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집
- 최초 등록일
- 2004.04.06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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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문헌 숙제였습니다..
목차
Ⅰ. 저자 -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 연산군 7. ∼ 1570 선조 3.)
※ 퇴계(退溪)의 학문적 업적 ※
Ⅱ. 퇴계집(退溪集)에 대해
Ⅲ. 퇴계집(退溪集)의 본문
1. 시(詩)
2.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3. 「성학십도」(聖學十圖)
4. 「논사단칠정」(論四端七情)
Ⅳ. 관련 연구
Ⅴ. 느낀 점
본문내용
※ 퇴계(退溪)의 학문적 업적 ※
1. 성리학(性理學)의 포괄적 연구 및 체계적 정리 작업. - 퇴계는 풍기군수를 사퇴한 49세 이후 「주자대전」(走子大全) 연구에 몰두하여,송대 상수역학(象數易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역학계몽」(易學啓蒙)에 대한 주해서인 「계몽전의」(啓蒙傳疑)를 57세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주자 성리학의 요체가 담겨져 있는 서간문을 초록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거의 완성하고 그 서문을 지었으니 이것이 일본 학자들이 신명처럼 존숭하였다고 하는 「주자서절요서」(朱子書節要序)이다. 63세에는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지어 주자로부터 명(明)의 하흠(賀欽)에 이르기 까지 성리학자들의 행장과 어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았다.
2. 중국의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성리학이 정립 될 수 있는 토대 구축.
- 중국의 성리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리학이 조선의 사상으로 토착화되어 조선 성리학이 정립되도록 힘썼다. 53세때에 정지운(鄭之雲)이 지은 「천명도해」(天命圖解) 가운데 "사단은 이(理)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다"라는 구절을 퇴계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라고 정정하였는데, 이것이 당시 학자들 사이에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후 7년 동안 계속된 논변을 통하여 퇴계의 학설이 정립됨으로써, 중국 성리학과 성격을 달리하는 조선 성리학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 논변은 조선조 성리학사를 일관하는 쟁점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각도에서해석되고 있다.
참고 자료
· 이퇴계 및 퇴계집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전두하. 1996.
· 영남문집해제 : 퇴계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이황. 1996.
· 퇴계의 성학 십도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소. 김두원, 1975.
· 퇴계의 성학에 관한 고찰 -≪성학십도≫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오석원. 1996.
· 이황의 수양론 - 성학십도와 경을 중심으로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이해영. 1996.
· 제 5 회 퇴계학국제학술회의 발표 논문 : 퇴계의 인사상과 인도정신 - 『 성학십도 』 제 7 「 인설도 」 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