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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사회] 대북포용정책에 대하여
    Ⅰ. 서론 (序論)대한 민국의 김대중 정부는 지난 98년 2월에 출범한 후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을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대북 정책의 목표를 가지고 대북 포용 정책 즉 햇볕 정책 을 줄기차게 전개해 왔다. 여기서 햇볕 정책이라 함은 김대중 정부가 처음으로 추진하던 대북 정책으로 남북한 긴장 관계를 완화하고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한 화해와 포용 자세로 교류 협력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다. 햇볕 정책 (sunshine policy)이란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4월 3일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그때부터 정착된 용어이다.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든 것은 강한 바람(강경 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유화 정책)이라는 이솝우화에서 인용한 말이다.현재의 노무현 정부 하의 참여의 정부 또한 평화 번영 정책 이라는 타이틀을 내놓고 한반도의 냉전 해소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번영 정책 차원에서 대북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참여 정부는 지난 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국민의 참여 라는 폭을 좀 더 넓히려는 정책으로서 남북 관계를 재조명하고 있다.앞에서 밝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양쪽 모두 대북 정책에 대해서 경제 협력과 인도적 차원에서 햇볕 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물론 햇볕 정책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햇볕 정책은 이익과 손해, 찬성과 반대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정책 추진자의 강력한 소신이 있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이제부터는 대북 포용 정책(햇볕정책)에 대한 나의 소견을 펼쳐 보려고 한다.Ⅱ. 본론 (本論)먼저, 햇볕정책에 대한 나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여기서 확정적으로 내가판단을 내릴 수 없는 까닭은 서론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대북 포용 정책은 장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은 김대중 전 정부의 타이틀인 햇볕정책 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당면 안보 현안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여건 조성에 주력하는 것을 말한다.즉 국민의 정부 의 햇볕 정책은 북한이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북한의 변화 촉진을 위하여 남북한 관계를 북한의 존재 인정과 함께 향후 중장기적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 문제라는데 초점을 두고 추진된 정책이다. 햇볕 정책은 먼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 협력을 통하여 북한을 변화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평화와 공존을 이루려는 정책이다. 국민의 정부 는 이 속에서 무력 도발의 불용, 흡수 통일의 배제, 그리고 화해와 협력의 적극 추진이라는 대북 정책의 3대 기조 아래 남북한간의 긴장과 소모적인 대결을 지양하고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이러한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방향으로 북한의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남북한간 교류 협력을 증대시켜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여 점진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한반도는 탈냉전 시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결과 반목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대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 관계를 언제까지나 소모적인 대결 상태로 내 버려 둘 수는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햇볕 정책 의 대전제는 따뜻한 햇볕을 비추어 북한에 대한 포용을 추진하면 결국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데 있다.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나는 햇볕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햇볕 정책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남북 관계가 분야별로 일상화·제도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의 일관된 추진에 따라 남북 대화, 남북경협 등 각 분야의 진전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남북경협 차원에서는 3대 경협 사업의 부단한 진전이 큰 성과를 이루었다. 먼저 남북간의 철도(경의선)와 도로를 연결하여 남북간의 접촉과 교류의 활성화를 촉진시켰다. 다음으로는 개성 공단을 건설하여 남북 경제 협력의 실험의 장으로써 발 돋음 시켰다. 마지막으로 금강산을 관광 특구로 개발할 수 있도록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시켰다.둘째로,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을 위한 군사적 분야의 협력이 진전됨으로써 경제와안보의 균형적 발전의 계기 마련된 점을 들 수 다. 그 예로는 북측 장전항 및 개성개방, 군사 직통 전화의 개통 등을 들 수 있다.셋째로, 특히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에 따른 남북 출입 사무소 개설과이산 가족 문제 해결의 제도적 장치인 이산 가족 면회소 건설 합의 등은 남북 관계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다른 장점 보다도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넷째로 북한내에서도 경제·사회 부문에 있어서 의미 있는 변화가 진행 중이다. 부분적으로 시장 경제 요소(임금·물가 현실화, 기업 자율성 확대, 종합 시장 개설)를 수용하고, 경제 연수단 및 법률 연구단의 베트남 파견 등을 통해 시장 경제 체제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대북 지원은 우리 경제를 보다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순기능 적인 측면도있다. 지난 1970년대 초 서독이 소련에서 천연가스를 싼 값으로 수입하려 했을 때,서독 내에서도 적대 국가인 소련으로부터 사 올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서독은 천연가스를 통한 소련과의 경제적 보완관계가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논리로 반대론자들을 설득시켰다. 이후 서독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소련을 상대로 통일 과정을 협상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위와 같은 여러 성과들로 인해 남북간에 흐르던 긴장감이 다소 완화되었으며,서로의 신뢰를 회복하여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한반도화 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남북한간의 정치적신뢰, 특히 남측의 햇볕 정책에 대한 북측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햇볕에는 물론 검은 그림자가 뒤따르듯이 대북 포용 정책이 가져다 준 한계와 문제점도 존재한다. 그동안 펼쳐 온 햇볕 정책은 남북한 서로간의 협력 모드가 아닌 남한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짝사랑식 정책이라고 할 수있다. 즉, 대북 주도권의 상실을 언급할 수 있다. 협상을 통해서 북한의 대남 적화야욕을 무력화시켜야 하고, 협상을 통해서 우리의 주권을 표출해야 하고 협상을 통해서 북한의 체제적 전환을 시도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의 체제를지키고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협상 전략내지 통일 전략이 필요하지만 햇볕정책은 다양한 협상 전략의 개발과 시행을 가로막고 있는 본원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본다.현 대북 정책이 발산하는 문제점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정책에 대한 극단적인 여론의 분열 현상이라고 하겠다. 햇볕 정책에 대한 의견의 극대적 양분화는 대북 협상 추진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북한의 오래된 대남통일 전선책 등을 보다 강화 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정부는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여 보수와 혁신을 함께 어우르는 정책 개발에 대한 새로운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이유에서이든 북한은 체제 수호를 위해 스스로 움츠러들던 과거와 달리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국제무대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본질은 북한의 두터운 외투를 벗기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북한의 체제 변화를 목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북한은 체제 변화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햇볕정책의 열매만을 따먹으려고 하는 상황도 우려하는 바이다.이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한반도 경제 공동체 내지는 동북아 공동체 형성 이라는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검토해 봐야 한다.경제 협력 차원에서의 대북 지원은 경쟁력 없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고 대북 진출을 활성화 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 경제 관계의 보완성 내지는 호혜성을 높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남한와 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북한은 경제적 열악을 넘어서 아사(餓死) 상태로 돌입한 한민족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해외의 아프리카 지역의 난민들 수준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에 준하게 불쌍한 우리의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고,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언어·글을 쓰고, 우리와 피를 함께 나눈 동포들이다.
    인문/어학| 2004.06.18| 5페이지| 1,0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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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정보검색,문헌정보] 검색엔진 성능 평가 평가D별로예요
    【 인터넷 검색 엔진의 성능 및 효율 평가 】검 색 일 자 : 2004년 6월 6일 일요일검 색 단 어 : 1단계 - 봉사2단계 - 사회 봉사3단계 - 사회 봉사 단체사용한 검색 엔진 : ◎ 구글 ( http://www.google.co.kr )◎ 네이버 ( http://www.naver.com )◎ 엠파스 ( http://www.empas.com )◎ 야후 ( http://kr.yahoo.com )◎ 심마니 (http://www.chol.com/)Ⅰ. 들어가며오늘날 인터넷은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와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공공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웹사이트가 많아지면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수많은 각종 사이트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 검색할 필요가 점차 증대됨에 따라 1994년 상반기부터 웹사이트들을 검색할 수 있는 1세대 웹 검색 서비스가 출현하였다. 이 서비스를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에서 흔히 사용되는 'DB 엔진' 이라는 용어에 착안하여 검색엔진(Search Engine)이라고 통칭한 것이 웹 검색엔진의 시작이다.다양한 검색 엔진을 적절히 활용하여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는 능력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필수 항목이라고 볼 수 있다.Ⅱ. 5가지 검색엔진들의 성능·효율 - 웹페이지 검색{{◎ 구글 ( http://www.google.co.kr )1) 소개; 구글(Google)이라는 말은 미국 수학자인 에드워드 케스너(Edward Kasner)의 조카인 밀튼 시로타(Milton Sirota)가 만든 "googol"이라는 신조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10의 100승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의 광대한 정보를 구글이 모두 담겠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2) 특징: 구글의 복잡하고 자동화된 검색 방법은 인간이 간섭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른 검색 엔진과 달리, 구글은 누군가가 순위에 더 높은 자리를 사거나 결과를 상업적으로 바꿀: 1단계 봉사 라는 단어로 검색을 한 결과 총 봉사에 대한 약 371,000개 결과들이 나 타났다. 그 중 제일 첫 번째로 등록되어 있던 봉사네트 라는 결과는 찾고자 했던 정 보원이 였기 때문에 검색의 정확률이 높았다. 의아했던 점은 2단계인 사회봉사 라는 단어로 검색을 한 결과가 총 약 56,700개 결과들이 나타났으나 이전에 이루어졌던 1 단계 검색 결과의 정확률 보다 더욱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이화여자 대학교 사회봉사센터 home.ewha.ac.-kr/~sscenter 등 각 대학의 사회봉사 프로그램 의 내용들이 검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결과인 ww.samsunglove.co.-kr 이 라는 결과는 확인 결과 열람하기 위해서는 따로 보안 인증을 받아야만 볼수 있게 되 어 있었다. 대부분이 각 대학의 사회봉사 학점에 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었다.3단계 사회봉사단체 라는 단어의 검색 결과 총 약 96,700개 결과들이 나타났고 예 상대로 가장 높은 정확률을 보였다. 안타까운 점은 첫 번째로 검색된 결과인 나누는 삶 캠페인 시리즈 라는 결과가 연이어 2번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었다.검색 과정에서 보여준 결과들에는 마지막 부분에 저장된 페이지 와 비슷한 페이 지 들이 링크되어 있어 검색의 용이성을 높여 주고 있었다. 저장된 페이지는 미리 검 색된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실행되었고 비슷한 페이지는 클릭 해보면 원래 검색 했던 검색어와 일치하는 문서를 찾아 주는 역할을 해내었다.구글에서는 특이하게도 1단계(한단어)에서 50%이상의 정확률을 보여주어, 과연 전 문 검색 엔진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이 일반 이용자에게는 가장 유 용하게 작용할 수 있어 손쉬운 검색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 http://www.naver.com )1) 소개; 삼성 SDS 정보 기술 연구소의 검색 엔진 팀인 웹글라이더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 을 통해 독립하게 된 네이버 포트 팀이 개발한 검색 엔진으로 현재 1백 60만여 개의 웹 사단체; 검색된 결과를 나타내는 2개의 페이지(20개) 중 6개의 관계되는 결과 나타났다. 즉 30%의 정확도를 보임.4) 평가; 세가지의 검색을 실행한 결과 네이버는 내가 원하던 정보의 검색 정확도가 매우 낮게 나타났다. 1단계에서는 총 536988 건이 검색되었는데 웹문서 정렬 방식을 유사 도 순 과 인기도 순 으로 각각 설정하여 정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정확률이 1·2 단계 모두 10%를 넘지 못한 까닭은 검색 결과 중에 한글 문서로 작성된 파일들이 과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예로는 봉사 활동 우수 사례(hwp) , Ⅱ. 봉사 체험 활동(hwp)'등이 있다. 또한 중복되는 결과가 함께 나타나고 있어 더욱 더 정확률을 떨어지게 하고 있었다.마지막 단계인 3단어 검색으로도 필요하지 않은 한글 문서 파일이나 아크로벳 이미 지 파일등이 나타났고 오히려 검색 결과가 2번째 페이지에서 더 정확한 검색이 나타 났다. 그리고 첫 번째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는 메뉴바 , 무료 홈페이지 제작의뢰 등 전혀 상관없는 결과가 어이없게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3단어씩이나 검색어 를 주고도 30%의 정확률 밖에 제공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네이버에서는일반 이용자들이 다양하고 정확한 검색 결과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검색엔진으 로서 제구실을 못한다고 보았다. 유사문서 검색 과 미리보기 같은 링크는 이용자들에 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 효율성이 높을 것 같다.{◎ 엠파스 ( http://www.empas.com )1) 소개; 엠파스는 정보검색 시스템을 연구한 숭실대 이중호 교수팀이 개발하였다. 어원은 E-MEDIA와 COMPASS의 합성어로써 1999년 11월 ㈜지식발전소에서 서비스를시작한 엠파스는 국내 최초 자연언어 검색엔진으로 알려져 있다. 엠파스의 데이터베이스 규모는 보유 페이지 수가 약 2,000만건이 되고, 서비스 페이지 수는 약 1,500만건이다.2) 특징;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검색어를 입력하여 정보를 좀더 쉽고 2개의 결과가 나타났으며, 한글 문서 파일로 된 결과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의 대부분 이 각 대학의 사회 봉사 과목과 연결된 것이 많았고 보고서, 신청서 등이 있었다. 2단 계는 1단계와 별 다를 것 없이 정확률이 너무 떨어지고 3개 이상의 중복된 검색 결과 가 나란히 보여지고 있다. 일부 TO 한국사회봉사회 님 : 한국사회봉사회에서 자원봉 사자를 모집합니다. 와 같은 검색 결과는 사이트가 아예 안 열려 지는 문제점도 가지 고 있었다.3단계는 총 757,054개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 사회복지봉사활동 인증관리 라는 결과는 3개씩이나 중복되어 나타나는 등 결과가 중복되어 있는 것들이 많이 나타났다. 또한 신청서 및 보고서, 양 식등의 한글 문서가 함께 나왔다.엠파스는 [www.daegu.ac.kr]에서 결과 더 보기 / 이 사이트만 빼고 검색하기 와 같이다른 검색 엔진에서는 볼 수 없는 링크를 일반 검색에서도 검색 결과와 함께 제공하고 있 다. 웹페이지 검색에서만도 문서파일검색 · 고급검색 · 자연어검색 · 링크제목검색등 여러 가지 검색 조건이 설정되어 있어 이용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타입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야후 ( http://kr.yahoo.com )1) 소개; 1994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대학원생이었던 데이비드 필로(David Filo)와 제리 영(Jerry Young)이 만든 검색 엔진으로 주제별로 계층적 인덱싱이 되어있고 오랜 개발과정을 거쳤 기 때문에 검색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리고 이용자가 어디로 가서 정보를 찾아야 할 지 모를 때 디렉토리 검색이 용이하기 때문에 이용하면 효율적이다.2) 특징; 특정 주제별로 각 PAGE들을 분류하여 정리해 놓은 서치 엔진으로 장점으로는 찾고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원하는 것의 대분류 정도만 알아도 찾을 수 있다.단점으로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까지 여러 단계 거쳐야 하므로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면 엉뚱한 정보만 찾게 될 수 있다.또한50%의 정확도를 보임.4) 평가; 1단계는 웹문서 총 2,330,000개의 검색 결과 중 2개의 페이지에서 90%으로 앞의 검 색 엔진들에 비해 가장 높은 정확률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전국의 각 시 및 도에 서 관할하는 자원 봉사 센터·단체들에 대한 내용이 검색되어 졌고 한글 문서 파일 은 단 한 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듯 자연어로 되고 광범위한 1단계에서도 높은 검색 정확율을 보여주는 것이 검색 엔진이 가져야 할 첫 번재 필수 요소라고 생각해 본다. 일반 이용자들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2단계에서는 총 1,160,000개의 검색 결과 중에서, 오히려 1단계에 비해 정확도가 떨 어지는 결과가 보여졌다. 대부분이 각 대학의 사회 봉사 교과목과 연관된 내용이 대 부분을 차지했으며 제목없음 의 엉뚱한 검색 결과도 첫 번째 페이지에서 2개씩이나나타나 당혹스러웠다.3단계에서는 총 43,500개 중 사회 봉사 단체의 리스트를 보여주는 웹문서가 대부분 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3건 이상의 결과에서 중복된 점이 나타났으며, 본문에 검색어가 분산되어 포함되고 있는 한글 문서 웹 페이지들도 여럿이 나타났다.야후에서는 특이하게도 총 검색결과 수 옆에 검색하는데 걸린 소요 시간을 소수점 아래까지 내어 제공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유사문서 검색과 같은 정보는 제공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검색 결과 1단계에서 보여 준 높은 정확률 때문에 일반 이용자에게 검색 엔진으로 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글 문서 파일이 따로 구분 없이 나타나고 있어 다른 검색 엔진에 비해 검색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검색 결과에서도 주제별 디렉토리 구분이 몇몇 제공되고 있어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초보 검색 이용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심마니 (http://www.chol.com/)1) 소개; 심마니는 ㈜한글과 컴퓨터의 자연어처리팀에서 개발한 한글 정보 검색 시스템으로 1996년 3월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준다.
    인문/어학| 2004.06.18| 8페이지| 1,000원| 조회(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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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계집
    『퇴계집』(退溪集)Ⅰ. 저자 -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 연산군 7. ∼ 1570 선조 3.); 퇴계의 본관은 진보(眞寶: 현재의 청송),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퇴도(退陶)이며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에서 출생했다. 6세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12세부터 숙부 인 이우(李 )에게서 「논어」등을 배웠으며 20세때에 「주역」공부에 몰두하기도 하였 다. 27세에 경상도 향시(鄕試)에서 진사·생원에 합격하였다. 1523(중종18)년 성균관에 입학하고 1528년 진사가 되었다. 1534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전적·호조좌랑·형조 좌량 등을 거쳐 1542년 충청도 암행어사,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545(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 후 병을 핑계로 관직을 사퇴하고 46세가 되던 해에 귀향하여 양진 암(養眞菴)을 짓고 독서에 전념하였다. 이때 토계(兎溪)를 퇴계(退溪)로 개칭하여 자신 의 호로 삼았다. 그 다음해에, 단양군수를 거쳐 풍기군수로 나아갔다. 이후 51세까지 낙 향하여 학문 연구에 몰두하다가 52세때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 취임하였으며 그외에 여러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몇가지 관직을 잠시 지냈을 뿐 모두 사양하였다. 59세 때 귀향하여 다음 해에 도산서당을 낙성하고 본격적으로 학문연구와 교육에 몰두하였 다. 68세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으로 임명된 이래 몇 가지 관직을 역임하면서 군주 의 규범과 통치 방법을 포괄적으로 기술한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와 성군(聖君)의 심법(心法)을 열 개의 도설(圖說)로써 체계적으로 설명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어 린 선조에게 올렸다. 그 이듬해에 귀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다가 70세가 되던 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그는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로 이이(李珥)와 함께 유학계에 쌍벽을 이루었다. 그 의 학풍은 뒤에 그의 이원론(二元論)를 반박하고 나선 기호학파에 대하여 영남학파를 이루었다. 풍기군수로 있을 때 교육사업에 관심을 두어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 洞書院)에 소수서원(紹修書院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주자 성리학의 요체가 담겨져 있는 서간문을 초록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거의 완성하고 그 서문을 지었으니 이것이 일본 학자들이 신명처럼 존숭하였 다고 하는 「주자서절요서」(朱子書節要序)이다. 63세에는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지어 주자로부터 명(明)의 하흠(賀欽)에 이르기 까지 성리 학자들의 행장과 어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았다.2. 중국의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성리학이 정립 될 수 있는 토대 구축.- 중국의 성리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리학이 조선의 사상으로 토착 화되어 조선 성리학이 정립되도록 힘썼다. 53세때에 정지운(鄭之雲)이 지은 「천 명도해」(天命圖解) 가운데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 다 라는 구절을 퇴계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라고정정하였는데, 이것이 당시 학자들 사이에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후 7년 동안 계속된 논변을 통하여 퇴계의 학설이 정립됨으로써, 중국 성리학과 성격을 달리 하는 조선 성리학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 논변은 조선조 성리학사를 일관하 는 쟁점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되고 있다.Ⅱ. 퇴계집(退溪集)에 대해; 조선 중기의 학자 이황(李滉)의 시문집 및 별집·속집·외집을 합한 목판본이다. 원래 「퇴계선생문집」은 1599(선조 32)년에 문인 조목(趙穆) 등에 의하여 수집·간행 된 후에 누차 중간본이 나왔다.이황은 본래 도연명(陶淵明)과 두보(杜甫)의 시를 좋아하다가 말년에 주희(朱熹)의 시에 심취하였다고 하는데, 깊이 있고 맑으며 장중하고 원숙미를 풍기는 시를 많이 지었다.「퇴계집」에 수록된 내용은 한국 유학사에 학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퇴계 의 학설을 주축으로 하는 퇴계 학파와 율곡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는 율곡 학파는 상 호 대립하면서 학문을 발전시켜 갔으며, 정파를 이루어 정국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 리고 조선 후기의 실학 사상을 주도한疏)」는 계통을 (繼統)을 중시할 것. 참소(讒訴) 와 이간(離間)을 막을 것. 성학(聖學)을 숭상할 것. 도술(道術)을 밝힐 것. 복심(腹心) 을 미루어 民情)을 살필 것. 수성(修省)을 정성 되게 할 것 등의 6조를 들어 시정의 요점을 논했다.「성학십도」는 군주는 사단(四端)의 마음을 확충하여 본성을 회복한 성인이 되는 학문인 성학을 돈독히 닦아 그것으로써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58세 의 나이에 지어 당시 17세의 국왕 선조에게 올린 것인데, 성학에 대한 선학의 도(圖) 와 설(說)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유학의 핵심을 10개의 도(圖)로써 정리하였다.書에는 시사(時事)·문후(問候)·교훈(敎訓)에 관한 서한(書翰)도 많이 있나 경전상 (經傳上)의 성리학에 관한 것과 예의(禮義)에 관한 것도 상당수이다.「성리제가해초(性理諸家解抄)」는 성리에 관한 대가의 해석을 초록한 것으로, 필체 가 훌륭한 작품이다.Ⅲ. 퇴계집(退溪集)의 본문1. 시(詩); 각 문체의 한시 997수와 「도산잡영」 및 국한문 혼용 시조집인 「도산십이곡」등으 로 16세기 조선 시문학을 주도한 성리학적 문학관이 잘 나타나 있다.그 중 유명한 매화시부도산십이곡(梅花詩附陶山十二曲)은 매화를 읊은 시들과 도산서 원이 있는 안동의 산수를 예찬한 연작시조 12편으로, 이 시를 저자 자신의 필적으로 모각 (模刻)한 것이 현재 남아 있다.2.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1568년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으로서 군주의 자기수양과 통치술을 포괄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퇴계의 시대인식과 경세론을 엿볼수 있는 문헌이다. 아래의 6개의 조목으로 구 성되어 있다.제 1조 - 계통(繼統: 왕통을 잇는 것)을 중시하고 인과 효를 온존히 할 것.제 2조 - 참소(讒疏)를 막아 양국(兩宮 :선조가 거처하는 왕궁과 명종비 인순왕후가 거처하는궁)을 친하게 할 것.제 3조 - 성학(聖學)을 숭상하여 정치의 근본을 이룩할 것.제 4조 - 도술(道術)을 밝혀 인심을 바로 잡을 것.제 5조 - 복심(腹心)을 미루어 이목을 두뇌처이고 학술의 연원이기 때문에 제 1도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2) 서명도(西銘圖)」- 장횡거의 「서명」과 주자·양구산·요쌍봉의 해석을 인용하고 정림은(程 林隱)이 그린 그림을 실은 다음에 퇴계가 간단히 내용 설명을 하고 있다.3) 소학도(小學圖)로서, 「소학제사」(小學題辭)와 주자의 「대학혹문」에서 소학에 관하여 설명 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며 그림은 퇴계가 소학의 목록에 의거하여 그린 것이다. 역시 퇴계의 간단한 설명문이 있다.4) 대학도(大學圖) - 「대학」의 경문과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대학」을 설명한 부분을 인 용하고 있으며, 그림은 권근이 그린 것을 전재했다. 퇴계는 설명문에서 특히 경(敬)을 강조하고 있다.5) 백록동규도(白 洞規圖) - 주자가 에서 강의 할 때 지은 「규약문」의 후서(後 序)를 싣고 퇴계가 설명한 것이며, 그림은 「규약문」의 조목에 의거하여 퇴계가 그린 것이다. 오륜이 강조되고 있다.* 이상의 5도에서는 천도에 근본을 두고 인륜을 밝히며, 덕업에 힘써야 함 을 주장한 것이다. *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 정림은이 지은 글과 세계의 그림, 그리고 퇴계의 설명문으로 구성 되어 있다. 제 1도는 정림은이 그린것이며 2도와 3도는 퇴계가 그린 것이다. 퇴계의 심성론과 경사상이 집약되어 있다.7)인설도(仁說圖) - 주자가 짓고 그린 「인설」(仁說)과 그림을 싣고 퇴계가 간략하게 그 취지 를 설명하고 있다.8) 심학도(心學圖) - 정림은이 마음을 논한 명구들을 편집하고 그림을 그린 것을 전재하고 퇴계 가 설명한 것으로 유학의 수양론이 집약되어 있다.9) 경재잠도(敬齎箴圖) - 주자의 「경재잠」과 오림천·진서산의 해석을 싣고 퇴계가 경이 성 학의 시종 임을 밝힌 것이다. 그림은 왕백(王柏)이 「경재잠」의 내용을 배열하여 만든 것이다.10)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새벽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의 행동 규범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숙흥야매잠」은 진무경(陳茂敬)이 지은 것이고 그림은 퇴계가 왕백의 「경 재잠도」를 본따 그린 것연계의 운도을 포괄하는. 전 존재의 궁극적 근거를 탐색하여 그것 을 리(理)라고 규정하였다. 즉 주자학은 인간과 자연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확립하는 작 업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태극론(太極論)·성론(性論)이 중심 과제로 등장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면에, 퇴계학은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출발한다. 주자가 심성론에 있어서 성을 보다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면 퇴 계는 정을 주제로 삼는 것이다.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라는 퇴계의 제일(第一 )해석과, 기대승의 비판을 받아 수정한 제이(第二) 해석인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理)가 타는 것 이다. 라는 주장은 정을 사단과 칠정으로 대립시키고 이(理)와 기를 분리시키며 형이상 자인 이(理)에 능동성을 부여 하는데에서 오는 논리적인 모순 등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퇴계가 정지운의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 라는 주장을 분별이 너무 심하다 라고 비판하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이(理)와 기에 배속시킨 것은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를 구분하고 그 위계를 분명히 하며 사단의 순수선성 (純粹善性)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다. 이것은 리와 기가 상호 의존적으로 공재(共在)하고 있으나 형이상학적·가치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 서로 섞일 수 없는 독자성을 갖는다는 이간법(離看法)에 기초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발설(理發說)을 주장한 것은 이(理)의 절대가치가 현실에서 정으로 발현됨을 논증하여 그 실천의 당위 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퇴계에 의하면 사단이라는 마음의 작용과 소리개가 날고 물 고기가 뛰는 자연현상, 하나하나가 모두 이(理)의 자기현현(自己顯現)아님이 없다. 그러 므로 인간은 주체적으로 이(理)를 사회에 구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퇴계 이와 같은 학 설은 사화(士禍)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최종적 원인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아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으
    인문/어학| 2004.04.06| 7페이지| 1,000원| 조회(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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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감상] 신윤복의 단오풍정과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비교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단오풍정】과마네(Edward Manet)의 【풀밭위의 식사】 비교내가 『단오풍정 (端午風情)』 과 『풀밭위의 식사』, 이 두 작품을 고민 끝에 비교 감상을 하게 된 이유는 이 작품들이 나타난 지리적 여건(동·서양)과 시대적 여건 등 모두 평이하게 다른 와 중에서도 몇 가지 공통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공통점은 우선, 두 작품 모 두 당시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실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는 점이 있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기존의 양반 중심의 체계적 문화에서 벗어나 소외 계층이었던 부녀자들과 하층민을 그리는 등 그림의 소재의 다변화를 꾀하여 현실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또한 마네의 그림에서도 등장한 여인의 나체가 전통적인 서구의 회화사에서의 미의 상징이었던 여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존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과 그림 속의 장소도 일상 생활에서의 피크닉 장소인 숲의 생활의 한 정경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견줄 만 하다.이 두 작품의 세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우선 혜원의 그림에서는 사물의 모습을 한층 더 화사하고 화려하게 돋보이기 위하여 배경을 그 색에 맞게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단오절에 여인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는 등의 세시 풍속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라의 상태로 목욕하는 여인을 바위에 몸을 숨긴 채 훔쳐보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노골적인면을 익살스러움으로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보았다. 맨 왼쪽에 퇴기인 듯 나이 든 여인이 주요 부분만 치마로 살짝 가리고 젖가슴과 나온 배와 엉덩이와 장딴지의 맨살을 드러낸 채 서 있고, 개울가에 주저앉아 팔뚝의 때를 미는 여인은 일그러진 표정이 절묘하다. 이들과 함께 그네 타고, 나무 아래서 담배 피우고, 가체인 다리를 매만지고 빨랫감을 이고 오는 여인도 보인다.이 그림에서 혜원은 전체 그림의 중심을 강렬한 색채로 그네 뛰는 여인에게 맞추어 그 표현 기법을 한결 더 세련화 시켰다. 그는 낭만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여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로 한국 사람의 골격과 표정을 잘 표현해 독특한 해학과 낭만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풍속화들은 매우 세련된 감각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배경을 통해서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등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생생하게 전하여 준다. 그는 나뭇잎이나 여인들의 모습을 한층 더 화려하게 보이기 위하여 배경을 그 색에 맞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었던 배경이 생략되고 전체적인 화면 구도를 중심으로 하던 화풍과는 달리 전체 구도보다는 배경을 나타내 세심한 묘사가 두드러 지게 표현해 낸 것이다. 가늘고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의 효과가 이중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다음으로 마네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의 남자와 두 사람의 여자가 등장한다. 평범한 생활의 휴일 피크닉 자리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앞쪽의 세 사람의 남녀를 우선 살펴 보자. 두 신사는 완전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고 무언가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이에 반하여 두 신사 사이의 여인은 완전한 나체로 있고 마치 화면 밖의 관객에게 시선과 웃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들 뒤의 냇가에 두발을 담그고 있는 여인도 반쯤 벗은 상태로 있다. 현대의 개방적인 문화에서도 이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이 발표된 그 시대에서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저번 수업에서 배웠던 대로 그림 속의 여인이 그 당시 마네가 즐겨 그렸다던 모델로 실존 인물이었단 점은 충격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마네의 그림에서는 과거 양감과 원근을 중시하던 근대 미술과 크게 다르게 어두운 빛깔은 오직 밝은 빛깔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만 쓰여지고 있고 이와 함께 중간색이 사라져 버려 색조의 명암이 한층 더 선명하게 색채의 대비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화면 전체의 선도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인 느낌이 강조되면서 양감과 원근의 효과가 감소되었다. 색조의 조정에 의해 명암 효과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면면을 강조하고 단일 색채로 크게 처리하여 평면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두 번째, 공통점은 혜원과 마네 모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화풍을 창조했다는 점이다. 신윤복은 조선의 풍속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홍도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 영향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변화시켜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창안하여 그 또한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가 되었다. 양반 지배층의 풍류로서가 아닌, 이전까지 회화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서민들의 모습이 그의 화폭에 담겨져 있고 지배층의 의식 표현의 수단으로서의 회화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성장된 민중의 의식을 반영시키고 있다. 또한 배경 묘사를 통해 당시의 살림과 복식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등 조선 후기의 생활상과 멋을 생생하게 전하여 준다. 그만의 부드러운 선과 아름다운 채색으로 당시의 서민 사회의 풍속을 매우 세밀하게 잘 그렸고, 명절날의 여인들의 표정이나 모습 등을 표현해 사실적인 모습을 부각 시켰다.
    예체능| 2002.11.21| 2페이지| 1,000원| 조회(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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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에 대해서...
    1. 르네상스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르네상스는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르네상스를 중세와 비교하자면 르네상스는 사회·정치·경제적으로 중세와는 판이한 새로운 문화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르네상스는 비성서적이었고 문학적 표현으로서의 라틴어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속어 문학이 점차적으로 번창하였다. 또 르네상스의 문화는 농촌의 전원적인 특징보다는 도시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사회·경제 생활의 중심지가 장원이나 봉건 귀족의 거대한 성이 아니라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와 같은 부유한 도시들이었다. 정치적 변화도 지대하여 지방 분권화된 봉건 정치는 대소 규모의 보다 결집된 정부의 형태로 변했으며 귀족의 지배는 왕과 부유한 은행가나 상인들로 구성된 과두정의 지배로 전환되었다.2. 이탈리아의 르네상스2.1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역사적 배경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라센, 비잔틴 제국과 빈번한 상거래를 했으며 상품은 물론 사상과 예술적인 경향의 활발한 교류도 이루어졌다. 또한 이 시기에 상업의 부활 과 십자군 운동의 참여를 통하여 도시가 활성화되었고, 12세기에는 중·북부의 많은 도시가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13세기 후반의 경제적 발전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도 심하여, 상인의 현실적인 감각이 사회의 모든 면에 침투함으로써 이탈리아 특유의 시민 문화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14세기에는 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은 문화적 재생 운동(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학문의 전통 면에서도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해상 무역으로 상공업과 화폐 경제가 발달하여 피렌체·베네치아·제노바·밀라노 등의 도시 국가가 번영하였다. 상공업의 발달로 시민 생활은 윤택해지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유로운 창조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각 도시 국가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서로 경쟁하였고, 그리하여 도시의 군주와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보전하기 위해 축적된 부를 학문과 예술에 바쳤다.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이 시대에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대표적인 가문이었다.또한 일찍부터 동로마의 비잔틴 문화와 접촉하고 있었던 이탈리아에는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 고전을 가지고 망명해 왔다. 그들을 중심으로 그리스 고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르네상스 기운이 무르익었다.이탈리아의 문예 부흥은 미술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였는데 미술가들은 미술의 소재를 인간에서 구하여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였고, 종교화도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화풍은 중세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은 당대의 천재 미술가로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16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에스파냐·영국 등 서유럽 여러 나라로 번져 나가서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3.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과 철학, 과학3.1 예술(문학, 미술, 음악)근동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북이탈리아 여러 도시가 번영한 것과 더불어 고대예술에 대한 안목이 트이고, 그것을 본보기로 하여 창조하려는 의욕이 강해진 것은 14세기 중반부터였다.단테(1265∼1321)는 그 관념에서는 오히려 중세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이었으나, 교회 공용어인 라틴어가 아닌 고국의 언어 토스카나어로써 예술적으로 뛰어난 시문을 창조하려 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인문학자들은 고대문학에서 문학의 규범을 만들었다. 보카치오(1313∼1375)는《데카메론》에서 육욕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긍정하고 색정으로부터의 해탈을 주장하는 성직자들을 비간성 부활, 자연의 재발견, 개성의 해방 등을 특징으로 하며 자연탐구에 의한 사실과 고대 연구를 두 개의 큰 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가 근대화되면서 시민 의식이 활발하였던 피렌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는 미술가 조합을 만들고 공방을 거점으로 하여 고전 작품의 연구와 사실적인 자연 탐구를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다시 이탈리아의 각 도시로 파급되었고, 16세기 이후에는 알프스 이북의 여러 국가에까지 퍼져 나갔다.이탈리아 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는 13세기 무렵부터 차츰 독자적인 양상을 드러내었고 본격적으로 르네상스 미술이 꽃 핀 시기는 142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조각가 도나텔로, 화가 마사치오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 15세기초의 르네상스 미술은 피렌체파의 주도 아래 각 분야가 서로 교류하면서 인체 균형론과 원근법을 탐구하고 그러한 기법을 확대하여 자연주의적 주류 아래 주도해 나갔다. 그리고 15세기 후반에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각각 그 지방적인 특색을 보유하면서 새 시대의 예술 운동에 참여한 유파들이 서로 그 특색을 겨루며 활기를 띠었다. 피렌체 이외의 지역인 중부 이탈리아에서는 페루지노, 핀투리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이 나왔고, 북이탈리아에서는 안테냐를 비롯하여 코사, 크리벨리 등이 활동하였다.르네상스의 음악은 중세의 교권의 지배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시민계급중심의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기초로 하여 작곡가들은 심미적인 인본주의 작품을 만들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주로 세속적인 음악과 기악의 현저한 발전이 있었으며 교회음악에는 화려한 2중창의 방법도 사용되었다. 베네치아의 대표적 음악가로는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와 그의 생질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4년경∼1612)가 성악을 화려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특히트리나, 몬테비르디(Momteverdi)등의 작곡가들이 중요한 작곡가이다.3.2 철학과 과학초기 인문주의자들은 논리학과 스콜라 철학의 합리성을 경멸하였다. 이들은 스콜라 철학이 인간의 고귀함과 뛰어난 문학적 스타일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간주하고 아리스토텔레스 대신 키케로를 숭배하며 도덕 철학의 연구에 관심을 집중했다. 또 15세기에 인문주의자들은 피렌체의 플라톤 학회에서 플라톤 철학을 추종하였다. 그러나 모든 인문주의자들이 플라톤의 열광적인 숭배자는 아니었다. 일부 인문주의자들은 자신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관심을 가졌으며 또 일부는 스토아, 에피쿠루스, 회의론자로 전락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는 에피쿠루스의 원칙을 옹호했던 로렌조 발라, 진리의 근원으로서 권위에 의존하는 것을 배격하며 귀납적인 연구 방법을 촉구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군주론을 저술한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있다.한편 과학에 있어 르네상스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편협한 태도는 철학의 진보를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전을 일시적으로 저해했다. 이들은 고전 고대의 권위를 너무 쉽게 받아 들였으며 주된 관심의 대상도 과학이 아니라 예술과 문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15세기 유럽에서 과학적 발견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천문학, 수학, 물리학과 의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룩했는데 천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은 태양중심설의 소생이었다. 이 이론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노력의 결과이지만 가장 중요한 천문학적 증거를 제공한 인물은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르네상스 물리학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인데 이들은 법칙으로 공식화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인력에 관해 파악하고 있었다. 의학에 있어서 이탈리아 의학자들은 혈액의 순환과 관련된 중요한 지식을 제공하였는데 브뤼셀 출신의 안드레이 베살리우스는 실제적인 해부에 기초해 인간 신체를 묘사하였고 스페인의 미카엘 세르베투스는 혈액의 폐순환을 발견했으며 영국의 윌리암 하비는 혈액였다. 결국 르네상스 문화는 일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지지 못하고 일부 지식층과 상류 사회의 교양과 취미에 그쳤다.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쇠퇴하게 된 원인을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탈리아는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반목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침입을 받아 도시가 황폐해지게 되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로 넘어감에 따라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경제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16세기의 끊임없는 전쟁은 이탈리아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켜 결국 예술을 후원할 여유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또 반종교 개혁에 따라 엄격한 교권이 부활되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는 16세기 이후 쇠퇴하였다3. 북유럽의 르네상스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15세기말부터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으로 확대되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삶의 환희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예술과 문학으로 표현하였다면,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는 인간의 존재를 좀더 진지하게 이성에 비추어 생각하려는 도덕이나 종교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3.1 독일독일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와 같이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많은 유학생이 다녀옴으로써 시작될 수 있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시기는 남쪽 도시인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빈 등은 15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고, 북부 도시인 하이델베르크, 에어프르크등은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인문주의자들에는 이탈리아 유학에서 고전학을 배운 요한 로이힐린, 기사휴머니스트이자 풍속문학으로 유명한 후텐,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인 필리프 멜란히톤, 《우인선》의 저자인 세바스티안 브란드, 교황 및 스콜라철학자와 격렬한 논쟁을 하였던 루비아누스가 있는데 이들은 휴머니즘 자체보다는 종교와 정치에 대한 저항을 중요시 여겨서 성서의 원전 연구와 크리스트교의 기원 연구에 몰두하고 현실 사회와 교회를 날카롭게 비판하여 종교 개혁을 예비하였다. 북유럽의 가장 위대한 화가들은 독일에
    인문/어학| 2002.10.08| 4페이지| 1,000원| 조회(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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