.나는 속된 사람들의 언어와 전통적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습관적으로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힘 안들이고 적응을 하는 많은 일들이 나의 소박한 원리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보인다. 배반당한 소녀를 애닯어하고 사기꾼을 증오하며, 명예보다는 덕을, 덕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더 중시한은 것이 나에게는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이러한 사회의 판단기준에서는 이 모든 개념들이 전도된 것을 나는 깨달았다.재후는 나이가 60~70세 가량이었다. 그는 뻣뻣하고 낡은 프랑스 예법으로 자신과 타인에서 고압적이었다. 이 프랑스 예법이라는 것은 독일제후의 자손들이 프랑스 왕의 궁정에서 배워,약간 천박해진 형태로 그들 자신의 토양에 이식시킨 것이다. 제후는 이렇게 무거운 예복차림을 하고서도 거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습관적으로 배웠었다. 부인들에게 그는 옛날 기사시대의 우아하면서도 지나친 궁정예법을 준수했기 때문에 부인들로부터 배척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고는 한순간이라도 섬세한 매너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자식들은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폭군의 모습을 보았다. 궁정 사람들 사이의 모습이 나에게는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가엾기도 했다. 그들이 그들의 영주가 나타나면 심장에서 손과 발끝까지 즉각 동원하는 공손함이며, 전기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 그들의 몸을 관류하는 인자하거나 화난 눈초리며... 제후의 입술에서 가장 최근에 말에 그들의 의견을 즉각 짜맞추는 행동 등-이 모든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